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61 no image 앤디 워홀 전시를 보고나서
소나무
5589 2007-07-06
전하림 씀 4월 8일 워홀 전시회를 다녀왔다. 일단 그림들은 일단 이미 봐왔던 거였다. 하지만 그곳에 비디오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나에게 참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 비디오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들(자신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다양한 일반인, 영화배우 등등..)을 2분 45분 동안 촬영하여 4분으로 늘려 상영하는 작품이었는데,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눈을 더 깜빡이는 사람도 있고, 자신감에 찬 얼굴로 자신의 심장을 꺼내거나, 방이 좁아지는 듯한 마임연기를 한 여성도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평소 모습처럼 이야기하는 배우, 옆모습만을 찍으며 계속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여배우 등.. 하지만 나에게 가장 재미있던 건 카메라를 무표정하게, 솔직하게 응시한 사람들 이었다! 하얀 조명아래 두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라는 워홀의 주문을 받은 사람들은, 사실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은 알았을까? 자신은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4분 동안 아무런 의식적인 방해도 없이 바라보게 될 것을. 그들은 아마 처음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에 어떤 표정을 지어왔는가 생각했을 것이고, 어떻게 화면에 보이고 싶은가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지루하고 어떤 면에선 흥미롭고, 어떤 면에선 종교의식 같은 그 작업을 하며, 그들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코가 맘에 안 든다거나, 아니면 어느 곳이 가렵다거나, 눈의 어색함을 느낀다거나, 오늘 아침에 먹은 빵이 다 떨어져 간다거나, 자신의 혀에 남아있는 음식의 뒷맛을 느끼거나, 작업실안의 페인트 냄새,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도 자신에게 신경 쓰였을 것이다. 어제 본 티비방송이나, 갑자기 생각난 언어 유희적 발상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었을지도. 아니면 더 깊은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주변사람들, 자신이 지금 이 고요한 조명아래 숨죽여 이 카메라를 보기 전까지의 인생을 더듬어 봤을지도……. 1. 소통 나는 그 사진도 동영상도 아닌 얼굴들을 보며, 일종의 짜릿함을 느꼈다. 보지 말아야할 것을 봐버린 듯 한 느낌, 눈을 피해야할 것 같은 느낌,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 우리들은 보통의 경우 타인의 얼굴을 5초 이상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쳐 오랫동안 바라본 적은 얼마나 되는가? 길거리에 지나치는 사람들은 물론, 친구, 주위사람들, 심지어 가족까지도 말이다. 보통 남을 그렇게 바라본다면 그것은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곧 어색한 시선을 서로 피할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그것은 연인들이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달콤한 말들을 정신없이 속삭인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생각으론)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 나에게 그 얼굴들은 그렇게 다가왔다. 완벽한 소통으로! 내가 바라던 '소리 없고 침착한, 거의 무심한 상태의 서로의 완벽한 이해'에 대한 일종의 정답이며 힌트였다. 어디선가 읽은 바에 의하면, 개미들은 서로의 안테나를 맞대어 서로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전한다고 한다. 난 그 개미들처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남자건 여자건 상관은 없었다. 소통의 한계에 대한 생각, 즉 자신에 갇혀 절대 자신 외의 그 어떤 것도 본질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또, 경험의 보편은 있을지라도 의미의 보편은 인간의 각자의 역사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외로움과 소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외로움이 소통을 갈구하고, 그것을 무엇으로든 표현하고싶었던 나의 막연한 소망에 대해, 워홀은 시원하고도, 섬뜩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하였다. 2. 인간성. 난 그런 침묵 속에서 진정 그들의 인간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얼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한 특정인물을 떠나, 모든 걸 상징했다. 불안을 상징하고, 히피를 상징하고, 사랑을 상징하고, 미국을 상징하고, 인류를 상징하고, 60-70년대를 상징하고, 워홀을 상징하고, 소통을 상징했다. 그의 생김새 또한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동영상이 이미지화되었다가, 이미지가 반복되고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얼굴을, 그 눈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친구 같은 가까움으로, 경이로운 상징으로. 말도 표정도 없는, 개인성이 절제된 얼굴들에게서 어쩌면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의미밖에 남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섬찟했다. 우린 인간으로서의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우린 얼마나 겉모습에, 말에, 외면적인 것에 집중하는가? 어째서 한사람에게 4분 동안도 집중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눈을 보고 이야기 하지 않는가? 워홀은 카메라로 사람을 응시하며 그 얼굴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리고 묻는다. '무엇을 앗아갔는가?' 그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산업화, 즉 현대사회가 앗아간 '인간성'이다. 예를 들어 그는 한 때 타이프라이터 같은 사무용품을 주제로 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지루한것이좋다'고.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엘비스와 마릴린 먼로를 주제로 작업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스타가 좋다'고. 저 두 개념은 어쩌면 상반된 개념이다. 하지만 그 둘은 통한다. 그것은 그 둘이 가지는 '일반화된 의미' 이다. 타자기는 종이에 글씨를 찍어내고, 엘비스는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라큰롤을 부른다. 현대인은 현대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리고 워홀은 그 아름다운 시체들을 대놓고 까발린다. 현대인은 재난에게서 의미를 앗아갔고, 최후의 만찬의 신비로움을 앗아갔으며, 마릴린먼로와 스타들의 인간다움을 앗아갔고, 음식의 다양성도 앗아갔다. 그리고 인간성마저도 앗아가려한다. 이때 요즘 읽은 카뮈의 ‘페스트’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 책은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전쟁을 불러일으킨 어리석은 이데올로기들을 상징하며, 그것을 반대하며 카뮈 특유의 ‘인간미’와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책이다. 그 책엔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불행에는 추상적인 일면이 있다. 하지만 그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워홀은 보통 은둔자니, 신비주의니, 거짓말쟁이로 불리지만,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싶었을 뿐 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발견한 단순하면서도 속 깊은 아이러니를 감각적이게 포장하여 대중에게 전달했다. 그는 스타를 사랑했지만, 스타의 아이러니를 더 사랑한듯하다. 스타의 비인간성, 스타의 이중성, 스타의 상품성.. 그는 분명 자신의 작업에 심취했다. 그랬기에 자신도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도 아이러니를 남겼다. 그도 역시 비밀스러웠고, 그도 역시 자신을 상품화했다. 하지만 난 그 비디오를 통해 감히 짐작해본다. 그의 크고 대담한 자화상을 통해 그도 비디오 속 사람들처럼, 또 그 비디오를 보고 있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본연의 인간성으로서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아니라면 적어도 난 그렇게 하고 싶다. 죽은 지 20년이 지난사람인데, 전시회엔 온통 젊고 패셔너블한, 시대의 젊은 피들이었다. 축하합니다 앤디. 당신은 여전히 ‘유명’합니다.
60 no image 도병훈 선생님의 '나와 너의세계, 미술'
소나무
5121 2007-06-05
59 no image 독립작가연구회와 신미술문화운동
소나무
4088 2007-06-05
독립작가연구회와 신미술문화운동 전원길 2006/11/8 (1:10) 머리말 독립작가연구회와 신미술문화운동 전원길 (미술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대표) I 독립작가연구회 독립작가연구회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 미술 작가들의 연구 활동 모임으로서 각자가 추구해 나가는 작업의 성과를 개인전 혹은 오픈스튜디오(OPEN STUDIO)를 통하여 미술이론가 및 작가들과 더불어 프리젠테이션과 인터뷰(PRESENTATION & INTERVIEW)를 갖는 장(場)을 마련하는 것을 기본 활동방안으로 삼으며 그 외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하여 지역사회 미술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결성되었다, 회원명단 경수미, 김수철, 김희곤, 박용국, 우무길, 유지숙, 이우숙, 이윤숙, 장혜홍, 전원길, 황은화 이상11명 가 결성된지 이년 반 만인 이 시점에서 연구회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와 전시회가 열리고 그간의 활동 내용과 세미나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게 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라 하겠다. 어느 시대 건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예술가들은 사회참여가 되었든 순수한 방법론적 탐구이든 간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행보를 생각하고 나아간다. 또한 예술계 내부의 구조적, 정치적 진화 과정 속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할 일을 모색한다. 독립작가연구회는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후진적 미술문화를 좀 더 발전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바꾸어 내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독립작가연구회는 단지 집단화된 그룹 형태의 모임을 지양하고 연구회 성격을 강조하였으며 보다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방안을 *창립 취지문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 창립 취지문 독립작가연구회는 독립적으로 활동해 온 작가들이 보다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회원 각자의 발전과 지역 사회 미술계의 전문화와 활성화에 기여하기위하여 결성되었다. 참가하는 회원은 새로운 조형 언어를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의 바탕 위에 세워나가고자 진지하게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로서 각각의 작품 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발전시켜 경쟁력 있는 작가로 우뚝 서기 위한 서로간의 협력을 모색하며, 지역의 전문 작가들이 활기 있게 경쟁하는 새로운 현대미술 중심 도시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이 시대의 사상과 문화 예술 환경을 바탕으로 한 자생적 자기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하여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과 관련된 동서양의 이론 및 전시정보, 작가 자료를 연구하고 교환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교양의 수준이 높은 미술애호가 및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폭넓고 전문적인 예술 담론의 장을 형성한다. 기존 미술계의 권력 지향적 구조에 대응하는 작가 중심의 새로운 활동 체계를 실험하는 한편 국제적인 네트웍을 형성하여 국가와 인종을 넘어서는 예술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교류를 갖는다. 