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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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no image '녹색 게릴라'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 6.15
소나무
2756 2017-07-05
녹색 게릴라 오늘날 지구촌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위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서는 그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긴장 관계를 미술로 풀어내는 2017미술농장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역예술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연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작업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제는 ‘녹색 게릴라’다. 자연계를 상징하는 ‘녹색’과 현대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상징하는 ‘게릴라’의 합성어이다.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적진 속 게릴라의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깨끗하게 다듬어진 과일과 채소의 씨를 받아 싹을 틔웠다. 작가는 상품화된 생명들을 ‘자라나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원길은 새로 개설된 콘크리트 도로를 축소하여 온실 안에 모형으로 설치하였다. 콘크리트 도로가 주변의 자연을 더욱 쾌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온실에 전시된 두 사람의 작품은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매일 새로워진다. 마틴 밀러(Martin Miller)는 닭이 선택한 단어를 조합하여 예언적 텍스트를 만들었다. 닭이 인간의 행운을 결정해 주는 존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 작업이다. 임승균은 안성천에 임신 테스터기를 담그는 엉뚱한 실험을 하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감시,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텍스트와 행위를 작업의 중요한 전달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작업은 예술적 상상력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 할 수 있음을 보게 한다. 권오열과 최예문은 잠깐 스치는 일상의 장면과 삶의 한 부분을 예술적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 권오열은 너른 목초 밭에 쌓아 올린 행사용 의자와 무자비하게 가지가 잘려나간 가로수를 찍은 사진작업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예문은 투명 용기에 잡초를 담아 높이 쌓아올렸다. 잡초 뽑기라는 무심한 행위가 풀들을 위한 기념비로 되살아났다. 자연과 일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녹색게릴라들은 살아있는 자연 안으로 그들의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몸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비밀스런 감각을 꺼내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지구는 다시 그 왕성한 생명력을 회복 할 것이다. ‘녹색 게릴라’들의 은밀하면서도 당돌한 움직임이 현대미술의 층위를 보다 두껍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상생의 미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96 no image '자연의 미술-야투野投'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5.3
소나무
2483 2017-07-05
자연의 미술-야투野投 1982년 여름 나는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 만났다. 지난 36년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국내외 자연미술운동을 이끌고 있는 야투 그룹의 멤버들이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을 실험해왔다. 자연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위한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인격적인 소통은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는 유일한 존재이고 자연은 때로 아무런 이해관계나 선악의 판단 없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과의 교감을 이야기 하지만 존재의 성격이 다른 두 세계가 소통한다는 것은 다분히 관념적 발상이다. 자연으로부터 예술 작업의 모티브를 얻거나 표현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인간중심의 접근방식이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접선 가능한 지점을 만들어나감으로서 미술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이러한 접점의 발생은 자연의 생명력이 작업의 중심이 되는 자연의 미술일 때 가능하다. 나는 자연 속에서 나의 생각을 실현하기 보다는 자연의 다양한 양상에 반응하는 작업을 선호한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불확실한 지식과 욕망을 내려놓고 원초적 몸 감각이 작동하여 자연과 조응해야만 자연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다가가서 만지고 연결하고 붙이는 등의 최소 행위로 이루어지는 야투는 자연을 재료 혹은 작품 설치 장소로 사용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살아서 작용하는 자연을 드러낸다. 야투작업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을 즐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세계 구축에 매진한다면 야투작가들은 자기를 비워내는 수행적 태도를 취함으로서 미술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 되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야투작가들의 행위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됨으로서 기존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미술가들은 왜 자연과의 만남을 시도하는가? 이는 자연으로 부터 독립되어있으나 자연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 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야투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이 자연과 만나기 위해 찾아낸 ‘소통코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야투가 현실 도피적 자연탐닉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자연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인식하면서 자기 숨결이 살아있는 작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항시 존재 하던 교감의 방식에 붙여진 이름이며, 기존 미술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자연과 대화하는 독특한 체험이다. 비록 나와 자연 사이에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지만 자연의 미술-야투는 마음속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나는 야투가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켜 창의적 상상력을 자극하길 바라며,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미술이 되기 바란다. 경기일보 문화카페 2017.5.3
95 no image '벽'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3.22
전원길
2341 2017-04-05
벽 대학시절 이야기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근사한 세상이 있을 것 같아 누군가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하면 귀가 솔깃하던 때였다. 동기생 하나가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그것은 ‘벽’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친구의 말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바로 그 미술 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대학에 출강하였다. 어느 날 저녁 그분과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술이 좀 오를 무렵 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벽’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대답 대신 나를 때리려 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말렸다. 얼마 전 나는 그 ‘벽’이란 말을 다시 떠올렸다. ‘마음의 벽’ ‘현실의 벽’ ‘마의 벽’처럼 벽이라는 글자 앞에 무슨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양해지지만 주로 단절과 한계 상황을 표현한다. 요즈음 내가 생각하는 ‘벽’은 예술가의 딜레마에 관한 것이다. 진지한 예술가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견고한 벽을 느끼고 그 벽 너머 새로운 세계를 보고자 한다. 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지 보면서 마침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리 가도 앞서는 이가 있고 저리 가도 결국 남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 그것이 바로 ‘벽’이다. 어쩌면 작가로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그 벽을 느꼈다면 이는 축하받을 일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라면 그것은 절망이다. 이 문제의 벽은 사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벽에 부딪치다’라는 표현은 벽 너머 세계를 감지한 자만의 한계인식이다. 예술가들의 딜레마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가 문 안에 있다는 데 있다. 벽 너머 새로운 세계를 직접 경험해야만 취할 수 있는 이 열쇠는 논리적으로는 획득 불가이다. 이 모순 상황의 극복은 외부로부터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우리는 ‘영감’이라 부른다. 영감의 빛을 따라 골몰하던 모든 고민의 벽을 무화 시킨 천재들의 이야기는 때로 통쾌하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경계 이탈은 묘수이자 악수이다. 생존영역을 벗어나는 수 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영감으로 충만한 시인들을 위험한 광인으로 여겨 도시에서 추방하려고 했다지 않은가? 하지만 예술가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작용하는 영감을 따라 이상한 세계로 뛰어든다. 최초의 영감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자라고 정직한 반응을 통해 힘을 얻는다. 난공불락의 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전위에 선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더욱 살아 움직일 것이며 어느 순간 그들은 영감의 빛을 맞이할 것이다. 반면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쯤에서 장마당을 펼치자’라는 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벽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작품이 제대로 된 예술인지 아니면 허세로운 예술 놀음에 불과한지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갈 곳 없는 한계의 벽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의 행동거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들 중에 지금까지 전혀 작동하지 않던 감각을 깨워 우리 사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예술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를 항해 중인 우주인과 같다. 지구에 아무리 급한 이변이 발생해도 그들의 항로는 수정될 수 없다. 귀환 명령을 내리지 말지니 이들과 우리는 미래의 땅에서 만날 것이다. 그 땅은 넓어 끝을 볼 수 없을 것이며 사람들은 더 이상 옛 땅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벽’을 이야기했던 선생님이 최근에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투루 작품을 하지 않는 예술가였고 교육자로서 예술의 본질을 논했던 그분의 벽이 뭇 예술가들이 마주했던 절망의 벽이었는지 아니면 미술 실행의 장에 존재하는 현실의 벽이었는지, 혹은 또 다른 의미였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이 책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오래된 벽을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셨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B2%BD"></iframe>
94 no image ‘왜?’ 라는 질문으로 경기일보 문화카페기고문 2017.2.8
전원길
2640 2017-02-08
오래전 런던에 있는 어느 미술대학에서 ‘Don’t ask me why 왜 라고 묻지 마’라고 쓴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제발 따지지 좀 말라는 뜻이다. 교수들로부터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리 썼을까 싶었다. 나 또한 유학시절 ‘왜?’로 시작되는 많은 질문들을 통해 나의 작업 전반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영국 미술대학에서 지도교수와의 개별 면담 수업(Tutorial)은 자기 경험에 근거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작품 같은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그 작업을 왜 하는지, 다른 기성 작가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야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수업은 방법론적 진화를 거듭해 온 서구 현대미술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그들은 한 시대를 지배하던 견고한 스타일이 관점을 달리하는 한 작가에 의해 순식간에 옛것이 되는 것을 보았다. 동시대 미술을 넘어 또 다른 미술의 출현을 기대하는 이들은 익숙하고 세련된 많은 작품들보다는 보는 이의 몸을 돌려세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한 점의 작품을 보고자 한다. 요즈음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쉽게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과연 이 작품이 작가의 고유한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남의 것을 베끼지 않았더라도 잡지나 인터넷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작품의 분위기나 아이디어가 알게 모르게 작가의 손끝으로 스며들 수 있다. 노련한 스승은 제자들의 작업에 끼어든 타인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는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집터를 확인해 주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땅에 집을 지으면 헛수고가 되니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새로운 작품세계를 찾아 나선 예술가들에 의해 확장된다. 예술가가 기존의 유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탐험과 같다. 이 여정은 ‘왜?’라는 수없이 많은 자문自問에 대한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는 자답自答으로 채워진다. 끝없는 사색과 실험 없이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진지한 예술가는 자신의 존재 위치를 예민하게 파악하면서 자기가 본 세상의 어떠함을 자신의 작품 안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 낯선 예술적 코드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질문자들에게 되돌려져 해독(解讀)을 기다린다. 집단 정서가 지배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왜?’라고 묻고 ‘왜냐하면’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생뚱맞은 일이 되었다. 학연, 지연, 돈과 권력 그리고 심지어는 외모가 질문과 답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정직한 예술가도 감상자도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판단을 ‘묻지 마’ 정서에 저당 잡힌 무리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열어 실재를 향하게 한다. 흥미롭고 강렬한 교감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작품과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이 만남을 통해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닌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소통을 경험한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세상에서 유일한 ‘나’를 회복하고 유형화된 삶에서 벗어나야만 나의 언어로 너를 만나 새로움을 논할 수 있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의 대부분은 우문이 되기 십상이며 그 대답도 현답보다는 오답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문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태도는 ‘왜?’라는 질문으로 ‘너’와 ‘나’의 정신이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전원길 서양화가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iframe>
93 no image 보물찾기 –미국 아이파크 재단(I-Park Foundatio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2- 2016.12.28
전원길
2535 2017-02-05
보물찾기 –미국 아이파크 재단(I-Park Foundatio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지난 가을 나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의 한 숲 속에서 삼 주를 지냈다. 오래된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자라는 넓은 숲 속은 다람쥐와 흰 꼬리 사슴들이 뛰고 새들이 한가로이 호수 위를 비행하는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지평선이 보이고 태양은 낮은 언덕을 넘을 때까지 긴 그림자를 남기는 그곳에서의 일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매월 6인 정도의 미술작가, 문학가, 음악가들을 선정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아이파크재단(I-Park Foundation)은 운영자 랄프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2001년 커네티컷주 이스트 해담에 설립한 레지던시 공간이다. 자연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소와 현상에 대한 생생한 반응을 담아내는 작업을 격려하는 이 단체의 프로그램 운영 방침은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연 700여명이 지원한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2016년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3주 연속으로 한 장소에서 지내며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였다. 특히 단풍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나뭇잎이라는 단일 주제를 다룸으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낙엽과 만나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숙소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업실을 오가는 길 위에서 작업을 했다. 트렉터의 바퀴로 다져진 길 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리조각, 녹슨 쇠붙이, 플라스틱 조각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살며 일을 했던 사람들의 흔적인 이것들은 낙엽과 더불어 중요한 작업 대상이 되었다. 매일 땅만 쳐다보며 작업하는 나를 보고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분이 ‘보물찾기’를 하냐고 물었다. 맞다! 나와 눈을 맞춘 하나의 낙엽(a leaf)이 시각적 개념적 관계 맺음의 방식을 통해 특별한 잎새(the leaf)가 되는 순간 그것은 보물이 된다. 하나의 낙엽과 나의 만남을 기념하는 일종의 증표는 그곳 그 시간에 즉흥적인 영감에 의해 간결하게 이루어지고 곧 사라지지만 사진으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기억된다. 나는 이곳에서 100여장의 사진 작업과 이를 바탕으로 작업한 같은 분량의 드로잉을 남겼다. 3주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렀다. 대상을 마주하고 작업을 개시하는 순간 점프 하듯이 날아가던 시간은 마지막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세팅을 끝내 고서야 제 속도를 찾는다. 그동안 좋았던 날씨와는 달리 막상 손님들을 맞이하는 날인 오픈 스튜디오 당일은 춥고, 바람 불고, 눈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참여 작가들의 걱정과는 달리 근처에 사는 작가들, 애호가 그리고 공간 후원자들이 많이 찾아 작가들과 진지한 만남을 가졌다. 나는 낙엽 한 장과의 만남을 통해 ‘빛을 느끼고’, ‘그 색과 모양을 보며’, ‘그것이 거기에 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하나의 나뭇잎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 있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사진작업을 편집한 5분간의 영상 자료가 상영되는 동안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가 불이 켜지는 순간 박수를 보내는 그들의 표정을 통해 내가 깊은 공감의 공간 속에 있음을 느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이파크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들, 전나무 숲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쓴 한국계 미국인 유지니아 김, 실리콘 캐스팅으로 입체 회화를 실험하는 쇼니, 동물 가면을 만들어 퍼포먼스 하는 제라, 무덤덤한 기계적 장치가 인상적인 비디오 작가 앤드류, 여행 가방에 집 구조를 만들어 호수에 띄운 로버트 그리고 나뭇잎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어 작업했던 앨리스의 작업을 떠올리면서 나의 작업을 돌아보았다. 잠시 일상을 떠나 몰입했던 이국의 풍광(자연)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의 정취에 취하기보다는 내 발에 차이고 밟히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낙엽에 주목하는 동안 작고 소소한 것들에 반응하는 몸 감각이 나의 상상력과 더불어 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먼저 나서려는 획일적인 지적 반응을 차단하고 변화무쌍한 가운데 일관된 순환의 묘를 살려내는 자연의 흐름에 동조하는 나의 보물찾기가 계속되기를 바래본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B3%B4%EB%AC%BC%EC%B0%BE%EA%B8%B0%0A%E2%80%93%EB%AF%B8%EA%B5%AD%20%EC%95%84%EC%9D%B4%ED%8C%8C%ED%81%AC%20%EC%9E%AC%EB%8B%A8(I-Park%20Foundation)%20%EB%A0%88%EC%A7%80%EB%8D%98%EC%8B%9C%20%ED%94%84%EB%A1%9C%EA%B7%B8%EB%9E%A8%EC%97%90%20%EC%B0%B8%EA%B0%80%ED%95%98%EA%B3%A0-"></iframe>
