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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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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시인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속에서 자본다.

이 시는 지난 2월 2일 세상을 떠난 오규원(1941~2007)시인이 1월 21일 세브란스 병실에서 의식을 잃기 직전 간병 중이던 제자 시인 이원 씨의 손바닥에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손톱으로 쓴 시라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4연은 한참 있다가 쓴 것이며, 그래서 미완성 시의 2연의 첫 구절인지 모르지만 제자들은 이 시를 4행으로 된 시인의 유작으로 발표하였다.
오규원 시인은 지난 5일 화장되어 강화도 전등사에서 수목장으로 나무 밑에 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전부터 시인 중의 시인으로 생각했던 분의 마치 사후의 일을 내다 본 듯한 마지막 시와 그 다운 수목장을 알게 되면서 그가 남긴 싯 구절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그래서 얼마 전에 산 시집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는 그의 최근 시집을 꺼내보았더니 벌써 1999년에 출간한 책이었다.  

‘한 잎의 여자’로 잘 알려진 오규원 시인은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며 현재 활동하는 수많은 개성적인 문인들을 길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1991년부터 희귀병인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보통 인간이 누리는 산소의 20%만으로 호흡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삶에 대해 잔가지를 쳐버렸고, 좋은 것을 향유하려는 욕망까지도 쳐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시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나는 시에게 구원이나 해탈을 요구하지 않았다. 진리나 사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시에게 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든 그와 같은 모든 관념의 허구에서 벗어난 세계였다. 궁극적으로 한없이 투명할 수밖에 없을 그 세계는, 물론, 언어예술에서는 시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가능성의 우주이다.

이토록 평생 도저한 시정신으로 추구했던 오규원의 시 세계는 가열스럽고 가파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얼핏 보면 매우 건조해 보인다. 그 중 그의 ‘오후와 아이들’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을 파며 걷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을 열며 걷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두 눈을 번쩍 뜨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몸속에서 우뚝 멈추어 서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문득 돌아서고 있다

이처럼 오규원의 시 시계는 관념이 지배하는 현실(오규원의 표현에 의하면 등기된 현실), 즉 관리되고 규격화된 사회를 파괴하려는 의지로 일관되어 있으며, 그러한 의지로 본 자신의 세계를 그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이라 했다. 서정 과잉의 상투적인 언어로 동어반복을 하는 이들이 지배적인 한국의 시단에서 오규원은 생전에 좋아했던 세잔의 그림처럼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드러낸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7년 2월 8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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