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3762
2007.06.05 (17:47:43)
extra_vars1:  ||||||||||||||||||||| 
extra_vars2:  ||||||||||||||||||||||||||||||||||||||||||||||||||||||||||||||||||||||||||||||||| 

“나의 도서관”, 백종옥의 개인전을 보고



1.
지난 12월 16일부터 27일까지 조흥갤러리에서 ‘나의 도서관’이란 주제 하에 백종옥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지난 90년대 초반에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90년대 후반에 독일로 가서 작년에 귀국 첫 개인전을 연 것이다.

필자는 그가 국내에 있을 때 한 때 주로 동양학 방면의 고전들을 섭렵하는 스터디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때 백종옥은 이마 푸른 문학청년 같은 순수함을 가진 지적인 청년이었다. 구질구질한 모습들의 자폐적인 증상이 심한 후배들을 대하다가 그런 그의 모습이 참 반듯해보였다. 그 때 백종옥은 ‘동학’사상을 중심으로 우리 정체성에 대한 탐색과 상징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신화적 서사적 상징성이 강한 페인팅을 했다. 그 후 이번에 너무도 달라진(?) 그의 작업들을 보게 되었다. 이번 그의 작업들은 그간 그가 독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하며, 이는 아래 자전적 고백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무렵 갑자기 작업을 한다는 게 어쩐지 천하에 쓸모없는 짓처럼 생각되었고 내 삶과 밀착되지 않은 한낱 뜬구름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내공을 쌓아 보겠다고 건너간 타국 땅에서 마주친 그 끝 모를 막막함은 그 곳에 내가 있어야 할 이유조차도 가물가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되돌이표처럼 버티고 있는 작업에 대한 근본적인 권태와 회의였다. 그러나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작업에 대한 권태와 회의’가 아니라 바로 그 권태와 회의로 인해 ‘나만의 언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거의 모든 유학생들이 한결같이 겪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우선 국내 미술대학의 교육과정이 너무 엉터리여서 대개 현대미술의 ‘현’자도 모른 채 유학을 가는 데다, 서구 유럽예술의 지역적 문화적 배경이 한국의 상황과는 너무도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는 끝내 이러한 회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 쪽으로 봐서는 초등 수준의 어학으로 간신히 학교만 마치고 귀국해 놓고는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다. 물론 적당히 한국적 이미지를 가공하여 서구 쪽에서 보았을 땐 이국적인 작업을 해서 주목 받고(?), 그래서 성공한 듯 가장하여 국내에서 행세하고 기반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패한 유학이기는 마찬가지다. 요컨대 숱하게 많은 인간들이 아까운 외화만 낭비하고, 자신의 삶만 탕진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는 경우를 봤지만 유학이후 참으로 작업이 좋아지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겉멋만 들어서 더 나빠진 경우도, 심지어는 아예 사람이 망가진 경우도 보았다.

2.
이번에 백종옥의 작업을 통해 그간의 유학생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는 그가 자신이 처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를 자기반성을 통한 과거 작업과의 결별로부터 발견했으며, 그러한 모색 끝에 그는 일상적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체험들로부터 자신의 작업의 모티브를 찾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백종옥의 이번 작업은 주로 ‘책’이라는 오브제와 책이 있는 공간에 대한 탐색이다. 물론 그는 책과는 거리가 먼 대다수 미술 하는 사람들과 달리 국내에 있을 때부터 책을 탐독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고 있음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렇지만 유학을 가서 직면한 그 고독한 환경 속에서 책은 그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그래서 책을 모티브로 한 작업을 하게 되었고 이번 개인전을 통해 그 성과물들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지 책에 대한 관념적 탐닉은 아니다. 이는 책을 책이 아닌 ‘오브제’로 다루거나 내면적 심상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삼고 있음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백종옥의 이번 작업을 통해, 그가 독일에 있을 때 자주 가던 도서관과 책을 통해 느꼈던 체험을 대할 수 있다. 때로는 그 책들의 단어들이 망망대해에 있는 ‘섬’처럼 느껴지고, 책 들 속의 현란한 언어로부터 벗어나고픈 심정들을 때로는 오브제와 드로잉과 설치작업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텍스트’다. 이런 차원에서 세상을 하나의 도서관처럼 보고 느끼고 사유하는 공간임을 드러낸 백종옥의 작업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이번 개인전 도록에 밝히고 있듯 백종옥의 ‘나의 도서관’에 이르는 길은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책을 읽으면서 또는 책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내가 떠올린 심상들이나 책과 관련된 공간 속에서 경험한 풍경’, 그리고 두 번째는 책을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로, 세 번째는 책을 통한 내면적, ‘영적 성숙’의 관한 이미지다.