작업과정에서 얻어지는 내밀하고 신비로운 작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영감이 끊임없이 교환되는 작가 주도적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본 단체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시 활동, 연구 활동, 국내외 작가들과의 교류 활동 및 기획 사업을 수행하며, 나이, 학력, 경력 등에 의한 불필요한 권위보다는 합리적인 토론과 자유로운 대화로 마음을 열고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창의적인 발상이 자유롭게 교환 되도록 한다. 창립취지문에서 보듯이 독립작가연구회는 낭만적 예술숭배주의에 빠져 자기 자신과 이웃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현혹하기 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자기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탐구와, 이 세계와 인간 그리고 미술 그 자체에 대한 관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기위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결성되었다. 이러한 모임의 배경에는 독립적인 한 예술가로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길을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자는 생각 뿐 만 아니라, 지역에서 자라고 활동해온 예술가들로서 보다 건강한 미술풍토를 만들어 보려는 지역미술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또한 밑받침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활동해온 작가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그들이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일들이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보다 발전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이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본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찾아질 것이다. II 독립작가연구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는 개인전을 통한 자기 작품 ‘프레젠테이션과 인터뷰’(Presentation & Interview)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보통 개인전을 준비하며 서문을 받기 위해 평론가와 만나게 되는 기회를 함께 공유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발전한 것으로서, 전시오픈 행사시 이론가 혹은 작가를 초대하여 작품 전반에 관하여 토론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창립되던 해인 2004년에만 일곱 차례의 개인전이 ‘프레젠테이션과 인터뷰’ 프로그램과 함께 열렸으며 기존의 전시 오프닝과는 다른 형식의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전시문화 형성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언제든지 전시회를 엮어낼 수 있는 회원들의 평상시 작업역량이 뒷받침 되었고 기꺼이 회원들과 관객, 그리고 초대된 질의자와 더불어 작가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업 경로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말로서 풀어낸다는 것은 평상시 많은 공부와 사색을 하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 논리에 의해 작업하기 보다는 순간적인 직관에 의존하거나, 아예 작업 과정 속에 자신을 맡김으로서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작품을 완성시키곤 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사색적 복기(復碁)와 그 작품이 갖는 의미를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찾아보는 작업은 대개 평론가들의 역할로 남겨진다. 따라서 작가들에게 작업에 대한 논리 정연한 설명을 요구하거나, 질의자의 질문 내용에 대한 논리적 설득력을 갖는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도 할 수 있다. 토론을 통해서 작가들은 속 시원한 답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 입장을 취하게 됨으로서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립작가연구회의 모임을 통해서 모든 작가들은 나름대로 진솔하게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으며, 참석자들은 예전에는 듣기 어려웠던 작가의 내밀한 경험을 직접 듣고 이와 관련된 작품세계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평상시 현대미술에 대해 어려워하던 참석자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작품에 대한 진지한 소감을 나눔으로서 작가와 관람객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열띤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일종의 면책특권이 주어지는 토론의 장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너와 나의 사적 관계를 떠나서 작품을 매개로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진전되고 대화의 실마리가 잡힐 만하면 시간관계상 서둘러 마무리해야하는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화의 장은 모두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며 좀 더 깊은 만남을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작가로서 흡족하지 않은 토론을 했더라도 그 작품의 가치가 한 번의 토론으로 섣불리 평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되 쓸데없는 자존심이 지혜로운 충고를 가로막아서도 안 될 것이다. III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시문화 속에서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관람자가 함께 모여 작품에 대하여 토론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동안 작품은 말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척 보면 그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공통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미술은 소수 전문가들 속에서 전유(專有)되고 판단되어졌기 때문에 작가들은 관객에게 관심을 갖기 보다는 미술계의 소수 권력층을 향해서만 자신을 노출하고자 하였다. 독립작가연구회 회원들은 이러한 화단 분위기속에서 배우고 자란 40대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가들이 자신들의 체질을 바꾸어 새로운 전시문화를 주도해 나간다는 것은 실로 혁명적 각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술에 대한 끼와 열정이 자신의 예술세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과 공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친절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그 소박한 반응에 귀 기울인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식화가 일어나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발적 각성과 함께 작가들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음을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통한 절대주의를 추구하던 모더니즘적 사고가 붕괴되고 상대적 가치를 중시하는 다원주의가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작용하면서 미술에 있어서도 절대적 판단보다는 상대적 가치가 중시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작품의 수준을 가늠 할 수 있는 공통의 잣대가 없어지고 개별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작가들은 분명한 자기 진술(Statement)를 요구받는다. 즉 결과보다는 작업의 과정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명료한 자기발언의 필요성은 전통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나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하는 작가에게 있어서나 공히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작가연구회는 이러한 자발적 각성의 필요성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새로운 미술문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자기를 갱신해가고자 노력하였으며, 그동안 진행되었던 일련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모든 회원이 이 시대 신미술문화운동의 일원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IV 2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독립작가연구회의 ‘프리젠테이션과 인터뷰’(11회)와 세미나(2회)는 총 13회가 개최되었고 참가한 발제자와 질의자 발제자와 질의자 박남걸(예술철학), 임재광(미술비평), 안케멜린(작가,전시기획자), 도병훈(작가), 김성배(작가), 정재훈(문화인류학) 전원길(작가,전시기획자), 박우찬(미술비평), 김미경(미술사), 조규현(문화예술비평), 김성호(미술비평), 심경숙(작가) 고충환(미술비평), 류영주(작가), 김종길(미술비평), 정경미(큐레이터), 박일호(미학), 정준모(큐레이터), 김복기(언론), 이윤숙(작가), 류지숙(작가) 이상21명 . 는 총21명이었다. 관객만도 매회 평균 50명이 넘었고 많은 경우 약 170명 가까운 수의 관객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발제자와 질의자로서 참가하신 분들 중에는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나 이론가들도 있지만 서울과 타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짧은 기간 동안 공적인 일로 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때 인적 교류의 가시적인 효과를 이끌어낸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고 자평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가 및 외부 작가와의 만남을 회원들이 공유함으로서 전시초대 등의 직접적인 효과 뿐 아니라 지역 미술계에 대한 이미지 재고 등의 간접적인 효과로 이어졌다는 점, 참여관객의 경우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여 일반적인 작품감상 혹은 전시관람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경험과 함께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동의 여운 등을 남겼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프로그램은 지역미술계의 전문화와 활성화를 위한 모델사업으로서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할 만 한 일이라 여겨진다. 창립 취지문에서 제시한 과제들 중에는 아직도 미래의 과제로서 남겨두고 있는 것들이 있다. 세계미술의 중요한 흐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만남으로 작가로서의 기본적인 교양의 수준을 높이고 작업역량을 극대화해나가자는 방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국제적 활동의 장을 마련하기위한 방안과 작가들간의 교류를 위한 공간 마련에 관해서도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거나 다른 시스템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독립작가연구회가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뿐 만 아니라 새로운 미술문화운동으로서의 힘을 갖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도 총체적인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소수의 소극적인 활동을 통해서는 단지 이름뿐인 단체의 메아리 없는 구호가 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활동해온 작가들이 그야말로 독립된 작가로 돌아가서 그동안 독립작가연구회 안에서 취해왔던 태도를 미술현장의 다른 작가들과 더불어 확산 시켜나가고 한편으로는 심도 있는 연구와 발표를 통해 본래의 취지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선하고 실력 있는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그 의미를 살려나갈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독립작가연구회는 이번 행사와 책자 발간을 계기로 모임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새로운 미술운동을 일으킬만한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되길 독립작가연구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는 바이다. 그동안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전시장을 애써 찾아주시고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애정 어린 격려와 더불어 진지하게 토론에 참가해주신 여러 관람객 여러분 모두에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작가들의 작품에 대하여 수준 높은 질문을 던져 줌으로서 작가 당사자는 물론 함께한 동료작가들과 관람객들에게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질의자 여러분과 세미나에서 소중한 내용으로 발제를 맡아주신 선생님들께 독립작가연구회 회원 모두를 대신하여 또한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욱 의미 있는 만남을 이어감으로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작가와 이론가로서 커가게 되는데 피차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충분치 않은 조건 속에서도 전시 및 세미나의 기획과 책자의 편집을 위하여 애를 써주신 김성호 선생님과 이를 후원해 주신 경기문화재단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다. 2006년 8월 오양골 작업실에서
