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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2 (0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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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2

 

  여기서 [靈의 源泉]이라 이름 부쳐진 일반자는, 자신을 둘려 싸고 있는 오-로라와 같은 빛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으로써 희미하게 뜨 오르는 모습을 [보고], 이야말로 자기자신이다, 라고 하는 인식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인식이 발생한 순간, 지성의 활동 그 자체가 强度로 있는 일반자의 내부속으로, 强度의 증식이 일어 나며, 그것은 兩性具有인 [思考]가 되어, 밖으로 나와서, 일반자의 앞에 선다. 둘은 서로 마주 본다. 그 순간, [사고]는 女性形이 되어 보이지 않는 자인 일반자를 응시한다. 허면, 자신의 영상이며, 似像인 者를 보고 일반자는 크게 기쁘하였다. 이렇게 일반자 속에서 자각이 발생하여 일반자는 말하자면 [去勢]라고 하는 限定을 받고 그기서 부터 최초의 人間이 태어 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각의 발생 과정을 그려낸 구노시스파의 神話이다.

 

   이 구노시스파의 신화는, [되돌아 보는 자태로] 라고 하는 프로티노스의 액션문학적인 표현을 심화시켜 그기서 부터 [거울의 주제]를 끄집어 내 보인다. [靈의 泉]이라고 하는 일반자도 빛의 유동이며 그기에는 [자신을 둘려 쌓고 있는 순수한 빛의 물]이라 말하드래도, 여기서는 아직도 主와 客의 분리가 일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과 환경의 다름이라고 하는 것도 없다. 그기에 자신의 似像이 비추웠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속에 자기자신을 비추워 내는 것]이라고 하는 행위가 일어 나는 것이 된다. 미래의 정신분석학은 이를 [거울의 단계에 있는 상상계의 나의 형성]이라고 말해지는 것인데, 고대의 종교철학은 같은 주제를, 槪念以前, 意識의 이전, 모든 것의 以前인 것으로, 언어속에서 찾아 내려는 신화적 표현을 갖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했던 것이다.

 

  신화는 의식의 경험에 의해서는 到達不可能한 것을, 하나의 실재로써 말해 보려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자]라던가 [靈의 泉]과 같은 내부경험으로써 자각의 발생 과정을 언급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란 것은 도달불가능한 것은 도달불가능한것으로 그려내려고 하는 데서 탄생해 나오는, 지성의 모양인 것이다. 그러한 철학에, 자각의 발생을 내재적으로 풀어 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니시다기다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자에서 보는 자 에로]에서, [일반자의 자각적체계]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초인적이라 할 수 있는 정력을 갖고 끈기 있게.. 고원의 체계를 건설해 낸 노력](전변원)에 의해 하나의 절정을 다한 니시다기다로의 사고가 철학의 역사에 있어, 헤겔 이래의 [事件]이라고 불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도, 결코 일본인의 자만이라고만 치부 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진실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헤겔은 철학을 역사를 향해 열어 제침으로써 철학에 철학이 아닌 것을 지입해 버렸는데, 니시다철학은 스스로를 [욕망]으로 향해 열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의 철학은 우연하게도 정신분석학에 접근하게 되고 서구에서 전개하고 있던 동시대의 철학이 가 닿으려고 하면서 닿지 못하고 있었던 리얼리티를 확실히 철학의 내부 속으로 지입하였다. 니시다철학은 문자 그대로 [異例者]인 것이다. 허면, 그는 어떻게 하여 이를 창조해 냈던 것일까. 이를 탐색해 가면 우리들은 일본의 근대라고 하는 것이 품고 있는 어떤 중요한 측면이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이를 목격해 가는 것이 우리가 예상해 보는 실재인것이다.    *******  (계속)

 

번호 제목 조회 등록일
1326 no image [場所의 精神分析] 6
1883 2015-12-06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 6 [자기속에 자기를 비추는]것에서 모든 운동은 시작한다. [거울을 통해서 있는것과 같이 자신을 본다]라고 하는 경험은, 일반자의 성장을 위해서는 매우 새로운 가능성을 열 뿐만 아니라 그기에 근원적인 限定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정됨으로 해서 [나는 한정을 면한 경우 보담 큰 것에 의해 싸이게 된다] 라고 하는 자각이 생기고 바로 한정지움이 이루어 짐으로 해서 초월에의 의지가 하나의 [慾望]으로써 일어 나는 것이다. 자각적일반자 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들이 자각을 통해 자기란 것을 의식하고 이렇게 생각을 함으로써 그 자기란 것은 판단적일반의 초월적술어면 을 넘어 선 것이지 않으면 안된다. …… 나란 것은, 시공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개물의 바닥이라고 고려된 개물이다. 그런 개물이 생각하는 이상, 그런 개물이 놓여저 있는 장소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개물을 한정하는 일반자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그런 일반자는 이미 판단적일반자라 할 수 없게 된다. 판단적 일반자를 품은 일반자가 아니면 안된다. 자각적인것이 이로 인함이며 이로 인하여 한정됨으로써 나는 이러한 일반의 자각적일반자라 명명하는 것이다.([叡智的世界]) 이러하여, 단순히 지적인 일반자는 술어면의 기저를 빠져 나가는 것과 같이 자신을 싸고 있는 [놓여 있는 장소]에 있는 일반자인 것에서부터 자각적일반자에로의 초월을 이루게 된다. 이때 [우리들은 지적자기의 입장에서 의지적자기의 입장(작용의 작용의 입장)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라고 니시다는 말하는데, 요는 욕망은 여기서 [의지]라 이름 부친 프로이드=라칸적 욕망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자각적일반자에로 초월로 추동하는 것도, 이 요망이며, 자각적일반자의 구주 그 자체를 모양 지우는 것도 바로 이 욕망인것이다. 다음 문장에 나오는 [의지]라 하는 말을, [욕망]이라 하는 말로 바뀌서 읽으 보기 바란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떤 것의 窮極의 것이 意志이다. 진정한 자각은 단순한 知的自覺 에 있는 것이 아니고, 意志的自覺에 있는 것이다. 일하는 자기로 하여 처음으로 내용을 갖게 되는 자기라고 부를수 있는 것이며, 의지한다는 것은 진정 자기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의지는 자각의 극치라 말할 수 있는 자각적일반자에 있어 최후의 것이라 말할 수 있다.(동전) 그야말로, [너의 욕망을 알라]가 아닌가. 니시다기다로가 프로이드와 더불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각의 극치란 자신의 욕망의 구조를 안다는 것 안에 있음이다. (계속) * * *
