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3860
2007.06.05 (13: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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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전원길씨 에게

요즈음은 artnot 의 글방을 방문하여 새롭게 올리는
글들을 읽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전선생의 '창의력'에 관한 소개글
김성배씨의 이어지는 '메모'등은 하로의 마감을 하는
시점에 잠시나마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느껴지고
동향을 살필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됩니다.
몇일전에는 수원경기대학교에서 열리고 있는
금강국제자연미술프로젝트전을 보고 그곳에 나와 계시는
김해심씨 오래만에 만난
김성배씨 이우숙씨등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야투의
활동상을 알게 되였고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연과
예술이 어떻게 만날수
있는가를 실감할수 있었습니다. 시각예술이 다른 쟝르의
언어와 무엇이 다르며 얼마만한 소구력을 가질수 있는가
그리고 감상자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하며 공감과 시공을 초월하는 진실로
유도해갈수 있는가 하는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란 것을
실감했습니다.
김 해심씨의 Art in Nature 에서 소개되고 있는 1995년
참여작가로
독일의 미카엘 폰 브렌따노의 '금강에서 온 정보'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 대단한 흡인력으로 생생하게 그 모습을 떠
올릴수 있었어며
그의 일련의 행위가 시사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사용한 '정보'란 말에 강한 매력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정보'란 언어를 이렇게 열려있는
의미로, 그의 일련의 행의의 시켄스가 총체적으로 던지고
있는 그 의미의 외연은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와 닿게 합니다. 어떠한
대하소설로서도 잡을수 없는 그의 '정보'는 그 속에
인간적인 것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일께워주는 서사시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21세기에
와서도 문명의 편향에서 오는 '모든것들의 과잉'에서
시달리며 파국으로 내닫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구원이
가능하다면 이런 단순하면서도
명쾨한 멧세지에서 그 힌트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이 작가의 이후의 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낮익은 분들의 작품들, 이윤숙씨의 치유의 조각
전원길씨의 '멍석 쌓기' 김해심씨의' 낙엽' 등도 잘
감상했습니다.자연을 만나는 시각예술이 이렇게 쉽게
재미있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하이만의, "예술에서 우리들은 세계로부터 형태를
잘라내어, 그 형태를 독립된 절대적인 존재에 가져온다.
이에 대하여 자연에서 우리들은 세계를 형태로 부터
해방시키며, 또 우리들 자신을 형태로 부터 해방시킨다."
란 말은 내가 이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 감회를 압축해주고
있습니다. 자연과 예술을 아우리는 놀라운 관점이 아닐수
없습니다.


조 규현

번호 제목 조회 등록일
Selected no image 친애하는 전원길씨 에게
3860 2007-06-05
친애하는 전원길씨 에게 요즈음은 artnot 의 글방을 방문하여 새롭게 올리는 글들을 읽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전선생의 '창의력'에 관한 소개글 김성배씨의 이어지는 '메모'등은 하로의 마감을 하는 시점에 잠시나마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느껴지고 동향을 살필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됩니다. 몇일전에는 수원경기대학교에서 열리고 있는 금강국제자연미술프로젝트전을 보고 그곳에 나와 계시는 김해심씨 오래만에 만난 김성배씨 이우숙씨등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야투의 활동상을 알게 되였고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연과 예술이 어떻게 만날수 있는가를 실감할수 있었습니다. 시각예술이 다른 쟝르의 언어와 무엇이 다르며 얼마만한 소구력을 가질수 있는가 그리고 감상자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하며 공감과 시공을 초월하는 진실로 유도해갈수 있는가 하는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란 것을 실감했습니다. 