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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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no image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를 마치고
소나무
4019 2007-06-05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를 마치고 전원길 2006/1/6 (17:10)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를 마치고 전 원 길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대표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프로그램이 9월7일부터 12월3일까지 15개 작업실 17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약 1,200여명이 작업실을 방문하는 가운데 총 70여회의 일반 탐방과 두 번의 ‘모둠 탐방’이 이루어졌다. 각기 다른 탐방 팀으로부터 신청을 받고 참가인원 및 출발 장소에 따라 버스를 섭외하고 배정하는 과정을 거쳐 안성의 곳곳에 산재되어있는 작업실을 연결하여 방문하는 일이 매회 마다 다르게 짜여지고 진행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미리 예정된 작업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사정에 따라 다시 조절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고 약속한 팀이 사정에 의하여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갑작스런 일정변경을 다시 조절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밤늦게 까지 작가들에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의 종료일이 아득하게 느껴졌었는데 한 번 두 번 회를 거듭 할수록 우리가 처음에 생각 할 수 없었던 내용들이 작업실 자체 내에서 생겨나고 참가자들의 매우 긍정적인 반응들을 접하면서 힘을 얻었다. 사실 참여 작가들조차 이번 프로그램이 과연 성공적으로 진행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행여 참가자들의 무질서한 탐방 태도로 인하여 작가들이 다시는 작업실 문을 열지 않을 수 도 있지 않을까... 진행하는 소나무로서도 걱정을 아니 할 수 없었다.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자평해 본다. 이제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 한번 프로그램의 의미를 되새겨 봄으로서 본 프로그램의 발전적 비젼을 생각하려고 한다. 1. 작업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업실은 저마다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작업실 마련에 이르기까지의 숱한 이야기들은 크게는 우리나라 미술계의 역사이자 미술작가들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게 해주고 작가와 관련해서는 작가의 취향과 작가의 작업 분야 그리고 작업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 주기도 한다. 작업실 마련의 역사가 작가로서의 삶의 노정을 그대로 이야기 해준다. 비닐하우스에서 낡은 창고로의 잦은 이사 끝에 아름답고 튼튼한 작업실을 마련한 작가가 있고, 먼지와 소음으로 인하여 마을사람들의 항의를 받아 쫓겨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부지를 마련해 아예 작업실로 허가를 내어 법적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작업실을 짓기도 하였다. 마을 한 복판에 작업실을 마련하였으나 작가로서의 독립된 시간과 공간에 침해를 받게 되어 다시 이사를 한 경우도 있다. 조용히 작업에 몰두하기위해서 시골로 내려왔으나 마을에 들어서게 되는 대기업의 화장장 건립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한동안 작업실을 시내로 옮겨 사용한 작가도 있다. 수해로 인하여 잘 다듬어놓은 마당 한 켠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작업실은 지었으나 등기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문제를 해결해낸 자체 해결사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매입하게 된 작업실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명당자리인 경우는 착한 예술가에게 내리신 하늘의 복이라 생각된다. 그들의 작업실이 그냥 생존하는 작업실들이 아니었다. 외부적 갈등요인들을 극복해나가는 역사와 작가로서 작업 자체의 안으로의 문제에 고민하면서도 대외적인 활동영역의 확장을 위해 노력해온 작가들이다. 이제 마침내 40대 중반을 넘어 중견작가의 대열에 들어서는 작가들의 작가로서의 역사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세계를 확보하는 일은 작업실 마련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금전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며 매일 작업만 한다고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작가로서 그들이 거닐었던 작업의 여정과 정신적 사색의 과정들이 그대로 배어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은 연극무대의 세트처럼 뚝딱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는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하게 세워온 작가와 만나고 그 생생한 역사를 간직한 작업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수 십년의 준비가 밑바탕이 되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2. 살아있는 미술관 각자의 여건에 따라 자리잡은 작업실들은 안성이라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전원도시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살아있는 미술관 프로젝트’를 실현하게 해주었다. 변변한 전시장도 없고 다양한 문화 강좌를 접할 수 없는 안성이지만 잠재적 문화역량은 어느 도시 못지않게 풍부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창작의 산실인 작업실을 직접 방문함으로서 보다 생생한 작품과 만날 수 있었고 작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작품에 담겨진 의미를 마음으로 전해 받을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무뚝뚝한 액자 속의 작품들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안성의 살아있는 미술관에서는 미술관의 설계자이며 실제 건축가인 작가와 만나서 작업실 설계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작업실이 속해있는 마을의 역사와 골짜기에서 자라는 식물과 곤충 그리고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농부이기도한 작가의 손에 자란 오이도 얻어 갈 수 있고 작업실 밭에서 자란 쪽으로 염색도 할 수 있다. 작업실에 척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가슴이 확 뚫리며 예술적 감흥으로 가슴 뿌듯하게 차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천편일률적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는 것이다. 작업실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의해 이리저리 작업들이 널려져 있기도 하고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작품들이 빼곡하게 차있기도 하다. 비록 먼지를 쓰고 한 켠에 놓여있지만 작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래서 아무에게도 건네주지 않은 오래된 작업도 눈여겨 찾아낼 수도 있다. 아직 미완성인 채 작가의 손을 기다리는 작품도 볼 수 있고 작가가 사용하는 크고 작은 붓들의 키를 재어보고 판화용 로울러도 드르륵 굴려 판화를 찍어보기도 한다. 작품 하나하나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더불어 들을 수가 있으니 두 시간이 짧아 참가자들이나 작가나 아쉽게 헤어진다. 3. 워크숍 프로그램의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지역사회 예술가로서의 멤버쉽과, 새로운 교육방법을 자신의 작업실 공간에서 이루어 내기위한 마인드를 갖기 위한 작가, 에듀케이터, 진행팀이 함께 참여하는 워크숍은 실제의 본 프로그램과 더불어 중요한 부분이었다. 작업실 선정과정에서 작업실을 방문하여 프로그램의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서로간에 이해와 공감대가 생긴 작가들로 참여 작가를 확정하고 작가의 작업세계에 대한 밀접한 이해를 위해 에듀케이터와 기획팀이 함께 모든 작업실를 일일이 방문하여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와 프로그램을 실제 진행할 에듀케이터가 작가의 작업을 훨씬 심도있게 이해하고 작업실의 시설과 분위기 등을 익히며 작가와 직접 사귀는 기회가 된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작가들이 각자의 작품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여 전시회를 열고 자기작업에 대한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지역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초면인 경우도 많았고 함께 전시회를 가져본 기회도 별로 없었던 작가들이었다. 회화, 판화, 조각, 도예, 그림책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안성작가라는 동지의식을 가지고 서로 사귀는 자리가 되었다. 이러한 사귐을 통해서 프로그램 진행 중 생기는 갑작스런 스케쥴 변경을 서로 조절 할 수 있는 배려와 아량이 있었기에 프로그램이 잘 마무리 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사회문화예술 전문가를 초빙하여 그 의미와 사례 등을 접함으로서 프로그램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고 진행에 의욕을 갖게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향후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서도 워크숍은 보다 실질적인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위해서 뿐 만 아니라 안성의 작가들이 작가로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강의를 준비함으로서 작가 재교육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많은 좋은 강의가 열리고 있지만 지역이라는 공감대와 유대 속에서 부담 없이 자신의 문제를 풀어놓고 토론 할 수 있는 자리는 흔치않기 때문이다. 4. 에듀케이터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은 아무래도 에듀케이터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작업실을 안내하는 가이드라고 생각되겠으나 그 역할이 단순히 어떤 장소를 안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참가자들 모두가 의미 있는 만남이 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말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삶과 예술을 진솔하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적당한 형식과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에듀케이터가 담당한다. 말하자면 멍석을 펴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참가자들로 하여금 작가에게 집중 할 수 있도록 미리 본 프로그램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작가의 작업실과 작업에 대하여 그리고 작가의 다양한 경험과 경력에 대하여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작가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한다. 이러한 역할은 미술에 대한 일정한 정도 이상의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야하고 에듀케이터 자신이 작가들의 창의적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통솔하는 리더쉽과 매너 등을 갖추고 있는 고급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에듀케이터가 작가와 탐방자들의 만남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하여 절감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예술가로서 좋은 작업실과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리를 펴고 사람들을 맞이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다. 평상시 자주 왕래가 있던 작가의 지인들도 애써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서 공적인 자리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작가들 간에도 마찬가지로 평상시 들을 수 없었던 서로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자신의 길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걸어가는 작가들과 일반인들이 무리 없이 만나는 장을 마련하기위해서는 능력 있는 에듀케이터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체험학습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서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는 일반인들 혹은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평상시 경험할 수 없는 문화예술을 대하고 실제로 체험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본 프로그램이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안성이라는 지역자체가 도회지에 비하여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경험하기 힘든 지역이므로 국내외 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지역민들에게는 흔치않은 일로서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이 본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연령과 참가자들의 성격에 따라 작가들과 함께 진행한 체험학습은 그 내용을 달리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간단한 드로잉을 한 다음 작가와 함께 그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고,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동화 만들기 등 아주 치밀하게 준비된 내용을 체계 있게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작가와의 만남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잃지 않는 가운데 체험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사실 작업실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주는 교육적 체험이 강력하고 작가의 육성을 통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훌륭한 교육으로서 힘을 발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체험학습은 작가의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기위한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은 작가 자신과 작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작업실 자체가 의미 있는 교육현장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참가자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업실을 생각하고 소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완성된 작품보다는 작품을 보관하는 방법이나 작품을 제작하는 도구들과 물감 등을 사용하는 법 등을 알려주면 참가자들로서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6. 새로운 교육 유형의 개발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자신을 개발하고 표현한다. 작가들의 작업과정은 교육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이러한 작가들의 작업실이 교육의 현장이 되며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교육을 실현하는 교사가 된다. 지금까지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로서 일정한 교육을 받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에서는 학교가 아닌 작가의 작업실에서 일종의 피교육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교사 자격증이 없는 작가들로부터 무엇인가 얻어가지고 돌아간다. 