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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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no image 작업실 17 -새 학기를 맞이하며
소나무
2984 2007-06-05
작업실 17 -새 학기를 맞이하며 전원길 2004/3/10 (1:47)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첫시간에는 언제나 긴 연설을 한다.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 태어난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가능성과 아울러 그 한계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무 좋은 선생은 나쁜 선생이 되고, 때로는 엉터리 선생이 좋은 선생이 되기도 한다. 수영하는 법을 잘 가르쳐 주기보다는 깊은 물로 들어가 물을 몇번 먹이다 보면 살 방도를 찾아 내는 무 대포 교육이 실질적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결국 나쁜 선생이 되는 쪽이다. 잘 가르칠려고 이리 저리 궁리도 하고 뭔가 답을 줄려고 애쓰다 보니 수업 시간에 말이 많다. "예술가의 길이란게 피할 수없는 고단한 길인데 여러분은 지금 그 힘든길에 들어서 있슴을 실감하고 있는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고통을 지금 느끼고 있는가? 왜 예술가는 사회로 부터 고립 될 수 밖에 없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기를 죽인다. 표정들이 가지 각색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해피엔딩으로 결론을 맺는다. 예술가의 길은 자아실현의 최대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길이므로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사양하지 않겠노라고 그들을 위로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참다운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평범한 지침을 이야기한다. 대중 속에서 자신을 분리해서 생생하게 자신을 느껴라. 그러면 여러분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험들 또한 생생하게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일상의 경험 , 지적인 경험, 표현과정에서의 경험, 정신적인 각성의 경험들이 여러분을 자극하는 예술적 영감으로 다가와 고단한 길을 충만한 희열로 통과하게 할 것이다."
24 no image 작업실16 -김미경 교수의 강의를 듣고.(2003.11.24)
소나무
4027 2007-06-05
작업실16 -김미경 교수의 강의를 듣고.(2003.11.24) 전원길 2004/2/20 (23:23) 작업실16 - 김미경 교수의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 강의를 듣고 수원 미술 전시관 기획 프로그램중의 하나인 김미경 교수의 "한국 현대미술 다시 보기" 강의는 김교수가 오랜동안 발품을 팔아 쌓은 내공을 풀어헤친, 수원에서는 처음있는 현대미술관련 전문 강의였다. 참여한 작가들과 일반인들이 강의 시작에서 끝날 때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좌담회와 늦은 저녁식사 시간까지 우리미술과 나를 되돌아 보게하는 실질적인 공부의 시간이였다. 서구 미술의 흐름과 내용을 파악 하는데는 비교적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나로서도 우리 선배들과 관련된 역사에 대해서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의 사대주의적 속물근성이 가장 많이 작용했겠으나, 79년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 본능적 후각으로 우리나라의 소위 주류 미술계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으리라. 이번 강의는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의 앵포르멜과 단색조 회화운동사이에서 주목을 받지못하던 한국의 실험미술의 상황과 내용,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의탈 평면적 작업들의 전개 상황을 서로 연계하는 방식의 설명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일일이 신문과 잡지 그리고 거의 남아있지 않은 자료집과, 작가 방문을 통하여 수집한 풍부한 슬라이드 자료가 있었기에 더욱 생생한 강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미경 교수는 강의를 통하여 한국의 주류 미술계를 형성한 단색조 회화가 역사적 혼동기에 유유자적한 예술지상주의적 태도를; Art for Arts Sake, 보였던 반면 실험적 방법론을 통한 사회적 발언을 시도한 당시 일련의 작가들의 작업들이 서구의 유사 방법론과는 어떤 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작업 문맥의 허약성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실험 미술가들이 서구의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이 회화의 본래 속성인 평면성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마침내 도달한 평면 부재의 세계를 버리고 공간과 물체의 세계로의 진입한 제 방법론을 접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일본의 모노하가 파리 비엔날레(6회1969, 7회1971, 8회 1973)를 통하여 미국의 미니멀, 이탈리아의 아르떼 포베라,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의 작가들과 만나 서로를 확인하는 장을 가졌었다는 장면은 인상적이였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의 이우환의 등장과 한국에서의 역할은 아주 흥미러웠다. 작가 이우환이 충실한 자기 학습기을 거친후 적극적인 자기 표명을 통한 일본 실험 미술계의 진입 그리고 모노하에서의 주도적 활동은, 건강한 작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본으로 삼을 만한 작가를 많이 가지지 못한 우리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계 혹은 대학가의 정치적 파워 게임의 조직원으로서 자기가 속한 계보의 서열순위를 올리기 위해서 몰염치한 행동으로 자신을 관리하거나, 낭만적 열정을 바탕으로한 치열한 작가 정신만을 미덕으로 삼다가 현실의 벽이 높음을 이유로 고개를 파묻고 사그러든 작가들이 많은 것이 지난 우리 시대의 분위기가 아니였는가?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정직성을 예술가로서의 성공 보다 사랑하고,실력을 닦아 나가는 기간의 외로움을 말없이 견딜줄 알되 때가되면 전체 맥락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당당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전문 작가를 존중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사회가 사심없는 정직한 작가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함께 힘을 모아가는 분위기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2003.11.24)
23 no image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한 소고(도병훈) (2003.11.3)
소나무
3930 2007-06-05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한 소고(도병훈) (2003.11.3) 전원길 옮김 2004/2/20 (23:18)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한 소고 도병훈(작가) 들어가는 말 지난 수 십 년간 주로 일본에 거주하면서 예술 활동을 해 온 이우환의 회고전이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란 표제 하에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개최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이우환 전은 지난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작까지 조각, 회화, 드로잉에 이르는 그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회다. 그동안 이우환에 대한 미술사적 자리매김은 지난 1960년대 후반에 일본의 현대미술인 “모노하”의 이론적 지반을 구축하며 활동한 작가라는 것과, 7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주된 경향이었던 이른바 “단색회화”의 형성과(각주1) 그 당시 전위적 예술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각주2)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그간 국내외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는 상당량의 글이 쓰여 진 것도 사실이다.(각주3) 각주1)특히 이번에 전시된 그의 드로잉 작품들의 특성-이를테면 필획에 의한 신체성과 행위성의 강조, 필획의 반복적 변주 등-을 통해 70년대 한국의 단색회화작가들이 커다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우환-만남을 찾아서 도록, 2003. 132-135쪽 참조. 각주2)이건용, 이우환이 한국현대미술에 미친 영향, 현대미술, 1992년(봄), 9-15쪽 참조. 각주3)박용숙, 원동석, 홍가이, 김미경, 김원방, 이동석 등의 글이 있으며, 이 중에서 김원방은 이미 무한히 열려져 있는 세계가 어떻게 새롭게 열릴 수 있는가라는 논지의 비판적 글을 쓴 바 있다. 김원방, 『잔혹극 속의 현대미술』, 227-239쪽 참조. 그러나 대개는 이우환의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 예술관을 대변하는 동어반복이었을 뿐 이우환 작품세계의 본연적 특성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것은 적어도 그의 철학적인 미학의 논리가 현대예술의 중요한 맥락을 간파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자신이 부인해왔음에도 그의 작품세계가 동양적 외연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련된 현대성을 보여주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우환의 예술세계의 미학적 논리나 형식적 특성은 ‘일본적’이기도 하고 ‘서구적(특히 미니멀리즘)’이기도 하고 ‘중국적’이기도 하고 ‘한국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이우환의 작품세계는 시기별로 그 특성도 달라지며 때에 따라서는 미니멀적 요소(이른바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와 한국적 요소가, 때에 따라서는 일본적 요소가 더 부각된다. 