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85 전원길 개인전 '백색 향기' White Fragrance' 파일
전원길
6574 2012-06-14
84 허강의 자연과 인위 사이에서의 조형술법 파일
전원길
5322 2012-04-06
허강의 자연과 인위 사이에서의 조형술법 전원길 / 작가,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디렉터 I 허강의 이번 개인전은 재료와 소재에 있어서 지난 개인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전 작업들이 식물의 형태를 전사하듯 드로잉하고 원형 금속판을 음각으로 부식하여 선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식물, 곤충 등 자연물 이미지를 금속판 위로 옮겨온 모양 그대로 레이저로 뚫어내어 양각의 입체물을 만드는 변화된 방식을 선보인다. 나는 방법상의 변화를 보이는 신작들이 자연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작업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II 허강은 그간의 크고 작은 작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늘 ‘자연으로부터’를 전시 주제로 혹은 작품 제목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사실 ‘자연’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담아 압축하기에는 너무나 막연하다. 나는 그에게 있어 자연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허강이 자신의 작품 앞에 내세우는 ‘자연’이라는 말에는 그가 속한 세대적 경험, 즉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루며 변화해온 사회 속에서 순차적으로 경험한 자연과 문명, 자연과 도시에서의 삶의 흔적으로 새겨진 정서가 작용하고 있으리라 추측해본다. 장년이 된 그는 모던한 감각의 공간에서 작업하고 바이크의 스피드와 엔진의 힘찬 소리를 즐기지만 한편으로는 유년 시절 자연에서 뛰어놀며 종아리를 쓸치던 풀잎의 아리함을 아직 기억하고, 오래된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와 거기서 배어나온 진갈색의 빗물이 마당으로 번져 흐르던 장면을 때때로 떠올리며 살고 있다. 허강의 작품은 자연과 문명 혹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그 어떤 것에도 차별적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자연과 도시문명 모두 우리 삶의 현실이고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받아들여야할 가치임을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농촌에서의 삶과 도시의 쾌적한 생활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그의 삶에 주목한다면, 자연물을 소재로 다루되 시골의 토속적 정서가 아닌 차갑고 정교한 도시적 감성을 더 많이 내보이고 있는 그의 작품을 보다 근거리에서 이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III 그가 추억속의 정서를 지루하게 되새김질하기보다는 산뜻한 도시적 감성으로 자연을 표현하는 그의 태도에 일단 한 표를 던진다. 그리고 작업의 과정에서 서양미술의 중요한 담론이었던 공간과 평면의 문제를 미묘하게 교차시키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그의 작업에 내재된 방법론적 구조와 더불어 섬세한 손의 감각을 그래픽 툴(tool)을 이용해 자연의 이미지에 오버랩(overlap)시키는 이른바 ‘따라 그리기’의 과정에 마음이 간다. 혹자는 이러한 방식이 단순한 카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뭇잎의 잎맥을 따라 움직이는 손끝을 통해 자신의 감각의 작용을 느끼고, 호흡에 따라 흔들리는 선을 통해 진정 자연과의 교감을 이루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이 전해주는 생생함으로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나는 몇몇 작품에서 시도한 페인트 ‘흘리기’야말로 이번 전시의 큰 수확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손감각과 예견된 기계적 작업을 통해 이끌어 온 완성된 작업을 그는 돌연 페인트에 담갔다가 꺼낸다. 페인트는 자체의 무게와 중력으로 흘러내려 마치 심해에나 있을 법한 이상한 어류의 촉수처럼 우리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얼핏 디자인적 소품으로 느껴질 수 있는 그의 작품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바로 직전과는 다른 심리적 공간을 탄생 시키면서 자체의 생명력을 획득한다. 이는 축구경기의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방향을 전환하여 예상치 않은 공간을 확보 할 때 주는 서늘함이며 또한 통쾌감이다. 허강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새롭게 사용하고 있는 재료는 자연석이다. 자연석을 자르고 그 표면을 연마하여 매끈해진 돌 위에 마치 잘 준비된 무대 위에 주인공을 등장 시키듯이 브론즈로 캐스팅한 나뭇잎이나 새싹을 올려놓는다. 역시 깔끔한 완성이다. 나는 그가 끊임없이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도 세련된 현대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면서 그가 자신의 작업을 ‘자연과 인간의 사이를 오가는 어떤 것’이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언제나 작업의 출발점이지만 기계적 작업이 도입되는 과정에 이르면 인공에 대응하는 상대지점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공히 발생하는 일이겠으나 그의 작업에서는 그 갈림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보이는 자연을 현대적 감각으로 번안하여 우리의 삶의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작업은 섬세하고 정교하다. 하이센스를 지향하는 그의 작업은 때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보는 이의 기분을 살짝 미끈거리게 하는 그 알 수없는 조형술법은 이번 작업에서만 보이는 일시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대학시절 탐닉했던 초현실적 분위기의 작품과, 머리를 밀어낸 작가 자신의 두상을 확대시켜 입체화한 설치작업 등 기묘한 분위기를 담아내던 그간의 작업들을 볼 때 그것은 허강의 본성적 취향인 듯싶다. 허강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 취향을 적절히 조절하는 제어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 강하게 때로는 슬그머니 나타난다. IV 작가로서 허강은 자연에 대해 언제나 감각적 반응을 하는 어릴 적 ‘몸의 기억’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작업을 통해 현재의 삶 속에 그림자처럼 가볍게 투영된다. 이는 자연을 그저 무심히 넘겨다보되 섬세한 한 가닥 에센스를 자연으로부터 뽑아내는 허강의 예술적 감성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한편 나는 작업의 모티브를 찾아내는 그의 순발력과, 재료와 기법을 조화시켜 딱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이는 그의 작업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슴으로 부터의 울림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나오길 기다린다. 그가 자신의 박사논문 리서치 과정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본인이 속해있는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대상에 대한 연구를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완수해 내는 능력을 입증한 바, 자신의 작업 속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농축된 창작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가 가진 감각의 싹이 더욱 자라고 뿌리를 내려 황폐화된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소생시키는 진정성과 생명력 넘치는 작품으로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83 no image 고승현의 '백년의 소리-가야금'을 통한 기도
전원길
4333 2012-03-03
고승현의 '백년의 소리-가야금'을 통한 기도 전원길/ 작가, 야투아이프로젝트 디렉터 I 고승현은 20여점이 넘는 가야금 작업 ‘백년의 소리’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는다. 10여 년간 묵묵히 작업해온 가야금 시리즈를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개별 작품을 볼 때와는 다른 감동을 받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긴 작업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의 작품 사진들을 보면서 이 작품집의 서문을 쓰겠노라고 자처하였다. 한 작가가 같은 유형의 작업을 지속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반복’이라는 말로 정의된다면 작가의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심화’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집요한 집중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고승현의 계속되는 가야금 작업을 이와는 다르게 읽고 싶다. II 고승현이 그동안 제작한 가야금 작업들이 11개국 30여 곳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제작되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작품 제목에 ‘아비코의 가야금’ ‘리코로데 가야금’ ‘마술레의 가야금’ 등과 같이 제작된 지역의 이름을 붙인다. 그가 사용하는 나무들은 벼락을 맞아 운명을 다한 나무,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 혹은 도로 공사로 인해 베어진 나무 등 어쩔 수 없이 쓰러지거나 베어진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소나무, 체리나무, 은행나무, 자작나무, 오동나무, 감나무 등 수종도 다양하다. 가야금의 구조를 응용한 그의 작업은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여전히 나무 그대로의 자연 형태를 유지한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그저 기다란 나무가 놓여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무에 다가가듯이 작품에 다가가고 악기를 대하듯 작품에 손을 올려 소리를 낸다. 그의 가야금 작업이 어디서든 관객들의 즉각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음은 이렇듯 그의 작업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존재하기보다는 자연으로서 그리고 관객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일상의 악기처럼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이 탁 트인 풍경 속에 놓이는 것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조형물들이 자연을 밀어내고 자랑하듯 우뚝 서는 반면에 그의 가야금 작업은 자연 풍경 속에서 산과 들의 능선과 어우러진다. 한편 그의 작품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길과 그 소리를 듣는 이와 함께 어우러지는 미술이다. 사실 고승현의 ‘백년의 소리’는 누군가의 ‘연주하기(소리내기)’를 통한 개입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품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말했듯이, 몸체에 매어진 줄을 손끝으로 튕기는 순간 울려 나오는 소리가 그 나무의 나이테 속에 배어든 갖가지 소리를 불러내어 함께 어우러진다는, 관념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된 작품으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고승현이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그의 마음은 언제나 처음 가야금 작업을 할 때와 똑같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마침내 죽은 나무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고승현의 가야금은 모양새와 그 소리의 울림이 언제나 새롭다. III 고승현이 ‘소리’라는 재료를 이용하고 있는 사실은 그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 다른 야투 회원들과의 차별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시각 미술이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혼합되고 응용되는 이 시대의 미술에서 소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승현의 가야금 작업이 갖는 작품으로서의 독특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자신의 책자의 제목을 ‘백년의 소리-가야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듯이 가야금이라는 특정한 악기는 고승현의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브이다. 줄을 매는 방법이나 구조도 가야금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가야금의 구조를 나무 위에 재현하는 것 이외에 소리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독특한 관점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미술적 방법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고승현의 가야금이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현대적인 설치(installation) 작업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방법론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다른 현대 미술가 혹은 자연물을 이용해서 어떤 조형적 작업을 시도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같은 선상에서 접근해서는 고승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힘들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된 의미를 충실히 알기 위해서는 그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예술관을 형성시켰으며, 그를 바탕으로 그의 작업이 전개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얼마간 필요하다. 그는 세상의 다른 어떤 미술품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했고, 그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에 굴복했다. 또한 그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 속에서 살아감을 감사하면서 살아있는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가 어떤 미술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고승현에게 자연은 이미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절대적인 상태로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그에게 미술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 혹은 새로운 것을 내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저렇게 하는 것이 아름다울지 미학적 고민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에서 그것의 아름다움의 최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고승현의 작품을 잘 조율된 장인의 실제 가야금에 비하면 엉터리 악기에 불과할 것이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조각 작품에 익숙한 어떤 이들에게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승현의 가야금은 우리의 감각적 판단을 내려놓을 때, 그리고 여타의 이론적 질문을 접어두고 그가 지시하는 자연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때 마침내 그가 서있는 자리에서 그의 가야금을 대할 수 있다. IV 그는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무의 생김새를 최대한 원래 상태로 유지하는 가운데 작업을 지속한다. 