실제로 현재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참가자 한 사람은 대학의 한 학기 강의 이상의 것을 느꼈다고 이야기 하였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애써 주장하거나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작업의 진지한 현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느낌을 받아 가지고 돌아간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이 전문가를 위한 재교육프로그램 혹은 준전문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의적 예술가나 과학자, 사업가 심지어는 이 사회의 낙오자라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이 있는 법이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만나고 사업가와 예술가가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면 상호 협조적 관계 속에 삶의 질을 높이고 의미 있는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통로를 보다 다양하게 만들 수 있으며 다양한 유형의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함으로서 인간성을 황폐하게 만드는 금전만능주의를 벗어나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게 되는 세상으로 좀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어째든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고립되지 않고 일반인들과 소통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예술가 자신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방문자들의 직접적인 반응을 통하여 용기를 얻어 작업에 몰두할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의미 있게 사용되어진다는 데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안성에서 작업하는 미술작가 17명이 참여한 이번 작업실 탐방은 작가들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의 공개라는 전제하에서 진행되는 것이니 만큼 작가들의 협조가 프로그램 성공의 가장 큰 관건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 및 진행을 맡은 소나무로서는 우선 작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었다. 말하자면 작가들과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고서는 작가들의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작업실에 주목하는 것은 다만 교육의 장으로서의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들의 작업실은 작업의 근거지이자 작가의 순수한 감성이 숨쉬는 곳으로서 작가의 진정성 또한 살아 있는 곳이다. 작업실의 가치를 살려냄으로서 독립된 작가의 작품세계 그 자체에 대한 가치에 주목하게 하는 새로운 미술문화운동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안성에 작업실을 짓고 내려오면서 넓고 쾌적한 작업실과 주변 공간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전시 공간을 만들고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성격의 전시를 열었고 그 작품들 속에 반영된 창의적 표현성을 토대로 현장미술체험학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소나무는 소나무 자체 프로그램을 확장하여 현장의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살려내어 지역의 미술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으로서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가 널리 이해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현할 기회를 살려낸 것이다. 7. 안성의 예술가를 통한 지역 이미지 향상 이번 프로그램은 안성의 작가들을 미술계에 알리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었음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을 알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안성지역에 작업실을 가지고 작업하는 안성의 작가들이 알려지게 되고 안성의 지역이미지를 향상하는 효과를 더불어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였다. 안성은 수도권에 인접한 전원도시로서 문화예술인이 많이 거주하고 작업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활동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이 지역민들과 직접 만남으로서 예술을 매개로 서로간에 의미 있는 교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작가들은 작품 활동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한편 안성의 예술가로서 미술계에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좀더 많이 갖게 된다. 프로그램 진행기간 중에 제작 배포되는 포스터, 리프렛, 가이드북 그리고 중앙지와 지방의 신문 및 지역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그들의 활동내용이 사람들에게 소개됨으로서 안성지역에 대한 문화적 이미지의 향상과 작가들 개개인의 면모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8. 안성 시민들의 가슴속에서 자라는 예술가 안성지역의 학생들과 주민들은 미래의 위대한 예술가들과 현재에 함께 만나고 호흡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간다.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현역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들과 만나서 작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함께 작업했던 경험은 자랑스러운 지역의 예술가들을 각별하게 기억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문화적 자긍심은 이렇게 예술가들과 실질적인 교류를 하는 가운데서 생겨나야 할 것이고, 지역사회는 아직은 성장기에 있는 작가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원함으로서 이 시대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는 예술가들을 키워낸다는 정책적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지역이 자랑할 만한 예술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유명해진 작가의 미술관을 짓는다든지 동상을 건립한다든지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느낌보다는 공허한 느낌이 들 것이다. 지역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세대가 자랑스럽게 여길 작가를 만나게 된다는 관점에서 지자체가 함께 지원하고 있는 이번 프로그램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정으로 지역이 함께 만들고 키워나가는 프로그램으로서 명실상부한 안성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기회 있을 때 마다 안성시장님을 비롯한 각 기관장을 방문하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협조를 구했으며 단체모임, 지역행사 등 기회 있을 때 마다 안내문을 가지고 방문해 프로그램을 알리는데 노력하였고 지역TV 방송국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를 아끼지 않는 큰 협조를 하여주었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협조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작업실을 쾌히 열고 자신의 창작공간과 시간을 지역민들과 함께 나눈 작가들이 없이는 이번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의 작업실을 하나하나 익혀가면서 가이드를 해준 에듀케이터들은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진행이 문광부와, 경기도, 그리고 안성시청과 의회 관계자, 안성교육청, 안성문화관광정보센타 등 여러분께 마음으로부터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프로그램 진행의 기술적인 문제와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 되도록 격려와 자문을 해주신 컨설턴트 김보성님께서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의 의미를 되짚어주고 살려내주는 역할을 통해 이 프로그램이 든든히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주심을 감사드리는 바이다. 이번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과 진지한 태도로 참여해 오히려 우리에게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신 많은 참가자 여러분과 감사하며 차기 프로그램에서 더 좋은 만남을 위해서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48 no image 자연으로 몸으로
소나무
3676 2007-06-05
자연으로 몸으로 전원길 2005/12/18 (1:44) 자연으로 몸으로 전 원 길 I 야투 1982년 여름 공주 금강의 청벽에서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1990년 겨울 금강 백사장에서 沙上樓閣a house on sand이란 풀잎을 이용한 작은 설치 작업을 마지막으로 야투자연미술연구회에서의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나의 자연현장에서의 작업은 비교적 긴 기간 동안 행해졌던 하나의 미술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다. 계절과 장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작업을 했지만 작업의 방법과 내용이 일정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야투활동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에 ‘野投’라는 새롭고 순수하며 열정이 넘치는 작업현장에서 나의 감성을 다듬을 수 있었고, 학교 실기실에서 벗어나 작업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야투를 떠난 이후 전개되는 일련의 페인팅 작업에서도 눈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과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논리적 사유의 과정을 통해 작업으로 표현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야투 멤버들과 작업하는 동안 나는 자연이라는 막의 뒤편으로 들어가 미술를 통해 자연과 만나는 체험을 하였다. 수 만 광년 떨어져 있는 별들이 하나의 별자리로 만나듯 만날 길 없었던 나의 의식을 저항 없이 받아주면서 순간적으로 나의 작업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는 자연은 언제나 공치사 없이 편안하였다. 당시 나는 자연과의 단도직입적인 맞대면을 통하여, 나의 감성이 자연에 대하여 생생하게 반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일구어 낸 작품들은 낯선 예술적 감흥을 일으켰고 그것은 기존의 다른 미술방식들을 진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 함께 작업하던 회원들은 동료의 좋은 작품을 자기 작품처럼 반가워했으며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자연의 선물이 주어지리라 기대하였다. II 자연미술 적나라한 사적 경험을 거침없이 날려 보내는 이 시대의 많은 작가들의 작업과, 방향을 잃은 인간세상의 혼돈을 목쉬게 노래하는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간과 자연으로 하여금 제자리를 찾게 함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자연미술의 가치는 찾아질 것이다. 자연미술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틀 속에서 미술을 통한 인간성의 구현이라는 대전제를 향해나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태도가 한 사람 한사람의 삶 의 단면에 집중하며 미술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보편적 환경인 자연을 이야기하면서도 예기치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간다는데 자연미술의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80년대 자연미술 작업들이 어떠한 정신과 방법을 구사하고 있었는지 당시의 나의 작업을 중심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이러한 복기復碁 작업은 단지 과거의 미술운동을 회고하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월 속에 숙성된 자연미술작업들을 되짚어 봄으로서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작업으로 다시 진화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시도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또 한 가지는 1990년 이후 진행된 실내 작업들과 자연에서의 작업들 사이의 형식상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관련되는 고리를 찾아 연결해 보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신념의 변화 혹은 시대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작업의 내용이 바뀌게 되기도 하고 작업 자체의 과정에서 변모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든 변화의 과정 속에서 무의미하게 동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기의 작업은 없다. 한 작가가 보여주는 작업의 변화 과정은 그 이유야 어떻든 그 자체로서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모든 작업 경험은 다시 작업의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소중한 재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III 사계절연구회 1980년대 초 나는 아직 대학문을 나서지 못한 예비 작가였으나 미술에 대해 퍽이나 심각한 결단을 내려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미술에 대한 막연한 열망을 가진 작가지망생은 작가로서의 길을 인도해 줄 마땅한 선배 그룹을 만나지 못하고 스스로 그 길을 찾아야했다. 그러던 차에 야투 사계절 연구회는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설레는 희망을 주었다. 당시 야투는 야투 창립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임동식 선생이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고승현 선생이 사계절 연구회의 진행을 맡고 있었다. 야투 연구모임은 삼박사일이나 사박오일로 진행되는 여름 야투를 빼면 일박 이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자연현장에서의 작업은 답습과 표절의 피상적 작업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자연의 완결성 앞에서 부가적 설치물은 군더더기가 되기 일쑤였으므로 그저 자연이 하는 일을 더불어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당시 나는 작업의 논리적 필연성을 확실하게 확보하지 못한 얼치기 작가였다. 나는 이 점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를 자주 생각한다. 당시 내가 얼치기가 아니었다면 그렇듯 아무 선입견 없이 자유롭게 자연을 대하고 작업 할 수가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계절연구회는 자연과 만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현장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아침부터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저녁 시간까지 길지 않은 작업 일정이었다. 장기간의 작업을 통한 밀도 있는 작업을 하기는 어려웠으나 제한된 시간 속에서 순발력 있는 많은 작업들이 나왔다. 자연 앞에서 무장해제를 당한 나는 주로 손과 몸을 이용한 작업을 많이 했다. 간단한 드로잉을 위해 도구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주로 몸으로 자연과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작업들은 간단한 행위가 동반된 작업들이 많았고 사진 촬영과 함께 작품이 마무리되는, 단지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작업이 많았다. 당시 경제적 자립이 힘든 학생신분이거나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들로 구성된 점도 이 시기의 작업의 유형을 결정 지워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미술이 기획 작품 위주의 물량공세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작가의 역량을 인정받기 힘든 상황임에 비추어보면 당시의 무일푼 어린 작가는 너무나 행복했다. 숲 속을 걷다가 눈에 걸려드는 풀을 돌로 두드리고, 나무를 두 손으로 감싸 안기도 한다. 때로는 파도를 따라 구르기도 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다가 금을 그어 떨어진 낙엽들을 연결한다. 