김 해심씨의 Art in Nature 에서 소개되고 있는 1995년 참여작가로 독일의 미카엘 폰 브렌따노의 '금강에서 온 정보'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 대단한 흡인력으로 생생하게 그 모습을 떠 올릴수 있었어며 그의 일련의 행위가 시사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사용한 '정보'란 말에 강한 매력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정보'란 언어를 이렇게 열려있는 의미로, 그의 일련의 행의의 시켄스가 총체적으로 던지고 있는 그 의미의 외연은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와 닿게 합니다. 어떠한 대하소설로서도 잡을수 없는 그의 '정보'는 그 속에 인간적인 것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일께워주는 서사시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21세기에 와서도 문명의 편향에서 오는 '모든것들의 과잉'에서 시달리며 파국으로 내닫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구원이 가능하다면 이런 단순하면서도 명쾨한 멧세지에서 그 힌트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이 작가의 이후의 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낮익은 분들의 작품들, 이윤숙씨의 치유의 조각 전원길씨의 '멍석 쌓기' 김해심씨의' 낙엽' 등도 잘 감상했습니다.자연을 만나는 시각예술이 이렇게 쉽게 재미있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하이만의, "예술에서 우리들은 세계로부터 형태를 잘라내어, 그 형태를 독립된 절대적인 존재에 가져온다. 이에 대하여 자연에서 우리들은 세계를 형태로 부터 해방시키며, 또 우리들 자신을 형태로 부터 해방시킨다." 란 말은 내가 이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 감회를 압축해주고 있습니다. 자연과 예술을 아우리는 놀라운 관점이 아닐수 없습니다. 조 규현
5 no image 친애하는 전원길씨
3922 2007-06-05
친애하는 전원길씨 전시회방문 귀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신년 첫달부터 전시회 나들이 실험에 들어가서 아주 멀리는 못가고 동경까지는 가서 전시회장들을 둘려보았는데 결국 전원길씨의 여름전을 참관함으로서 정월한달의 미술관 방문의 결산이 마무리 된 셈입니다.전시회 나들이의 요령으로 그동안 몇분의 이색적인 미술감상순례기행문등은 읽어 두었습니다만 막상 쫓아다니보니 타산지석은 될지언정 역시 자신의 것으로 쉽게 와 닿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무언가 분명한 것들이 부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천착은 합니다만 아직은 그런 상태의 진행형으로서만 가고 있습니다.빌려주신 톰 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팝 아트'전과 동경현대미술관에서 본 미스미 코렉션에 의한 아메리카 현대미술전(43작가 100점전시)을 관람할수 있었기때문에 아주 안성맞춤으로 마국현대미술감상의 문턱에 들어설수 있는 전기가 되고 있습니다.작품 하나하나의 앞에 선다는 문제에서 부터 시작하여 아주 자연스렵게 무언가 와 닿는 것을 감지하고 켐버스가 주는 가장 원천적인 지침으로서 '공간'의 산물이 '시간의 맥략'으로 이어저가는 변증법적인 흐름에 자신을 태워 보는(지속적 공진..........) 흥분과 즐거움만은 조금씩 맛 보는 것 같습니다. 현대미술의 난삽함은 그 작품들을 낳게 한 사회 혹은 문명의 존재양식의 맥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켄버스의 시각적 함정에 쉽게 빠지지만 않는다면 아주 재미있는 시각게임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경 긴자 뒷골목의 한 조금만한 '다락방'같은 화랑에서 한 작가의 그림들을 둘려 본 일이 있는데( 약 15점 정도로 기억함)마침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화가당사자가 "작가입니까?"라고 물어 오면서 대화가 시작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니요. 등산을 좋아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계기로 미술감상학습을 하게 되어 동경에 있는 전시장을 둘려보고 있는 중입니다." 등등. 나이는 아직 40대 초정도로 보임. 당돌하게 내가 묻기를," 이 작품들이 당신의 작품입니까? 하나 하나의 작품의 테-마는 다른것이나 기본에 깔려 있는 톤(tone)은 한결 같고 아주 메란코리하고 데카단하며 어둡고 읍습한 느낌을 받는데, 저 중절모를 선 사람의 너무나 암울한 표정은 혹시 자화상입니까?등등" 어떤 표면을 파 냄으로서 그친 횐색이 들어나 보이게 한 것이 그림의 색조의 초점을 잡고 있어 약간의 숨통을 터여 놓은 점을 지적하면서, " 역시 어떤 형태의 "구제"가 필요하군요."등등. 