1325 no image [場所의 精神分析] 5
1837 2015-12-05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5 이렇듯, 판단적일반자, 자각적일반자, 예지적일반자라 불리는 [三種의 세계]가 만들어저 오는 것인데, 이들은 包攝의 관계에 있다. 판단적일반자는, 세계를 개물(물건)의 集積으로 포착한다. 그기서는 주어만 있고 술어가 없다. 사람이 보통 [객관적인 자연]이라 부르는 세계가 그기에 성립한다. 그러나 이 개물에는 이를 품고 있는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 어떠한 개물도 그 환경안에 [놓여 있는] 것으로 밖에 존재하지 못한다. 물의 개체성을 잡아 내는 [主語面]의 배후에는 실은 이 物의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術語面]이 감추워저 있다. 이를 통하여 판단적일반자는 자신을 품는 것을 향하여 초월의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니시다는, [술어면의 기저에 초월하는 것이 있다]라고 하는 표현을 해 보인다. [술어면]은 판단적사고를 행하는 자의 밑에 [구멍, 歇]을 파서 이를 자각적일반자 안으로 초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니시다기다로는 [意志]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바, 정신분석학이라면, 실은 이는, 무엇을 감추랴, [慾望]에 다름 아닌것이다, 라고 말할것이다. 우선 판단적일반자의 초월적 술어면이라 하는 것을 고려해 보고, 그 저변에 이를 초월한 주어적인 것이 고려될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이미 의지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 안쪽에 있는 것은 단순히 판단의 주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인, 단순히 일하는 것이 아니고 일하는 자를 품은 즉 안다(知)는 것이다. 진실로 자각면에서 자각적이 되는 것이 한정되는 것은 의지의 모양으로 가 아니면 안되며 자각면에 놓여저 있는 것은 서로 의지의 모양으로 상관하는 것이다.([술어적논리주의][전집]제5권)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뀌 말해 본다면, 니시다기디로가 말하고저 하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표현하게 된다. 모든 일반자는 안다는 자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융통이 듣지 않는, 자유도가 낮은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 판단을 행하는 판단적일반자이다. 그것은 주어만 있고, 술어가 없는 세계와 대응하고, 개물의 집적으로 만들어진 집합론적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세계속에 있는 어떠한 것도, 무엇인가 [있는 것]과 같이 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판단적일반자는 이때 자신이 하나의 [缺如]로, [限定]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알았을 때 판단적일반자는 스스로의 저변에 하나의 [歇]을 파서 여기서부터 욕망이 일어 올라 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판단적일반자의 내부에서 눈뜨는 욕망은 그기서 부터 초월의 움직임을 시작한다. 초월적술어면이라 하는 것이 욕망이 일어서는 그 [구멍]을 가르켜 [그 저변에 이를 초월한 주어적인 것이 고려된다]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원초적인 욕망의 대상(대상 a라 라칸이 부르는 것)이 초월적술어면의 장막의 안으로 투시해 보인다, 라고 하는 事態를 가르키는 것이다. 니시다기다로의 철학에서는 초월이 무엇보담 慾望의 構造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초월과 욕망이 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례로, [한정]이라 하는 니시다철학의 용어를 [去勢]로, [초월]을 [慾望]으로 바뀐다면 니시디의 세계와 프로이드의 세계가, 매우 근접한 장소에 세워진 건물끼리임을 잘 알 수 있다. 신중하게 물 자체를 멀리하려고 했던 칸트에서는 드물게 철학적언설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 헤-겔에서는 [主]와 [奴]의 변증법에 의해 감추워저 있는 것이, 니시다기다로의 철학에서는 그야말로 전면에 뛰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인식주관을 떠나서 그 자신에 입각하여 존재하는 초월적실재, 즉 칸트의 소워 물자체와 같은 것이 무엇인가를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자는 아니다.]([소위인식대상계의 논리적구조]) 라고 니시다는 말하고 있다. 확실하게 그는 [그 자신에 놓여있는 존재하는 초월적실재]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칸트적물]은 아니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인식주관]이라 하는 주어가 성립하는 순간에, 배후로 후퇴하여, 술어면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 그르면서, 주어의 활동이 일어 날 때 마다 배후의 술어면으로부터 이를 시워 영향을 안겨주는, 한마디로 근원적인 욕망의 대상인것이다. [물]에 관해, 되푸리 언급하였던 것이다. 초월적술어면에 숨어 있다고 하는 그 니시다적物의 나타나는 방식은, 그래서 [프로이드적物]의 구조와 닮아 있는 것이다. (계속)
1324 no image [場所의 精神分析] 4