특히 최근의 회화 작업인 <조응> 시리즈는 그가 20대 이후 현재까지 주로 살고 있는 장소적 공시성과 통시성, 즉 일본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집약된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간 국내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이러한 특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고찰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일본의 전통적 미학의 특성(각주4)과 이에 근거한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해 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각주4) 일본은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지방분권적 봉건주의국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처럼 비교적 단일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적 체제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의 전통문화는 너무도 다양하며 이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마을마다 다른 다양한 축제문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적이라고 하면 너무 거대 담론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번도 전통이 단절된 적이 없으며, 이는 섬나라 특유의 개방성과 폐쇄성이라는 모순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우환이 청년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이러한 이질적 문화 속에 한편으로는 적응하고 한편으로는 대응해간 삶을 살았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우환의 경계인적 삶과 철학적 사유방식 이우환은 자신이 스스로 “영원한 떠돌이”라고 말했듯, 그의 삶은 요즘 유행하는 말이기도 한 ‘경계인’에 비유될 수 있다.(각주5) 즉 이우환은 ‘중간자(中間者)’적 경계인의 삶에 그 철학적 예술적 기반을 가진 작가다. 가령 ‘외부와의 관계성’이 그의 작품의 일관된 화두가 된 것도 그의 경계적 삶에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의 경계성을 이해해야 한다. 각주5) 그는 흔히 자신을 ‘중간자’라고 하고 이렇게 말한다. “늘 쓰라린 지점에 서 있다. 곧 어디에서나 내쳐지고 위험분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망자로, 다른 한쪽에서는 침입자로 공동체 밖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은 이쪽도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체가 되지 못하고, 어긋나 있는 몫만큼 상대방이 잘 보인다. 거리의 역학이 오늘날 나를 만든 것이다.”이우환, 김춘미 옮김,「중간자」,(『여백의 예술』, 현대문학, 2002, 24쪽) 이는 그의 예술관의 기반인 사상부터 그러하다. 이우환의 사상적 기반은 서구의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과 일본의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철학에 있다. 메를로 퐁티의 사상은 서양의 과학적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대두된 20세기 전반의 철학사조인 훗설의 현상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각주6) 이 훗설의 현상학중 후기 사상인 생활 세계적 이론을 근거로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이 성립한다. 먼저 하이데거는 ‘세계-속-존재’라는 존재론을 펼치며, 메를로 퐁티는 이 세계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정신과 물질, 인간과 현실 등이 혼융된 이분법적 규정이전의 객관이전의 장과 양면적 존재로 본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는 “화가의 비전은 외적인 것에 대한 조망이 아니요 단순히 세계와의 물리광학적인 관계도 아닐 때 화가 앞에서 세계는 표상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 않다”(각주7)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사상을 통해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란 비평집에 들어 있는 사유체계와 그의 작품세계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각주6) 이 현상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선험적 현상학’과 ‘생활 세계적 현상학’이다. 먼저 선험적 현상학은 인식의 가능근거를 선험적 주체에 둔다. 즉 선험적 현상학은 인식의 근거를 객관 세계에 대한 실증적 탐구를 통해 정초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 선험적 현상학에서는 주체 없는 대상도 대상없는 주체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선험적 현상학에서의 대상이란 곧 지향적 대상이다. 반면에 생활 세계적 현상학은 인식의 가능근거를 생활세계에 둔다. 현상학에서 말하는 생활세계란 과학적으로 즉 이론적으로 파악된 세계가 아닌, 모든 이론적 틀을 벗고서 바라본 전 개념적 차원, 즉 지각된 세계다. 따라서 이는 신체에 의해 즉 전반성적 코기토에 의해 파악되는 시공간이다. 그래서 이 생활세계는 개개인의 체험을 통해 생성된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각주7)메를로 퐁티는 그의 마지막 저서로서 세잔느의 그림에 대해 논한 『눈과 마음』이란 글에서 데카르트의 광학론을 비판하면서 세잔느의 회화의 특성에 대해 이 같이 말한다. 또한 니시다의 철학은 일본의 전통적 선사상에 그 이론적 지반을 두고 있으며 “참다운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것은 안도 바깥도 없는, 오직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자기를 한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모순을 삶의 본질로 보았다. 사실 선사상은 니시다의 철학 이전부터 일본의 전통적 미학의 핵심으로 일본적 역사와 풍토 속에서 독특한 미학의 구심점이 된다. 즉 일본의 선불교는 인도불교와 달리 극히 ‘현세’적인 중국의 선불교를 계승하면서도 일본의 풍토성과 전국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생성된 일본 특유의 생사관이 반영된 일본의 미학적 토대이다. 이러한 전통적 미학은 무사와 칼의 역사인 일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사의 삶은 그 만큼 순간 속에 전 생애를 집약하는 몰입을 할 수밖에 없다. 피비린내 나는 무사의 삶이 역설적으로 감성적 섬세함을 지향하게 했고 이것이 일본미학의 특성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돌로 자연을 응축시켜 그 풍취를 즐기는 ‘분석(盆石)’이라든가 ‘분재’, ‘꽃꽂이(幻)’ 등은 이러한 일본적 풍토에서 나온 미학이다. 따라서 일본의 선사상은 일본의 예술사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일본 특유의 미학은 이를테면 돌 몇 개만이 놓여 있는 ‘요안지(龍安寺)의 세키데이(石庭)’이라든가, 이우환도 자신의 작품세계로 근거로 인용하고 있는 센리큐(千利休, 1522-1591)의 낙엽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각주8) 가령 이우환이 『만남을 찾아서』 란 글에서 예로 든 길바닥에 고인 물에서 체험하는 만남(각주9)이라든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유리 컵과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일본적 미학의 전형적 한 예다. 가령 이번에 그의 작품의 근거로 호암갤러리 2층에서 함께 전시된 여러 가지 그의 애장품인, 청동 종 파편과 깨진 조선백자 달 항아리, 그리고 작은 테라코타 편지, 그리고 매우 조그만 청동으로 만들어진 부처 손가락 파편 등도 일본적인 섬세함의 지향인 ‘만남을 찾아서’에 가장 부합되는 사물들이다. 결국 이와 같이 극히 순간적 명징한 체험 속에 모든 삶의 궁극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본의 전통적 미학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각주8) “어느 가을날 센리큐는 정원에 흩어져 있던 낙엽을 감상하고 있던 중, 감동 속에 영감을 얻었다. 그는 정원 전체를 깨끗이 쓴 다음 낙엽 몇 개를 주워 다 다시 그 자리에 뿌려 놓고 마음껏 즐거워했다. 진정한 창조는 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약간 어긋나게 함으로써 세계의 신선함을 드러내 주는 데 있다.”이우환, 이우환(Lee Ufan), 미술출판사, 도쿄, 1986. 각주9) 비가 내린 길을 걸으면 그곳에는 많은 웅덩이가 있다....(중략)...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던 보행자는 문득 어느 웅덩이 앞에 돌연히 멈춰 선다. 다른 것과 특별한 차이도 없지만 왠지 가까이 다가가서 그 웅덩이 앞에 움추려 서버린 것이다. 그 웅덩이가 재빠르게 윙크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물웅덩이 어딘가에 자각감관이 반응하기 쉬운 성질을 개시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 물웅덩이의 성감대와 그의 의식 흐름의 어떤 촉수가 마침 적시에 세계와 접촉했다는 것일까? 어찌 됐거나 그때의 그는 확실히 그곳에서 세계의 어떤 선명함을 ‘본’ 것이며, 그렇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세계의 이상적 모습과 순간적으로 ‘만났다’고 느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중에서 인용. 일본에서는 나라(奈良)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이미 일본 특유의 심미적인 예술성이 고도로 발달한다. 노리나가(本居宣長)의 모노아와레(物のあわれ)(각주10), 즉 사비(寂び)(각주11)니 와비(?び)(각주12)와 같은 정(靜)적인 감상주의를 말한다. 특히 바쇼의 하이쿠(5,7,5조로 된 일본 고유의 단형식)에서 볼 수 있는 간결성이 이우환의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형식적 간명함은 미니멀적 단순성과 하이쿠 미학의 결합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그의 ‘최소한’의 논리는 ‘청빈(淸貧)’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이 청빈이 특히 일본에서 하나의 미학적 삶의 양식으로 구현되었다(각주13)는 점에서 그가 지향하는 작품의 두드러진 특성인 최소한의 미학은 이 청빈과 분명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절제된 삶 속에서 역설적으로 무한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일본의 청빈사상이다. 각주10) 물성의 가련함, 비애를 느끼게 하는 모양을 뜻함. 각주11) 정취, 아취를 의미함. 각주12) 한적함, 간소하고도 차분한 아취, 유한한 정취를 의미함. 각주13) 특히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의 선승이자 시인인 료칸(良寬, 1758-1831)이나 다치바나 아케나(1812-1868) 등이 유명하다. 물론 이러한 청빈사상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 죽림칠현이나 도연명의 삶에서 유래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들어 이러한 청빈사상이 없지 않으나 일본처럼 삶의 미학으로까지 구현된 것은 아니다. 이우환의 사상적 기반은 그의『만남을 찾아서』란 비평집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우환은 데카르트 이래 자연을 대상화한 서구의 근대주체 철학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즉 이우환은 “근 사오백년간 근대미술의 번영과 조락과정은 상(像)의 형상화라는 표상작용의 역사이다. 만든다는 것은 이념의 대상화 즉, 상의 물상적 응결화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다.(각주14)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물상을 이념적 존재로 변질시킨 결과 근대 공간은 마침내 이념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각주15)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성립한다. 여기서 이우환이 지향하는 미학적 세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른바 그의 ‘만남’에 대한 갈구와 그러한 만남을 가능케 한다는 ‘구조’, 또 만남이 구조가 된다는 ‘장소’ 와, 그의 ‘관계’철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각주16) 각주14)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서두 부분에서 인용. 