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현
조회 수 : 1472
2015.11.24 (0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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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Tibet) 3

 

 인도 북부 라다크주의 주도 래에서 몇km 떨어진 초그람사르에는 소남링 티베트 난민촌이 있다. 이곳에선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싼 황량한 흙색 히말라야 봉우리가 세파란 하늘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해발 3500m로 공기가 희박하고 싸늘하다. 하지만 햇볕을 걸러주는 대기가 부족해 태양은 뜨겁다. 그늘에선 떨다가 벗어나면 땀이 흐른다.

 

 적갈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먼지 날리는 거리를 배회하고 모터사이클과 소, 합승택시가 붐빈다. 식당에선 버터차와 참바(붉은 보릿가루)를 내놓는다. 행인들은 길가에 늘어선 전경기(기도할 때 돌리는 바퀴 모양의 경전)를 돌리며 옴마니반매훔을 암송한다.  

 

 소남링처럼 인도와 네팔 곳곳에 흩어져있는 티베트 난민촌은 1950년 중국의 침공 전 티베트 문화의 타임갭슬이 됐다. 소남링에 사는 토프기알 채링(47)1991년 티베트에 가서 두달을 지냈다고 말했다. 티베트가 못 알아 볼 정도로 달라졌고 전통문화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밭을 가는 야크도 없었다. 지금은 그곳 사람들이 전통복을 입지도 않는다. 일부에서는 티베트어가 금지됐다.

 

 티베트 난민이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전통문화를 보존해야 할 필요성과 언젠가 독립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채링은 인도 사회에 통합되면 고유문화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 우리문화를 말살하는 것이지만 젊은 티베트 난민의 서구화도 문제다. 그들은 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공동체가 나서서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

 

춘두에(25. 티베트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성은 밝히지 않았다)는 마지누카틸라에서 티베트 공예점을 운영한다. 그의 가게 계산대 뒤에는 달라이 라마 사당이 차려져 있다. 그는 2008년 시위 이후 티베트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직접 대화하기가 위험해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티베트 동부 캄 지역에 있는 승려인 형을 통해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입밖에 내지 못한다. 중국 공안이 대화를 도청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중국당국에 내가 죽었다고 거짓말했다.

 

  춘두에는 10세 때 삼촌과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에베레스트산 부근의 네팔로 탈출했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해 30명이 함께 이동했다. 그는 어렸을 때였지만 아주 무서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의 외모와 말하는 태도가 서구인 같다. 진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콧수염을 약간 기르고 머리도 위에는 길고 옆은 바짝 깎았다. 영어도 유창했다. 한 겨울에 히말라야를 넘었다. 중국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밤에 이동해야 했다. 삼촌이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나는 졸리고 너무 추워 삼촌에게 끌려가다 시피 했다.

 

  첫 며칠이 지난 뒤 그들은 얼어붙은 강을 건넜다. 모두 큰 배낭을 머리에 지고 걸었다. 거의 다 건넜을 때쯤 얼음이 깨지면서 충두에가 물에 빠졌다. 그가 두꺼운 얼음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삼촌이 가까스로 그를 끌어올렸다. 춘두에는 그 후 바지가 젖어 산을 올라갈 때 마치 장작개비처럼 뻣뻣하게 얼어 붙었다. 고 말했다.

 

  고산지대에선 설맹(눈 위로 반사된 자외선에 의한 각막염)을 조심해야 하지만 그와 삼촌은 돈이 없어 선글라스를 마련하지 못하고 대신 검은 쓰레기봉투를 잘라 머리에 댔다. 가는 중간에 선글라스 상인들이 있었지만 700루피나 달라고 해서 못 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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