1864 2015-12-04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4 대체로 發出論的인 構造를 갖고 있는 철학에는 일종 경쾌한 사고의 발걸음이 느껴지는 것인데, 사실 프로티노스의 철학등은 [그자]라 불리는 일반자로부터 지성이 생겨나, 그 지성에서 諸存在의 세계가 탄생해 나오는 모습이, 그야말로 한 순간의 일과 같이, 가볍게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니시다 철학에는 이것이 되지 않는다. 그 철학적사고에는 끊임없이 불가사의한 중량감 같은 것이 둘려 쌓여 있어 떠나지 않는다. 이는, 자각의 생성을 논하는 그의 철학의 말 한마디 한마디의 뒤에, 생각컨데, 統語論的前進運動에 역행하여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慾望의 運動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철학의 言說로는 여간해서 일어 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반자의 자각적체계]속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 안에서도, 각별히 완성도가 높은 [예지적세계]라 하는 문장의 冒頭는, 이렇게 시작한다. 判斷的知識이 일반자의 自己限定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무언가를 생각해야 할 때, 일반자가 자기 속으로 자기자신을 한정한다는 일이 없으면 안 된다. 나는 일반자에는 三種의 단계를 구별함으로써 삼종의 세계라고 하는 것을 떠 올려 보게 된다. 판단적일반자에 있어, 여기에 있어 한정되는 것이, 광의에서 자연계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판단적일반자를 포함한 일반자, 즉, 판단적일반자의 술어면의 기저에 초월하는 것을 품는 일반자(즉 자각적일반자)에 있음이며, 이것으로 한정되는 것을 意識界라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일반자를 품은 일반자, 즉 우리들의 의식적자기의 바닥에 초월하는 것을 포함하는 일반자에 있어서이고, 이것으로 한정되는 것이 叡智的世界라 생각되는 것이다.(니디사기다로전집, 제 5권) 여기까지 이르면, 그는 다음과 같은 사고를 전개해 온다. 우선, 모든 출발점은 [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나, 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것으로부터 일어 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속에서 자기를 비춤으로써 자기의 내용을 한정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의 근본형식이다]. 어떤 형의 일반자일지라도, 그 본질은 [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울속의 자기자신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자기가 자가속에서 자기를 비춘다]라고 하는 [거울의 구조]는, 안다는 것으로 자각하는 일반자 모두에 따라 다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헌데, 거울의 표면은 이차원이고, 우리들 신체는 삼차원의 공간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이 거울속을 보고, 그기에 자신의 似像을 보게 됨은 한편에서는 자신의 신체가 그기에 속절없이 비추워저 있음과 동시에 그기에 차원수가 줄어들었음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거울의 구조]에서는 비추는 동시에 내용이 한정된다는 일이 일어 나는 것이다. 그것이 거울을 향해서 일어 나는가, 혹은 [되돌아봄]에서 자신의 모든 내용을 보는 것인가, 어느 것이던, 그기에는 내용의 한정됨이 있고, 차원의 축감하는 [면]이, 일종의 射型면으로써 현실의 스라이스(分層작용)를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각이 발생하는 곳에는, 비춤으로써, [보는]것과, [보는]것으로 한정되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이를 비뀌 말해 본다면, 한정됨으로써 자각이 일어 나지만, 그것이 일어난 순간, 한정됨으로써 자각하는 자는 자신이 보다 큰 틀 속에 둘려 쌓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일반자는 내용을 스라이스하는 사형면에 의해 엷게 끊길 때 마다 한정되고 새로운 일반자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새로운 일반자는 자신을 품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태어 나는 순간 알게 되는 것이다.(계속)
1323 no image [場所의 精神分析] 3
1851 2015-12-03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3 [一般者의 自覺]을 하나의 큰 철학체계로 세워보려던 니시다기다로는 고대의 종교철학이래의 주제를 근대적인 장비를 가지고 헤-겔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신화에는 자기자신을 되돌아 본다던가 주변의 빛의 오-로라를 디다 본다던지 하는 [인물]이나 [행위자]등이 등장해 오는데, 니시다철학은 그러한 표현을 일체 배제하고 근대의 철학적사고로 이를 수행하려고 하였다. [일반자의 철학적체계]는 분명 장대한 저작이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개념의 도구가 되는, 비교적 단순하고, 결정적인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의 도구는, 칸트로부터 조금, 헤-겔에서 조금 그리고 남으지는 자신의 직관을 표현하기 위해 소박한 집합론과 토포로지-의 매우 초보적인 사고를 원용할뿐 어떻턴 독창철학에 근사한 모양새라 말할 수 있지만, 후세의 사람들 중에서 이를 보고 빈약하다는 어긋난 소리를 하는 사람도 드러 있다. 허면, 그기서 전개하고 있는 철학적사고는 프로티노스와 같은 단순한 것인가 하면, 그것이 그렇치가 않타. 니시다기다로는 마치 고대의 종교철학자와 같이 일반자 내지 일자로 사작하는 자각의 전개의 운동을 장대한 發出論으로 그려 내려고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田變元도 한때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니시다철학은 이와는 정반대의 일을 해 내려고 하지 안 했나, 하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니시다철학은 어김없이 근대의 철학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現代의 철학인것이다. 니시다의 철학의 주제는 論理가 아닐 뿐 아니고 體系도 아니고 또한 하이뎃카가 논하는 存在도 아니다. 그 진실의 주제는 다름 아닌 [욕망]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로티노스가 [되돌아보는態]에서 자신의 보습을 봤던 [그자]의 내부에 자각이 발생하는 모습을 그릴 때 그는 암암리에 知性은 하나의 慾望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노시스파의 문서가 內包的空間에 가득찬 强度에 의해 一者의 내부로부터 빛이 되어 나와 그 빛으로부터 태어난 지성에 관해 이야기 할때도 그기에는 욕망의 주제가 잠재해 있음을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철학은 그기서부터 [욕망]이란 것을 하나의 주제로 내 세우지는 안 했다. 헌데, 근대의 철학은 이를 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헤-겔이다. 후에 라칸이 절묘하게 실행해 보여 준 바와 같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이를 철저하게 다룬 욕망의 변증법으로 읽으 낼 수 있게 된다. 절대정신이 상실된 스스로의 전체성을 회복하기를 욕망함으로써, 역사의 운동은 일어 난다. 개체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운동과 현실적인 역사의 운동과는 바로 이 욕망의 구조에 의해 결합된다. 