결국 이야기 가 길어 지면서 갖고 있던 "해탈불가" 도록이 나오고 김성배의 세계를 좀 선전하기도 하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곁치례만 보면 일본은 대단한 풍요로운 나라이고 선진국인데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을까? 계륵리의 소나무 갤러리의 전원길의 그림들은 왜 그 토록 맑고 밝은 색조의 '자연찬가'에 까가운 느낌을 주는가 묘한 역설적인 비교가 아닐수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계속 묻는것으로 미술감상학습의 맥을 이어가게 됩니다. " 왜 미술감상학습에 나섰는가?" 그리고 또 한 계속해서 그 답을 내 앞에 서게 될 그 무수한 그림들 혹은 작품들을 만나면서 "해답'을 얻고 발동이 끄지지 않고록 이어갈수 있는 "내적 혹은 필연적"인 동기를 발견해갑니다.미술세계는 묘하게도 마치 지구를 둘려샇고 있는 '바다'가 그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듯'한량없지만 그속에 용해된 지구와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안고 있드시 매우 문학적일수 있고 철학적일수 있고 음악적일수 있 는 그러나 잔혀 다른 쟝르로 '치환'된 시각 매체예술입니다.우리는 약간의 기본되는 조건을 갖추면서 확실하게 자신이 납덕하는 징검다리씩 접근을 통해서 이 경이의 세계의 code를 풀어가는 즐거움을 얻을수 있습니다. 계륵리에서 만난 전원길여름전은 나의 내면세계속에 하나의 단초를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성급한 해석을 서둘기 전에 그 만남의 가치와 의미를 '숙성'시켜가는 즐거움을 함께 하게 될것입니다.우리는 한 작가의 예술셰계를 본다는 것은 그것이 이 우주란 하나의 근원에서 뻗어저 나온 하나의 상을 본다는 것이고 우리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진'의 울림에 의해 감상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그 문을 닿지만 않는다면 작품 하나하나와 대면할수 있습니다.이 만남의 이야기(전원길 여름전)는 이어저가는 이야기로 남겨두기로 하겠습니다. 조 규현 드림 추이: 전시회 방문시 여러가지 배려를 해주서서 갑사합니다. 특히 오래간만에 만난 김성배씨와 한자리에서,작가의 작품해설을 겸한 이야기를 들얼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 no image 친애하는 전원길씨
4030 2007-06-05
친애하는 전원길씨 새해들어서는 년말까지 새겨두었던 미술감상학습 program 데로 실천해 보려고 하다 report 가 좀 늦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 22일-27일 동경나들이도 잡혀 있습니다. 오래동안 친하게 지나던 일본인 동료 한분이 자기회사가 참가하는 Internepcon Show(반도체 장비전)에 초청한 기회를 이용하여 미술관 과 서점순례도 하면서 학습의 단서가 될수 있는 자료나 정보를 탐색해 볼수 있을것으로 기대합니다. 정초부터 신문기사 월간 미술 기타 미디어광고등에서 선전하고 있는 전시회들을 꽤 부지런하게 쫓아 다녔습니다. 무엇이던지 현장에서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는 '임장성'이 중요하니까. 이와 변행하여 서점의 미술과 문학코너의 열람과 집에서의 독서등이 가미되고....하면서 예술을 보는 눈을 '숙성' 시켜 가는 전략이지요. 대단히 재미 있는 일은 미술관들이 각기 열어 놓고 있는 shop에 따라 모아둔 자료중에 이외로 '잊혀지고 숨어있는 보물들'이 많이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현대갤러리에서 일본어판의 이우환 화집을 발견했고, 시립미술관에서는 천경자화집(이 작가는 시립미술관 개관 초대착가임) 등이 신선하게 잡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임자다'라고 할수 있지요. 나의 천성에도 맞는 아전인수격인 사고이지요. 전시회란 것도 그렇습니다. 보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길에 떨어진 '돈'을 줍는거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금년의 전시회 나들이에서 가장 역점을 둔 점은 1) 무엇이든지 보아두자 란 하나의 수평적인 축과 2) 감성적이던 논리적이던 자기에게 확실하게 와 닿는 것을 잡아라는 수직적인 축을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얼핏 보면 서로 모순되는 작전같이 보이지만 실은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동안 고생한 끝에 얻은 전술입니다.전시회를 선정하는것에 지나치게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급미술이라든가 하급미술이라든가 역사에 남을 미술이라든가 무명으로 치부되고 있는 미술등을 구별하는 일은 '수집가'들에게나 맡기고. 아주 마음에 오지 않했던 전시회를 둘려 본일도 있습니다만 아주 '열심히 봐 두기로'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지금 일민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전입니다. 