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3583
2007.06.05 (17: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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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함과 낯섦 사이의 변주, 이태한의 개인전을 보고


1.
“사실상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1950년대 출간된 이래 현재까지도 미술 감상 입문서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미술사 책인 곰브리치의『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미술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미술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몇 가지 제안을 하는데, 우선 미술을 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 하지 않은 태도’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미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신비한 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곰브리치가 무엇보다 미술 이해의 장애 요인으로 경계한 것은 지적인 ‘허영’이다. 즉 앞서 언급한 편견에서 자신은 벗어나 있는 척하거나 어정쩡한 미술지식을 과시하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그래서 미술 감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참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곰브리치는 말한다.

2.
그저께(6월 29일), 인사동의 관훈 갤러리에서 이태한의 조촐한(?) 개인전 오프닝이 있었다. (요즈음 무슨 특별전이다 비엔날레전이다 해서 각종 미디어의 힘으로 포장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대형전시회가 많다. 전시회의 성공(?) 여부도 미디어를 통한 선전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디어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조촐한 전시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가치와 의미는 ‘관람객 숫자’와는 상관이 없다.)  

이번 개인전에서 이태한은 세 점의 작품을 제시했다. 그것은 영상매체를 이용한 <붉은 깃발 2004>, <숨, 2003>, 그리고 설치 작업인 <무제-모터장치가 달린 신발 >이다.
먼저, <붉은 깃발>은 얼핏 프로파간다적 선동성, 혹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연상케 하지만, 움츠리고 있는 사람 위로 다만 붉은 깃발만이 창공에서 바람에 의해 펄럭일 뿐이다. 사실 전시장 현장에서 체험하는 <붉은 깃발>은 일반적 통념과 거리가 멀며, 통념에서 ‘탈영토화’한 이미지다.
(지각 있는 작가라면 그저 일반적 통념에 호소하기 위해 작품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작품을 볼 때 이런 식으로 한 단계 더 깊은 호기심을 갖고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본다면 작품의 묘미를 단번에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지향하는 바는 또 하나의 서사적 의도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친숙한 통념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이미지로 한정짓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붉은 깃발의 이미지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것이며, 바로 친숙함과 낯섦 사이의 끊임없는 떨림 속에 이 작업의 본질적 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작품인 <숨>은 인간 존재성을 드러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모든 생명체는 호흡하는 존재로, 호흡함으로서 살 수 있다. 호흡은 모든 생명체의 알파와 오메가다. 그런데 <숨>이미지는 그저 당연한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숨쉬는 인간의 모습만을 미묘(?)한 변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무제- 모터장치가 달린 신발>은 앞의 영상매체와 같은 작업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미지가 아닌 실제로 눈앞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물질이라는 점에서 그 느낌이 다르다. 다시 말해서 벽면 바닥과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남성용 구두 한 짝과 끈적끈적한 액체 물질(공업용 그리스)의 반복된 접촉은 그것이 단순원리의 기계에 의한 반복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통념도 어긋나게 하고자 하는 변주임을 느끼게 한다.      

3.
현대미술가들은 ‘패러다임’을 해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알다시피 패러다임이란 사물을 보는 방식, 관점, 인식의 틀, 신념을 말한다.(*A paradigm is the way you see something, your point of view, frame of reference, or belief.)  
이런 의미에서 패러다임이란 말은 흔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듯, 매우 거창한 말(거대담론)이 아니라 사실 지역적, 풍토적, 문명적 배경에 따라 개개인마다 갖고 있는 일종의 편견, 즉 선입견이다. 예컨대 프톨레미(Ptolemy,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수학자) 이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듯,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패러다임의 변천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근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패러다임의 해체가 가속화되는 것도 단지 후기 모던적 징후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의 패러다임의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는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변환에 기인한다. 그러나 과학은 이성적(합리적, 계량적) 언어라는 틀 속에서 어떤 가설들을 입증해가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언어적 기호라는 틀로 그 인식의 범위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지각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예술영역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간결하고도 직관적인 방식으로 교란할 수 있다. 사실 마르셀 뒤샹 이래의 현대의 미술의 주된 특성이란 당대의 패러다임을  시지각적 방식으로 비틀어서 해체한 데 있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미술가의 시지각적 감수성과 첨예한 현실인식을 전제로 하며, 이런 의미에서 현대미술은 무엇보다 작가마다의 새로운 의도(기존의 인식의 틀을 해체하려는)와 그로 인한 표현이 그 쟁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인식의 틀, 즉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없이 서구의 현대미술이 수용되었다. 현대미술에서의 문제 제기의 방식을 현대미술의 양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현대 미술의 이 기묘한 현상은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 미술계에는 ‘스타일리스트’가 만들어내는 미술만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이는 남대문 시장의 가짜 명품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럴듯한 가짜일수록 다만 진짜처럼 보일 뿐, 진짜가 될 수는 없다.  
사실 가짜 상품은 대개 고객들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단지 명품을 살 돈이 없어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술판은 가짜를 마치 진짜인 양 속인다. 이것이 우리나라 유수의 상업화랑들의 한결같은 작태다. 결국 순진하고 무지한 사람만 속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미술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도, 또한 미술문화의 ‘사이비성’과 ‘저열성’도 무엇부터 잘못된 것인지 자명하다.

4.
이태한의 작업에서도 잘 드러나듯, 현대미술은 ‘탈영토화, 혹은 탈코드화’로서의 이디엄이 문제다. 즉 현대미술이란 당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 혹은 지배적인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담론을 가로지르고자 하는 전략적 방법 속에 그 특성이 드러난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담론(에피스테메), 혹은 인식의 틀(패러다임)을 부정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 이로부터 현대미술은 비로소 그 첫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가는 곳마다 길이 되는 그 친숙하고도 낯선 여정의 길로 말이다.    

                                           2005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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