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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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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입암과 서석지에 다녀와서



1.
지난 8월말, 경북 영양에 있는 쌍계 입암(雙溪 立岩)과 서석지(瑞石池 ; 상서로운 돌의 연못)에 다녀왔다. 포항에서 동해를 따라 이어진 7번 국도를 달리다가 영덕에서 34번 국도로 들어가서 911번 국도를 따라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과 석보를 지나 31번 국도로 진입하여 입암 2교를 건너면 다시 911번 지방도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다리 건너서 이어지는 길을 조금 가면 쌍계, 즉 일월산 동쪽에서 영양읍의 동쪽을 돌아 남류 해온 대천(大川)과 일월산 서쪽에서 흘러나온 청기천(靑杞川)이 만나는 지점에 자주색 암벽이 석문(石門)의 형상으로 보인다. 이 양 쪽 바위 중 정자가 바라보이는 쪽이 자양산(紫陽山) 자락이고 도로 쪽에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림 <상계입암도(지본수묵, 27.4×23.2cm, 간송미술관 소장)>에 나오는 입암, 즉 선돌이다.  


2.
겸재 정선이 영남의 오지인 쌍계 입암을 다녀간 것은 그가 포항 인근의 청하현감 재임시절인 1733-35년 사이로, 안동 예안(禮安)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오가는 그 길목에 있는 이곳을 다녀와서 <쌍계입암도>는 그 직후에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쌍계입암도>는 겸재 그림 중에서도 대담한 구도와 호방장쾌한 골필법(骨筆法)을 유감없이 구사한 걸작이다. 특히 화면 중앙에 힘차게 발기한 남성의 심벌을 연상케 하는 입암의 묘사는 단연 압권이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겸재의 필력과 진경산수화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겸재는 다른 자신의 산수화와 마찬가지로 체험적 시각을 종합한 복합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이곳 입암과 좌우 석벽을 너무도 역동적으로 그린 것이다.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겸재가 진경산수화를 그린 곳을 한 곳 한 곳 직접 답사하기 시작한 이후, 현장에 갈 때마다 겸재 화풍의 독자성에 감탄하게 된다. “예술은 보이게 하는 것이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는 클레의 말처럼........    
                                                    

그러나 겸재가 그림을 그린 현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자행되거나 이미 자행되어버린 자연의 파괴이다. 이곳만 하더라도 입암은 파괴된 것은 아니지만 국도의 개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들어서서, 입암 주변이 너무 많이 훼손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지방 자치시대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요컨대 개발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너무 많이 개발하여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단절된 문화의식 때문이다.
이러한 입암에서의 안타까움은 ‘서석지’를 보는 순간 잔잔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그곳은 아직 개발이란 명목의 야만적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입암을 지나 나 오리 쯤 들어가면 왼쪽에 전각이 보이고 서석지 입구가 보이는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바로 서석지를 둘러싼 돌담 곁으로 다가갈 수 있다)  


3.
담이 엇갈려 있는 열린 공간으로 들어가면(따로 대문이 없다) 마주보이는 곳이 경정(敬亭)이고, 몸을 90도 우측으로 돌리면 서석지, 즉 연못이 있다. 서석지는 마당이 없다. 사람 걸어 다닐 정도의 폭을 제외하고 모두 연못이다. 연못 안에는 제각각인 모양의 돌들이 놓여져 있었고 연꽃 대궁이 가득했다. 이 서석지 너머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 주일재(主一齋)이다. 이 주일재는 방 두개와 마루가 있다. 주일재 앞에는 ‘사우단’으로 대나무 소나무 매화 국화를 심었다.
축대를 쌓은 돌이나 주춧돌은 주변에 있던 돌들로 조성하였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고 하나하나가 다들 제자리에 적절하게 놓여 있어 선조들의 정성과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경정으로 올라가는 엇비슷이 놓여있는 작은 방형의 납작한 댓돌 하나도 자연석이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보았더니 마루와 방은 매일 사람의 손길이 간 듯 깨끗했다.  


4.
예로부터 서석지를 중심으로 이곳을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구분하며, 내원인 서석지는 정관 ․ 사고 ․ 독서 등 사생활을 위해 인공 공간이라면, 외원은 자양산 자락인 암벽과 입암이 있는 곳, 즉 석문까지다.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 5년(1613년) 석문(石問) 정영방 선생(1577~1650)이 조성한 조선시대 민가 연못의 대표적인 정원 유적으로서, 우리나라 조경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남 완도의『부용원』, 전남 담양에 있는『소쇄원』과 더불어 3대 한국 정원으로 꼽힌다. 이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으면서도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 바로 서석지다.
정영방 선생은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 이황의 제자인 유성룡의 문하로 퇴계학의 학통을 계승함)의 선생의 제자로 광해군의 실정과 당파 싸움에 회의를 느끼고 평생을 이곳에 은거하면서 조성한 곳이 서석지다.

