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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9: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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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미술대상전과 최선의 최근 작업을 보고

 

1.

2013년 2월 2일,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제12회 송은미술대상전을 보았다. 이 전시회의 최종 수상자로 선정된 4명의 작가는 백정기, 윤보현, 하태범, 최선이다. 이번 전시회를 보러 가게 된 까닭은 선정된 작가 중 대상작가인 최선의 작업에 대해 1회전 개인전부터 유골을 전시장 바닥에 흩뿌린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발적인 작업에 대한 글을 쓴 인연과, 이번에 전시한 작품 중 특히 흰 그림(돼지 그림) 실물작품에 대해 전시하기 전에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공모전은 심사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회적 지명도를 가진 작가나 비평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미학적 틀, 즉 관점에 의해서 공모작들의 우열이 가려지고 수상여부가 결정된다.

서구에서는 근대 미술의 패러다임이 사실상 해체된 19세기말 이후 예술의 자명성과 미술을 객관적 척도로 평가할 수 있는 미학적 틀이 해체되는 징후를 드러내었으며, 이어 급격하게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는데, 특히 역사적 아방가르드 예술의 등장이 그 단적인 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전위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담론에 의해 다양한 양상의 현대미술이 형성될 수 있었다. 기성의 미학을 회의하며 배반하는 자들에 의해 역설적으로 현대미술의 가치가 확장된 것이다.

물론 지각 있는 작가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청년 작가들이 공모전에 출품하는 이유는 관전에서부터 민간 언론기관 등에서 열어온 공모전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신춘문예 같은 등단 코스처럼 일시에 지명도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 또한 최근 우리 미술계의 상품성 있는 작가 위주 독식 현상으로 인해 전시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번 최선의 수상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송은미술대상전 같은 경우는 다른 공모전에 비해 비교적 참신한 방식(온라인 포트폴리오 예선심사와 본선 실물작품 심사로 하면서도 심사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달리 해서 심사하고 집계한다거나 작가의 출품과정에 대한 배려와 성의 있는 협조 등을 말함)으로 심사가 이루어지고, 대상 작가를 선정하기 위해 일정기간 전시회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개인전까지 개최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진화된 공모전 형태를 보여준다.

 

2.

전시장에서 먼저 본 백정기의 <Is of : Mt. Seorak in Autumn>이라는 현상작업들은 잉크 대신 작가가 설악산에 가서 수집한 다양한 색상의 단풍잎으로부터 추출한 천연색소로 인쇄한 설악산의 가을 풍경과 이러한 결과를 도출한 프로세스를 마치 화학 실험실처럼 다룬 프로젝트이다. 작품 이미지는 얼핏 보면 일반 잉크로 출력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전시장 공간에 중소기업 공장처럼 가득 채운, 단풍잎으로부터 색소를 추출하기 위해 작가가 직접 구성한 분쇄기와 농축기 등의 기자재 장비들을 통해 벽에 걸려 있는 설악산의 가을 풍경이 실제 현장의 단풍잎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재현 대상과 이미지의 물질적인 동질성이 이 작품의 핵심 콘셉트인 셈이지만, 이처럼 기술적 장비의 공간적 점유로 이미지와 물질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태범의 작업은 자연 재해나 전쟁, 테러 등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의 보도 이미지들을 순백에 가까운 무채색 사진 이미지로 재현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실제 보도사진의 모습 그대로 모형을 제작하여 사진 촬영하는 ‘Actuality’ 접근과 실제를 바탕으로 하되 자신의 주관적인 사고를 개입하여 모형에 반영해 작업하는 ‘Imagination’ 접근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의 모형들은 현장 잔해의 디테일까지도 재현하지만, 사건 현장의 현실감을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제거해버리고 이를 백색 및 회색의 무채색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 선 보인 <White> 시리즈는 정치적 분쟁과 테러 이미지를 다룬 작업으로, 보도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소비하는 현대인의 시선과 냉소적인 감성을 담았다고 한다. 별도의 공간에 삼차원적으로 설치한 그의 영상 작업<Playing War Games>은 도시로 설정한 바닥 공간에 사각 건물의 도시가 하나 둘씩 생겨나고 건물 모형이 하나씩 나타나면서 이내 소음과 함께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1990년대 초반 한 밤중에 이루어진 다국적군의 바그다드 시가 폭격장면을 재현한 듯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뉴스시간마다 재현된 실제사건이 무슨 시뮬레이션에 의한 가상현실처럼 보였던 당시의 폭격장면이 연상되었다. 당시 이 시가공습에 대해 한 기자는 ‘미국독립기념일의 불꽃놀이를 일백 배 확대한 것 같다’고 말했고, 미 ABC TV의 앵커는 ‘이것은 제멋대로 진행되는 쇼’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실제의 참혹한 현실조차 ‘쇼’로 보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현장의 참혹한 광경을 백색의 순결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역설적인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태범의 <White> 시리즈 작업을 보는 순간 일본의 여행 작가 후지와라 신야가 3.11 대지진 때 일본 동북부의 재해현장을 푸른 달빛에 젖은 장면으로 찍은 <월야>라는 사진이 생각났다. 그는 오른쪽 눈으로 사용하게 설계된 카메라로 굳이 시력이 약한 왼쪽 눈으로 사진을 찍는 데, 이러한 간단한 방식만으로도 그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리얼리티, 혹은 진정성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윤보현은 전시도록에 소개된 대로 유리 매체의 비가시적인 속성 즉, 투명함, 굴절, 왜곡과 같은 특성을 탐구하고 이를 가시화시키는 데에 관심을 갖는 작업을 보여준다.