58 no image 2006 미술농장 프로젝트 실내전
소나무
3986 2007-06-05
2006 미술농장 프로젝트 실내전 2006 미술농장 프로젝트 실내전 2006.9.30(토)-11.3(금) 장소: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www.sonahmoo.com sonahmoo@hanmail.net 031-673-0904 참여작가; 고승현. 김도명. 김해심, 박봉기, 양태근. 전원길 미술로 자라는 식물 식물로 자라는 미술 전원길. 작가/대안미술공간 소나무 대표 I 오늘날 자연은 미술표현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작품의 실재 주체가 되기도 한다. 돌이나 물과 같은 자연물, 살아있는 풀이나 곤충, 동물, 자연의 현상 등이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면서 감상자에게 다가온다. 이러한 방법은 미술이 더 이상 이론적 연결고리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대지예술(Land Art)등의 서구미술의 방법론적 확장으로서 드러난 자연 속에서의 미술(Art in Nature)보다는 1980년대 한국의 『야투(野投)』를 중심으로 발전되어온 자연미술(Nature Art)을 통해서 자연은 더욱 더 생생하게 작품 속에서 작용한다. 야투(野投)적(的)이라고 할 만한 작업들은 찰나적인 설치와 행위를 통해서 시도되었다. 당시 작업들의 대부분은 사진 등의 기록을 통해서만 남아있으나 자연을 일순간 미술 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필자는 그 감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미술의 지적인 논법을 통해서 해독되기 보다는 자연의 제반 현상이나 질서, 혹은 가공되지 않은 살아있는 자연물 등을 통해 우리를 미술로 안내하고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오게 하며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미술 상태를 보여주었다. 당시의 자연미술은 전통적인 회화라든지 조각 등의 시각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가졌으며, 아리송하게 뒤틀린 지적(知的) 장치를 달고 나타나는 개념미술의 논법과도 다른 특성을 지닌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서 그냥 자연이 아닌 자연미술이 되고 사람들은 작품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을 어떠한 선행학습 없이도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으며 금방 그 뜻을 이해하는 동시에 모방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자연을 통해서 자연미술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고 자연은 이전과는 달리 하나의 의미소로서 남아 평생 그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이 자연미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미술이 이렇듯 개념적인 전달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미니멀아트 이후의 확장된 현대미술 방법론들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발생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현대미술의 일반적인 가능성을 의외의 방식으로 확산시킨 자연미술은 자연의 해석이라는 형식에 초점이 맞추어져온 미술을 자연이 직접 작품과 감상의 과정에 작용하는 미술로서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근본적 차이를 찾을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깊어질수록 자연미술의 향방도 그 각을 달리 할 것이라는 측면에서 자연미술은 하나의 가능태로서 존재한다. 자연의 표피적 현상만을 경험하고 사는 인간이 자연을 논한다는 것은 가소로우면서도 어리석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자연의 면면에 대한 단상적 접근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미술 상태를 통해서 나라는 작은 존재 속에 내재된 자연성을 인식하고 자연 속에 펼쳐져 있는 신성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자연과의 만남이 된다. II 『미술농장 프로젝트』는 지금까지의 자연미술의 방법들 중에서도 생태현상을 보다 긴 기간(약5개월)에 걸쳐 작업에 반영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획되었다. 이는 제한된 공간과 운영시스템의 특성상 도시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작업을 자연 공간 속에 위치한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장소적 특징을 살려 실현하였으며 따라서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이러한 전시를 실현하기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지난 5월 13일에 있은 오프닝 겸 파종식에서 여섯 명의 참여작가들은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씨를 뿌리는 일종의 파종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설치된 작품 안에서 식물이 자라고 꽃피고 결실하기까지의 진행 과정은 사진으로 기록되고 웹사이트(www.sonahmoo.com)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자연에 맡겨졌으며 소나무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감상하고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싹을 틔워내고 자라나 꽃을 피워내고 혹은 열매를 드리우며 작품으로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졌던 식물들은 가을의 찬바람과 함께 스러지겠지만 맺힌 씨를 터트려 내년을 기약 할 것이다. 작가들은 각각의 작품들의 변모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야외 작업과 관련된 별도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작업을 실내 전시장에서 보여 줄 것이다. 자연의 생명력이 작용하는 현장에서의 작업을 다시 실내작업으로 풀어내는 순환적 연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모든 장(場)을 통털어서 작용하는 자유로운 예술의지를 각자의 작업에 수용하기 위해서이다. 자연미술이 실내 중심의 닫힌 사고를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갔다면 이제는 밖에서 안으로 역(逆)확산되는 과정을 통해서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발휘할 때임을 다시 선언하는 것이다. 그동안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생태를 이용한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미술농장 프로젝트』에서 보여진 작품들은 자연미술운동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보다 섬세하고 집중적인 자세로 자연의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작업에 반영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III 이번에 야외에 전시되었던 작품들에는 작가들의 체질화된 손맛이 어떻게든 드러나고 있다. 자연의 생태적 현상에 모든 것을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식물과 작가의 표현의지가 공조하면서 작품이 이루어져 나갔다. 워낙 참여작가들이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자주 작품들과 만나고 돌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하지만 많은 어린이들과 관람객들이『미술농장』을 찾았다. 인근 보체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미술농장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기도 하고 군포 디딤돌문화원 어린이들은 직접 주변의 죽은 밤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미술농장 프로젝트』가 미술관이나 너른 들판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도시공간 작은 한 귀퉁이의 화분이나 나무 상자 등을 활용해서도 가능하다. 도심 속의 작은 미술농장들을 연계하고 각 나라의 곳곳에서 ‘미술로 자라는 식물 식물로 자라는 미술’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미술과 식물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자라고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리라. 2006년 9월 오양골 미술농장에서 박 봉 기 박봉기 밥과나/ 유기그릇, 돌판, 씨앗, 흙/ 2006년 5월부터-9월 박봉기의 ‘밥과 나’는 소복하게 올라온 싹들이 아름답게 그릇을 채워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좁은 그릇에 많은 채소들은 더 이상 자라지 못했다. 그 중에 오이는 굵은 싹 하나만 남기고 솎아주었다. 버팀목을 세워 타고 올라가도록 하였으나 오이의 넝쿨 손이 감고 올라가기에는 좀 굵었던 것 같다. 거름을 충분히 뿌려주었으나 시기를 놓친 탓인지 오이가 많이 열리지는 않았다. 먼저 열린 오이 하나는 따먹고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황금색으로 늙어 가고 있다. 무성하던 오이잎들은 가을 바람 나며 차례로 말라버리고 윗부분 새로 난 잎들만이 햇빛을 받아내더니 이제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모두 갈변褐變하였다. 빛깔 좋은 황금색 오이는 무성하게 자라오를 미래의 씨를 배태하고 느긋하게 가을을 맞고 있다. 김 도 명 김도명/ 장독대(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종이(골판지), 흙, 야생화 2006년 5월부터-9월 김도명의 ‘장독대’는 강렬한 햇빛에 노출된 초기에 중심을 잃고 허물어진 이후 비에 젖고 다시 마르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런 퇴화과정을 보여준다. 종이 항아리 위로 봉숭아, 하늘풍선, 패랭이꽃들을 차례차례 피워냈고 장독대 주위로 코스모스들이 잘 자라서 초여름부터 갖가지 색깔의 꽃을 피웠다. 자연스럽게 색이 바랜 종이 항아리는 이제 땅에 몸을 기대고 평안하고, 한 장 한 장 떨어져 나도는 종이편片들도 항아리의 씨앗인양 이리저리 뿌리내릴 장소를 찾는다. 고 승 현 고승현/ 나팔꽃 쉼터/철근, 오동나무, 나팔꽃씨/ 2006년 5월부터-9월 고승현의 ‘나팔꽃 쉼터’의 나팔꽃이 여름철 뜨거운 철근을 타고 높은 구조물 끝까지 오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었는데 잘 자라 주어 붉은 보라색 나팔꽃이 아침녘이면 만개하였다. 초기에 영양부족으로 자라기를 더디 했으나 거름으로 힘을 북돋우어 마침내 꽃 모양 구조물을 덮었다. 양 태 근 양태근/ 미술농장 속 동물농장/ 철, 동, 흙, 식물/ 2006년 5월부터-9월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의 마당을 지키고 있는 양태근의 젖소와 이상한 동물들은 싱싱한 풀을 먹고 건강하다. 젖소의 그동안의 노고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풀들이 직접 뱃속으로 채워넣어 먹는 수고를 덜었으며 젖소의 등을 타고 오른 한삼덩쿨이 멋지다. 젖소를 따라나온 조그만 기형의 동물들은 치유를 기다리는 듯 한 여름 동안 풀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가 최근에 풀을 베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는 석양에 번쩍이는 몸체를 드러내곤 하는 젖소는 여전히 그 빛깔을 잃지 않고 당당하다. 김 해 심 김해심/ 토끼풀 완상(玩賞)/ 토끼 풀/ 2006년 5월부터-9월 김해심의 토기 풀 보호구역의 토끼풀들은 여전히 푸르다. 이대로 겨울을 날 것이다. 마침내 둔덕을 덮어 편안한 완상의 터를 만들어 주길 기대했으나 흙을 부어 만든 둔덕을 자라 오르기보다는 있는 자리에서 뿌리를 든든히 한 듯 하다. 행운의 네 잎 크로바는 얼마나 달렸었는지? ‘토끼풀 완상’을 찾는 이들은 우선 마음이 설레건만 행운은 쉽사리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전 원 길 전원길/ 파씨를 뿌리다/ 나무판, 흙, 파 씨 / 2006년 5월부터-9월 전원길의 파밭은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불청객인 잡초들이 한 두개씩 돋아나더니 한 여름 잦은 비에 무성해졌다. 고민 끝에 잡초들을 뽑아내어 네 귀퉁이에 모아 심은 채 얼마간 그렇게 두었으나 그것도 마땅치 않아 모두 뽑아내고 파들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7월말 많은 비로 파밭의 일부가 유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 처음 싹이 나올 때 잘 드러나 보이던 손자욱과 선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구별할 수가 없다.
