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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서씨포죽도> 출품 소감(TV쇼 진품명품, KBS1TV, 10.21. 11시)
 

<TV쇼 진품명품(870회>에 고향 문중에서 소장 중인 <열녀서씨포죽도>란 옛 그림이 출품되었다. 이 그림은 조선 정조 때의 대표적 초상화가인 화산관 이명기(華山館 李命基, 1756~ 1802년 이후)가 그린 것으로, 필자의 선대 할머니로서 조선 세종 때에 살았던 열녀 서씨의 이채로운 사연과 역사적 내력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열녀서씨포죽도>의 내력과 가치에 대한 종합적 고찰 후 책정된 감정가는 무려 10억으로, 1995년 진품명품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래, 회화로서는 역대 베스트 세 번째의 고가였다. 이러한 감정가가 곧 그림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 척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 년 역사적 사연을 담고서도 시골 벽촌에서 별다른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이 그림의 내력을 아는 나로서는 감회가 남달랐다. 
 
이 그림이 출품된 것은 지난 9월 초 필자의 고향인 경북 군위에서 진품명품 프로그램의 출장감정 녹화 때, 문중 어른이 <열녀서씨 포죽도>의 감정을 의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사 유물이 아님을 직감한 감정위원의 뜻에 따라 본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녹화하기로 방송국 측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화폭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 진품명품 담당PD로부터 그림의 내력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림의 작가를 입증하는 증빙 자료인 『정부인 달성서씨 사적』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필자가 제시했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가 결국 의뢰인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의뢰된 그림이 진품임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정부인 달성서씨 사적』이란 소책자는 1950년에 공무 차 대구에 가신 부친께서 헌 책방에서 구입한 필사본이다. 이 책은 그 내용상 19세기 말 고향에서 필사된 책이 명백한데, 일제 강점기 무렵에 당시로서는 고향에서 먼 거리인 대구시로 헐값에 팔려나갔다가 헌 책방에서 다시 부친에게 발견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에는 열녀 서씨를 주인공으로 해서 16세기에 살았던 인물의 글에서부터 18세기의 인물인 이명기의 글, 그리고 19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글까지 수백 년 간의 글이 담겨 있으나, 이 같은 내용은 이 책 이후 이 책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전적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문중에도 전하지 않는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마을 일가 어른들 집 안에서 고서들이 선반 위에 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으나 주로 거의 매일 마을을 드나들었던 엿장수들에게 팔려나가고(*수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시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다.   

 

어릴 때부터 <열녀서씨포죽도>에 대해 얘기를 들었지만 내가 실물을 처음 본 것은 1996년 추석 무렵이었다. 그 당시 이 그림에 대한 첫인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특히 종이의 표면이 현대의 최고급 종이처럼 반질반질할 정도로 매끈하고 색감도 현대의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 맑고 선명해서 처음 본 순간에는 진품이 맞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대학시절 서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그 때만 하더라도 전통회화는 흔히 보는 일반적인 한지나 화선지에나 그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이명기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존하는 그의 다른 그림을 직접 보거나, 관련된 자료를 찾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명기와 김홍도의 합작인 <서직수 상>이나 <강세황 초상>이 입증하듯, 이명기가 조선시대의 대표적 초상화가임에도, 이제까지 그를 다룬 선행 연구논문이 한 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교 국사 교사인 동생이 1차로 번역한 부친 소장의 옛 전적과 2004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강세황전 도록에 실린 강세황 초상 제작 과정을 기록한 글에서 밝혀진 이명기 관련 사실과 수 년 간의 이명기 그림의 감상 및 동시대 회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04년에 <달성서씨 포죽도와 이명기의 그림세계>란 소논문을 써서 성주도씨 대종친회 회지 제19호(2004. 5. 23)에 실었다. 바로 이 글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열녀서씨 포죽도>에 대한 첫 발굴의 기록이자, 화산관 이명기의 회화세계를 다룬 국내 첫 논문이었다.

 

<열녀서씨포죽도>는 1795년, 정조 19년에 당시 조선 제일의 초상화가로 인정받던 화산관 이명기가 정조의 어진을 그린 공로로 지금의 경북 영천 지방에 찰방(현 우체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고향의 문중 선조가 부탁해서 그리게 된 그림이다. 이번 방송에서 간략히 소개되었지만 이 그림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 세종 때 선조의 이른 죽음을 슬퍼한 자리에서 ‘백죽’, 즉 흰 대나무가 자랐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현대적 시각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지만, 시대가 희생을 강요해서 생겨난 다른 비정한 열녀 이야기와 달리 한 여인의 슬픔이 대나무란 상징적 나무를 통해 마침내 백색으로 승화된 사연의 메타포와 오랜 역사를 간직한 그림이면서, 무엇보다 실물 오브제로까지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예술적 상상력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번 방송에서 <열녀서씨 포죽도>가 높이 평가된 이유는 조선 초 『세종실록』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오랜 역사적 배경과, 또한 그림을 그린 화가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인 화산관 이명기이며, 그리고 종이 지질면이나 채색 재료인 물감 등에서 당시 최고급품을 사용한 점, 그림의 바탕인 족자와 그림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점, 그림을 그린 년도(기년)와 장소가 분명한 점, 조선시대의 풍속 및 도덕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 또한 조선 후기 그림의 높은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화격, 즉 그림의 예술적 가치 등 때문이다.
 
평소 주로 현대적인 드로잉 작업을 하고, 또한 서양미술사 및 현대미술 관련 글을 쓰거나 책의 저자로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번 방영을 전후하여 새삼스럽게 깊이 느낀 사실은 역시 관심과 발견, 그리고 기록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떠한 문화적 가치와 의미가 성립하려면 아무리 가치 있는 원본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누군가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규명하고 드러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새로운 관점의 담론이 ‘구성’되는 것도 문화유산 및 예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의 소산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방영을 계기로 드는 생각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초상화가인 이명기의 그림이 전칭 작을 포함하여 약 30여점이 현존하므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명기 특별전을 개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열녀서씨포죽도>를 국립박물관에 기탁해서 공적 활용가치를 가진 문화유산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2012년 10월 21일          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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