그 위에 욕망이란 대상속에 없는 것을 구하는 것임으로 분명히 [無]와 연관되는 현상이다. 욕망에 관해서 이야기 하려면, 사람은 이 [無]의 논리인 변증법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근대 독일관념론은 이 [무]의 개념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욕망의 철학으로써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럼으로 쉐-링의 경우에 현저한 바와 같이 그들의 철학은 끝없이 신화의 구조에 접근해 가게 된다). 허나 니시다기다로의 경우도 또한 그렇거니와, 엄격한 곁옷을 입은 개념을 쌓아 올리면서 수행되고 있는 그 철학을, 근저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김없이 그러한 욕망의 운동이며, 욕망에 의한 思考로써 근대적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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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2015-12-02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2 여기서 [靈의 源泉]이라 이름 부쳐진 일반자는, 자신을 둘려 싸고 있는 오-로라와 같은 빛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상]으로써 희미하게 뜨 오르는 모습을 [보고], 이야말로 자기자신이다, 라고 하는 인식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인식이 발생한 순간, 지성의 활동 그 자체가 强度로 있는 일반자의 내부속으로, 强度의 증식이 일어 나며, 그것은 兩性具有인 [思考]가 되어, 밖으로 나와서, 일반자의 앞에 선다. 둘은 서로 마주 본다. 그 순간, [사고]는 女性形이 되어 보이지 않는 자인 일반자를 응시한다. 허면, 자신의 영상이며, 似像인 者를 보고 일반자는 크게 기쁘하였다. 이렇게 일반자 속에서 자각이 발생하여 일반자는 말하자면 [去勢]라고 하는 限定을 받고 그기서 부터 최초의 人間이 태어 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각의 발생 과정을 그려낸 구노시스파의 神話이다. 이 구노시스파의 신화는, [되돌아 보는 자태로] 라고 하는 프로티노스의 액션문학적인 표현을 심화시켜 그기서 부터 [거울의 주제]를 끄집어 내 보인다. [靈의 泉]이라고 하는 일반자도 빛의 유동이며 그기에는 [자신을 둘려 쌓고 있는 순수한 빛의 물]이라 말하드래도, 여기서는 아직도 主와 客의 분리가 일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과 환경의 다름이라고 하는 것도 없다. 그기에 자신의 似像이 비추웠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속에 자기자신을 비추워 내는 것]이라고 하는 행위가 일어 나는 것이 된다. 미래의 정신분석학은 이를 [거울의 단계에 있는 상상계의 나의 형성]이라고 말해지는 것인데, 고대의 종교철학은 같은 주제를, 槪念以前, 意識의 이전, 모든 것의 以前인 것으로, 언어속에서 찾아 내려는 신화적 표현을 갖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했던 것이다. 신화는 의식의 경험에 의해서는 到達不可能한 것을, 하나의 실재로써 말해 보려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자]라던가 [靈의 泉]과 같은 내부경험으로써 자각의 발생 과정을 언급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란 것은 도달불가능한 것은 도달불가능한것으로 그려내려고 하는 데서 탄생해 나오는, 지성의 모양인 것이다. 그러한 철학에, 자각의 발생을 내재적으로 풀어 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니시다기다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자에서 보는 자 에로]에서, [일반자의 자각적체계]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초인적이라 할 수 있는 정력을 갖고 끈기 있게….. 고원의 체계를 건설해 낸 노력](전변원)에 의해 하나의 절정을 다한 니시다기다로의 사고가 철학의 역사에 있어, 헤겔 이래의 [事件]이라고 불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도, 결코 일본인의 자만이라고만 치부 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진실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헤겔은 철학을 역사를 향해 열어 제침으로써 철학에 철학이 아닌 것을 지입해 버렸는데, 니시다철학은 스스로를 [욕망]으로 향해 열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의 철학은 우연하게도 정신분석학에 접근하게 되고 서구에서 전개하고 있던 동시대의 철학이 가 닿으려고 하면서 닿지 못하고 있었던 리얼리티를 확실히 철학의 내부 속으로 지입하였다. 니시다철학은 문자 그대로 [異例者]인 것이다. 허면, 그는 어떻게 하여 이를 창조해 냈던 것일까. 이를 탐색해 가면 우리들은 일본의 근대라고 하는 것이 품고 있는 어떤 중요한 측면이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이를 목격해 가는 것이 우리가 예상해 보는 실재인것이다. ******* (계속)
1321 no image 場所의 精神分析
2036 2015-12-01
[피로소피아.야포니카] 中澤新一 2 [場所]의 精神分析 제六장 慾望으로서의 西田哲學 西田哲學은 1930년에 출판되었던 [一般人의 自覺的體系] 라고 하는 책에서, 그 토대와 골격이 정해 젔었다. 이 책은 대단히 유-니크한 내용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西田畿多郞은 [述語論理]의 思考法을 여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구사함으로써, 새로운 존재론을 만들어 보였다. 이 책의 출현은 田變元에게 대단한 충격을 안겨준다. 田變은 이 책의 독창성에 깊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동시에 같은 정도의 강렬한 反撥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반발을 용수철 삼고 전변원의 사고는 독자의 철학형성으로 다름 질 처 나간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부터 얼마간은 西田哲學의 骨格을 만들었다는 이 책의 내용을 깊이 파고 들어 그 본질을 찾아 낼 뿐 아니라 도대체 그 안의 무엇이 田變元의 반발을 초래하였던 원천이 되었는가를 탐색해 보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들은 일본인의 무의식의 중요한 측면을 알게 될 터이다. 이 책속에서 전개하는 西田畿多郞의 사고에 대한 상세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논해 왔다. 