57 no image 눈물에 대하여
소나무
4701 2007-06-05
56 no image 조규현 선생님께
소나무
4752 2007-06-05
조규현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언제나 저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비엔날레에 관해서도 일일이 전문적인 안목으로 감상과 해설의 글을 올려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자연미술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여느 작품이 그렇듯이 저의 이번 작품도 이런 저런 아이디어 변화를 거쳐서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저는 연미산 앞 쪽에 위치한 단 두개의 샘물 중 하나를 이용하여 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미산은 건조한 산으로 물이 많지 않고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샘물이나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입구 쪽에 있는 샘물이나 그 물량이 많지 않습니다. 비엔날레 관람객를 위해 두 차례나 지하수를 뚫었지만 물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물이란 자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자연의 요소들 중 하나이고 특히 샘이란 보이지 않는 지하의 수맥과 연결되어 지상과 지하 보이지 않는 곳을 순환하는 물이 노출되는 신선한 장소입니다. 저는 이렇게 순환하는 물이 나의 몸의 비례(키와 어깨넓이, 눈의 높이와 간격 그리고 눈동자의 크기)로 부터 만들어진 철판 구조물을 통해 흐르게 함으로서 자연의 순환질서가 작품을 통과하도록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자연물이 아닌 가공된 자연물(인공물)인 철판을 사용한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미술이 순수 자연물 오브제를 사용하는 범위내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할 이유가 이제는 없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자연미술은 그 특성화를 위해서 인공물 보다는 자연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재료를 선호하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연미술'이라는 영역이 구체적으로 미술계 내에서 확보되었거나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물을 사용하면 자연미술이 된다'라는 위험스런 유형화가 이루어짐을 경계하여야 하고 이젠 다시 자연을 통한 특성화된 아이디어가 보다 보편화된 영역(회화,드로잉, 설치, 조각, 비디오, 사진등의 실내작업)으로 확대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철판이 가지고 있는 재료적 특성 때문입니다. 철판은 자연 상태에서는 산화되어 녹이 슬어 자연화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아마도 비엔날레가 끝날 때 쯤이면 검은 철판구조물은 붉은색으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매끈한 표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인공적 표면이 아닌 자연과 호흡한 흔적을 반영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물이 흐르는 물 줄기 주변에는 이끼가 자라서 물의 작용이 구체적인 현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잘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여타 자연물도 이러한 현상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인공적 흔적이 강한 철판을 사용함으로서 그 변화의 과정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판 그 표면의 색이 주변의 바위 색과 유사하여 자연 속에서 극단적 이질감을 주지 않는 점도 결과적으로 좋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물을 담을 수 있는 구조로서 철판보다 적절한 것을 생각 할 수 없었습니다. 기능적 측면에서도 적절한 재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철판은 제각 생각하는 단순한 구조물을 만드는데 좋은 재료였습니다. 저의 몸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면서도 가능하면 단순한 구조물을 만들고 싶었고 아울러 작업과정도 복잡하지 않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철판의 절단과 용접은 전문적인 용접공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난번 장군봉에서의 비엔나레 때 일일이 손으로 많은 양의 돌을 쌓아 작업을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눈물작업은 눈물이라는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여러가지 본성 중에서 감정에 대한 부분을 작업에 반영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적 눈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눈물이 상징하는 것은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리적 현상 중에서 눈물은 감정의 산물로서 인간이 순간적으로나마 자연적 순정성을 담아내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무심한 순환의 질서에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적 현상을 연결함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하나 됨과 대별성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작업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는 요소는 물을 끌어들이는 고무호수입니다. 시각적으로 다소 거슬리기까지 한 검은 고무호수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물을 구조물에 담아 내는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보다 작업의 의미에 다가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몇 몇 사람들이 이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저는 지금 그대로가 만족스럽습니다. 만일 호수를 숨기다든지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면 사람들은 단지 그 트릭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미술이 단지 자연미술이 자연물을 이용한 보암직한 상태에 머물르기 보다는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측면들을 예술적 창의성을 통해 드러내면서도 미술이라는 특별한 형식이 같는 특성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가기위해서는 더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보충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원길 드림
55 no image 제2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현장에서
소나무
4101 2007-06-05
제2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현장에서 전원길 2006/9/5 (9:34) 제2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현장에서 2006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기획총괄팀장 전 원 길 I 2006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GNAB2006)참여 작가들의 입국을 2 주 정도를 앞두고 고승현총감독과 사무실 스텝들이 모여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고 걱정과 각오의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자연 현상으로서의 쓰나미는 미리 알 수 만 있다면 거국적인 대비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맞이하게 될 비엔날레는 사무실 스텝들과 조직위원들이 온 몸으로 온전히 받아 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종의 공포와 우려감은 2004년 창립 비엔날레를 경험한 스텝들로서 앞으로 진행될 상황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은 예산을 가지고 국제적인 큰 행사를 진행해야하는 딜렘마를 그대로 안고 시작된 행사였다. 현장에서 재료를 구하고 숙식을 함께하면서 작품을 완성하여 전시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여느 비엔날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획과 진행의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아울러 이 십 여일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작가들과 몸으로 마음으로 부대끼면서 움직여야하는 행사이다. 20대 청년 시절부터 일박 혹은 삼박사일 야영을 하면서 다져온 야투회원들의 야외현장작업에 대한 노련한 진행경험이 없었다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야투는 언제나 주어진 예산 규모 이상의 일을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 이번 비엔날레도 조직위원회에 속한 회원 모두가 일의 흐름을 읽어내고 전체를 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해 나갔을 뿐 아니라, 각자의 직장생활과 작업스케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 주어야 할 때 나타나서 문제 해결를 자청하는 자발적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행사였다. II 이제는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 되었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해변의 모든 것을 휘저으며 와글거리다가 어느 순간 밀려가버린 백사장처럼 고요하다. 다만 나의 뇌리 속은 순서 없이 맴돌며 스쳐지나가는 행사의 순간순간들로 붐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그리고 가까운 아시안 작가들이 한 사람 한사람 입국하고 그때마다 픽업 스케줄을 잡고 분주히 움직였다. 편지와 사진을 통해서만 대하던 작가들이 커다란 가방들을 들고 나타났다. 말없이 반가움을 표시하는 작가들과 환한 웃음으로 오랜 친구처럼 친근한 표정을 지어주는 작가들 그들과의 첫 만남은 모두 달랐다. 피차 적당히 예의를 지키던 탐색의 시간은 마침내 먹는 일에 있어서 속내를 드러내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예외 없이 한식으로 제공되는 기숙사의 식단은 외국작가들에게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적어도 아침만은 커피와 빵을 먹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작가들을 통해서 인간의 제일순위 관심사는 역시 먹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기숙사 식당의 아침식사를 거부하고 사무실로 몰려와 부지런히 커피를 타먹는 모습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을 활기차게 해주었다. 작가들에게는 역시 작업 할 수 있는 재료가 최우선 순위에서 빠질 수 없다. 미리 재료가 짠! 준비되어 있는 작가는 군소리 없이 행복하다. 머릿속은 이미 완성된 작품을 향해서 줄달음치고 만사 오케이다. 그렇지만 도착한지 몇 일이 지나도록 작업재료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신경이 날카롭다. 비엔날레 관련 스텝이다 싶으면 붙잡고 이야기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야기해보아야 일은 꼬이게 마련이다. 성질 까다롭기는 이편도 저편도 작가로서 마찬가지 아닌가? 이러다보니 때로는 노골적으로 부딪친다. 낮선 나라에서 자신의 손에 익은 재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보니 속이 답답하기는 양편이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렇게 저렇게 애써서 재료가 제공되면 그제야 작가들의 굳은 얼굴이 펴진다. 은근히 밉살스럽던 작가에 대해서도 “작업에 대한 욕심이 대단해!” 하면서 오히려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현장에서 재료를 구해서 작품을 완성해야하는 행사의 특성상 작가들의 긴장과 조바심은 이해 할만한 일이다. 물론 미리 필요한 재료를 확인하고 대부분의 재료들은 작가들이 도착하기 전에 혹은 도착한 후 바로 준비되었지만 몇몇 작가의 확인 이 필요한 재료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외국작가들이 한국의 날씨와 음식 그리고 한국인의 일처리 스타일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순발력과 창의성으로 넘치는 일처리 방식이 한편으로는 조직적이지 않은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적은 예산과 적은 인력을 가지고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했다. 비엔날레에 참가한 외국인 스텝 중에 한 사람이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만 더 조직적이고 효율성 있게 움직인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맞다. 그러나 현재의 야투의 힘은 조직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이 십 육년간을 이끌어온 그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라고 대답해주었지만 그의 우정어린 충고는 가슴에 넣어두었다.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들이 주최 측의 작가들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작가들과 완전히 긴장감을 풀고 하나가 된 계기는 아무래도 원골 ‘자연미술의 집’에서의 파티가 아니었나 싶다. 7월20일 원골에서 비엔날레 스텝들과 국내외 작가들이 모두모여 참여 작가 환영식을 위한 바비큐파티가 있었다.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원골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자연미술의 집’은 회원들이 오랫동안 가꾸어온 매력적인 이층 구조의 건물이다. 건물 안 쪽에는 안 뜰이 있어 자연을 품고 있고 천연 생수가 사철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정원은 이제는 훌쩍 커버린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져 한결 분위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작가들은 자연미술의 집의 편안안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 이걸재님의 소리와 장단에 몰입되었고 금방 한 덩어리가 되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고 손을 잡고 강강술래도 했다. 마음껏 웃어도 보았으며 늦은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도록 춤과 노래와 이야기로 즐기다가 모두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어느 나라 어떤 미술행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술을 통한 세계인의 화합의 장을 현실로 일구어낸 파티였다. 작업기간 이십 여일 중에 팔 일정도 비가 내렸다. 마음 바쁜 작가들에게 말했다. “비올 때가 좋다. 비 그치면 폭염이 계속되면서 때로 태풍이 온다”고 말하자 눈을 크게 뜨면서 걱정하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작업 기간 중에 태풍은 없었다. 다만 무지하게 더웠다. 자기 작업이 아니라면 30도를 넘기는 태양 빛과 더위에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작가들은 작업을 마무리하기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허술한 작품이 없다. 잘 됐다. 