각주15) 이우환, 앞의 글에서 인용. 각주16) 장소성은 칼 안드레가 제시한 것으로 현대 조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지만 이우환 조각에세 만남이 구조가 된다는 것은 일본 정원을 상징하는 금언인 “石を見るな石組を見よ(돌을 보지 말고, 돌을 놓은 그 짜임새(構造)를 보라.)” 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의 철학적 인식은 “의식이 존재를 결정 한다”는 서구 근대철학의 주객 이원론적 인식론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도 신체성에 기반을 둔 현상학적 철학은 그의 예술의 이론적 토대인 것은 자명한 것이다. 물론 그의 만남의 철학이 과학적 인식, 즉 의식 전반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20세기 중에서 가장 급변하는 시기였던 60년대적 시대상황, 이를테면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적 문명을 반성하는 징후인 히피문화의 출현이라든가, 포스트 모던적 사상이 대두하던 시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으며,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이우환은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반과학적인 사상인 현상학에 경도될 수 있었고, 또 이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동양의 사상,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서의 시공적 체험 등이 복합적으로 착종된 그의 예술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미학은 무엇보다 반과학적인 생각이 깔려 있으며, 특히 일본적 풍토의 소산인 미학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특히 그의 작품에 있어 핵심적 지향성인 “만남”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작품에서 한국적 요소는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바로 미니멀과 일본 미학 그리고 어릴 때 한국에서의 붓글씨(사군자) 등 이 모두를 ‘비빔밥’처럼 종합하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특성이 아닌가?(각주17) 무엇보다 그가 『이조의 민화』란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을 의식하지 않은 미완결성(각주18)이 그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측면이다. (이러한 해석과 관련하여 그의 조각에서는 ‘의도적 어긋남’과 무한을 지향하는 ‘외부성’으로 표현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우환의 그림이 80년대 들어서는 한 때 화면이 국악의 산조(散調)처럼 흐트러지면서 자율성의 진폭이 커진 것도 이러한 한국적 전통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각주17) 한국의 고대 기층문화는 북방의 유목문화와 남방의 농경문화의 만남(비빔밥)의 역사이다. 사상적으로는 원효와 지눌 최제우의 사상, 예술적 측면에서는 백남준과 강익중의 예술세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각주18) “이조의 화가들은 초인간적인 이상을 보여줄 만한 원경을 그리지도 않고, 범할 수 없는 대상의 존재성에 육박하는 근경을 그려내는 일도 없다...(중략)... 애매모호한 성격의 점과 선으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대상의 윤곽을 대충 그어대는 것으로 붓을 놓고 있다.” 이우환, 『이조의 민화』, 열화당, 1988, 10쪽. 이우환의 최근 작업의 특성 그런데 90년대 들어 이우환은 화면에 점 한 두개를 그리는 정제된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여백의 미학의 근거는 불교의 공(空)사상이나 노자의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각주19)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실 선 하나 점하나 찍어 놓고 ‘여백의 미’를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색(色)과 공이 둘이 아니다’는 ‘색공불이(色空不二)’ 사상은 여백 일변도의 공사상의 허구성을 알게 한다. 흔히 대개의 작가들이 말년으로 갈수록 작업이 단순해지는 것은(각주20) 그저 양식적 세련미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고도로 응집된 차원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우환의 최근 회화 작업인 <조응>시리즈의 극도로 간명한 양식적 단순성은 지금까지 그가 해온 발언과 작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각주19) ‘허(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하게 한다’는 뜻임. 각주20) 물론 프랭크 스텔라처럼 역으로 간 케이스도 있다. 예술가의 길이란 분명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므로 도를 닦는 수련의 과정에 비유된다. 그러나 예술의 길이 도를 닦는 과정일 수는 없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내면적 마음의 수련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각예술의 길은 늘 즉물적인 현실과 대면하며 특히 회화나 조각은 그 즉물성으로 표현되는 세계다. 이 즉물적인 현실은 우리의 마음과 언어 이전의 세계이다. 이에 따라 하나의 시각예술 작품이 갖는 울림, 즉 감동의 유발 요소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실존적 현실’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표현의 다양성(차이)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가령 극단적 단순재현도 극단적인 추상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결국 이룰 수 없는 허상의 편향적 추구였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극미의 세계이면서도 극대의 세계이고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다중적 복수성과 모호성이 시각예술의 본질적 특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다중적 복수성을 외면한다면 그만큼 스스로 표현을 제한하는 것이고 편협함을 노정하는 길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팔대산인의 그림에서 극대화된 여백의 미학은 그 이면에 그의 비극적 생의 비통함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깊은 감동을 유발한다. 그러니까 팔대산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백과 극히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필획은 그러한 비통함에 초연하려는 의지가 극히 역설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우환의 최근 작업인 <조응>시리즈는 예측 가능한 추상적 구성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붓질과 여백은 단지 형식적인 간명함과 단순성으로 느껴진다. 즉 ‘양식화된 제스처’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 작품에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한 열리는 앙양된 공간”(각주21)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최근 작품들은 극히 정제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붓질과 여백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자신의 예술세계를 ‘브랜드’화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각주21) 이우환, 김춘미 옮김, 앞의 책, 17쪽 어떤 의미에서 작가들은 평생 ‘과정’의 삶을 산다. 그것은 일찍이 마르셀 뒤샹이 간파했듯이 예술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정답을 찾으려는 삶의 진정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화된 제스처야말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길이 아닌가? 요컨대 그것은 예술을 가장한 고급 상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이우환이 국제적으로 평가된 것은 서구(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인상파에 일본 미술이 영향을 준 이래 일본이 갖는 문명적 차원에서의 위상 때문이다. 예컨대 아놀드 토인비가 그의 『도전과 응전』에서 일본을 중국과 별도로 하나의 단일 문명권으로 다루었을 정도로 서구에서 일본의 위상은 두드러지며, 이는 한 때 유럽 공동체와 비견될 정도였던 일본의 전후 경제력, 수십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던가, 불교의 유식사상에 근거한 객관적 인식론에 대한 회의와 일본적 영상미로 세계영화사에 충격파를 던진 쿠로자와 아키라의 <라쇼오문>이란 영화,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와 같은 세계적인 선(禪)사상가 등의 존재에 의해 일본의 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특히 유럽에서 그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 때문에 일본의 한 현대미술작가로서 이우환의 위치는 자리 매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매김을 발판으로 결국 지금 한국에서도 대접받는 화가가 된 것이다. 맺음말 이우환의 예술세계는 우리 현대 미술사에 끼친 적지 않은 영향으로 인해 이미 미술사적 의의를 갖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며, 특히 그의 삶과 예술세계가 경계인적 다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우환의 작품세계, 그 중에서도 <조응>시리즈 이전까지는 크게 보면 다중적 요소가 착종된 경계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경계적 삶을 토대로 항상 양의적인 발언을 해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보거나 보이고 있다는 것, 동일성과 차이성, 현실과 관념, 그리는 것과 그리지 않은 것, 물질과 정신, 자아와 타자(외부), 인위와 자연의 경계에서 신체의 행위를 매개로 중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작업과 80년대의 <바람과 함께> 시리즈에서는 그의 이러한 지향성에 근접하는 듯한 징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보여주는 그의 작가적 행보와 작품의 경향은 더 이상 경계인의 삶과 예술이 아니다. 즉 최근 이우환의 작업은 일본적 탐미주의의 현대적 변용으로 그만큼 표현의 범주를 스스로 제한하면서도 그것을 ‘여백의 미학’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근의 패턴화된 붓질과 여백은 중국 청대의 일부 수묵화가들이 필묵유희에 빠져 말폐를 드러내었듯이 동양권 예술가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공소한 속성인 것이다. 최근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원점에서 예술의 가치를 되물음으로서 우리의 삶을 확장해왔던 현대미술가로서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2003년 10월 25일.
22 no image 이우환_만남을 찾아서 심포지엄을 보고(최 선) (2003.11.3)
소나무
3853 2007-06-05
