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4378
2007.06.05 (17: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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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1.
우리 역사상 최고의 고전은 어떤 책들일까? 나는 삼국시대의 경우,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별기>와 <금강삼매경론>을, 고려시대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조선시대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를 꼽는다.
먼저 원효의 저서는 나중에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통불교적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현실적 실천성이 두드러진 토착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삼국유사>는 이 땅 우리 민족 서사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하일기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물론 조선 시대의 그 수많은 고전들을 제쳐놓고 일종의 기행문이자 여행기인 <열하일기>를 최고의 고전 반열에 올리다니!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전 중에는 지금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일지라도 사실 당시에는 그 시대적 통념(봉상스)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열하일기>가 그 대표적인 고전이다. <열하일기>는 당대의 이념에 사로잡힌 지식인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 시대의 통념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이른바 ‘문체반정’을 야기 시킨 배후에 이 <열하일기>가 있었다.  

조선시대는 세 번의 반정이 있었다. 연산군을 폐위시킨 중종반정,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반정, 그리고 18세기 후반인 정조 때 정조가 주도한 문체 반정이다. 이 중 문체 반정은 앞의 정치적 반정과 달리, 말 그대로 당시 유행하던 문체가 불온하다고 해서 그를 바로 잡으려 한 것이다. 이는 경학에 벗어난 글이 윤리를 어지럽히는 원인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문체란 단지 내용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한 시대가 지니는 사유체계의 형식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정조는 불온한(?) 문체를 단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조선시대의 규범화된 언표체계인 고문(古文)에 근거한다. 고문이란 중국 고대에서 완성된 문장의 전범으로, ‘육경(六經)’의 문장과 사마천과 반고로 대표되는 선진양한(先秦兩漢)의 문장 및 한유와 소식 등 당송 팔대가의 문장을 뜻한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 이른바 ‘패관잡기(稗官雜記)’로 지칭된 소품문, 소설, 고증학 등의 이질적인 언표들이 번성하게 된다. 이 중에서 소품문이 가장 성행하는데, 소품문이란 말 그대로 짦은 글이다. ‘촌철살인’이란 말을 연상해보면 짐작이 가듯, 이러한 글은 뛰어난 기지와 창발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문체다. 그래서 기존의 고문들과 달리 소품문은 어린아이, 여성, 예인(藝人) 등 ‘소수적인’ 존재들에 주목한다. 나아가 ‘지극히 가늘고 작은 것’ 가을 나비가 꽃 꿀을 채집하는 것 등, 사소하고 미세한 것에도 주목한다. 우주의 이치를 논하는 형이상학적 학문에서 벗어나 지극히 섬세한 정감의 떨림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품문이 성행하게 된 배후에 바로 ‘연암’의 ‘연암체’가 있었으며, 이러한 특성이 집약된 책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연암은 스스로 과거시험을 거부한 사람이다. 나중에 비록 낮은 벼슬은 하지만 끝내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관료(대부)가 되지 않고서는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않은 시대에 연암은 당대의 통념을 뛰어 넘는 삶을 살았으며 <열하일기>은 그의 이러한 삶이 전제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란 책은 저자인 고미숙이 연암의 <열하일기>를 , 유동적인 변화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던 들뢰즈/가타리의 저서인 <천 개의 고원>의 시각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를테면, 유목, 유목민(노마드), 리좀, 수목, 표현기계, 배치, 탈영토화, 재영토화 등 같은 용어는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주요 개념들이다. 고미숙은 <열하일기>와 <천개의 고원>을 접목시킴으로써 새롭고 신선한 사유의 지평을 연다. 따라서 이 책은 연암 박지원과 들뢰즈/가타리와 고미숙의 생각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셈이다.  

2.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 4년) 연암의 삼종형이 정사(正使)로서 당시 청의 황제였던 건륭제의 만수절(70세) 축하 사절로 갈 때 비공식적 수행자로서 동행하게 되면서 쓴 초고를 토대로 한 연행록이다. (총 26권 10책으로 구성된 방대한 책이다) 즉 압록강에서 연경(빼이징)까지 약 2천 3백여 리, 다시 연경에서 열하까지 700 리, 토탈 육로 3천리를, 고루한 조선 사대부들은 물론, 일자무식인데다 고지식하기로는 ‘환상의 커플’인 하인 ‘장복’과 마두(馬頭) ‘창대’와 함께 강행군한 천신만고의 대장정을 너무도 자세하게 그린 책이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는 압록항 도강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여행 내내 야음을 틈타 혼자서 숙소를 빠져나와 현지 중국인들과 밀회하면서 필담을 나누는 잠행과 모험을 반복한다.
백탑(白塔)이 보이는 요동 벌판에 이르러 드넓은 평원을 보는 순간 연암은 말한다. “내 오늘에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고.” 그리고 이어 천지간에 아무 막힘이 없는 사방을 돌아보며 이렇게 외친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만하구나! 라고 말한다. 이어 열하일기엔 ‘호곡장론(好哭場論)’이 펼쳐진다.