그가 유독 가야금의 형식을 빌려온 것도 가야금의 구조가 나무의 몸통 모양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은 나무 한 부분의 속을 파내고 줄을 매어 공명하게 함으로써 소리를 내는 아주 간단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가 작품의 구조에서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 형태를 살리되 조작적 조형을 피하기 위한 기본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가야금은 나무에 따라서 눕히거나 세우는 정도의 변화 이외에는 초창기의 것이나 지금의 것이나 조형적인 변화가 거의 없다. 울림통을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따내고 홈을 파내는 과정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자칫 구멍이 나거나 쪼개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승현이 나무에 울림통을 만드는 이 과정을 나무와의 일체감 즉 자연과의 합일의 심정으로 작업하는 핵심적인 순간이 라고 생각한다. 칼끝에서 전해오는 나무의 육질을 자신의 몸으로 교감하며 백년 동안 나무속에 배어든 소리들을 상상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울림통이 만들어지고 한쪽에 줄들을 나란히 끼어서 당기면 그 모양새는 영락없는 가야금이다. 나는 고승현이 가야금이라는 특정한 악기의 형태를 따르는 것은 그의 작업의 내용에서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가가 독특하게 상상해낸 고유한 형태 만들기가 아니라, 실제의 가야금이라는 오브제를 차용해서 자신의 작품에 합성해 놓은 것과 같은 이미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고승현의 이런 제작 태도는 조형적 독특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을 보여주는 데 더욱 마음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내려놓고 만물을 지으신 조물주의 솜씨를 더욱 귀히 여기는 지음 받은 자로서의 겸손이자 용기라고, 나는 힘써 이야기하고 싶다. 나무 몸통의 중간에 위치한 그의 가야금은 음의 높낮이를 조율하여 실제 연주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때로 나무의 가지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 나무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공기로 전달되는 소리보다 더욱 깊고 생생하다. 사람들이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이러한 장면은 자연과 미술 그리고 인간이 하나 되기를 바라는 자연미술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야투를 중심으로 한 한국 자연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자연미술의 정신을 말이 아닌 작품으로서 그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서술해오던 어설픈 나의 작품 해설보다 그의 작업노트에서 발견한 짧고 명료한 글이 그가 왜 가야금을 만드는지에 대한 답을 들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자연 안에서의 호흡은 곧 나의 기도이며, 그 시간들은 나의 신앙생활이다. 나는 자연의 섭리와 그 순리를 좇아 순응하고자 노력한다. 자연 속에서의 나의 작업은 내 자존감의 회복이며 정체성의 확인 과정이다.” 나는 자연과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미술 행위가 하나로 연결된 그의 신앙 즉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내재한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가운데 자신을 찾아나가려는 고승현의 마음이 가야금 작업에도 그대로 담겨 있으며 그것이 작가로서의 그의 태도이며 목적인 동시에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연 속에서 나무와 만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오랜 소리를 상상하면서 소리를 울려내는 통을 만들며, 거기에 줄을 매어 손가락으로 그것을 퉁길 때 자신에게 전해져 오는 소리는 그저 단순히 가야금과 유사한, 나무에서 생성되는 소리가 아니다. 이는 자연 속에 내재된 신의 소리를 자연인이요 또한 작가로서 듣고자 함이요 그 소리의 울림 속에서 신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려는 바램을 담아내는 미술이다. 어쩌면 그것은 예술로서의 미술을 지나서 다다르려는 그의 기도이다. V 나는 고승현의 이러한 마음가짐이 그의 작품을 특정 종교인의 미술이라는 협소한 테두리 안에 가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깊은 믿음이 바탕이 되어 마음에 거리낌 없이 예술혼이 그대로 솟아오른 너무나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작품임을 이 책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의 작업은 숙련된 작가로서의 섬세한 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벗어나지 않는다.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겨 그의 가야금 앞에 서게 하여 마침내 그가 사랑하는 그분의 솜씨를 함께 노래하게 하는 것이 고승현의 작품 ‘백년의 소리’이다. 이 작품집은 고승현의 10여 년간의 가야금 작업의 기록을 넘어서 그야말로 백년의 깊이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의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열정과 진정성을 함께 볼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고승현의 가야금이 세계 곳곳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으로 완성되길 바라며, 그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마다 닫힌 귀를 열어 자연 속의 수많은 생명의 다채로운 소리를 새롭게 듣도록 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82 김희곤의 개인전 소감 파일
전원길
4620 2012-02-03
김희곤의 ‘속 보이기’ 전원길 김희곤의 그림은 자해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뜯어내고, 후벼내고, 갈아내서야 그림이 된다. 사물의 이름을 제거하고 그 존재의 본 모습으로 사물을 환원시켜 파생적 존재를 탄생시키는 이전 작업들, 즉 비닐로 물체를 꽁꽁 싸 들어가는 작업들은 가슴 답답한 압박이 전해졌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선보인 그의 작업은 맥락상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진다. 하지만 그의 작업 속에 늘 가득했던 무거움이 뒤로 물러서고 개운하고 가벼운 느낌이 신작들에서 보인다. 인간이란? 인생이란? 질문의 물음표를 떼어버리고 그냥 인간과 인생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에 눈길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칼로 캔버스를 도려내서 안을 보여주고 캔버스를 잘라 젖혀서 그 이면을 보여주는 ‘속 보이기’ 방식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의 작업과정은 ‘어느새’ 심각함에서 벗어나 있다. 무채색으로 혹은 단색으로 무장했던 이전 작업에 비해 몇몇 작업에서 색의 혼용이 보이는 것도 변화 중의 하나로 보인다. 색의 혼용은 자연스럽게 조화라는 눈의 논리를 수용한다. 충동적 직관에 의지하여 집요하게 밀고나가는 작업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캔버스의 올을 풀어 다시 연결하는 섬세한 감성도 보여준다. 나는 그의 이러한 변화가 반갑다. 김희곤의 작업을 늘상 지배하던 무거움을 덜어내었지만 여전히 진정성을 유지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추스리고 다시 시작하는 이번 전시가 단지 워밍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허전했던 그의 가슴 한켠을 채워줄 어떤 실마리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피를 타고 흐르다 솟아오르는 예술충동은 누구나 가진 것은 아니다. 자의적으로 벗어 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계속 흘러나와야 하며 그 자체로서 필연적 정당성을 갖는다.
81 no image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전원길
4782 2011-10-24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전 원 길 작가, 야투인터내셔널 프로젝트 디렉터 1. 설립배경 및 진행경과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이후 야투아이, YATOO-i)는 1981년 야투가 창립된 이래 시작된 자연미술운동의 국제적인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이미 야투는 1991년 국제자연미술전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국제전을 개최하였으며 이를 통해 세계 여러나라의 자연미술가들과 교류해왔다. 2004년에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발족시켜 보다 적극적인 전시기획 및 연구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2010년부터는 야투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의 자연미술작가들과 긴밀한 교류와 연구를 시도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시와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정작 야투가 발견하고 발전시켰던 자연미술의 특성을 알리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시민들의 관람을 위해, 일정기간 전시 할 수 있는 완성된 작품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비엔날레는 자연미술의 본래 정신을 충분하게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야투는 그동안 야투가 사계절 연구회를 통해서 발견하고 발전시켰던 자연미술 방법론에 보다 중점을 둔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2008년과 2010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부대행사로 기획되었던 국제자연미술워크숍과 그 결과전은 본 프로젝트를 시도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워크숍에 참여한 작가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해오던 미술과는 다른, 자연 속에서의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아무런 전제 없이 정직하고 순수하게 작품 자체에 몰입하는 일종의 해방감을 함께 경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야투회원들은 야투적인 자연미술의 방법론이 비단 야투회원들 뿐만 아니라 외국작가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고 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였으며 보다 많은 작가들이 자연과 함께 작업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야투아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하여 2010년 12월31일 전원길이 마련한 야투아이 설립 초안을 바탕으로 고승현과 전원길의 비공식 미팅이 있었고 이때 논의된 사항을 정리하여 2011년 1월3일 충남예고 조소실에서 고승현, 강희준, 이응우, 전원길등 4인이 야투인터내셔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야투아이의 구체적인 정신과 그 비전 그리고 실행 방안에 관한 많은 토론이 있었다. 이후 전원길은 당시 이야기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본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프로젝트 취지문과 활동 방향등을 문서로 정리하여 야투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였고, 야투회의는 야투인터내션널프로젝트의 운영위원으로 고승현, 강희준, 이응우, 전원길을 임명하고 기획과 진행을 맡아서 진행할 감독에 전원길을 임명하였다. 이후 국제적인 협력과 네트워킹에 필요한 역할을 담당해줄 운영위원으로 로저 티본과 발제를 맡아주신 이스트반 에러스를 추가로 임명하였다. 인터넷상의 네트워킹과 활동이 주가 되는 야투아이의 홈페이지는 6월24일 그동안 야투와의 교류를 통해서 익히 야투의 정신을 알고 있는 20여명의 외국작가들에게 우선 초대장을 보내면서 오픈하였고, 그 이후 야투와 교류해온 자연미술작가들에게 초대장을 발송하여, 현재까지 52여명의 작가들이 본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으며 계속적인 관심과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2. 설립취지 새롭게 시작하는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이하 야투아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인간에 의해 설정된 국경과 상관없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야투아이는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세계의 모든 작가들이 야투아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자연미술의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고 그 성과를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미술을 확장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야투아이프로젝트는 자연의 모든 요소들, 산과 들, 시냇물과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풀, 나무, 벌레, 물고기와 함께 작업한다. 뿐만 아니라 바람, 소리, 그림자, 시간과 공간 등,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는 자연의 현상과도 미술행위를 통해 만날 것이다. 자연미술은 자연과 미술이 함께 숨 쉬는 가운데 그 의미를 발생시키는 미술로서 자연과 인간이 필연적으로 함께 살아야만 하는 인간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미술이다. 본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자연을 단지 작품을 설치하기 위한 장소나 재료로 이용하기 보다는 자연자체가 작품 안에서 직접 작용하게 함으로서 자연의 생생한 생명력을 작품 속에 담아낼 것이다. 마치 많은 연주자들의 소리가 모여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것과 같이, 야투아이프로젝트는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자연과 만나 전개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온라인상에서 혹은 전시장에서 하나로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될 것이다. 야투아이 프로젝트는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자연미술가들이 함께 추구하는 자연미술운동으로서 우리가 만나게 될 자연미술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신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미술의 평화로운 공존을 자연을 향한 겸손한 마음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많은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린다. 3. 야투아이의 운영 1. 야투아이는 살아있는 자연과의 새로운 접촉을 통하여 얻어진 작품세계를 작가 간의 교류를 통하여 심화시키고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 대해 나갈 것이다. 2. 본 프로젝트는 온라인상의 운영을 기본으로 하되 전시, 출판, 워크숍 등의 활동을 통해 자연미술의 정신과 방법론을 알려나간다. 3. 야투아이는 과거에 행해진 자연미술 작품 중 야투아이의 정신과 방법에 부합 하는 작품을 발굴하여 데이터화 해나간다. 4. 야투아이프로젝트에는 야투자연미술의 정신에 공감하는 모든 작가들이 참가 할 수 있으며, 작품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절차를 통해 야투아이의 멤버가 된다. 5. 야투아이는 한국 야투의 사계절연구회 일정에 준하여 일 년에 네 차례의 정기적인 활동을 한다. 모든 회원들은 정기적인 워크숍 외에도 개별적인 작업을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야투아이 웹사이트를 통해 서로 공유한다. 또한 야투아이 워크숍은 회원들의 요청과 필요에 따라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진행할 수 있다. 6. 야투아이는 한국에서 열리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야투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자연미술관련 전시 및 심포지엄에 대한 정보를 작가들에게 제공한다. 4. 야투아이 프로젝트의 의의 1)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존재의 리얼리티를 자연미술을 통해서 실현한다. 