92 no image 나의 안성 작업실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1- 2016.10.6
전원길
2370 2016-12-04
나의 안성 작업실 지난 주말 나의 작업실에 손님들이 찾아주셨다.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경기지역 예술가 작업실 오픈 프로젝트 『옆집에 사는 예술가 : 안성편』 으로 진행된 첫 만남이었는데 이런저런 전시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에도 손님맞이에 대한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설레었다. 그들은 나의 작업실에서 무엇을 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나의 작업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을 다시 생각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작업실을 지어 이사를 한 것이 2001년 11월이니 이곳에서만도 벌써 15년째 작업하며 살고 있다. 십여 년간 일구어온 입시미술학원을 접고 늦은 유학을 다녀온 직후 작업실을 지을 생각으로 두달 여 부지를 찾다가 야트막한 언덕에 둘러쌓여 편안한 느낌이 드는 이곳 미양면 오양골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인적은 물론 길도 제대로 없는 땅을 나뭇가지 헤쳐 가며 찾아들어 여기가 좋겠다 하니 땅을 소개 한 부동산 사장님도 설마 했다가 정말 괜찮겠냐고 걱정을 해주던 곳이었다. 돌이켜 보면 도시를 떠나 외딴 골짜기에 집을 짓고 정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기는 다행히 설치되었으나 전화와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기까지의 몇 년간은 전신줄을 남의 과수원 땅에 몇 백 미터나 연결하여 사용했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만 좀 심해도 통신이 때때로 두절되어 어디가 끊어졌는지 그 전선줄을 모두 훑어야 했다. 포장이 안 된 진입로는 눈이 많이 오거나 봄이 되어 언 땅이 녹으면 4륜 구동차도 대책 없이 헛바퀴만 도는 그런 길이어서 인근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하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밤이 되면 사방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이니 지인들은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오히려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도둑이 겁을 내겠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마련된 나의 작업실은 지금까지 나의 작가로서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심은 묘목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사계절 따라 달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색의 조율과정 자체가 그림이 되는 나의 회화적 방법론을 일구었고, 마당에 서면 너른 호수같이 올려다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무한하게 깊은 푸른색을 얻었다. 제멋대로 자라지만 언제나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잡초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비워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열다섯 차례 열린 개인전 작업의 아이디어를 이곳 안성 작업실에서 얻었으니 그간의 어려움은 갚고도 남으리라.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단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기를 좋아하는 아내로 인해 나의 안성 작업실은 여러 사람들이 찾는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활기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쓸모없는 상상력이 허락되는 자유 공간이며, 작가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몽상이 마침내 새로운 존재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또한 그곳은 개별 작가의 예술적 열망을 실현해나가는 사적공간이면서도 인간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기위한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성에는 이렇듯 자신의 세계를 열어 나가기위해 묵묵히 작업하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 많다. 주로 마을의 끝자락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작업실들은 이제 십 수년 이상씩을 넘긴 작업 공간으로서의 관록이 느껴지고 말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마침 『옆집에 사는 예술가 : 안성편』에서는 10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열다섯 명의 안성 작가들이 돌아가며 작업실 문을 연다. 방문객들은 이들의 작업실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네 마음속 깊숙이 잠들어있는 감성을 일깨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게 해주는 계기를 찾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가을의 만남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감을 다른 분들도 많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82%98%EC%9D%98%20%EC%95%88%EC%84%B1%20%EC%9E%91%EC%97%85%EC%8B%A4"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iframe>
91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파일
전원길
5198 2015-10-14
2015 자연미술국제학술세미나 발제문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전 원 길 작가,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디렉터 I 들어가는 말 오는 2016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부터는 종래의 공개 공모 방식에 의한 작가 선정 방법을 변경하여 지명 공모 형식으로 작가를 선정하게 됩니다. 이는 추후 예술 감독에 의한 완전 지명초대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기획위원회에서는 사전에 여기 계시는 네 분의 큐레이터를 선임하여 지금 열리고 있는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의 본전시인 세계자연미술가 30인전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큐레이터 분들께 작가 선정을 의뢰하면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지 알려 드려야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야투의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품들 사이에 존재하는 방법론적 차이에 따른 용어 적 혼란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야투의 자연미술은 과연 어떤 특성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면밀하게 재검토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곧 야투의 자연미술운동 확산 과정에서 기획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성격과 역할을 재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발제와 토론이 야투의 자연미술의 특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자연미술운동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으며 이 시대 미술계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사용하는 ‘자연미술’이란 단어는 야투가 1980년대 사계절연구회 Four Season Workshop 를 통해 발전시킨 야투의 자연미술형식을 의미함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저는 1980년대 초 자연미술 방법론이 형성되는 시기에 야투 YATOO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야투 작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1982년 여름 금강 청벽에서 열린 사계절연구회에 손님으로 참석했다가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가 그친 다음, 제 다리에 모래로 손자국을 만든 작업으로 야투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 십여 년간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작업을 남겼지만 저는 당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습니다. 1990년 이후 잠시 야투 현장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저는 야투의 작가들과 함께했던 작업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시작되기 직전 다시 야투로 복귀한 저는 몇 차례의 비엔날레를 치르면서 자연미술이란 무엇이고 자연미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공공장소에서의 전시가 가능할까를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습니다. II 저는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자연미술 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자연미술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답하며 본 발제의 핵심적 부분이기도 한 자연미술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0년대 자연미술 작업을 하면서 자연미술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빠져 있으면서도 뭔가 치열하고, 심각하게 파고들어가는 동시대 미술과의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진지한 예술가로서의 예술적 실현이라고 하기에는 자연미술이 뭔가 미진한 여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는 자연미술이 나로부터 나와서 내가 완성하는 미술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나와서 자연에 의해 완성되고 자연에 의해 작품의 생명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즉 미술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미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은 ‘자연미술은 미술이 아니고, 자연미술이다’라는 것입니다. 자연미술은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행위만으로 작품을 이루어내는 인간의 미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연미술은 신종입니다. 우리는 자연미술의 발전 과정과 작품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투가 처음 자연미술이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1983년 겨울, 야투 창립 이후 일곱 번째 사계절연구회를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에 관하여 고승현 선생은 그의 석사 논문에서 “1983년 1월 제7회 야투의 정기 연구발표회에서 고승현, 고현희, 신남철, 이응우, 전원길 등의 회원들에 의하여 처음 ‘자연미술’이라는 용어 사용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그룹 내 연구 활동의 성격이 야외 현장성과 그 논리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끝없이 변화하고 숨 쉬는 순수 자연에 관해 보다 근본적인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연미술(Nature Art)’의 표기는 일부 회원의 반대로 미루어지고 있다가 1988년에 이르러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자연(Nature)과 미술(Art), 이 두 단어를 합성하여 사용한 세계 최초의 일로, 그 후 야투(野投)가 개최한 여러 번의 국제자연미술전과 활발한 해외 교류 활동을 통해 점차 일반화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자리에서 과연 자연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디까지를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도 토론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승현이 논문에서 이야기했듯이 야투 창립을 주도하며 그룹 내 연구 활동의 기틀을 잡았던 임동식 선생은 독일 유학 당시 한국의 고승현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자연미술’이라고 했을 경우, 작업의 대상이 자연으로 한정됨으로써 장소나 재료에 제한을 받게 됨을 염려하였습니다. 대신‘현장미술’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자연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당시 사용하던‘현장미술’을 그대로 사용하자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임동식 선생은 야투 창립 당시 미술의 한 형태로서‘현장미술’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함께 참가했던 젊은 작가들 역시 미술로서 현장미술을 받아들이고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야투는 창립 이후 곧 기존의 야외설치미술의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적 자연미술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견인하던 미술궤도에서 이탈하여 자연의 살아있는 생명력이 미술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루트를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자연미술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제 야투의 작가들이 35년여를 통해 남긴 많은 작업들 중에서‘자연과 미술(인간)의 관계 맺음을 통해 하나의 미술 상태로 존재하며, 자연으로 열려져 인간의 의식과 자연의 생명력이 자유롭게 만나고 작용하는’작업들을 찾아 그 특성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자연미술의 특성 1) 자연을 따르는 미술 자연미술가들은 사전에 작품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한 작업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용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투의 작가들은 자연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이끌어주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자연미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상상력이 작용하는 자연미술 자연미술은 자연을 미술을 위한 재료로만 다루거나 작품 설치를 위한 장소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미술의 주체로서 미술 안에서 작용합니다. 자연미술은 무엇인가를 잘 만들어 보여주기 보다는 자연과 자연 혹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맺음을 담백한 방식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따라서 자연미술의 미학적 가치는 자연의 생명력이 자연미술 안에서 온전하게 작용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3) 자연과 미술이 공존하는 자연미술 야투의 작가들은 단지 자연으로부터 어떤 아이디어를 얻어‘나의 미술’을 하기 보다는 자연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작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업 속에‘인간이 거기 함께 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자연미술은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자연미술은 자연과 미술이 서로 열려져 있는 상태로 공존하며 인간의 미술의지와 살아있는 자연이 밀고 담김의 규형을 이루는 지점에 잠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4) 자연과 미술로 확장되는 자연미술 자연미술은 자연과의 사이에 경계를 만들지 않으며 자연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자연미술은 그 자체로서 완결상태이면서도 성장, 진화, 변이가 발생할 수 있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자연미술은 자연으로의 무한 확장이 가능할 뿐 만 아니라 기존의 미술 안으로의 역 확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미술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순간 사진이라는 기존의 미술과 연계되고, 현장의 작업을 보존과 전시가 가능하도록 변환할 경우 이 역시 야외조각이나 설치미술 같은 기존 미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5)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연미술 자연으로 부터의 영감에 의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은 되새김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통해서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풍부한 의미요소들이 이후로도 마음속에서 계속 생성됩니다. 자연미술 작품이 자연을 받아들이면서‘미술을 포함한 자연 상태’가 되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의식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미술 작업은 전시, 판매, 소장이 불가능하지만 그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미술입니다. 직관적 행위를 통해 자연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려는 행위가 시적 함축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자연미술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2. 자연미술의 정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미술은 자연과의 맞대면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고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자연과의 만남을 미술적으로 실현하는 작업으로서 기존의 미술과는 기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투가 미술그룹으로서 34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현대예술가들의 태도와는 달리 자연의 어떠함을 드러내는데 더욱 마음을 쓰면서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자연이 주가 되는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자연미술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자연과 인간의 만남 자연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자연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전혀 예기치 않았던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이 분명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연이라면 인간과 자연과의 만남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미술을 한다는 것은 자연 자체의 흐름이 유지되는 가운데 인간의 또렷한 예술적 의지가 작용해야하는 것입니다. 2) 원초적인 몸 감각의 회복 야투작가들은 자연미술 작업을 위해 사전에 재료나 도구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빈 몸으로 자연으로 들어갑니다. 눈과 귀를 예민하게 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가운데 자연 또한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기를 기다립니다. 