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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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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 공간에 대한 탐색


1.
영국에서 기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업혁명을 통해 필요해진 에너지인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기차가 승객을 태우는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물론 세상을 보고 체험하는 지각방식마저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체험 과정이 생략되어버리고 오직 목적지에 얼마만큼 빨리 도달 하는가 만이 목적이 되었다. 이에 따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은 획일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하였으며, 결국 속도가 현대인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 땅에서도 급속한 경제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도로망이 전국방방곡곡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교통수단 발달의 결과는 단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하는데 기여했지만 그만큼 우리도 시간이 공간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세상 속에 살게 되었으니 최근에는 초고속 기차인 KTX까지 생활화되었다. 시간을 절약하게 된 대신 그 대가로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는 거리가 먼 공간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근래에 지어진 사찰들이나 중창불사를 한 사찰들도 공간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얼핏 보면 옛 전통 방식대로 건물들을 번듯하게 지은 듯 보이지만 우리의 옛 조상들이 지녔던 공간에 대한 깊은 통찰의 지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무조건 크고 화려하게 지어 돈을 더 받으려는 건축업자들의 이해타산과 엄청난 규모의 사찰 공간으로 신자수를 늘이려는 속셈만이 보인다.      

2.
어쩌면 인간은 언어를 갖게 되면서 참 실재(reaㅣity)의 공간에서 살지 못하게 된지도 모른다. 참 공간이 아닌 언어로 개념화된 세상 속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체험 당시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공간을 통해서다. 이러한 공간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 까닭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왔다. 그 결과 나는 그러한 기억이 단지 머리의 특정 부위에서만 일어난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 아니라 온 몸, 즉 오감(五感)을 통한 구체적 체험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도보나 마차로 여행하던 시절 인간은 온몸으로 대지를 느끼고 대지와 호흡했다. 사실 인간들은 오랫동안 엄연히 숨쉬고 호흡하는 자연 공간 속에서 살았다. 이런 차원에서 자연체험과 문화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적 사찰 공간이나 옛 정자, 그리고 서원의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사찰이나 서원, 그리고 정자가 있는 공간들은 그 건물만 따로 떼어서 그 가치를 평가하는 인식의 틀로는 결코 측량할 수 없는 크고 깊은 세계다. 전통적 지리관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건물과 그 주변 공간은 저마다 차이가 있으며 그만큼 유니크한 세계다.
나는 이러한 공간 중에서도 그 공간에 들어서는 진입공간에 들어설 때 가장 마음이 설레며, 나에게는 자연의 숨결과 인간적 의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그러한 공간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 공간은 특히 늦가을 무렵이면 폐부를 저미는 것 같은 은은한 강물 같은 고적한 공간이다. 사실 흐느끼는 듯 구성진 아리랑의 곡조를 연상케 하는 그러한 공간은 예전에는 이 땅 어디에서나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에서는 그러한 공간은 많지 않다. 그러한 길들은 거의 대부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한 넓은 직선 길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의 전통적 공간이 나아 있는 곳이 있다. 그 주요 예로는 울진에 있는 천축산 불영사와 가야산 해인사, 그리고 안동에 위치한 천등산 봉정사와 병산서원 가는 길, 영양의 서석지 진입로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찰의 경우 진입공간은 일주문(一柱門)에서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해탈문(解脫門) 앞에 이르는 공간을 말한다. 유서 깊은 전통 사찰의 경우 이 진입 공간은 흔히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적송이나 참나무가 우거진 숲길이며, 계곡 옆으로 길이 나 있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가기도 한다. 이 진입공간은 대개 완만하게 경사져 있고, 게다가 구부러진 곡선으로 이루어진 길로서 때때로 돌기둥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당간 지주(절에 행사가 있을 경우 기를 다는 곳임)나 부도를 볼 수 있기도 하다. 그 공간에서는 대개 사찰의 중심공간에 위치한 대웅전 건물이 아직 보이지 않으나 시간상으로는 짧게는 2-3분에서 길게는 10여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다. 내게는 이 공간이 짧지만 무한히 긴 공간인데 그것은 굽었으되 곧은 공간이며 곧은 공간이되 굽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찰의 경우 얼핏 이 진입 공간은 대웅전 영역의 바깥경계인 해탈문 앞 공간이나 대웅전 앞마당, 대웅전 속 공간에 이르는 첫 단계이지만 나는 한국의 어느 사찰이든 그 진입공간의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한 아름다움으로 그 사찰의 품격을 가늠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M. Elide 1907~1986)에 의하면 성과 속은 ‘세계 안에서의 두 가지 존재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찰의 진입공간은 성(聖 the sacred) 과 속(俗 the profane)의 경계이기도 하다. 즉 진입공간은 성소와 속계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3.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에는 봉정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작년 어느 청명한 가을날, 나는 봉정사에 갔다. 안동시내를 벗어나 의성김씨 학봉 종택이 있는 곳을 지나 얼마간 가자 봉정사가 있었다.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은 아니었지만 승용차로도 한참 동안 시골의 국도를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산속 눈부신 햇살아래 봉정사의 일주문은 세월 속에 빛바랜 단청 색깔과 어우러져 더욱 고색창연했다. “천등산 봉정사”라는 현판도 허세가 없는 글씨였다. 그리고 일주문을 지나자 언덕 위 숲 속으로 해탈문을 대신한 누각의 지붕이 보였다. 이처럼 한국의 절들은 산지 지형상 해탈문 대신 누각 형태의 전당이 지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각 밑을 통과하는 것이 곧 해탈문을 통과하는 것이 된다. 봉정사의 누각 이름은 만세루다. 이윽고 만세루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올라섰다. 조금도 다듬지 않은 돌들을 대충 얼기설기 배치해 놓았다싶을 정도로 소박한 돌계단이었다.