호암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미국사진전과 대극점에 있는 광학기술과 대량확대생산의 기법을 이용한 '속'의 과잉투사(over abundant irradiation)란 일종의 험오감을 불려 일으키는 작품이 어떻게 뻐젓하게 동아일보가 후원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이란 토를 달면서 전시되고 있는가......하는 의아심이 일어 나는 작품들인데 이 또한 학습의 한 테-마로 잡고 묵가하기로 했습니다. 도록도 값에 비해서 매우 싸구려같이 만들어저 있습니다.이 세상에 '추'가 있다는 것은 '미'만 강조하기때문이다라고 한 말도 새겨 보면서.............월간미술 1월호에서도 아라키의 전시회평이 나와 있어 관점의 조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평소 지니고 있던 '미술'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기만해도 감상'개안'은 틀림 없을거란 계산.금년도의 학습전략의 일환입니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상미술이란 무엇인가'전과 '한국의 추상미술전'은 액면 그대로 미술감상학습에 바로 막닥뜨리는 것이어서 심기일신 새해의 미술관 나들이의 새 기분을 맛 볼수 있었습니다. 서양현대미술의 계보를 diagram로 잡아놓고 간명하게 해설해 놓은 방법은 전혀 새로운 탓치로 짜여저 있어 신선하게 느끼게 한점이 돗보였고 머리에 오래 각인되어 질것으로 생각됩니다.하나의 큰 벽면 전체를 문화와 문명이란 크다란 강을 형성해가면서 20세기의 서양화가 걸어 온길을 서로 그물망으로 이어가면서 년대기적으로 짜넣은 수법은 초보자들에게는 설득력이 클것으로 보입니다. 광화문에서 북쪽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다 성곡미술관으로 들어서는 골목이 있는 데, 여기서 길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육교를 넘어서면, 마주보는 건물의 지하에 '큐-브'란 이색 영화관이 하나 있습니다. 이 극장으로 들어가는 지점에 높이가 20 미터나 되는 햄마를 치고 있는 사람(Hammering Man: by Jonathan Borofsky)의 철물조각이 서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높이로 새워둔 입상을 평소에는 전혀 눈여겨 보지 안했다는 일과 비로소 새롭게 잡히기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한 참동안 이 조각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마치 그림자 그림과 같이, 그것도 흔들리는 촛불이 만든 그림자와 같이 윤곽이 전혀 거칠게 설정되고 인체의 구성비례같은 것은 아에 깡거리 무시한 두터운 철판에 검은 단색으로 칠해진 이 공룡과 같은 괴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와 닿는 답이, 도시와 고층건물과 거리의 공기와 무엇인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고층건물조성의 요건으로 세워두는 조형물로서 보더라도 생기가 넘치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아주 유치한 조형물에 익숙해 오던 눈에 이 조형물은 일단 그런 수준은 벗어난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왜 그렇게 보였을까요? 나의 해답은 이렇습니다. 매마르고 회색 일변도의 초고층건물들이 줄을 서 있는 도심지에 '햄마를 휘둘르는 근육질의 노동자상'이란 지극히 어울리게 하기 힘든 오브제였을것입니다. 그래서 착상된 것이 크기에 있어 균형이 잡히고 이미지에서는 씩씩한 노동자상을 찾아 낸것이, 전통적인 조각의 조건들을 무화함으로서(인간의 현상이 주는 모든 요소들의 제거) 환경에 수용될수 있는 입상이 였을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부정됨으로서 얻을수 있는 형태상의 앙상불입니다. 헨리무어의 조각에서도 익혀온, 돌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인체조각과 같은 맥락입니다. 거대한 도심이 지니고 있는 조형상의 어법을 따르다 보니 인체가 굴절될수 밖에 없고 굴절됨으로서 비로서 수용되는 아이러니가 바로 그 Hammering Man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해 놓고 보니 돌아가는 발길이 조금은 가벼워지든군요. 미술을 안다는 것은 거리를 안다는것이 되고 도시를 안다는것이.....문화 문명을 안다는 것이 된다는 생각과 혹시 자신을 안다는것도 될수 있다면 금상첨화 겠지요. 김성배씨가 최근에 완료한 자신의 전시회도록을 전해 주었습니다. 경기일보에 연제하고 있는 백두대간소개글도 몇편 받기도 하고요. 금년이 지날 무렵쯤이면 한 특이한 방법으로 예술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작가로서의 김성배를 보다 넓고 깊게 이해 하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오채환씨와도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새 작품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계륵리방문의 기회가 익어가는군요. 조 규현 드림
3 no image 친애하는 김성배씨.
