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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o image 이승택 선생의 작업에 대한 소고(2004/10/15)
소나무
3958 2007-06-05
이승택의 작업에 대한 소고 (지난 10월 12일부터 올 여름에 개관한 MIA에서 이승택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MIA의 전시장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530cm 인데다 공간도 매우 너르고 게다가 부정형이어서 어지간한 작품으로는 궁색해 보일 정도로 터가 센 곳이다. 이승택은 초기의 몇몇 실험적인 작품과 함께 주로 그간 야외에서 해온 작업을 찍은 광경을 대형 사진으로 확대해 일종의 벽면 설치작업 위주로 전시장을 채워 놓았다.) 1. 흰 광목천이 기다란 밧줄을 뼈대삼아 완만하게 경사진 고개 너머로 이어진다. 일정한 폭의 그 하얀 길은 내 어린 날 상여(喪輿)가 나간 자리처럼 저 멀리 하늘가로 아득히 사라진다.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본 이 작업은 이승택의 다. 이승택은 지난 50여 년간 당대 화단의 이단아로 살아왔다. 질곡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그리고 미술계는 고답적 전통회화의 양식과 아니면 온통 앵포르멜로 지칭된 추상미술이 지배하던 그러한 당대의 인습과 유행에 함몰되지 않은 채, 부단히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도발을 감행해왔다는 것이다. 이승택은 우리 민족의 시원의 땅인 바이칼 호 주변 원주민의 순수 혈통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전형적인 북방계 몽골리언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승택을 보면 대륙을 말달리고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힘찬 기백이나 삼국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진흥왕의 ‘바람 끼(風味)’주1)가 느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연속적이기도 것이 한 역사의 흐름이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역사가 핏줄에서 핏줄로 면면히 이어짐을 실감하게 된다. 공시적으로 이승택은 첨예한 아방가르드적 현대예술으리 특성을 보여준다. “나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모든 체계화된 사고는 필연적으로 전복될 수 있다는 신념, 나아가 허무주의적 사고를 신봉해왔고, 이후 사물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것이 더욱 강한 힘을 지닌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양식화된 예술이란 것은 달리 표현하면 ‘이미 알려진 예술’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이 예술이건 관념이건 이미 알려진 것 같은 방식으로 반복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양식화된 예술이란 단지 ‘그럴싸한 눈속임의 현혹적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눈홀림’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 그것은 ‘작품이 아닌 그 무엇’에 대한 추구에 의해 실천된다고 믿게 된 것이죠.”주2) 이처럼 이승택의 작업은 통시적,공시적 맥락의 교차 속에서 그 특질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승택의 작업은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층위에서 해석될 수 있다. 2. 역사는 ‘시뮬라크르’, 즉 우발성이 개입된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은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이다. 연속적이라면 그것은 사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예술사 또한 사건으로 점철된 역사다. 물론 예술은 의도된 작위적 행위다. 그러므로 현대예술가들은 도발적으로 사건을 저지르는 자들이다. 예술 뿐 만 아니라 현대의 새로운 과학과 철학적 사유의 출현도 바로 이러한 사건이 전제되어 있다. '사건’은 서구의 전통적 철학이나 미학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폄하되어 왔다. 그들은 ‘사건’이 아닌 실체적 ‘사물’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이후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의 근대미술도 크게 보면 사물에 대한 관심, 즉 실체적 조형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특히 19세기말 이후 서구에서는 그 학문과 예술의 주된 기류가 점차 ‘사물에서 사건으로’ 변환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존재’와 ‘실체’에 대한 관심에서 생성 ․ 운동 ․ 변화에 대한 사유와 실천이 일어난다. 즉 세상을 ‘thing’ 아닌 ‘event’로 보는 의식의 대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니체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로 이어지는 사유의 계보는 바로 세계관의 변환이 전제된 학문체계이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사건이다. 