야투아이는 단순히 자연애호적 태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해있는 실존적 위치를 자연과 미술을 통해 생각한다. ‘자연속의 인간’ 혹은 ‘인간속의 자연성’등 자연과 인간의 상호적이고도 다변적 접근을 시도하는 작가들과 만날 것이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 즉 ‘나’가 아닌 ‘우리’의 조건에 대한 관심으로 부터 멀어진 것에 대한 반작용적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야투의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미술적인 방법을 통해 제시한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필요성을 일반 환경운동으로서가 아닌 미술 자체의 방법론을 통해서 이야기해왔다. 야투의 자연미술은 자연을 이야기하되 예술가로서의 창의적 표현성에 근거를 둠으로서 현대미술이 추구해온 미술자체의 창의적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진해왔다. 이는 자칫 명분이 강한 즉 공공미술이라든지 환경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행동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앞으로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은 창의적인 에듀케이터나 실천가들과의 협조를 통해서 보다 교육적이고도 사회참여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은 작가들이 작업 자체를 위해 자연과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3) 자연으로부터 얻어지고 마침내 자연 속으로 돌려지는 자연미술은 자연이라는 보편적 환경에 주목함으로서 문명의 차별성을 비롯한 여타의 불평등한 조건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자연과 마주한다는 태도를 제시한다. 야투아이는 소위 주류 미술계를 이끄는 국가나 문화에 종속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야투아이의 국제적인 자연미술운동은 국적이나 미술계에서의 명성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의 명분과 실천적 에너지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권력화 되고 상업화된 기존의 미술계의 세력과는 거리를 유지할 것이며. 오히려 세속화된 미술계에 충격을 줌으로서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4) 야투아이프로젝트는 예술가로서의 명예와 상업적 성공을 전제하지 않고 자연을 통해 인간 본연의 예술적 의지를 실현함으로서, 예술가의 정신적 독립성과 자유로운 예술 활동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야투아이 작가들은 본 프로젝트를 통하여 현실을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한계 즉 예술가로서 생존하기위한 여타의 타협과 노력으로 부터 자유로운 이른바 행방적 정신공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아울러 야투아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현실 속에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기존의 강력한 관계망을 비집고 새로운 출구를 찾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5) 한국의 자생적 미술운동인 야투의 성과를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검증함으로서 새로운 발전을 시도한다.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은 80년대 초반 소위 실험미술의 개념적 표현의 가능성을 어설프게나마 경험한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소위 학습된 작가들이라고 하기에는 그 예술가로서의 경험이 충분치 않은 어린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야외로 나가야 할 방법론적 필연성 즉 이론적 아이디어를 가졌다기보다는, 어떤 사고로 무인도에 남겨진 상태와 같이 자연 속에 던져졌었다. 현대미술의 실험적 시도는 이전 미술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부터 시작되며 이는 미술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작가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와 무엇보다도 자신 미술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자기 합리화 작용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미술’이라는 지금도 대단히 실험적으로 보이는 이 미술은 이러한 이론적 탐색을 통한 학습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자연과 직접 맞대면하는 과정에서 자연으로 부터 주어지는 영감에 근거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즉 야투 자연미술의 미술로서의 가능성은 선행된 학습에 의한 이론적 배경에 있었기 보다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자연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데 그 특별한 탄생 배경이 있다. 야투아이프로젝트를 통해서 야투의 자연미술의 특성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 독립성과 자생성에 관해서도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6) 자연이 단지 장소, 대상 혹은 재료로서가 아니라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는 자연미술의 개념은 미술 전체를 자연미술과 그 외 미술로 나누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현재 야투아이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연미술작품들이 올라와 있다. 야투아이가 단순히 야외에 설치되거나 자연물을 재료로 한 작품이 아닌 일정한 작품의 특성을 요구하고 있고 정도차이는 있으나 이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현재 야투아이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있다. 야투의 사계절 연구회의 작업들은 자연과 미술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를 보이고 있고 이는 본 프로젝트의 정신과 방법에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자연미술이라는 개념은 이처럼 어떠한 지역에서 발생한 미술형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되 다른 미술과 구분되는 어떤 명료한 특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이에 대하여 “자연미술이 자연 속에서 탄생하여 그 개념을 부여 받았으나 이 세상 어디에든 있을 수 있고, 어떤 미술이든 그것이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자연과 함께 숨 쉬는 미술이라면 자연미술로 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연은 그 한계를 설정할 수 없는 이 세계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은 미술의 시각적 모방 대상으로 혹은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단순히 재료로서 작품에 참여하거나 단지 작품이 놓이는 장소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은 작품 제작을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의 예술 의지와 함께 작품 속으로 들어와 직접 미술을 작동시키며 살아서 숨 쉰다.” 라고 기술한바 있다. 따라서 자연미술은 그 규모와 매체의 구분을 떠나서 자연이 작품 속에서 함께 작용하는 미술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길 바란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결국 자연미술과 일반 미술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겠지만, 결국 자연미술은 자신을 자연미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질 것이다. 7) 야투아이는 작가로서 이미 확고한 위치를 가진 작가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자연미술가로 인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서 현대미술이 가진 예술 엘리트주의를 견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과 결탁한 현대미술은 과도한 물량주의를 통한 자극적 시도를 선호한다. 이는 소박한 정서를 반영하는 작품이나 상품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 비물질적인 미술, 그리고 소위 유명하지 않는 작가들의 창작물들을 지나치게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야투아이는 상업적 가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프로젝트로서 자신을 자연미술가로 인식하고 자연미술의 정신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야투의 초기 회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명의 정직하고 소박한 정서를 가진 작가들에 의하여 보다 폭넓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8) 야투아이프로젝트는 자연의 자연스러움과 인간의 인간다움이 미술을 통해 만나며, 이를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창의적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미술로서 가능성을 실현할 것이다. 나는 자연미술의 정당성은 인간의 미술일 때 찾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연과 인간의 만남의 가능성은 자연의 자연성과 연결될 수 있는 인간의 자연성의 발견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야투아이 프로젝트도 실험적 미술을 시도했던 모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처럼 여타의 성공적 결과를 전제하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자연과 만나고 소통하는 가운데 인간 속에 내재된 인간의 고귀한 창의성을 미술을 통해 실험하게 될 것이다. 5. 글을 마치며 저는 야투아이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본 프로젝트는 1980년대 야투회원들의 자연 속에서의 성취를 중요한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시기는 1991년 이후 수차례 시도된 일련의 국제자연미술전이 열렸던 1990년대이다. 특히 말로만 들어도 감동적인, 23개국 128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던 1995년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이 없었다면 야투가 주관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와 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그리고 최근에 발족한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등으로 이어지는 활력 있는 움직임을 갖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야투회원들에 의한 이 전시의 기획과 진행은 이후 진행되는 모든 전시를 치룰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었으며 야투를 중심으로 한 자연미술가들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서 당시 자연미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일구어 내었던 회원들의 성취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언제가 나는 야투아이에 참가하게 될 수 백명의 자연미술가들이 다시 금강 변에 모여서 함께 미술을 통해 자연과 만나게 되는 꿈을 꾼다. 지역에서의 새로운 미술운동은 장애물이 많은 정글을 헤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먼데 회원들은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이에 앞으로 야투 회원뿐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작업하는 세계 모든 작가들이 함께 마음을 합하여 새로운 미술세계로 전진 할 것을 청하고자 한다. 끝으로 본 야투아이프로젝트가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소중한 생명력이 함께 작용하는 자연미술을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공존이 이루어지는 지구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역할을 하게 되길 바란다.
80 전원길: Nature Process - 존K. 그랜디와의 인터뷰
전원길
7119 2011-04-04
John K. Grande Writer and art critic John Grande's reviews and feature articles have been published extensively in Artforum, Vice Versa, Sculpture, Art Papers, 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 Espace Sculpture, Public Art Review, Vie des Arts, Art On Paper, Circa & Canadian Forum. The author of Balance: Art and Nature (Black Rose Books, 1994), Intertwining: Landscape, Technology, Issues, Artists (Black Rose Books, 1998), Jouer avec le feu: Armand Vaillancourt: Sculpteur engagé (Montreal: Lanctot, 2001), and David Sorensen: Abstraction From Here to Now (Centre culturel Yvonne L. Bombardier, Valcourt, 2001). His poetry has been published in Revue des animaux and Vice Versa magazine. John Grande has published numerous catalogue essays on selected artists and has taught art history at Bishops University. He co-authored Judy Garfin: Natural Disguise (Vehicule Press, Montreal, 1998) and Nils-Udo: Art with Nature (Wienand Verlag, Koln, Germany 2000. Mr. Grande's Art Nature Dialogues will be published by SUNY Press in April 2004. A new edition of Balance: Art and Nature was publihed by Black Rose Books in October 2003 (U. of Toronto Press distribution). John Grande currently lives and works in Montréal, Quebec. 존 그랜디: 안녕하세요? 전원길씨. 오늘 당신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눈물’ 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2008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작품이 흥미롭습니다. 왜 ‘눈물’ 이라는 제목을 붙이셨나요? 전원길: 당신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 작품의 구멍을 통해서 물이 흘러 내리고 있지요. 나는 나와 나의 아내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하는 크기의 구조물의 각각의 면에 눈높이에 정확하게 맞추어 구멍들을 뚫었습니다. 인간의 눈물은 인간의 진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서 인간의 진심의 일면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순전純全 합니다. 자연은 마음 없이 일하지요. 나는 자연을 통하여 무심한 상태에 이르고 싶습니다. 존 : 이 조각물들은 용기 혹은 무슨 통 같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이 구조물을 통하여 물이 흐르는. 원길: 자연이 작품 안으로 들어와서 작품을 이루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존: 그래요 우리의 삶과 아주 닮았어요.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와서 우리 안에 얼마간 그 세계를 담고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작가로서 처음 출발이 어땠는지 좀 이야기 해주겠어요? 원길: 처음 자연미술작업을 한 것은 미술 대학생이었던 1982년 야투여름연구회 때였어요. 사실 저는 그냥 손님으로 참가했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존: 사계절연구회를 통하여 당신이 만든 초기 작업들은 자연 속에서 몸을 이용한 퍼포먼스였지요? 