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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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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운불우(密雲不雨)’의 한 해를 보내며


1.
세상은 혼돈에 빠져있다. 신의 있는 거래는 줄어들고, 좋은 친구는 거의 없으며, 진실은 불명예 속에 빠져 있다. 선의의 행동은 보답 받지 못하고, 형편없는 봉사가 터무니없는 보상을 받는다. 모든 나라가 검은 거래에 몸담고 있다. 어떤 나라는 안전을 위협하고 다른 어떤 나라는 태도가 항상 변화해서 두려움을 갖게 만들고 또 다른 나라는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다른 이들에 대한 불신을 가지라고 이런 예를 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위험은 자기 자신의 완전함을 잃는 것이다.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보다 적게 수용하고 다른 이의 어리석음에 지나치게 관대하며 무능함을 용서하고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과 교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원칙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됨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위 글은 17세기 에스파냐(스페인)의 신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에서 옮긴 것이다. 벨라스케스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다가 1658년 쉰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 제수이트(가톨릭의 한 종파임) 신부는 죽기 얼마 전 당시의 부패와 빈곤, 위선의 시대 속에서 사는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평생을 회고하며 거위 털 깃펜으로 양피지에다 이러한 글들을 남겼다.

2.
며칠 전 올해의 ‘영향력 있는 미술인’을 꼽은 기사를 본적이 있다. 한국의 첫 번째로 꼽히는 재벌가의 부인이, 그다음은 모 화랑의 주인이, 그 다음은 물론 익히 아는 노(老) 비평가와 몇몇 지명도가(?) 높은 작가들 순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는 왜곡되고 일그러진 한국미술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다시 말해 재벌가의 부인이라든가, 불우한 화가들을 신화화해서 이윤을 추구한 장본인이, 아니면 세력화로 출세한 장본인들의 ‘영향력’이라면 ‘미술’ 그 자체의 가치와는 무관한 일이 아닌가? ‘미술’ 그 자체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미술인들이라니 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역설적인 방증인가?  
물론 자본주의의 위력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치의 혼란에 빠진 이들은 ‘영향력 있는 미술인’과 ‘미술’의 가치가 구분됨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긴 많은 미술인들조차 예컨대 피카소나 백남준, 그리고 앤디워홀 같은 이들이 천재 예술가인 줄 알고 있는 실정이니 더 무엇을 말할까.
작금 우리의 미술계는 우상을 조작하는 자들과 그 우상을 무슨 굉장한 미적 가치인양 포장하는 이들과의 야합에 의해 형성된 거품이 진실을 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즉 우리 미술계는 속이는 자와 속는 자, 이 두 부류의 인간들이 대세를 이루며, 더 가관인 것은 속이는 자들이 버젓이 미술계의 주인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에서 과연 무엇이 가치 있는가?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현대미술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3.
올 한해를 마감하면서 일부 교수들이 2006년을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은 가득 끼었으나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임)’를 꼽았다고 한다. 즉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 치솟는 부동산 가격, 정치, 둥북아 문제 등으로 사회 각층의 불만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한 올해의 실상을 집약한 말인 셈이다.
아무튼 이러한 현실이라 해서 미대에서 공부하는 작가 지망생들이나 젊은 작가들이 낙담하거나 의기소침하지 말았으면 한다. 위의 그라시안의 말에서도 실감할 수 있듯, 어느 지역 어느 시대든 이 세상은 예술가들이나 지각 있는 사람들이 평온하게 살 수 있었던 시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일수록 만난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라고 해서 현실을 외면하거나 좌시한다면 더욱 암담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지속하는 한 그루 소나무처럼 역경 속에 참 가치는 더욱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가 해마다 설렘과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해 새 날을 맞는 것은 좀 더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올 한 해도 저의 졸고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길상여의(吉祥如意 : 뜻과 같이 복 받으시라는 의미임)’하시길 기원합니다.
                          2005년 12월   28일  
                                      도 병 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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