그러나 내가 보건데 그 해설들은 니시다의 철학적사고를 특징짖는 무의식적요소에 대한 인식이 결정적으로 결락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럼으로써, 田變元이 이점에 대해 보여준 반발이나 비판의 의미가 충분히 밝혀저 오지 못했다, 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나는 西田哲學에 대한 종래의 견해를 바꿈으로써 [철학적사고의 정신분석]이라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열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논리적사고를 인간의 구체적인 신체조건에 연결시킴으로써 철학적사고의 생성의 수수꺼기를 그 구체적신체의 내부로부터 밝혀 내 보이고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에 의해 [일본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구체적인 신체를 되돌려 줄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로 인해 田變元과 西田畿多朗이라 하는 두 위대한 사고자의 사고와 신체의 내부에서 발생한 공감과 반발의, 진실의 구조를 밝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니시다기다로의 이 책의 주제는 自覺이다. 그것도 보통의 자각이 아니고 [일반자(보편자)]가 일어키는 자각이 문제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심리학적 내지 철학적인 자각뿐만 아니라 여태 일반적으로 종교가 다루워 오던 것과 같은 타잎의 자각도 주제에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우선 [일반자의 자각]이라 西田畿多郞이 논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일어 나는가, 라고 하는 점에서 부터 시작해 보기로 한다. 西田은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자기자신의 禪體驗과 서구의 종교철학이 논하고 있는 것을, 사고의 토대로 삼고 있다. 특히 구 중에서도 신프라톤파의 철학자 ‘프로티노스’로 부터 西田은 많을 것을 배웠음을 알수 있음으로, 이 부근에서부터 단서를 찾아 작업을 시작해 볼까 한다. 자각이라 하는 것은 사고자가 자신의 사고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임으로 자연적으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행위이라던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 보는 행위등이 연상된다. 실제로 프로티노스에 의하면 일반자의 자각이란 전적으로 [되돌아 봄]에서부터 일어 나는 것이다. [그 자]라 불리는 일반자(보편자)가 그때 내 보이는 선명한 몸짓을 프로티노스는 다음과 같이 活寫해 보인다. 허나, 더욱 명확하게 말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말해 두는 것인데, 知性은 그 자의 초상 인것이다. 먼저 태어난 것은 어떤 의미에서던 그자의 일부이며, 그자의 많은 특징을 보유하고 그자에 대해서는 마치 태양에 대한 것과 같이 동류성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자가 바로 지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허면, 어떻게 하여 지성이 태어나는가. 물론 자기자신쪽을 돌아 보고 완전히 이를 볼 수 있을 때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보는 것이 바로 지성이인 것이다. ([세가지 원리적인 것에 관해서] [善해 지는 것과 一이 되는 것] 所收, 田中美知太郞 譯, 이와나미문고. [그자]라 불리는 일반자는 자신이 지성이라고 자각하는 것으로 되는데, 그때 자기자신쪽을 되돌아 보는 모양으로, 완전히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됨으로써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프로티노스는 말한다. 자각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이지만 일반자는 자신의 밖에 나가서 자기자신을 볼 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 자각의 발생에 필요한 이 미묘한 거리와 자기 자신속에 비추워낸다는 행위를 순간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문학적재능이 뛰어난 프로티노스는 이를 [되돌아 보는 듯 본다]라고, 일반자의 행위로서 멋지게 표현해 내 보여주고 있다. 고대의 종교철학에서는 니시다기다로가 문제시한 것과 같은 [일반자로부터 자각의 발생]이라고 하는 것이 큰 주제로 다루워저 있는바 여기서 다루는 표현의 수법은 대체로 프로티노스의 것과 같고 일반자가 여하히 자기자신과의 거리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또는 여하히 여기서부터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있는가 라고 하는 두점의 표현에 고심이 뫃여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일례로 어떤 구노시스파의 문서([요하네의 아포쿠리폰])에서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그려 내고 있다. --- 말한다면 이것이 만물에 앞선 힘이며, (지금) 나타났던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만물의 완전한 [프로노이아], 빛, 빛의 이상, 보이지 않는 자의 영상이니라. 그것은 완전한 힘, 파-르 뻬-로, 영광의 완전한 아이오-ㄴ인것이다. 그녀는 그를 찬탄하였다. 그녀는 그로 인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인식한다. 그녀는 최초의 사고, 그의 영상이다. (나구.하마디문서1 [救濟神話] 所收, 이와나미서점)). (계속)
1320 no image 티베트(Tibet) 5
1961 2015-11-28
티베트(Tibet) 4 중국의 티베트 문화학살 춘두에 일행은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들어가는 노선을 택했다. 등산복이나 장비, 충분한 음식 없이 그들은 에드먼드 힐라리가 1955년 저서 ‘대모험(High Adventure)’에서 묘사한 바로 그 위태로운 빙하와 산악지대 중 일부를 통과했다(힐러리는 뉴질랜드의 등산가이자 탐험가로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했다). 티베트 난민은 중국과 네팔 국경수비대를 피해 카트만두의 유엔 난민안내소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자유를 얻고 인도의 난민촌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카트만두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난민안내소 문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결코 안전하지않다. 춘두에는 “네팔인의 옷을 입고 네팔 사람인 척했다.” 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 4명만 체포되지 않고 무사히 안내소에 도착했다.” 춘두에의 부모는 아들이 중국 문화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티베트에서 떠나 보냈다. 