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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 메타비평-‘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를 읽고




1.
최근『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란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오상길. 그는 지난 수년 간 현대미술 다시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약 1만 2천여 종의 방대한 자료들과 53분의 작가 및 평론가 대담을 수집하고 채록했다. 주1)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책이 이번에 출간된 ‘비평가여 내 칼을 받아라’란 책 이다. 그 어떤 평판에도 굴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 온 평소 풍모답게 비평의 오류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의는 단지 특정 세력을 겨냥한 질타의 차원에 있지 않다. 책 서두의 ‘이 책의 겉표지를 열어보게 될 독자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표명하듯, 저자는 “도대체 미술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7쪽)라는 현대미술 본연의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화두를 전제로 현대미술을 “미술을 회의하는 미술”(8쪽)로 정의하면서 논지를 펼친다.

사실 이 책의 주된 비평 대상은 한국 미술계의 메이저리티-대학교수이자 미술평론가이고 미술사가이며 무슨 학회에 소속된 지위로서 기득권을 갖고 대형 전시회를 기획해왔다는 뜻에서-들인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의 글이다. 이를테면 엄연히 다른 영역인 ‘미술’과 ‘미술제도’의 차이 주2) 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인 및 대중들의 순진함과, 혼란스러운 문화적 환경과 틈새를 기회로 삼아 거짓된 진술을 역사의 진실인양 버젓이 기술해 온, 요컨대 ‘전문역량’에 있어서나 ‘윤리의식’에서나 함량미달인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이 그간 어떤 비평적 오류를 저질러 왔는지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비평을 대상으로 다시 비평하는 것이 미술을 잘 모르는 이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이제 미술의 중심은 그 중심이 예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 비평을 공존시키는 담론의 문화 속에 있고, 예술을 바라보고 공유하는 우리의 정신 속에 자리를 잡는”(12쪽)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는 물론 모름지기 모든 글 쓰는 이들은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적 정직성’이 결여된 글은 진정한 가치의 탐색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친다. 다시 말해 잘못된 비평은 우선 당대의 활동과 작품이 지닌 역사적 사실을 은폐할 뿐 만 아니라 그 진정한 가치를 전도시켜 버리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사이비 비평은 ‘과연 무엇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쟁점, 즉 화두일 수 있는가’라는 담론의 형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저자의 문제 제기에 대해 당사자들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면죄부가 발부될 수는 없다. 현대미술의 본질적 특성상, 또한 향후 바람직한 미술문화의 새 터전을 닦기 위해서도 이 책의 저자가 제기하고 문제는 본인들이 회피한다고 유야무야될 사안이 아니다.

인간 사회는 통념화된 기호들의 체계와 분류의 범주들, 제도가 부여한 자리와 지위(位)로 구성된다. 그래서 이런 틀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은 비판 정신의 진정한 함의를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진의를 독해할 지적 능력이 결여된 자들의 ‘매도’는 생산적인 논쟁을 외면하는 비열한 침묵보다 더 한심한 소인배들의 못난 짓거리가 아닐 수 없다.        
  

2.
제1장은 ‘한국의 현대미술, 무엇이 문제인가?’를 화두로 해서 궁극적으로 한국현대미술의 ‘현대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이 장은 1930년대 이후 “미술사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법을 벗어나, 임의로 조정된 ‘선택’과 ‘집중’의 정치학을 통해 엉터리로 구성”(34쪽)해 온 데 대한 신랄한 비판을 전제로 한국현대미술의 ‘현대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글이다.  