자연과 미술이 새롭게 만나는 이 감흥은 오로지 야투현장에서만 일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평상시에 무심히 지나치던 자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나의 의식과 부딪치며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은 다른 곳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80년대 야투 자연미술운동은 자연미술에 대한 열정과 창의적 분위기 속에서 野投的이라고 할 만한 작업의 특성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그 시대에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감당해 냈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의 작업들이 의미 있는 족적으로 미술계에 남기위해서는 작가 개개인이 자신의 작업을 역사적 맥락위에 올려놓고 반추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자연미술 작업의 생태적 변이와 확산을 통해 자기 생명력을 계속 증명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IV 자연미술지대 자연미술을 위해 자연현장 속으로 들어갈 때는 평상시와는 다른 정신상태가 된다. 소풍이나 채집, 산책을 위해 숲 속을 거닐면서 자연을 대하는 것 보다는 예술적 작업 의지가 예민해진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곳에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이러한 야투 사계절 연구회 분위기로 인해 오랫동안 다른 자연미술 작가들과 함께 작업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이자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감상자였던 당시의 멤버들은 서로가 통하는 하나의 정신적 공간을 형성하여 그 안에서 서로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나갔다. 자연미술은 山川草木 뿐 아니라 자연생태작용의 환경이 되는 빛, 바람, 소리, 색깔, 그리고 자연 현상 속에 내재된 질서 모두와 관계하며, 자연은 인간의 접근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 참여한다.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기위해서는 실내작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즉 기술적, 감각적 손재간을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회화 제작 방식과 는 다르며 야외공간에 인위적 구조물을 들이밀면서 개념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야외설치와도 거리를 유지한다. 자연미술은 자연을 단지 대상과 재료로만 다루지 않으며, 자연을 정의하거나 해석하지도 아니한다. 자연현장에서 나무와 그림자, 풀, 돌, 파도 등을 통해 발생되는 아이디어는 자연과 나의 연결루트를 만들고 이런 연결 상태(방식)가 곧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즉 자연과 인간의 생각이 시각적 개념적 결합을 이루며 자연과 인간사이의 ‘미술상태美術狀態’가 된다. 이러한 결합 상태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하거나 자연재료를 가지고 설치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나타나는 양상과는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어느 한 쪽이 또 다른 한 쪽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두 가지의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하나로 존재하면서도 각각의 특질을 서로 훼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자연과 허심탄회한 독대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자연의 있음을 보고 동시에 나의 있음을 보려고 한다. 자연이 스스로 내어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본성의 반응을 자연에 조응시켜야만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려낸 작품을 보게 된다. 자연의 내어줌과 나의 받아냄의 상태가 간결하고 담백한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의 본성적 교감을 실현한다. 자연미술 작업은 눈 보다는 마음과 정신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에 서구의 개념미술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개념미술이 현대미술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다 잘 이해되고 그 의미가 살아난다면 한국의 자연미술은 원소재源素材인 자연과 더 많이 관계한다. 80년대 자연현장에서의 작업들은 개념적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작업 자체가 그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미술에 접근하기 위한 선행학습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원래 심성이 자연과 쉽게 공조하기 때문에 사변적 해석을 통하지 않고도 직접 자연미술과 조우 할 수 있고, 자연미술의 간결한 표현 방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치환置換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미술이 직접적인 접점을 찾아냄으로서 당사자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미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자연의 현상現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쉽게 그 내용이 전달되어져 오는 특성으로 인하여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의욕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마음먹음이 비록 실행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적극적 동감의 표시이며 살아있는 예술적 감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V 단순논리 돌아 보건데 나의 자연미술작업들에는 자연과 나의 몸 혹은 드로잉이 서로 개념적, 언어적, 시각적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의미를 유발시키는 작업이 많았다. 나는 이러한 작업을 ‘단순논리’에 의한 작업이라 부르는데, 자연과 작업행위가 투명하게 겹쳐있거나 너무나 일반적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쉽게 보는 사람에게 다가며 이해하는 각도에 따라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자연과 몸의 촉각적 접촉의 순간에 만남과 일체화의 개념적 의미가 발생한다. 만남의 순간에 작품은 불꽃처럼 살아나고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기는 순간 사라진다. 간략한 드로잉을 동반한 작업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작업에 있어서 드로잉은 자연과 몸의 접점에서만 그 역할과 의미가 살아난다. 여기서 몸은 나의 의지의 상징적 대용물이면서도 자연의 어떤 것과의 적절한 만남을 위한 재료가 된다. 자연과 내가 중간 매개물 없이 직접 몸으로 만나고 표현하는 방식은 자연과 나의 체온이 직접 맞닿는 생생한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일상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비일상적 상상력이 그 중심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뇌리 속에 자리를 잡는다. 생태적 생명성을 가진 자연과 피가 흐르는 몸의 체온이 인간의 미적 아이디어를 통하여 만난다는 측면에서 몸을 이용한 자연미술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질서가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는 자연을 몸의 접촉과 드로잉 등을 통해서 그대로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자연 속에 내재된 신성神性을 기꺼워하는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명료하게 작업 속에 반영함으로서 자연과 인간과 예술의 조화로운 긴장 관계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여타의 현장 작업들과 구분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VI 하나되기 자연이란 이 세상에서 테두리 쳐진 어떤 신성한 구역으로 분류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공물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자연을 특수 영역화 하였다. 본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현장이기 때문에 자연을 떠난 인간을 상상 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영역과 자연을 구분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말 속에 순수성과 신비감 등의 부가되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본래 모습을 오히려 보지 못한다. 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에 떠오르는 것으로 작업한다. 자연을 바라보되 그 외양에 빠져들지 않고 다른 것과의 관계성에 주목하길 좋아한다. 자연이 다른 것과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동안 그것은 보이는 것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며 하나의 의미형식으로서 나의 작업 속에서 작용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동안 사람은 자연을 볼 수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막 뒤편으로 들어가야만 사람에게 내어주는 자연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만약에 자연의 내재된 실체와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작가)은 남들이 열어 보인 전례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80년대 나의 자연미술 작업들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자연과 나의 손 혹은 몸이 만난 작업, 자연물로만 된 작업, 간단한 드로잉이나 색이 가미된 작업 등이다. 어떤 방식이든지간에 모두 한 가지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되기’이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고 자연과 자연이 미술을 통해 일체화 되는 방식을 표현한 것들이다. 자연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접근 과정을 통해 '하나되기'를 시각적 개념적으로 추구한다. 달리보기 등산이나 야유회 혹은 정원을 가꿀 때의 자연과 작업현장에서의 자연은 다르다. 그 경계가 분명하여 작동하는 뇌의 종류가 다른 듯도 하다. 평상시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물들과 장면들이 그림을 그릴 때의 조형적 요소들처럼 살아나고 마치 감상의 대상이던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그 속의 갖가지 것들을 직접 대하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연미술 현장에서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는 그 경계를 이해 할 수 없다. 자연이 내어주는 아이디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까지의 시간은 순간이다. 이 과정은 나와 자연의 일종의 영적 대화이며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과 나의 작업의지가 만난다. 나의 정직성이 유지되는 한 자연은 미술작업에로의 초대를 사양한 적이 없다. 다가가기 세상에서 예술적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뿐이다. 자연의 방문자로서 나는 예술적 영감을 받아 줄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머릿속 생각들을 여기 저기 놓아보고 자연과 나의 반응을 살핀다. 나는 자연에 몸으로 다가간다. 나의 예술적 의지가 작용하는 순간에 자연과 몸은 미술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나와 자연은 서로를 의미 있는 상태로 만든다. 서있는 나무에 팔을 대고 선을 긋는다든지, 고추밭에 빨간 고추를 손바닥에 그린 것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젖은 모래와 마른모래를 이용하여 내 다리에 손자국 을 남긴 작업들은 이러한 관계를 잘 보여 준다고 생각된다. 함께하기 자연미술에 있어서 자연은 표현 대상이 아니라 작업의 주체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연으로부터 떠나는 순간 사라지는 작품이 허다하다. 자연물과 자연현상, 그리고 현장의 상황 등이 작업의 중심에서 작용 할 때 좋은 작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연 그 자체의 현상을 미술화 하려는 일련의 시도들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과 몸 그리고 명료한 나의 의식의 참여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자연과 나, 그리고 작품사이에 발생하는 의미에 관해서 ‘생각하기’는 작업 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의 작업들은 의미부여의 과정을 뛰어넘어 순간적으로 비약飛躍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난 후 나와 작업사이에는 채워야 할 거리가 남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와 원인에 의해서 움직여 가고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또 하나의 파생체가 된 작품이 제자리를 잡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감상자는 물론이고 작업의 당사자인 나에게 있어서도 생각하기 과정이 필요하다. 1980년대 나와 한국의 자연미술가들은 자연과의 단도직입적인 대면을 통해 작업하였고 때로는 아주 작은 풀잎을 대상으로 작품을 이끌어 내었다. 그것은 자연과의 명상적 만남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지 않고도 미술작품이 되는 서구의 실험적 방법론들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학습된 사실이 있겠으나, 우리들은 자연으로 들어가면서 선행된 학습경험들을 버리고 자연이 던져주는 것을 받아서 작업하려고 하였다. 나는 자연미술을 통해서 모든 것을 내가 주도하기보다는 자연을 작업에 적극 참여시키는 방식을 알았고, 자연의 다양한 양상들과 인간의 생각이 일정한 관계를 맺어나감으로서 의미 있는 '미술상태'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현장작업의 방법론은 실내 캔버스 작업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VII 색으로 하나 되기 자연과 하나 되기는 선이나 색, 행위 등으로 이루어진다. 자연과 나의 하나 되기 작업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욕망을 털어내고 자연과 나를 지으신 분의 섭리 속에 나를 일치시켜나가려는 일종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 되기를 원하는 의지를 가지고 마음 없는 자연과 일체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태에 대한 미술평론가 김성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날카롭게 받아들여진다. “필자가 보기에,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연을 캔버스 삼아 ‘야투’ 활동을 통한 자연미술을 시도하는 전원길에게 있어서는, 자연의 흔적을 더듬어 그 원형의 질서를 따라가는 행위만이 의미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그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접근할 때, 그 창작에 있어 주인공이 되기를 포기하려는 태도, 단지 그 창작의 결과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의 질문은 그의 작업이, 그의 창작 결과물이 자연 앞에서 늘 미끄러지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는데 존재한다. 그의 작업이 결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생생한 시각적 결과물로 작가 곁에 남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그의 글에서 이러한 한계를 전제로 작업 과정에 의미를 둔 것도 나의 작업에 대한 적절한 접근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과 하나되기 작업은 ‘바람의 과정’이며 결국 나를 보내신 분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 날에야 실현되는 일일 것이다. 색이 일하는 나의 캔버스화면 속에서 ‘하나 되기’는 보다 집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보이는 물체의 색과 완벽한 일치를 이룸으로서 ‘하나되기’는 작업과정에서 만큼은 바램을 넘어 실제로 이루어진다. 사물의 색채를 화면으로 옮겨오는 작업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물체에서 색을 제거한다면, 다시 말해서 빛을 제거한다면 거기에는 촉각적인 실재만이 남게 된다. 따라서 물체와 색은 완벽하게 같은 몸을 이루면서도 별개이고 물체로부터 분리된 색은 평면과 공간 속에서 등질의 상태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그동안 사물의 색과 똑같은 단색 화면을 만들고 그 위에 사물을 개념적conceptual, 시각적visual 측면에서 접근하여 대상의 속성과 형상을 색 조절과정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그동안의 방법론을 대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나뭇잎과 같은 실제 자연물 혹은 주제와 관련된 사진 이미지를 화면에 붙이고, 그 위에 한 붓, 한 붓 물감으로 올려붙여 색채를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形象-物 을 화면 속에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감을 올려 붙여나가는 작업에서는 ‘그린다’는 전통적 감성보다는 ‘일한다’는 현장감을 더욱 느끼게 되는데 이는 마당에서 삽이나 괭이를 들고 흙과 더불어 일할 때의 기분과 동일하다. 