<Glass Helmet>은 유리를 인체에 착용하고 물과 유리의 상호작용을 다룬 작품이다. <Glass Tube>와 <Glass Trumpet> 역시 유리 속성을 다룬 것으로, 유리 두께와 크기 그리고 물, 불, 공기 압력 등의 외부 요인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듣게 하는 공감각적 작업이다. <Glass Tube>는 유리관 한 쪽에 있는 철망을 가열시켜 발생된 공기압력의 차로 인해 소리가 나는데, 서로 다른 모양의 관을 움직이는 일련의 자세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Glass Trumpet>은 일본 에도(江戶)시대 화가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의 작품 <나팔을 부는 여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으로, 얇은 유리 표면이 수축과 팽창됨으로써 소리가 나는 옛 장난감을 재현했으며 무작위적인 소리와 이미지 굴절을 감상자에게 체험하게 한다. 이 모든 작품에는 스포트라이트가 투사됨으로써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굴곡과 기포와 같은 유리 특유의 속성들이 그림자를 통해 드러난다. 이처럼 윤보현은 ‘유리’라는 투명한 물질적 매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표현하는 데, 투명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특정 물질을 매개로 편집광적 표현을 추구하는 성향을 통해 이방인으로서의 소통에 대한 갈망과 이러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보상하려는 듯한 작업으로 이해되었다.

 

최선은 지난 2004년에 개최된 1회 개인전부터 매우 파격적이고 참신한 작업을 해온 작가이다. 최선의 작업은 이번에 4점이 출품되었는데 두 점은 이전 작업이다. 다른 작가와 달리 모두 제각기 다른 재료와 형식으로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의 작업은 초기부터 일반적 통념과는 거리가 있는 비예술적인 착상에서 비롯된다. 기존의 물감 안료를 대신하는 재료, 예를 들어 산모들의 모유를 추출하여 캔버스에 바르는 작업 등, 미술의 통상적인 재료나 표현방식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이는 두 점의 <흰 그림>은 최근 이 땅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업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자홍색 족자>는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350만 마리 돼지의 숫자를 도살할 때 돼지 엉덩이에 찍는 수성염료와 유사한 마젠타 색의 잉크로 출력한 작업이다. 거리를 두고 작품을 바라보면 ‘분홍색 평면회화’로 보이지만 근접해서 보면 4포인트 크기의 글씨와 숫자가 나열되어 있다.