자연미술은 마치 움직이는 열차의 특정한 위치에 점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열차를 세우지 않고 원하는 위치에 점을 찍기 위해서는 열차와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살아있는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그에 반응하는 우리의 생각과 감각적 판단이 주의 깊게 작용해야만 자연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고 그 접속점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상호 교류하는 작업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자연미술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연과 소통 가능한 몸 감각을 일깨워 자연과 만나게 합니다. 3) 자연스러운 자유미술 오늘날 미술계를 대변하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은 미술의 권력화와 상업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으며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가장 소박한 조건하에서 발생하는 미술로서, 권력화 된 지식의 횡포와 자본주의 무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는 성공, 욕망 등으로 인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스러운 자유미술영역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김순임 The Seats ; The Space 24-Songchoo ,Korea 4)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야투가 출발할 1981년 당시는 현재 전 세계적 화두인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의 문제가 대두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야투는 자연의 질서와 그 생생한 생명력에 몸을 맡길 따름이었지 자연을 걱정하거나 그 유지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연미술 정신과 방법론적 특성은 위태로워진 지구 환경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의 균형 잡힌 관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5)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미술 자연미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자연의 현상現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쉽게 그 내용이 전달되어져 오는 특성으로 인하여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의욕을 느끼게 합니다. 제작되고 감상되는 일반 미술과는 달리 직접 자연과 만나는 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은 미술계를 넘어서 인간계를 향하여 확산되어야 합니다. 4. 야투의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자연과의 맞대면을 통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미술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아 움직였던 야투의 자연미술활동이 소규모 연구모임의 성격을 벗어나서 1990년대 대규모 국제전시를 기획하게 되면서 야투는 발전과 위기를 동시에 맞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자연미술은 비전시적 상태일 때 자연미술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반면 전시적 성격으로 가면 일반 미술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술했던 자연미술의 특성 대부분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1990년대 국제자연미술전 특히 2004년에 창립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국제적인 교류와 전시적 행사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측면만 주시할 것이 아니라 자연미술의 고유한 특성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재차 언급했듯이 저는 자연미술이 사진으로 기록되거나 실내외 설치 혹은 조각적 성격의 작업이 되는 순간 자연미술은 이미 기존의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미술 형식 안에서 자연미술은 새로운 방식으로 감상,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독립된 작품 그 자체로서 힘과 생명력을 획득해야 하는 미술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가에 따라서 자연미술은 동시대 미술에 새로운 활력과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단지 자연이라는 이름만을 가진 힘 빠진 미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III 이제 발제를 마치면서 제가 처음에 제기한 자연미술의 독자적인 특성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성격의 불일치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발제를 준비하는 초기에 저는 현재 네이처아트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 자연미술을 한글 발음 그대로 Jayeon Misool이라고 표기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우리의‘자연’과 서양의‘Nature’에는 동서양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야투의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업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국제화 시대에 Jayeon Misool이란 단어를 재차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또한 Jayeon과 Nature를 구분해 사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품이나 회원들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설치나 조각 혹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저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품들이 비록 자연 속에서 자연물을 이용하거나 자연의 질서와 현상을 작업에 반영한 것들이긴 하지만 원래 야투의 자연미술의 특성과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라고 하기 보다는 자연미술이라는 말을 빼고‘금강비엔날레’라고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문제를 야투회원들과 토의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회의에 참가한 모든 작가들은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야투의 자연미술이라는 고유한 영역의 특성을 명료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금강비엔날레로의 개칭에 동의하였습니다. 다만 자연과 함께 작업하는 비엔날레의 고유한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별칭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16년 비엔날레부터는 개칭된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제가 자연미술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여 드린 작품들과 저의 설명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통해 본 발제의 미진한 점이 보완되기를 바랍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이제 순수한 자연미술의 정신을 희석시키는 후퇴와 타협의 행사가 아닌 자연미술이 다시 미술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역 확산 전략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문화권에서 발전해온 자연과의 교감의 방식을 미술로 표현하는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내실 있는 비엔날레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알로이스 린덴바우어 2012 김용익'날 그냥 흐르게 내버려 둬' 2008
90 no image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코리아 2014」 기획후기 _ 움직이는 자연과 미술
전원길
3532 2014-11-09
기획후기 _ 움직이는 자연과 미술 전 원 길 | 디렉터,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코리아 2014」 들어가는 말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는 지난 33년간 자연현장을 움직이면서 작업해온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의 야심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야투」는 금강을 중심으로 국내 여러 지역을 탐사하면서 작업했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을 방문하면서 외국의 자연미술작가들과 작업을 해왔다. 「야투」가 기왕에 해오고 있던 ‘여행’과 ‘작업’이라는 현장작업프로젝트를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로 시행하고자 하는 것은 각 나라별로 발전되어온 자연미술운동을 보다 큰 흐름의 국제적인 미술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투」는 이 세계일주 자연미술 프로젝트를 위해 2011년부터 세계자연미술기획자들과 한국,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 수차례의 사전미팅을 가지면서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2012부터 준비하여 작년에 「야투」가 발간한 ‘세계 자연미술의 현장’은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의 성공적 실행을 위해 기획한 자연미술단체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34개의 세계자연미술 단체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들이 기획하고 있는 전시 행사에 대한 소개가 담겨있다. 아울러 여기에는 각 단체가 추천하는 대표 작가의 작품도 함께 실어 단순한 정보 자료집이 아닌, 이 시대 자연미술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카탈로그가 되었다. 2013년 10월에 공주에서 열린 「국제자연미술기획자대회」는 세계자연미술의 현장의 단체, 기획자들과 보다 긴밀한 협업을 통해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사전 행사였다. 단발적이고 지역적인 행사가 아닌 전 지구적 자연미술탐사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국내외 자연미술단체로부터의 공감과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연미술기획자들은 자연미술운동의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보다 구체화 할 필요성에 공감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노마딕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3개국 19명의 자연미술기획자들이 참석한 「2013 국제자연미술기획자대회」에서 수차례의 회의 끝에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실행위원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야투」 그룹은 기획자대회를 마친 후 2015년에 시작될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준비의 일환으로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코리아2014」를 기획하였다. 이는 모델 프로젝트로서 뿐만 아니라 국내외 작가들이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을 순례하며 작업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의 지리, 환경, 문화, 역사를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인의 자연관과 이에 따른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인간 본연의 자연성이 어떤 방식으로 인류의 삶을 이끌어 왔는지 함께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아울러 한국의 자연미술 발생 배경과 「야투」의 자연미술 형식이 어떻게 세계 여러나라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만날 수 있으며 과연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인류의 보편적인 표현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본 프로젝트의 주요 구성내용인 발대식, 자연미술 워크숍과 전시, 기록에 관한 사항을 되짚어봄으로써 향후 진행될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의 발전된 방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한다. 1. 발대식 대청댐 물문화관에서 진행된 발대식은 형식적인 절차를 생략한 간결하고도 참신한 발상의 행사였다. 프로젝트 진행부에서는 이 행사를 위해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소개할 수 있는 두 분을 초대하였는데 그 중 한 분은 세종특별시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시는 임진환 대금 연주가였다. 임진환 대금연주가는 자연재료인 대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종류의 대금을 소개하고 그 소리의 차이점과 다양한 리듬을 소개해주었다. 이 해설이 있는 연주 프로그램은 외국작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뿐 아니라 국내작가들에게도 우리나라의 악기를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소설가 김재영 선생께서는 축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들이 실행하고자하는 세계적인 프로젝트의 서막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셨다. 2. 자연미술워크숍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코리아」 기간 중 작가들은 마치 ‘산 넘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가지고 이동하였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의 근본 뿌리인 이 땅을 움직이면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연 속에 펼쳐내었으나 떠날 때는 마치 노마드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한국자연미술운동의 발생지인 금강에서 시작한 자연미술워크숍은 한반도 고대 인류의 무덤 ‘고인돌’이 있는 고창과 한국인의 자연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쇄원을 거쳐 제주도로 이동하였다. 제주도의 화산석과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유명한 제주도의 세찬 바람 속에 작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남겨두고 향한 곳은 창원의 작은 저수지였다. 그 다음은 경주 문화유산 답사, 그리고 한국의 전통적 삶이 그대로 남아있는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워크숍으로서는 마지막 코스였고 모든 작가와 스텝들이 다시 공주로 복귀하였다. 이렇듯 이번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에서는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자연현장과 문화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도시 그리고 이름 없는 강변의 늪지대와 작은 저수지 주변 등을 탐방함으로서 애초에 ‘한국의 자연과 전통적인 삶의 방식, 가옥, 문화유산 등을 통해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는지 그 실례들을 접함으로써 자연과의 공존의 방식을 잃어버리고 폭력적인 개발논리에 빠져있는 인류가 어떻게 자연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본 프로젝트의 취지를 살리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번 워크숍에서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을 대하고 작업하는 하나의 전형을 제공함으로서 자신의 삶과 그 삶의 원천인 자연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사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나 도시도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다는 측면에서 일상의 생활 역시 여행과 다르지 않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새롭게 보고, 이동을 하면서 지금 내가 있는 장소를 새롭게 본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중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미술은 이렇듯 ‘언제나 그렇게 존재하는 자연’을 새롭게 보는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연미술을 통한 작가의 새로운 시선은 사람들의 고정된 자연에 대한 관념을 해체시키고 확장한다. 나는 이번 기회에 자연과 인간의 본성적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이 단지 유희적이거나 가벼운 시도의 수준에 머무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자연의 가치만큼 자연미술이 저절로 예술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미술이 자연의 낯설고 생경한 모습을 파고들어 보여 주지 않는다면 자연과 맞대면한 한 인간의 생생한 존재성은 무디어지고 상투적인 관념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끊임없이 되뇌는 지루한 만남에 그치고야 말 것이다. 이 세상 유일한 존재자로서의 시각을 잃지 않아야만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을 터이다. 자연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쉽사리 그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자연미술을 통해서 만나는 자연은 ‘여기가 어디다’라는 지명과 거기에 딸린 역사적 문화적 스토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소통을 위한 ‘이름’들을 지워내고 그 맨살을 보는 것이다. 마치 뼈와 살 사이를 움직이는 명의의 칼처럼 예민한 감성으로 자연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미술가로서의 호기심은 자연과 내가 어떻게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관한 것이며, 나의 존재가 어떻게 자연 속에,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미술 안으로 들어와 함께 존재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 치중하게 되면 자연은 사라지고 미술만 남게 된다. 반대로 자연을 그대로 남겨두면 거기에 미술은 없다. 자연미술은 ‘자연’과 ‘미술’이 어떻게 독특한 방식으로 함께 존재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3. 실내전 본 프로젝트의 실내전은 현장에서 작업한 결과를 정리하는 결과보고전으로 진행되었다. 이 전시에는 여행기간 중 제작되었던 현장의 작업을 독립된 작품들로 발전 시킨 작업과 아카이브에 기반한 작업이 동시에 전시되었다. 관객들은 자연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한 작가들의 예술적 순발력을 그대로 기록한 사진, 비디오, 드로잉 등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획자로서는 아카이브 위주의 작업과 일반작업을 분리하여 보다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했다면 작가들의 작품들이 잘 살아 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다. 전시공간이 허락한다면 아카이브 전시와 작품전을 분리해서 진행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실내공간과 자연공간을 상대적 가치로 보고 싶지 않다. 물론 실내작품과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의 가치도 동일하게 생각한다. 자연을 자연 이상으로 절대화한다면 자연을 자연으로 보는 것을 방해받게 된다. 언제나 자연미술은 밖에서 안으로 그리고 다시 안에서 밖으로 움직이며 인간의 감성을 고양시키는 가운데 자연과 인간 그리고 미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야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는 실내전을 통해 이와 같이 밖에서의 작업을 반추하고 발전시켜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포함하고 있으며, 실내전시를 통해 현장의 작업을 볼 수 없는 일반 관람객과의 소통의 가능성을 갖게 되느니 만큼 차후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4. 기록 늘 예기치 않은 상황을 수반하며, 현장을 떠나면 볼 수 없는 작업들이 주를 이루는 본 프로젝트의 속성상 사진과 영상을 통한 현장의 기록은 이 프로젝트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예산관계상 영상팀이 합류하지는 못했으나 스텝들의 발 빠른 수고로 현장의 생생함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본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장점 즉 진행상의 다양한 이야기꺼리는 물론이고 의외의 예술적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을 더욱 잘 살려내기 위해서는 경험 있는 전문팀이 글, 영상, 사진 등의 기록을 맡아야 할 것이다. 