원길: 당시 우리는 인공적인 재료나 작업을 위한 계획 같은 것들을 미리 준비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자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우리의 중의 몇 명은 몸을 이용해서 작업했어요. 나는 손을 많이 사용했어요. 존: 나무와 함께 작업한 초기작업을 보았어요. 거기에는 당신의 몸을 가로지르는 노란 선이 나무로부터 그어져있지요. 그 선은 나무와 당신의 몸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몸을 이용하여 자연과 만나는 작업을 하는 동안 당신을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원길: 그것은 드로잉을 통한 자연과의 하나되기 제스처였어요. 존: 초기 야투 사계절연구회 때 거기에 음악이라든가 춤 혹은 연극 같은 것이 곁들여졌었나요. 원길: 공식적인 다른 프로그램들 같은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저녁식사 이후 모닥불에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른 기억이나요. 존: 야외에서의 행위작업이나 설치작업과 더불어 당신의 회화적 작업이 흥미롭습니다. 서로 연관성을 가지나요? 회화 작업과 야외설치작업이 서로 도움을 주나요? 그 영향이 작업의 전진에 어떻게 관여하나요? 혹은 설치작업이 화가로서의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주나요? 원길: 사실 요즈음 실내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요. 실내작업과 야외작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미술작업을 통해서 얻은 것을 가지고 실내에서 작업 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림의 컨셉이 밖의 작업으로 연결되기도 하지요. 존: 당신의 초기 퍼포먼스 작업에 있어서 선들은 풀잎에 그어진 선 작업과 유사해요. 원길: 그래요 풀잎뿐만 아니라 손가락과 손, 팔과 몸에도 작업했지요. 자연 속에서 작업한 것들 중에는 회화작업과 관련 있는 것이 있어요. ‘낙엽선’(1987)이라는 작품은 떨어진 많은 낙엽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것은 2004년 제작한 ‘포도’ 라는 작업에서 보여주는 유화물감의 작은 덩어리들이 연결 된 선들과 관련이 있어요. 존: 당신의 자연미술작업과 페인팅에서는 우연성이 작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작가뿐만 아니라 자연 또한 작가로서 참여하고 있지요. 당신 작업에서 작가와 자연이 함께 작업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원길: 그렇지요. 나는 떨어진 낙엽을 따라서 선을 그었을 뿐이니까요. 존: ‘파도’ 작업에서 말이에요. 바다에 서 있는 당신의 몸에 그려진 물결 선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은 그 장소와 그 때의 기억에 관한 것인가요? 시간의 긴 흐름에서 이 작업의 순간은… 원길: 맞아요. 바다와 만나는 물리적 시각적 기억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는 파도 선을 몸에다 그렸지요. 그리고 바다의 파도와 나의 몸의 파도가 만나는 것이지요. 존: 그리고 ‘나의 파도’라는 작업에서 당신이 풍경 속에 일부가 되어 풍경과 합체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계절연구회의 야투의 실험들은 자신을 떠나거나 확장하여 자연과 합일하려는 시도들로 보입니다. 원길: 맞아요. 당시 나는 마침내 죽어야 할 나 자신을 떠나 자연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어요. 당시의 작업들은 이런 나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지요. 존: 자연에서의 당신의 퍼포먼스의 방식은 규모가 아주 작고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점은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서양의 퍼포먼스의 양상과 사뭇 다른 점입니다. 원길: 내 작업은 절제되어있고 작은 규모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작업들을 설명하기위해 미술상태라는 말을 쓰지요. 자연과 더불어 무엇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미술은 단지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합니다. 내가 그 행위장소로부터 떠나면 작품 또한 사라집니다. 존 : 1983년에 제작한 ‘거북이와 소나무’ 작품에서 당신은 소나무 껍질에 볏짚을 이용해서 거북이 형상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의 특이점은 무엇일 까요? 원길: 한국에서 거북은 부와 장수를 뜻하는 영물입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단지 소나무의 껍질을 이용해서 거북이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자연은 거침없이 말합니다. 작품이 자연을 뒤덮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 작업은 자연미술이 어떠해야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미술이 어떻게 함께 존재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자연미술은 이런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존 : 당신의 몇몇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관조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작업들은 자연을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에 기초한 것이지요.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생각은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원길: 네. 하나되기는 저의 작업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때때로 나는 자연미술의 방법론을 통해서 환경문제를 생각합니다. 우리 자연미술가들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존: 맞아요. 사람들은 예술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나는 자연이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서의 경험은 우리에게 직감과 이 세계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합니다. 칼 융이 ‘자연과 무의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은 당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창조성을 제공한다.” 원길: 자연미술은 풀과 나무 등의 자연 풍경들뿐만 아니라 소리와 색 그리고 자연현상의 내적 측면들과도 관계합니다. 사람들은 자연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입니다. 자연과 내가 예술적 아이디어를 통해 만나는 순간에 나는 살아있는 자연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존: 그러니까 자연은 현실이고 이것은 당신의 미술상태라는 아이디어와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은 미적이거나 하나의 대상이 아니지요. 자연은 그저 우리가 있는 곳이지만 자연미술 작업을 하는 순간에 당신은 자연을 느낀다는 말이지요. 원길: 자연 속에서 작업 할 때 자연의 실재를 느끼게 됩니다. 자연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피상적 아이디어의 뒤 편으로 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열고 자연이 무엇인가를 던져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자연과 예술가의 표현의지가 함께 작용 한다는 것은 시각적이면서도 개념적인 것이 함께 작용하는 상태 이며 이러한 상태가 자연미술상태이지요. 존: 댕기머리 설치 작업을 한적이 있지요? 원길: 예, 월드컵 기간 중에 열린 설치전시회를 위해 만들었어요. 댕기머리는 과거 한국의 전통적인 머리스타일로서 혼인하기 전에 남자나 여자들의 머리모양입니다. 머리카락은 자연처럼 언제나 자랍니다. 사람은 죽어도 머리카락은 자란다고 합니다. 나는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자라나는 식물은 자라는 인간의 머리와 같습니다. 나는 비닐로 머리를 땋듯이 땋았습니다. 그 다음 사람들이 지나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댕기머리 사잇길’(2002)이라고 불렀습니다. 존: 회화작업에 대한 당신의 접근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연미술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래요? 당신의 페인팅에 꼴라쥬적인 요소나 자연물등의 조합이 이루어지나요? 원길: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 오브제를 주로 사용합니다만 인공적인 요소들을 사용 할 수도 있을 거에요. 실제 나뭇잎을 붙이고 다시 그 위에 나뭇잎과 동일한 색을 만들면서 유화 물감을 붙여나가는 작업을 했었지요. 그것들은 실재이면서도 이미지가 됩니다. 나는 그것을 이미지물이라고 불러요. 존: 당신은 시골에서 정원을 관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정원사가 그의 곡식들을 거두어 들인다면 그것들이 미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원길 : 글쎄요, 만약에 정원사가 자신을 예술가로서 생각한다면 정원을 관리하는 일이 미술프로젝트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정원 가꾸기에 불과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거에요. 조지 딕키가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과 같은 오브제가 어떻게 미술작품이 될 수 있는 가를 설명하면서 예술계로부터의 예술가 자격 수여에 관해서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시골에 살면서 자연으로부터 많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나는 계절에따라 변하는 자연을 보면서 삽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느낄 수 있어요. 2004에는 내가 키운 호박 밭의 씨와 포도나무 잎으로 회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미술의 재료를 얻어 사용한 것이지요. 3개의 시리이즈로 제작된 ‘하늘 풀’ 은 하늘색으로 배경으로 하여 그렸는데 조형적인 선택이나 판단을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색을 더해나가는 가운데 ‘그린다’기보다는 ‘일한다’라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캔버스에는 색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많은 색 층이 쌓여집니다. 그리고 색을 조절하는 또 하나의 과정에서 색 편들이 생기게 되는데 물감이 흘러내린 그 끝에서 또 다른 색 편을 만들었습니다. 존: 거의 선적인 행위로군요.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림이 바뀌는 군요. 주제의 묘사로서보다는 자연성에 근거를 둔 과정으로서의 회화입니다. 그리고 ‘여름풀잎’(2002)에서 당신은 이 같은 패턴들을 만들었어요. 녹색의 배경은 특별히 여름의 자연을 연상시킵니다. 원길: 나는 종이를 잘라서 나뭇잎과 똑 같은 모양을 만들어서 다양한 패턴으로 화면에 배치했지요. 존: 당신은 색조절의 과정은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작업을 시작 할 때 혹은 모든 과정에서 그림이 어떻게 보일 지 생각하지 않나요. 회화는 당신에게 하나의 가치 있는 과정인가요? 원길: 나는 색 조절을 하는 것으로 그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작업실에 앉아서 뭔가 떠오르길 기다립니다. 이 그림은 겨울부터 봄까지 그렸습니다. 한 세달 걸렸지요. 봄이 오자 나는 이 그림에 꽃을 그렸습니다. 존: 그것은 당신의 그림의 구성 위한 하나의 구실인가요? 원길: 그렇지요. 내 그림을 진전 시키기 위해 생각한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나는 밭에서 얻은 한 움쿰의 호박씨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캔버스에 뿌리고 거기서부터 그림을 시작했어요. 나는 빨강, 노랑, 파랑 색을 섞어서 검정색을 만들어 씨 위에 부었지요. 그리고서는 그림을 시작했어요. 색을 조절하고 선을 만들면서 호박을 그렸지요. 호박이 거기서 자란 거에요! 존: 호박 씨로부터 그린 이 그림은 매우 야투적 시도로 보입니다. 나는 한국이 인간과 자연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훌륭한 전통을 가졌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또한 야투 작업은 정말 놀라워요. 원길: 야투자연미술워크샵의 예술적 분위기는 어디서고 찾아 볼 수 없을 겁니다. 당시 워크샵의 분위기는 모두가 학생이고 모두가 선생님인 자연 속의 특별한 미술학교와 같았어요. 자연과 작업하는 것은 처음 야투가 결성되었을 당시에 비해서 이제 상당히 보편화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가 처음 자연에서 작업했을 때의 그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방법들과 접목하는 하는 방안을 모색 해야겠지요. 존: 아마도 자연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당신을 젊게 유지시킬 것입니다. 원길: 그래요? 나도 젊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시간을 따르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와 합일되는 방법을 자연과의 작업을 통해서 배우고 싶어요. 자연미술은 자연을 단지 하나의 대상이나 재료로 다루지 않아요. 그리고 정의하거나 해석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자연미술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은 다른 한 쪽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두 가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하나로 존재하면서도 각각의 특질을 훼손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79 탈린에서의 제1회 세계 불조각(Fire Sculpture) 대회 참가 후기 6 -끝-
전원길
7404 2011-03-01
행사 관련 동영상 http://etv.err.ee/arhiiv.php?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루터란 교회 입구 (성 마리 교회) 러시아 정교회 입구(알렉산더 넵스키 성당) 아침 10시, 고승현 선생님과 올드타운에 있는 루터란 처치에 갔다. 미리 10시 예배시간을 확인해 두었지만 어디서 착오가 있었는지 예배는 11시 부터라고 한다. 12시 티유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예배 참석은 힘들 것 같다. 잠시 앉아 기도를 드렸다. 고승현 선생님의 기도가 길다. 기도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교회 안을 둘러보았다. 종교개혁의 선봉이었던 루터의 정신을 따르는 교회이지만 교회안의 장식은 여느 가톨릭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식물은 많이 있지만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고 예배에 집중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한다. 기본적으로 건물자체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규범화된 법식을 따라 지어지고, 교회안의 인테리어에 사용된 색상들이 차분하고 조화롭게 배치된 까닭일 것이다. 관광지 내에 있는 교회로서 평일에도 개방되어있고 간단한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목사님이 예배 준비를 위하여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신다. 나이 드신 신도 한 분이 안내석에 자리 잡고 있다.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수 등 몇 가지를 묻고 싶었으나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관계로 대화는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루터란 교회의 예배가 궁금했었는데 결국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교회를 나서니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에 들렸던 러시아 정교회에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개의 돔 지붕이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내부를 촬영 할 수는 없었지만 역시 아름답다. 비잔틴 양식의 교회들은 외부에는 장식이 많지 않아 수수하지만 내부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교회 건물을 하나의 몸으로 생각하고 겉보다는 속사람 즉 영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기 때문 일 것이다. 마침 미사 중이어서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의식을 볼 수 있었다. 