4230 2007-06-05
친애하는 김성배씨. 배려해주신 덕택으로 한원미술관과 소나무갤러리에서 열렸던 김화백의 '해탈불가'-Open or Close 전을 참관할수 있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새로 단장한 전원길씨의 시골집은 두 부부의 인품과 체취가 느껴지고 오채환씨와의 활달하고 소탈한 대화 처음 가본 안성의 옛풍물의 잔영이 즐거움을 더해주었읍니다. 돌아온 후 안성을 찾아보니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던군요. 이번 소나무갤러리에서의 설치작품은 전시공간에 딱 어울리는 스케일로 잡혀저 있어 우선 texture와 그것이 아주 자연스렵게 빚고있는 유려함이 공간전체를 포용하면서 다가오게하는데는 성공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기에, 전원길씨의 표현을 빌리면,"산의 현상이 아주 우연하게도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게 되였다",라고 말했드시, 쫍은 켄바스의 우리에서 탈출한 해방감에 더하여 산이 내품는 황량함과 소름끼치는 고절감을 던저주고 있어 히말라야에서 어떤 중심사상을 찾으려는 김화백의 집요한 몸부림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히말랴야를 탐방하며 경험하는 "실체감"속에는 말이나 붓으로 표현할수 없는 어떤 고양감(highness)이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받는 세례를 다른 표현수단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어자체도 실체가 없는 추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술도 그 덜미를 잡혀 해체되였으며 현대회화란 자기존재의 부정에서 몸부림치고 있지요. 한가지 가능한 길이 있다면 길을 거꾸로 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지 해체의 미학에 경도만 할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성과 정체성속에 스며있는 미감을 따듬는 혹은 정립하는 일 말입니다. 진보가 아니면 퇴보이다라고 훈련된 우리의 사고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오래된 미래" 속에 파 뭍여있는 가치속에 오히려 진정한 인간의 미래를 열수있는 Vision이 있다는 것도 도리켜볼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재현의 만네리즘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할것인가? 무엇을 전달할것인가? 나와 너가 함게 나누어 느낄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나는 미술이 붕괴한것이 아니라 미술의 fundemental이 가려저있다고 생각할때가 있읍니다. 어떤의미에서는 과속이 붙어있는 현대문명에 break를 거는 새로운 시각과 표현이 창출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수나무갤려리에서 전원길씨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한 말씀은 깊은 우애속에서 서로를 충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나올수 없는 말로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위에 김화백에 대해서 글을 쓰볼생각이 없느냐라고 하는 재미있고 어려운 숙제까지 내 주시니 마치 내가 취재기자라도 된것 같군요. 내주에는 미술애호가의 기량을 조금이라도 딲기위해서 광주비엔나레를 참관하려 내려가볼까합니다. 겸사 무등산도 오르기도 하고. 전원길씨에게는 돌아와서 인사를 드리기로 합니다. 여의도 조규현 배
2 no image 친애하는 전원길씨
4539 2007-06-05
친애하는 전원길씨 새해들어서는 년말까지 새겨두었던 미술감상학습 program 데로 실천해 보려고 하다 report 가 좀 늦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 22일-27일 동경나들이도 잡혀 있습니다. 오래동안 친하게 지나던 일본인 동료 한분이 자기회사가 참가하는 Internepcon Show(반도체 장비전)에 초청한 기회를 이용하여 미술관 과 서점순례도 하면서 학습의 단서가 될수 있는 자료나 정보를 탐색해 볼수 있을것으로 기대합니다. 정초부터 신문기사 월간 미술 기타 미디어광고등에서 선전하고 있는 전시회들을 꽤 부지런하게 쫓아 다녔습니다. 무엇이던지 현장에서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는 '임장성'이 중요하니까. 이와 변행하여 서점의 미술과 문학코너의 열람과 집에서의 독서등이 가미되고....하면서 예술을 보는 눈을 '숙성' 시켜 가는 전략이지요. 대단히 재미 있는 일은 미술관들이 각기 열어 놓고 있는 shop에 따라 모아둔 자료중에 이외로 '잊혀지고 숨어있는 보물들'이 많이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현대갤러리에서 일본어판의 이우환 화집을 발견했고, 시립미술관에서는 천경자화집(이 작가는 시립미술관 개관 초대착가임) 등이 신선하게 잡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임자다'라고 할수 있지요. 나의 천성에도 맞는 아전인수격인 사고이지요. 