가로 13.4m, 세로 11.2m, 깊이 1.7m인 서석지는 물이 들어오는 곳은 읍청거(揖淸渠), 물이 나가는 곳은 토예거(吐穢渠)라 하며, 연꽃과 60여개의 돌이 존재한다. 이 돌들은 기암도 괴석도 아닌 평범한 암반이나 작은 돌이지만 각각 이름이 있어 선유석(仙遊石), 통진교(通眞橋), 희접석(戱蝶石), 어상석(魚狀石), 옥성대(玉成臺), 조천촉(調天燭), 낙성석(落星石) 등의 명칭을 갖고 있다. 정영방은 이 서석지 안에 있는 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돌은 안으로 문기가 있고 밖으로는 희다.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있으니
정숙하고 개끗한 여인의 정조와 깨끗함으로 자신을 지킴과 같다.
또는 세상을 피해 숨어사는 군자와 같고 덕과 의를 쌓으며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아
중심에 존재하여 저절로 귀함과 실속이 있다.
가히 상서롭다 일컫지 않겠는가.
혹 그것이 옥이 아님을 의심하는 자가 있을 것이나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나무 열매가 옥이라 한다면 나는 그것을 가히 얻어 모두 가지고 있을 터인즉
그것을 가지고 있음으로 화가 될 것이다.
옥 같은 것은 옥이 아닌 것과 같아 옥의 아름다운 이름만 훔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대로 순수하고 어리석음을 지켜 세상을 속이고 그 이름을 훔친다 하더라도
돌은 세상을 해함이 없다.
못 속에 편안히 둘 수 있으니 상서롭지 않은가
하늘은 흰 옥 달을 만들고 땅은 청동 거울을 바친다.
물이 멈추어 담담하고 사방으로 물결이 없으니 적막한 감을 능히 갖추었구나.


5.
르네상스 정원, 바로크정원, 독일의 풍경식 정원(*독일의 풍경식 정원으로는 무스카우 정원이 유명하다. 이는 조원가 퓌클러(Herman Furst von Pucker-Muskau)가 조성한 것이다. 그는 무스카우의 영주로서 백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 무스카우를 "고상하고 살기 좋은 환경으로 가꾸기 위해" 대대적인 정원 계획을 세우고 조성한다. 그는 40년간 이 정원 조성에 혼신의 노력을 하며 이 때문에 파산하였다. 그가 손대기 이전의 무스카우는 "쓸모없는 침엽수림과 습지와 모래땅"으로 주거 환경으로나 농경 환경으로서 "촌스럽고 척박함"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정원을 조성해 가기 전 몇 해 동안 배수로를 만들어 땅을 건조시키고 흙을 개량하면서 황량한 침엽수림을 제거하고 활엽수림의 기반을 조성한다. 땅을 개량하고 배수를 위한 수로로서 운하와 호수를 만들며 그림 같은 초원과 숲을 일구고 궁과 점경물들을 건설함으로써 오늘날 무스카우는 기존의 자연에서 탈바꿈하여 전원풍의 자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서 볼 수 있듯, 서구에서는 나무 한 그루조차도 일일이 의도된 곳에 식재되고 모든 녹지 공간이 하나에서 열까지 자연을 통제하고 복속시킨다. 게다가 나무도 이등변 삼각형이나 사각 입방체 모양, 그것도 좌우 대칭으로 정교하게 배치한다.
이를테면 서구에서는 중심 정원이라 할 플레져 가든(pleasure garden)과 그 주변의 조원된 풍경은, 세팅된 바탕에 주요 수목이 식재되고 점경이 구성되어간다. 자연의 ‘결함’을 인공적인 힘으로 바꾸는 자연지배의 논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도 자연미보다 조형미를 우위에 두는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대극적인 서구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이 자연, 즉 스스로 그러함 그 자체로 그 아름다움이 논의된 적이 없다. 따라서 인간이 규정하는 기하학적 질서에 어긋나면 그저 자연의 본질적 결함으로 간주되었다.

동양에서는 자연과 인간은 대극적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양 3국도 엄밀히 말하면 자연을 대하는 시각이 달랐다. 그러나 서구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신화학자로 유명한 조셉 켐벨이 어느 대담에서 일본의 정원에 대해 감탄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가 정원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보면 일본의 정원도 얼마나 작위적이고 인위적인가? 이는 어느 일본인이 창덕궁 후원을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 "어디가 정원입니까?"라고 했다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런 문맥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인 ‘료안지의 석정(石庭)’과 영양의 서석지는 몹시 대조적이며, 이는 우리 전통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특질과도 다르지 않다. (일본의 도자기는 자연스러움조차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예컨대 담양의 소쇄원도 안강 옥산서원 근처의 계정(溪亭)도 모두 자연 풍광을 끌어들여 세상의 어지러움을 잊고자 한 옛 선인들의 멋이 낳은 여유의 산물이다. 즉 주어진 환경 조건에 큰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어두고 적절한 곳에 자리 잡아 정자를 짓고 자그마한 못을 판 것이다. 이를테면 소쇄원, 안압지와 세연지,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宙合樓), 다산초당은 물론 이름 없는 전국의 옛 정자들도 주어진 경관은 그대로 두어두고 플레져 가든만을 최소한의 손질로 다루었다. 이는 사실 너무도 유명한 곳인 석굴암이나 해인사 등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석굴암은 동해까지, 해인사는 가야산 전체의 품속에서 연꽃 속 화심처럼 존재한다)    


6.
노마드의 시대임에도 고유한 전통문화 유산이나 지역 특유의 로컬리티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 그것에 대한 해석은 무한한 현재적 지평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별자의 고유성을 교환가치로 말살하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정신없이 살고 있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이 동일화의 강제가 지배하는 끔찍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바쁜 만큼 세월은 덧없이 빨리 지나갈 뿐이다. 즉 우리가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그 경험이 바로 우리의 삶의 내용이다. 삶의 질은 경험의 풍요로움에 달려 있다. 살아있음의 경험과 감동은 세상이나 사물과의 내밀한 만남 속에서 형성되므로.        
            
                                2005년 10월 4일  


PS : 지금까지는 어디에 다녀오면 즉시 답사기를 써 왔으나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현장을 다녀온 사진들은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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