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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29:51)
성배(聖杯)의 비밀, 다빈치 코드를 읽고
1.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기호와 상징을 구분하면서 상징을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통상적인 의미 외에 함축된 특별한 뜻을 갖고 있는 말, 이름, 혹은 심지어 그림들”로 규정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도 남긴다. “그것은 뭔가 막연하고 숨겨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최근 댄 브라운(Dan Brown)이 쓴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소설은 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핵심 코드인 기호와 상징의 문제를 스토리의 실질적인 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성립과정의 비밀, 그 중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의 숨겨진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다. 사실 이 『다빈치 코드』는 지난 2003년 미국에서 출간된 날을 ‘다빈치 코드의 날’이라 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장르상 추리 소설이고 또 실제로 다분히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할리우드 영화 같은 스토리로 독자를 흡인하고 있지만, 종교와 문명의 본질을 도상학과 기호학을 토대로 다루고 있다. 2. 프랑스 파리의 루블 박물관장(자크 소니에르)이 한밤중 박물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총을 맞은 상태로 벌거벗은 채 배꼽 부위에 자신의 피로 오각형의 별을 그려놓은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인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의 원처럼 주변에 원호를 그려 놓고 큰 대자로 누워 총에 맞아 숨져 있다. 바닥에는 특수 잉크로 씌어져 자외선 광선으로만 볼 수 있는 의문의 부호와 메모를 남긴 채.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이 수수께끼 같은 기호와 메모를 풀어가는 것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파리 경찰은 마침 초청 강연을 하러 와 파리에 체류 중인 기호학을 전공한 중년의 미국 하버드 대학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에게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경찰은 도움이 아닌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 소니에르가 피살되던 날 랭던 박사는 그와 저녁 식사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혐의를 뒤집어 쓴 랭던은 박물관장의 손녀로서 할아버지가 죽은 현장에 온 프랑스 경찰청 암호 해독부에 소속된 요원인 ‘수호천사’ 소피 누뵈와 함께 쫓기는 몸이 된다. 그들은 숨 가쁜 추격을 당하면서도 암호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첫 번 째 줄의 암호는 앞 두개의 숫자의 합이 그 다음 숫자가 되는 ‘피보나치 수열’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서 소피는 자신을 부르는 메시지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 P.S.' 가 추신이라는 뜻과 동시에 ‘프린세스 소피’로서 할아버지가 자기를 불렀던 애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랭던은 뒤집어진 순서대로 알파벳을 다시 나열하고 첫 번째 암호를 푼다. 이른바 아나그램이라고 하는 철자 게임이다. 결과는 이렇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Lisa!) 그래서 소피는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할아버지가 남긴 새로운 암호를 발견한다. “인간의 진로는 너무 어둡다.” 이 암호는 쉽게 풀린다. 소피는 <암굴의 성모> 그림 뒤에서 열쇠를 찾아낸다. 열쇠에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그것은 스위스 은행 지점이 있는 번지였다. 이 열쇠는 은행의 금고 열쇠였다. 여기서 다시 세 번째 암호가 풀린다. 은행의 계좌번호는 피보나치 수열인 1123581321이다. 금고 안에서는 클립 텍스가 나온다. 다섯 개의 철자 다이얼이 있는데 그걸 맞춰야 뚜껑을 열 수 있다. 클립 텍스에는 또 다른 암호가 새겨져 있다. “지혜로운 고대의 낱말이 이 두루마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리고 흩어진 가족 전체를 우리가 지킬 수 있게 도우리가. 기사단이 찬양한 묘석이 열쇠이라라. 아트베쉬가 너희에게 진실을 드러내리라.” 이제 비로소 ‘성당 기사단’, 즉 ‘시온 기도회’의 정체가 드러난다. 소니에르는 ‘시온 기도회’의 지도자였다. 이들은 성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숭배한 이교도의 신은 ‘바포멧(baphomet)’이었다. 그런데 헤브라이어에는 모음이 없다. 모음을 빼면 ‘bphmt’가 된다. 이것을 아트베쉬 암호 해독법으로 뒤집으면 'svfya'가 된다. 이것은 발음하면 'sophia', 즉 지혜가 된다. 지혜의 고대어는 'sofia'다. 클립텍스 안에는 또 하나의 더 작은 암호가 있다. 암호는 다음과 같다. “런던에 교황이 묻은 기사가 누워 있노라. 그의 노력과 결실이 성스러운 분노를 일으켰노라. 이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랭던은 ‘교황’과 ‘런던’, ‘기사’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교황이 실제 교황이 아니라 아아작 뉴턴의 친구인 알렉산더 포페(pope), 즉 '교황'을 뜻하기도 하는 친구 이름을 일종의 중의법으로 표현한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아이작 뉴턴의 무덤에 있어야할 구(球), 장밋빛 살과 씨를 품은 자궁. 