이젠 하루 작업 일과를 마치면 끼리끼리 알아서 호프집, 노래방 잘도 다닌다. 한국에서의 20여일을 마무리하는 작가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불만은 없었는지? 가기 전에 마저 해야 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말도 붙여본다. 원더플(wonderful), 웰 오르가나이즈드(well organized!) 자기나라에서 주최하는 이벤트를 소개하고 거기서 만나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교환방문형식의 교류는 어떠냐는 제의도 있다. 언론인 초대 간담회와 자연미술상 수상자 선정 및 개막식 준비는 행사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 잘 챙겨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었다. 적은 인원으로 폼나고 완벽한 행사를 치루기위해서는 빨리 움직이고 집중력 있게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차분하게 좌중을 이끌면서 노련하게 사회를 진행한 이응우 회원이 부족한 준비를 메워주었다. 공주시장님의 축사 중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이준원 시장의 축사는 정해진 원고와 상관없이 즉석에서 작가들을 격려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살려내는 띄워내는 연설이었다. 까까머리 학생시절 금강 변에서 무슨 일인가 벌이던 작가들의 행태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는 그가 자란 도시의 새로운 시장이 되었고, 계속해서 자연미술운동을 펼쳐 마침내 국제적인 미술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그 작가들과 만난 지금의 심정을 이야기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 회원은 몸에 감동의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런 것을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른 한 단면을 본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예술가와 지역의 행정가가 같은 경험과 같은 비전을 공유하면서 문화예술의 발전을 꾀한다면 그것은 멋진 일이 될 것이다. III 지난 창립 비엔날레에 이어 2006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아 혼신의 힘을 다한 총감독의 체중이 많이 빠졌다. 가파른 연미산을 누구보다도 많이 오르내린 탓일 것이다. 고승현 총감독은 수첩이 없다. 새로운 일을 의욕적으로 만들어내고 또한 동시에 진행되는 모든 일을 순발력 있게 대처해나가는 그의 일처리 능력은 연구대상이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마치 정글을 헤쳐 나가듯이 달려드는 일들을 처리해나간다고. 적은 예산으로 막대한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총감독의 역할은 일당백이었다. 책임이 뒤따르는 큰일을 마주하면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전체행사의 책임을 맡은 총감독과 조직위원들의 두서없는 주문사항을 짜증 없이 처리해준 김태형 사무국장과 이원하 현장지원팀장의 역할이 없었다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즐겁게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김 국장은 예산 신청에 따르는 각종 서류작업의 복잡한 절차와 초대작가 심의를 위한 준비 그리고 몸으로 때워야 하는 작업장 정리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움직여주었고 이팀장은 들어 닥치는 외국작가들과의 일처리를 눈치코치 혹은 몸으로 우선 움직이면서 상황을 정리해 나가는 기지를 보여주었다. 비엔날레의 모든 절차를 챙겨주고, 정서가 다른 외국작가들을 안심시키면서 조직위원회와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 국제협력팀장 안케멜린과, 외국작가 제작지원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일한 안케멜린의 아들 벤자민씨의 테크니션으로서의 역할은 차기 비엔날레 때에도 적극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남았다. 행사의 호스트로서의 야투회원들의 움직임은 마치 보이지 않는 해결사 역할이었다. 많은 국제자연미술행사 통해 서로 호흡을 맞추어온 회원들은 알아서 빈 구석을 메워주었고 그 일은 꼭 필요한 일 이었다. 26년을 함께 해 온 회원들 간에 보이지 않는 결속력은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힘의 원천이었다. 앞으로 새로운 비전을 위해 지금까지 이룬 것을 내세우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함으로서 그야말로 미술의 신천지를 개척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제 사람들은 작가들이 흘린 땀을 밟으며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을 방문하고 있다. 편안한 산책로를 예상한 사람들은 다소 당혹스럽다. 오르기 힘들 뿐 만아니라 내려오는 길은 미끄럽다. 다음엔 좀 더 완만한 관람로를 개발하고 작품을 설치 할 것이다. 다소 가파른 언덕이 불안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더듬듯이 추적하고 그 의미를 새기다 보면 늘상 대하던 자연이 이젠 새롭게 다가온다. 마침내 도달한 연미산 정상에서 탁트인 전망을 내려다보면서 우리의 상상력도 그들의 작품과 같이 막힘없이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54 no image 조각보의 아름다움과 창의성
소나무
5076 2007-06-05
조각보의 아름다움과 창의성 전원길 2006/5/23 (22:53) 조각보 아름다움과 창의성 전 원 길 ‘없음의 미학’ -조각보는 없던 시절 짜투리의 천이라도 그 가치를 새롭게 살려내기 위한 마음 씀의 결과로 생겨났다. 지금처럼 쉽게 알록달록한 천을 많이 구할 수 있다면 조각보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작은 것을 이어나가 마침내 무엇인가에 쓰여질만한 크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집중한 결과 거기에는 어떤 형상을 표현하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넘어서서 순수조형의 세계에 도달하였다. 거기에는 세상에 있는 무엇인가와 닮은 이미지가 없다. -조각보에는 패턴이 없다. 주어지는 것에 의해 모양이 정해지고 완성된다. 다시는 그와 같은 것을 만들 수 없다. 조각보는 기가막히게 조형적이지만 상황과 조건의 산물이므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만드는 이의 삶이 베플어준 선물이다. -조각보는 고정된 형태가 없다. 담기는 것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절대의 것을 부정하고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포스트모던한 세계의 초현대성을 상징할 만하다. -바늘 끝에 마음을 묻혀나가다 보면 시간을 초월하는 마음을 갖게된다. 그 지루해야 할 작업을 쉬임없이 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어지면 쉬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처럼 자연스러워진다. 자연은 꾸미지않아도 절로 그렇게 아름답다. -마음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각보에는 속기가 없다. 조각보를 만든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조각보를 통하여 드러내었다.
53 no image 미술농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소나무
4478 2007-06-05
미술농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전원길 2006/5/20 (11:3) 미술농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전원길 작가/대안미술공간 소나무 대표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한적한 전원 속 미술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할 수 없는 장소이지만 잡다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미술의 한 끝자락을 잡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으로서 특성화된 공간의 면모를 살려가나고 있다. ‘미술로 자라는 식물, 식물로 자라는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미술농장 프로젝트는 6명의 작가(고승현, 김도명, 김해심, 박봉기, 양태근, 전원길)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의 야외공간에서 식물의 성장과정이 작업의 중요한 컨셉이되는 작품을 전개한다. 미술농장 프로젝트는 자연공간속에 위치한 소나무에서 자연과 인간과 미술이 상호적 관계속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바라본다. 또한 자신의 작업 속에서 자라나는 생명의 멧시지를 통해 다시 작업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연속적 작업을 기대한다. 미술농장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파종을 위한 장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하여 식물이 싹을 틔우며 작가자신이 마련한 설치물과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자라나는 과정을 관찰한다. 약 4개월간에 걸쳐 식물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 결실하는 과정은 사진이나 비디오 그리고 드로잉으로 기록된다. 9월 중순 작가들은 그간의 기록들과 작품들을 모아 실내 전시공간에서 전시를 하게된다. 이 전시회를 통하여 우리는 작가들의 작업이 어떻게 구상 되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자료를 통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작업 속에 초대된 식물이라는 자연속에서 자연의 생생한 생명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며 자연 본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을 통해 발휘되는 예술적 창조력이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작용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2006. 5. 13
52 no image . 박이소의 유작 전시회 ‘탈속의 코메디’
소나무
5218 2007-06-05
. 박이소의 유작 전시회 ‘탈속의 코메디’ 전원길 2006/4/14 (20:9) 박이소의 유작 전시회 ‘탈속의 코메디’ 로댕갤러리 3.10-5.14 2년전 어느날 신문에서 미술작가 박이소 사망소식이 실렸다. 여느 사망소식과는 다르게 이미 장례를 치룬지 한 달이 훨씬 지난 후에 알려졌다. 그의 사망소식이 알려진지 3달후 월간미술에는 박이소와 관련한 특집기사를 통해 그와 알고 지내던 미술계 인사들의 글들이 실렸다. 그의 작가적인 면모와 아울러 그의 길지않은 삶의 여정 속에 보여 주었던 이야기들이 추모의 마음과 함께 소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당시에 글을 썼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이영철씨가 로댕갤러리를 통해 그의 유작전을 기획하였고 동시대를 살았던 한 작가의 진지한 삶과 작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통하여 로댕갤러리의 상설전시작인 로댕의 ‘지옥의 문’ 그리고 지옥의 문의 배경이 되었던 단테의 신곡 Divine Comedy 등이 전시 타이틀(탈속의 코메디)과 전시구성에 있어서 박이소의 작품과 서로 관련을 맺으며 의미를 갖도록 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기획자와 작가가 미국에서의 유학 중 서로 만나 미술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가까운 사이였기에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삶과 상당히 밀착된 느낌을 주는 기획 유작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이소를 평가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그가 미술전반의 이론에 밝은 작가였으며 그러한 개인적 능력을 바탕으로 미술관련 서적을 번역하거나 미국유학시 다양한 글들을 한국의 잡지에 기고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가 제3세계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공간으로 운영되었던 마이너 인저리라는 대안공간을 미국에서 얼마간 운영했다는 사실도 그의 중요한 이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는 단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로서 보다는 미술계 전반을 읽어내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는 전략적 포지션닝(positioning)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작가 군 중의 한 인물로 분류 될 수 있는 작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사디SADI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과 인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것도 그의 전략적 사고 능력이 학생들의 작업의 위치를 평가하고 나아갈 방향을 잡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재치와 의미 그의 삶이 길지 않았다고 전제 하더라도 그가 남긴 작업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닌 것 같다. 일반적인 작가들의 작업량에 비하면 다작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작업이 간단한 드로잉이든 꽤 공이 들어간 설치작업이든 태작의 흔적이나 과욕의 흔적을 보이지 않으며 일정한 집중도를 보이는 작업들이다. 그만큼 각각의 작품들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돌아나온 듯한 작품들로 보여진다. 우연히 즉발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제작된 작업이라하더라도 사후 의미부여와 연작들을 통해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업들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북두팔성’1997-99 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업은 다시 ‘팔방미인’2002 로 이어지고 다시 팔방미인의 둥글둥글한 형태들은 ‘오공계’2002와 관련이 있어보인다. 팔방미인의 푸른색은 ‘드넓은 세상’ 2003으로 옮겨온 듯하다. 여기서 별은 다섯 개의 전구로 대치되고 하얀 종이 라벨들은 세상에 뿌려진 별들처럼 반짝인다. 처음 북두팔성은 칠성이 되어야하는데 우연한 실수로 팔성이 되었고 팔성의 의미를 나의 별의 추가 개념으로,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북투팔성을 그린 작가의 환생으로 자의적 해석을 함으로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의미를 부가시켜나가면서 작품 전체의 개념적 의미의 틀을 잡아나가고 있다. 야구방망이를 간장에 절이는 작업 ‘무제’1994 와 ‘식탁용의자’1994는 밥맛을 돋우는 간장졸임고추나 마늘 반찬처럼 계속해서 의미를 생성해내는 재미있는 작업이다.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스스로 물고 들어와서 문화의 이질성과 혼존 혹은 공존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한편 미국의 스포츠와 한국의 음식 문화를 의미적으로 꼴라쥬 시켜놓음으로서 의외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한다. 그의 작업 전반에는 창의적 재치가 무겁게든 가볍게든 배어있다. 그것이 개념적 구조로서 작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보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뇌에서 뇌로 전달되는 이른바 개념미술의 속성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브제과 이미지 그리고 텍스트등이 어우러져 예술적 방식으로 무엇인가에 대하여 전달하려고하는, 이 세상과 삶의 ‘어떠함’에 대하여 진술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드러나 보이는 작업들이다. 