작가들 역시 기록의 수준을 넘어 감흥을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사진이나 영상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촬영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단, 촬영을 위한 장비와 기술을 지나치게 신경쓰다보면 자연미술이 가지고 있는 현장성과 개념적 발랄함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아울러 제작중인 카탈로그의 편집은 프로젝트를 마감하는 최종의 결과물인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많은 사람에게 두루 프로젝트의 내용이 전해지는 만큼 짜임새 있으면서도 작업의 의도를 잘 살려내는 편집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오는 말 전시 주제인 ‘움직이는 자연과 미술’은 자연 속에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떠날 때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노마드(Nomad)의 삶처럼 인간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인 이 땅을 움직이면서 인간 내부의 본성적 예술성이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어떻게 흘러나오는지를 보고자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 자연은 스스로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언제나 상호 작용하는 생태적 연결 관계를 유지한다. 자연과 동행하는 예술가들 역시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서로의 잠재적 예술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자연미술을 지향하는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이다. 즉 기획자가 주도하기보다는 참여작가들이 적극적 작용자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정교한 테크닉이 요구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장기 공동 프로젝트로 지속될 본 프로젝트는 「야투」의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세계각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연미술단체들의 협업 프로젝트로서 진행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상호신뢰와 책임감 있는 협업이 요구된다. 나라를 넘어서 자연이라는 공통의 장에 존재한다는 동질의 인간성에 관심을 갖는다면 국가별 주도권 다툼으로 얼룩진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다른 상호협력관계의 전형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전 지역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의 중남부 지역의 의미 있는 장소를 연속해서 탐사하는 최초의 자연미술프로젝트를 실현하였다는 것으로도 이 프로젝트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글로벌노마딕아트 프로젝트」에는 중국에서 온 장 카이친과 프랑스의 델핀 소하, 그리고 이제 막 미술의 세계에 입문한 고요한군이 처음 자연과 만나는 기회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첫 만남은 강렬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자연과의 첫 만남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혹시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소감을 듣게 되길 바란다. Director’s Review: Moving Nature and Art Jeon Won-gil, Director of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Korea 2014 Starting the review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is an ambitious project intending to extend the scope of YATOO’s nature art movement, which has carried out their outdoor practices over the last 33 years. Based in the Geumgang area, its members travelled to multiple areas in Korea as well as other countries to work with foreign artists. The reason we carry out our ‘travelling’ and ‘work’ in this new form is that we want to develop this art movement into an international movement, integrating with the many nature art practices of other countries. For this global traveling project, YATOO has hosted several meetings with international nature art curators in various places including Korea, Germany, Italy and Switzerland since 2011. ‘The World Nature Art Catalogue’, a publication that came out last year after a year of preparation, is the outcome of our 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the Project. The book introduces 34 Nature art organizations in the world and details their exhibitions. It is not just an archive but also a catalogue through which readers can get a sense of on-going international nature art practices, since it includes a great number of nature artists recommended from each organization. In Oct. 2013, we hosted <<International Nature Art Curators Conference>> in order to collaborate with and get help from multiple nature art groups and curators for the project. Their advice and agreement is crucial to holding this global project steady and relevant, rather than being either temporary or local. During the Conference, we were urged to establish more concrete international networks among nature artists and groups that would be the basis for the inauguration of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Nineteen nature art curators from thirteen countries attended the Conference and formed the Board of Directors following several discussions. After the Conference, YATOO initiated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Korea in 2014’ as part of its detailed preparations for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which will start in 2015. A prototype project, it provided a great opportunity for national and international attendants to explore the geography, environment, culture and history of Korea while travelling across the country. It was a time to learn a Korean perspective on nature and how Korean people developed their lifestyle accordingly, and furthermore, how the nature of humanity has shaped their lives within nature. It was also a time to examine how to relate the background and practices of the Korean nature art movement with the international nature art world and to develop it into a universal language for humanity. Reviewing the major components of the Project, that is, the opening ceremony, workshops and exhibition and related documentations, this text will examine how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has proceeded. 1. Opening Ceremony The opening ceremony of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Korea 2014 was held in the Mool Culture Centre of Daecheong Dam in a simple and innovative style without any conventional procedures. Its organizers invited Yim Jinhwan and Kim Jaeyoung to talk about the culture and spirit of Korea. Yim Jinwhan, a bamboo flute player and a supervisor of schools in Saejong City, introduced various types of bamboo flutes and how they made different sounds and rhythms. This musical session impressed foreign artists greatly and helped Korean artists understand Korean musical instruments as well. Author Kim Jaeyoung made an insightful speech encouraging the attendants’ endeavours and celebrating the beginning of this global project. 2. Nature Art Workshop Throughout the period of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Korea 2014, its attending artists moved with the curiosity of a child. Travelling across our land, the origin of our history and culture, they visualized their artistic imaginations within nature but left nothing behind, leaving just as nomads do. Starting in Geumgang, where the Korean Nature art movement began, the workshop team travelled to Gochang, famous for the ancient dolmens found there, and Soswaewon, which well reflects the Korean perspective on nature, and then on to Jeju Island; leaving their artistic remarks in the famously wild wind, volcanic stones and blue sea of Jeju, the team headed to a small lake in Changwon; then, they visited Gyeongju to explore our cultural heritage, and Andong to experience the traditional Korean life preserved in Hahoe Town and Byeongsan Confucian Academy. Finally, all the artists and staff returned to Gongju. The itinerary highlighted ancient natural spaces and cities where one can experience the early forms of our culture, and nameless riverside swamps and small lakes, all in order to help the artists get a picture of how our forefathers tried to get along with nature through their lifestyles, housing and cultural performances, and consider how we might re-establish such a peaceful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humanity—which has since degenerated into a nearly violent exploitation of nature. Furthermore, this workshop was intended to inspire people to think about human life and nature, the basis of human life, by exemplifying a new and unconventional way of seeing and working within nature. As a matter of fact, we are all travelling day by day insofar as our houses and cities are no longer the houses and cities of yesterday. Seeing today through yesterday, and where we live through travelling, is an important experience for artists since it provides a different way of seeing. Likewise, nature art starts from seeing “nature, which is always there,” differently. And, the new perspectives on nature reflected in nature art practice can widen the spectrum and tackle any nature stereotypes as well. I’d like to emphasize in this review that nature art is more than playful and superficial attempts, since it is a fundamental encounter between nature and humanity. Nature art cannot automatically have artistic valuable as nature has it’s own values. If we fail to show our explorations into the undiscovered characteristics of nature, our practice will remain only boring accounts about nature that repeat already discussed matters relying on conventional ideas, and our being alive within nature will become insignificant. Only with an insightful look at nature can we find something important but unknown within it. Nature is an open world, which, however, doesn’t show its interior depths easily. The nature that we meet through nature art practice cannot be defined with names and stories; it is where we erase those names and instead see through to its centre. With a knife-like sharp sensitivity, we should look at nature. Nature artists’ curiosity is all about how to build up a meaningful relationship with nature and how ‘I’ exist within nature and how nature can be brought into art. If you emphasize the production of something, nature disappears and only an artwork remains. On the contrary, if nature remains as it is, there is no art. Nature art is therefore an answer for how to unite art and nature. 3. Exhibition The exhibition of this project was a report about how the attending artists interacted with nature and artistically expressed their experiences within nature. For this exhibition, each artist developed his/her outdoor practice in visible forms or made a visual archive. Visitors could feel the artists’ intentions through displayed photographs, videos and drawings that documented the moments of their artistic and improvisational practices within nature. However, as a director, I feel somehow that we should have made a separate display of general works and archival materials so that the artists’ creations would be more focused upon. If space allows next time, I will consider making a separate display. Personally, I don’t like giving different priorities to indoor and natural spaces. Of course, I think that the values of works for indoor spaces and natural spaces are the same. Idealising nature to be more than it is disturbs when we see nature as it is. I believe that nature art moves inside out, and should inspire our senses to reconsider nature, human beings and art.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will include an indoor exhibition to show the process of outside artistic practices and their developed forms, in order to communicate with visitors, who cannot see the outside activities. 4. Documentary Due to the unexpected events that always accompany a project such as this, and with the mostly temporary quality of nature art works, this project required documentary recordings of its processes in photographs and videos as fundamental elements of the project. Unfortunately, our budget was slim and disallowed a professional documentary crew from joining our team this time. However, thanks to our staff’s wonderful contributions, we were able to have our working process photographed as well as filmed. Nevertheless, working with a professional documentary team will be essential to film not only many episodes during the project but also the series of artistic occurrences that can deliver the atmosphere of each moment, while making narratives and photographs of them as well. Artists need to think of the importance of photography and film as photography and video are the most efficient mediums, beyond their documentary functions, to preserve the sensations of captured moments as they are. But, too much emphasis on the techniques and equipment for recording will miss the naturalness and diversity of nature art. Meanwhile, we should consider how to systematically edit the contents of the catalogue, which is the final outcome of our project, in order to well convey to people the artistic intentions and practices of the project regardless of the course of time. Closing the review The theme of the project, ‘Moving Nature and Art’ reflects our hope to see in what way the artistic spirit inherent in human beings comes out of a physical experience with nature, while moving across the land, the origin of human history and culture, following a nomadic life that gets what it needs from nature and leaves nothing behind. Nature does not draw a boundary. It always keeps its ecological connections open. Within nature, therefore, artists should always inspire each other to see their artistic potential come out. So too should The Global Nomadic Art Project in its pursuit of nature art: it is therefore a project that requires the artists’ willingness to participate beyond the organizers’ intent. This global project that relies on the collaboration and participation between national and international nature artists is no longer the project of YATOO only. If we are more concerned with nature, that universal space for humanity beyond national borders, we can show the inter-cooperative relationships of the world as different from the world generally exhausted by on-going power struggles among countries. Although not covering the entire Korean territory, we completed the first nature art project by exploring important areas in central and southern South Korea. And it was the first time Chinese artist, Zang Kai Qin, French artist, Delphine Saurat and Korean artist, Go Yohan, who just entered into the professional art world, made their Nature art work. Just like anyone else, the first meeting is powerful and strange. I wonder how they felt about their first artistic encounter with nature. Hopefully, we will see their reviews in our publication.