전시회란 것도 그렇습니다. 보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길에 떨어진 '돈'을 줍는거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금년의 전시회 나들이에서 가장 역점을 둔 점은 1) 무엇이든지 보아두자 란 하나의 수평적인 축과 2) 감성적이던 논리적이던 자기에게 확실하게 와 닿는 것을 잡아라는 수직적인 축을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얼핏 보면 서로 모순되는 작전같이 보이지만 실은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동안 고생한 끝에 얻은 전술입니다.전시회를 선정하는것에 지나치게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급미술이라든가 하급미술이라든가 역사에 남을 미술이라든가 무명으로 치부되고 있는 미술등을 구별하는 일은 '수집가'들에게나 맡기고. 아주 마음에 오지 않했던 전시회를 둘려 본일도 있습니다만 아주 '열심히 봐 두기로'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지금 일민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전입니다. 호암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미국사진전과 대극점에 있는 광학기술과 대량확대생산의 기법을 이용한 '속'의 과잉투사(over abundant irradiation)란 일종의 험오감을 불려 일으키는 작품이 어떻게 뻐젓하게 동아일보가 후원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이란 토를 달면서 전시되고 있는가......하는 의아심이 일어 나는 작품들인데 이 또한 학습의 한 테-마로 잡고 묵가하기로 했습니다. 도록도 값에 비해서 매우 싸구려같이 만들어저 있습니다.이 세상에 '추'가 있다는 것은 '미'만 강조하기때문이다라고 한 말도 새겨 보면서.............월간미술 1월호에서도 아라키의 전시회평이 나와 있어 관점의 조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평소 지니고 있던 '미술'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기만해도 감상'개안'은 틀림 없을거란 계산.금년도의 학습전략의 일환입니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상미술이란 무엇인가'전과 '한국의 추상미술전'은 액면 그대로 미술감상학습에 바로 막닥뜨리는 것이어서 심기일신 새해의 미술관 나들이의 새 기분을 맛 볼수 있었습니다. 서양현대미술의 계보를 diagram로 잡아놓고 간명하게 해설해 놓은 방법은 전혀 새로운 탓치로 짜여저 있어 신선하게 느끼게 한점이 돗보였고 머리에 오래 각인되어 질것으로 생각됩니다.하나의 큰 벽면 전체를 문화와 문명이란 크다란 강을 형성해가면서 20세기의 서양화가 걸어 온길을 서로 그물망으로 이어가면서 년대기적으로 짜넣은 수법은 초보자들에게는 설득력이 클것으로 보입니다. 광화문에서 북쪽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다 성곡미술관으로 들어서는 골목이 있는 데, 여기서 길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육교를 넘어서면, 마주보는 건물의 지하에 '큐-브'란 이색 영화관이 하나 있습니다. 이 극장으로 들어가는 지점에 높이가 20 미터나 되는 햄마를 치고 있는 사람(Hammering Man: by Jonathan Borofsky)의 철물조각이 서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높이로 새워둔 입상을 평소에는 전혀 눈여겨 보지 안했다는 일과 비로소 새롭게 잡히기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한 참동안 이 조각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마치 그림자 그림과 같이, 그것도 흔들리는 촛불이 만든 그림자와 같이 윤곽이 전혀 거칠게 설정되고 인체의 구성비례같은 것은 아에 깡거리 무시한 두터운 철판에 검은 단색으로 칠해진 이 공룡과 같은 괴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와 닿는 답이, 도시와 고층건물과 거리의 공기와 무엇인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고층건물조성의 요건으로 세워두는 조형물로서 보더라도 생기가 넘치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아주 유치한 조형물에 익숙해 오던 눈에 이 조형물은 일단 그런 수준은 벗어난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왜 그렇게 보였을까요? 나의 해답은 이렇습니다. 매마르고 회색 일변도의 초고층건물들이 줄을 서 있는 도심지에 '햄마를 휘둘르는 근육질의 노동자상'이란 지극히 어울리게 하기 힘든 오브제였을것입니다. 그래서 착상된 것이 크기에 있어 균형이 잡히고 이미지에서는 씩씩한 노동자상을 찾아 낸것이, 전통적인 조각의 조건들을 무화함으로서(인간의 현상이 주는 모든 요소들의 제거) 환경에 수용될수 있는 입상이 였을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부정됨으로서 얻을수 있는 형태상의 앙상불입니다. 