화면 위에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듯 점점이 움직여 나가는 작은 물감 덩어리들은 명백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실물로 남겨지며 빛을 받아들이는 반입체공간을 형성한다. 사물의 존재감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이와 같은 작업은 대상 자체가 물감으로 뒤덮여서 결국은 새로운 작업 결과물이 물리적으로 하나가 되고 원래의 대상 위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색채 탐색 과정은 회화적 자연성을 드러낸다. 세상의 만물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상에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화면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나의 그림속의 이미지들도 이와 같이 순환하는 만물의 존재 양상을 반영한다. 시간을 따라 다층적으로 쌓여지며 각 단계가 서로 관련을 맺게 되는 작업 방식은 원인과 결과가 상호 작용하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반영하며,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함께 존재하고 내일의 시간이 이미 화면 속에 등장하는 통시적通時的diachronic 회화 공간을 보여준다. VIII 안과 밖에서 그동안 나는 80년대에 자연현장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였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주로 캔버스에 작업을 했다. 최근 몇 년간은 평면과 자연공간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자연미술은 자연현장에 나의 몸과 의식이 자연과 직접 만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고, 90년대 평면 회화작업들은 작업의 주체인 나 혹은 인간의 존재의 형식을 회화적 형식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1990년대 작업에 관해서는 이미 본인의 석사논문 ‘현대회화의 기하학적 형태와 표현성에 관한 연구’에서 정리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1997년 이후 작업들은 작업의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자연미술의 일련의 맥락과 괘를 같이 하면서 그 연관성을 직접 찾을 수 있는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작업한 호박잎 시리이즈는 그러한 결과를 잘 반영한다. 1989년 봄 계룡산 어느 수풀 속에서 행한 이 작업은 돌 위에 자라난 쑥의 잎을 근처에서 발견한 돌로 찧어 그 형상을 바위위에 남긴 것이었는데, 화면에 풀잎을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묻혀 나가는 나의 캔버스 작업과 낙엽위에 작은 돌들을 올려놓는 작업은 서로 관련 맺고 있다. 상당기간 별개로 이루어진 작업들이지만 시간의 흐름 밖 통시적通時的 미술공간에서 만나고 다시 나의 현재 시간 속에서 작용하며 이제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1986년 공주의 한 고추밭에서 행한 작업은 10년을 넘긴 후에야 사물의 색채를 옮겨오는 작업으로 풀려져 나왔다. 1987년 공주 신원사에서 낙엽을 따라 선을 그었던 작업은 캔버스를 대지로 삼아 움직이며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를 작은 색 덩어리로 이어가는 작업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생각과 행함이 나의 기억 속에서 얼마만큼 살아서 다음 작업에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업의 결과들 속에서 나의 의식이 연결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랍다. 자연과 만나는 자연미술의 방식은 간결하지만 직관적이어서 때로 나를 넘어 높이 도약한다. 반면에 회화 작업은 나의 몸 감각을 훈련시키고 시감각의 흐름을 받아주면서 작업 자체의 지속적인 진화를 통해 발전한다. 나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방식은 자연성을 작업에 받아들이는 개념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나 분명한 서로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실내외를 들고 나는 작업을 통하여 이종 교배에 의한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각각의 영역에서의 작업개념이 캔버스와 자연공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치 벌레와 미생물을 통해 숙성되는 흙과 같이 비옥한 창의적 생산성을 소유할 수 있다. IX 5 가지 프로젝트 짧은 시간에 간결한 작업행위로 이루어진 작업이 주류를 이루었던 80년대 작업과는 달리 좀더 시간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작업들이다. 작업계획은 좀 더 치밀해지고 비교적 규모가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작업의 결과가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야외작업의 초창기부터 표현되어온 ‘하나 되기’는 방법적, 개념적으로 일관성 있게 유지되고 있다. 1. 댕기머리 댕기 머리는 본래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머리 형태중 하나로 혼인을 하지 않은 남녀가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가장 자연스럽게 간수했던 방법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인체의 성장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자라는 머리카락과 전통적 머리 간수법이면서 젊음을 상징하는 댕기 머리는 이 작업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소재이다. 나는 십 여 미터가 넘는 대나무를 안에다 넣고 농사용 검정 비닐을 이용하여 댕기머리를 땋듯이 땋았다.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개념적, 형태적으로 합치될 수 있는가를 '자라나는 머리카락'의 모습을 ‘자라나는 풀’의 형태로 표현하였는데, 마치 긴 댕기 머리가 풀이나 나무 같은 자연의 모습으로 대지에 뿌리를 박고 뻗어 올라 하늘을 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검정색을 주로 하여 서로 다른 색깔과 높이, 휘어진 모습을 지닌 수백 개의 댕기머리들은 각각 다른 삶의 형태와 시간들을 의미하며 머리에 가르마를 탄 듯 양 갈래로 나뉘어 풀숲을 이룬 모습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시간과 인생의 의미를 자문하도록 하고 싶었다. 또한 작품 속에 난 길을 관람객들이 거닐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의 실제적 기능을 더하였다. 2. 길을 따라서 나는 이 작업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서로의 영역을 직접 침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같은 공간 속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 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나는 삼원색과 흰색의 기본색을 가지고 색채를 조절한 흔적이 남아있는 긴 로프를 성벽옆 산책를 따라 설치하였다. 풀잎, 묵은 낙엽, 이끼, 돌 등 주변의 자연물들과 동일한 색깔이 되도록 로프 위에 색칠을 함으로서 마침내 자연물의 색과 로프위에 칠해진 색이 만나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자연물을 보게 하는 과정이 중요한 작업의 내용이다. 작업을 통해 실물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사물 자체로 안내함으로서 현장의 생생함과, 자연과 관계하는 미술적 사유 과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3 빛을 따라서 주변의 돌들을 모아 모서리와 모서리를 이어 맞추어 타원형을 만들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돌들의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면서 색채조절를 통해 돌과 하나 되기 작업을 하였다. 그림자의 경계면을 따라 물감을 묻혀가며 돌의 색깔과 같은 색을 만들고 다시 원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돌을 따라 도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태양의 운행에 따른 빛의 변화와/ 돌의 색을 따라 움직이는 나의 감각의 흐름 그리고 그에 따른 색의 조절 과정이 함께 드러나는 작업이다. 사물의 색을 통해 빛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돌 등이 나의 작업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4. 길을 막고 물어보다 가는 길을 막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인간과 자연과 예술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길가에 있는 돌들을 모아 정성스레 돌을 쌓았다. 나의 눈높이만큼 반듯하게 쌓아올린 단순한 구조의 돌단은 작품 자체의 시각적 개념적 의미를 최소화였으므로 그것 자체로 미적 감흥을 유도하지도 않고 어떤 개념적 구조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다가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연 요소들이 홀로 그 존재 의미를 과시하지 않듯이 돌단은 숲 속의 다른 것들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산책로를 아무런 이유 없이 막고 있는 돌무더기는 사람들 앞에 의외의 상황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예술과 삶과 자연에 대하여 피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지지만 잘 쌓여진 돌무더기 속에서 작업의 의미를 찾기 보다는 각자의 반응을 통해서 혹은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이 모든 것에 대한 질문과 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 돌무더기는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서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을 받아주고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길을 바라 볼 것이며 단풍이 물드는 나뭇잎과 한 겨울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5. 낙엽과 돌 떨어진 낙엽위에 작은 돌들을 올려놓았다. 이 작업은 나뭇잎을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유화물감을 올려붙인 실내 작업을 야외현장 작업으로 확장시킨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돌들의 색깔과 나뭇잎의 색깔 또는 형태에 일치시켜나가는 작업은 자연과 자연이 색채와 형태를 통해서 만나는 자연미술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돌들의 시간과 시간 따라 떨어지는 낙엽들이 나의 작업 속에서 만난다. X 그 동안 나의 작업들은 그것이 캔버스에서 이루어지든 자연공간에서 행해지든 나름대로의 작업논리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제작태도는 어느 것도 허투루 되어지는 것이 없는 자연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 되기’의 지속적 변주를 시도하고 있는 나는 공간과 평면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의 장을 마련한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감추고 있는 것은 없다. 자연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나는 언제나 그 문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자연에서의 나의 작업은 나를 앞서나가 자연과 만나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에 대하여 피상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한번이라도 진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 세상에 내리신 아름다움을 온전히 마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는 내 앞을 가리고 선 욕심들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47 no image "이것이 미래교육이다"강좌를 마치며
소나무
4185 2007-06-05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를 마치며 전원길/작가,대안미술공간 소나무 대표 I 프로그램의 진행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이 기획한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지난 2005년 10.11-11.15 동안 매주 화요일 마다 6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강사로는 양원모 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장, 김보성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장, 손채수 초암어린이교육예술연구소장이 맡아 주셨으며 관련 영상자료 ;오래된 미래교육/일본 자유학원, 교육은 예술이다/영국 슈타이너학교, 교육은 체험이다/일본 키노쿠니학교, 교육실험실/러시아 톨스토이학교, 사랑과 치유의 공동체/태국 무반덱학교 등을 감상하고 토론했다. 본 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에서 세계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교육사상을 바탕으로 한 대안학교 운동들 중 우수한 사례들을 직접 현지촬영, 제작한 영상물을 소개하고 지역의 교사와 예술가, 시민들이 함께 우리의 교육 현장을 되돌아보고 통합예술교육에 대한 접근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가능한 한 많은 현직 교사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강좌시간을 저녁시간으로 잡았다. 결국은 현장의 교사들을 통해서 실질적인 교육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좌에는 현직 유치원 원장님을 비롯하여 초, 중등학교 선생님과 장학사님 그리고 문화예술관련 프로그램 기획자, 대학생과 예술가 등이 함께 하였다. 소나무와 미래교육 소나무는 2001년 안성에 자리 잡은 이후 줄곧 현대미술의 왕성한 창의력을 이용한 대안적 교육을 실험해 왔기 때문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진행하게 되었다. -소나무는 그동안 현대미술 작가들을 초대하여 전시회를 열고 전시된 작업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어 표현 할 수 있도록 하는 “현대미술하고 놀자”와 전통 천연염색 과정을 통해서 색을 발견하게하고 물들인 헝겊을 바느질을 이용하여 조각보를 비롯한 창작 생활소품을 만들어보는 “자연에서 우러나는 우리 색” (2004), “우리 색, 현대미술과 만나다”(2005)를 실행하였다. 특히 올해는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안성 지역의 많은 작업실에 일반인을 초대하여 작가와 일반인이 예술을 매개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운영 목적은 예술가들의 창의적 상상력을 통하여 현대인의 굳어진 정서를 유연하게 회복하게 함으로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느끼도록 하고, 다양한 예술 작업에 관하여 감상하고 즐기게 함으로서 예술로부터 대중이 소외되지 않고 예술가 또한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나무는 이번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를 통해 지역사회의 교육현장에 계시는 여러 선생님과 창작 활동을 통해 자기세계를 창조적으로 열어가는 예술가들을 만나고자 하였다. 이것은 미래교육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실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모으기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해서였다. 전통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 대안적인 교육을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고 이미 교육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에서부터 이웃나라인 일본과 태국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교육 유형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학교마다의 특징적 분위기를 파악함으로서 각 나라의 대안교육 사례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아울러 다양한 교육현장에 계시는 교사, 교육행정관청의 여러분들과 미래교육의 향방에 관하여 같은 관심을 가지고 논의하는 자리를 함께 마련했다는 것은 향후 학교와 소나무가 필요한 부분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교육의 발전적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특히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II 이 시대의 교육 현실과 요구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 교육현장의 비교육적 상황에 대한 염려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단선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를테면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명예로운 직장에서 일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지극히 동물적 욕구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면 대개의 일선학교나 학부모들은 일단 좋은 학교에 보내고 봐야 한다는 가장 안전하지만 가장 위험한 목표를 세우고 학생들을 몰아세운다.