89 Between Something and Nothing - about Chao-Tsai’s works 파일
전원길
3665 2014-08-20
Between Something and Nothing Wongil Jeon / Resident Artist in THAV Most of Chao-Tsai’s works are interactive and playful pieces, but look very formal and well finished. At first glance they seem more like antique furniture from a noble family. However, his work has a simple mechanical system, to make it work properly, he might have failed several times, redesigning and reconstructing. I am not sure he was thinking about the aesthetic aspect during the production of his work. In my personal view, he is showing just meaningless movement by operating people who know the system. After a beautiful lunch prepared by the artist Chiu Chao-Tsai’s family recipe I thought he is talking about life consisting of simple and meaningless motions. Although our movement; walking, opening door, riding bicycle, sitting on a seat is has no meaning in itself, but without these kind of actions we cannot maintain our life. One more thing I thought is that what is art? If something has an actual function for our life’s needs, then it is not art? It could be a piece of furniture or a real machine. His sculpture is somehow toy-like, but not as exciting as when people play with it like in an amusement park. If his work was really enjoyable it would be treated as play equipment. I think his work is staying between something and nothing or in the middle of something and something. I like the absence of expression as we are living in an ornate and boastful world. I am happy since I grasped two rabbits at once, beautiful food and unforgettable sculpture.
88 no image 전원길 개인전 - 하늘, 안으로 들어오다 / Jeon, Wongil Solo Exhibition - Sky, Enters Indoor
전원길
2778 2014-08-19
전원길 개인전 1. 전시명 : 화성시문화재단 가정의 달 특별기획전 ‘하늘, 안으로 들어오다’ 전원길 2. 기간 : 2014.5.9(금) ~ 6.1(일) 3. 장소 : 동탄아트스페이스 4. 작가노트 : ‘하늘, 안으로 들어오다’_ 흰 선의 꿈 나는 삶의 터전인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회화, 설치, 사진, 드로잉으로 교감하는 가운데 나의 존재의 방식을 생각한다. 회화 작업은 사물로부터 색을 추출하고 다시 그 대상과 색채와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통로를 찾는 과정이다. 「영원한 풍경」 시리이즈는 1999년 이후 지속해온 작업 즉 대상의 색을 캔버스에 옮겨오는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대상으로 부터 색을 옮기는 과정은 아름다운 색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계량적 판단에 따른 조색의 과정이다. 하지만 색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화면으로 들어온다. ‘영원한 풍경’ 시리이즈 작업에서 나는 하늘을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엇인가 펼쳐놓을 장으로 생각한다. 푸른색 표면은 구름 혹은 색 띠의 형태와 더불어 삼라만상이 드로잉으로 표현되어 마침내 하나의 풍경화가 된다. 그라데이션의 색 띠는 화면을 오르내리면서 기본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배경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다시 배경의 푸른색으로 변한다. 이 점층적인 색 변화의 과정은 시각적 움직임을 이끌어간다. 아울러 이 색 띠는 흑黑・백白 선線과의 대비를 통해 진퇴進退의 효과를 만든다. 작업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드로잉은 화면의 색이 갖는 밀도와 깊이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마치 공간을 움직이듯이 흔적을 남긴다. 망쳐도 좋다는 심정 없이는 수십 번의 색 조절과정과 수차례의 표면을 다듬는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화면 위에 선을 긋기가 쉽지 않다. 화면에 집중하고 화면 자체가 선의 위치와 모양을 잡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평상시 드로잉 작업에서 나는 대상을 묘사하거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 그것을 시각화하지 않는다. 우선 연필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게 한다. 끄적거림으로부터 시작하여 만들어진 선들이 이끄는 대로 작업하다 보면 저절로 어떤 형상이나 장면이 만들어진다. 캔버스에 선을 그을 때에도 그와 같은 기분을 유지한다. 1998년 나는 책상 위 사과의 색과 형태가 변화해가는 과정을 몇 개월간 지켜보면서 수천 장의 드로잉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나는 몸의 감각을 민감하게 받아내면서도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연필선의 느낌을 회화 속에서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여러 종류의 재료와 붓을 사용하여 캔버스 위에 가늘고 긴 선을 표현하려고 하였으나 종이 위의 연필과 같은 간결하면서도 예민한 느낌은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페인트 마커는 스미거나 번지지 않는 일정한 굵기의 깔끔한 선을 뽑아낸다. 선의 약간의 두께감도 장점이다. 「흰 선의 꿈」에 그려진 형상들은 과거 나의 경험들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사전에 스케치북 위에서 몇 차례의 수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화면의 주요 요소로 등장한다. 최초의 형태는 하나의 선을 끊지 않고 완성시키는 한 선 드로 잉(One line drawing)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끊기지 않고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드로잉은 피상적인 형태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마치 전혀 새로운 재료로 그림 그리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형상들은 다시 보조적인 선들에 의해서 하나로 연결된다. 드로잉은 즉흥적인 몸 감각에 의존할 때가 많다. 묘사적이기보다는 관절의 움직임이 반영된 자연스런 선과 형태를 선호한다. 화면 위에 적절한 선을 긋기 위해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화면 앞에 서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드로잉을 시작할 때 펜과 화면과의 물리적 마찰의 느낌은 더욱 또렷해지는 반면 미적 감각은 거의 작동 불능상태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드로잉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빠져든다. 오히려 이런 과정이 제한적인 나의 상상력을 넘어서게 한다. 「흰 선의 꿈」 속의 푸른 색 배경 위에는 흰 선과 검은 선이 교차하며 선과 선 사이에 시각적으로 일정한 거리감이 생기고 화면은 이중 구조를 형성한다. 흰 선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선의 움직임을 따라서 우리의 시선도 이동한다. 검은 선에 시선을 맞추면 그 때서야 검은 선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이 세상 너머의 풍경을 보고자 한다. 아마도 나의 상상 속의 풍경은 세상 사람의 꿈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세상일 것이다. 나는 10m 에 이르는 긴 화면에 나의 얼굴 윤곽선을 따라 움직이는 긴 색 띠를 둘렀다. 나는 하늘을 향해 누워 세상 사람들의 꿈을 그리는 꿈을 꾼다. 2014. 4. 전원길
87 no image 자연생태의 위기와 한국의 자연미술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을 중심으로-
소나무
4043 2014-03-07
자연생태의 위기와 한국의 자연미술 -야투의 자연미술운동을 중심으로-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디렉터 전원길 1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후세에게도 여전히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단지 환경보호론자의 관심을 넘어 이미 시대적 화두가 되었다. 예술가 역시 이 문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60-70년대에 미국에서 대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이 실내중심의 미술을 야외공간으로 확장했고 과정이 미술이 되는 새로운 미술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럽에서도 리차드 롱, 골드 워시, 볼프강 라이프, 닐스 우도 등의 작가들이 서정성이 곁들여진 부드러운 대지미술을 지향하여 한층 자연친화적인 태도를 시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요셉 보이스의 행동주의적 태도 그리고 아그네스 데니스와 같은 생태 중심적 접근은 환경문제에 직접개입하려는 예술가들의 선구적인 역할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의 예술가들의 작업은 결국 자연을 재료로서 다루든 하나의 유기적인 생태로서 인간의 삶에 직접 작용하는 자연으로 대하고 접근하든 간에 자연으로 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자신의 존재성을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의 관계설정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작품 속에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2 한국에서 자연현장을 무대로 미술활동이 시작된 것은 1981년 창립된 바깥미술회와 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이후 야투)에 의해서일 것이다. 나는 야투적인 자연미술이 형성되던 1980년대 초중반에 그 현장에 있었던 작가로서 위에서 서술한 미국과 유럽의 대지미술과는 어떻게 다른 태도로 자연을 대했으며, 야투의 자연미술이 이 시대의 생태위기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안을 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야투의 자연미술은 미국의 대지미술이 갖는 개념주의적 양상과 유럽의 대지미술이 보여주는 자연친화적 태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나 그 어느 쪽과도 완전히 겹치지 않는 독특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1981년 야투 창립당시 야외현장미술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1980년대 야투의 활동은 당시 한국에서 실험미술을 추구했던 70년대 선배그룹들과는 달리 서구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이해하기위한 이론적 학습 대신에 자연과의 순수한 맞대면을 우선시 했다. 이들의 미술행위는 방법론적 신념을 추구하는 지적인 판단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몸의 본성적 요구를 따랐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야투그룹의 작가들은 사전에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자연과 만난다. 담담하게 자연과 만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준비를 할 뿐이다.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손과 몸을 이용한 간단한 움직임이나 현장의 자연물 혹은 빛과 그림자, 바람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자연의 현상을 작업에 반영한다. 작업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자연이 말을 걸어 올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야투의 자연미술 작업은 아주 짧은 시간 자연 속에 존재하며 심지어는 작가가 그 장소를 떠나는 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야투의 자연미술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연 속에 밀어 넣기보다는 자연으로 부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따라 작업하며 자연 속에 우뚝 세우기보다는 작은 규모의 가벼운 작업을 선호한다. 작품으로 내세우기 보다는 자연 속에 스며들면서도 시적인 메타포(metaphor)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볼 때 환호한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적 만남에 근거한 작업을 수행하며 자연과 인간의 예술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미술상태’를 지향하는 야투의 작업 태도는 자연에 대한 도전적 관계를 시도하는 미국의 대지미술이나 비록 짧은 시간 존재하더라도 확실한 시각적 결과물을 지향하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3. 야투가 출발할 1981년 당시는 현재 전 세계적 화두인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의 문제(Sustainability)가 대두되기 전이었다. 당시 야투는 자연의 질서와 그 생생한 생명력에 몸을 맞길 따름이었지 자연을 걱정하거나 그 지속성을 염려하지 않았다. 야투는 지금도 행동주의적 명분 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예술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 속에 존재하는 창의적인 작품을 소중하게 여긴다. 현재의 환경파괴로 인한 각종 문제가 한 천재과학자의 놀라운 발명으로 일시에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연을 파괴함으로서 얻어지는 지금의 쾌적한 삶의 방식과는 또 다른 삶의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될 때 문제의 해결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야투의 작가들처럼 자연으로 부터 무엇인가 듣고 반응하기 시작하고 이로서 자연을 이용하여 부를 취하는 가치보다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지는 소소한 깨달음을 더욱 귀히 여기는 변화가 일어날 때 의미 있는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야투는 직접 생태적 위기에 대하여 웅변하지는 않으나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어떤 미술적 결과를 내보이는 가를 보여줌으로서 이 시대에 필요한 자연과 인간의 대안적 관계를 예시하고 있다. 