제1절에서 저자는 대개의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이 우리 미술 문맥을 서구의 역사 구분 개념 틀인 ‘근대’와 ‘현대’로 설정하여 미술 자체의 쟁점과 이슈 그리고 작품에 관한 문제는 도외시 한 채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을 근거로 그 기점을 논의한 데 대해 의문과 물음을 던진 후, 제2절에서 구체적으로 이러한 물음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많은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추상’양식의 출현을 한국미술의 현대성의 기점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그 누구도, 어디에서도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서성록과 윤진섭이 1930년대의 미술을 ‘현대의 이전 단계’ 혹은 ‘근대’로 분류하면서, 그 이유를 일본 미술계와의 긴밀한 연관성과 활동의 소극성으로(집단화가 아닌 소수의 개별적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당시의 미술을 선도하는 주류가 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데 대해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이를테면 일본 미술계와 연관되면 ‘근대’이고 서구와 연관되면 ‘현대’라는 식의 논리는 수용의 방식에서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리고 현대의 기점으로 잡은 집단화 운동, 즉 ‘패거리 지음’은 오히려 비윤리적 반문화적 풍조의 뿌리라는 점에서 미술의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44-45쪽) 그리고 “미술 자체의 쟁점과 이슈 그리고 작품 단위의 분석이나 연구의 전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한심한 점으로 본다.(45쪽)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그간 대다수의 미술 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이 한국현대미술의 기점을 1956년에 있었던 《4인전》의 반국전 선언과 1957년에 줄지어 창립을 보았던 다섯 미술단체들의 출현, 그리고 비정형 회화의 집단적 운동 등으로부터 기술하여 온 것에 대해 여러 객관적 정황이나 당시에 활동했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윤진섭이 한국 현대미술의 기점을 기존의 1957년설에 대응하는 1956년설로 제시한 것에 대해(58쪽) 그 타당성과 신빙성이 없음을 김병기와 이구열, 정점식 등 당대에 활동한 작가들과 비평가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밝히고 있다.(61-64쪽)  
그러나 이 장에서 저자는 무엇보다 이러한 우물 안 개구리식 논란으로 핵심적인 쟁점들, 즉 “무엇을 한국미술로서의 ‘현대성’으로 볼 것인가”라는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궁극적인 질문이 제기되지 못했음을 심각한 문제로 본다.    

다음으로 “한국의 비정형 회화 미술과 운동에 대한 비평적 오류의 범례”란 글은 특히 오광수를 비롯한 일부평론가들이 한국의 비정형 회화를 ‘뜨거운 추상’으로 60년대 후반의 추상을 ‘차가운 추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요컨대 이 양자는 같은 작가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전조 현상’, 또는 내적 필연성 없이 변모하기도 해서 미학적 차원에서 대응적 관계가 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논리임을 밝힌다. 즉 단지 양식만 수용되었는데 어떻게 ‘뜨거울’ 수 있고 ‘차가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69쪽)  

제3절은 ‘삭제 혹은 배제되어 온 진술들’로, 정규와 김병기의 글을 통해 1950년대 당시의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김병기의 당시 글과 최근 대담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또 알려진 바와는 전혀 다른 1950년대 미술의 실상을 소상히 언급했다.

제4절은 ‘한국 비정형 회화에 관한 의문들’로 저자는 이 부분에서 1950년 후반과 60년데 초반의 비정형 회화에 대해 일곱 항목으로 나누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왜 비정형 회화가 국전의 아카데미즘에 대응하는 대안 미학인지, 둘째는 현대미술 자생론에 대해, 셋째는 당시 비정형 회화의 출현이 자생적이었다면 어떻게 네 작가가 동시에 서로 유사한 추상양식을 보이게 되었는지, 넷째 당시 4인 전 작가 중 한 작가인 박서보만이 자생론을 주장하여 나머지 작가들과 배치되는 점과 또한 왜 하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사한지, 다섯째, 박서보의 주장대로라면 다른 작가들은 박서보를 추종한 것인지, 여섯째, 박서보가 자신의 독자적 양식이 다른 작가들의 집단적 따라하기로 인해 스스로 소멸하게 된 상황에 대해 왜 단 한번도 반박 저항 해명을 하지 않았는지, 일곱째, 비정형 회화 양식이 갑자기 집단적으로 등장하고 집단화에 대한 양식의 정형화에 빠져 포화 상태에 이르러 전조현상이나 포스트 현상이 없이 느닷없이 기하학적 형태의 추상으로 변모하게 된 이유. 특히 박서보의 경우 왜 수시로 미학적 자기부정을 반복하며 변모하는지 등이다.      

