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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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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김성배 개인전 감상 소감


지난 10월 25일, 수원에 위치한 대안 공간 눈에서 김성배 개인전을 보았다. 늘 담대한 발상과 유유자적한 행보로 의표를 찌르는 설치 작업을 해온 김성배는 이번 개인전에서 드로잉 작업 위주의 전시회를 열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전시장으로 이제는 수원의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명소가 된 아담한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히말라야 카일라스 산을 그린 큰 그림을 보았다. 넉넉한 한지를 바탕으로 작업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거나 생성된 물감 자국에 이르기까지 소박하면서도 힘이 있어 지금까지 본 그의 히말라야를 대상으로 한 그림 중에서는 가장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 하단 부분에 비닐로 가려놓은 부분은 그림 속 그림으로 김성배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다층적 작업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새롭게 시도한 주 작업은 18세기 후반 김득신(金得臣) 외 화원들이 1795년(정조19년)에 그린《화성능행도 8곡병(華城陵幸圖八曲屛)》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 이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의 그림들은 매우 신선하고 이색적인 드로잉 작업이었다.

지난 주 필자가 진품명품에 의뢰한 화산관 이명기의 <열녀서씨포죽도>가 바로 이 능행도를 그린 해인 1795년에 그린 그림이다. 18세기 후반의 조선시대는 조선 후기 문화예술의 전성기이며, 이후 조선 문화는 급속하게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큰 맥락 속에서 21세기 초를 살며, 다시 약속이나 한 듯 동시대 조선 문화에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세계의 생성을 보게 된 셈이다.

 

《화성능행도 8곡병》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삼성 리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작년에 삼성 리움에서 기획한 큰 전시회인 조선화원대전에서도 단연 이 그림들이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와 닿았던 인연이 있다.

 

《화성능행도 8곡병》은 정조가 1795년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에 걸쳐 수원화성 행궁으로 행차하는 장면과 주요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제1폭은 화성의 문성왕묘에서 치러진 알성의(謁聖儀)를 그린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이며, 이어 지역유생을 대상으로 한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 광경을 그린 <낙남헌방방도(落南軒放榜圖)>,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거행된 진찬례를 그린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수원의 노인들을 초대하여 양로연을 그린 <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화성 성곽의 가장 높은 곳인 서장대에서 밤에 군사를 조련하는 장면을 그린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행궁에서 활쏘기를 하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과 함께 불꽃놀이를 즐기는 장면을 그린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환궁하는 장면을 그린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노량진에 설치된 배로 만든 다리 위로 한강을 건너는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가 있다.
이들 그림 중 <한강주교환어도>와 <환어행렬도>는 수 백명의 행렬을 그린 것으로 고공에서 내려다 본 듯, 스케일이 장대하면서도 매우 치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들 그림들은 특히 시점과 구성과 색채면에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스케일을 가진 대작이다.

 

그러나 이러한 콘텍스트를 모른다하더라도 김성배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김성배는 크고 두꺼운 한지 위에다 능행도에 나오는 대상, 구도, 색채를 근거로 하되, 매우 자유분방한 필치의 드로잉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그림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장대야조도>를 모티브로 한 그림은 역원근법적 시각과 지도를 합성한 듯한 특징을 핵심으로 포착하면서도 분방한 필치로 표현하여 새로운 느낌으로 와 닿는다. 이처럼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김성배의 그림은 새로운 현대드로잉으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은 특별히 개인적인 주관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김성배의 이번 그림들이 흥미로운 것은 자연과 문명이, 동(東)과 서(西)가, 그리고 ‘과거(古)’와 ‘현재(今)’가 어떻게 종횡무진 상통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시선은 무엇인지,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서로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관계로 성립하는 지, 한 폭의 평면적 그림 속에 다차원적 ∙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은 어떤 양식이나 기법에 구애됨이 없이 거침이 없는데, 이러한 표현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세잔의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의 순수한 열정은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그림에서도 역력히 표출되며, 그의 이번 그림들은 이처럼 순수하고 소박한 작가적 태도의 흔적을 보여준다.

 

개인이 아닌 역사와 문명 속에서 예술을 보는 그의 스케일 큰 행보는 그림에서도 대상이나 표현 방식에 전혀 속박되지 않은 태도와 특성으로 표출된다. 무엇보다 김성배의 이번 드로잉은 그림이라는 2차원적이고 아날로그적인 표현도 그 상상력의 폭이 넓거나 복합적이고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있으면 얼마든지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2년 10월 28일 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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