야투는 1991년 이후 부터 이러한 자연미술의 정신을 확산하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개인의 작품 활동을 넘어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미학을 주창하는 미술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실현해나가고자 하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야투가 진행하고 있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와 야투레지던스프로그램 그리고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등은 이러한 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미술운동을 위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도는 어린이로부터 어른까지 참가할 수 있는 자연미술워크숍을 기획하여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고 자연과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의 삶을 회복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4. 야투는 출발당시 자연환경의 문제에 대해 경고하거나 그 해결방안을 예술 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실천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투의 자연미술의 정신과 방법론적 특성이 위태로워진 지구 환경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균형 잡힌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고 있다. 자연미술은 야투 회원들이 처음 자연 속에서 무엇인가 시작 할 때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훈련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미술은 우리의 영혼과 언제든지 공조하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미술이 섣부른 이론으로 무장하고 미술관에 모셔지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속에서 살아서 작용하는 미술로 자리 잡게 되길 바란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지나치게 상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그 자유로운 영혼을 저당 잡힌 작가들에게 인간의 예술적 의지를 가장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자연속의 해방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길 바라는 바이다. Public art 2014 3월호 게재
86 프로젝트 대전 2012 현장미술 ‘물은 나무를 통해 흐른다’ 전에 붙여 파일
전원길
6594 2012-12-04
프로젝트 대전 2012 현장미술 ‘물은 나무를 통해 흐른다’ 전에 붙여 전 원 길(작가, 야투 인터내셔널프로젝트 디렉터) 1 아직 새로운 흐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나 최근 자연 생태에 관심을 갖는 작가들과 자연을 전시 주제로 내세운 기획전이 부쩍 많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이면에는 자연재해의 증가에 따른 위기감과 이에 따른 각성이 원인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연과 관련한 전시회가 빈번해 진 것은 단지 자연재해의 심각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에 대하여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삶의 장으로서의 살아있는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기본 조건 속에서 인류는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이제 미술작가들은 자연을 단지 바라보고 표현 하는 것을 넘어 자연 안으로 들어가 자연 안에 작품을 설치하거나 자연자체가 직접 작품 안에서 한께 작용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현대 미술가들이 전통적 표현의 한계를 벗어나 마치 인간의 삶이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과 같이 미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말하자면 인간 본연의 삶의 방식을 예술적 방식으로 실현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번 현장미술전이 자연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인간의 예술의지를 찾아 볼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자연과의 작용점이 분명한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업도 보인다. 어떻든지 간에 자연 속에 작품이 놓이는 순간 자연과의 관계는 시작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작품은 이번 전시에 참가한 아니쉔 메이어의 작품처럼 미시기후 微視氣候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점차로 자연과의 관계가 긴밀해질 것이다. 작가들은 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 자신의 몸을 적응시키듯이 자신의 작품이 찾아들어갈 위치를 탐색하고 그 접점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하고 설치하였다. 이제부터는 작품 자체가 자연과의 조화와 그 적응과 융합의 방식을 찾아나간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른 자연 속에서 작품들도 그 순환의 여정을 시작한다. 2 올해 처음 시도되는 프로젝트대전2012에서 현장미술 ‘물은 나무를 통해서 흐른다 Water Flows Through Trees’전은 대전시립미술관의 ‘프로젝트대전2012’의 전시 컨셉을 한국자연미술가협회-野投의 국제적인 작가네트워크와 현장미술프로젝트 운영 경험을 통해 실현하는 협업프로젝트로서 진행되었다. 한국을 포함하여 7개국에서 참가한 14명의 작가들은 순환하는 자연과 에너지의 문제를 설치미술이라는 표현형식을 통해서 보여준다. 자연공간 속에서 자연물 혹은 오브제가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메시지와 어떻게 관계하고 결합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미적 감동이라는 에너지로 결실을 맺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물은 나무를 통해서 흐른다.’전이 열린 한밭수목원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기는 하지만 일반 공원과는 다른 다양한 생태적 공간을 가지고 있다. 작가들은 이 수목원을 방문하여 자신만의 시각으로 자연공간을 대하고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내었다. 나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자연 속에 어떤 방식으로 위치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연과 관계하면서 자신이 전하고자하는 내용을 표현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자연이라는 완벽한 풍경 속에 작품을 설치한다는 것은 화이트 큐브 안에 작품을 놓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가 요구된다. 시각적 자연스러움 뿐만 아니라 개념적 연결 관계도 생각해야할 중요한 요소이고 지형과 바람의 방향 그리고 태양의 움직임과 같은 환경적 요인들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나는 설치된 작품들을 편의상 작업의 방법과 내용에 따라 ‘설치하기’ ‘작동시키기’ ‘실험하기’ ‘만나기’ 등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비록 14명의 작품에 대한 분석이기는 하지만 자연공간에 설치되는 작품들 대부분의 유형을 포함하리라 생각한다. 우선 ‘설치하기’ 라는 기본적인 작업방법을 통해서 자연공간속에 조형물을 제시하는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특별한 장치 없이도 작품 자체의 열려진 구조와 내용을 통해 자연을 받아들이고 함께 호흡한다. 연못에 설치한 허강의 작품은 잠자리 날개에서 얻은 이미지를 두꺼운 철판에 옮겨 자르는 작업을 하였다. 날개의 모양은 선으로 표현되어있고 투각으로 뚫려있어 배경이 되는 양쪽의 풍경을 날개 속에 담는다. 강희준은 죽은 나무의 몸통을 파내어 망태버섯모양의 구조를 만들어 땅위에 누여놓았다. 처음에는 야외공연장 안쪽에 설치했으나 함께 참가한 작가 다수의 의견에 힘입어 바깥쪽 너른 잔디를 사용하게 되었다. 쓰러진 나무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미레일 플피어스는 규모가 큰 자신의 작품을 펼쳐 보일만 한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대안으로 제시된 맞은편 잔디밭은 배경 인공적 구조물이 작품을 압도하는 관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나무를 조금씩 틀어 쌓아 올려 부채꼴 모양으로 설치하였다. 형태적 그라데이션Gradation 구조를 가진 미레일의 작품은 자연 속으로 점차 흡수되었다가 다시 드러나는 듯한 착시효과를 준다. 최평곤과 올가 짐스카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편적 인간 혹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두 사람 모두 대나무를 이용해 인간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과는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 잡은 최평곤의 작품 위치는 위에서 아래를 조망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정해졌다.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존재를 대나무로 엮어 단순화된 인간의 형상으로 보여준다. 올가 짐스카는 가는 대나무를 자신의 몸을 캐스팅한 틀에 맞추어 차곡 차곡 쌓아 올리는 일련의 작업과정을 통해서 자연이라는 보편의 에너지와 자신의 몸을 교합시키는 작품을 만든다. 그녀는 상대적으로 사이즈가 큰 미레일 풀피어스의 작품을 옆에 두어야 하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을 터이나 작품 뒤쪽의 소나무 숲의 외곽 형태와 자신의 작품 모양이 나란하게 연결되는 현재의 장소를 택했다. 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든다’라는 조형적 행위를 기본으로 자연 속에 작품을 설치하고 있으나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시키기’를 시도하는 작가로는 시게티 종고르, 사우리어스 바리어스 그리고 최영옥과 성동훈이다. 바람(시게티 종고르), 태양열(사우리어스 바리어스), 물의 압력(최영옥), 소리(성동훈)등을 작업에 끌어들여 작동하게 하는 이들의 작업은 보다 구체적인 자연에너지의 작용을 보여준다. 시게티 종고르는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탁 트인 공간을 원했고 여러 곳을 답사한 끝에 결국은 현재의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였다. 7명의 작가들이 함께 모여 있는 현재의 장소에서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종고르의 작품은 이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솔라 패널을 이용한 사우리어스 같은 경우는 햇빛이 잘 들면서도 주 구조물을 중심으로 빙 둘러 형성된 언덕이 그의 작품 ‘종들의 오케스트라’를 구현하기에 제격이었다. 최영옥의 안개분수는 빈 공간을 빈 공간으로 유지하면서 관객들에 의해 작품을 완성하려는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성동훈의 작품은 용광로에서 파생된 철의 투박한 자연성으로 인하여 언제부터인가 거기 있었던 작품처럼 느껴진다. 우시오 사쿠사베, 하루히코 혼다 그리고 아니쉰 메이어는 일종의 ‘실험하기’를 작업으로 보여준다. 중력과 힘의 작용을 증명하는 듯한 우시오 사쿠사베와 히로히코 혼다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을 작품 안에 담아낸다. 우시오 사쿠사베는 무거운 돌을 줄에 매달아 자연과 수평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실현하기위해서는 언제나 수평상태를 유지하는 연못의 수면 위가 아니면 작업 성립이 안 되는 경우였다. 하루히코 혼다의 작품은 작품자체의 완결성이 높은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작용하는 긴장감으로 인하여 어디서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작업 중의 하나이다. 아니쉔 메이어는 이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미시기후Microclimate에 대한 유사연구행위를 미술적으로 실시함으로서 일상적인 자연을 특별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다양한 형태의 미시기후를 조성하기에 안성맞춤인 작은 연못과 연결된 잔디밭을 선택하여 그녀만의 미시기후 정원을 조성했다. 아니쉔은 이를 미시기후 연구소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자연과의 ‘만나기’를 작품화하고 있는 설치작가 김순임이다. 김순임은 돌멩이들과의 만남을 인격적 관계로 승화시켜 우리 앞에 내놓는다. 현장 주변에서 만나 돌멩이들을 의인적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서 나와 돌멩이라는 자연을 동일시하고 있다. 엑스포 공원으로 들어가는 주출입구의 천정을 설치 장소로서 선택하여 건물 전체를 끌어않는 대작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의 위치선정과정과 그 작업내용을 통해 어떻게 자연과의 만남을 시도하는지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마치 긴 여행 끝에 마침내 망망한 우주에서 도킹을 시도하는 우주선들의 성공과 실패를 보는 듯한 스릴과 절묘함을 느낀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적 완성도를 살피기보다는 어떻게 그들의 작품이 자연과의 접점을 찾아 함께 작용 하는지 살펴본다면 이 전시가 추구하는 ‘에네르氣’가 어떤 방식으로 작품 속을 흐르는지 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3 개인적으로 이번 ‘물은 나무를 통해서 흐른다’ 전시에서 아니쉔 메이어의 '미시기후' Microclimate 작업과 올라 짐스카의 ‘움직임속의 고요’ Stillnees in Motion 그리고 양충모의 설치작품 난생卵生이 마음에 남는다. 아니쉔 메이어가 제시한 ‘미시기후 ’는 자연생태계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처음 시도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몸을 기록하고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몸을 확산시키는 올가 짐스카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웹사이트 상에서였다. 단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 전시에서 대나무를 이용한 그녀의 신작을 보여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양충모의 작품은 ‘에네르기’라는 주어진 제재題材를 다른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체의 형상에서 시작된 한자의 초기형태에서 착안한 그의 아이디어가 다시 물체로 혹은 미술로 존재하는 역순환의 경로가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우시오 사쿠사베의 수평 맞추기는 보여 지는 결과물 보다는 그가 정교하게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 풀었다 조였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그의 집중력과 작업과정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작가 자신이 ‘꿈의 프로젝트’라고 말한 사우리어스 바리어스의 ‘종들의 오케스트라 2012’는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복잡한 전자기계 장치를 사용하고 있으나 마침내 가장 소박한 종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우리들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참여한 모든 작가의 그 독특한 시각과 의미를 되새기기에는 지면이 허락지 않는다. 