제5절은‘ 한국 현대미술관의 전시를 통해서 본 문제들’로 1979년《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미술협회가 공동기획한 한국현대미술 20년의 동향》전과 2000년의《한국현대미술의 시원》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에 맞지 않은 전시를 비판한 글이다.

제6절은 ‘미술사 진술 오류의 범례들’로, 먼저 서울대 교수인 김영나의 『20세기 한국현대미술』의 부실성과 오류를 기술한다. 이 글에서 저자는 김영나의 모더니즘에 대한 피상적 이해, 무책임하고 몰가치 한 논리로 한국의 미술을 서구미술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는 오류, 미술운동과 미술 그 자체를 동일선상에서 파악하는 오류, 무엇보다 이러한 오류가 묵인되는 비평계의 불감증과 비윤리성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어 저자는 김홍희의 미술사관과 행적에 대해 비판한다. 김홍희는 2003년에 출간한 자신의 『한국화단과 현대미술』에 실린 「한국현대미술의 전환」이란 글에서 20세기 후반의 한국미술을 크게 3차례(1950년대 말의 미술운동을 ‘앵포르멜 운동’이라 하고 1980년대 미술을 ‘민중미술운동’, 1988년 이후의 미술을 포스트 모더니즘미술의 전파와 ‘국제화 운동’이라고 말함)의 운동으로 규정했다.  즉 김홍희는 한국현대미술사를 ‘운동’ 전환점을 축으로 한 변증법적 발전의 역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논지로 기술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선 문화나 예술이 원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님을 전제로 김홍희의 논리적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80년대 미술을 민중미술로 그것도 “한국초유의 자생적 미술”이라고 말하는 이유, 다시 말해서 김홍희가 말하는 자생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 한국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 상황이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상반된 이즘들을 화해로 공존시키는 통합적 국면’을 논거로 삼아 “어떤 맥락에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 상반된 이즘이라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 문화의 ‘원전성(originality)’이라는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면서  ‘트렌드 스타일’을 유행시킨 장본인의 한사람으로서 ‘국제병 환자’ 같은 그녀의 행보를 비판한다.

제7절은  ‘1970년대 단색조 미술의 비판적 검증’의 장으로 김복영, 이일의 글을 중심으로  
다룬다.
먼저 홍익대 교수이자 미술평론가인 김복영이 1985년에 출간한 『한국현대미술연구』에 대한 고찰을 통해, 70년대 단색조 미술의 담론들에 관한 많은 의문 중 왜 ‘평면성’이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갑자기 중요한 이슈로 받아들여졌는지, 과연 회화의 평면성이라는 것이 그림에서 단순히 재현적 이미지를 소거하거나 혹은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 방식으로 획득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한다.(144-145쪽 참조)  
또한 이 글에서 저자는 김복영이 이우환의 새로운 미술읽기의 독해에 실패하여 당시의 미술에 적절치 못한 논리를 제공했음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어 본격적으로 저자는 김복영이 ‘70년대의 평면은 사물이라는 객체에의 복귀’ 즉 하나의 독자적인 사물‘로의 환원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그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평면’과 ‘평면성’이 존재론적 차원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개념임을 인식론적으로 규명한다. 즉 ‘평면’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물의 편평한 표면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용인할 수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평면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관념이며, 그러므로 평면은 ‘하나의 독자적인 사물’로 환원된다는 김복영의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반면 ‘평면성’은 ‘평면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조건들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평면과 다른 차원의 개념임을 저자는 진술한다. 따라서 평면성이란 어떤 것을 편평하다고 할 것인가의 전제에 따라 다분히 유동적인 상태로 인식될 수 있는 개념으로서 (156-157쪽) 사실 에두아르 마네 이래 서구 미술맥락에서 성립하는 새로운 회화의 현대적인 존재방식이라는 것이다. 주3)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김복영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말하자면 평면을 ‘사물 그 자체’에로의 ‘환원’이라고 규정함은 미니멀리즘 이후의 인식, 즉 캔버스가 오브제가 되어버리는 시점의 인식을 말하는 것으로, 따라서 70년대 미술은 더 이상 회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물로의 환원이라는 맥락에서 평면성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서구미술의 흐름을 신중하게 읽고 해석”(168쪽)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저변 확대에 큰 역할을 했던 이일에 대해서도 70년대 미술에 관한 한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를테면  “70년대 단색조 미술에 나타나는 일련의 징후들을 ‘현대미술 그 자체와 대결’ 하고 있는 미술”(169쪽) 로 본 것은 “우리자신의 역사적 존재인식을 배제” 한 채, 전통 동양사상인 ‘주객합일’ 사상과 메를로 퐁티가 말하는 상호주관성 현상학과 혼동한 담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70년대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이 노 ․ 장의 ‘무위자연’과 부처의 ‘무’를 논한 것에 대해 그들의 진술과 그들의 작품과 삶의 방식이 전혀 달랐다는 점에서 그 허구성을 통박한다.            