이우환_만남을 찾아서 심포지엄을 보고(최 선) (2003.11.3) 전원길 옮김 2004/2/20 (23:15) 이우환_만남을 찾아서 심포지엄을 보고 최 선 (작가) 무너진 기대 지난 10월 23일 삼성미술관과 삼성생명 그리고 중앙일보의 주최로 최근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우환의 전시회에 따른 학술행사가 열렸다. 학술행사의 자리를 위해 국내 대학의 저명한 학자들이 발제와 질의를 마련한다고 해서 내심 공부할 좋은 기회라고 여겨져 일찌감치 예약을 하고 시간을 내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유명한 분들의 발제와 질의가 미술작품의 동기와 제작의 이해조차 없는 것이어서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자적 자존심을 뒤로하고 스스로 준비가 소홀해서 죄송하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연거푸 내뱉는 발제자와 이해의 차원을 떠나서 알아듣기조차 힘든 발성으로 말하는 발제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것은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었다. 현대미술을 현대미술이게 만드는 수많은 동기들이 있을진대, 그러한 동기들과 그 주변맥락의 이해와 그 동기를 통해 만들어진 '미술작품'이 보여주는 또 다른 가치를 살피기보다는, 방법론적 오해와 형태적 유사성을 들어 작품의 맥락을 오독誤讀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비평의 오류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미술현장의 프로세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발제자 자신들의 지적 한계의 틀로써만 해석하고 재단하려 드는가 하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고 담론을 형성해 가는 미술비평의 순기능에 역행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이 땅의 미술비평과 이론의 현장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에 있는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또한 대중에 대한 현대미술의 이해를 도와야만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발제를 사전에 비평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학술행사를 진행한 삼성미술관측의 무책임한 모습 또한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발제내용에 대한 검증은 고사하고서라도 오 · 탈자나 아예 페이지가 빠진 발제문을 들고서 양해를 구하는 사회자의 비굴한 모습이 바로 이 시대, 이 땅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술관의 위상이란 말인가? 전시회를 기해 학술행사를 갖는 이유는 아마도 한 작가의 시대적 경험을 통해 문제의식과 그 대안, 그리고 그러한 대안의 표상물로 드러난 작품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가치는 무엇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가자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이번 학술행사도 그러한 목적의식을 바탕으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리라 기대했지만, 정작 삼성미술관의 학술행사가 보여준 행태는 내용적 빈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준비에서조차 소홀한 것 같아 매우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발제에 관하여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미경 교수는 한국 현대미술과 이우환의 영향관계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며 그 동안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에 얽힌 이우환의 오해를 독자들에게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무리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다른 이해를 돕기에 풍부한 도판자료와 보충설명을 곁들여 성실한 발제준비의 모습을 보였다고 하겠다. 하지만,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인범 교수는 부정확하고 속도조절이 안된 발음으로 발제에 앞서 자신의 발제준비가 소홀했음을 먼저 고백했으나, 그 고백이 발제에 앞선 학자적 겸손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 발제가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했어야만 했다. 잘못된 띄어쓰기와 오탈자는 우선 그 내용에 앞서 공식적 학술행사에서 학자가 발표하는 글로서 명백히 불성실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질의응답 시간에 발제자가 질의자(김수현)의 질의서(묶음으로 묶이지 못하고 낱장으로 삽입되어 있음)를 미리 받아보지 못했다는 고백은, 역으로 자신의 발제준비가 뒤늦게 서둘러 이루어졌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발제준비를 서두른 만큼 그 내용 또한 참신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에 있다. 그는 발제의 서론부분에 이르기를 "(이우환을) 어떤 울타리에 가두어 계보화하는 것 역시 그렇게 자명한 일만은 아니다"라고 발언하면서 이우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내 비출 것 같았으나 결국 글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이우환과 일본현대미술의 관계에 대한 단순소개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소개 또한 발제자 자신의 관점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다른 책, 남의 글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나하는 정도의 내용 소개에 그치고 말았다. 그의 글은 결국 자신의 이우환 읽기가 아닌 이우환과 일본현대미술의 거친 소개서 또는 초보적 리서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인범 교수가 밝히고 있는 "일본미술과의 관계 속에 이우환의 예술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생애 전반, 아니 적어도 그가 등단한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와 주변의 대화 · 조응관계 속에 일어난 미세한 흔들림들을 잡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필자로서는 벅찬 일이다."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우리는 모두가 이우환 자신이 되거나 그만큼의 시간을 연구에 투자해야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고, 그래야만 학술행사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모두가 이우환이 된들 그것이 또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지 모를 일이다. "미세한 흔들림을 잡아내야 할 것이다."는 문제를 앞두고 자신은 어떤 흔들림을 잡으려 했는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발제 전반에 걸쳐 자신이 생각하는 '미세한 흔들림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묻고 싶다. 접근 방법의 부재는 곧 논점 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므로, 그의 글 속에서 두어 번 반복되는 "이우환을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논지의 언급은 자신의 발제 준비의 소홀과 지적 역량의 부재를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패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할 뿐이다. 결국, 글의 에필로그에 가서 "이상이 '이우환과 일본현대미술'이라는 숙제에 대한 필자의 스케치이다."라고 스스로 글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자 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무엇 때문에 발제준비에 소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만, 자신의 시각이 없다면 학자로서 차라리 그런 자리에 나서지 말고 침묵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굳이 그러면서까지 발제를 수락한 이유가 무엇이며, 그런 발제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다는 말인가? 서론에서 이우환 읽기의 난점을 고백하고 그에 관한 속단을 주의하고자 하는 언급을 하면서 이우환의 일본미술 속 위상에 대한 치바 시게오千葉成夫와 미네무라 도시아끼峯村敏明 두 사람의 비평을 통해, 일본 비평계에 비추어진 이우환의 위상을 언급하고 있는 점도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발제문에 밝히고 있는 작년 이맘때의 한 세미나(ICAS주최 "한국현대미술다시 읽기Ⅲ 2차 세미나(2002. 11. 23 - 홍익대학교 K동 103호)"에서 이인범 교수가 사회를 맡아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세미나에서 치바 시게오와 미네무라 도시아끼가 직접 발제자로 나섰는데 그때의 그 둘 비평가의 모습이 인상 깊어서인지 발제문에 두 비평가의 입장을 거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인용에 사용한 치바 시게오의 "현대미술일탈사現代美術逸脫史"나 미네무라 도시아끼의 글이 서울현대미술연구소(ICAS)에서 출판된 "한국 현대미술다시읽기 Ⅲ-Vol.2(2003)"에 모두 언급되어 있음은 우연의 일치인가? 일본에는 이우환의 모노하론에 대한 입장 표명이 그 둘 비평가밖에는 다룰 사람이 없어서인지, 이미 책으로 출간되어 다루어진 비평가를 언급하기보다는 또 다른 비평을 다루어 보는 게 훨씬 참신한 발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결국 발제에 앞서 준비가 소홀했음을 고백하던 모습이 겸손에서 비롯된 모습이 아니라 실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유사성 속의 큰 차이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정희 교수는 이우환 작품(주로 모노하 시기의 작품)을 논하면서, 제작방식에서 "인위적 구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듯하며," 등 이우환의 작품이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해와 오해라고 주장했다. 이우환이 개념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개념과는 상치되는 제작방식, 즉 구성을 중시하는 제작방식을 따른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니멀리즘이 배제하려던 주요소임을 밝히고, 그가 미니멀리즘에 관해 오해를 빚은 것이라 결론 내린다. 