그는 과거 달라이 라마의 고향이던 라사에 지금은 사창가와 싸구려 술집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티베트인이라는 ‘민족’을 말살하려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삼촌에게 나를 데리고 탈출하라고 했다.” 춘두에는 최근 친구 아파트에서 영화 ‘안브로큰’을 해적판 DVD로 봤다. 미국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루이스 잠패리니가 비행기 추락으로 태평양에서 표류하다가 일본군에 잡혀 2년 이상 전쟁포로로 지내며 잔혹한 고문에도 끝까지 버텨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춘두에는 그 영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디베트가 자유의 나라가 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언젠가 돌아가서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계속) 티베트(Tibet) 5 국경통제 강화로 줄어드는 탈티베트인 티베트 자치구의 인권 상황이 2008년 이래 악화되면서 인종차별도 심해졌다. 그곳의 한족은 티베트인과 달리 정부의 감시나 이동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정책연구소의 객원연구원 세라브 우에세르는 “한족과 티베트인 사이에 긴장이 팽팽하다” 고 말했다. 같은 도시에 서로 다른 구역에 살면 완전히 단절됐다.” 2008년 시위 때 티베트 내부의 민족 긴장이 표출됐다. 시위대는 라사의 한족과 그들 소유의 가게를 공격했다. 우에세르는 “중국 안에서 완전히 소외된 티베트인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나 티베트 국기 사진을 갖고 있다가 발각된 승려들은 ‘애국교육’을 받거나 체포돼 고문당한다. 중국 정부는 1994년 티베트 수도원에서 달라이 라마 사진을 금지했다. 지금은 티베트인 가정과 스마트폰까지 그 사진의 금지조치가 확대됐다. ‘분리주의자’ 로 낙인 찍히면 체포된다. 체포된 사람이 때로는 아무런 설명 없이 수년 동안 체포된다. 체포된 사람이 때로는 아무런 설명 없이 수년 동안 사라지기도 한다. 고문에 따른 후유증으로 석방된 지 며칠만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우에세르는 “중국은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가 완전히 사라져야 티베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도적인 차별 외에 통계적인 격차도 민족 긴장을 부채질한다. 중국 자료에 따르면 자치구 안에 사는 티베트인은 중국의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학력이 낮고 수명이 짧으며 소득도 적다. 지난 30년 동안 티베트 자치구는 중국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낮았다. (2010년66.33년). 유아사망률도 가장 높다. 티베트 자치구에서 태어나는 아기의 23.5%는 임신 6주에서 생후 1주 사이에 죽는다. 중국 평균 유아사망률 8.6%의 약 3배다. 문맹률도 중국에서 가장 높다. 190년 이래 상당히 줄긴 했지만 2010년 24.4%로 중국 평균 4%의 6배나 된다. 다람살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채링은 “많은 부모가 자녀를 이곳으로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티베트를 벗어나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티베트 탈출은 언제나 위험했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망명할 때 추시강죽 게릴라 전사들의 무장 호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47년 뒤인 2006년 9월 티베트 난민과 함께 낭가 파르바틀 넘어 네팔로 탈출하던 여승 캘상 남초(17)가 중국 국경순찰대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네팔 국경까지 20분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시 그 부근의 초오유산을 등반하던 루마니아인이 그 장면을 촬영했다. 2008년 이래 중국 국경 경비가 심해지고 중국이 네팔 국경순찰대를 지원하면서 티베트인의 탈출이 더 어려워졌다. 린챈 부장관은 “이젠 탈출할 길이 없다” 고 말했다. “중국은 국경을 패쇄했을 뿐 아니라 티베트인의 여권도 회수했다.” 티베트 망명정부에 따르면 2008년 직후 티베트 난민은 그 전해의 2000 - 3000명에서 300 - 400명으로 줄었다. 린챈부장관은 “인도와 중국 사이의 국경은 완전히 차단됐다”고 말했다. “중국은 티베트인의 탈출을 막으려고 많은 예산을 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왜 목숨을 걸고 탈출하겠는가?” 그의 부서는 망명정부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인도정부의 도움으로 달라이 라마의 신변을 보호한다. 또 그들은 다람살라의 중국인 스파이를 색출하고 중국의 사이버공격도 방어하여 최근 탈출한 난민으로부터 티베트 내부 정보를 얻는다. 린챈 부장관은 중국의 정보 통제탓에 난민 면담이 현지 정보를 얻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권침해가 더 잘 폭로된다. 일부 티베트 블로거들은 목숨 걸고 내부 사정을 외부에 알린다. 초애기알 푼초크(25)는 “인도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왜 떠나야 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람살라에서 공예점을 운영하며 야크 뼈로 만든 염주와 ‘티베트 해방’이라고 새긴 팔찌를 판매한다. 그도 10세때인 2005년 티베트를 탈출해 갖은 고생 끝에 네팔로 갔다. 그는 “도중에 시신을 여러 구 봤다.” 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자녀가 중국 공산당의 ‘세뇌에서 벗어나 교육을 받도록 험난한 탈출길에 올랐다. 난민들에 따르면 티베트의 중국 교사는 학생에게 중국 문화와 중국어만 가르치고 역사를 왜곡한다. 티베트가 독립국이었던 적이 없으며 1950년 중국의 침공은 서방 제국주의로부터 티베트를 ‘해방시킨 것’이었다고 가르친다. 푼초크는 다람살라의 티베트 난민들과 함께 생활한 첫 몇 년을 중국 공산당 선전을 걸러내는 ‘해독’ 과정에 비유했다. “티베트인은 인도에 오면 교육받고 티베트 문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나도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올바로 알고 나니 무척 화가 났다”. 그는 인도에서 성장했고 교육 받았지만 인도에서의 삶은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티베트가 독립하면 ‘생각해볼 것도 없이 달려가겠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나라로 바드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끝) [필자 놀란 피터슨은 해리터지 제단의 온라인 뉴스매체 데일리 시그널의 특파원이다. 이 기사는 데일리 시그널에 처음 실렸다.] 번역 이원기.