예배를 위한 교회의 내부 구조는 4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제일 안쪽에는 문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예배를 집전하는 신부가 굵고 깊은 목소리로 찬송을 드리며 성호를 긋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단 아래에는 신자들이 서서 계속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때로 초에 불을 붙여 꼽는 의식을 병행한다. 초는 현장에서 판매한다. 교회 입구 쪽은 손님들의 공간이다. 먼 나라에서 온 신자들이 함께 예배에 참가한다. 교회내부는 초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냄새로 가득하다. 천정 중앙에 뚫린 구멍으로 연기가 배출되어 실내 공기는 아주 혼탁하지는 않다. 교회 문을 나서니 구걸하는 사람들이 일렬로 서있다. 마치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그 사람들이 연극 무대에 등장한 듯하다. 고승현 선생님이 동전 한 닢씩을 그들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12시에 티유를 올드타운 광장에서 만났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공예미술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공예품 중에서는 숲의 나무를 표현한 유리공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러 동물들이 드로잉된 그림 속에서 동물을 찾아 색을 칠하도록 한 관객참여 프로그램도 흥미로웠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실 벽이 든든하고 기둥에서 천정으로 이어지는 선이 아름다운 전시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의 깊은 관록이 느껴지는 공간과 대응하는 멋진 작품들이 조화를 이룬다면 더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미술관 내부 유리 공예품 페터와 들렸던 에스토니아 미술관이 있는 카드리오르그 공원에서 눈 조각 이벤트가 열린다. 티유는 이 행사의 기획자이면서 심사위원장이다. 티유가 심사 및 시상식 행사에 관여하는 동안 우리는 눈 조각하는 사람들과 작품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행사가 끝나고 티유와 거기서 만난 러시아 팀과 함께 멕시칸 식당에서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요리의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그냥 포크, 비프, 치킨, 생선 중에서 찍는다. 나는 무슨 무슨 치킨을 시켰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러시안 친구는 고치구이 요리인데 근사하게 한 상을 받는다. 본인도 놀란다. 모두의 탄성을 들으며 먹은 요리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멕시칸 식당에서 온가족이 함께 만들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눈 조각 현장에서 합류한 페터와 만나 우리는 티유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페터의 집(작업실)에 가서 차를 마시며 그의 최근 사진 작품을 보았다. 고대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내러티브한 사진 작업이었다. 아직 진행 중의 그의 작업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그가 아주 진지하며 프로패션널한 사진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이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의 부인은 야투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소개하니 눈을 반짝이며 무척 흥미 있어 했다. 그와 아주 절친한 사진작가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페터가 추천한 에니메이션 한편을 보았다. 에스토니아는 에니메이션에 있어서 특별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편배달부가 달에 소포를 전달하러 가는 이야기에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좋은 영화 한편을 감상했으나 몸이 고단하여 그가 마련한 특별한 자리를 살리지는 못했다. Sky Song/ Directed Mati Kutt 에니메이션과 관련해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영국시절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윌리엄 캔트리지의 작품이었다. 페터에게 소개해주었다. 오늘 본 영화에 대해서는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 긴 하루를 마감하는 인사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왔다. 추운 날씨에 거의 하루 종일 밖으로 돌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많은 것 같다. 기온은 아주 낮지 않지만 습도가 많은 바람에 몸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느낀다. 저녁때만 되면 피로감이 몰려오고 호텔로 돌아오면 씻자마자 눕게 된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케일라 조아 폭포 트립을 위한 페터의 메모 공식적인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남은 소중한 하루다. 어제 페터를 통해서 근교에 기차를 타고 갈수 있는 좋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친구 사진작가와 한참을 상의 한 끝에 알려준 곳이 케일라 조아라는 곳에 있는 폭포였다. 한겨울 폭포가 얼어붙어 장관일 테고 가까이에 발틱 해변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교통편은 기차는 없고 호텔 바로 옆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108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되고 올 때도 126번과 108번을 타면 호텔 옆 종점에서 하차 할 수 있다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교외로 달렸다. 시원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산은 없다. 국토전체가 평야지대라고 한다. 그리고 반쯤은 산림으로 덮여 있단다. 눈 쌓인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참을 달려 시골 정류장 같은 곳에서 하차했다. 이정표를 보고 폭포를 찾아 가다가 점심을 먹을 곳을 찾으니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카페의 벽이 아름답다. 자연스럽게 보수하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도 백년은 넘은 건물 같다. 아니 이백년은 되었을 찌도 모른다. 좀 더 들어가야 폭포가 나오겠지 하고 길을 되돌아 나오는데 경찰 후보생 같은 친구들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이내 돌아 나온다. 뭔가 볼거리가 있는가 하여 가보니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있기는 한데 폭포라고 하기엔 싱거운 물줄기가 얼어서 하얀 몸을 들어내고 있다. 케일라 폭포 폭포 앞 카페 설마 하면서 지나는 수줍은 아주머니에게 어디가 물 떨어지는 폭포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직접 길을 안내하여 우리가 갔던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아 여기란 말인가?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애써 온 곳이니 돌아가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럼 해변으로 가는 길은 어디냐고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눈이 많이 쌓여 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아무래도 아쉬워서 그냥 마을 구경이라도 하자면서 마을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소나무 숲길이 너무 아름답다. 혹시 하는 생각에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절경이다. 우리의 적송과 비슷한 색깔의 몸을 가졌으나 적송과는 다르게 미끈하게 쭉 자라 오른 소나무가 아름다웠다. 이리 저리 헤매다 결국 바다를 보았다. 길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왠지 바다 냄새를 따라 움직이듯 큰길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말로만 듣던 발틱 해안이다. 해변에 눈이 얼어서 얼음처럼 되어있기 때문에 물을 볼 수는 없다. 파도도 없고 물도 볼 수 없으니 그냥 고요하고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진다. 눈 쌓인 발틱 해안 정막하고 쓸쓸해서 아름다운 회색빛 겨울 발틱 해변에서 우리 세 명의 작가들은 최초의 해외에서의 겨울 야투 작업을 했다. 돌아오는 숲길은 같은 길이지만 또 다른 풍광이다. 고 선생님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시간을 보니 우리가 타려고 했던 버스는 이미 지나갔고 다음 버스가 오려면 40분은 기다려야한다. 강 선생님과 나는 그냥 천천히 눈 쌓인 숲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나왔다. 아직도 버스 올 시간은 멀었고 배는 고프고 우리는 근처 마켓에서 음료수와 요구르트 그리고 비스킷을 사서 먹었다. 바람을 피할 생각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갔으나 누구의 발길질에 깨졌는지 칸막이는 부서져 달아났다. 춥지만 맛있다. 맥주인 줄 알고 산 것인 저알콜 탄산 음료수다. 추위를 약간의 취기로 이겨 보려고 했던 생각은 실패였다. 동네 꼬마 녀석들 중 호기심 많은 한 녀석이 말을 시킨다. 아마도 한국 사람을 처음 볼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마음 편하게 졸음이 쏟아진다. 2011년 1월 25일 화요일 오전에 탈린 시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유럽의 어느 도시 못지않은 도심풍경이다. 근처에서 백화점에 들어가 보았다. 대부분의 매장들이 겨울 상품들을 처리하기위해 50-70% 세일 중이다. 교회아이들에게 줄 초콜릿 사탕을 좀 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목걸이가 있어 하나 집어 들었다. 강 선생님은 꽃향기 나는 허브 비누를 샀다. 고 선생님은 소시지 종류에 관심에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올드타운 선물가게에서 조그만 새와 개구리 모양의 소리 내는 나무인형과 풀과 동물모양을 간결하게 파낸 나무도장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에스토니아의 상징인 설형무늬의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기념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과 풀 모양 도장 점심은 자주 가던 본 크랄이라는 연극공연장 식당(Bar)에서 먹었다. 처음 이 곳을 소개해 준 것은 행사진행자인 엡 이었다. 주소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가니 지정된 주소에는 그 식당이 없고 바로 옆에 식당이 있어 들어가 확인하니 아니라고 한다. 다시 물어서 들어가니 극장 옷 맡아주는 사람이 이곳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나갔다가 다시 물어서 극장입구 왼쪽으로 쭉 들어가니 거기가 식당이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식당이다. 현지인들과 극장 손님들만 아는 장소인 셈이다. 하지만 일단 가격이 싸고 음식도 먹을 만하다. 맥주는 한잔에 2유로 인데 두잔 시키면 한 잔은 덤으로 준다. 기본적으로 다른 곳의 반 값 인데 거기가 덤도 주니 많이 싸다. 에스토니아 탈린 올드 타운에서 경제적인 식사를 원하시는 분은 들러 보셔도 좋을 듯하다. (탈린 올드타운 Rataskaevu 10/12)주소가 써 있는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냥 곧장 걸어서 다섯 계단 쯤 밑으로 내려가 안으로 들어서면 거기가 식당이다. 부분 이층으로 되어있어 천정이 높고 한쪽에는 작은 무대가 있는데 가끔 아마츄어 밴드가 와서 공연을 한다. Von Krahl Bar 에스토니아에 있는 동안 아침식사를 제외한 점심 저녁 모두 사쿠(Saku)라는 생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맥주 없이는 식사의 구색이 안 맞고 느끼한 기운을 씻어낼 수가 없다. 거의 2주간 매일 같이 술 마신 적은 평생 처음이다. 술과 음식 그리고 날씨 등은 아무래도 서로 관련이 있음에 분명하다. 짐을 꾸리고 주최 측에서 연결해준 자원봉사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처음 탈린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올 때도 이차를 타고 왔다. 운전자는 바뀌었다. 원래 운전하던 친구는 플룻을 전공한 뮤지션이었는데 지금을 다른 진로를 모색 중 이라고 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매일 데리고 다녔는데 마치 가족처럼 여긴다. 얼음 조각하는 장소로 이동 할 때도 이 차를 이용했었다. 안전벨트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시야가 확 트인 앞자리가 좋아서 나는 무조건 조수석에 앉는다. 이름도 생각이 안 나는 친절한 이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좀 아는 듯 했다. 남한 북한으로 갈려있는 나라라는 것도 알고 김정일, 김정은도 안다. 최근에 있었던 연평도 사건도 안다. 알고 보니 그의 옛 여자 친구가 부산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몇 사람 안가지고 있는 무슨 낚시허가증도 있고 보트도 있고, 여름 별장을 어딘가 가지고 있으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 지역은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했다. 우리가 떠나는 날에는 어디 해외로 스키 타러 간다고 했다.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부유한 신분의 자원봉사자임을 나에게 열심히 알려준(자랑한) 셈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짐을 부치기 위해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왠지 표정이 밝지 않은 여직원이다. 옆쪽으로 갈 것을 하고 후회한건 바로 잠시 뒤였다. 고 선생님의 짐의 무게가 오버되어 40유로를 내야한다고 한다. 가지고간 작업도구들의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결국 이리저리로 짐을 분산하고서야 겨우 통과했다. 하지만 노파심에 인천에서 짐을 찾게 되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북경서 짐을 찾아서 다시 체크인을 해야 한단다. 이런! 이러면 여행이 복잡해지는데... 올 때는 인천공항에서 짐마다 트랜스퍼(Transfer)라고 인쇄된 라벨을 붙여서 탈린에서 짐을 찾도록 친절하게 연결해 주었는데 여기서는 왜 안 되는 건지.. 이미 짐의 무게로 땀 빼며 씨름을 한터라 더 이상 따지기도 힘들고 도무지 말을 붙여볼 여유를 주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는 금방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 먹고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두 번째 기내식을 먹을 시간이다. 한두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베이징이다. 뒷자리에 않은 나이 좀 드신 분과 의자 뒤로 저치는 문제를 가지고 신경전도 벌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하니 이젠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서 고도를 계속 낮춘다. 귀가 아프고 어느 순간은 아무소리도 안 들린다. 마치 비행기가 공중에 멈춰서 있는 듯하다. 나는 비행기가 뜨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고 그 순간이 때로 그립다. 하지만 착륙을 위해 고도를 급속히 낮출 때 느껴지는 귀멍멍 상태는 언제나 별로다. 베이징에 도착해 짐 찾아서 다시 체크인하고 들어오면서 다시 몸수색당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각 하면서 나오는데 어떤 항공사 직원인 듯한 여자가 내 이름과 고승현 선생님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짐 찾는 문제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서 탈린의 데스크 직원의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같이 간 강희준 선생님은 인천까지 짐이 연결되었고 우리 둘 짐만 다시 붙여야한단다. 인상 안 좋았던 그 여직원한테 골탕을 먹은 느낌이었다. 하여튼 나가서 다시 짐 붙이고 다시 들어와 아시아나를 탔다. 승무원들의 서비스 매너가 예전에 비해 한결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예정된 시간에 딱 맡게 인천에 도착했다. 짐 찾으면서 집에 도착 신고하고 마침 바로 연결되는 공항버스 타니 휴우 하는 안도와 편안한 한숨이 절로 난다. 공항버스는 좌석도 넓고 편안하여 마치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 좌석에 앉은 기분이다.