다섯 글자 단어는 사과(apple)였던 것이다. 성배는 프랑스어로 '상 그리엘(san greal)'이라고 한다. 시온 수도회는 성배가 그냥 술잔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담은 자궁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성배는 왕족의 피, 상 레알(sang real)의 은유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예수가 결혼을 했고 자손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시온 수도회가 2천년 동안 지켜 내려온 '성배의 비밀'이었다. 3.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거대한 비밀조직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예컨대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율 1.618을 상징하는 그리스의 21번째 알파벳 파이(φ)의 관련성, 아나그램(Anagram)철자 바꾸기), 암호풀이, 도상학적 상징 해독을 거치면서 상 그릴, 즉 성배(聖杯)를 여는 열쇠로서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그래서 위카(땅, 즉 여신에 바탕을 둔 종교임), 티예앙크(여성의 생식기관, 생식과 장수를 상징함), 시스트럼(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의 제사 때 쓰던 금속악기임), 크룩스 젬마타(crux gemmata;열 세 개의 보석이 박힌 십자가란 뜻임), 미트라(주교들이 의식 때 쓰는 관임), 기원전 사천년에 생긴 두 개의 삼각형의 겹침인 ‘다윗의 별(솔로몬의 봉인)’과 오각형 별 모양의 의미가 초기 로마 교회에 의해 왜 바뀌는지 왜 창과 화살 끝 모양의 꼬리를 가진 캐릭터가 악마를 상장하게 되었는지 낱낱이 들추어내고 있다. 특히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암굴의 성모>에 숨겨진 비밀을 암호로 풀면서 주인공들은 1099년 결성된 비밀 단체인 ‘시온 수도회(Priory of Sion)’와 로마 카톨릭의 보수적 결사체인 ‘오푸스 데이(Opus Dei)’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축이다. 요컨대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럽의 수많은 예술 작품과 역사,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비의(秘意)를 드러낸다.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시온 수도회의 실제 여부와 그 주요 그랜드 마스터로서 보티첼리, 다빈 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장 콕토까지 지난 1975년에 발견된 문서를 통해서 사실인 것처럼 밝히고 있지만(그는 이 소설 서두에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건물, 비밀 종교의식에 대한 모든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 고 밝혔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아직은 그 사실 규명이 좀 더 진행되어야 할 일설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면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물론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것도 아직은 일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 해석하면서 예수 옆 인물을 막달레나 마리아라고 했지만, 예술사학자나 종교학자들은 대개 나이어린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기호와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세계와 관련된 상징에 대한 재해석으로 서구 역사의 이면과 종교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세상에 드리우고 있는 중세의 검은 그림자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이 소설의 주된 쟁점은 초기 기독교의 성립과정에서 배제된 여신이다. 다시 말해 로마 가톨릭이 마녀재판과 이교도에 대한 공격으로 여성성을 억압했다는 것이 주된 메시지다.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은 바로 그런 비판의 알레고리로 재해석된다.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여온 ‘이교도(pagan)와의 싸움’, 즉 배타와 독선이 지금도 유독 서구에서 지속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 책은 잘 알게 한다. 즉 자신의 종교만이 참 종교이고 타 종교 신자와 무신론자는 ‘이교도’ 아니면 ‘전도의 대상’이라는 선악 이분법이야말로 나와 남을 편 가르는 원인인 것이다. 역사는 두 번 다시 똑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오늘날 이라크 사태나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테러와 또 그에 대한 보복, 또 그로 인한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을 보면서 절감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소설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에 관한 기술, 특히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의 일들은 이미 명백하게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다. 즉 기독교는 4세기 초에 로마제국의 정치적 질서와 타협한 후에 라틴 서방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예컨대 ‘니케아 공회’에서 그때까지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던 예수가 메시아로 신격화되면서 인간적인 면모의 예수에 관한 행적을 불태우거나 없애면서 오늘의 성경으로 경전화 하는 것이라든가(성경의 성립과정은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내막이 있으며 여기에 대한 사실도 이미 현대 신학에서 자세히 밝혀졌다), 따라서 금지된 복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단자’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주교관, 성찬대, 영송가, 성채의 배경, 신이 먹는 것을 흉내 낸 행위는 이교도의 종교행사를 차용한 것이다. 