그런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열하’에 가게 된 것은 애초에 일정에 없었던 뜻밖의 일이었다. 건륭제가 북경에 있지 않고 북경에서 멀리 떨어진 열하에 있는 피서 산장에 있으면서 조선  사행단을 급히 불러들이는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연암은 우여곡절 끝에 조선 사람으로는 처음 이곳에 갔을 뿐 만 아니라 그곳에서 만수절 행사에 모여든 온갖 이민족들 ― 몽고, 이슬람, 티베트 등 ― 기이한 행렬을 목격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열하일기에서 ‘우발적인 역동성이 가득찬’ 부분(열하에서의 희극적인 ‘대소동’사건)은 바로 이 열하에서의 체험에서 나온다.    

고미숙에 의하면 <열하일기>는 타자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보는 시점 변환, 사이에서 사유하기 등이 열하일기의 주된 서술적 특성이다. 예컨대 자신을 포함한 조선 사람들이 타자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라는 시점에서 쓴다거나 하는 것은 전자의 예이며 ‘열하로 가는 무박나흘의 비몽사몽의 대장정’은 ‘사이에서 사유하기’이다.  

아래는 북경 천주당에서 연암이 양화(洋畵)를 본 소감으로서 미술사적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림에는 한 여자가 무릎에 5, 6세 된 어린애를 앉혀두었는데, 어린애가 병든 얼굴로 흘겨서 보니, 그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차마 바로보지 못하는가 하면, 옆에는 시중꾼 5,6명이 병든 아이를 굽어보고 있는데, 참혹해서 머리를 돌리고 있는 자도 있었다.”

위의 인용 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열하일기>에 그려진 천주교(기독교)는 ‘수난과 원한의 종교’다. 당시 지식인들 중에는 서학인 천주교에 비판적인 사람이 많았는데, 바로 천주교의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연암의 위 글은 동양에 수용된 서양의 종교의 모습이 이방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처럼 <열하일기>는 고미숙의 재해석을 통해 드러나듯 어떤 대상과도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유목적 시각이 담긴 책이다. 특히 고미숙의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은 <열하일기>에 나오는 그 유명한(하룻밤에 아홉 번을 강을 건너는 사실로!)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탈 주체화의 극한’으로 해석하는 대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열하일기>는 단지 여행기가 아니다. 삶과 사유, 말과 행동이 글쓰기의 경계를 넘어 존재하는 유목적 텍스트이자 지도다. 그래서 <열하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당대의 지배적 이념인 성리학의 고루한 편향을 넘어 삶과 지식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런 고전이다.  

그런데, 연암이 움직일 때마다 ‘웃음의 파장’이 형성될 정도로 일단 연암의 <열하일기>는 매우 재미있다. 글은 저자의 삶의 흔적이다. 연암은 타고난 장난꾸러기로서 매우 재미있게 산 사람이다. 그의 이러한 유머 능력은 예컨대 <호질>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중국여행 중 상점의 벽 위에 한 편의 기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베끼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상점주인이 이상해서 묻자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한 번 읽혀서 모두들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요. 아마 이걸 읽는다면 입 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날아갈 것이며,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처럼 끊어질 것이외다.”

사실 이러한 유머의 배경에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박지원의 ‘유머러스’한 면모 속에서 우리는 그가 살았던 당대의 현실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의 ‘유머러스함’은 비극적 현실에 대해 희극적으로 대응한 역설적 삶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도 대상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강렬한 흐름만이 범람하는 광야 혹은 평원, 때론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가 하면, 때론 장중하고, 때론 한없이 애수에 젖어들게 하는, 마주치는 것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공간적 편력, 그것이 열하일기’라 한 고미숙의 해석은 <열하일기>의 핵심을 가로지르는 관점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란 책책의 미덕으로 또한 책 말미에 있는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비교를 간과할 수 없다. 동시대에 살았지만 너무도 대조적인(요컨대 다산이 인간중심주의자로서 ‘존재론’적 주체를 강조한다면 연암은 인성과 물성이 서로 융섭하는 ‘생성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사상과 삶을 비교함으로써 흔히 두 사람 모두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근대의 맹아를 선취했다는 식으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근거 없는 것인가를 예리한 시각으로 들추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3.
조선시대의 고전은 대개 한문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고전을 현재 시각에서 번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번역을 통해 비로소 고전은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은 언제나 새로운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며,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고전인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번역되는 책들은 원전과는 또 다른 가치를 지니며, 사상과 학문의 역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심화된다.  
고미숙의 책을 통해 잘 알 수 있듯, <열하일기>는 여행의 기록이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접속의 장이며, 이러한 만남의 접점 속에서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장이다. 연암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와 역설, 긴장과 돌출은 ‘유머러스한’ 담론적 전략이다. 즉 <열하일기>는 가는 곳마다 길이 되는 그 곡진함과 노마드적 유연함, 그것이 ‘삶의 질’임을 알게 하는 책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연암은 시점 변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던 유연한 상상력을 지닌 보기 드문 예인(藝人)이다. 이처럼 <열하일기> 다시 읽기를 통해서도 ‘삶과 예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2005년 6월 21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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