78 탈린에서의 제1회 세계 불조각(Fire Sculpture) 대회 참가 후기 5
전원길
5643 2011-03-01
2011년 1월 21일 금요일 예선 때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아무래도 이틀간 진행되는 결선 일정 때문이리라. 예선 때보다는 날씨도 맑고 추위도 덜하고 바람도 없어서 작업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한 번 호흡을 맞춘 만큼 지난 번 보다 말없이 진도가 나간다. 자르고 붙이고 어느덧 큰 그림이 나오는 것 같다. 현장에 설치된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야전에서 먹는 고기 스프와 맥주가 별미다. 다른 팀들도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다.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팀들과 사진도 찍는다. 오늘은 6시에 탈린 시장 환영 리셉션이 있다. 4시 30분에 하루 작업을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와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모두 올드타운 중심에 있는 시티 홀 리셉션 장으로 향했다. 전통의상을 한 문지기가 손님을 맞이한다. 입구 홀에 있는 옷걸이에 겉옷을 벗어놓고 의자가 놓여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아름다운 방이다. 중세 시대의 오래된 건물이지만 전통적 느낌을 살려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중세 시대에 시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토론이나 송사의 장소였다고 한다, 앞에 테이블이 있고 긴 의자들이 놓여있어 사람들이 연설을 듣거나 진행되는 행사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시장 인사 그리고 건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바로 옆방 환영식장에서 포도주와 다과가 제공되었다. 특별한 장소에서 대접 받는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중세의 장인들의 손맛이 그대로 담겨있는 나무의자가 마음을 당긴다. 천정과 벽에 그려진 벽화도 아름다웠다. 다시 오기 힘든 이 장소의 특별한 분위기를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싶었다. 탈린 시티홀 리셉션장 시티홀에서 나오자 핀란드 작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스케쥴에 대해서 물었다. 아마도 우리와 함께 저녁을 하고 싶은 것 같다. 함께 식당을 찾았다. 시티 홀 근처를 두리번 거리며 식당을 찾는데 마침 페터가 부인과 함께 지나간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저녁 식사하기 좋은 곳을 물었다. 저기는 전통식이며 여행객을 위한 곳이고 이쪽은 먹고 놀기 좋은 곳이고 저리로 가면 또 다른 식당이 있다고 했다. 바로 오른 쪽 먹고 놀기 좋은 곳으로 갔다. 입구에서 먹기만 할 것인지 공연도 즐길 것인지 물었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 각자 주문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피차의 궁금 사항을 묻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들 수염을 기른 마치 영화에서나 보았을 외모에 점잖은 분들이다. 나이도 꽤들어 보인다. 50대 후반 아니면 60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표정부터도 진지한 작가들이다. 다른 팀들이 목수들과 기술자가 혼합된 팀들로 구성된 반면 우리나 핀란드나 모두 순수미술을 하는 전문작가들이다. 하지만 핀란드 팀은 아쉽게도 예선통과에 실패했다. 작가 한 분은 대학에서 조각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화가 그리고 조각가로 구성된 팀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자연미술운동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들도 핀란드 숲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오란키(Oranki)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야외전시프로그램이다.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니 2001년 시작되어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워크숍이다.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왜 하필이면 토끼를 주제로 불 조각을 했냐는 것이었다. 올 해가 토끼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핀란드 작가가 말했다. 탈린의 상징 동물이 토끼라는 것이다. 우리는 몰랐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선통과에 토끼가 도왔다는 말인가? 또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나중에 우리가 가지고온 자료를 주기로 하고 먼저 자리를 나섰다. 조금 걸어 나와 슈퍼마켓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산 다음 호텔로 돌아왔다. 탈린성 입구 눈 쌓인 올드타운 골목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작업을 끝내는 날이다. 어제 기본적인 작업을 해 놓았기 때문에 계획한대로 마무리하기만 하면 된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역시 토끼의 귀 한쪽을 올려붙이는 작업이다. 높은 곳에 사다리를 타고 귀를 올려서 잘 움직이도록 설치를 해야 한다. 밀고 당기고 한참을 씨름하여 귀를 붙이고 나니 귀가 짧아 보인다. 일 미터 정도를 애써 이어 붙이고 나니 이제야 제대로 된 듯 만족스럽다. 토끼 형태의 뒷 판을 세워 고정 시키는 것도 쉽지는 않다. 마침 예선에서 탈락을 고배를 마신 멕시코 팀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빌어 뒷 판을 고정 시켰다. 약간 여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빠듯하다. 구석구석 지푸라기를 채우고 점화 준비 까지 하고 나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각 작품들이 조명을 받아 낮에 보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잠시 휴식을 위해서 호텔로 가는 길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작품을 보니 그럴싸하다. 다른 자품들이 모두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작품인데 반하여 우리들의 토끼는 회화적이고 심플하다. 무엇보다도 조명과 어우러져 정말 달 속에 토끼처럼 아스라한 느낌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사람들이 오가며 관심을 보인다. 어! 이러다 상 타는 것 아닌가하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호텔에서 젖은 양말도 갈아 신고 옷에 붙은 까실 까실한 지푸라기도 제거하고 다시 전시 현장으로 나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방송사의 카메라 장비들도 세팅이 되고 기자들도 왔다 갔다 취재가 바쁘다. 식전행사는 폭죽이 연신 터지는 가운데 피겨 스케이팅이 이어지고 무대 한편에서는 큰 북 공연이 계속된다. 북소리와 불조각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분위기를 돋우는 사회자의 목소리도 한 몫을 한다. 역시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순위발표이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까지 불렀을 때 아 우리는 순위에 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일등은 리투아니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리투아니아가 일등이다. 가슴이 쓰렸으나 여기 와서 즐기고 경험한 것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식후행사는 저녁식사와 파티로 이어졌다. 저녁을 먹고 어수선한 파티현장을 뒤로하고 일찍 호텔로 왔다. 아무래도 나이 탓인가 아니면 시차와 피곤한 일정 때문인가? 세 사람 모두 저녁시간만 되면 힘들어지고 사교 의욕이 떨어진다. 조명을 받은 한국 팀 작품 한국 팀 작품 연소 과정 완성된 국가별 작품들 참여 작가들 관객들
77 탈린에서의 제1회 세계 불조각(Fire Sculpture) 대회 참가 후기 4
전원길
7732 2011-02-28
2011년 1월 17일 화요일 야투 및 비엔날레 자료전시 아침 식사 후 호텔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열차에서 떼어낸 의자로 인테리어를 한 휴식공간에서 통로 휴게실에 우리가 가지고간 야투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자료를 전시했다. 그동안 서로 작품 관련 자료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었다. 일종의 대회이다 보니 작가들 간의 교류라는 측면은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작가들은 주의 깊게 한권씩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내용을 살펴보다가 궁금한 내용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해외에서의 미술 행사에 참가하는 야투의 회원들은 한국의 자연미술운동을 책자 혹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소개하고 알린다. 이러한 활동은 한국에서 자생적 발전을 이룩한 자연미술을 국제화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오후에는 얼음 조각을 위해서 교외에 있는 식료품 보관 냉동 창고로 이동하였다. 북구 쪽에서 들여왔다는 얼음이 20여 덩어리가 쌓여 있었다. 긴 쪽이 2미터 짧은 쪽은 1미터 두께는 50센티 정도 되는 얼음이었다. 다른 팀들은 미술관 관람 일정에 합류한 탓에 우리 셋만이 얼음의 위치를 잡고 제작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얼음 조각을 주관하고 진행하는 티유가 작업에 필요한 사항을 이야기해주고 내일은 얼음조각을 위한 끌을 갈아다 주기로 하였다. 오늘은 전기톱으로 큰 형태를 잡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국 팀은 토끼와 호랑이를 제작하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고 선생님과 강 선생님이 조각을 위해서 필요한 이미지 자료를 준비해왔다. 냉동 창고는 -2도에서 -4도를 항상 유지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윙 소리를 내면서 찬바람이 나온다. 마치 냉장고 속에서 작업하는 것과 같다. 작업을 안 하고 있으면 추어서 견딜 수가 없다. 방수 털 장화가 위력을 발휘한다. 둔하던 점퍼가 가볍다. 점심은 외부에서 배달된 것을 교대로 먹었다. 얼음이 깎는 느낌은 뭐라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새롭다. 단단해진 물을 깍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돌같이 단단하지만 자유자재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적당한 저항이 있으면서 경쾌하게 부서지고, 아주 얇게 벗겨지기도 한다. 불조각과 얼음조각이라는 아주 상반된 요소를 가지고 작업하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저녁 식사 후 사우나 일정이 잡혔다. 고 선생님이 에스토니아 전통식 사우나 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없는지 물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통식 사우나는 근처에서 찾을 수 없어 일반적인 대중 사우나탕에 원하는 작가들과 함께 갔다. 우리나라 대중목욕탕 분위기다. 대부분 각각의 집에 사우나가 있기 때문에 대중 사우나탕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습식사우나탕과 건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불에 달군 돌에 물을 뿌려가며 실내온도를 올리고 자작나무가지를 불려서 몸을 두드리며 사우나를 한다. 러시아 작가들은 이런 사우나에 아주 익숙한 듯했다. 자작나무로 몸을 두드리니 시원하다. 맥주를 마시면서 땀을 뺀다고 하는데 우리 일행은 그냥 물을 마시며 사우나를 했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확 풀리는 듯하다. 호텔로 돌아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2011년 1월18일수요일-19일 목요일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얼음 조각에 들어갔다. 얼음 조각이 처음이라 걱정을 했지만 재료를 다루는 것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리 어렵지 않게 진도가 나갔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팀들은 얼음 조각에 있어서도 많은 경험이 있어 보였다. 조금은 디자인적인 단순화와 변형을 시도한 다른 팀과 달리 우리는 사실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다른 팀과의 차별성을 살릴 수 있었다. 강 선생님은 역시 조각 전공자답게 과감하게 모델링을 해나가면서 빠른 진행을 보였고 호랑이의 표정을 잘 표현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면을 잡아 외곽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다른 팀과는 다른 표현적 특성을 보인 것에 대하여 진행자인 티유가 만족하였다. 우리는 전시되는 작품을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온 후에 탈린시민들이 즐겁게 감상하기를 바랐다. 탈린 시내 공원에 전시중인 작품 19일 작업이 일찍 끝나 조금 일찍 엘로(Elo)라는 에스토니아 여성 조각가의 차를 타고 나오게 되었다. 네 아이의 어머니로서 자녀의 양육과 작가로서의 길을 어렵게 그러나 뚝심 있게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대화하는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럽피안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일부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아시안 으로 생각하고 아시아 문화와 철학, 언어에 관심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불 조각에 함께 참여한 친구도 아시아의 철학과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탈린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가 가지고 온 자료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그녀의 요청대로 우리가 가져온 야투의 자료와 비엔날레 카탈로그들을 탈린대학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얼음 조각을 마친 다음 날 우리는 에스토니아 작가이며 이번 불조각대회에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했던 페터(Peeter Laurit)와 만났다. 