이처럼 사건은 비물체적이다. (물론 사건의 현실화/구현은 물질적 터전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건은 언어로만 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건은 현상(물리)적인 측면과 의미론적 측면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이승택 선생의 작업은 이러한 ‘사건’으로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이승택 선생이 도발적으로 저지른 행위들은 근대의 실체적 조형의식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대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작업이 이른바 ‘비물질’적인 양상이 두드러지는데서 능히 짐작할 수 있다.주3) 그러나 나는 그의 미학이 ‘비물질적’이라기보다 ‘비물체적인 양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하고 싶다. 엄밀히 말해 진공상태를 제외한 비물질적 세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물체적’이란 말은 특정한 실체로서가 아닌 ‘형체 없는 물질성’을 전제하면서도 변화와 흐름이라는 ‘유동성’과 ‘과정성’이 두드러지는 용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 선생의 작업이 ‘비물체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체가 있다, 없다는 차원이 아니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비물체적인 것들(asômata)은 공허, 장소, 시간, 그리고 'lekton'즉 언어로만 표현 가능한 것, 이 네 가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 선생의 시리즈나 시리즈는 특히 비물체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사건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3. 현대인은 흔히 바람에 대해 ‘저기압과 고기압의 차이에 의한 공기의 흐름’이라는 인식론적 범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고대인의 인식론적 범주에선 바람은 곧 ‘신(神)’이었다. 가령 지금도 우리가 태풍을 통해 불가항력적인 바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듯, 고대에선 이러한 공포와 외경의 대상은 모두 신의 영역이었다. 이러한 공포와 외경의 대상 중 무엇보다 바람이 가장 촉각적으로 또 가시적으로 신의 존재를 체험케 하는 그 무엇이었다. 고대 인간의 신성 체험이 한결같이 바람과 관련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4) 이승택 선생의 시리즈는 우리 혈맥 속에 원형무의식으로 내재하는 바람의 흐름, 풍류(風流)주5)의 현재화다. 이 풍류란 고대에선 주술적인 영기(靈氣)를 뜻한다. 영기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신령스런 힘(Vitality)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승택 선생의 바람은 무형의 에너지, 즉 보이지 않는 힘의 가시화다. 이 바람은 A 혹은 B와 같은 대상적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바람은 정의할 수 없다. 정의한다는 것은 A인 것과 A가 아닌 것을 경계 짓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란 한 사물을 지배하는 분절체계다. 그러나 바람은 그러한 경계가 없다. 그러므로 바람은 원래 하나의 작품으로 개별화 될 수 없다. 바람은 무형이므로 어디에나 편재한다. 그러므로 바람은 이 세계가 무한한 잠재성의 층위를 내포한다.그렇지만 잠재성은 가시화되(하)는 우발점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가시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의 작업은 이러한 우발점을 생성시키는 특이 사건이다. 들뢰즈식 어법으로 표현하면 '순수 사건'이다. 그리고 이승택 선생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의 가운데 하나가 성(性)인 것도, 가령 우리가 성에 대한 일탈 행위를 ‘바람을 피운다’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자신의 ‘바람’작업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또한 이승택의 시리즈들도 고(古)와 금(今)을 넘나드는 행위의 소산이다. 화제의 제(祭)는 고대 종교의 기원과 연관있는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예배한다’는 의미이며, 성화한다,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굿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고대적인 어법으로 말하자면 성화(聖化)된 세계(sacralized cosmos)의 부활을 꿈꾸는 행위다. 즉 그의 작업은 속(俗)의 공간을 성(聖)의 공간(sacred space)으로 만드는 일이다. 요즘의 인식론적 범주로 말하자면 불은 바람과 대지의 융합에 의한 기운의 확산이다. 불은 바람에 의해 어떤 방향성도 없이 확산되며 그 타오르는 불길은 하늘과 땅 사이, 즉 세계를 태우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승택의 불은 단지 땅 위의 한 부분을 태우는 표면 효과가 아니다. 불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수렴/발산이므로. 그의 돌탑을 쌓는 행위 또한 오랜 기원을 가진 행위로서 우리 역사에서는 서낭당 주6)으로 이어져 왔다. 솟터(아크로폴리스)가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의 문이라면 이 서낭은 땅의 문이다. 그러므로 서낭의 상실은 곧 땅의 상실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20세기는 이 서낭이 상실된 세기였다. 