3.
이번에 백종옥의 개인전에 출품된 작업은 드로잉과 사진, 설치 작업이다.
그의 이번 개인전 작업들은 일견 여성적(?)인 작업으로 보일 정도로 어떠한 현란한 어법도 요란한 허세도 없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 자신의 색깔을 담담하고 정제된 방식으로 표현했으며 그만큼 그의 작업은 정직하게 자신의 심정과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선 그의 작업에는 유학시절의 고독감과 우울감이 작업의 배면에 짙게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점이 자칫 선이 가녀린 ‘서정적 감상성’으로 읽혀질 요소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백종옥이 지향하는 소통 방식에 대해서는 향후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도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물론 설치작업이나 오브제 미술을 전시하기에는 전시장의 조건이 열악한 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약정된 기호체계를 넘어 예술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백종옥의 지향성에 공감하며, 이야말로 한 예술가의 오랜 탐색의 여정이 도달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도록의 표지사진이자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우주수(宇宙樹)’ 자작나무에 대한 관심과 ‘자기화’는 그 단적인 예다.  

4.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미술판은 약간 재미있는(?) 발상에다 뭔가 새로운 방법을 쓴 듯하면 마치 첨단을 달리는 현대 작가인양, 일종의 쇼맨십으로 작업을 하고, 또 이런 것이 통용되는 듯한 분위기로 치달았다. 물론 이는 당시 미술을 입지 구축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미술비평가들이 기획자로 나서면서 이런 부류들만 선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러한 경향을 추종하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대학생들까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80년대에 많은 미대학생들이 자신의 주제도, 또는 민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민중미술판’에 휩쓸렸듯.

지난 100여년의 서구 현대미술사가 방증 하듯, 미술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와 ‘부정’이라는  ‘통과의례’의 과정이 없는 작가는 그것만으로도 ‘사기꾼’임을 벗어날 길이 없다. 뒤샹 이래 모든 객관적 미학은 부정되었으며, 이후 미술은 원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술이 자신의 체험에서 출발해야 것은 분명하고, 또 거기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게 되는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연 미술 본연의 가치는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다.  
오늘 이 땅의 미술문화의 황폐함과 상관없이 미술이 추구하고 도달해야말 차원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백종옥의 지난 십여 년의 공부(德畜之) 과정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특히 성급하게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려는 조급증에 빠져 있는 젊은 작가들일수록 이러한 긴 호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백종옥의 이번 개인전을 통해 알 수 있듯, 오랫동안 공부해도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가로서는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향후 미술가로서 백종옥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미술가라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의 문제이도 하다.

                          2005년   12월  21일
                                                도 병 훈 (작가)

PS: 저의 이 글을 읽고 무조건 예술가는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거나 '유학 무용론'으로 읽으셨다면 아직 제가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오독하게 한 것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Selected “나의 도서관”, 백종옥의 개인전을 보고
소나무
3762 2007-06-05
30 추사예술의 현대적 가치에 대한 소고
소나무
5767 2007-06-05
29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비평의 참된 가치
소나무
5089 2007-06-05
28 한국 현대미술 메타비평-‘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를 읽고
소나무
4362 2007-06-05
27 도산서원과 겸재 정선의 그림
소나무
6824 2007-06-05
26 서석지전경1
소나무
7272 2007-06-05
25 서석지 전경
소나무
6827 2007-06-05
24 쌍계 입암과 서석지를 다녀와서
소나무
4737 2007-06-05
23 월송정과 망양정을 다녀와서
소나무
4594 2007-06-05
22 친숙함과 낯섦 사이의 변주, 이태한의 개인전을 보고
소나무
3584 2007-06-05
21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소나무
4379 2007-06-05
20 김병기 선생과 오상길 선생의 작가대담을 읽고
소나무
4567 2007-06-05
Tag List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