1319 no image 티베트(Tibet) 4
1854 2015-11-25
티베트(Tibet) 4 중국의 티베트 문화학살 춘두에 일행은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들어가는 노선을 택했다. 등산복이나 장비, 충분한 음식 없이 그들은 에드먼드 힐라리가 1955년 저서 ‘대모험(High Adventure)’에서 묘사한 바로 그 위태로운 빙하와 산악지대 중 일부를 통과했다(힐러리는 뉴질랜드의 등산가이자 탐험가로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했다). 티베트 난민은 중국과 네팔 국경수비대를 피해 카트만두의 유엔 난민안내소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자유를 얻고 인도의 난민촌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카트만두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난민안내소 문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결코 안전하지않다. 춘두에는 “네팔인의 옷을 입고 네팔 사람인 척했다.” 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 4명만 체포되지 않고 무사히 안내소에 도착했다.” 춘두에의 부모는 아들이 중국 문화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티베트에서 떠나 보냈다. 그는 과거 달라이 라마의 고향이던 라사에 지금은 사창가와 싸구려 술집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티베트인이라는 ‘민족’을 말살하려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삼촌에게 나를 데리고 탈출하라고 했다.” 춘두에는 최근 친구 아파트에서 영화 ‘안브로큰’을 해적판 DVD로 봤다. 미국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루이스 잠패리니가 비행기 추락으로 태평양에서 표류하다가 일본군에 잡혀 2년 이상 전쟁포로로 지내며 잔혹한 고문에도 끝까지 버텨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춘두에는 그 영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디베트가 자유의 나라가 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언젠가 돌아가서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계속)
1318 no image 티베트(Tibet) 3
1912 2015-11-24
티베트(Tibet) 3 인도 북부 라다크주의 주도 래에서 몇km 떨어진 초그람사르에는 소남링 티베트 난민촌이 있다. 이곳에선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싼 황량한 흙색 히말라야 봉우리가 세파란 하늘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해발 3500m로 공기가 희박하고 싸늘하다. 하지만 햇볕을 걸러주는 대기가 부족해 태양은 뜨겁다. 그늘에선 떨다가 벗어나면 땀이 흐른다. 적갈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먼지 날리는 거리를 배회하고 모터사이클과 소, 합승택시가 붐빈다. 식당에선 버터차와 참바(붉은 보릿가루)를 내놓는다. 행인들은 길가에 늘어선 전경기(기도할 때 돌리는 바퀴 모양의 경전)를 돌리며 ‘옴마니반매훔’을 암송한다. 소남링처럼 인도와 네팔 곳곳에 흩어져있는 티베트 난민촌은 1950년 중국의 침공 전 티베트 문화의 타임갭슬이 됐다. 소남링에 사는 토프기알 채링(47)은 “1991년 티베트에 가서 두달을 지냈다”고 말했다. “티베트가 못 알아 볼 정도로 달라졌고 전통문화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밭을 가는 야크도 없었다. 지금은 그곳 사람들이 전통복을 입지도 않는다. 일부에서는 티베트어가 금지됐다.” 티베트 난민이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전통문화를 보존해야 할 필요성과 언젠가 독립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채링은 “인도 사회에 통합되면 고유문화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 우리문화를 말살하는 것이지만 젊은 티베트 난민의 서구화도 문제다. 그들은 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공동체가 나서서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 춘두에(25. 티베트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성은 밝히지 않았다)는 마지누카틸라에서 티베트 공예점을 운영한다. 그의 가게 계산대 뒤에는 달라이 라마 사당이 차려져 있다. 그는 2008년 시위 이후 티베트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직접 대화하기가 위험해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티베트 동부 캄 지역에 있는 승려인 형을 통해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입밖에 내지 못한다. 중국 공안이 대화를 도청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중국당국에 내가 죽었다고 거짓말했다.” 춘두에는 10세 때 삼촌과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에베레스트산 부근의 네팔로 탈출했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해 30명이 함께 이동했다. 그는 “어렸을 때였지만 아주 무서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의 외모와 말하는 태도가 서구인 같다. 진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콧수염을 약간 기르고 머리도 위에는 길고 옆은 바짝 깎았다. 영어도 유창했다. “한 겨울에 히말라야를 넘었다. 중국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밤에 이동해야 했다. 삼촌이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나는 졸리고 너무 추워 삼촌에게 끌려가다 시피 했다.” 첫 며칠이 지난 뒤 그들은 얼어붙은 강을 건넜다. 모두 큰 배낭을 머리에 지고 걸었다. 거의 다 건넜을 때쯤 얼음이 깨지면서 충두에가 물에 빠졌다. 그가 두꺼운 얼음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삼촌이 가까스로 그를 끌어올렸다. 춘두에는 “그 후 바지가 젖어 산을 올라갈 때 마치 장작개비처럼 뻣뻣하게 얼어 붙었다.” 고 말했다. 고산지대에선 설맹(눈 위로 반사된 자외선에 의한 각막염)을 조심해야 하지만 그와 삼촌은 돈이 없어 선글라스를 마련하지 못하고 대신 검은 쓰레기봉투를 잘라 머리에 댔다. “가는 중간에 선글라스 상인들이 있었지만 700루피나 달라고 해서 못 샀다.” (계속)
1317 no image 티베트(Tibet) 2
1839 2015-11-23
티베트(Tibet) 2 티베트인은 이유도 없이 구금되고 고문당한다. 고유의 문화와 종교, 역사와 언어가 말살됐다. 달라이 라마는 그것을 중국 공산당의 ‘문화 학살’ 이라고 불렀다. 중국내 티베트인의 분신 자살이 잇따르자 그는 2011년 11월 “문화학살 같은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그런 슬픈 사건이 발생한다” 고 말했다. 티베트 망명정부에 따르면 2009년 이래 티베트인 141명이 분신 자살을 기도했고 그 중 122명이 현장에서 또는 그 직후 사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시위가 티베트 곳곳에서 벌여졌다. 중국 당국은 달라이 라마를 시위의 배후로 지목하고 티베트인의 자유를 더욱 탄압하며 감시를 강화했다. 티베트 난민에 따르면 수도 라사에선 중국 공안이 티베트인의 휴대전화를 임의로 압수해 달라이 라마나 티베트 국가의 사진이 들어 있으면 무조건 체포한다. 다람살라의 티베트 도서관 밖에서 네충 카패를 운영하는 소남 채링(30)은 “인도로 탈출한 티베트인 100명 중 99명은 티베트 문화와 언어를 배우려고 이곳에 온다” 고 말했다. “티베트의 학교에선 중국어만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철학과 종교,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다 죽어간다.” 채링은 1994년 9세의 나이로 인도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가족을 두고 홀로 티베트를 탈출했다.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탈출하는데만 23일이 걸렸다. 그는 가족을 21년 동안 보지 못했다. “우린 언젠가 티베트가 해방된다는 희망을 늘 갖고 있다. 우리가 달라이 라마를 100% 믿고 따른다면 티베트를 되찾을 수 있다.” (계속)
