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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7: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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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과 삶의 이면 들여다보기

 

1.

저기 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 살았던 것이다.

 

위 글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 지난 1970년대 후반에 태양계 바깥으로 긴 여행을 떠난 보이저 1호가 1990년에 지구에서 12억km 떨어진 곳에서 보내온, 그야말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지구가 보이는 사진을 보고 썼다는 글이다. 주1) 칼 세이건이 본 사진과 그가 쓴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새삼 인간의 욕망, 신념, 이데올로기 등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시공(時空)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인생을 악하고 괴로운 것으로 보고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나아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인 페시미즘(pessimism)에 빠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인한 충돌과 갈등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동아시아 한중일의 관계는 외교적 분쟁과 함께 각각 우경화 혹은 민족주의화 일변도의 악화일로로 치닫는 추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세대, 계층, 지역별로 극심한 분열 현상을 드러냈다. 그리고 악성 댓글과 연관된 유명 연예인 가족의 도미노식 비극적 최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 등 이러한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복합적 진실이 있다.

지구촌의 여러 비극적 사태와 우리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갈등 현상이 악화되거나 비극적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그리고 현대예술의 과도한 자본주의적 존재 방식 같은 현실의 비현실성을 느낄 때마다,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알라야식(ālaya-vijñāna, 阿賴耶識)’과 연관된 ‘각(覺,깨달음)’과 ‘不覺(무명의 상태)’을 생각하게 된다.

여러 불교 관련 서적에서 알라야식에 대해 수 십 년 전부터 접해왔지만 번쇄한 말의 동어반복이 심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이나 과학적 접근, 또는 철학적 성찰, 특히 뇌 과학을 만나고 실존적 삶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리고 연초에 일본의 불교철학자인 우매하라 다케시(梅原 猛)가 쓴「대승기신론-염세주의의 극복」이란 글을 읽으면서 알라야식에 대해, 그리고『대승기신론』을 해석한 원효(元曉, 617~686)사상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주2)

 

2.

알라야식은 유식학파에서 정세하게 논의되었다. 그중에서도 5세기경 인도 학승인 바수반두(世親)의 유식 사상은 인류의 철학적 사유에서 인간의 마음에 관해 가장 정밀하고 심오한 분석을 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의식의 스펙트럼을 8가지 층으로 나누었다. 여덟 가지 의식이란 오식-시각적 지각(眼識), 청각적 지각(耳識), 후각적 지각(鼻識), 미각적 지각(舌識), 촉각적 지각(身識)-과 이들 5종 지각을 종합해서 다음 찰나에 하나의 개념지를 형성하는 판단적 인식으로서의 제6식인 의식(意識), 이어 제7식 마나스식(manas, 末那識)과 제8식 알라야식은 현행하는 마음의 심층의식을 말한다.

알라야는 범어로 ālaya로서 a는 ‘없다, 아니다’라는 부정사이고, laya는 ‘없어진다’는 뜻이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알라야식은 모든 존재를 생기게 하는 힘이므로 한어로는 저장한다는 뜻이 담긴 ‘장식(藏識)’으로도 번역된다. 마치 씨와 나무의 관계를 매개하는 종자(種子)처럼 매개한다는 뜻에서 ‘일체종자식’, 또는 과거의 업에 의해 미래가 다른 형태로 성숙한다는 의미에서 이숙(異熟)이라 하는데, 이런 차원에서는 현대의 분자생물학이나 사회생물학의 기저인 유전자 DNA를 연상케 한다.

이 알라야식에 대해서는 7, 8세기의 주요 불교 경전들마다 언급할 정도로 논의가 분분하다. 이처럼 알라야식에 대한 탐구는 불교논리학인 인명학과 더불어 불교사상 중 가장 난해한 부분이지만 대승불교 사상의 대표적 불교 경전인『대승기신론』에 이르러 새로운 전환을 이루는 데, 이 때 큰 역할을 인물이 바로 신라의 원효이다.

 

원효의 알라야식에 대한 논의는 그의 저서 중 하나인『대승기신론 소·별기』에서 볼 수 있다.『대승기신론 소·별기』는 『대승기신론』에 대해, 원효가 이전 불교의 주요 사상은 물론 노·장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텍스트와 사상을 융합하여 종합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책을 말한다.