오늘 이땅의 난 개발과 황폐화는 분명 이러한 서낭의 상실과 연관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은 고와 금을 잇기 위해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현대의 사제인 것이다. 4.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전시회 그 자체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전시장의 대다수 작품들이 이승택의 과거 작품의 흔적을 담은 이미지 위주로 그것도 평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설치와 평면 작업은 그 특성에 있어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으므로 장소성과 임장성에서 가능한 설치작업이 평면적으로 제시된 것은 엄밀히 말해 그저 정보와 기록의 차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난 50여 년에 걸친 한 노 선배 작가의 작업에 대한 다각도의 치밀한 분석적 담론이 있어 이번 전람회의 성과는 크다고 본다. 이번 전람회를 통해 『작가 이승택 다시 읽기』가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본질적으로 그 사건적 특성으로 인해 작품의 생산 못지않게 담론의 생성이 있어야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오상길, 김찬동, 김융희, 양건열, 사혜정 등에 의해 이루어진 이승택에 대한 담론이 그간 한국미술의 고질적 병폐인 담론 부재 현상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이러한 담론을 통해 거짓과 헛것에 얽매인 우리 현대미술의 실상을 자각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주1)일연, 三國遺事, 眞興王列傳篇, 第二四眞興王.....天性風味, 주2) 실험미술 50년 이승택 초대전, 이승택 ‘부정의 영역’을 향한 노력, 김원방과의 대담중에서 한국문화예술 진흥원, 1997. 주3) 이승택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비물질에 대한 관심은 5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물질에 대한 관심은 50년대 말에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된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고 나서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코메티의 작품에서 뼈마저 부정하면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형태가 부정된다면......? 이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것이 가능하다면 세계적인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오상길 엮음,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Ⅱ, ICAS, 50쪽 참조. 주4)이 풍류는 흔히 잘못 알 듯 한량들의 풍류가 아니다. 이 풍류는 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오는 國有玄妙之道, 曰風流...接化群生....에서도 알 수 있는 신라의 토착신앙체계를 말한다. 김용옥 나는 한국 불교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989, 133-217쪽 참조. 단군신화에서의 풍백, 우사, 운사 할 때의 풍백이 ‘바람님’, 즉 ‘바람의 신’을 의미하듯이 고대에선 바람은 곧 ‘신의 현현’이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지만 신라는 백두대간으로 분절된 공간에 고립적으로 위치하고 있어 대륙과 연접한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풍류’(혹은 풍교)가 지속될 만큼 토착적 정체성이 강했다. 여기에 외래문명인 불교(삼국유사에서 일연이 신라 당대의 불교를 釋風, 즉 석가모니 바람으로 기술한 것도 이러한 ‘풍교’에 그 연원이 있다.)를 접목하여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주5) 바람은 고대 인류문명의 시원인 종교의 비밀이 담겨있는 핵심 키워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아래 인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왕은 곧 바람신의 증보자인 지상의 천황이다. 그것은 새의 형상과 떨림의 나무모습의 금관으로 자기를 현현하며 외경스러운 바람의 영역을 찬란하게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호렙산의 가시덤불 속에서 야훼의 소리를 듣는 이사야 선지자의 체험이나 광야에서 기도하며 주의 음성을 듣는 예수의 체험이나 다 공통된 인간의 신성(Divinity)의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요한복음」3장 8절의 말을 기억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이 다 이러하니라.”...(중략)...기독교 성서의 가장 핵심적 단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이 두 마디에 쓰인 희랍어의 원어가 “프뉴마”(pneuma)라는 한 단어라는 사실이다. 퓨뉴마는 원래 “바람”(Wind)을 의미하며, “호흡”(Breath) 즉 “氣”를 의미한다. 프뉴마는 “생명”(Life)을 의미하며, “영혼”(Soul)을 의미한다. 프뉴마는 “귀신”(Spirit)을 의미하며, 모든 “신성”(Divinity)을 총칭한다. 후대의 스토이시즘(stoicism)에서는 우주적 힘 또는 실체(a cosmic power or substance)를 의미하는 것이며 곧 신(God)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모두가 “바람”이라는 하나의 어근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번 인류의 보편적 경험의 구조를 확인케 되는 것이다. 