제8절은 ‘70년대 미술의 오해들’을 다루고 이다.
여기서 저자는 70년대 미술의 평면성의 논리가“그림으로부터 모든 이미지를 제거-탈이미지화해야 한다거나, 나아가 회화에 있어 물성과 질료적 차원의 문제로 발전한다는 논리”(177쪽)는 그린버그의 ‘재현적 이미지의 제거’에 대한 곡해에서 비롯되었음을 비판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우리가 서구 미술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쟁점도 아니고 이슈도 아니며, 방법론도 스타일도, 나아가 문제의식 그자체도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신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서구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비판적 시각과 그런 비판적 성찰을 통해 현재를 열어가려는 정직한 인식론적 태도, 그리고 그런 노력을 통해 성취해가는 새로움의 과정”(179쪽)으로 본다.

이어 저자는 “70년대 미술의 대표적 특징인 ‘단색조/모노톤’은 미묘한 흰색을 구사한 소수 작가들의 독특한 감수성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를 일본 미술계의 지한파 인사들의 미적 지향과 공유되어 마침내 집단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본다.
또한 70년대 미술의 ‘모노톤’은 서구미술 문맥에 등장하는 ‘모노크롬’과 완전히 다른 코드임에도 ‘오독’의 결과로 둘 다 그릇되게 이해했음을 비판한다. 나아가 이를 비평가들의 윤리성을 다시 생각하는 문제로 본다. 이를테면 ‘많은 예술가들과 평론가들이 단편적인 정보를 근거로 현대미술을 오독하고 더듬이 감각으로 스타일을 차용하면서 손쉽게 서구미술의 쟁점과 이슈를 공유한 역사’이며 ‘거짓된 진정성’이라는 것이다.(181쪽)

제9절은 ‘백색의 문화정치학’을 다루었다. 저자는 이 글에서 먼저 서구미술 문맥에 대한 오독의 결과 속에서도 몇몇 70년대 작가들이 주목할 만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낸 점을 주목한다. 다만 이것이 일부평론가들과 작가들에 의해 어설프게 조작된 논리로 왜곡되었음을 밝히고 있다.(182쪽) 이어 ‘백색’ 의 집단화 획일화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70년대 일부 작가들의 증언을 통해 밝히고 있다.


3.
제2장은 ‘한국미술계와 미술운동의 정치학’으로 미술계의 정치적 집단적 권력화와 미술제도의 정치학, 그리고 미술운동으로서의 한국의 현대미술의 양상을 1970년대까지 간략히 다루었으며, 특히 70년대 미술운동의 전근대적이고 정치지향적인 불순성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어 ‘미술계의 권력과 미술제도의 정치적 역학’이란 글에서는 미술을 둘러싼 제도와 기관들이 전문성과 윤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조건들이 오히려 미술계의 불순한 정치성을 정당화시키는 요인이 됨을 지적 한다.(222-223쪽)  