또한 일요일이 ‘주일’이 된 것도 그 당시 로마의 정식 종교인 태양 숭배에서 유래한다. 기독교도 어디까지나 혼합종교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와 초기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의 여성(여신) 탄압사와 관련한 내용은 도올 김용옥이 지난 80년대 초에 쓴 『여자란 무엇인가』와 『절차탁마 대기만성』과 거의 일치한다. 먼저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주제는 ‘하느님’에 대한 ‘따님’의 회복, ‘남성’에 대한 ‘여성’의 회복이다. 그리고 『절차탁마 대기만성』은 초기 성경과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불트만의 신학과 특히 1947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나하그 함마하디 영지주의 문서>에 대한 언급을 통해 밝히고 있다. 나아가서 오늘날의 기독교나 마니교가 영지(靈神과 유사한 개념임)주의의 한 가지임을 밝히고 기독교를 넓은 의미에서 아시아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가설을 의심할 나위 없는 역사적 증거와 함께 제시한다. (이들 책의 이러한 내용으로 인해 성경책을 오로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맹신하는 기독교 광신자들이 김용옥을 왕 마귀 왕 사탄으로 몰아 온갖 비방과 협박, 심지어 테러의 위협까지 가했다) 나는 또한 이 소설을 보면서 1979년에 제작된 주디 시카고의 작품 <정찬 파티>를 떠올렸다. 이 <정찬 파티>란 작품은 삼각형의 성만찬 테이블에 모두 한 변 마다 13개씩의 여성 성기를 연상케 하는 접시 이미지들을 배열함으로써 최후의 만찬에 대응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단지 성을 섹스의 대상으로 그것도 불결한 대상으로 억압해 온 기독교에 대해 도발적 고발을 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주디 시카고는 한 권의 책을 병치 했는데, 그 책은 여신이 중심이 된 창세기와 페미니즘적 가치로 치유되는 세계를 예언한 묵시록으로 구성된 것이다. 물론 기존의 남성 본위적 성경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정찬 파티>는 20세기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정찬 파티>와 『다빈치 코드』는 성스러운 잔, 즉 성배(聖杯), 혹은 장미로 상징되는 잃어버린 여성, 다시 말해 ‘잃어버린 신성한 여신을 찾아서’ 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이 있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주요 화두 중의 하나가 성의 해방인 것도 성을 더럽고 불결한 행위로 만들어버린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 기인한다. 결국 『다빈치 코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호와 상징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중세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그 결과 온전한 삶이란 어느 한 쪽에 편중되지 않은, 즉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인 것이다. 4.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 기독교가 기여한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대체적으로 그 교리적 해석에 있어 여전히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번역한 성서를 절대시하는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타 종교와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스스로를 타자로부터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그 허구가 삶과 역사의 진실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비록 지식인들이라면 조금은 그 격을 낮게 보는(?) 추리 소설이라는 틀을 빌리고 그것도 할리우드식의 통속적인 스토리로, 그래서 심도 있는 주제를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다룬 흠은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한 것은 이 소설의 미덕이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 중에는 특히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 중에는 일설을 마치 객관적 정설인양 기술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상징적 그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 한다. 종교 학자들은 합리주의를 토대로 신을 무화시킨 과학도 현대의 종교라고 본다. 문제는 관점인 것이다. 우리가 타자와 소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초기 기독교에서 자행된,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배타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인류 문명의 핵심적 코드인 기호와 상징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서는 종교의 본질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으면 한다. 2004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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