『대승기신론』은 2세기경의 인도 사람인 아슈바고샤(Ashvaghosa, 馬鳴)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지만 원본이 전하지 않아, 책이 쓰여 진 시기나 책의 저자에 대해 여러 설이 있으나, 마명보다는 후대에 쓰여 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논서가 7세기 후반 이후 중국 불교는 물론 이후 동아시아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8세기 이후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원효가 높이 평가되고 이유도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의 해석인『대승기신론 소·별기』가 8세기 초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법장(法藏,643~712)이 지은 『대승기신론의기』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을 정도로 영향을 주고, 이후 동아시아 불교사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법장은 신라 화엄종의 초조인 의상義湘과 더불어 지엄智儼에게서 화엄종의 교학을 사사하여 중국 화엄종 제3조로서 이 종파의 교리를 집대성한 인물이며, 신라에 귀국한 의상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원효의 저서를 접했다.)

『대승기신론』에 대한 뛰어난 해석은 당대 동아시아에서 세 가지가 꼽혔는데, 다음과 같다. 먼저 혜원(523-592)의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 4권이 있는데 약칭으로는 『정영소(淨影疏)』라 하며, 원효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2권은 『해동소(海東疏)』,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5권은 『현수소(賢首疏)』라고 하며, 이들을 합하여 기신론 삼소(起信論三疏)라고 했다. 이 중 원효와 법장의 저서가 후대 동아시아 불교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원효는 이 논서에 대해 중국에 수용되기 직전에 형성된 인도 불교의 양대 큰 산맥인 중관학파와 유식학파를 지양 · 융합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대승기신론』의 핵심어는 이문(二門), 즉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심진여문은 마음의 ‘자성청정’을 주로 말하는 중관 사상에서, 불각, 즉 깨닫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세밀하게 분석한 심생멸문은 유식학파에서 유래한다. 이 불각의 분석에 대해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무명업상(無明業相)에서 업계고상(業繫苦相)에 이르기까지 쉽게 비유한 일본의 불교철학자인 우매하라 다케시의 말을 빌려보자.

 

조용한 마음에, 한 여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바람이 없는 연못과 같이 조용했던 마음이 갑자기 풍파가 일어난다.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무명업상). 그는 눈을 뜨고 지나간 여자를 보았다. 그렇다. 그의 마음은 여자를 보는 눈, 바로 그것이 되어버렸다. 바로 능견(能見)의 마음이 되었다(능견상). 그때, 여자는 그의 앞에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진정한 여의 모습이었으나, 여자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그의 마음에 여자가 다시 분명하게 보였을 것이다(경계상). 그 이후 그의 마음속에는 그 여자의 모습이 산다. 여자를 그의 마음이 분명 의식한다. 그리고 애(愛)와 증(憎)이 그의 감정이 된다(지상). 그 마음은 어제부터 오늘로, 오늘부터 내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음은 그렇게 시간의 상속에 사로잡혀 이미 자유를 잃어버렸다(상속상). 그리고 여자에의 집착, 그의 마음은 날로 여자를 만나는 기쁨과 여와 헤어지는 괴로움에 사로잡힌 노예가 된다(집취상). 그 여자의 이름이 그에게는 이미 하나의 이도라(偶像)가 되는 것이다. 그 이름 밑에 그의 행복이 있는 것으로 환상(幻想)을 갖는다(계명자상). 그리고 이러한 이름의 이도라, 번뇌를 낳은 이도라에 사로잡혀 그는 광기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기업상). 그러한 광기에 가까운 행동의 결과로 그는 그야말로 무량의 고통을 받고 그의 마음은 영구히 부자유한 속에 놓이게 된다(업계고상).주3)

 

위의 비유는 프로이드 이래 심화된 현대의 심리학, 그 중에서도 현재 작동하는 우리의 욕망은 모두 과거의 금지의 흔적이며, 그래서 우리가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는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 1981)의 심리학을 연상케 한다.

