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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1 (12: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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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죨쥬.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 


1996년5월, 빠리의 퐁피드센터에서는 [앵포르멜-용법]이라 題한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形없는 것]을 의미하는 표제아래, 20세기미술의 잡다한 모양새들을 철저히 나타내려고 하는 작품의 선택과 전시를 하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었다. 제작 년대를 보면, 30년대 부터 60년대 말에 걸쳐 제작된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피카소, 쟈코메티, 브라크, 라우센버그, 워홀등, 회화 혹은 조각의 구별이 아직도 가능한 작품군, 피엘로.만조니-, 브루스 나우만, 로버트.스미슨, 신디.셔먼등의 손에 의한오브제나 사진이 대비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맥을 형성하는 것 같이 보인다.


[앵폴르멜]이란 용어는 바타이유의 사상에 깊이 관계하고 있다. 전람회의 카다로그에 개제되어 있는 이브.아랑.보와에 의한 [앙폴름의 사용가치]란 제가 붙은 서문, 로쟈린드. 크라우스에 의한 [앵포름의 운명]이라 제를 부친 글의 결론, 카다로그의 목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선발된 26개의 분류항을 한 見出語 – 예를 들어 본다면, [저속유물론]등, 곳곳에 바타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정확하게 말해 본다면, [도큐만]지 (1929-30)시대의 바타이유 라 말할 수 있다. 전람회의 카다로그에는 [도큐만]지를 위해 사용된 사진들도 많이 재록되어 있다.


바타유는 [도큐만]지 제7호에서 [앵포름]라 부친 제목으로 텍스트를 쓰고 있다. 원문으로 보면 15행정도의 매우 짧은 것이다. 우선 [語의 의미가 아니고 그 기능을 나타내는 것부터 쓰여 있는 사전이란 것이 있어도 좋을 것이다]라고 시작한 것에 이어 앵포름란 말을 단순히 하나의 형용사로 머물지 않고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하는 일례로 나타내고 있다. 이에 앞서 바타유는 같은 잡지에 [建築]이라 제한 문장을 쓰고 있으며, 두개의 택스트를 합한다면 건축적인 구성을 부정하는 몸짓으로 시작하여 앵포름란 발상을 향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미나 파리와 같은 흉한 것을 향해 눈을 돌릴려는 자세, 혹은 저속유물론의 이름하에 형태의 질서를 파괴하는 마티엘의 힘 같은 것의 돌출을 논한다 던지, 그 시기의 바타유의 사고에 도발적인 성격을 띠우게 한 특징적인 요소들이다. 후-코는 1970년에 바타유전집의 간행이 이루어질 무릎, 그 일들의 중요성이 금후 보다 명확하게 보여질 것이다라고 예언한 바 있었지만, 본퓨트센터의 전람회에서 [앙폴름]이란 이 한마디 말이 이렇게 까지 큰 영향력을 갖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에로티시즘] 혹은 [저주받은 부분]의 사상가였을 바타유가 미술관과 관게를 갖는것도 미묘한 현상으로 보일런지는 모르나, 이미 바타유의 초기의 택스트에는 [미술관]과 관계 있는 것이 있었다. 바렐리가 [미술관의 문제]라 부친 유명한 문장을 발표한 것이 1923년, 이 시점보다 수년후에 바타유는 전혀 다른 시점에서 [미술관]이라 부친 택스트를 쓰고 있다. 키로친의 출현과 미술관의 탄생을 변행적으로 논할려고 한 자세는 의표를 찌른 것이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저변에는 일관된 논리성이 보여진다. 혹은 상궤를 벗어난 것에 대한 공포와 연이어 던져지는 매혹을 둘려싼 언어들로 쓰 내려간 택스트 [소멸한 아메리카]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1928년 루-블 미술관의 한쪽 구석에서 개최되었던 [콜롬부스 이전의 아메리카]전과의 연관에서 쓰여진 것이다. [공의] [소비]등 그의 독자적인 주제의 각양 각색이 이미 여기서 준비되어진 것이었다라고 말해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이들 주제는 고흐의 自傷행위를 논하는 문장에서 더욱 명확해 지고 있는 것이다.


 바타유는 미술비평의 분야의 일에 대해서 의욕을 나타냈다고는 볼 수 없으나, 1955년에는 마네와 라스코-의 벽화를 논하는 두권의 미술론을 스키라사를 통해 간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최 만년에 쓰여진 [에로스의 눈물]이 다수의 사진도판을 곁들여 있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미지의 강력한 매혹하에 지나왔던 인간의 모습이 여기서 떠 올라 온다. [라스코의 벽화]에서는 동굴 내부속으로 발을 디려 놓았을때의 감각을 논하는 점에서 바타유의 진면목이 보여진다. 그것은 고고학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진렬장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얻을 수 없는 감각이라고 바타유는 말하고 있다. 유용한 인간활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표출행위, 금기와 침범행위등, 이 책의 논지를 구성하고 있는 대립항에 관한 의론은 얼마간 도식적인 인상을 안겨 주고 있다고 하드래도, 동굴의 도상의 강력한 매혹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기에는 초기의 바타유가 문제시하고 있었던 聖性의 탐구가 되살아 나오고 있다.


 바타유의 마네론은 말르르오의 미술론의 영항을 받았던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히 주제의 의미작용의 말살이야 말로 근대회화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둘려 싼 부분에 관해서 본다면, 그러한 점이 납득이 갈것이나, 단지 [회화]를 배후에서 지탕하고 있는 [사연, 내지 이야기]의 사멸을 확인할 뿐 아니라, 몸짓이란 문제를 둘려 쌓고 바타유적인 주장이 부상해 오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예를 들면, <올림피아>에 관한 부분에서 발레리의 말을 축어적으로 인용한 후,그가 이것에 예리한 비판을 더해 [원문은 다부로에 의해 소거된다], 혹은 [다부로가 의미하는 것은 원문이 아니고 이것의 소거이다]라고 말하고 있을 때, 한때 그가 [안포름]에 관해 논했던 때와 같이 그기서 제기되고 있는 것은, 퍼포머티브한 몸짓이 아닐까. 프랑소와즈.갸산은 바타유의 마네론에 관해 프로벨 혹은 못빠샹을 떠올리는 그림에 대해서, 맛손과 같은 동시대의 화가의 작업을 염두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분명히 바타유에게 맛손과의 공동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프랑소와즈.루비얀이 말한바와 같이, 1928년부터 37년까지의 맛손의 작업은 바타유의 작업과 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다. 파시즘의 대두와 새로운 전쟁에의 예감이 팽배한 속에서 예술적 제작과 철학적 사색이 惲然 일체화 되는 지점에서 이 작업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두부가 缺한 앗세팔像의 창출에 이르는 그 과정은, 바타유에게도 근원적인 체험이 였을 것이다.


 


* 1897년 프랑스 뷔유히 드 돔縣 뷔용生. 파리 古文書學校 졸.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는 짬짬히 僞名으로 [眼球譚]을 저술. 20년대 말부터 [도큐만] [사회비평] [앗세팔]의 3종류의 잡지 간행에 깊이 간여함. 코쥬부의 헤겔독해의 쎄미나에 참가한 것도 이즘이다. 30년대 말부터는 가이요와.레리스와 불어 사회학연구회를 조직한다. 전후에는 [크리티크]지를 창간. 카르반드라의 도서관, 올아랜 시립도서관에서 근무.   62년 파리에서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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