작가별 작품에 대한 개별적 감상 소감과 비평적 코멘트는 작가들의 개별 페이지에 있는 작품 설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작가들은 두 번의 태풍과 마주했다. 35도를 넘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그리고 거센 바람과 폭우 속에서 건져낸 작품들이다. 한 달여 동안 함께 숙식을 함께하며 교류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이번 전시는 작가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 대전 2012’가 해를 거듭할수록 시대정신의 정곡을 집어내는 전시기획을 보여주길 바란다. 모처럼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미술단체 그리고 외부 기획자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라는 열린 기획을 시도한 대전시립미술관이 보다 체계적인 전시운영과 상호존중의 미덕을 놓치지 않는 진행을 통해 작가 및 기획자들과의 깊은 신뢰를 쌓아가는 미술관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아무쪼록 ‘프로젝트 대전2012’를 통해 피상적 답습과 유행을 따르는 작가들 보다는 자연과 현실의 생생한 장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며, 한국미술계의 척박한 풍토에 밑거름이 되는 미술행사가 되길 바란다. 프로젝트 대전2012 현장미술-물은 나무를 통해 흐른다. Outdoor Exhibition - Water Flows through Trees 작가별 작품설명 미레일 플피어스 Mireille Fulpius(France) 어시스턴트: 실비에 보시 Sylvie Bourcy 제목: 리듬 재료: 대나무 크기: 10m, 2m(h) 리듬 Rhythms 미레일 플피어스 현장설치작가로서 자연물을 이용한 작업을 오랫동안 해온 작가이다. 특히 나무를 얇게 켜서 사용함으로서 나무의 부드럽고 유연한 특성을 살려내는 그녀의 작업은 구체적인 형상이나 메세지를 최대한 절제하는 대신 재료의 본래적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미술을 위한 미술’이라는 기치아래 전개되었던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적 근엄함과 난해함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미술이 살아있는 자연 속에 놓여 자연과 함께 호흡하기위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표현한다거나 실용적인 목적성을 가지기 보다는 그야말로 추상적인 상태로서 존재 할 때 주변의 자연 혹은 자연과 호흡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미레일의 작품은 일깨워준다. 미레일 플피어스는 고른 굵기와 일정한 간격의 마디를 가진 대나무의 특성에 주목한다. 두 개의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단지 대나무를 조금씩 비틀어가며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마치 두개의 꽃받침처럼 푸른 잔디위에 펼쳐진 그녀의 작품은 하늘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대지로 스며든다. 아울러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작품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 모두를 받아들이는 구조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하고 열려진 구조를 취하고 있는 그녀의 조형공간은 편안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흡입력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하적 구조가 갖는 순수조형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인가 전달하려는 심각한 의도 없이 존재하는 이 순수 조형물은 자연과 작품이 따로 분리 되지 않고 서로를 받아들이며 보는 이 또한 가볍게 만난다. 미레일이 제목으로 제시한 ‘리듬’은 시점에 따라서 점점 크게 점점 작게 느껴지는 구조를 통해 공감을 얻는다. 원래는 같은 크기이지만 시점에 따라 사라지고 다시 드러나는 움직임을 보이는 미레일의 작업은 잘 가꾸어진 공원 잔디밭에 나타난 우아한 여인처럼 우리를 맞이한다. 시게티 종고르 Szigetic G Songor(Hungary) 제목: 프렉탈 風(Fractal Wind) 재료: 스테인레스 크기: 480cm x 300cm x 750cm 프렉탈 風 Fractal Wind 시게티 종고르는 최근 들어 바람을 이용한 움직이는 조각을 자주 선보이고 있다. 자연의 변화와 통일 균형을 표현하는 그의 작업은 자연의 에너지가 작업 속에서 작용하거나 관객의 참여에 의해 실제적인 작업의 내용이 완성되는 방식을 선호한다. 종고르의 작업에서 보이는 프렉탈 조형법은 형상의 복제를 통해 무한히 확대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프렉탈 현상에 근거한 것이다. 프렉탈 구조이론은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 내재하는 규칙과 질서를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다. 이번에 발표된 작품 ‘프렉탈 풍(風)’은 바람에 의해서 작동하는 조각으로서 23cm-300cm 크기의 각기 다른 4종류의 프로펠러로 이루어져 있다. 85개의 조각과 꼬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대칭적 프렉탈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바람에 의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연결 확산되는 프렉탈 구조의 프로펠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자연과 사회 시스템의 또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다. 즉 큰 프로펠러에 연결된 작은 프로펠러는 약한 바람에도 먼저 작동하지만 언제나 주 프로펠러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소시민의 삶의 향방이 거대한 국가 조직의 정책에 의해서 결정에 의해 언제나 좌지우지되는 것과 같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러한 비유적 상상은 해가 뜨고 지는 기본적인 밤낮의 변화에 모든 자연계의 구조가 연결되어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으리고 생각한다. 그는 본 작업을 위해서 설계와 제작의 모든 과정을 짧은 시간 동안 스스로 완수 해내었다. 조형적 센스 못지않게 기계적 메카니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비록 섬세한 균형과 작동으로 이루어지는 이 작업이 야외현장의 예기치 않은 돌풍으로 인하여 손상을 입은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지만 자연의 조형적 원리인 프렉탈 현상과 기계적 메카니즘을 결합하여 자연풍에 의해 작동하는 프렉탈 입체 작품을 한국에서 선보인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시오 사쿠사베 Ushio Sakusabe (Japan) 제목: 떠있는 돌 재료: 와이어로프, 돌 크기 : 3m(h)x40m(w)x3m(d) 떠있는 돌 Floating Stone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의 감각체계가 인지 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미세하게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아주 큰소리도 또한 들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너무 작은 것을 볼 수 없지만 큰 우주의 끝은 볼 수 없을 뿐 더러 상상의 범위조차도 벗어난다. 우시오 사쿠사베는 우시오 사쿠사베는 오랫동안 자연석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무거운 돌의 떨어지려는 보이지 않는 힘(중력)과 와이어의 장력을 이용한 균형상태가 그의 관심의 대상이다. 우시오 사쿠사베의 작품 '떠있는 돌‘은 한국식 정자가 있는 연못에 설치되었다. 손으로 들어 옮길만한 크기의 15개의 자연석들이 와이어로프에 매달려있으며 이 돌들은 연못의 수면과 평행하게 떠있는 듯이 보인다. 작가는 둥글고 크기가 일정한 돌 15개를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정한 크기와 같은 색을 가진 돌을 고르는 일과 물과 수평이 되도록 높이를 맞추는 과정은 집요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 ‘탐석과 조절하기’는 작업 과정 이상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어떤 기준에 부합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그 대상과의 일체화를 경험한다. 그가 이십년 가까이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대상과의 신비로운 합일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작업과정에 작가 스스로가 중독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가 보여주려는 중력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에너지 혹은 힘으로 인식하지 못 할 때가 많다. 우시오 사쿠사베는 이 보이지 않는 중력의 작용을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 힘의 작용은 모나지 않은 같은 크기의 둥근 돌들이 일정한 높이로 연못 위에 떠있음으로 해서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치 선과 점으로 가볍게 그려진 간결한 드로잉처럼 존재하는 그의 작품은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풍경이 되어 다가온다. 올가 짐스카 Olga Ziemska (USA) 제목: 움직임속의 고요함-엄마연작 2 / Stillness in Motion-The Matka Series # 2 재료: 대나무 크기: 176cm x 180cm x 365cm 움직임속의 고요함-엄마연작 2/ Stillness in Motion-The Matka Series # 2 올가 짐스카는 자연물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두루 사용하여 작업하는 설치작가이다. 조각을 전공한 그녀는 최근 들어 캐나다와 미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초대되었으며 수 차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3년 처음 작업한 ‘엄마 연작’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많은 호응과 관심을 받은 실내설치작품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대전2012에서는 이 작업의 연작이 야외에 설치되었다. ‘움직임속의 고요함- 엄마 Matca 연작 2’이라는 제목에서 작가가 사용한 ‘Matka’는 폴란드 말로 엄마를 의미하며, 장소와 근원 그리고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체내 환경 즉 자궁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이 새로운 시리즈 작업 ‘움직임속의 고요함’은 장소에 따라 다른 종류의 자연물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다양성을 찬양하고, 인간과 자연의 모든 것들의 핵심에 깔려있는 공통성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올가 짐스카는 자신의 몸을 석고 붕대를 이용하여 전신 캐스팅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를 묘사하거나 감각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대로 전사하듯이 혹은 자신의 허물을 벗겨내듯이 자신의 신체 틀을 만든다. 그녀는 이 석고 틀의 안쪽에 대나무를 하나씩 밀어 넣어가면서 쌓아올렸다. 결과적으로 점점 가늘어지는 나무들이 한꺼번에 몸의 안쪽으로 부터 바깥쪽으로 뻗어 나오는 듯한 아주 강렬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정면에서 보면 잘려진 대나무의 단면들이 보이고 그 단면들은 하나의 세포처럼 작가의 몸을 형상화한다. 인체의 형상이 자연물과 이토록 강력한 조합을 이루는 작품은 본적이 없다. 자신을 표현하되 자연물로서의 대나무의 생명력과 그 형태적 강력한 힘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응집된 힘을 표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여느 자소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결혼식을 위해 입장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뒤로 흐르는 듯 뻗어 내린 가는 대나무는 인간 내부의 에너지가 자연으로 흐르는 듯이 보인다. 혹은 반대로 자연으로 부터 기운을 얻어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추상적 관계를 이야기 하면서도 시각적 아우라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단지 자연물을 이용한다는 명분하에 간과하기 쉬운 신선한 미적 감수성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우리어스 바리어스 Saulius Valius (Lithuania) 어시스턴트: 도나타스 메스카우스카스 (Donatas Meskauskas) 제목: 종들의 오케스트라 2012 재료: 대나무, 태양열 패널, 키보드, 종 크기: 각4m 종들의 오케스트라 2012 / Bells' Orchestra 2012 작가로서 뿐 만아니라 전시기획자로서도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우리어스 바리어스는 설치작가로서 전자장치를 이용한 작업이나 관객의 참여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설치작업을 발표해왔다. 특히 그의 작업은 실내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건축적인 구조의 대형 작업들이 많다. 스페인(2008)과 상하이(2010)엑스포에서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작품을 발표한 그는 매 작품마다 특유의 집중력을 가지고 완성도 높은 작업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프로젝트 대전에서 발표한 종들의 오케스트라는 그가 꿈의 프로젝트라고 말할 만큼 애정과 열정을 쏟아 부은 작품이다. 사람들이 키보드를 누르면 무선 신호 장치에 의해 9개의 대나무 구조물에서 종소리가 나는 이 작품은 태양열로 만들어진 전기를 이용한다. 종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두드리는 위치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이 작품은 태양열 에너지를 소리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계 장치에 의한 것이다. 메인구조물(사우리어스는 이 구조물을 Mother 엄마라고 부르고 종이 달린 다른 구조물을 Children 아이들 이라고 표현한다.)에 설치된 키보드는 멜로디를 만드는 악기이지만 마침내 우리에게 들리는 것은 종소리 즉 순수한 소리이다. 인위적으로 작곡된 음악이 아니라 순수 단음으로 공간속에 울려 퍼진다. 작가는 “나는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여 벨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위하여 사람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이 종소리 작업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적인 사상의 깊이, 그리고 고도의 과학적 성취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유희적인 창조의 즐거움을 제공하기위한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작품에 사람들은 초대한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순환적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태양열이라는 자연에너지가 인공적인 구조물에 집적되고 그 힘은 소리라는 자연 에너지로 환원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태양열과 소리의 연결 그리고 자연과 과학 그리고 미술이라는 특정한 영역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사우리어스의 작품은 우리에게 청각적, 개념적 즐거움과 함께 유희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아니쉔 메이어 Annechien Meier(The Netherlands) 제목: Laboratory for Microclimate 미시기후微視氣候를 위한 연구소 재료: 복합재료 크기: 10m x 10m 미시기후微視氣候를 위한 연구소 Laboratory for Microclimate 과학적 연구프로젝트를 미술적 언어로 바꾸어 작업하는 아니쉔 메이어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새로운 미술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동안 살아있는 자연물을 비행기나 버스 등에 심는 방식을 통해 자연에 대한 생태적 사회적 관심을 표현해온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 대전2012’를 통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직접 설계한 돔 형태의 텐트를 설치하고 주변에는 나무둥치, 설치된 구조물 그리고 간단한 작업을 통하여 조성한 이른바 미시기후의 예들을 보여준다. 