김용옥, 앞의 책, 142쪽 주6)이 서낭당을 흔히 '성황당'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한자식 표기이며 서낭당은 한자가 우리 글로 쓰이기 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기 때문에 서낭당이 더 적절한 용어다. PS : 김병기 선생과의 만남 오픈 행사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살아있는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88살 된 청년을 만났다. 바로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원로이신 김병기 선생이셨다. 김병기 선생은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과 소학교 동기 동창이다. 김 선생을 청년이라고 한 것은 그의 의식이 너무나 젊었기 때문이다. 그날 주로 말씀하셨던 내용은 대개 수화 김환기라든가, 이쾌대, 이마동 등 우리의 근현대미술사에 등장하는 작가들과 얽힌 이야기를 동경유학 시절부터 뉴욕에 체류할 때까지의 일화였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셨다. 그 중에서 김환기의 라는 작품을 수화가 어떻게 그리게 되었고, 또 어떻게 국내공모전에 응모하여 어떻게 대상을 받게 되었는지 그 비화를 자세히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북한 사투리 어조로 자기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므로 우리 후배들에게 간곡하게 당부 말씀을 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 다 배웠다. (마르셀 뒤샹과 요셉 보이스로 현대미술의 큰 맥을 짚어나갔으며 그 연배임에도 가령 오브제 미술과 설치작업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우리 한국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교량적 위취 즉 ‘복도’로 보는데. 그렇지만 한국만이 간직하고 있는 에센셜한 것이 있다, 그것은 회귀를 뜻하는 건 아니다, 일본은 양식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양식화되면 끝이다. 동양에 은은한 전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은 만리장성 남쪽의 동양과 만리장성 북쪽의 동양이 있다. 만리장성 남쪽의 전통은 사랑방에서 이어져 왔고 만리장성 북쪽의 전통은 안방에서 이어져 왔다. 만리장성 남쪽의 은은한 것만이 동양이 아니다. 안방에서 이어진 색동저고리에서 볼 수 있듯 매우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대변되는 동양이 동시에 있다. 이는 역동적인 농악을 봐도 알 수 있다. 신라가 상당히 중요하다, 두툼하다, 그런데 백제가 더 중요하다, 백제는 정신이 번쩍드는 게 있다. 예컨대 백제의 금동용봉향로는 굉장하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은 용즉미, 즉 용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름답다 이다. 그런데 서울 장안에는 아주 또렷한 것을 좋아하는 전통이 있었다. 순백자가 그렇다. 노자와 공자는 한국에서 보편화 되어 있다. 노자의 에센스는 한국의 禪불교에 있다.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타블로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겠다. 오브제와 인스털레이션 작업은 끝나고 나면 허무한 면이 있다. 한국은 산의 나라다 그래서 돌의 예술이 많다. 돌의 특성 때문에 디테일은 거칠고 두툼하다. 그리고 작가들에 이 글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한 원로작가의 작품을 위조지폐에 비유하여 그 자리에 동석한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옛날에 북한산자락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그때 북한산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북한산만 보면 눈물이 났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모국에 와서 북한산을 보니 또 눈물이 나더라, 그런데 그건 매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을 파안대소케 함) 이 자리엔 윤형근 선생도 동석했으며, 후배들에게 언중유골의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로 설치를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빨리 효과를 보려고 한다, 얼마 전 홍대 앞 거리미술제를 봤는데 얘들 소꿉장난 수준이더라, 그리고 너무 건성으로 본다, 우리 것에서 출발하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하며, 깜짝 놀라게 대담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독일에 가서 요셉 보이스의 고향인 클레베에 가 보았는데 그의 작업량이 엄청나더라는 것이다. 2004년 10월 15일 깊어진 가을날, 느티나무가 바라보이는 교정에서 .............................................. 소나무 [2004/10/15 (19:41)] 이승택 바람 2002 H1000×3000×800 헝겊 작품사진을 덧붙입니다. 지난 2002 수원월드컵미술제 때 커다란 기구를 굴리며 월드컵전시장 관객들 틈을 돌아다니시던 퍼포먼스 생각이 납니다. 건재하셔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시는 모습이 뵙기에 좋습니다.