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은 학창시절 자연스럽고 풍부한 정서 속에 발휘될 창의적 자발성을 심각하게 훼손당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강한 교육열이 이만큼의 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켜서 점차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각성을 가진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는 이 사회 현실에서는 이루기가 힘들다. 이를테면 자신만의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포괄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보다 풍부한 삶의 모습을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해 내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의 현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안적 교사와 대안적 삶 최근에 많이 생겨나고 있는 대안학교는 교육받은 새로운 기성세대의 각성과 반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각 대안학교의 교육철학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단지 교사들의 헌신적인 소명의식과 민주적 학교운영 그리고 입시교육이 아닌 전인 교육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교육 자체의 방법으로 볼 때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대안학교의 교사가 대안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를 몸으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원론적 수준에서 대안적 교육을 꿈꾸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대안적 교육을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대안적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교육행위를 곧 예술로 보는 슈타이너의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대안교육 나 역시 일류대학 만세인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 무엇이 진정한 기쁨을 주는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았고 처음 품었던 삶의 목표를 잃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이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입시 준비와는 상관없이 즐거웠던 고등학교 미술반 활동을 통해 미술을 통한 기쁨을 누렸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학원이 아닌 서클 활동을 통해서 나의 끼를 갈고 닦을 수 있었고 손 때 묻은 미술실의 이젤과 정물들이 나의 예술가로서의 미래를 격려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생긴 미술에 대한 이해가 나를 사회통념이 아닌 나의 신념에 의해 살아가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시대의 미술과 교육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나의 태도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회적 성취는 아닐지라도 무엇인가 성취해나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준비 조건이며 내면적으로는 순간순간 자아 실현의 기쁨을 누리면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서 같은 공간속에 있었지만 그들은 일반학교에서, 나는 대안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학교 안에 뭔가 여유 있는 예술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대안교육은 개발적 측면 뿐 만아니라 회복의 측면에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부모들은 오히려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개별성을 존중한데 반하여 지금은 보편적 성공에 기준을 두고 미래를 설계해 주는 부모들의 퇴보된 생각으로 인해 많은 문젯점이 파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해 볼 문제이다. 예술가와 창의성 회복의 측면에서든 개발의 측면에서든 교육에 있어서 예술적 사고는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하여 예술가들이 누리고 있는 창의적 삶의 기쁨을 어떻게 제도권 교육 혹은 대안적 교육 전반에 적용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었다는데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창의성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특성 중의 하나이지만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 속에서, 삶 속에서 예술 활동을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작업 과정에서 일어난 섬세한 창의적 사고와 감성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왜 일어나는지 분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가까이서 그런 연구가 진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예술가의 창의적 사고의 흐름을 교육에 적용하기위해서는 예술가와 창의적 사고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가치가 구체적으로 조명되어야만 실질적으로 예술과 교육을 접목하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교육예술 인간과 세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예술을 통한 교육과 교육예술을 주창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이념과, 자연 속에서 인간의 자연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태국의 무반덱 학교의 교육 방법 등이 특히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교육예술이라는 말의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 된 것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는데 미술작업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 나로서는 관심이 가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과 사물의 상징으로서의 미술이라는 전통적 방식과는 달리 삶과 대상(object) 자체가 예술이 되는 현대미술의 방법론에 의하며 교육이 곧 예술이 되고 교사가 곧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논법은 쉽게 성립될 수 있다. 슈타이너 교육 이론에 대해서는 우리의 역사와 정서와 관련하여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서 이야기 될 수 있으나 그가 예술적 마인드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련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면 교육방식을 예술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술을 통한 교육과 교육예술은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전자는 예술적 표현 과정을 통해서 일반 지식을 습득해 가도록 하는 것이고 교육예술은 교육을 예술의 한 형태로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교육을 예술의 한 형태로 본다는 것은 교육자가 곧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예술가들이 누리는 자아실현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기존의 교사와 다른 것은 교육의 신성한 사명을 수행함으로서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는 전통적 교사마인드하고는 상당히 달라진다. 즉 교사가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식으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 아니고 교사가 어떤 과목이든 (혹은 프로젝트) 이것을 창의적으로 소화해 내는 과정과 그것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이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혹은 화가가 어떤 그림을 화폭에 그려나가면서 겪게 되는 창의적 프로세스를 갖게 되고 그에 따르는 예술적 고양감을 느끼고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 톨스토이 학교의 한 학생이 “수업에서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선생님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카리스마가 학생들 사이에서 작용하여 무언가 흥미 있는 사태가 수업을 통하여 끊이지 않고 발생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응이다. 여기서 교사는 학생들과 동등한 입장의 수혜자가 되기 때문에 헌신적 교사와 학생들 간에 생기는 일종의 공치사, 부담감 같은 것은 끼어들지 않는다. 좋은 수업은 아이들과 더불어 한판 벌이는 퍼포먼스와 같고 한 학기를 잘 끝내는 것은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즐거움에 비례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러한 차원에서 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보람을 느끼기보다 행복한 자아실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학교에서 학생보다 교사가 먼저 행복해 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이야기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과다한 학생 수, 과중한 잡무 등으로 교과 연구를 충분히 못하고 수업에도 충실하기 어렵다는 등의 현실적 어려움은 늘 산재해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교사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예술가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작업하는 일이 온전히 자기 일이기 때문에 즐겨 모든 일을 시간과 상관없이 해내지만 자기 일이므로 불평은 없다. 우리가 살펴본 대안학교 교사들이 쉬임없이 수업을 준비하고 성인처럼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들이 예술가로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예술가적 마인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가와 교육예술가 예술가들이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창의적 발상의 계기로 삼는 것처럼 창의적인 교육예술가들은 창의적 순발력과 열정을 가지고 문제를 발생시키는 학생들과 더불어 이제까지와는 다른 수업을 창의적으로 이끌어 낼 것이다. 예술가들이 망친 그림을 통해서 오히려 예기치 않았던 영감을 얻어 작업하며 마침내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것과 같다. 예술가들은 전혀 미술과 상관없을 듯한 대화나 장면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서도 번득이는 영감을 얻어낸다. 교육현장을 창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흐름 속에 집어놓고 교사와 학생이 고양된 감성과 지성을 교감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작업이 된다.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학생을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준다는 일종의 주는 방식 보다는 그가 처해있는 현실과 그의 부적응의 요소 자체를 하나의 예술프로젝트로 삼아 문제를 풀어간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대 미술가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방식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자신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영역으로 그 학습의 방향을 확대해나가는 방식을 통해 학생들은 예술가이면서 학습자로서 예술가이면서 교사인 인격체와 만나게 된다. 교육예술가의 발굴과 교육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과 만나면 교육이라는 보편성 안에 예술이 갇혀 버릴 염려가 있으며 교육은 예술가의 엉뚱함으로 인하여 모험적 성격을 띄게 될 확률이 높다. 교육예술가가 자기실현을 포기하고 일정한 틀 안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게된다면 생생한 창의성을 아이들과 더불어 실현해나가기가 힘들 것이며, 예술가로서의 무한한 상상력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사한다면 사회의 상식과 통념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교육과 예술적 상상력의 균형감과 지혜로운 판단력을 가진 교사를 어떻게 길러내고 교육현장의 시스템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거침없이 발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사회는 교사로서의 헌신적 삶을 맹세하는 소명을 가진 교사들을 기대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교육예술가들의 덕목은 소명의식 뿐 아니라 실질적인 창의성을 발휘할 만한 훈련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생활 전반에서 발휘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갑자기 이런 교사를 대량 공급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수 십년 이상 몸으로 체득된 예술적 경험과 사색이 있어야 창의적 정신과 몸의 카리스마를 갖춘 교사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창의적 교육예술가들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창의적 예술가들이 교육현장의 중심과 사이드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 교사를 예술가로 교육시키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교사를 예술가로 거듭나도록 재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 속에서 정책적으로 시도하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교육을 맡아줄 팀을 구성하는 일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예술계에서 교육적 권위를 가진 집단은 대학의 교수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들이 지금의 편협한 사고를 가진 미술교사들을 배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예술가로 탈바꿈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예술 현장에서는 손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새롭고 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방법들은 감각적 기술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계의 유수한 미술학교에는 미술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학원 과정에서 미술실기와 관련한 전문교육을 받는 작가들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창의적이기 때문에 창의적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교육예술가로서의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래 교육에 있어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여기서 소나무가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현장의 예술가들과 제도권의 교육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간략히 소개하고자한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간다’는 ‘창의적 정신과 몸의 카리스마’를 가진 작가와 일반인들이 에듀케이터라는 매개자를 통해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기존에 소나무에서 시행하고 있던 “현대미술하고 놀자”가 확대된 미술교육프로그램으로 여기에 참가하는 예술가들이 교사로서 일정한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은 작업을 통해서 쌓아온 예술가로서의 풍부한 창의적 인격(카리스마)을 보여준다. 