헨리무어의 조각에서도 익혀온, 돌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인체조각과 같은 맥락입니다. 거대한 도심이 지니고 있는 조형상의 어법을 따르다 보니 인체가 굴절될수 밖에 없고 굴절됨으로서 비로서 수용되는 아이러니가 바로 그 Hammering Man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해 놓고 보니 돌아가는 발길이 조금은 가벼워지든군요. 미술을 안다는 것은 거리를 안다는것이 되고 도시를 안다는것이.....문화 문명을 안다는 것이 된다는 생각과 혹시 자신을 안다는것도 될수 있다면 금상첨화 겠지요. 김성배씨가 최근에 완료한 자신의 전시회도록을 전해 주었습니다. 경기일보에 연제하고 있는 백두대간소개글도 몇편 받기도 하고요. 금년이 지날 무렵쯤이면 한 특이한 방법으로 예술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작가로서의 김성배를 보다 넓고 깊게 이해 하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오채환씨와도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새 작품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계륵리방문의 기회가 익어가는군요. 조 규현 드림
1 no image 친애하는 김성배씨.
4636 2007-06-05
친애하는 김성배씨. 배려해주신 덕택으로 한원미술관과 소나무갤러리에서 열렸던 김화백의 '해탈불가'-Open or Close 전을 참관할수 있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새로 단장한 전원길씨의 시골집은 두 부부의 인품과 체취가 느껴지고 오채환씨와의 활달하고 소탈한 대화 처음 가본 안성의 옛풍물의 잔영이 즐거움을 더해주었읍니다. 돌아온 후 안성을 찾아보니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던군요. 이번 소나무갤러리에서의 설치작품은 전시공간에 딱 어울리는 스케일로 잡혀저 있어 우선 texture와 그것이 아주 자연스렵게 빚고있는 유려함이 공간전체를 포용하면서 다가오게하는데는 성공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기에, 전원길씨의 표현을 빌리면,"산의 현상이 아주 우연하게도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게 되였다",라고 말했드시, 쫍은 켄바스의 우리에서 탈출한 해방감에 더하여 산이 내품는 황량함과 소름끼치는 고절감을 던저주고 있어 히말라야에서 어떤 중심사상을 찾으려는 김화백의 집요한 몸부림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히말랴야를 탐방하며 경험하는 "실체감"속에는 말이나 붓으로 표현할수 없는 어떤 고양감(highness)이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받는 세례를 다른 표현수단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어자체도 실체가 없는 추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술도 그 덜미를 잡혀 해체되였으며 현대회화란 자기존재의 부정에서 몸부림치고 있지요. 한가지 가능한 길이 있다면 길을 거꾸로 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지 해체의 미학에 경도만 할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성과 정체성속에 스며있는 미감을 따듬는 혹은 정립하는 일 말입니다. 진보가 아니면 퇴보이다라고 훈련된 우리의 사고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오래된 미래" 속에 파 뭍여있는 가치속에 오히려 진정한 인간의 미래를 열수있는 Vision이 있다는 것도 도리켜볼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재현의 만네리즘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할것인가? 무엇을 전달할것인가? 나와 너가 함게 나누어 느낄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나는 미술이 붕괴한것이 아니라 미술의 fundemental이 가려저있다고 생각할때가 있읍니다. 어떤의미에서는 과속이 붙어있는 현대문명에 break를 거는 새로운 시각과 표현이 창출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수나무갤려리에서 전원길씨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한 말씀은 깊은 우애속에서 서로를 충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나올수 없는 말로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위에 김화백에 대해서 글을 쓰볼생각이 없느냐라고 하는 재미있고 어려운 숙제까지 내 주시니 마치 내가 취재기자라도 된것 같군요. 내주에는 미술애호가의 기량을 조금이라도 딲기위해서 광주비엔나레를 참관하려 내려가볼까합니다. 겸사 무등산도 오르기도 하고. 전원길씨에게는 돌아와서 인사를 드리기로 합니다. 여의도 조규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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