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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2 (11: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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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4. 시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시그문트.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이 미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없음을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다른 한편, 미는 性感覺의 영역에서 유래한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더욱이 성적인 흥분과 미적인 감동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즉 성기 그 자체는 자극에 의해 작동하지만 미는 혹종의 제2차성기가 갖추워저 있는 성질인 것 같이 보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칸트는 미의 무관심설을 논했었다. 우리들이 미라고 판단하는 대상에는 우리들이 욕망을 느끼는 법은 없다. 쾌락은 주관의 문제이며, 대상의 실재라도 괄호안에 넣으야 한다고 했다. 미의 근저에 성을 보는 프로이드는 전혀 반대의 입장같이 보인다. 허나 그런 칸트 역시 쾌락의 원리로써 [생의 감정]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도 역시 [그 일]만 생각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일]이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에스], 즉 인간의 욕정의 중심을 일컫는 것이다.

 

         프로이드와 칸트의 相異性과 類似性. 이것이야 말로 미학의 근본문제가 아닌가. 프로이드의 택스트의 전체는, 칸트 이래의 미학적 모더니즘의 목에 데는 칼과 같은 것으로, 미학을 해체하려 함과 동시 허나 어느 의미에서 변용을 강요 보강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이드는 프라톤적인 에로스론과 손을 맞잡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의 예술에의 흥미는 매우 한정된 것으로 보며, 예술에의 그 [응용]에는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실제로, 레오날드.다뷘치와 미케란제로를 대상한 논문을 제외하고 프로이드의 에술론은 문학작품에 한정 되 있다. 섹스피아나 괴대나 호프만, 도스토에프스키의 작품들을 둘려 싼 논고는 각기 매우 흥미로운 점을 지니고 있어나, 여기서는 [W.이엔젠의 [그라디봐][맹상과 꿈]이란 1907년의 장대한 논문을 보기로 한다.

 

          이엔젠의 소설은, 젊은 고고학자 노르벨트.-놀드가 로-마의 박물관에서 한점의 부조(레리-)을 발견하고 독일에 돌아온 후 이를 석고복제로 만들게 한 후 이것에 탐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놀드에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부조에 나타난 젊은 여인의 걸음걸이, 그 양 다리의 모양새로, 그는 편족을 수직으로 세워 걷는 그 여자를 [그라디뷔] [걸어 가는 여자]라고 이름을 부친다. -놀드는 어느 밤, 자신이 고대 봄베이에 와 있는 꿈을 꾼다. 그때가 바로 기원79824, 뷔스뷔오산이 대폭발을 일으켜 봄베이가 괴멸한 날이었다. 그는 그기서 그라디뷔가 재속으로 파묻히는 것을 목격하면서 눈을 뜬다. 그라디뷔의 모습을 구하려 실제 봅메이의 유적을 방문하여 해메는 사이 그는 그라디뷔 바로 그 사람을, 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일어를 말하는 쯔에.벨트간그양을 만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그의 어릴 때 친구들로 지금도 그녀의 옆에서 살아 가는 사실, 쯔에오란 희랍어로 [생명]으로, 벨트간그라고 하는 독일어는 수상하게도 [걸으면서 빛나는 여인]이라는 의미임을 알게 된다. -놀드가 추구했던 것은 무의식의 어둠속에 그 기억을 깊이 억압하고 있었던 바로 이 벨트간그양 이었던 것이다. 그라디뷔아는 지금은 [레디디뷔아reddiva] [죽음에서 소생해 나온 여인], 생명넘치는 벨드강그양으로써 현전한다. 하놀드의 광기는 이렇게 해서 사랑하는 여성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었다.

 

       봄베이란 고대도시에서 <그라디봐>를 찾으려 방문하는 것이, 바로 하-놀드의 잃어버린 과거를 소급하여 쯔에오를 재발견하는 것이며, 더욱 쯔에오의 말이 하-놀드라고 하는 환자의 치유 이외 아무것도 아니란 것, 足휘에티시즘(발을 숭배하는 원시인의 주물교의 일종 fetishism)나 꿈이 중요한 계기가 되 있는 등, 이 이야기 전체가 프로이드의 분석욕을 크게 자극했음을 알 수 있다. 190211월에 봄베이를 방문하여, 그기다 직접 걸어서 베스뷔오산을 오르기도 했던 포로이드에게 이 소설은 정신분석적 예술론의 거이 예정조화적이라 볼 수 있는 자유연습의 장으로 봤음이 틀림없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예술가는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원망이나 공상을 충족하는 모양으로, 하지만, 변형을 통해 표현한다. 변형은 이 원망의 직접적이며 불쾌한 측면을 완화하며, 예술가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은퍠하며, 그기에 미학적 규칙을 지켜, 타인에 매혹적. 장려적인 보-너스, 즉 쾌의 보수를 주는것과 같이 행한다. 작품은 그 [진의]의미를 숨긴 직물이며, 직물의 실타래를 섬세하게 밝힘으로써 비밀이 밝혀 지는 한편의 꿈일 것이다.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이 그기에 숨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예술작품은 억압된 것의 파생물의 하나이며, 따라서 상징적이며, 징후(징상)적인것이다. 이들 그 흔적을 싿싿히 해독해 내는 것이 가능 한것이다.

 

         여하간, 정신분석적 언설, 정신분석적 예술론은 고고학(시원학)적인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를, 억압된 욕망을, 상처를 지향한다. 고고학(시원학)적인 한에서는 그것은 추리소설과도 닮아서 재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러나 그런 점으로 해서 출발점인 예술작품을 무화시켜 버린다. 밝혀 낸 [상처]에 의해 예술작품의 됨됨을 설명하고 보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면, 잭슨.보록이 프로이드나 융에 흥미를 갖고, 신경증 때문에 정신분석醫를 찾아 다니며 그래서 [나의 예술의 원천은 무의식이다]라고 발언했다 해도 그 작품의 됨을 [정신분석] 할 수는 절대 없을 것이다. 가령 그렇게 한다 해도 별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것이다.

 

        오히려 정신분석은 이미 성립한 작품에 대한 해석보담, 해석의 무기로 쓰는 것 보담, 하나의 놀라운 언설의 시스템로써 예술을 산출하는 즈음에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자동기술을 핵으로 삼는 슈-리얼리즘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브루톤은 [通底器](1932)에서 프로이드를 비판하고 있는 바, 하기야, 이는 또 다른 문제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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