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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29:34)
브루스 나우먼 개인전을 보고
1. 지난 1990년대 초반 호암갤러리에서 브루스 나우먼(Bauce Nauman, 1941-)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광경을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인류학/사회학(Antrbro/Socio)>이란 비디오 설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비디오 프로젝터 3대, 스테레오 스피커가 달린 6대의 모니터, 비디오디스크 플레이어 6대, 비디오 디스크 6장, 스피커 2대로 구성된 것으로, 어두운 방에 세 개의 스크린 벽과 6대의 모니터 상에 클로즈업된 삭발한 얼굴이 관객을 바라보며, “밥 좀 주세요, 인류학.....살려주세요, 날 때려줘요, 사회학.....”이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인간실존의 원초성과 형이상학적 이념이 착종된, 즉 휴머니티와 본능적 욕구를 강렬한 이미지와 소리로 교차시킴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지금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6월 9일-7월 15일까지) 브루스 나우먼의 개인전은 그의 초기작업부터 비교적 최근작까지 볼 수 있어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의 변모과정과 큰 맥락, 그리고 그의 작업 양상이 매우 다양했음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다. 비디오 아트는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1세대가 주로 정지 화면과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제도권 텔레비전의 일방소통적 특성에 맞서는 반문화적 방식으로써 텔레비전의 기능을 자의적으로 조정하고 왜곡하는 변형된 화면을 보여주는 공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면, 제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브루스 나우먼이나 비토 아콘치, 댄 그래함, 조안 조나스, 피터 캠퍼스, 대러 번바움 등은 비디오를 자신들의 작업과 결합하여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작업에 주력하면서 비디오 아트를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 잡게 한 주역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그저 주로 비디오 아트란 작업을 선구적으로 한 몇 몇 현대미술가로 아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이해다. 물론 이들의 작업을 미술 형식을 확장했다는 측면에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이들은 무엇보다 마르셀 뒤샹 이래 가장 철저하고도 래디칼한 방식으로 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주로 비디오 아트를 통해 제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제기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특유의 성격과 외연을 크게 넓혀놓은 작가들이다. 이 중에서 브루스 나우먼은 특히 자신의 ‘신체’나 ‘신체미술’을 소재로 하여 비디오 예술화한 장본인으로, 그래서 이후 세대로서 비디오 아트 작가라면 그의 영향을 직 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대다수의 현대 미술가들의 이력이 남다르듯이 브루스 나우먼도 그러하다. 물리학, 수학, 미술, 음악, 철학 등을 공부했으며, 특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심취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이 모든 다양한 전력이 종합된 것이다. 2.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주요 작품을 시기별로 고찰한다면 먼저, 지상 2층에서 볼 수 있는 그리고 그 다음으로 위 작품 바로 옆에 전시된 또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있는 그리고 1층 전시실 안쪽에서 그 유명한 이번에 출품된 그의 조각 작품 중 매력적인 작품으로 긴 막대 모양의 fiberglass로 만든 1965년에 제작된 마지막으로 3. 이번 개인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브루스 나우먼의 선별된 작품은 그 성향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들은 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미술의 형식에 대해 근원적 문제제기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실존적 삶에 대한 통찰력이 두드러진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예컨대 그의 작품에서는 남근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이기 전에 ‘알파 수컷’ 특유의 고독함과 공격적인(?) 욕구의 심리적 표출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여전히 서구의 전통적 대이론에 근거한 심미적인 예술관(시간을 초월한 이상미라든가 비례를 전제한 조화미를 미술의 가치로 아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즉 ‘미’와 ‘추’가 분명한 서구의 이항대립적인 전통적 미의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미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혁신적이며 그만큼 탈근대적 요소를 띤다. 1960년대 이후 서구의 문화적 기류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 현대미술사에 끼친 커다란 그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 특유의 사유방식과 또한 후기 구조주의에 이르는 맨탈리티를 지닌 나로서는, 60년대 이래의 서구의 전위적 퍼포먼스도 그렇듯이, 브루스 나우먼의 작업이 너무도 소박하고 정직하게 느껴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다양한 작업들이란 삶의 다양한 리얼리티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으로 보일 뿐이다. 원래 동양인들에 있어 삶의 양태란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우발성이 곧 필연성이다. 그러므로 미와 추, 혹은 좋음과 좋지 않음, ‘선과 악’ 이란 이항 대립적 사고를 넘어선 것이 삶의 실상이다. 물론 브루스 나우만이 동양의 전통적 사고를 전제로 작업을 했다는 뜻은 아니며, 서양의 탈 근대적, 혹은 해체적 경향 속에 이러한 접점이 없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대 이후 브루스 나우만의 작업을 그저 감각적으로 수용한 많은 국내 작가들의 경우 그만큼 서구 역사의 특수성이라든가 삶의 본연에 대한 통찰의 미흡함을 스스로 입증해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작업이 냉철한 시각에서 보면 하등의 가치와 의미도 없는 ‘무명’과 ‘미망의 흔적’은 아닌지 이번 브루스 나우먼 전시를 눈여겨보며 깊이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영상매체를 다루든, 그림을 그리든, 로우테크든 하이테크든 문제는 삶이므로. 2004년 6월 14일 도 병 훈(작가) 사진:시간속의 '나'를 지운다… 브루스 나우만展 [조선일보 정재연 기자 기사중 발췌. 소나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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