말하자면 이우환이 미니멀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 따라했다는 말이고, 반면 자신은 미니멀과 이우환의 오해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역으로 발제자가 미술작품과 그 제작이라는 미술현장에 대해 작가의 입장, 그리고 작가가 영향을 받는 과정을 얼마나 도식적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우환이 스스로를 '장소적 미니멀리스트'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가 미니멀리즘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장소성'이 그 대안적 방법론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즉, 작품의 대상성(object-hood)을 빗겨 서서 인간의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열린 세계'를 제시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미니멀리즘과 커다란 담론의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미니멀리스트들과 이우환은 작품 제작에 있어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개입의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예를 들어 미니멀리스트들이 작품제작을 공장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제작을 거부한 반면, 이우환은 신체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시회장 안의 안내 비디오에서도 보여주듯이 그는 '조응'이라는 작품제작을 위해 다른 종이 위에 크기가 비슷한 점을 찍어서 미리 캔버스 위에 놓아 본 후 완성된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 이것은 그가 작품을 '제작'한다는 사실은 물론, '만남'을 강조하는 그가 어째서 미리 다른 종이 위에 점을 찍어서 캔버스 이곳 저곳에 놓아보는 것인지 의아한 대목이었다. 그것은 혹시 바로 자신의 미학 또는 생각인 '만남'을 표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미학 또는 생각과 작품제작이 구분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모든 점들은 미니멀리즘의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니멀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적 문제일 뿐이다. 철학과 미술이 같은 것이 아니라면, 이우환의 미학적 주장과 작품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우환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가리켜 김정희 교수는 "미니멀리즘 회화와 조각에서 배제하려던 주요소들이다."라고 언급, 이 점이 미니멀리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으나, 내가 보기엔 김정희 교수야말로 수많은 현대미술품 속에서 목격할 수 있는 유사성간의 너무나 큰 담론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유사성 속에서 발견되는 큰 차이가 사실상 다른 가치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 즉 오늘날 현대미술 맥락 속에서 오리지널리티와 모방, 혹은 유사성의 문제를 미술의 Identity를 결정짓는 요소로 보고 있는 것 자체가 김정희 교수의 현대미술에 관한 이해의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점은 이미 김정희 교수의 작가 안규철에 대한 비평과 서울현대미술연구소의 한국현대미술 다시읽기Ⅰ-2000년에서의 발제 등등에서 보여주었던 한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서 실로 한심해 보인다. 김정희 교수가 자료로 제시한 슬라이드 중에서 첫 번째로 제시한 "흙바닥 위에 흩어져 있는 자갈과 돌 사이로 한쪽이 1/4정도쯤 잘려 분리된 직사각형 철판을 우연히 놓인 듯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 슬라이드는 이우환의 미학이 어떤 식으로 작품화되는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도판자료 자체가 이우환의 작품의 입장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고, 오히려 현대미술 존재방식에 대한 발제자의 인식이 근대적, 물질적 시각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우환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편협한 지식의 차원에서 작품의 가치를 재단하려 하는 비평의 오류가 얼마나 몽매한 짓인지를 우려하는 것이다. 김정희 교수는 이우환을 평가하기 위해 왜 미니멀리즘을 비교의 기준으로 삼아야 했는지, 또 왜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나는 발제자의 인식이 오히려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혹은 신식민주의 사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미술현장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작가의 회고전에 비판적 발제를 맡고 나서는 것이 우리 미술 이론계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김정희 교수의 발제에 대한 질의자로 나선 김현숙(미술평론)씨는 질의의 끝에 "평소에 궁금했던 점인데, 이우환이 제시한 '만남의 장'에서 진짜 만남이 이루어져 왔는지가 궁금합니다."라는 질의를 던져 심포지엄장에 웃음을 던졌다. 그가 이우환의 만남과 그 '장소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장소성'을 돌에서 찾을 것인가, '철판'에서 찾을 것인가? 미술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 땅의 최고권위의 미술관은 무엇을 하는가? 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미술관은 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는가? 심포지엄의 주최자인 삼성미술관은 그 재정적 규모나 여론형성의 역할에 있어서 명실공히 한국 최고 수준의 미술관으로 손꼽히고, 그래서 이번 이우환전과 같은 대규모의 전시회를 개최했겠지만, 과연 내용적 측면에서도 그런지는 의문이다. 우선 이번 심포지엄의 수준만 보아도 그렇다. 자신들이 야심만만하게 기획해서 만든 전시회를, 자신들이 지명한 발제자가 서구미술의 '아류'라고 몰아붙이는 웃지 못할 일을 돈 들여서 기획한 셈이 되었다. 과연 삼성미술관은 아류작가의 회고전을 그토록 거창하게 치르고 있다는 말인가? 비록 발제자가 원고마감 기한을 지키지 않아 발제의 내용을 사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초보적 리서치 수준에 불과한 발제와 각도 없는 중구난방의 비평을, 자기모순의 부담을 안고 그대로 발표시킬 수밖에 없었을 만큼 무기력하고 非전문적이며 또한 불성실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최고의 권위를 지닌 미술관은 그 위상과 함께 그만큼의 대중적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신중한 발제자 선정과 발제의 방향성 그리고 궁극적 목적과 진행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발제자들과 어떤 사전 논의가 있기나 했었는지 의문스럽다. 그렇게 해서 진행되었던 심포지엄은 발제는 물론 질의와 토론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자리에 시간과 돈을 들여 참석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것이야말로 무책임한 show가 아니가? 김정희 교수의 발언대로라면 서구의 아류, 사이비 작가를 위해 대대적인 회고전을 기획 · 홍보하고 학술심포지엄까지 열고 있는 삼성미술관보다 더 멍청한 미술관이 또 있겠는가? 또 값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멀리서부터 전시회를 보러오는 수많은 감상자들은 또 뭐란 말인가? 신문과 잡지들, 그리고 다른 미술이론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며, 독자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기만당해도 좋다는 말인가? 미술관의 거창한 행사에 비해 과연 독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며, 이런 행사를 통해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운운한다는 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의 전시는 단순히 생산된 미술품과의 작가의 유명세를 소비시켜 이윤을 챙기는 장사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일이며, 그와 같은 노력 없이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미술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삼성미술관은 이 전시가 성공적 전시였다고 자화자찬만 하고 있을 것인가? 2003년 10월 30일
21 no image 작업실15- '작업실운동'을 위하여 (2003.10.10)
소나무
3034 2007-06-05
작업실15- '작업실운동'을 위하여 (2003.10.10) 전원길 2004/2/20 (23:12) ‘작업실 운동’을 위하여 나는 지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실이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와 관련하여 여러 편의 글을 수원 미협 홈페이지 및 경기 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올려왔다. 내가 이런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런던의 작업실 빌딩에 머물면서 그곳의 작가들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이 있었고, 학교를 마칠 무렵 영국의 아트 카운슬(Art Council)에 소속된 직원이 학교를 찾아와 자신들의 작업실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입주 신청을 받는다든지(신청 후 1년 6개월 정도 기다리면 거주하며 작업 할 수 있는 작업실을 저렴한 임대료를 내면서 평생 사용할 수 있다.) 델피나 스튜디오(Delphina Studio)와 같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Residence Program)들과 관련된 정보를 접하고 생각되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귀국 후 마땅한 작업실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 하다가 조각하는 선배의 배려로 화성시 수기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 한 켠에서 일 년간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2001년 서울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위한 중요한 작업의 실마리를 풀었고, 그 이후 나름대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실과 그 작업실을 매개로 다른 작가들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독립된 작업실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상상력이 숨쉬는 공간으로서, 인습과 편견으로 가려진 세상 너머를 넘나들며 세상 이면의 비밀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으며 어제까지의 작업의 흔적이 생생한 장소여서 작업의 리듬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장소이다. 그곳은 작가의 정신의 작용과 작업 과정이 때로 충돌해 해결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찾아온 신비한 힘에 의해 완벽한 조화의 세계를 이루어내는 성스러운 장소인 것을 나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경험하고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즉 작업실은 작가로서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명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대학 혹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교의 실기실을 떠난 후에는 계속해서 자신을 검증하고 새로운 사상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없으며, 작가가 창의성을 발휘함으로써 얻게 되는 최소한의 존재가치를 확인해 줄 공간 즉, 작업실을 마련하는 일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보편적으로 유통되지 않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 스스로 작업실 공간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을 전폭적으로 받는 작가라면 별 문제다. 