전시장 가운데를 대각의 면으로 반분하듯 가로지르는 <흰 그림>은 매우 얇은 유산지 전체에 돼지 한 마리에서 추출한 기름이 칠해져 있어 관객과 작품 간의 간격과 관객의 수에 따라 주위 온도가 상승되면 기름이 녹아 공백으로 남게 되는 작품으로, 실제로 전시현장에 설치된 유산지 뒷면에다 손가락만 살짝 닿아도 기름이 손가락에 묻고 녹아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 또한 구제역 살처분과 생명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담고 있다.

다른 한 점인 <불산 흰 그림>은 2012년 9월 구미 주변의 자연을 황폐화시킬 정도로 큰 피해를 주었던 구미 불산(불화수소산) 누출 사고 현장을 담은 작업이다. 불산 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한 구미의 한 숲 속에 가서 대기로부터 불산을 흰 천으로 채취한 무색무취의 회화 작업이다. 맹독성 불산 가스가 휩쓸고 간 재난의 현장에서 최선은 불화수소산을 흰 천으로 채취한 작업을 한 것이다. 불산의 위력은 단적으로 말해 피부 겉은 멀쩡한 데 그 안의 뼈는 녹아버리는 데서 그 끔찍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비가시적 무색무취의 화학물질이 우리의 세상과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시적으로 접하는 세상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자각하게 한다.

색에 대한 접근에 있어 <흰 그림>과 대조를 이루는 <가쁜 숨(검은 방)>은 전구 위에 실제 피를 바르고 이로 인해 전구가 비치는 방안이 붉은색을 띄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가 검게 굳어짐에 따라 암흑의 방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과정 전반은 마치 별의 일생을 요약한 듯하기도 하고, 우리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지만 그 방식은 극히 단순하다.

이번에 대상을 받은 최선의 작품들은 이른바 ‘공모전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공모전 스타일이란 간단히 말해 심사위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준비된’ 포토폴리오를 바탕으로 기술적 완결성과 디스플레이의 세련성을 갖춘 작품을 말한다. 반면 최선의 작업은 이처럼 숙련된 기술 위주의 작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반어적 작업이다.

게다가 양극화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듯 외국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거리가 있는 청담동에 그의 비예술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 일정 공간을 점유하는 역설적 광경은 토폴로지적 측면에서도 반어적 효과를 주었다.

 

3.

아무리 공모전이 진화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심사를 하고 선정을 하는 이상 특정한 관점에 의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번 송은미술대상전을 보면서 신진작가를 새롭게 발굴하여 창작여건이나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로 공모전이 이루어진다면 그 순기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작가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나아가 미술계에 기여하는 공모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그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다면 역기능 또한 가능함을 의미한다. 하여튼 수상 여부와는 별개로 최선의 작품이 제시하는 감성적 넓이와 깊이, 또는 예술에 임하는 기본 태도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선은 수상 후, 전시에 앞서 나눈 대화중에서 ‘작품이라는 것은 관객에게 어떤 단서에 불과하다, 작품은 관객이 생각을 하고 느낌을 갖는 것에 도움을 주는 매개체’ 라는 필자의 말을 인상적으로 상기했다.

최선의 작품이 주는 체험의 강렬함과 임팩트가 어디서 오는가를 다각도로 반문해본다면 다른 수상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근원적 감성, 또는 문제의식임을 간파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이 갖는 두드러진 특색은 가장 비예술적인 날것으로부터 생명의 숨결과 같은 보이지 않은 세계의 리얼리티를 감성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 우리 삶에서 과연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철저히 고독한 성찰 없이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경탄할만한 테크닉을 구사한다고 해도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루기 어려우며, 임팩트 있는 감동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L.H.O.O.Q>가 단적으로 시사하듯, 현대미술에서 표현방법은 매우 유동적이어서 때로는 가벼운 몸짓의 흔적만으로도 새로운 존재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감응을 유발하는 원초적 진정성이나 기존의 표현을 전복하는 강한 힘이 더 좋은 작업과 그렇지 않은 작업을 구분하게 한다. 따라서 작업에 있어 더욱 근원적인 문제는 좀 더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봄으로써 가능한 깊고 풍부한 감성이야말로 그 어떤 현란한 기술이나 가시적 볼거리보다도 선행 조건인 셈이다.(201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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