만세루 밑을 지나자 중후한 대웅전이 그 당당하고도 시원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선 여말 또는 선초 건물로서 전형적인 사찰구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의 대웅전은 목조건물 외부로 툇마루가 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예였다)
기둥사이가 넓고 5포작(包作: ‘공포栱包’라고도 하며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 같은 데에 짜 맞추어댄 나무쪽임)이라서 포작 사이의 벽이 넓어 보였다. 내외이출목의 공포를 바깥쪽은 소 혓바닥 모양(牛舌形)으로 안쪽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짜놓았다.
가구(架構: 공간을 형성하는 목조건물의 골격구조)는 일고주구량가(高柱는 일반기둥인 평주보다 더 키가 큰 기둥으로 일고주 구량가란 고주 하나를 세워 9개의 량梁 즉, 대들보를 구성하는 방식이다)란 이며, 비교적 깊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웅전 안에는 어느 절이나 그러하듯 부처가 모셔져 있다.(양산 통도사의 경우 대웅전에는 부처가 없다. 이는 그 뒤쪽에 석가의 진신사리탑이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 안에는 세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삼세불(과거, 현세, 미래불)이나 삼신불(보신, 법신, 화신불) 혹은 삼계불(동쪽, 중앙, 서쪽불)을 상징한다.
이러한 배열구조는 종파에 따라 다르며 화엄종의 경우 서방정토의 교주인 아미타여래불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로 관세음보살(자비의 문을 담당)과 제세지보살(지혜의 문을 담당)을 거느린다. 아미타여래불은 무량광불(無量光佛) 혹은 무량수불(無量壽佛)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한량없는 빛과 한량없이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구원을 상징한다. 즉 광대무변한 커다란 빛(光明)을 상징한다. 돌이나 금속, 혹은 진흙으로 형상화한 유한한 개체가 무한한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법신상주(法身常主)의 사상 때문이다.
법신은『반야바라밀다심경』에 집약되어 있듯, 궁극적으로 공(空)의 세계와 둘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부처를 향하여 복을 빌거나 소원을 성취하려는 것은 불교의 본연과 배치되는 행위이다. 허공을 향해 복을 구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진입 공간은 무한한 빛과 무한한 공간을 향하는 길인 것이다.

대웅전 옆에 위치한 맞배지붕의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중기인 12세기경에 지어진 건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보다 이 건물의 단아하고도 소박한 자태를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곳이 놓여 있는 공간을 전제로 그렇게 느낀다.

이러한 중심 공간을 지나면 봉정사에는 또한 영산암이라는 건물이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 흔히 우리의 사찰 건축을 보기 위해서는 특정건물이나 화려한 색상을 주목하지 말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눈여겨보라고 한다. 나는 바로 영산암이 그러한 공간의 표본으로 본다. 영산암 마당은 높이가 약가 차이가 나는 두 개로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공간을 가르는 지표는 계단과 그 옆 바위 위에 있는 한 그루 소나무다. 이 소나무와 계단은 두 개의 공간을 나누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어주기도 한다.
천 여년 긴 세월 동안 가람을 가꾸어온 옛 선조들의 지혜가 스며있는 전통 사찰 공간에 실감할 수 있듯,  이러한 점은 중국이나 일본의 사찰과 비교하면 그 특성이 너무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한국의 가람 건축은 시대와 신앙적 배경은 물론 지역과 지형에 따라 그리고 그 지방의 건축가인 대목들에 따라 다양한 형식과 차이가 있다.  그 곳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청자색 반투명의 공간이자 미묘한 회색 같은 그윽한 공간이다. 그 곳은 백자의 그릇처럼 고우면서 대범한 선율이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전통사찰 공간은 문명과 인간과 삶의 토대인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알게 한다.  

4.
수백만 년 동안 우리 인간의 몸은 진화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왔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 세상은 지난 수백 만 년을 능가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몸은 여전히 넓은 초원과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한다. 여전히 나의 몸은 자연의 깊은 품안에서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속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어도 그 효율성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현대의 건물들도 전통 사찰처럼 지을 수는 없다. 또한 건물도 무조건 과거의 전통적 가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곳에 따라서는 현대적 공간이 더 어울리고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또한 건축의 기술적 측면은 현대에 들어 훨씬 발전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며, 이는 곧 도구적 편리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그 위치하는 장소와 건물과 건물의 사이 공간을 어떻게 배치를 하는가는 단지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전통 가람이 있는 사찰 공간은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지혜가 담겨 있는 공간으로 자연과 문명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알게 하는 공간이며,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이야말로 나의 존재근거로서 삶의 방식을 결정함을 자각하게 한다.
최근 들어 더욱 가속도가 붙은 문명의 흐름은 결코 돌이킬 수도 없으며, 어디로 갈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획일화된 지각방식을 강요하는 공간은 동시에 오감을 상실한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2006년 10월 12일
                                                 도 병 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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