사실 요즈음 소위 잘나가는 작가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유학파가 많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는 “문화예술이 곧 국가 경쟁력”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일을 수행할 작가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예술가들은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고 제일 먼저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레이더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또한 사회의 통념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굳어진 감성을 자극해 풍요로운 정서 속에 살아가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을 자기만족에 빠진 사회 부적응자 혹은 고상한 한량들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오히려 그들의 삶을 격려하고 그들의 창의적 상상력이 온전하게 발휘되도록 돕는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예술가를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사회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고독하고 혼자 가기 힘든 길이다. 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이 각기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그 가치를 나누는 분위기속에서 세계 속에 우뚝 선 작가가 배출될 것이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지금의 뉴욕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익히 아는 뉴욕파(New York School)의 멤버들, 호프만, 고르키, 드쿠닝, 폴록, 로드코 등이 서로 작업실을 방문하고, 주말이면 만나서 작업에 대한 고민과 토론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유럽풍의 미술에서 벗어나 미국의 독자적인 미술을 출발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물론 이들의 주변에는 구겐하임 같은 헌신적인 컬렉터와 그들을 이론적으로 격려한 그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평론가가 있었으며, 대공황으로 어려운 시기에 ‘예술가 고용정책’(The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과 같은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 루즈벨트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들이 만나서 서로를 확인하는 것은 출신학교를 따지는 일이 아니며, 얼마만한 활동 경력을 가졌는가도 아니고, 더욱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떻게 경제적으로 윤택한지 아닌지도 아니다. 다만 작업실에서 만들어내는 작품을 통해 그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이 과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유와 작업의 과정을 통해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남의 것을 카피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것인 줄 알고 있는지 서로 검증해 주는 과정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이 정직하게 영위되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즉 작업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진정한 동료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한 사람의 전문 작가는 천만금보다도 소중하다. 진정으로 작업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해 주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또 작가의 길을 가기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업실이 제공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그 가치를 아는 작가들이 이 운동에 함께 협력해야 한다. 자신의 절실한 상황을 표명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래야 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나 건물 중에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던 것으로 작업실 타운을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겠는가? 혹은 빌딩 한 층을 작업실로 개방하고 매년 작가들의 작업 결과를 전시회로 여는 뜻있는 건축주나 사업가가 나올 수 있도록 유연하고 실용적인 제도도 개발해 내지 않겠는가? 나는 최근에 프랑스의 한 작가로부터 자신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이 과거에는 맥주공장이었는데 그 공장을 운영하던 사람이 자신의 공장을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실로 개조하였으며, 이제 그 장소는 프랑스 미술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자치단체의 문화정책들이 행사위주의 단순함에서 벗어나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정책을 실행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작업실이 한 개 두 개씩 늘어간다면 유능한 작가들이 서울의 비싼 작업실을 비우고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수원 일원의 대학 교수들도 방과 후 이곳의 작업실에 남고, 이곳 미술대학을 졸업한 예비 작가들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졸업한 학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역 문화 예술계를 살찌우는 작가로 성장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화적 현상들은 본래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태어났으며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 삶의 곳곳에 배어있다. 작가들의 작업실이 빈곤한 나라는 결국 다른 나라 작업실에 힘입어 살아가는 문화 예속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나의 의견에 공감하는 작가들과 자치단체, 문화예술 관련단체의 행정가, 그리고 지역의 유지 및 미술 애호가들의 적극적인 상호 협력으로 미술문화 활성화를 위한 ‘작업실 운동’의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사회가 미래의 문화 중심도시로 발전하게 되길 바란다. (2003.10.10)
20 no image 작업실14- 평론가2 (2003.9.24)
소나무
3226 2007-06-05
작업실14- 평론가2 (2003.9.24) 전원길 2004/2/20 (23:8) 평론가 2 서구미학에 종속된 상태에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미술의 형식을 세계화단에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세계 미술의 주류 맥락에 대응하지 못하고 낭만적 열정만을 불태우는 학습되지 아니한 작가들 탓만은 아닐 것이다. 평론가가 자신이 원하는 연구와 글쓰기에만 깊이 몰두하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열악하여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그 사정이 딱한 작가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미술계 전체가 허약한 것이다. 우리가 단번에 업그레이드되어 선진 미술 국가가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 할 수 있는 풍토마저 잃어버린다면 어찌할 것인가? 경기 지역 미술계는 중앙의 꽉 물린 권력 구조의 틀 속에서는 만들어내기 힘든 새로운 풍토 조성이 가능한 곳이다. 비록 전문적인 작가의 수가 적고 열악한 미술환경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새롭게 뭔가를 형성 시킬 가능성은 오히려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에서 작업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은 그들의 역량과 지명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가능성을 실현할 중요한 주체인 것이다. 본인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토론을 하면서 현 미술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다. 이번 박 선생의 실책+거짓말은 너무 쉽게 지역 미술계를 재단함으로서 생긴 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 살고 활동하든 자의식이 분명하여 심각하게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단 몇 명이라도 있다면 지역미술계는 그들로 인하여 희망이 있는 것이며 그들이 비록 독립적 행보를 하고 있더라도 미술계의 주류인 것이다. 마침 경기문화재단과 경기일보가 지역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평론가의 실질적인 만남을 위한 장을 제공하였고, 평상시 지역미술에 대한 냉정한 견해를 말 돌림 없이 직접적으로 피력해온 박 선생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들에게 개관적이고도 현실적인 조언을 함으로서, 지역미술계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 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게으름을 넘어서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안타까운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유망한 평론가의 너무도 인간스러운 실수를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있던 일이 없던 일로 될 수는 없기에 이미 스스로 많은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에 접하면서 평론가의 역할이 갖는 권위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은 겸손함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나는 작가들이 평론가들의 눈과 정신을 이끌어 갈 만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작업에 정진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함께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시대의 보편적 인식의 틀 밖으로 자신을 옮기는 용기가 없어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앞서야 할 자들이 뒤 따라야 할 자들의 뒤에서면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원길의 글 작업실 시리이즈는 '작업실 운동'을 중심으로한 지역 미술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견해를 밝히는 글로서 여러분의 소감과 의견을 기다립니다.