6 no image 자크 데리다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2004.10.11)
소나무
4609 2007-06-05
자크 데리다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지난 10월 9일 자크 데리다가 파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에 미셸 푸코가 타계하고, 90년대 중반엔 질 들뢰즈가 세상을 버리더니, 이 눈부신 가을날 자크 데리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올해 74세로서 자연 연령으로는 이른 나이의 죽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 이른바 해체주의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사상은 서양의 근대성의 핵심 개념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된다. 비록 예술과 다른 학문을 통해서였지만 그가 지향하고 실천했던 삶은 현대예술가들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찍이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도구적 측면만 일방적으로 발달시켜온 이성주의에서 야기된 동일화의 강제에 대한 거부로서 현대예술의 특성을 규정한 이래, 자크 데리다에 이르러 서구의 동일성 또는 이항대립적 사유체계는 철저하게 해체된다. 바로 이런 문맥에서 현대예술과 그의 사상은 많은 부분 공통의 문제의식을 전제한다. ‘산종’과 ‘차연’으로 집약되는 데리다의 ‘텍스트’ 읽기는 인식의 틀을 깸으로써 삶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비껴나가기’였으며 바로 여기서 그의 사상은 현대예술과 접목되는 특이점을 형성한다. 그의 저작은 그간 국내 번역본들의 오역에 대한 논란에서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난해하다. 그러나 그의 사유체계가 무조건 이해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난해하다는 것은 알고 보면 익숙한 사유와 다르기 때문에, 즉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느끼는 생각일 뿐이다. 즉 데리다의 사유가 난해하다면 오로지 합리적 사유만을 유일한 이해의 코드로 삼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이다. 현대예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뇌해 본 적이 있다면 데리다는 물론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의 사상은 오히려 많은 부분 동감의 대상이며 나아가서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가령 서양의 전통적 사유로 보면 ‘타자의 사유체계'인 한자 문명권의 사유와 데리다의 사유는 일맥상통한다. 국내 최초는 아니지만 내가 작년 말에 어느 웹 저널에 원효의 사유체계에 대해 데리다 식의 해석을 나름대로 시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근본주의적 단순 논리의 충돌이 야기한 오늘 현재의 세계적 혼미 상황은 역설적으로 데리다 식의 텍스트 읽기가 여전히 아니 전 보다 더욱 유효함을 절감케 한다. 그리고 현대미술에 대한 많은 담론적 글쓰기, 즉 다원적 해석이 그의 해체주의적 사유체계에 힘입은 바가 없지 않으며, 이 때문에 그의 죽음이 뜻밖일 정도로 이르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2004년 10월 11일
5 no image 성배의 비밀, 다빈치 코드를 읽고(수정)(2004/9/9)
소나무
5191 2007-06-05
성배(聖杯)의 비밀, 다빈치 코드를 읽고 1.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기호와 상징을 구분하면서 상징을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통상적인 의미 외에 함축된 특별한 뜻을 갖고 있는 말, 이름, 혹은 심지어 그림들”로 규정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도 남긴다. “그것은 뭔가 막연하고 숨겨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최근 댄 브라운(Dan Brown)이 쓴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소설은 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핵심 코드인 기호와 상징의 문제를 스토리의 실질적인 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성립과정의 비밀, 그 중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의 숨겨진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다. 사실 이 『다빈치 코드』는 지난 2003년 미국에서 출간된 날을 ‘다빈치 코드의 날’이라 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장르상 추리 소설이고 또 실제로 다분히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할리우드 영화 같은 스토리로 독자를 흡인하고 있지만, 종교와 문명의 본질을 도상학과 기호학을 토대로 다루고 있다. 2. 프랑스 파리의 루블 박물관장(자크 소니에르)이 한밤중 박물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총을 맞은 상태로 벌거벗은 채 배꼽 부위에 자신의 피로 오각형의 별을 그려놓은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인 의 원처럼 주변에 원호를 그려 놓고 큰 대자로 누워 총에 맞아 숨져 있다. 바닥에는 특수 잉크로 씌어져 자외선 광선으로만 볼 수 있는 의문의 부호와 메모를 남긴 채.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이 수수께끼 같은 기호와 메모를 풀어가는 것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파리 경찰은 마침 초청 강연을 하러 와 파리에 체류 중인 기호학을 전공한 중년의 미국 하버드 대학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에게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경찰은 도움이 아닌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 소니에르가 피살되던 날 랭던 박사는 그와 저녁 식사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혐의를 뒤집어 쓴 랭던은 박물관장의 손녀로서 할아버지가 죽은 현장에 온 프랑스 경찰청 암호 해독부에 소속된 요원인 ‘수호천사’ 소피 누뵈와 함께 쫓기는 몸이 된다. 