말하자면 그의 작업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발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발언들을 전달하는 미술적 방식의 의외성과 창의성이 우리의 머리에 남게된다는데서 작업에 대한 그의 균형감각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재치가 개념미술1)가들의 작업 방식과 일별되는 강한 특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정직한 반응을 미술을 통해 겉치레를 피우지 않고 해냈다는데 그의 작업 성과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재료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그의 작업의 외형적 특성을 이루는 동시에 작업의 중요한 내용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는 시멘트, 베이너합판, 각목등 허술한 건축자재들을 즐겨사용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허약함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값이 싼 재료를 선택했다.’ ‘그러한 재료에서 어떤 미적 가치를 발견했다.’ ‘개념을 담아내는 재료에 큰 비중을 두지않았다.’ 중에서 어떤 것이 딱들어 맞는 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나 재료 사용에 있어서 드러나는 수작업의 거친 완성도가 그의 작업에서 풍기는 매력임은 분명하다. 마감이 안된 듯한 그의 재료사용법은 미술관의 말끔한 장소와 대비되어 오히려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데, 재료를 떠나 그의 작업의 내용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장소적 대비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한편 그의 드로잉에 근거해서 제작된 <팔라야바다FALLAYABADA>는 숙련된 목수의 손에 의해 사후 제작 된 작품이다. 비록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한 재현물이지만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허술함의 일관성을 놓쳐버린 완벽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왠일인지 모르겠다. 건강 그레고리 마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건강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밤새 구토와 복통으로 시달리면서 속에 것을 다 토해내고 겨우 진정된 상태의 탈진상태를 느끼게하는 그런 ‘힘없음’이 느껴진다. 그는 항상 아팟던 옥타비아누스가 가장 긴 기간 동안 로마를 통치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화 속에 생략된 많은 이야기를 추리해 본다면 박이소는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다시 그것을 절망으로서가 아닌 예술적 방식으로 인식하는 본능적 예술가가 아니였을까? 그의 작업들이 자고, 쉬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육체적인 에너지가 충진되고 예술적 아이디어가 완성되는 순간에 이루어졌으리라. 즉 그는 자신의 허약함을 일종의 예술을 위한 도구로 치환 한다.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갈아내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고 몸은 몸대로 원기를 회복하며 아이디어의 숙성을 기다렸던 것이다. 자살충동 “나는 알게 모르게 자살 충동이 있는 것 같다.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것 같은데, 별 이유없이 어떤 위기상황에 내 몸을 내던지고 무슨 일이 나든 방관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별로 위험하지 않은 ‘먹지않기’를 택했으니 억제된 자살 충동이 갑자기 가스 유출되듯 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충동을 미리 예방하는 백신 주사로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보호를 위해 실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득과 실이 미리 계산된 정신적 육체적 충격을 부여함으로써 정말로 무책임한 자살 충동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려는 경험적 지혜 같은 것일까?” 박이소<오각형의 자백중> 예술가는 때로 사회적 허용치를 넘는 상상을 예술적으로 변용하여 안전하게 자신을 분출시킴으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사회를 보호(유지)한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양식의 틀이 굳건하면 굳건 할수록 예술가들은 그러한 해소책이 싱거워진다. 미지의 세계로 유영해 들어가는 긴장감을 느끼기위한 갈망은 때로 형식의 탈피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기존의 방법론과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틀을 벗어나야만 신대륙의 위험스런 탐험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박이소의 자살충동 혹은 위기상황에 자신을 방치하고 싶은 욕구는 예술에 대한 창조적 욕구와도 관련이 있지않을까? 자신을 위기상황에 던져 놓지 않고서는 삶의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없고 다시 예술의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없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서 ‘먹지않기’를 택하고 3일 간 단식을 하고 자신이 만든 밥솥을 걸고 거리를 행진해서 목적지 까지 가는 행위작업2) 은 그가 자살충동을 제한된 단식행위를 통해 해소하고 여기서 다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배경으로한 창조적 예술행위로 승화시켜내고 있다. 이것은 그가 대면했던 이 세상이 절망이라는 결론으로 다가올 때마다 그 절망의 상황에 힘입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전법을 구사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는 박이소의 전시회를 보면서 뜬금없이 이 시대의 미술의 새로움은 어디서 비롯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된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정보들은 쏟아지는데 그것의 출처는 감추어져있다. 정보를 쫒기보다는 출처를 쫒는 일이 당연이 필요한데 그 출처를 정확하게 집어내기는 힘들기도 하거니와 잡아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기 일쑤다. 온갖 새로움으로 뒤덮힌 미술계에서 요란한 뒷북소리를 잠재우면 조용히 움직이는 몇몇의 작가들만이 조명아래 있다. 나는 이 조용한 움직임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한한 창의적 에너지를 공급 할 새로운 동력원을 지향하는 초전략적 태도를 가져야만 무한한 에너지를 품은 시도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의 체온이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일까? 나는 그의 작품과 더불어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하기에는 왠지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은 이제 제작되어 세상에 선보인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작업들도 있고 그의 죽음도 아직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으로 느껴진다. 그의 작품이 과거로 분리되지 않았고 그도 이 세상으로부터 아직 완전히 이탈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와 함께 살았던 작가들과 함께 그의 작업도 다시 조명되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한 작가의 진정성이 일구어 놓은 일보의 전진이 밑걸음이 되어 많은 자들이 따르는 커다란 길로 나가게 되길 바란다. 1)개념미술은 형태나 재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의미에 관한 것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개념미술은 독창적이고 수집 및 매매 될 수 있는 미술 대상의 전통적인 존재방식에 도전한다. 개념미술은 작품이 전통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에게 좀더 적극적인 반응을 요구한다.(실제로 개념적인 미술작품은 관람자의 정신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개념미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일상적인 오브제, 사진, 지도, 비디오, 차트 그리고 언어 그 자체를 이용한다. 종종 그러한 형태들의 복합이 있을 수도 있다. <개념미술, 토니 고드프리지음>에서 인용 2) 이 작업은 그보다 연배가 한참 위이지만 죽음에 있어서는 후배인 백남준선생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확연이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바이올린에 줄을 매어가지고 끌고가는 작품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51 no image 게하르트 리히터 의 전시를 보고
소나무
5397 2007-06-05
게하르트 리히터 의 전시를 보고 전원길 2006/4/1 (22:35) 게하르트 리히터 의 전시를 보고 국립현대미술관 2006.2.25-4.30 내가 리히터의 작품을 직접 본 것은 1999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였다. 일부러 들른 것은 아니였고 그저 지나치다가 들어섰는데 몇 점의 추상화들을 보고 “음 추상인데 상당한 감각이네 그렇지만 뭐가 그렇게 대수롭단 말이야” 하고 나오다가 이른바 사진의 이미지가 사실적으로 그려진 사진회화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이건 또 뭐야”. 그 이후에도 잡지 등을 통해서 그의 그림을 보았지만 잡히는 것이 없었다. 매년 그림 값 순위를 매기는 자료에 의하면 그의 그림은 언제나 가장 비싼 작가인데 왜 그의 그림이 그렇게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리히터의 전시회를 계기로 그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의 대강의 얼거리를 잡아보려고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 속 한 쪽 구퉁이가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화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명제와 함께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그는 우리 눈 앞에 적어도 크게 다른 두 가지 유형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을 모사한 부드럽고 뽀시시한 사진회화와 추상표현주의적 필치가 강하게 다가오는 추상 작품이 그것이다. 그의 작업 속에 깔려진 코드를 모르는 사람, 특히 구상과 추상을 미술의 역사속에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당혹스러운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서양사람들이 화면의 일류전을 극복하고 자기지시적인 회화의 세계를 열기위해서 얼마나 심각한 시도들이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이 시대의 중요한 현대미술가 중의 한 사람인 그가 펼쳐보이는 구상과 비구상의 가로지르기 수법은 그가 흐릿하게 형태들을 뭉게버린 그림만큼이나 헷갈리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렇게 그려질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와 과정이 있었으리라는 전제하에 그의 작업 아래 깔려진 그의 노림수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글은 나와 함께 그의 전시회를 찾았던 분들과 나누었던 대화 중에 미진한 부분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의 관계속에서 작가인 그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그의 작품의 특이성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특성 즉 외부 세계를 예술적 규범이나 양식의 틀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해내는 기계적으로 생산된 이미지위에 언제나 서 있다는 사실로부터 문제 풀이를 시작해 볼 수있을 것이다. 비록 흐릿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외부세계의 어떤 장면과 관련을 맺고 있는 구상적인 그림은 사진과의 관련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미지가 떡이 되도록 덧칠되어 있는 추상작업도 색채스케치라고 불리우는 사진작업으로부터 얻어진 것들이다. 하드엣지나 미니멀의 한 시리이즈 중에 속 할 듯한 색견본표를 모사(?)한 그림 조차도 일종의 인쇄된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오히려 사진이 미술의 주요 표현 매체가 되고 있지만 그가 보격적인 활동을 시작 할 무렵에도 그가 영감을 받았다는 리히텐쉬타인이나 앤디워홀 같은 팝아티스트들이 사진이미지를 사용해서 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역사적으로나 기법적으로 사진을 사용한다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통해 그는 사진을 어떻게 별다르게 대하고 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저는 사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진이 빛에 노출된 한 장의 종이라는 사고를 무시하기 때문에, 저는 다른 매체들을 사용해서 사진을 만듭니다. 사진의 어떤 측면이 들어 있는 그림이 아니란 말이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사진적 견본 없이 출현하는 그림들(추상회화등)또한 사진이죠” 사진을 만들고 싶은 이유에 대하여 “이전에 제가 미술과 연관시켰던 관습적 규범 없이, 다른 비젼을 제게 전달해준 이미지로서 말이죠. 거기엔 양식도 구성도, 규범도 없었습니다. 사진은 저로하여금 제 이전의 개인적 경험을 떨쳐버리게 해주었습니다. “사진을 만들고 싶다”라는 것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이 아니고 회화를 사진적인 상태 즉 양식과 규범에 부응하는 조형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사진상태가 되도록 사진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라는 말이라고 이해된다. 그가 사진을 새롭게 본 것은 미술사가 공간 속의 대상에 대하여 가한 많은 조형적 해석이 결국 하나의 관점이라는 한계에 구속 되 버리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어떤 것이 사진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그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몰인격성을 통해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 양식과 양식을 연결하고 다시 그것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태도를 양식화시켜버리는 기존의 미술작가들과는 다른 위치에서 자신의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러한 리히터의 작업위치에 주목하는 평론가들의 관점 보다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회화의 가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리히터와 장시간 인터뷰를 가졌던 벤자민 부흘로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리히터는 자신의 작품에 가해진 냉소주의, 아이러니 그리고 다른 이론적 짐을 일체 거부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전통적이고 심지어 보수적인 화가로 분명하게 규정한다” *인터뷰 내용은 (현대미술의 변명/시각과언어/ 진시겔 엮음)에 실려있다 여기서 이른바 요즘 전문가들을 어리둥절 하게 한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외견상의 특징만으로는 그의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그리 중요하게 취급 될 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꾸 개념적 형식적 측면에서 자신의 그림이 이해되기 보다는 아름다운 그림으로서의 위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그의 기술과 회화적 감각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요즘 미술의 필연적 조건으로 여겨지는 ‘새롭다’라는 자격을 부여받을 수는 없다. 