4.
제3장에서는 ‘한국 미술비평문화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 다루었다.  
제1절에서는 ‘비평문화가 의미하는 것’이란 표제로 현대미술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늘의 미술이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이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이자, 미술작품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분석해야 할 것인지의 방법과 원리 자체를 연구하고, 나아가 그런 시스템을 통해 작품 혹은 미술현상이 오늘날의 미술맥락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일”(229쪽)임을 전제로 비평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제2절에서는 한국의 비평가들이 미술평론가와 미술사가들의 “권력에 아부하는 ‘선택’과 ‘집중’이 오히려 진정한 예술적 성취들을 ‘배제’하고 ‘소외’시켜 왔으며, 그에 따라 미술 그 자체의 가치들이 실종되어 버렸다”(243쪽)는 사실을 밝히고, 이러한 기회주의적 비윤리성을 질타하고 있다.

<후기>에서 저자는 현대미술이 ‘트렌드 스타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가능해 보이는 지점’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이는 “곧 ‘미술이 아닌 것은 무엇’ 인지를 묻고 있고, 나아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본질적으로 회의하게 함으로써 ‘미술이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극적으로 되돌아보기를 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또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창의적 독해를 강조하면서 결국 “한국미술의 서구미술과의 발생 및 전개과정의 ‘차이’가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249쪽)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미술을 향하여’란 글에서는 “한국의 현대미술은 한국의 역사와 미술의 문화적 가치를 향해, 현대적이라고 할 만한 정신의 가치를 생산하고 구축하는 일로부터 찾아질 필요가 있다”(255쪽)는 것을 역설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함을 다짐하고 있다.    

5.
이 책은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메타 비평적 글이다. 저자의 이번 책은 저간의 미술계의 속내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자못 충격적일 내용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얼핏 표면적으로는 비평계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이번 책은 사실 난마처럼 얽힌 한국미술계의 제 문제를 풀기 위한 고육지책의 글이다.  
물론 이 책은 기존의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진술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의 심각성을 밝히고, 한국미술의 제 문제들 중 상당부분이 그들의 의심스러운 전문성 및 윤리성의 문제들과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드러내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252쪽)
그러나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함량미달의 비평가들이나 이들의 담론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거론한 논의의 쟁점은 우리 미술계의 역량과 정체성을 뿌리부터 검증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현대미술 본연의 가치를 지향하고자 함에 있다.
즉 이 책의 진면목은 어디까지나 현대미술의 쟁점이 무엇이며, 또 현대미학과 담론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판적 성찰을 통해 현재를 열어가려는 저자의 정직하고도 치열한 인식론적 태도, 그리고 그런 노력을 통해 성취해가려는 지향성은 오늘 이 시점에서 한국미술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척도가 아닐 수 없다.  아무쪼록 이 책의 출간이 우리 미술계가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주1)이를 토대로 그간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청음사, 2000),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Ⅰ,Ⅱ(VOL.1,2)』,(ICAS, 2001),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Ⅲ(VOL.1,2)』,(ICAS, 2003)『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Ⅳ(VOL.3)』, (ICAS 2004)를 출간했다.

주2)“미술은 오직 미술 그 자체의 가치천착만을 목표로 할 뿐이고, 미술제도는 미술을 광범위하고 확산시키고 문화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11쪽)  

주3)나아가 저자는 그린버그가 말한 비평적 논리(모든 예술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권한 영역은 그 매체의 본성과 일치해야 한다는)를 비판한다. 이를테면 예술의 궁극적인 의문(예술작품은 만든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림이란 무엇인가 등)을 회화의 형식조건의 문제로 단순화해버렸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린버그는 전통회화예술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가치들을 ‘환영’이라는 하나의 틀로 단순화하여, 그것을 무자비하게 소거해버림으로써 ‘매체의 모든 본성과 일치하면서 동시에 예술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권한 영역을 확보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162쪽)  

  
                                  2005년 11월 15일
    
                                                        도 병 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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