그들은 숨 가쁜 추격을 당하면서도 암호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첫 번 째 줄의 암호는 앞 두개의 숫자의 합이 그 다음 숫자가 되는 ‘피보나치 수열’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서 소피는 자신을 부르는 메시지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 P.S.' 가 추신이라는 뜻과 동시에 ‘프린세스 소피’로서 할아버지가 자기를 불렀던 애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랭던은 뒤집어진 순서대로 알파벳을 다시 나열하고 첫 번째 암호를 푼다. 이른바 아나그램이라고 하는 철자 게임이다. 결과는 이렇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Lisa!) 그래서 소피는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할아버지가 남긴 새로운 암호를 발견한다. “인간의 진로는 너무 어둡다.” 이 암호는 쉽게 풀린다. 소피는 그림 뒤에서 열쇠를 찾아낸다. 열쇠에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그것은 스위스 은행 지점이 있는 번지였다. 이 열쇠는 은행의 금고 열쇠였다. 여기서 다시 세 번째 암호가 풀린다. 은행의 계좌번호는 피보나치 수열인 1123581321이다. 금고 안에서는 클립 텍스가 나온다. 다섯 개의 철자 다이얼이 있는데 그걸 맞춰야 뚜껑을 열 수 있다. 클립 텍스에는 또 다른 암호가 새겨져 있다. “지혜로운 고대의 낱말이 이 두루마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리고 흩어진 가족 전체를 우리가 지킬 수 있게 도우리가. 기사단이 찬양한 묘석이 열쇠이라라. 아트베쉬가 너희에게 진실을 드러내리라.” 이제 비로소 ‘성당 기사단’, 즉 ‘시온 기도회’의 정체가 드러난다. 소니에르는 ‘시온 기도회’의 지도자였다. 이들은 성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숭배한 이교도의 신은 ‘바포멧(baphomet)’이었다. 그런데 헤브라이어에는 모음이 없다. 모음을 빼면 ‘bphmt’가 된다. 이것을 아트베쉬 암호 해독법으로 뒤집으면 'svfya'가 된다. 이것은 발음하면 'sophia', 즉 지혜가 된다. 지혜의 고대어는 'sofia'다. 클립텍스 안에는 또 하나의 더 작은 암호가 있다. 암호는 다음과 같다. “런던에 교황이 묻은 기사가 누워 있노라. 그의 노력과 결실이 성스러운 분노를 일으켰노라. 이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랭던은 ‘교황’과 ‘런던’, ‘기사’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교황이 실제 교황이 아니라 아아작 뉴턴의 친구인 알렉산더 포페(pope), 즉 '교황'을 뜻하기도 하는 친구 이름을 일종의 중의법으로 표현한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아이작 뉴턴의 무덤에 있어야할 구(球), 장밋빛 살과 씨를 품은 자궁. 다섯 글자 단어는 사과(apple)였던 것이다. 성배는 프랑스어로 '상 그리엘(san greal)'이라고 한다. 시온 수도회는 성배가 그냥 술잔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담은 자궁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성배는 왕족의 피, 상 레알(sang real)의 은유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예수가 결혼을 했고 자손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시온 수도회가 2천년 동안 지켜 내려온 '성배의 비밀'이었다. 3.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거대한 비밀조직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예컨대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율 1.618을 상징하는 그리스의 21번째 알파벳 파이(φ)의 관련성, 아나그램(Anagram)철자 바꾸기), 암호풀이, 도상학적 상징 해독을 거치면서 상 그릴, 즉 성배(聖杯)를 여는 열쇠로서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그래서 위카(땅, 즉 여신에 바탕을 둔 종교임), 티예앙크(여성의 생식기관, 생식과 장수를 상징함), 시스트럼(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의 제사 때 쓰던 금속악기임), 크룩스 젬마타(crux gemmata;열 세 개의 보석이 박힌 십자가란 뜻임), 미트라(주교들이 의식 때 쓰는 관임), 기원전 사천년에 생긴 두 개의 삼각형의 겹침인 ‘다윗의 별(솔로몬의 봉인)’과 오각형 별 모양의 의미가 초기 로마 교회에 의해 왜 바뀌는지 왜 창과 화살 끝 모양의 꼬리를 가진 캐릭터가 악마를 상장하게 되었는지 낱낱이 들추어내고 있다. 특히 , , 에 숨겨진 비밀을 암호로 풀면서 주인공들은 1099년 결성된 비밀 단체인 ‘시온 수도회(Priory of Sion)’와 로마 카톨릭의 보수적 결사체인 ‘오푸스 데이(Opus Dei)’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축이다. 요컨대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럽의 수많은 예술 작품과 역사,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비의(秘意)를 드러낸다.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시온 수도회의 실제 여부와 그 주요 그랜드 마스터로서 보티첼리, 다빈 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장 콕토까지 지난 1975년에 발견된 문서를 통해서 사실인 것처럼 밝히고 있지만(그는 이 소설 서두에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건물, 비밀 종교의식에 대한 모든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 고 밝혔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아직은 그 사실 규명이 좀 더 진행되어야 할 일설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면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물론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것도 아직은 일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에 대해서 해석하면서 예수 옆 인물을 막달레나 마리아라고 했지만, 예술사학자나 종교학자들은 대개 나이어린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기호와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세계와 관련된 상징에 대한 재해석으로 서구 역사의 이면과 종교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세상에 드리우고 있는 중세의 검은 그림자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이 소설의 주된 쟁점은 초기 기독교의 성립과정에서 배제된 여신이다. 