작업실의 창의적 분위기 속에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고 그 에너지에 힘입어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경영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쌍방향적이다. 예술가들 또한 자폐적 고립상태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 가능성을 직접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 건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와 기존의 제도권 교육이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에듀케이터가 예술적 경험은 있으되 교육으로 연결시켜내기 힘든 예술가를 도와서 일반학교에서는 하기 어려운 창의적 에너지가 충만한 작업실 수업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III 창의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미래교육을 기대하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장 체계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안학교는 영국의 슈타이너 학교라는 생각이다. 교육예술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체계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학교가 추구하는 정신이 여전히 이 시대에 의미 있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슈타이너 학교가 이미 한 세기 전 버전이고 소개하는 자료를 통해 보여지는 미술작업은 왠지 이 시대의 확장된 미술의 분위기 속에서는 고전적 방식으로 느껴졌다. 슈타이너 학교 내부적으로 어떻게 초기의 사상과 교육 방법을 진화시켜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원론적 측면에서는 역시 그들의 역사와 교육적 환경을 바탕으로 생겨난 교육시스템이기에 지금의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어색한 점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큰 특징 중 하나인 8년 담임제 같은 것은 지금처럼 사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세상과 인간의 그 다양한 면면들을 감당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그러나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통찰력과 창의적 적응력을 교육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로 활용하고 있는 슈타이너 학교의 방법은 미래의 교육을 생각하는데 중요한 지침으로서 희망적 기대를 하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극단적인 전통과 역사의 단절을 경험하였으며 급박하게 근대화 과정을 겪음으로서 생긴 필연적 부조리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각 분야의 예술가들의 경험은 소중하게 사용 되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부조리한 상황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내어 긍정적인 상황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교육예술’이라고 하는 조합어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실태로 드러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이제 비로소 조금씩 그 개념이 이해되고 있는 시점에서 거친 비약과 상상이 너무 많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것이 미래교육이다” 강좌를 계기로 미래교육의 초석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확산되길 바란다. 예술가들의 작업 과정 속에서 발휘되는 창의성의 속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성과를 미래교육에 연결시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나길 또한 기대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보다 다양한 삶의 가치가 이 세상에 제공되고 삶이 곧 예술이고 교육인 세상 속에서 교사와 학생의 구분이 없이 서로의 정신과 영혼을 고양시켜 미래교육사회가 열리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
46 no image .. 나의 자연
소나무
3714 2007-06-05
45 no image 실기실을 통해 본 영국미술대학/아트한남 2005.6 게재
소나무
5412 2007-06-05
실기실을 통해 본 영국미술대학/아트한남 2005.6 게재 전원길 2005/7/22 (23:14) 실기실을 통해 본 영국미술대학 전 원 길/작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관장 I 영국 미술대학의 교육과정과 시설은 우리나라 미술대학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필자는 런던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에 속해있는 첼시미술대학(Chelsea College of Art & Design)의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보다 분명한 작업 방향을 설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이 기간 동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미술교육 환경 및 그 교수방법에 대하여 살펴볼 기회를 가진 것 또한 값진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공부한 첼시미술대학은 100여년의 전통을 가진 학교이고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미술대학 중의 하나이므로 첼시의 교육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영국 교육시스템의 중요한 일단을 보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서는 실기수업을 위한 시설환경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다른 기회가 있다면 영국미술교육의 그 내용적 측면을 소개 하고 싶다. II 학교에 입학한 후 있은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학교 시설 전반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한국의 대부분의 미술대학들과 다른 점들을 많이 보게 되었으며 수업과정을 통해 이러한 시설들이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나마 영국 미술대학의 실기실 및 연계된 중요 시설들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실기실(Studio) 영국미술대학의 실기실은 첼시를 입학하기 전 왕립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의 실기실을 방문하면서 분위기를 파악 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실기실이 마치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드로잉으로 온통 채워진 벽면, 단지 작은 책상 하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공간,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찬 실기실, 주렁주렁 작품(?)을 매달아 놓은 학생 등 어느 공간 하나 비슷한 곳이 없었다. 요즈음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모두가 같은 크기의 파렛트에 찔끔찔끔 짜놓는 물감 배열 스타일 그리고 사용하는 붓의 종류도 거지반 비슷하고 모두 다 규격화된 캔버스를 사용하는 우리의 실기실과는 아주 달랐다. 영국의 대학들은 기초 과정(Foundation Course) 때부터 공동 실기실 보다는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작업한다. 이것은 공통 소재를 놓고 수업하는 한국의 기초과정 수업과는 달리 개별 프로젝트(Project)가 튜터리얼(Tutorial)이라고 불리우는 개인 면담 중심의 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미술대학의 졸업전은 보통 자신이 작업하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동안 지저분하게 사용하던 벽도 깨끗하게 칠하고 보조 벽이 필요하면 전시를 위해 벽도 만든다. 필요에 따라 좁은 공간들을 터서 큰 공간을 만들고 서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작품을 디스플레이 한다. 이렇게 꾸며진 각각의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다 보면 너무나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학생들이 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비록 학생들의 졸업전이지만 미술계는 신진작가들의 탄생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다. 전시기간동안 평론가, 큐레이터, 컬렉터 등이 초대 되어 미술대학 졸업작품을 관람하고 때로는 신진작가를 발탁한다. 1997년 런던에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전을 기획한 사치 컬렉션의 챨스 사치가 어느 대학원 졸업전 작품 전체를 사들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2) 워크샵(Workshop) 및 테크니션(Technician) 위에서 언급한 각기 다른 실기실 분위기는 다양한 워크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를테면 판화공방, 도예공방, 주물공장, 철공소, 목공소, 컴퓨터실 등이 있는데 학생들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작품화하는데 필요한 시설과 공구 등이 대부분 학교 내에서 해결된다. 나는 영국의 학교에서 완성된 캔버스를 사서 쓰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물론 화방에 가면 아주 좋은 캔버스들이 종류별, 사이즈별로 많이 쌓여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그런 비싼 물건을 살만한 여유도 없거니와 직접 기계와 공구를 다루어 만들어 씀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즐겨 한다고 할 수 있다. 입학 첫 날 담당 교수가 목재상, 철근 사는 곳, 건재상회, 화공약품 가게 등을 알려준 이유가 무엇인지 얼떨떨한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튼 섣불리 덥석덥석 모험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도 목공소를 들락거리며 캔버스도 만들고 액자도 만들어 사용하는 재미를 누려본 덕에 지금도 작업실에 목공작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각 공방에는 작업을 돕는 테크니션들이 상주하며 찾아오는 학생들이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3) 시청각실 영국의 대학에서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전임교수 이외에는 모두 방문교수진에 의해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한 학기 내내 일주일을 단위로 반복되는 정규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제도와는 다른 방식인데, 한 교수를 학기 중에 많아야 세 번 정도 만나게 되고, 일 년에 단지 한 번만 특강 형식으로 방문하는 작가들도 있다. 방문하는 작가들은 우선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슬라이드 쇼(Slide Show)를 갖는데 이러한 슬라이드 쇼에는 때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모두 참석한다. 슬라이드 쇼는 대개 시청각 시설이 완비된 시청각실에서 이루어지고 슬라이드 쇼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학생들과 작가와의 대화(Talk)가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미리 예고된 특강 스케쥴을 확인하고 원하는 경우 개인면담(Tutorial)을 사전에 신청할 수 있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슬라이드 쇼가 끝난 후 자신의 작업실에서 방문 작가와 1:1로 만나서 자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방문 작가들은 현장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유명작가들이 많다. 학생들에게는 미술계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들을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격려가 될 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실질적인 지도를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 4) 미술전문도서관(Library) 학교의 시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도서관이었다. 실제로 학생들이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구과정(Research Course)에 남으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도서관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첼시미술대학의 도서관은 런던의 다른 미술대학들 중 미술 관련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학교 중의 하나로, 풍부한 미술관련 도서 및 비디오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특기할 만한 사항은 지난 수십 년간의 중요 전시의 거의 모든 카탈로그를 수집 보관해 학생들은 사서의 도움을 받아 원하는 작가들의 전시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료의 수집을 위해 촬영 담당자를 별도로 고용해 중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전시회는 물론 학생들의 졸업 작품까지도 슬라이드로 찍어 보관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오랜 역사와 더불어 쌓여진 도서관의 자료는 현대미술의 다양하고 새로운 형식을 탐색하기위해 필요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준다. 5. 전시 공간(Bookable Space) 첼시의 대학원에는 학생들이 필요하면 예약해서 쓸 수 있는 10평 남짓한 전시공간이 있었다. 필자도 당시하고 있던 드로잉 작업들을 전시하면 좋겠다는 담당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틀간의 짧은 전시회를 가졌었다. 이러한 전시가 열리면 별도의 그룹 튜터리얼(Group Tutorial)이루어지는데 담당교수들과 학생들이 모두 모여 전시 작품에 대하여 질문하고 의견을 듣는 수업이 된다. 작은 개인전 형식이지만 알차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 공간은 전시형식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을 전시공간에 전시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 것인지 가늠해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공간으로서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학부 건물에도 이와 비슷한 공간이 있었는데. 학생들 뿐 만아니라 외부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하는 보다 일반적인 갤러리 성격의 전시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교내에서도 다양한 전시를 관람 할 수 있다. 런던예술대학교 본부 건물에는 수준 높은 내용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갤러리가 있어서 대학교가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읽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III 지금까지 런던의 첼시 미술대학의 실기실과 연계된 시설들과 그 사용 내용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시설과 인력을 확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술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영국의 대학들의 장점을 우리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데 응용하고 적용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부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젊은 작가(Young British Artists)들이 최근 들어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는 새로운 미술형식의 탐구라는 전위적 역할을 자처하는 런던의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환경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실천했던 학교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이제 한남대학교의 미술대학은 독립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미래지향적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보다 활기차고 생생한 반응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실기실 분위기를 만들어 학생 각자의 작업의 발전은 물론 한남대학교 미술대학이 새로운 발전과 혁신의 길로 나아가게 되길 바란다.