원효는『대승기신론 소·별기』에서 근본무명이 진여, 즉 인간의 청정한 마음을 훈습하여 불심이 처음으로 일어난 무명업상과, 이로 인해 세계의 대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전상(轉相), 또 이 전상에 의해 세계의 대상이 나타나게 되는 현상(現相) 등 이 세 가지 미세한 마음(三細)을 알라야식 위(位)에 해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이것이 원효의 삼세·알라야식설인데, 중국 당의 법장이 그대로 이어 받았으며, 이에 대해서는 현대에 와서 한 일 불교철학자들에 의한 찬반설이 있다) 이 세 가지 미세한 마음의 제멸, 즉 내적인 동요가 사라지면 청정한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원효의 주장이었다.

 

『대승기신론』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을 마음이 맑은 ‘지정(智淨)’과 헤아릴 수 없는 작용을 한다는 ‘불사의업(不思議業)’ 두 가지로 보면서, 진여와 무명에 대한 비유를 바람(風)과 물(水)의 비유로 설명한다.

 

큰 바다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있을 때, 바람의 성(性)과 물의 성(性)은 일체이다. 만일 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바람이 그치고 머물 데가 없어지면 움직임(파도)은 없어지나 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물의 젖는 성질은 그대로이다.

如大海水, 因風波動, 水相風相不相捨離。而水非動性。 若風止滅, 動相則滅, 潛性不壞故。

 

이에 대해 원효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물은 움직이는 성질이 아니다’라는 것은, 지금 움직이는 것이 자성(自性)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것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만약 자성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움직이는 상이 없어질 때에 젖는 성질도 따라서 없어져야 할 것이지만, 다른 것(바람)을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상은 비록 없어지더라도 젖는 성질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바람과 물로 비유한 『대승기신론』의 구절과 이에 대한 원효의 해석은 결국 바람과 물에 빗대어 욕망이나 유행에 휩쓸리는 마음(무명)과 청정한 마음(진여, 자성), 곧 깨달음의 세계를 기술한 것이다. 주4)

 

『대승기신론』과 원효에 의하면 깨달음과 거리가 먼 무명의 존재는 바다의 원래 모습을 망각하고 파도만을 바다로 보는 것과 같다. 원효는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바다가 고요하고 잔잔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파도는 서로 나눌 수 없는 세계이다. 오히려 바다를 성질을 알 때 미풍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물결 그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

『대승기신론』이 바다와 바람으로 깨달음과 무명의 세계를 비유한 것은 근원적 인간 마음이 동요하는 원인에 대한 무지, 즉 무명을 일깨우고자 함이었다. 『대승기신론』은 공이 갖는 허무적 니힐리즘과 아울러 알라야식의 분석에 머문 유식학파의 페시미즘을 탈각한 논지를 펼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대승기신론』에서는 염(染)과 정(淨)이, 또는 진(眞)과 속(俗)이 별개의 세계가 아님을 역설한다. 이런 차원에서 삶과 인식을 그릇되게 굴절시키는 무명은 무지가 아니라 번뇌와 환상을 깨닫지 못한 인간의 상태를 뜻한다. 『대승기신론』은 각(覺, 깨달음)과 불각의 여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를 역설한 텍스트인 것이다. 여기서 염세적 측면이 강하던 인도불교는 인간이 지닌 불성을 긍정하는 현세적 동아시아 불교로 전환되며,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텍스트중 하나가 『대승기신론』이고, 나아가서는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 · 별기』인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십문화쟁론』에서 “유(有)를 부정하고 공(空)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靑)과 남(藍)이 동체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이 만 가지 형태를 다 용납함과 같다”고 한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융합하고 아우르는 화쟁 사상과, 특정한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는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 그리고 논리와 주관과 객관을 부정한 직관적 실천인 ‘일미관행(一味觀行)’이 원효 사상의 주요 핵심인 것도 바로 이러한 해석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높은 파고(波高)로 출렁이는 한중일간의 갈등도 사실상 해결할 길이 없는 문제로 보인다. 국가 간의 영토나 종교 분쟁만큼 해결하기 힘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이면도 근본적으로는 인간 마음의 문제이다. 이는 외교 정치적으로 해결을 모색하려는 시도보다 세 나라사람들 간의 감정적 대립의 격화로 치달으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사실로도 능히 알 수 있다. 실로 마음이 근본 문제이기 때문에 객관적 진실을 알기 어렵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는 마치 한 마리의 동물을 가두고 집단으로 몽둥이 타작을 하듯, 뒤틀리고 왜곡된 심성의 한풀이로 개인의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는 악성 댓글과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 일련의 사태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데, 이 문제도 그 이면에는 마음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정신분석학에 ‘전위’와 ‘투사’란 용어가 있다. 유식학파나『대승기신론』에 의하면 이러한 투사나 전위는 알라야식에 의해 일어난다. 인간이 과거에 발생한 금지된 것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욕망하고 애착하는 존재인 것도 이 알라야식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전위'란 예컨대 아버지로부터 좋지 않은 경험이 있을 때, 그래서 그 마음의 상처가 무의식에 부정적 형태로 기억되어 있을 때, 학교나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어떤 사람에 대해 적개심과 더불어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투사’란 어느 사람이 어떤 소속단체에 있을 때, 그 단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만으로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고 모든 잘못을 남에게 또는 사회에 전가하여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자신의 불화를 남에게 '투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만 이해해도 우리 자신의 삶이나 어떤 사태를 좀 더 깊게 직시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드러내듯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맨 안의 파충류식 신경회로망들이 식욕과 색욕 등 본능적으로 현재를 대처하는 뇌라면, 그 위를 둘러싼 포유류식 뇌인 변연엽(limbic system)은 과거 기억 위주로 현재에 대처하는 뇌다.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부위인 신피질(neocortex)은 종합적 판단을 하는 영장류의 뇌다. 이러한 뇌의 다층적 특성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현실 대처 방식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며, 그 중에서도 변연엽은 불교의 논서들에서 깊게 탐구되었던 인간의 감각, 의식과 마음 등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는 관점을 열어준다.