다시 말해 로마 가톨릭이 마녀재판과 이교도에 대한 공격으로 여성성을 억압했다는 것이 주된 메시지다. 다빈치의 대표작 와 은 바로 그런 비판의 알레고리로 재해석된다.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여온 ‘이교도(pagan)와의 싸움’, 즉 배타와 독선이 지금도 유독 서구에서 지속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 책은 잘 알게 한다. 즉 자신의 종교만이 참 종교이고 타 종교 신자와 무신론자는 ‘이교도’ 아니면 ‘전도의 대상’이라는 선악 이분법이야말로 나와 남을 편 가르는 원인인 것이다. 역사는 두 번 다시 똑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오늘날 이라크 사태나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테러와 또 그에 대한 보복, 또 그로 인한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을 보면서 절감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소설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에 관한 기술, 특히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의 일들은 이미 명백하게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다. 즉 기독교는 4세기 초에 로마제국의 정치적 질서와 타협한 후에 라틴 서방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예컨대 ‘니케아 공회’에서 그때까지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던 예수가 메시아로 신격화되면서 인간적인 면모의 예수에 관한 행적을 불태우거나 없애면서 오늘의 성경으로 경전화 하는 것이라든가(성경의 성립과정은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내막이 있으며 여기에 대한 사실도 이미 현대 신학에서 자세히 밝혀졌다), 따라서 금지된 복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단자’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주교관, 성찬대, 영송가, 성채의 배경, 신이 먹는 것을 흉내 낸 행위는 이교도의 종교행사를 차용한 것이다. 또한 일요일이 ‘주일’이 된 것도 그 당시 로마의 정식 종교인 태양 숭배에서 유래한다. 기독교도 어디까지나 혼합종교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와 초기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의 여성(여신) 탄압사와 관련한 내용은 도올 김용옥이 지난 80년대 초에 쓴 『여자란 무엇인가』와 『절차탁마 대기만성』과 거의 일치한다. 먼저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주제는 ‘하느님’에 대한 ‘따님’의 회복, ‘남성’에 대한 ‘여성’의 회복이다. 그리고 『절차탁마 대기만성』은 초기 성경과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불트만의 신학과 특히 1947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에 대한 언급을 통해 밝히고 있다. 나아가서 오늘날의 기독교나 마니교가 영지(靈神과 유사한 개념임)주의의 한 가지임을 밝히고 기독교를 넓은 의미에서 아시아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가설을 의심할 나위 없는 역사적 증거와 함께 제시한다. (이들 책의 이러한 내용으로 인해 성경책을 오로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맹신하는 기독교 광신자들이 김용옥을 왕 마귀 왕 사탄으로 몰아 온갖 비방과 협박, 심지어 테러의 위협까지 가했다) 나는 또한 이 소설을 보면서 1979년에 제작된 주디 시카고의 작품 를 떠올렸다. 이 란 작품은 삼각형의 성만찬 테이블에 모두 한 변 마다 13개씩의 여성 성기를 연상케 하는 접시 이미지들을 배열함으로써 최후의 만찬에 대응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단지 성을 섹스의 대상으로 그것도 불결한 대상으로 억압해 온 기독교에 대해 도발적 고발을 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주디 시카고는 한 권의 책을 병치 했는데, 그 책은 여신이 중심이 된 창세기와 페미니즘적 가치로 치유되는 세계를 예언한 묵시록으로 구성된 것이다. 물론 기존의 남성 본위적 성경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는 20세기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와 『다빈치 코드』는 성스러운 잔, 즉 성배(聖杯), 혹은 장미로 상징되는 잃어버린 여성, 다시 말해 ‘잃어버린 신성한 여신을 찾아서’ 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이 있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주요 화두 중의 하나가 성의 해방인 것도 성을 더럽고 불결한 행위로 만들어버린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 기인한다. 결국 『다빈치 코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호와 상징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중세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그 결과 온전한 삶이란 어느 한 쪽에 편중되지 않은, 즉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인 것이다. 4.