19 no image 작업실 13-평론가 1 (2003.9.24)
소나무
2626 2007-06-05
작업실 13-평론가 1 (2003.9.24) 전원길 2004/2/20 (23:6) 평론가 1 한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거니는 정신적 행로는 그 거리를 측정할 수도 없고, 되돌아 왔던 길을 다시 더듬을 수도 없이 복잡하다. 그 길은 작가가 몸으로 부딪쳐 지나온 작업의 과정에 묻히고 지워지는 까닭에 작가 자신도 그 작업의 근거를 되살려 이야기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 것이다. 반면에 평론가들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미술사속의 방법론과 그 미학적 틀 속에서 형성된 이론적 아이디어, 그리고 개인의 심미적 관점을 가지고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낸다. 그러나 시대를 넘어서는 예지를 가진 예술가가 기성 사회의 보편적 인식의 틀을 벗어나는 작품을 제시했을 경우, 당대의 평론가들의 역할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예술 작품인 것을 확인하기위해서는 새롭게 확장된 인식의 틀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보통 한 세대를 넘는 세월을 요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예술가의 창의성은 그 세월의 외로움을 감내하려는 용기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미술사는 탁월하고도 용기 있는 예술가들이 주도했으며 평론가는 한번도 진정한 예술가들의 앞에 서거나 나란히 전진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작품을 전제로 평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발걸음 보다 빠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가들이 남기는 흔적 즉 예술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연결하거나 작가들의 행로를 보다 효율적으로 정리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현대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거하고 있다.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미술 형식을 분석하고 그 숨어있는 미학적 가치를 드러내줌으로서 작가들이 용기를 가지고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는 이론적 지원사격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미술이 지난 20세기를 통하여 극단적인 형식화의 길을 걸어온 만큼 하나의 작품이 정당한 의미를 획득하도록 역사적 배경과 그에 따르는 방법론을 분석하고 전달해주는 평론가의 역할은 권위를 넘어서 미술계의 권력의 주체가 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지금의 미술은 매우 사적인 경험을 다루거나, 다양한 방법론에 의거한 개념적 작업방식이 많은 까닭에 하나의 잣대로 일관성 있는 평가를 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통일된 주제 혹은 방법론으로 묶어내는 전시기획자들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스타 작가보다는 헤랄드 젠만과 같은 세계적인 전시기획자가 더 유명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가장 염려하는 것은 작가들 이라기보다는 전시기획자 자신들이다. 왜냐하면 기획자가 작가들보다 앞서가서는 기획자의 구미에 맞추어 작업하려는 작가들만 생기게 되고 전시 기획자의 상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작가 군의 형성이 더뎌지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결국 자신들의 일거리가 진부해지기 때문이다. 평론가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감상의 통로를 찾을 수 없게 된 현대미술에 있어서 평론가의 역할이 증가되었다손 치더라도 작가를 앞세우지 않고는 신나는 평론거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2003.9.24)
18 no image 작업실 12 (2003.9.12)
소나무
2838 2007-06-05
작업실 12 (2003.9.12) 전원길 2004/2/20 (23:3) 작업실 12 어느나라든 예술계는 다양한 층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전문 작가그룹과 아마츄어그룹이 각기 다른 미술계를 형성하면서 전체 미술계에서 공존한다. 여기서 전문 작가라 함은 단순히 기능을 연마하여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시키는 방법을 실험하거나 더나가서 새로운 미술 형식을 추구하는 작가들을 말한다. 이들은 한나라의 미술계를 선도하는 그룹이라 할 수있고, 이러한 작가들은 대부분 그 나라의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몇몇 대학에서 길러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학에는 재능있는 학생들이 몰려들게 마련이고 그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 중에는 3수이상의 장수생도 허다하다. 나는 최근에 그런 대학중의 하나인 모 대학의 미술디자인 교육원으로 부터 프로그램과 강사진에 관해 선전하는 광고 전단을 한장 받았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화려한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띄게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교수진의 경력 중에서 유독 미술대전 심사경력만을 집어넣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교육원측에서 수강생을 모집하기위하여 수강생의 관심을 끌만한 경력만을 임의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 아마츄어리즘의 낭만적 허영심과 그것을 이용하여 학교 재정을 보충하려는 의도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현장을 본 듯하여 씁쓸한 기분을 접을 수가 없었다. 일반인들도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소위 우리나라의 미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학에서 그리고 교수진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일에 참여하도록 해야하는지는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문화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라는 이야기는 이제 구호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한 사람의 창의적인 예술가가 국가의 장래를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재를 길러내야 할 대학과 교수들은 이제 국익을 위한 가장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이된다. 정부는 이제 국가 경제와 외교 전략 뿐아니라 문화 전략을 세우고 수행해야하는 전문 집단 즉 교수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도와야 할 것이다. 일류 대학 교수들이 사회교육원 혹은 아르바이트을 위해 입시 학원가를 맴돌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대책을 마련해야만 세계 속에 우뚝선 문화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03.9.12)
17 no image 작업실11 2003 금강 국제 자연 미술제;프레비엔날레 (2003.8.16)
소나무
3113 2007-06-05
작업실11 2003 금강 국제 자연 미술제;프레비엔날...(2003.8.16) 전원길 2004/2/20 (22:57) 작업실11 2003 금강 국제 자연 미술제;프레비엔날레)를 참가하고 공주에서 열리고 있는 금강 국제 자연미술제는 본 게시판에 김희곤 선생님이 소개한바와 같이 공주의 산성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자연 미술제로서 23명의 외국작가를 포함하여 5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참여작가들은 2주간 공주에서 머물면서 현장 작업을 진행하였고, 매일 밤 참여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슬라이드 혹은 빔 프로젝터을 통하여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학구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수원에서 참가한 이우숙은 '지팡이와 방망이'전에 출품하였던 비디오 작업을 보여주었으며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었다. 또한 행사 전기간을 현지에 머믈면서 가장 활발하게 여러나라의 작가들과 교제하는 것을 보면서 수원미술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이 미술제는 야투자연미술연구회라는 그릅의 소수멤버들에의하여 정열적으로 진행되었다. 1990년까지 이그룹의 멤버였던 본인은 참으로 오랫만에 이들과 함께하였으며 전시진행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것을 생각하게되었다. 