고승현 선생님과는 2002년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사진작가이다. 핀란드 한국 대사관의 이상훈 영사의 소개로 알게 된 탈린의 유일한 한국식당 ‘고추’를 찾아 나섰다. 주인장과 페터가 통화하니 식당 위치가 확인된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니 코스가 좋다. 번화하지 않은 지하의 작은 식당이다. 젊은 친구 둘이서 운영하고 있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유럽에서 한국음식점을 하고 싶은 두 젊은이가 의기투합해서 먼 나라 그리고 한국 사람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고 선생님은 파리에서 음식점으로 성공한 친구의 예를 들면서, 완성된 요리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서양식요리 스타일 보다는 테이블에서 직접 끓여서 먹는 따끈한 메뉴를 개발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아무튼 특별한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두 젊은이들의 식당이 번창하길 바래본다. 세라믹 벽 난로 식당에서 나와 피터의 안내를 받아 17-18세기 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카드리오르그 공원내에 있는 에스토니아 미술관으로 갔다. 인터넷의 사진 자료를 보면 근사한 공원에 자리 잡은 미술관인데 겨울이라 공원의 아름다움은 즐길 수 없었다. 근대이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과거 러시아 통치시절 러시아 황제의 궁으로 이탈리라 건축가에 의하여 바로크 양식으로 1718년에 지어졌었다고 한다. 실제로 러시아 황제는 단 한 번도 머문 적이 없는 그곳이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나는 전형적인 서구스타일의 유화 작품들 보다는 각 방에 설치되어있는 세라믹 벽난로에 눈이 간다.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그린 푸른색 타일 그림들이 재미있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현대미술관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대통령 궁이 있었다. 문지기 한 명만이 현관에 서있을 뿐이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다. 주적을 근거리에 두고 있는 나라의 백성으로서는 특별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현대미술관(Kumu Art Museum)은 건축적으로도 현대성을 살린 건물로서 규모도 상당했다. “For Love not for Money”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탈린프린트트리엔날레(Tallin Print Triennial) 오픈식에서는 주요 인사들의 인사말이 번갈아 가며 길게 이어졌다. 오픈식이 열리는 한편에서는 관객 참여프로그램이 일종의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관객들이 앞뒤로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판화를 찍어내는 프로그램으로서 약간은 소란스러웠지만 상투적인 오픈식 분위기에 활력을 주는 듯 했다. 그래픽, 판화, 일러스트, 사진 비디오 등을 망라한 꽤 규모가 큰 국제전이었는데 한국작가의 작품은 없었다. 전시장의 구성을 입체적으로 터프하게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현대미술관(Kumu Art Museum) 탈린프린트트리엔날레 더불어 다른 층에서 열리는 컨스터블을 비롯한 19세기 자연주의 작가들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컨스터블의 작품은 인쇄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필치의 자유로움과 활달함이 느껴져 인상주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관에서 나와 우리는 먼저 루시앙 프로이드의 작품전 오픈식이 있다는 올드타운의 작은 갤러리를 방문하였다. 익히 그의 명성과 작품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에스토니아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루시앙 프로이드는 철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로서 독일에서 출생하였지만 영국에서 성장하여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방법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 루시앙 프로이드 만큼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구상 화가는 보기 힘들다. 말이 필요 없이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보여주는 화가이다. 갤러리에 도착해보니 그의 작품은 단 두 점 그것도 달랑 판화 두 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개인 화랑에서 젊은 오너가 그의 작품을 전시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판매를 주로 하는 상업 화랑으로서 에스토니아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많이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페터로 부터 들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능력 있고 믿을 만한 갤러리스트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젊은 화랑주인의 진지하고 겸손한 매너가 보기 좋았다. 갤러리에서 나와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중세식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탈린 올드타운에서 가장 싼 레스토랑이면서도 가장 중세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일 유로 스프에 일 유로 맥주, 일 유로짜리 파이를 먹을 수 있는 일품요리 식당이다.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터가 내일을 위해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우리를 배려하듯이 떠날 것을 권고하였다. 우리는 주어진 불조각 대회 안내문을 다시 찬찬히 읽기 전까지 결선이 내일 부터 진행되는지 몰랐다. 페터의 말을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여긴 고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진행 일정표를 다시 살펴본다. 함께 다시 읽어 보니 결선은 이 틀 동안 진행되며 내일 부터 작업 시작이었다. 큰일 날 뻔 했다. 함께 결선 작업 내용을 점검하였다. 토끼 이미지의 뒷 판은 원형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이미지와 매치 시키고 토끼의 몸체는 일정한 간격으로 각목을 고정시켜 나무가 타면서 일정한 가로 무늬패턴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를 보았다. 결국 이번에도 뒷 판의 분리와 귀의 움직임이 중요하며 이 부분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76 탈린에서의 제1회 세계 불조각(Fire Sculpture) 대회 참가 후기 3
전원길
4937 2011-02-27
2011년 1월15일 토요일 고승현 강희준 전원길 내일로 다가온 예선을 위해서 오전에 세 사람이 모여서 작업에 대한 협의를 했다. 토끼 모양의 구조물을 세우는 방법과 움직이는 장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사실 알고 보면 세 사람 다 나름대로 작업과 일반적인 일의 진행에 있어서도 경험이 많다. 고 선생님은 2008년 자신이 다니는 교회 건축을 맡아서 진행한 분이다. 그 이전에도 선친의 집을 개보수하여 공주 명물 고가네 칼국수와 맛갈 식당을 인테리어를 했고 공주 원골의 자연미술의 집과 비엔날레 시설물의 대부분이 그의 감독으로 이루어 졌다. 강희준 선생님은 세 명 중 유일한 조각 전공자로서 공간 구성에 남다른 감각과 순발력 있는 재치로 손 빠르게 작업을 해내는 재주가 있는 분이다. 나도 작업의 방향과 흐름을 잡아 나가면서 한 몫을 해 낼 수 있다. 약간의 이견이 있었으나 길지 않은 토의 끝에 원만하게 의견을 조율 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의 예기치 않은 상황은 어제나 있는 법이니 지혜롭게 대처해나가면 될 일이다. 작업 내용과 방법을 확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늘은 5시에 이곳 학생들의 화이어 스컵쳐를 구경한다. 그리고 호텔 식당에서 내일 진행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는 다시 탈린 시가지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학생들의 불 조각은 어딘지 어설프지만 재미있게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서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잘 보기 위해서 쌓아 논 눈더미 위로 올라간 사람, 아빠의 목말을 탄 어린 아이 등 많은 사람들이 둘러선 가운데 한 작품씩 태워나갔다. 행사 큐레이터인 스웨덴 작가 군나의 행사 오리엔테이션 대회 오리엔테이션은 스텝 소개와 내일 진행될 예선전의 일정과 방법 소개 그리고 질문 등으로 이어졌다. 한 작품을 태우고 심사하는데 몇 분정도를 잡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10분정도를 생각하지만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더라도 계속 관찰하면서 과정을 보겠다고 했다. 군나는 키가 190cm 정도 되는 거인형 체격에 항상 머리띠를 하고 갈색 수염을 기른 사람인데, 턱수염의 가운데 부분을 땋아서 개성(?)을 살렸다. 거기다가 바바리 코트를 길게 늘어트리고 다니는 옷 스타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헤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사 같은 느낌을 준다. 덩치와는 다르게 언제나 따듯한 눈길을 (내려) 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군나 같은 특이한 복장은 그와 같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이한 일상에서 떠나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예술가로서 일반인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인 셈이다. 군나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얼음 조각팀은 진행자인 티유와 미팅를 가졌다. 얼음조각 워크숍에는 에스토니아 조각가 엘로와 러시안 팀, 멕시칸 팀, 핀니쉬 팀 그리고 진행자인자 작가인 티유가 참가한다. 열 두 종류의 띠 동물(쥐, 소, 호랑이, 토끼 등)을 주제로 한 얼음조각은 구정 때 올드타운 성 아래 연못에 전시된다고 한다. 전시기간은 날씨 상태에 따라 계속 추우면 좀 더 오랫동안 전시되고 날씨가 따듯하면 일찍 철거될 것이다. 에스토니아에서 동양적 정서가 담긴 동물들을 주제로 그것도 음력 설에 맞추어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2011년 1월 16일 일요일 대회현장의 참가국 국기 재료 정리 대회는 예선과 결선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12개 팀 중에서 6개 팀이 예선을 통과해서 결선을 치루게 되어있었다. 16일 예선이 열리는 현장에 도착하니 팀별로 일정한 양의 나무와 짚단이 이미 나누어져 있었다. 날씨는 무척 춥고 눈보라 까지 휘날리는 날씨였다. 얼굴을 전체 감싸는 마스크를 준비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현장 곳곳에는 장작 난로가 타고 있었다. 팀별로 톱과 망치, 철사, 노끈 그리고 사다리도 지급되었다. 이미 일찍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한 팀도 있었다. 우리도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미리 계획한 대로 제작을 시작했다. 우리가 계획한 작업은 ‘놀란 토끼’라는 제목의 토끼를 주제로 한 작업이었다. 토끼해를 맞이하여 새해에 일어날 좋은 일들 이를테면 전쟁과 기아가 사라지고 남북한이 통일되는 일로 인하여 토끼를 놀라게 할 것이라는, 모든 사람의 희망을 담은 작품이었다. 기본적인 형태는 토끼모양을 입체로 만들되 작품이 타들어 가면서 토끼의 귀가 쫑긋하게 위로 솟아오르도록 작품을 설계하였다. 고 선생님과 강 선생님의 수염에 고드름이 맺히고 손가락이 얼어 망치질이 잘 안될 정도로 날씨는 혹독했으나 워낙 촉박한 작품제작 시간으로 인하여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게 작업을 끝냈다. 추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끝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한 쪽에서는 작품을 태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어두어진 현장에서 서로를 구별하기위하여 머리에 빨간 표시등을 달고 작품을 심사하였다. 나중에 심사위원 중의 한사람이었던 페터에게 심사의 중요관심사가 무엇인지 물었다. 물론 완성된 조각적 상태도 중요하지만 타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 지는 내용에 많은 비중을 둔다고 하였다. 눈에 딱히 들어오는 작품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작업들 이었다. 마침내 우리차례가 다가왔고 미국 팀에서 불을 인계하여 아궁이처럼 뚫어놓은 토끼의 배안에 불을 붙였다. 불은 생각보다 빠르게 타올라 작품 전체를 휘감았다. 어느 팀의 작품보다도 강렬하고도 힘차게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작업의 포인트로 생각했던 토끼귀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없이 열심히 했지만 보여줄 것을 보여주지 못한 우리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토끼 귀는 왜 올라가지 않았을 까? 결론적으로 무거운 토끼 귀를 올리기에는 추의 위치가 너무 가까이 있었고 추도 더 무거워야 했다. 아쉬웠지만 좋은 경험을 했고 이제는 남은 일정을 부담 없이 지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작품제작 과정 행사를 마친 작가들과 진행스텝들은 호텔에서 가까운 식당으로 이동했다.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멋진 공간이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행사의 진행을 맡고 있는 엡Epp이 간단한 기념품을 참가팀에게 주었다. 멕시코 팀은 함께한 작가들에게 준비한 손수건을 나누어 주었다. 받기만 하려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본 행사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스웨덴에서 온 군나가 심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원래 여섯 팀을 뽑기로 했으나 워낙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 팀을 더 뽑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여섯 팀을 다 부른 다음 그는 ‘코리아’라고 마지막 일곱 번째 팀을 호명하였다. 우리는 전혀 기대를 안 한 상황에서 너무도 놀라웠고 다소 당황스럽기 까지 하였다. 귀가 서지 않아서 실망이 너무 컸던 탓일까 ? 예선 통과를 조금도 기대를 안했는데 예선을 통과하게 되다니... 하여튼 우리는 결선에서는 제대로 보여주자고 이심전심의 다짐을 하였다. 불타는 작품 앞에서