새롭다라는 차원에서 그의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그동안 미술의 흐름이 만들어낸 여러 양식들을 리히터 자신이 딛고선 사진의 직접성위에서 마음대로 구상과 추상과 심지어는 미니멀한 작업을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방법의 특이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왜 자꾸 그림 자체로 시선을 끌어 갈려고하는 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개념적 동기를 강조하는 것은 왠지 충만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일종의 약은 노림수가 우리의 뇌를 흔든다 할 지라도 단순히 그것에 그치는 것 보다는 엄연히 실재하는 시각적 판단 대상의 충일한 완성도 즉 회화의 즐거움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추측 해본다. 이것 또한 그리고 흩트러뜨리는 그의 그리기 방식과 나란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더나아가서 개념적 특질이 미술의 중심에서 작용하면서 시감각에 호소하는 전통적인 작업들은 점차 고리타분해졌으며 잘 그리기위한 기술의 습득이나 보아서 아름다운 그림의 가치는 더 이상 훌륭한 그림의 조건이 되지 못하는 지금 시대의 미술현상 즉 회화가 죽어버린 이 시대에 놀라운 회화의 부활을 선언하고 증명해보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그의 그림의 가치는 이론적이며 개념적 성격에 의해 부여되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회화의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받아들임으로서 개념성의 과도한 진출을 돌려세우고 눈의 기쁨 즉 회화의 가치를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화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그는 사진이라는 이미 재현된 이미지에 발를 딛고 서서 마치 야구감독이 상황에 따라 선수를 기용하듯이 자유롭게 구상과 추상을 교체 투입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그는 선수로서 자기 스타일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아니라 경기를 풀어나가는 감독의 입장에서 선수를 관리하듯이 다양한 방식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의 작업태도는 그가 마치 문을 여닫게 하는 문틀의 경첩과 같은 위치에서 구상회화를 통하여 그림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추상을 통하여 자기지시적인 회화내부의 세계로 우리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면서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지않냐고 물어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적 특성을 보여주기 위한 회화 리히터는 사진의 이미지가 갖는 비인격성에 주목한다. 단지 기록되어진 사진은 인간의 작위적 의미부여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려진 사진의 사실성이 가지게 되는 전통적 회화의 가치를 유지함으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일종의 전략으로 느껴진다. 일류전의 거부와 회화 그 자체의 속성 즉 평면성에 주목하면서 사실묘사를 바탕으로 인간이 개척한 새로운 세계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은 수작업의 기술의 가치를 뒤로 밀어내고 직접 사물과 관계하는 회화의 죽음 이후의 개념적 미술에 대한 역설적 반응이면서 그 자체로 개념적 성격을 띄게 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독일 표현주의의 도도한 흐름을 타지않고 이지적 태도를 가지는 개념적 성향에 가깝다. 붓터치와 화면의 통합 리히터는 사진을 모사할 경우 그림이 마르기 전에 마른 붓을 이용하여 화면 전체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는 묘사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집중과 이완의 인간적 흔적을 통합하여 전체화면을 동등하게 만들면서 미흡함을 일관되게 흐르는 기계적 붓 터치 속에감추려고 한다. 이것은 디테일을 감추면서 그려진 그림의 표면에 집중하게 하는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고정되고 확정된 이미지를 파괴함으로서 그림자체의 회복작용을 유도하는 가운데 생기는 시각적 긴장감 유도하는 동시에 베일속의 대상에 대한 심리적 접근욕구를 발생하게 하게하는 일종의 신비화 전략으로도 보여진다. 비인격적인 자연 그는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을 대한다. 우리가 일종의 낭만적 향수를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해서 직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연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우연하게도 나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고 “마음없이 움직이는 자연처럼 일하고 싶다”라고 표명한 적이 있는데 놀라운 의식의 겹침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창의적 예술가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성중의 하나라고 말 할 수 있다. 역사의 가로지르기 리히터의 작업은 적어도 일정기간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브랜드화 하려고 하는 작가들의 눈으로 본다면 엇나가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완전추상과 완전사실을 왕래하면서 작업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하나의 미술의 역사속에서 양식적 힘을 쇄진한 구상양식과 추상양식을 사진이 세상을 바라보듯이 바라보고 대하는 듯이 보인다. 그 두가지 양식은 그린다는 사실을 통해 나타나는 그림일 뿐이라는 태도를 취함으로서 그리는 회화의 가치를 살려내는 동시에 사진을 흐릿하게 만드는 시각적 일체화의 맥락에서 개념적 일체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 전체를 묶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성의 추구에 대한 회의 그의 체념적 사고는 인간의 예술적 행위가 결국 한계를 드러내는 심리적 정신적 기법적인 작위성에 근거하다는 생각에 기인하는 듯하다. ‘유토피아란 범죄적인 것이 아니고서 의미없는 것이다“라는 표명은 세계에 대한 비관적 관조이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언제나 작동하는 부정직성을 직시하는 가운데서 나온 말 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미술도 체념 자체가 방법론이 되어 하나의 리얼리티로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작업 방식의 주요한 언급으로 읽혀지는 무작위성은 자신의 의도을 제한하고 과정속에서 발생하는 실패와 우연성이 가지는 현존성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그림이 그토록 선명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생각된다. 역사적 상황 미국이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한 모더니즘회화의 미학을 미국산으로 만들어 극단적인 형식주의의 늪속에 함몰 시킨 이후에 독일에서는 패망이후 나찌즘의 과거청산이라는 전흔에 대한 자기치유의 과제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분단이라는 국가적 위기을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독일 예술가들은 처해있는 정치상황속에서 미국 미술의 빚을 안으면서도 미국미술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가지게 된다. 전후미술의 정치화 사회화를 주장하는 요셉보이스를 중심으로 미국미술에 대응하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다리파(1903-13 독일 북부 드레스텐을 중심으로 활동한 키르흐너, 헤켈, 에밀놀데, 밀러/ 도시풍경, 술집등의 도시문화)의 표현주의 전통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 신표현주의가 일어난다. 그러나 게하르트 리히터는 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내적 분출의 통로로 형상을 다루는 신표현주의자들의 라인에 서있기 보다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확보함으로서 독일 미술의 중심에 서게된다. 이중적 정체성의 반영과 극복 리히터의 작품은 토하듯이 쏟아내는 주관적 표현성보다는 회화의 조건 자체를 문제삼는 개념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섬세한 묘사를 바탕으로한 사진을 대상으로 한 작업과 색채를 통한 추상적 공간을 왕복함으로서 양식사적 미술사의 종적 흐름을 무시하고 횡적인 가로지르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가로지르기는 그가 동독에서 사실주의 기술에 의거한 공부를 하였으며 모더니즘의 순수추상의 분위기가 지배하던 뒤셀도르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적 자아의식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겹치는 지점에서 리히터는 자신의 회화의 위치를 찾아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촌티나는 보수적 구상회화를 버리고 당시유행하던 추상표현주적 작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당시 워홀이나 리히텐쉬타인 같은 미국산 팝아트의 대표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새로운 이미지 즉 사진을 응용한 작품들이 동기가 되어 사진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과거의 자신의 동독에서의 예술적 경험을 다시 새롭게 회복할 수 있는 통로를 찾음으로서 그는 분절된 자신의 삶의 역사를 회화를 통해서 다시 이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현실화 이미지가 넘치는 이 시대에 이미지는 하나의 환경이 되고 있다. 이미지는 더 이상 신비로운 마술적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미지들은 실재를 대신하는 망령과 같은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실제 세계는 사라지며 죽음의 알레고리로 변하고 있다.” 장보드리야르, 상징적 교환과 죽음에서._ 기계적 프로세스의 산물인 이미지는 현실물을 대신하지만 시간속에서 자체적 진화와 분열을 거듭하며 다른 존재들과 끊임없이 조우하면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는 회화를 위해서 사진을 이용한다기 보다는 사진을 위해서 회화를 이용한다고 한다. 결국은 회화가 되는 이 상황에서 그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사진을 그리려는 리히터의 시도는 사진 속에 결여된 그 무엇을 완성하려는 충동이며 사진 속에 갇혀진 순간을 회화로 전환시켜 제3의 차원으로 영구화 하려는 결단이다. 사진 속의 이미지는 다시 회화로 재현됨으로써 리히터의 ‘현재’라는 시간적. 공간적 좌표 속에 재구축되는 것이다” 김혜련 월간미술 2003.3 주제와 배경, 이미지와 현실의 통합되는 표면 리히터가 독일로 이주한 곳은 뒤셀도르프였다. 그가 미술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던 요셉보이스가 가르치고 있었으며 플럭서스 이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제로그룹의 전시회가 뒤셀도르프아카데미에서 열리기도 했다. 당시 아카데미는 이상적인 것에로 눈을 돌리게 하고 익명의 예술작품을 생산하라는 것이었으며 그는 곧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림같은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전제하에 사진을 바라보게 되었고 사진과 회화 구상과 추상이라는 나무로 지탱하고 있는 또 다른 나무를 세워놓았다. 해석된 이미지 사진은 모사과정에서 해석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더욱이 반사투영기 에 비쳐진 이미지를 따라가는 작업과정에서 자신은 기계처럼 일 할 뿐이다. 마지막 과정에서 이미지를 흐릿하게 만드는 마른 붓질은 이미지속의 공간이 균일하게 움직이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서 공간을 압축한다. 이러한 압축과정은 곧 정지된 사진이미지를 현실의 흔적과 조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현실과 이미지가 하나의 레이어에압축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제와 배경/ 이미지와 현실이 만나는 표면이 된다. 각기 다른 구슬을 하나의 실로 꿰어가는 예술 그의 각기 다른 양식으로 그려지는 그림들은 일정한 방식에 의해서 하나로 꿰어진다. 회색 그림들은 회색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근거한다. “회색은 무관심과 진술거부,무형상성에 상응하는 완전하고 유일한 색” 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사물을 기록하는 사진이나 마음없이 존재하는 자연을 그리는 그의 태도에 부응하는 색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회색그림은 충실하게 그려진 사진회화와 색채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비구상회화의 활력사이의 중간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음으로서 의미있다. 말하자면 전체 그의 작업의 과정 속에서 가치가 부여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따로 떨어져서 그려졌을 때는 그 신비감은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밖과 안을 연결하는 지도리로서의 작가 그가 작은 색채스케치를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작업한 일련의 작업들은 마치 외부세계를 지향했던 구상회화와 자기지시적 추상회화의 지도리적 위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그가 회화라는 전체속에서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선수로서 보다는 감독의 입장에서 그의 방법론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회화의 각 경향들을 하나의 재료로서 다루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도리와 같다. 그러면서 그는 회화가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모든 것을 더잘 모사할 수 있는 사진 기술이 있고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준 미술사가 있으며 모든 것을 훨씬 더 시대에 맞게 파악 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비디오, 고연예술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즐거움은 분명 회화의 필연성에 대한 또다른 증거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림을 자기 마음대로 그리지요. 회화는 경탕할 만큼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야말로 아슬한 플레이를 벌이고 있는 그는 각기다른 양식의 그림을 이용해서 게임을 풀어가면서 언제나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루어 내는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계속 몸값을 올려가고 있다.