미시기후 Microclimate라는 말은 흔히 듣지 못하는 전문적인 용어이지만 자연속이나 인공적 공간 어디든 존재하며 햇빛을 받는 향과 반대편에서 작용하는 생태적 차이와 변화를 지칭한다. 그가 진행하고 있는 이러한 미술적 연구 프로젝트는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한 범세계적 관심으로 부터 출발한다. 미시기후에 대한 그녀의 이러한 관심은 그동안 그녀가 진행해온 설치작업 자체에서 얻어진 아이디어로서 2006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위해 어시스턴트 조스트 Joost와 함께 제작한(비행기 모형에 꽃과 풀을 심었던) 작업이 그 좋은 예이다. 그녀는 자신이 제작한 인공적인 공원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 하게 되면서 이 미시기후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아뉘쉔 메이어의 이번 프로젝트의 흥미로운 점은 소위 학술적 연구와 미술과의 경계에서 그녀가 어떻게 미술적 언어로서의 독특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술작가로서 그녀는 이번 전시를 위해서 한 장의 페이퍼나 학술논문대신에 일종의 설치미술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가능한 한 자신의 작업이 미술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일종의 퍼포먼스를 위해 그녀는 그녀의 조수와 함께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인양 방제복을 입는 다든지, 손맛이 살아있는 혹은 자연물을 이용한 설치물 대신에 잘 디자인된 세련된 텐트를 주문 제작하여 설치하거나 그 주변에 반듯하게 파낸 물웅덩이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구조물을 만들기도 하였다. 아뉘쉔 메이어의 작품이 이렇듯 기존의 미술적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방식을 취하면서도 미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마이크로 클라이멧 Micro Climate'발견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기후연구자들 혹은 생태연구자들의 관심사를 미술 안으로 전이 시키는 순간 미술작업은 발생한 것이고 이로 인해 그녀의 미술적 언어는 확보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새롭게 본다’ 라는 미술의 기본적인 명제를 전제로 한 그녀의 작업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미술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니쉔은 자신이 작품 속에서 새롭게 자연 생태환경을 보게 된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미시 생태 환경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통하여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Annechien Meier, artist, investigator Joost Suasso de Lima de Prado, engineer, co-researcher Gert-Jan Gerlach, producer, filmmaker, co-researcher Mauro Coelho, microclimatist, co-researcher/consultant(NL) Thanks to Stroom The Hague 연구원 아니쉰 메이어 / 예술가, 조사원 조스트 수아소 데 림마 데 프라도 / 엔지니어, 협력연구원 거트 얀 거라쉬 / 영화감독, 협력 연구원 마우로 코엘로 / 미시기후연구자 , 협력연구원, 자문위원 후원: Stroom The Hague 히루히코 혼다 Haruhiko HONDA(Japan) 제목: 쐐기 Wedge 재료: 나무 철 Wood, iron 크기: 30cmx30cmx200cm 쐐기 Wedge 이우환이 교수로 있는 다마미술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히루히코 혼다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야외설치미술전시의 기획자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히로히코 혼다는 일정한 크기의 네 개의 굵은 목재를 일정한 간격으로 한적한 공원 잔디밭에 설치해 놓았다. 전시장이 아닌 야외공간에서 그의 작품은 마치 건축 공사를 위해서 준비한 목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의 작업의 흔적은 여느 집짓기나 토목공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작업(artwork)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히루히코 혼다는 쐐기와 볼트를 이용하여 양쪽에서 작용하는 상대적인 힘의 균형을 보여주는 작품을 보여준다. 혼다는 일정한 사이즈로 다듬어진 나무에 쇠로 만든 쐐기를 때려 박았다. 쐐기는 나무를 쪼개면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지만 볼트로 조여 진 나무는 더 이상 갈라지지 않고 오히려 쐐기를 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작용하는 도구와 그로인한 힘의 전달, 즉 보이는 오브제 ‘쐐기’ 와 ‘볼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오브제 ‘힘’의 관계를 통해서 물리적 현상 자체가 미술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을 보여준다. 자연계의 법칙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논리를 미술의 논리로 간결하게 전환하여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파고드는 외부의 힘과 조이는 힘의 진행이 그대로 멈춰선 상태에서 이 작품은 사람들을 맞이한다. 작용하는 힘과 견디는 힘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작품 자체의 현상적 리얼리티만큼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의 현실을 반영한다. 즉 변화시키려는 힘과 유지하려는 세력의 힘겨루기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도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을 작용하는 쐐기로 인식할 수도, 아니면 저항하는 힘의 실체로 자신을 대입시켜 볼 수도 있겠다. 강 희 준 Kang, Hee-joon 제목: 나무선 - 다시 삼(再生) 재료: 통나무 크기: 1m×1.5m×6m 나무선 - 다시 삼(再生) 작가는 언제가 망태버섯을 보고 그 형태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바람에 쓰러진 나무위에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망태버섯 모양의 형태를 오버랩 시켜 파 들어갔다. 격자형 구조로 마무리된 외곽 형태 안쪽에는 나무의 중심축이 드러난다. 이 두 개의 구조 즉 격자형 표피 구조와 내부의 축은 모두 생명성을 표현하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망태버섯에서 보았던 그물 모양은 여기서는 생명을 공급하는 얽힌 뿌리의 형태로서 나무의 몸체를 감싸고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때로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혹은 자연현상 자체에 의해서 죽거나 파괴되기도 한다. 하지만 되살리는 힘 역시 자연에 의해서 이루어 질 때 더욱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 강희준의 작품은 죽은 나무에 또 다른 자연 즉 망태버섯의 조형적 형상을 투사하여 새김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작품으로 다시 살려낸다. 김 순 임 제목: 나는 돌; The Space 51-대전2012 재료: 대전의 돌멩이 1779개, 무명실, 깃털, 크기: 가변설치 나는 돌; The Space 51-대전2012 “나는 익명의 장소에서 돌멩이를 만난다. 손으로 돌들을 만지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돌멩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이 돌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한 순간일지라도 무게를 잊기 바란다. 주변에 있으나, 시야 밖에서 숨 쉬는 이들은 이 공간에서 땅이기도, 자연이기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이기도, 스쳐 지나가는 당신 주변의 인연이기도 하다.” 위에 적힌 김순임의 노트에 의하면 그녀는 전혀 생명의 기운이 없는 돌멩이를 ‘그것’이 아닌 ‘너’로 인식한다. 공원입구 큰 문에 자리 잡은 돌멩이들은 마치 큰 파티의 주인공들처럼 깃털 장식으로 멋을 내고 흔들흔들 춤을 춘다. 일정한 간격으로 메 달린 돌들은 비슷한 크기이지만 제각각 다른 모양이다. 아마도 김순임이 ‘너’로 인식하는 모든 돌멩이들은 김순임의 손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을 런지도 모른다. 돌멩이와 눈이 맞아 손을 내미는 순간, 작품으로의 초대가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과정에서 돌멩이는 단순한 자연물 오브제가 아닌 ‘너’가 된다. 돌멩이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오랜 과정과 ‘살아온’ 역사에 관심을 갖는 그녀의 특별한 마음가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작품에 다가갈 수 없다. 성 동 훈 제목: 소리나무-진산의 행복한 고목 Sound Tree-The happy tree in Jinsan 재료: 용광로 금속, 세라믹 풍경, Metal of Smelting Furnace, Ceramic Bells 크기: 490x590x580(h)cm 소리나무-진산의 행복한 고목 Sound Tree-The happy tree in Jinsan 이 작품은 성동훈의 소리나무 연작중의 하나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나무 형상에 세라믹 종을 설치하여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작품은 제련과정에서 파생된 철강으로 만들어 졌다. 투박하고 고르지 않은 철 파편들로 만들어진 소리나무는 차갑고 무거운 재료적 특성을 벗어내고 그가 말하는 ‘서사적 이미지’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용광로 속에서 일종의 자연화 과정을 거친 커다란 철 파편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피해간다. 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쉽게 반응하는 종소리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처럼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작품 앞에 다가선 사람들은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쉽사리 작품 앞을 떠나지 못한다. 양 충 모 제목 : 난생(卵生) 재료 : 나무, 돌, 모래 및 기타 혼합재료 난생(卵生) 7m 높이로 곧게 세워진 나무에 바위와 나무가 끼워져 있고 잔디위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작은 돌들이 놓여 연결된다. 작가는 작품의 모티브를 ‘가운데’, ‘속’, ‘핵’을 의미하는 한자어 중(中)자의 초기형태에서 찾았다. 그리고 인간의 중심 깊은 곳에 있는 생명력의 작용과 모든 활동의 중심인 에너지의 핵(核)을 나무와 돌을 이용하여 조형적으로 표현하였다.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로서 사물의 의미를 조형화된 상징 언어로 나타낸다. 초기의 한자들은 더욱 그림에 가까운 형태를 지닌다. 양충모는 한자 중(中)자로부터 사물의 핵의 개념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들의 생명의 근원을 이야기 한다. 세상의 본질을 중(中)자 단 한글자로 접근하는 그의 태도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깊이 있게 관조하는 철학적사고가 담겨있다. 최 영 옥 제목 : 응축과 확산Ⅱ 크기 : 폭1m, 지름10m 응축과 확산 최영옥의 작품은 ‘없다’ 아니 ‘있다’. 이 작품은 폭 1m, 지름 10m의 원으로 잔디에 분무기가 묻혀있어서 장치가 작동 할 때에만 거기에 작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물의 압력이 응축되었다가 분출되면서 뽀얀 인공안개를 만드는 장치를 설치하였다. 이른바 ‘숨 쉬는 조각’을 시도한 작업이다. 간단한 장치에 불과해 보이는 이 작품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 순간은 관람객이 분수 안으로 들어설 때이다. 분무되는 안개의 습한 기운을 물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 관람객은 ‘작품’ 안에 있다. 이를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희뿌연 안개 속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하여 살아있는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관람객의 개입으로 인하여 빈자리가 채워지고 생기를 얻어 완성되는 작품이다. 최 평 곤 Choi, Pyung-gon 제목: 재료: 대나무 대지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융화되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대나무는 쪼개져서 선이 되고, 서로 엮어져 면이 된다. 그 면은 모여서 하나의 입체 즉 인간의 형상을 이룬다. 대지에서 솟아나는 기운이 모여 숭고한 인간상으로 형상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평곤은 고된 수작업 없이는 끝낼 수 없는 작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거대한 그의 조형물은 대나무가 휘여 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지고 형상의 디테일은 생략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조형물은 현실속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영적 존재를 상상하게 한다. 노동의 강도만큼이나 강한 소망을 작품에 담아내는 최평곤, 그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보다는 세상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품 속에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 강 제목: 자연으로부터-氣 재료: Steel and cutting 규격: 400X120cm 자연으로부터-氣 잠자리 날개에서 취한 이미지는 드로잉 과정을 통해 앞과 뒤의 관계가 하나의 평면에 집적된다. 작가는 자연으로 부터 얻어진 이 이미지를 기계적 커팅을 통해 공간속의 조형물로 제시한다. 입체로서 3차원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여전히 평면적 이미지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자연과 인위, 입체와 평면의 양면성을 보여 준다. 차갑고 무거운 느낌의 두꺼운 철판은 섬세한 손 감각의 흔적을 반영하면서 시각적으로 가벼워진다. 투각에 의해 양쪽으로 열려있는 구조는 배경을 작품 안에 담아내면서 투명한 잠자리 날개가 되었다. 허강의 잠자리 날개가 연못에서 제자리를 잡은 듯 편안하게 보이는 것은 유충 시절을 물에서 보낸 잠자리의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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