1316 no image 티베트(Tibet)
1984 2015-11-23
티벹 Tibet (2015.11.23 Newsweek 한국판 기사) THE FORGOTTEN REFUGEES FROM A FORBIDDEN LAND (“금단의 땅” 탈출한 잊혀진 난민들) 인도의 티베트인. 전통문화 보존 필요성과 독립에 대한 믿음으로 현지 사회에 동화 되지 않아. NOLAN PETERSON 記者 인도 뉴델리의 마지누카틸라 티베트 난민촌은 9번 국립고속도로와 야무나강 사이에 있다. 좁은 골목과 초라한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번잡한 동네다.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티베트 난민을 한데 모으기 위해 1960년대 만들어졌다. 티베트 식당, 여인숙, 포장마차, 공예점이 줄비하다. 거리엔 거지, 遺棄犬, 머리에 짐을 가득이 인 아낙세로 붐빈다. 어느 인도 거리나 비슷하게 혼란스럽다. 그러나 다른 점이 곧바로 눈에 띈다. 이곳의 벽은 ‘티베트 해방’ 이라는 낙서와 포스트로 도배돼 있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사찰 앞에 걸린 대형 포스터엔 티베트 독립운동가 3명의 단식투쟁 일수가 적혀 있다. 마지누카틸라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는 로포상 세라프(35)는 “이곳엔 인도에 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고 말했다. “티베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면 그러겠나” 그의 부모는 달라이 라마가 망명을 떠난 1959년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를 탈출했다. 세리프는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인도 국적도 여권도 없다. ‘모국’ 티베트에 돌아갈 수도 없다. 중국은 인도에서 출생한 티베트인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티베트가 독립한다면 당연히 돌아가겠다.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다.” 오스트리아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는 1957년 저서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s in Tibet)’ 을 통해 그곳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티베트를 ‘금단의 땅(Forbidden Land, 1950년 중국의 침공 전엔 외국인의 입국을 거의 완전히 금지했다는 의미다)으로 불렀다. “수도 라사에서 5년을 지내는 동안 만난 외국인은 7명에 불과했다.” 지금의 티베트는 외국에게 개방돼 있다. 중국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약 1500만 명이 티베트 자치구를 방문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침공 후 65년이 지난 지금 티베트는 전제가 다를 뿐 여전히 금단의 땅이다. 티베트가 그곳에 사는 티베트인의 감옥이 됐다는 뜻이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안보부 부장 관 가르마 린첸은 “티베트의 티베트인은 자기 마을을 벗어날 수 없다”. 수도 라사로 가려면 최소한 허가증 5개가 필요하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 내부에서 티베트인의 이동을 완전히 통제한다.” (계속)
1315 no image [동심원] 에 함께 서다
1797 2015-11-22
[동심원]과 함께 서다 김성배의 설치 작품 암모나이트의 퍼줄(puzzle, 수수깨끼)을 풀다. 무엇이 보이는가? SIMA 기획 전시실 4, 전시장 창가, 둔굴게 말려 들어간 절목(節目)을 넣은 어른 팔둑만한 검은 프라스틱 튜-브가 불손하게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나와 있다. 밖에서 보면 그것은 거대한 곤충의 촉수가 창 밖으로 빠져 나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 물음은 그대로 이어진다. 무엇이 보이는가? 무엇이 보이는 것 같고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는 물체가 전시실 벽에 결려 있다. 이것들이 가는 철사줄로 창 밖의 '촉수'와 이어저 있다. 이는 잘 정동된 전시관 분위기를 어지렵게 흘들어 놓음으로써 우선 관객의 주목을 끌며 분위기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작품이라기 보담 하나의 우연한 사태로로 간주될 수 있는 물체들이 그곳에 얹혀저 있는 풍경으로 보인다. 그 아래, 작품명, [동심원], 작가 김성배란 페말이 어렵살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 돌맹이가 밖의 프라스틱 동심원의 原像이고 동시에 일억년이 넘는 년륜을 헤아리는 암모나이트의 화석의 실물이란 걸 놓치기 쉽다. 일억삼천년이 넘는 백악기에 바다물속에서 살았던 조개의 화석이 그대로 벽에 걸려 있는 異變이 이 설치물의 중심축 역활을 하고 있음이 틀립없다. 인간의 감각으로 이 긴 시차를 분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억년 전의 암모나이트의 실물이 비록 화석으로나마 여기 전시장 벽에 걸려 있게 된 연유가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일억년의 시간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지각은 고고학적 지식을 빌려, 지금 이 시점(21세기 지금의 전시실 시간)과 일억년전을 쉽게 이얼 수 있다. 그기에 덧붙혀, 그것이 작가의 아주 오래된 이 우주에 대한, 또한 예술에 대한 의문을 풀어 주는 열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들의 가슴은 이 작품 앞에 서서 전율할 밖에 없게 된다. 그 감흥은 우리의 몸 깊숙히 잠세해 있는 원초적 감성에서부터 울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십수년간 이 순간을 향해 조용히 동심원적 상념을 품고 끈끼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아니 그 보담, 작가는 예술가로서 물체와 인간의 정신의 업점을 검증해 내는 이 작품 한 점을 위해 살아 왔다고, 대담한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무엇을 보았는가? 이번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개관기념전의 “행복한 행차II” 실에 분류되어 소개되고 있는 김성배의 설치 작품 [동심원]의 개략적인 모양새가 그렇다. 겹고리 둥그라미(동심원의 우리말, concentric circle)의 이미지는 하나의 個物속에 모-든 개물이 비취 지고 있음을映)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개개의 요소는 다른 요소 전체로 향하는 변화를 유발하는 것으로, 무한 동일의 異像이란 논리가 성립할 수 있으며, 이는 동심원이 갖는 매트릭스(Matrix, 鑄型)적 특성이다. 然이 아니고 非然이며, 知가 아니고 非知, 必이 아니고 非必의 영역을 향하고 있는 일종의 '情緖的知性'이요, 一은 곧 一切다, 라는 무한계열의 [相卽], 불교의 화엄의 본질에 가 닿는 비전을 품고 있다. 비인격적존재자(자연)와 인격적존재자(인간, 문화)가 우주적 동심원안에서 서로 타자가 아니며 둘이 아니며 화엄의 事事無疑란 사고 重重無盡이란 비전속에 마치 암모나이트의 동심원이 시사하고 있듯이 융합되 있다, 는 멧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2015.11.21 조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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