50 no image 상징과 예술
소나무
5259 2007-06-05
상 징 과 예 술 박 성 우(철학박사) 1. 무의식과 예술 예술은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이미지는 단순한 사물의 어떤 것을 나타내는 재현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감정적 에너지의 표현이어서 거기에는 의식화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의 요소들도 잠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우리의 무의식에서 나온 내적인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는 위대한 걸작 작품을 몇 점을 사서 자기 스튜디오에 보관했는데, 그 작품들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천으로 가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외양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주관적인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 사이의 분리를 느끼지 않는다. 예술 작품의 메시지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깊은 희열의 영역으로 전달되는데, 이 메시지는 그곳에서 에너지를 건드리고, 깨우고, 불러낸다. 이런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 너머의 차원이어서 인간의 개인적 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 아니다. 개인들의 전체 집단에 속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하나의 민족 전체, 심지어 인류 전체에 속한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세계는 전 인류의 심리적 기능의 저장소이며 예술적 모티브들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술은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 자연과 경쟁할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예술은 자연 현상의 표면에 집착하지만, 그 자체의 깊이, 그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표면적 현상 속에 합법성의 성격, 조화적 비례의 완전, 미의 극치, 의미의 존엄성, 열정의 높이를 인지함으로써 이 표면적 현상들의 최고의 계기들을 결정화한다.” 여기에서 ‘최고의 계기들을 결정화’한다는 것은 현실의 개념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해석이며, 사고를 매개로 한 것이 아니라 감각적 형태에 의해 빚어진 상징을 매개로 한 것이다. 인간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의 심층적 내용을 상징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비합리성과 화해한다. 상징은 의식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라는 합리적인 영역과 비합리적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양쪽을 매개할 수 있다. 상상의 세계와 객관적 현실의 세계는 상징을 통해 만난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저 너머의 것들은 상징적인 방식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상징적인 세계가 직접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는 영역을 직관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바로 인간의 예술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근본적으로 무의식에서 나온 상징의 세계와 관련을 갖는다. 2. 상징과 예술 상징은 본래, 대상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재단하는 의식적인 의미와,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상을 함께 포착하는 기능이다. 상징은 두 극에 의해서 경험되고 해석되며, 동시에 두 극 사이의 적대적 협력이라는 힘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상징 기능이며 인간 특유의 것이고, 만인에게 있어서 동일한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 상징적 이미지가 지닌 알 수 없는 영적인 분위기는 우리 내면에 숨겨진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영혼으로 상징에 감응하는 것이다. 상징은 인간의 무의식에 담겨있는 이미지를 전달한다고 본다. 상징은 인간의 무의식에 담겨 있는 감정적 에너지가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생겨난다. 상징은 표면의식의 정보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심층에 가라앉아 있는 여러 가지 내용을 한꺼번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그 나름의 경험을 한다. 질서의 경험일 수도 있고, 공포의 경험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의 경험일 수도 있다. 심지어 단순한 환희의 경험일 수도 있다. 개인은 이것을 상징을 통하여 전달하려고 한다. 만일 그 깨달음이 어떤 깊이와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가 전달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예술로서 가치와 힘을 가지게 된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강제 없이,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우리는 이런 상징들과 조화를 이루어 갈 때에만 가장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지혜란 그 상징들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예술 형식은 정신과 상징의 새로운 관계에서 출발한다. 신화와 종교에서 정신이 상징에 고착되어 있다면 예술에서 정신은 상징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상징세계가 가상의 세계임을 아는 것이다. 상징은 대상이 의식에다 만든 인상을 정신이 다시 감각적인 기호와 그림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혼돈을 상징한다) 예술은 자연이라는 영원한 운동 기구를 꽁꽁 묶어두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고정은 예술의 핵심이다. 모든 개념화는 자연 상태에서 제멋대로 있는 존재들에게 의미의 틀을 씌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를 볼 때는 단순한 의자로서 어떤 유용성, 정서, 실용적인 면에서 관찰한다. 그러나 화가는 의자를 의자 본래의 상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을 관찰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으며, 시인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광경과 소리와 정서적 경험들을 모아 낱말을 상징적으로 지시할 수 있다. 상징은 인간 의식의 흐름을 표출시켜 고정할 수 있는 감각적 수단인 동시에 상징화한다는 의미에서 문화형성의 수단이자 방법이다. 다양한 상징형식의 근본현상은 인간이 외부 세계의 인상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표현들 가운데 외부 세계의 실재는 정신의 자발적 기호나 그림이라는 ‘매개’ 속에 고정된다. 여기서 기호나 그림, 언어라는 상징은 표현에 의해 외부대상을 고정시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이것을 통해 다시 외부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에 매개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 매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즉 문화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외부 대상에 대해 매개를 형성함으로써 인식하고, 다시 형성된 매개를 통해 외부 대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시간적으로 문화 축적의 성과를 이어 받을 수 있고 타인의 성과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감각적인 것은 상징을 통해 정신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획득하고 정신적인 것은 다시 상징을 통해 감각적인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은 상징적 동물이며 상징 형성의 힘으로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 상징 형성의 힘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에 있는 무의식에 깔려있는 힘에서 나올 때 자연에 배치되지 않으면서 자유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힘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어떤 실체가 현상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창조하도록 충동질하는 어떤 힘, 바로 그러한 자극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또 다른 하나의 힘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상징을 고안하고 조종하고 파악하는 능력은, 인간을 우리의 친척 영장류 동물과 구분시켜주는 주요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논리학, 창조력, 미학, 모두가 이 능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 능력이야말로 인류학적 개념의 예술의 주춧돌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인간의 뇌 안에서 존재한다. 예술은 인간의 뇌에 호소하며 인간의 뇌만이 예술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뇌 속에 구상된 내적 표상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타자’를 대상으로 한 외적 표현이다. 예술은 자연으로부터가 아니라 예술 자체로부터 탄생한다는 말은,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자연관찰보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그림이 보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보고 완성된 예술 작품은 결코 어떤 장면의 사실적 묘사나 삽화 따위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살아있는 구도를 가진다. 본질에 더 가까운 방법으로 무의식의 저편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그것을 온전히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될 때 회화는 말없는 시가 될 수 있으며, 시는 말하는 그림이 되어 말 뒤에서 말이 울리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예술, 신화, 종교는 고립되어 있거나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유대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다. 언어와 신화와 예술과 종교의 근본 기능이야말로 우리가 이것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형태와 표현의 배후 깊숙이 찾아 들어가야 할 바로 그것이요, 또 최후 분석에서 우리가 하나의 공통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바로 그것이다. 3. 나가는 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일은 외부의 물질적 세계를 단순히 복사해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적 세계를 통해서 물질 너머의 세계와 조응하는 일이며, 모든 인간과 세계 내에 구현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과 교류하는 일이 된다. 인간이 대우주와 감응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지향하는 하나의 이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잃어버린 자연과 우주 전체와의 연대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에 깃들여 보이지 않는 잠재된 세계, 동시에 한 개인의 내면에 있지만 전일적인 우주 전체가 함께 호흡하는 세계를 드러내고 그 세계를 교감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의미이다. 예술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또는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영적인 감수성을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 예술이 이미지로 보여주는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이 지닌 감수성의 몫이다. 영적 감응 능력이 가로막혀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영성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일이다. 굳게 닫혀 있는 개인의 완강한 성채를 무너뜨릴 때 예술은 동굴에서 나와 우주와 하나임을 알려주는 매개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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