첮째는 공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지역작가들이 자생적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새로운 미술운동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은 한국의 미술사에 있어서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야투는 국제 자연미술운동의 중심에 서있으며 야투회장인 고승현은 국제 자연 미술 네크워크의 부회장을 역임하기도했다. 둘째는 행사진행과 관련하여 지역사회와의 협조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행사 본부로 사용한 구 공주 경찰서 3층건물은 사무실과 식당 그리고 숙소로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행사진행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역할도 돋보였다. 세째는 자연미술 운동을 지역사회의 사업으로 연결하여 내년부터는 격년으로 열리게되는 국제 자연 미술 비엔날레로 발전시켜가고 있다는 점이다. 야투는 이를 위하여 공주시를 비롯한 충청남도 그리고 지역사회 소재 대학의 공조를 이끌어내었다. 공주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하루 여행 코스로서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10월 12일까지 열리는 미술제 기간에 공주 박물관과 무녕왕릉등을 함께 다녀온다면 좋은 여행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원길의 작품과 작품 설명은 http://artnot.com/2003pb-photos.htm 에 있습니다. 행사기간 중 나는 외국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각 지역의 자생적 미술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였으며, 특히 다른 지역의 국내 작가들이 바라보는 수원의 위치는 본인이 여러차례 각기 다른 자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울과의 인접 도시라는 특수성과 관련 중요한 역할이 가능하고 그러한 역할을 많은 작가들이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수원 미협은 수원 미술전시관을 수년간 관리하면서 지역사회 문화 예술 발전의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 미술계는 이러한 역할을 책임있게 수행하여야 하며 모든 정책은 사심이 없는 토론을 통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미래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져야 만 한다고 생각한다.(2003.8.16)
16 no image . Re:작업실11 2003 금강 국제 자연 미술제;프레비엔날레
소나무
3391 2007-06-05
15 no image 작업실 10 (퍼온글) 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조성 실태(2003.4.23)
소나무
3012 2007-06-05
작업실 10 (퍼온글) 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조성 실태(2003.4.23) 전원길 2004/2/20 (22:43) (연합뉴스 임형두 글 퍼옴 ) 경기도 고양에 국립 미술창작 스튜디오가 하나더 생기는 것은 미술인들에게 희소식이다. 미술인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과제는 창작과 전시 공간의 확보. 아직 기반이잡히지 않은 신진일수록 이같은 어려움은 더하다. 정부는 창작공간을 구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유망 신진작가들을 위해 창작미술스튜디오를 차례로 건립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서울 창동미술스튜디오가 제1호이고, 오는 11월 준공되는 고양미술스튜디오가 두번째이다. 창동스튜디오의 경우 터 452평, 연면적 453평 건물에 평균 17평 짜리 작업실 14개를 갖추고 있다. 고양스튜디오는 이보다 규모가 더 커서 터가 1천240평에 달하고건물 연면적도 726평에 이른다. 모두 23개의 작업실이 있으며 각 20평이다. 이들 스튜디오 입주작가는 사용료 월 5만원에 불과한 이 번듯한 작업실에서 마음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작업성과를 내보이는 전시실도 확보돼 있다. 고양스튜디오의 경우 1인용 침대와 간이 싱크대가 설치돼 숙식이 가능하다. 아쉬운게 있다면 인원이 제한돼 있고, 입주기간도 1년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는 국립과 공립, 사립을 합해 모두 30개소에 가까운 미술스튜디오가 운영 또는 조성되고 있다. 이중 공립은 23개소로 17개소는 현재 운영중이고, 6개소는 조성 단계다. 폐교 등 유휴시설을 활용한 공립 스튜디오는 정부가 전액 예산지원하는 국립과 달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50%씩 부담한다. 사립 스튜디오로는 ㈜쌈지가 운영하는 서울의 쌈지스튜디오와 대유문화재단이 조성한 경기도 광주의 경안창작스튜디오를 들 수 있다. 서울 가나아트센터가 전속작가에게 제공하는 가나 아틀리에와 약사 권창호씨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경기도 파주의 하재마을도 사립스튜디오로 분류된다. 1998년 이후 생겨난 공립 스튜디오의 경우, 공간이 지방의 외진 곳에 있기 마련인데다 운영비 조달이 쉽지 않아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립스튜디오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다 사용료가 상대적으로 부담스럽고 수용인원이 적어 대부분의 작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국립 스튜디오는 이같은 현실을 고려해 조성되고 있다. 창동과 고양 스튜디오가서울과 그 인근에 위치해 접근성 문제를 해결했고, 사용료도 저렴해 부담을 덜 수있다. 정부는 이들 시설을 모델 삼아 지원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나아가공립 스튜디오를 각 시.도에 1개씩 세운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미술계는 국가 지원의 스튜디오들이 잇따라 건립되는 것을 반기는 한편 그 혜택이 아직은 일부에 그쳐 아쉽다는 반응도 나타낸다. 창동과 고양을 합쳐도 입주작가가 40명에 못미쳐 선정기준을 놓고 불만이 생길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선정이 공정하게 되도록 다각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창작공간과 더불어 전시공간의 제공도 생각할 때가 됐다는 견해가 있다. 두 국립 스튜디오의 전시실은 외부 작가들이 활용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작가를 위해서는 인사동 등 서울 도심에 국가예산 지원의 복합전시공간을 확보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가 박진화씨는 "작가가 개인전을 열 경우 대관료, 도록제작비 등으로 보통 500만-1천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면서 "복
14 no image 작업실 9 공모는 공모(?)가 되어야 한다 (2003.3.29)
소나무
2780 2007-06-05
작업실 9 공모는 공모(?)가 되어야 한다 (2003.3.29) 전원길 2004/2/20 (22:33) 작업실 9 공모는 공모(?)가 되어야 한다 언제나 큰 명예와 상금이 걸린 심사 뒤에는 그 뒷 이야기가 뒤 따른다. 순수한 작가를 유혹하는 규모 큰 조형물 사업에 대하여 나는 언제나 불만스럽다. 의미있는 미술 사업을 위한 인건비나 기획전에 들어가는 소소한 사업비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 작가들의 독립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구조를 만드는 일에는 전혀 아이디어가 없으면서, 수 억에서 수십 억이 한 사람에게 투여되는 공원 조형물에 대해서는 왜 그 큰 돈을 펑펑쓰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형물이 필요하다면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고르게 혜택을 볼 수있는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한가지 프로젝트를 놓고 지역의 여러작가가 공동으로 참여 하도록 유도하여, 작가들 간에 그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토론함으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종합적으로 발휘되도록 한다면 좋은 작품이 되지않겠는가? 또한 지역 작가들의 예술적 역량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던 방법이 아닌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발전은 하던대로 해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영국에서 한 공원에 들어가는 조형물을 선정하고 설치하기위해서 작품이 결정된 뒤에도 여러 단계의 토론을 거쳐 그 적합성을 따지는 것을 보았다. 불과 천이백만원 예산의 프로젝트였다. 공모에 당선되는 것은 운도 아니고 인맥도 아니고 그 적절성과 예술성에 의해서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당당하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신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 일 것이다. (200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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