44 no image 이응우의 “바꿔쓰기와 다시보기
소나무
3369 2007-06-05
이응우의 “바꿔쓰기와 다시보기” 전원길 2005/7/6 (0:53) 이응우의 “바꿔쓰기와 다시보기”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관장 지난 겨울 이응우선생의 작업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갑작스런 건강 적색 경고를 받고 그가 취한 조치는 추운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공주 원골 자연미술의 집 작업장에 틀어 박히는 것 이었다. 우선 너저분한 작업실을 정리하던 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오브제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것들과 놀이를 시작했다. 자르고, 태우고, 붙이는 동안 불속으로 들어가 재가 될 나무토막들이 그의 손맛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용도가 애매한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 쓰다버린 작두 같기도 하고 우주공상영화의 비행선 같기도 한 作業物들은 그의 생김새만큼이나 털털하게 보이지만 그가 몰두했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의 놀이의 소산들은 우쭐하게 자신을 뽐내야 직성이 풀리는 여타 예술작품들과는 달리 시골 노인들이 툭툭 찍어 쌓아 놓은 나무토막들처럼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그저 다른 것들과 나란하게 누워있을 때 오히려 보기 좋다. ‘바꿔쓰고 다시보기’는 이응우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무릇 모든 창의적 사고의 출발이 그가 말하는 “변용과 재인식”의 과정이고 보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물의 분류적 특성과 실용성에 의해 규정되는 사물의 이름과 그 의미망을 벗어나 사물의 또 다른 본성과 만나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치유하기위해 작가 본연의 일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자신이 천착해온 자연미술의 연장선상에서 무언가 그럴듯한 작업을 하기위해 몸을 도사리기보다는 그저 발에 걸리고 손에 잡히는 나무토막과 철재들을 주물럭거리는 작업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본인도 예기치 않았던 주변 것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나는 그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얻어낸 소득은 무엇보다도 창작의 즐거움을 실감나게 경험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작가로서 쌓아놓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긴장을 풀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신의 감성과 정신을 유영(遊泳)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이응우가 자연 현장에서 이미 풀어놓은 작업의 양이 적지 않고 한국 자연미술계의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인 이상 그의 작업들 하나 하나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몸의 정상적이지 않은 징후를 접하자 삶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응우는 자기스스로 자기에게 짐 지운 그 어떤 것을 내려놓고 마치 초보자처럼 아주 원초적인 제작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전시회가 단지 그의 유희적 작업들로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 그가 전시 팜프렛 표제 작업으로 선보인 ‘댕기’라는 작품은 긴장의 이완 이후에 찾아오는 산뜻한 발상으로 이전의 유사 작품과 그 형식적 차이를 보이는 작업을 선보였음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그는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 서서 보다 새롭게 앞으로의 작업을 설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여름 땡볕 아래 그야 말로 잘 차려입고 그의 꽁지머리에 풀로 땋은 댕기머리를 묶은 다음 그 끝에 빨간 댕기를 매었다. 여기까지는 자신의 꽁지머리와 자라나는 들의 풀들을 서로 관계지우면서 우리의 전통적 머리스타일과 자연의 생명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동안 野投그룹의 일반적 제작 어법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는 선연한 핑크빛 배경색을 자신의 작업의 배경으로 취함으로서 개념적(conceptual)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을 시각적(visual)인 영역으로 회귀시켜 시감각적 즐거움을 충분히 제공하게 하였다. 그가 팜프렛 제작을 위해 도발적 포즈와 배경색을 그의 품성대로 점잖게 수정하기는 하였지만 처음 제시한 사진이 주는 매력적이면서도 코믹한 여운은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서 그는 보여짐을 의식했다. 풀잎 댕기머리를 달고 단색 벽면 앞에 삐딱하게 서 있는 뒷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작업 의도를 분석해 들어갈 여유를 주지 않고 직접 눈의 망막에서 먼저 작용한다. 개념과 감성이 그 경계를 허물고 동시에 엉켜 들어오는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그냥 삐실 삐실 웃음을 흘리게 한다. 그는 간단한 퍼퍼먼스를 통해, 상서로운 일을 위해 길을 떠나기 전 의복을 정제하고 예뿐 댕기를 매었던 우리의 옛 형님들과 누이들을 이야기하면서 전시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축원하였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 제작과정을 듣는 일은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이 나의 의식이 소화 할 수 있는 범위를 어느 순간 벗어나 쭉 뻗어나가는 느낌을 받을 때는 기분 좋은 질투감이 머리와 가슴사이를 왕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겨울 작업실에서 풀어낸 이응우 선생의 작업들이 긴 여름 장마의 첫머리에 열리는 개인전이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열린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즐거운 작업 과정에서 찾아든 행운같은 영감의 순간이 같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또한 작가 이응우의 앞으로의 행적이 창작의 진정한 즐거움이 고갈된 이 시대를 격려하는 큰 몸짓으로 드러나게 되길 바란다.
43 no image 고 승 현 의 '백년의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3288 2007-06-05
고 승 현 의 '백년의 소리'를 들으며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2005 기획초대 2. 고 승 현 개인전 '백년의 소리'에 붙여 전원길/작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관장 자연미술가 고승현의 작품은 주로 자연물로 이루어져 대부분 자연 현장에 있었다. 이른바 자연미술이라는 영역을 일구어낸 중요 멤버들의 중심에 서 있던 그는 자연 속에서 생각하고 자연과 더불어 작품을 진행해 온 작가로서 인상 깊은 작업을 많이 남겼다. 이번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의 고승현의 작업들은 실내 전시장에 놓여지게 된다. 그의 선행된 많은 작업들이 자연성이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는 숲속이나 들판 때로는 바닷가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백년의 소리’를 담은 이번 작품들은 실내에 놓여진다. 대지예술 등 서구의 야외작업의 양상들 대부분이 자연 속에서 자연물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미술행위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비중을 두었다면 ‘야투’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자연미술은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통해 작품을 이루어나가는 특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연현장이 아닌 자리에 작품을 놓는다는 것은 자연미술가로서 간단치 않은 태도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고승현이 그의 작품을 실내에 들여다 놓은 것은 아마도 그의 단순한 의지에서 비롯 되었다기 보다는 작업 내용 그 자체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그의 전시제목에서도 말해주듯이 이번 전시의 주요 컨셉은 소리에 관한 것이다. 그는 지난 200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작업과 관련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는 갖가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태초 이후 지금까지 이곳 장군봉 숲속에 살던 곤충들과 동물들의 울음소리,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오래전 집을 짓던 목수들의 끌과 망치소리 등 지나간 과거의 소리가 지금은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미세한 소리의 입자들은 시.공간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소리들은 또한 내가 만든 가야금 소리와 함께 하나의 화음으로 조화를 이루고 미래의 소리들과 만나 영원히 퍼져 나갈 것이다.” 라고 적었었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중의 하나인 가야금과 유사 구조를 취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확고한 형태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의 ‘소리내기’를 통한 개입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품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듯이 몸체에 매어진 줄을 손끝으로 튕겨내는 순간 울려 나오는 소리가 그 나무의 나이테 속에 배어든 갖가지 시,공간 속의 소리를 불러내어 함께 어우러지는 관념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 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 비로소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작품이 작품이 되게 하는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장소는 어디가 적절한가? 고승현은 필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자연미술이 실내에서 더욱 생생하게 빛을 발하리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는데 그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평상시 본인의 생각을 적절하게 실현하고 있음을 본다. 그의 작품과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하나의 층으로 이해한다면 그의 작업은 공간과 물질이 교대로 쌓여진 다층적 구조를 갖게 됨을 알 수 있다.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한 내부의 공간/ 그것을 형성시키고 있는 자연물인 나무/ 그리고 다시 그 소리체를 둘러싸고 그 울림을 확산시키는 실내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한정시키고 있는 인공물(전시장 건물구조)/그리고 그 건물을 감싸고 있는 무한대의 자연공간/ 마지막으로 그것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작품을 인식하는 인간의 심리적 공간을 상정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는 작품의 몸체가 자연공간 속에 존재 할 때 보다는 인공물로 쌓여진 실내공간에서 그 존재적 대비가 발생하고 이러한 대응은 서로를 강화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이 작용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작업의 소재로 시각적 현상을 다루기보다는 ‘소리’라는 재료를 이용하고 있음은 그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 다른 자연미술가들과의 차별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이해된다. 물론 그는 전통적 음악 소리와는 완연히 구별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소리’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로의 초대를 의미함과 동시에 작품을 만나기 위한 열쇄이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소리를 불러내어 현실 속에서 만나게 해주며 미래의 누군가의 손에 재생되기 위하여 다시 그 작품의 몸체와 공간에 담겨지는 것이다. 더불어 전시되고 있는 볍씨를 이용한 작품들은 시간의 궤적이라 할 수 있는 나이테 틈바구니에서 싹을 틔우는 작업이다. 위에서 언급한 소리작업이 비록 자연물을 이용했으나 인공적 손질의 흔적이 강하여 일견 편안치 않은 느낌을 주는데 반하여 볍씨를 이용한 작업은 나무에 최소한의 흙과 씨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온전히 자연물로만 이루어진 작업으로서 훨씬 부드럽게 우리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간과 환경의 흔적인 나이테와 씨에서 씨로 이어져 미래로 흘러가는 씨앗의 만남은 무심이 흘러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잠시 담겨지는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도 그 아름다운 나무의 무늬와 그 속에서 솟아나는 여린 싹이 이루는 조화로움 앞에서 우리는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날 수 있다. 이제 자연미술가 고승현은 자연 속에서의 자연미술작업을 역으로 확장시켜 실내공간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소리통이 우리의 잠자는 정신을 울리며 파고들기 전 까지는 우리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그것은 잘 조율된 장인의 가야금에 비하면 엉터리 악기에 불과 할 것이고 전통적인 조각 작품에 익숙한 어떤 이들 에게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나무에서의 고승현의 작품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러한 제한적 인식의 틀을 허물고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 속의 다양하고 수많은 생명의 소리를 경험함으로서 온갖 소음으로 짓눌린 인간의 자연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2005년 기획초대 두 번째 전을 준비하여준 작가 고승현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42 no image 작가의 얼굴
