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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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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그리움에 대한 단상


1.
글이란 말의 어원은 어학자의 연구를 보면 ‘긁다’와 그 뿌리가 같은 말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긁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문인들이 원고를 긁는다고 했다.
그림이란 어원도 긁다와 같은 뜻이다. 글씨를 긁으면 글이, 모양을 긁으면 그림이다.
‘그리움’이나 ‘그리다’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나 모습을 긁는 것이 그리움이다. 그러므로 그리움이란 말은 종이가 아니라 마음속에 쓴 글이요, 그림인 셈이다.
불교의 경전인『보현십원가』에도 ‘마음의 붓으로 그린 부처 앞에....’란  아름다운 구절이 나오듯 그리움은 마음의 붓으로 그린 그림이요, 글이다.
현재에 없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찾는 것이 그리움이다,  즉 사라진 과거나 앞으로 올 미래가 그리움이다.그러므로
언제나 그리운 것과 그리는 것은 눈앞에 부재하는 것이다. 주1)
결국 글은 바로 그 부재의 것을 현존케 하는 힘이다. 글은 긁는 것이며 문자로 쓴 그림이며 과거의 그리움과 미래를 그리는 행위이다.
                                          
위의 글은 이어령 선생의 책을 보고 요약한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으면서도 정작 그림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몇 년 전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그림의 어원이 그리움 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고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위의 이어령 선생의 글을 보니 글과 그림, 그리고 그리움의 어원이 ‘긁다’에서 유래한 것이 사실인 듯하다.      
아득한 옛날 인류의 조상들이 땅에다 막대기로 무언가 그리기(긁기) 시작했고 그것은 무언가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이미지이거나 그리운(?) 모습이었을 거라는 것은 추측하기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2.
오늘날 글과 그림은 엄연히 다른 방식의 의사소통 방식을 가진 영역이다. 글은 글자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말을 단순한 형상이나 추상적 기호로 말뜻을 표현하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즉 글은 기호들을 배합하거나 기호의 배열순서에 따라 글은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러한 기호체계가 축적되면서 의미망이 형성되었고 마침내 추상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사고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호로서 이러한 사유체계를 구축하게 된 이후 인류는 구체적인 세계를 연역적으로 규정하게 되었고, 그 후 인류는 그러한 사고로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반면에 그림의 역사는 언어처럼 체계를 정립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림의 역사는 추상적 사고를 정립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징의 역사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상징이란 문명권 코드마저 부정한 역사이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림과 언어는 오늘날 전혀 다른 차원이 되었다. 즉 그림은 기호 이전의 영역이기도 하고 기호를 넘어선 세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떤 말의 어원은 최초의 동기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그림의 경우 긁기에서 단단한 바위에 파는 행위로 확장되거나 나아가 칠하게 되고, 오늘날에는 영상매체까지 나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긁거나 파거나 칠하거나 영상매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기법적 차이’에 지나지 않음도 알 수 있다.
3.
뭔가 막연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학자의 일설일수도 있겠지만 우리말인 글과 그림의 어원이 같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부재’의 것을 현존케 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그림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즉 글이나 글이 지향하고자 하는 ‘그리움’의 표현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정신적 가치의 근원을 자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글과 그림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이다. 따라서 화가의 입장에서 그림의 기원을 생각해보는 것은 그림의 가치를 원점에서 다시 성찰하는 일인 셈이다. 결국 문제는 역시 왜 표현하려는가, 다시 말해서 무엇이 그리운 것인가 다. 그렇다면 참, 즉 진짜(眞)와 가짜(假)를 구별하는 데도 이러한 어원이 참고가 될 것이다.    
                            2006년 10월 18일
                                          도 병 훈(작가)

주)주1)영어의 miss도 ~이 없음을 깨닫다. ~이 없어서 적적(서운, 허전)하게 생각하다, 그리워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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