 

3.

우주의 크기와 그에 따른 시간을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생은 '찰나'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은 모순과 불일치, 불합리, 카오스 그 자체이다. 우리의 세계는 보이지 않은 수많은 두꺼운 담벼락이 인간을 가두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제도라든가 권력만을 나를 가두는 담벼락으로 생각한다.『대승기신론』은 이전 불교가 지닌 페시미즘적 요소를 극복하고자 한 새로운 사상이며, 원효가 이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남긴 것도 우리 인간 삶의 더 큰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정학적 특성상 ‘타자에 의한 자기 상실’이 반복된 우리 역사에서 원효는 타자와의 적극적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형성한 큰 사상가였다.

순전히 나의 욕망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적 욕망조차 타자의 욕망임을 불교의 유식학파나 현대 심리학에서는 역설한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내가 욕망하는 것인가? 라는 라캉의 의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급속하게 발달한 뇌 과학은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도 인간의 행동이나 삶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을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어떤 사태의 표면에 대한 즉각적 반응보다는 그러한 표층의 기저를 자각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우리의 현실과 세계를 좀 더 깊고 넓게 사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욕망과 신념의 노예로 살다가 심지어 주변에 피해만을 주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이 세계의 이면적 리얼리티를 직시하고자 하는 꿈꾸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좀 더 향기롭게 변하기 때문이다.(2013년 1월 8일)

  

주1) ‘여행자’라는 뜻을 가진 보이저 1호는 지금도 1초에 17Km 속도로 36년째 여행 중이며, 지난 2012년 12월 4일에 나사에서 태양계를 벗어나 새로운 우주영역인 성간 공간(interstellar space)의 '자기장 고속도로'라는 영역에 들어간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 보이저 호에는 지구인의 메시지를 담은 골든 레코드가 담겨 있으며, 2025년경 교신이 끊어진 후에도 계속 여행하여 4만년 후 다른 별에 진입한다고 한다.

주2) 조규현 역, 우매하라 다케시(梅原 猛), 야나기타 세이잔(柳田聖山) 공저, 『무의 탐구, 중국선』(가쿠가와 문고, 1997년)에 나오는 글이다. 이 책은 조규현 선생님이 2012년 가을에 일본에서 구입한 것으로, 7, 8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중국불교의 핵심이 잘 정리된 책이다. 원효에 대해서 나는 지난 2003년에 「원효의 삶과 사상, 그 현대적 의미」를 썼으며, 수년 전부터 원효의 저서인『판비량론』과 현대예술에 대한 감응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주3) 조규현 역, 같은 책, p277.

주4) 은정희 역주, 원효 저,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1991, pp174~17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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