75 탈린에서의 제1회 세계 불조각(Fire Sculpture) 대회 참가 후기 2
전원길
5352 2011-02-27
2011년 1월 13일 목요일 웬만한 거리는 승용차로 이동하다 보니 추위를 느낄 기회가 없었다. 내복은 입어본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가장 추운 시기에 그것도 북유럽 쪽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게다가 일정의 대부분이 야외에서 이루어지고 몇 일간은 냉동창고에서 얼음조각을 해야 한다. 딱 정해진 일정이니 춥다고 피 할 수도 없다. 방한대책을 어찌 해야 할지 생각이 많다. 우선 두툼한 방한복이 필요하다. 무거운 옷은 질색이지만 야외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좀 튼튼해야한다. 그 다음 신경 쓰이는 것은 신발이다. 눈이 많은 나라에서 방수도 되면서 방한이 되는 신발이 필요하다. 우선 방한 점퍼부터 사기로 했다. 다행이도 적당해 보이는 물건을 만났다. 가격도 세일중이라 무리가 없다. 어떤 추위에도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옷이 워낙 두툼하여 입기에 좀 둔하다. 아무래도 세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야하는 여행에 입고가기는 불편한 옷이다. 같은 가게에서 조끼 형태의 겉옷을 함께 사고 나니 이동시 입을 옷과 야외에서 작업하면서 입을 옷이 갖추어졌다. 바로 옆 가게에서 내복도 샀다. 이튿날 재래시장 신발 가게에 가서 만 오천 원 주고 방수 털 장화도 한 켤레 샀다. 최고다. 함께 가는 고승현 선생님에게도 전화해서 한 켤레 사시라고 했다. 그 외에도 눈보라 치는 예선전 때 크게 효과를 보았던 얼굴가리는 검정색 마스크도 준비했다. 조끼위에 작업하면서 입을 옷도 챙겨 넣었다. 짐을 꾸리면서 방한복을 가방에 넣으려니 거의 침낭수준의 부피다. 작은 가방에 꾸겨 넣느라고 고생하느니 큰 가방을 가져가기로 하였다. 카메라를 가져가야하니 노트북은 생략했다. 여행 출발 하루전날, 지난번 중국 갈 때도 나타났던 고약한 여행 전 설사 증세가 신경 쓰여 약을 미리 먹어두었다. 마침내 떠나는 날 아침, 뱃속이 편하니 몸 컨디션 예감이 좋다. 집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함께 가는 두 분이 벌써 도착해있었다. 짐 부치고, 로밍하고, 환전하고, 회비 걷고 출국준비를 마쳤다. 비행 스케줄이 빡빡하다. 어느 한 군데서라도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꼬이는 스케줄이다. 떠나기 며칠 전까지 신경 쓰여 고치려고 했던 인터넷 티켓의 g가 하나 더들어간 영문이름(Jeon Wonggil)은 결국 고치지 못했다. 주최 측에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그대로 믿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여권과 비행기 표를 보여주니 여권 이름과 비행기 표 이름이 다르다고 출국을 저지한다. 순간적으로 아! 비행기를 못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받아 프린트한 티켓을 보여주며 여행사 실수라고 했더니 다행히 별 문제없이 통과했다. 이후 가면서도 오면서도 영문 스펠링 틀린 것을 지적하는 공항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오직 인천공항에서만 단번에 딱 잡아내는 실력을 가졌다. 비행기 티켓 짜릿한 이륙 후에 이어지는 음료서비스, 기내식 서비스, 다시 음료서비스... 몇 편의 영화를 보고, 잠자다 말다 했다. 좀 지루했지만 별 문제없이 긴 비행을 마치고 탈린에 도착했다. 이번엔 주최 측에서 비행기를 예약하고 좌석까지 확정된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지만 장거리 여행에서는 무조건 통로 쪽 좌석을 확보해야한다. 그래야 한쪽 팔걸이라도 편하게 확보 할 수 있고, 화장실도 가기편하다. 창가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비행기 날개 때문에 아래가 잘 보이지도 않고 높이 올라가면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예전에 베트남 갈 때 비행기에서 본 구름은 너무나 아름다웠기는 했다.) 중간에 비행기를 갈아탔던 코펜하겐 공항이 인상적이었다. 마루느낌의 바닥재와 좀 어둡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항전체의 조명이 격조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약 17시간 여행 끝에 탈린공항에 도착했다.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공항이다. 나오는데 입국 심사도 없다. 아마도 같은 이유EU 국가인 코펜하겐에서 검사한 것으로 대신 한 듯하다. 그동안 편지로만 이름을 들었던 엡(Epp)이 마중을 나왔다. 성격 좋은 표정과 매너로 행사 전체를 무리 없이 진행한 여성 스텝이다. 같은 비행기로 도착한 멕시코 작가들과 호텔에 도착하였다. 멕시코 작가들은 너무 피곤하여 저녁 생각 없다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 일행은 그래도 뭘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엡이 권하는 가게에서 도너스를 사서 호텔로 들어와 한 개씩 나눠 먹었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어서 일까? 기름기가 많고 맛이 별로다. 방은 두개가 배정되었는데 사람을 셋이다. 두 사람이 한 방을 쓰고 한 사람을 홀로 자야한다. 코를 고는 사람이 혼자 방을 쓰기로 하여 강 선생님을 독방을 쓰시게 하고 고 선생님과 내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고 선생님이 말했다. 전선생도 코를 골던데.... 2011년 1월 14일 금요일 어제 밤늦게 공항에서 호텔로 오면서 보았던 밤의 설경은 정말 이국적이었다. 도로 양쪽에 눈이 쌓여있어 마치 눈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눈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한국 보다 7시간 늦은 시차가 있다. 새벽 2시 반에 깨었다가 다시 잠들고 4시 반에 다시 잠이 깨어 뒤척이다 7시 30분에 일어나 tv를 켰다.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창문 밖을 보았다. 탈린의 옛 성곽과 건물이 마주 보인다. 탈린에서 경제적인 숙박을 원한다면 슈넬리 호텔을 권하고 싶다. 탈린역과 연결되어 있고 실내장식도 철도와 관련된 분위기로 꾸며져 있으니 말이다. 올드타운이 걸어서 5분 이내이고 불필요한 장식과 꾸밈이 없어 좀 심심한 분위기이지만 불편함 없이 머물 수 있는 곳이다. 더블베드가 있는 방이 하룻밤에 20유로이다. 아침식사는 4.15유로인데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아침을 먹고 곧장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탈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동화의 나라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아기자기하고 마치 옛이야기의 배경이 된 듯 한 오래된 느낌의 거리 풍경과 건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일월의 탈린은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로 인하여 쓸쓸하고 활기가 없다. 탈린에 머무는 동안 거의 해를 볼 수 없었다. 오전에 잠깐 햇살이 퍼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나중에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는 백야의 계절에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슈넬리 호텔 중세 복장의 사람 밤의 탈린 올드 타운 그냥 발 가는 데로 돌아다니는 방식은 세 사람이 비슷하여 여기가 뭐고 저기가 뭔지 따지지 않고 그냥 눈에 걸리는 느낌을 찾아 마음에 담아 두려하였다. 그러다가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루터란 교회인 성 마리 교회였다. 주변에 쌓인 눈과 어울려 흰 벽의 건물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길로 가다보면 나오는 러시아 정교의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한다는 돔형 지붕 다섯 개를 가지고 있는 이 성당도 그 내부와 외부가 아름다웠다. 로마네스크 혹은 고딕 양식의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성당을 보았지만 러시아 정교회의 실내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동방교회의 비잔틴 건축양식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루터란 교회 (성 마리 교회) 러시아 정교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 우선 대강 스케치 하듯이 올드타운을 돌아보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엡이 준 식당 쿠폰을 가지고 지정식당 Von Krahl 을 찾았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탈린 역 뒤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갔다. 올드타운을 가운데 두고 북쪽은 신시가지에 백화점등의 상가가 형성되어있고 서쪽 바닷가 쪽은 재래시장이 있는 서민들의 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구소련시대의 구제품들이었는데 겨울이라 가게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열었다고 하더라도 판매의욕이 없어 보였다. 강희준 선생님이 마음에 드는 반지를 사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게 불러서 도로 내려놓았다. 가게 안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밖에서 손으로 가리키는 물건의 가격을 알려 줄 뿐이었다. 나중에 시장에서 산 신발 깔창은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역시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시장을 돌아본 후 호텔로 와서 잠시 눈을 붙였다. 단잠 이었다. 어둑해진 창밖을 보며 일어나 아까 갔던 본 크랄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티유가 왔다. 티유는 야투 레지던스 작가로 한 달간 공주 자연미술의 집에 머물면서 작업하고 국제자연미술센터에서 전시도 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티유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나와는 일정이 엇갈려 한국에 있는 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초면이었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모든 것이 좋으니 좋다고 했다. 식사 후 우리는 다시 어두운 올드타운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무데나 이리로 가도 저리로 걸어가도 일상을 떠나 한가로우니 마음도 가볍다.
74 탈린에서의 제1회 세계 불조각(Fire Sculpture) 대회 참가 후기 1
전원길
5392 2011-02-26
강희준, 고승현, 전원길 행사 포스터 2011년 1월13일부터 25일까지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열리는 제1회 세계불조각대회(The First Fire Sculpture World Championship)에 야투 회원인 고승현, 강희준 선생님과 참가하였다. 2011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는 유럽연합 EU의 문화수도로 탈린시가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많은 문화행사들이 탈린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불조각세계대회에는 11개국 12개의 팀이 참가하였다. 고승현, 강희준 선생님은 2002년에 프랑스 퓌퀑이라는 도시에서 열렸던 불 조각 심포지엄에 참가한 경험이 있지만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행사이다. 처음 해보는 작업에서 오는 가벼운 흥분과 중세도시 탈린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다. 북유럽 특히 1900년 대초 스웨덴에서 시작된 불조각은 유럽에서는 익숙한 형식의 미술형식이며 이벤트이지만 한국이나 아시아 쪽에서는 보기 힘든 미술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다녀온 탈린에서는 1441년 처음으로 올드타운 시티홀 광장에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고 한다. 16세기에 기록된 문서에 의하면 묵은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그러니까 새해 전날 밤에 시민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트리를 태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러시아 식민지 시절에는 트리 관련 이벤트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탈린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단지 내 대형 쓰레기 통 옆에 집안에 몰래 설치했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트리가 많이 쌓이자 트랙터로 한데모아 태우면서 자연스럽게 옛 전통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이번 대회 현장에도 마을 사람들이 모아논 트리를 태우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는데 거대한 불길이 장관이었다. 불 조각은 기본적으로 조각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불이라는 요소가 가미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태워서 사라지는 과정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작가들은 불에 타면서 작품이 어떻게 보이고 변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작가들은 보는 사람들의 흥미를 더하기 위하여 키네틱(kinetic)한 장치를 하기도 한다. 13일간의 일정을 날짜 별로 정리하고 사진을 첨부하였다. 간단하게라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무심히 스쳤던 장소와 사건들을 의미 있게 반추하는 계기로 삼기위해서다. 다소 내용이 장황해진 부분도 있다. 혹시 에스토니아 탈린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과 참고가 될 만한 내용도 추가하였기 때문이다. 일정 메모, 작품제작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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