소나무
3027 2007-06-05
작가의 얼굴 전원길 2005/4/2 (1:17) 작가의 얼굴 얼굴은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일까? 작품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화단의 일원으로서 낭만적 허영심을 흉내내고 있는지는 얼굴로 부터 읽어 낼 수 있다. 곁눈질 하지 않고 세상과 사물을 직시하는 작가로서 그 창의적 에너지가 충만하다면 그 얼굴은 당당하고 빛나리라. 또한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그 어떤 세계를 구현하기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던 세잔느 처럼 뚝심있는 자세와 눈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생각이 샘솟 듯 하는 사람은 보는 이의 기분을 바꿔놀 만한 생기있는 얼굴을 가졌다. 충만한 희열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자신의 작품이 되돌려 주는 감흥으로, 고단한 현실조차도 창의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승화시켜내는 사람은 흔들림없는 표정을 지녔다. 세상을 느끼기를 상처난 피부처럼 예민하여 칼날 처럼 날카로운 감성으로 자신의 것을 세워나가는 사람은 순간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을 그의 얼굴을 통해서도 볼 수 있겠다. 자기 것을 서둘러 내세우지 않아 모든 이와 더불어 친밀하지만 속 깊은 뜻이 있어 섣불리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않는 사람은 부드러우나 믿음이 가는 얼굴을 가졌다. 나는 마음 속 모양새를 깊고 넓게 잡아 나감으로서 아름다운 얼굴을 갖게되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다
41 no image 미술작업의 결과와 과정
소나무
3107 2007-06-05
미술작업의 결과와 과정 전원길 2005/4/1 (0:38) 미술작업의 결과와 과정 한 학생이 나를 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수업시간에 다른 두 작가의 작업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작업을 하라는 지도(?)를 받았다는 것이다. 본인은 소위 비구상 작업을 시작함에 있어서 적어도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너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 잘 알고 있으니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더라도 영 다른 길로는 가지 않을 것 같으니 한번 ‘하고 싶지 않은 대로’ 해봐라 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실기실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선별해 준 사진들이나 자신이 인터넷이나 미술잡지, 심지어는 작년 졸업생 졸업 전 카탈로그에서 잘라낸 사진을 이젤에 붙여놓고 거의 베끼는 작업을 하는 학생들을 자주 본다. 결과를 중시하는 생각에서 나온 방법들이다. 작품 같은 작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런 현명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이 시대 예술가의 작품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어디서 출발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지 진술해야하고 그 진술내용의 어느 부분에 너의 것이 있는지 이야기 하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 힘들다. 왜냐하면 정보가 넘치고 쉽게 많은 이미지를 취할 수 있는 오늘날 너무 쉽게 그 과정이 생략된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하나의 잣대 아래 그 작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예술성을 평가하는 방식이 다원화되고 각자의 작업의 가치를 자신이 세워나갈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전공을 하고 전문작가로 살아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냥 한 사람으로서 산다고 하더라도, 유형화된 삶이 아닌 생생하고 창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한 작품이라도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비록 어설프더라도 자기 길을 찾아가는 흔적을 남겨보아야 한다. (계속)
40 no image 훌륭한 선생은 학생이 만든다.
소나무
3014 2007-06-05
훌륭한 선생은 학생이 만든다. 전원길 2005/3/28 (23:53) 훌륭한 선생은 학생이 만든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상호적 관계이지 일방적 관계 일 수 없다. 가르치는 사람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배우는 학생들의 진지한 반응이 있어야 한다. 되돌아오는 반응이 진지해야 다음 말이 깊이 있게 나간다. 작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그 생각하는 바가 정직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선생은 보다 구체적인 논점을 찾아들어가면서 작업의 컨셉을 정립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의 사상을 논한다. 사상 없는 예술작품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술을 교육하는 사람도 자기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 속에서의 대화는 그 사상에 초점이 맞추어져야한다. 각자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실랄한 토론이 이루어 질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감정적 앙금이 없다. 선생과 학생 서로가 무엇인가 예기치 않았던 가르침을 주고받으면서 창의적으로 고양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된 선생 못지않게 준비된 학생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흔들며 파고드는 말에 대응하는 태도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나와 관계하는 선생의 말에 집중 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반응을 하기위해서는 독립된 자아로서의 가치관을 전제로 한다. 비록 그 사상이 호방하여 우주 전체를 아우를 만한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자신과 남의 것을 비교 할 수 있는 소박한 정신 기조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즉 자신을 비워내고 보다 큰 틀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는 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는 되 있어야 본격적인 미술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아무런 사상적 기준이 없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해년마다 오고 가는 학생들을 맞이하는 선생이 있다면 그는 그 맡은바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은 실력 있는 선생이 없음을 탓할 수 없고 재능 있는 학생이 없음을 핑계 할 수 없다. 학생들의 잠재된 가능성은 선생들이 열어 주고 선생들의 능력은 학생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계속
39 no image 스승의 그림자
소나무
3018 2007-06-05
스승의 그림자 전원길 2005/3/9 (22:11) 연재되는 글은 새로운 시대의 창의적 미술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것으로써 미술교육의 주변적인 문제부터 예비작가들 혹은 전문작가의 길로 들어선 젊은 작가들이 생각해 볼만한 내용을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본 것들이다. 즉흥적이고 거친 아이디어에 의한 글이지만 관심있는 분들의 의견이 개진된다면 보다 풍부하고 알찬 내용으로 전개되리라 생각한다. 1. 스승의 그림자 우리는 사제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동안은 오랫동안 쌓아올린 자신의 작품세계를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방식이 교육방식의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학생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사람들의 말을 따라 스승에 대한 수직적 존경심을 갖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한편 교수들은 제자들을 자신의 자식과 같이 여기고 챙기고 아껴주었으며, 따르는 많은 제자를 많이 두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러한 미술대학의 사제관계는 과거의 도제교육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옛 사람들의 사제 관계와는 다른 점이 있다. 예전에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날 때는 그동안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이 소개서을 써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분야야 명성이 있는 분의 성함 정도는 알고 찾아갔다. 단지 자신의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결정할 뿐 자신이 가고자 하는 대학에 어떤 교수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그림을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지금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대학의 이름이 작가로서의 성공을 가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고 만난 스승과의 관계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분야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보다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미담(美談)과 악담(惡談)을 많이 남겼다. 아마도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작가들은 예외 없이 미담과 악담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의 미술계를 본다면 대학을 통해 맺어진 일방적인 인맥관계가 파벌화되고 미술작가로서의 성공이 소수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맥과 인맥의 역학적 관계속에서 주어졌기 때문에 더더욱 비화가 많다. 여기서 그 모든 부조리를 들추어 성토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시대에 사제관계의 새로운 정립은 왜 요구되고 있으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미술교육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모범 답안 같은 전형적인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함으로서 각각의 삶이 의미 있게 여겨지는 이 시대의 다원주의적 사상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파급력이 큰 매체를 통하여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삶의 태도는 이미 현대인이지만 변화하지 않는 교육 시스템 속의 미술학도들은 물론이고, 뭔가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받는 교수들 역시 이른바 과도기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이 배워오고 경험한 방식이외에 다른 교육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수들은 뭔가 맘대로 안되는 현실을 한탄하고 분개하거나, 교육의지를 상실한 채 시간을 때우거나, 사적인 아트비즈니스에만 몰두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매체의 등장은 더욱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각종 디지털 영상 기계를 다루어온 학생들에 비하여 기성세대는 아무래도 기기에 대한 이해와 사용에 있어서 굼뜨고 배우는 속도도 느리다. 따라서 비디오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작업을 하는데 전공교수는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없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배워야 될 기술들이 많은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술 형식이 시각적 감상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작품의 개념과 제작과정 전체가 중시되는 개념미술이 보편화 되고 있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더욱 심화된다. 묘사능력과 시각적 밸런스 그리고 재료에 대한 물리적 이해가 중시되던 미술방식에서 발휘되던 선배의 노하우는 개념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미술에 있어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중요 미술학교에서는 교수와 학생들 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미술학교는 과연 이 시대에 필요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현재의 미술교육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세월이 변하고 새로운 방식의 사고가 요구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거룩한 스승의 그림자를 지키기 위해 변화하지 않는다면 학생과 교수는 서로를 진심으로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함께 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계속
38 no image 背反의 美德
소나무
2925 200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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