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 기독교가 기여한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대체적으로 그 교리적 해석에 있어 여전히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번역한 성서를 절대시하는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타 종교와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스스로를 타자로부터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그 허구가 삶과 역사의 진실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비록 지식인들이라면 조금은 그 격을 낮게 보는(?) 추리 소설이라는 틀을 빌리고 그것도 할리우드식의 통속적인 스토리로, 그래서 심도 있는 주제를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다룬 흠은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한 것은 이 소설의 미덕이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 중에는 특히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 중에는 일설을 마치 객관적 정설인양 기술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상징적 그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 한다. 종교 학자들은 합리주의를 토대로 신을 무화시킨 과학도 현대의 종교라고 본다. 문제는 관점인 것이다. 우리가 타자와 소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초기 기독교에서 자행된,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배타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인류 문명의 핵심적 코드인 기호와 상징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서는 종교의 본질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으면 한다. 2004년 9월 9일
4 no image 브루스 나우먼의 개인전을 보고(2004/6/14)
소나무
5384 2007-06-05
브루스 나우먼 개인전을 보고 1. 지난 1990년대 초반 호암갤러리에서 브루스 나우먼(Bauce Nauman, 1941-)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광경을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이란 비디오 설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비디오 프로젝터 3대, 스테레오 스피커가 달린 6대의 모니터, 비디오디스크 플레이어 6대, 비디오 디스크 6장, 스피커 2대로 구성된 것으로, 어두운 방에 세 개의 스크린 벽과 6대의 모니터 상에 클로즈업된 삭발한 얼굴이 관객을 바라보며, “밥 좀 주세요, 인류학.....살려주세요, 날 때려줘요, 사회학.....”이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인간실존의 원초성과 형이상학적 이념이 착종된, 즉 휴머니티와 본능적 욕구를 강렬한 이미지와 소리로 교차시킴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지금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6월 9일-7월 15일까지) 브루스 나우먼의 개인전은 그의 초기작업부터 비교적 최근작까지 볼 수 있어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의 변모과정과 큰 맥락, 그리고 그의 작업 양상이 매우 다양했음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다. 비디오 아트는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1세대가 주로 정지 화면과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제도권 텔레비전의 일방소통적 특성에 맞서는 반문화적 방식으로써 텔레비전의 기능을 자의적으로 조정하고 왜곡하는 변형된 화면을 보여주는 공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면, 제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브루스 나우먼이나 비토 아콘치, 댄 그래함, 조안 조나스, 피터 캠퍼스, 대러 번바움 등은 비디오를 자신들의 작업과 결합하여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작업에 주력하면서 비디오 아트를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 잡게 한 주역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그저 주로 비디오 아트란 작업을 선구적으로 한 몇 몇 현대미술가로 아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이해다. 물론 이들의 작업을 미술 형식을 확장했다는 측면에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이들은 무엇보다 마르셀 뒤샹 이래 가장 철저하고도 래디칼한 방식으로 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주로 비디오 아트를 통해 제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제기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특유의 성격과 외연을 크게 넓혀놓은 작가들이다. 이 중에서 브루스 나우먼은 특히 자신의 ‘신체’나 ‘신체미술’을 소재로 하여 비디오 예술화한 장본인으로, 그래서 이후 세대로서 비디오 아트 작가라면 그의 영향을 직 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대다수의 현대 미술가들의 이력이 남다르듯이 브루스 나우먼도 그러하다. 물리학, 수학, 미술, 음악, 철학 등을 공부했으며, 특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심취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이 모든 다양한 전력이 종합된 것이다. 2.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주요 작품을 시기별로 고찰한다면 먼저, 지상 2층에서 볼 수 있는 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10분 짜리 16mm 무성 컬러 영화 네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각 영화에서 나우먼은 자신의 몸에 각기 다른 색깔(흰색, 분홍색, 녹색, 검은 색)의 페인트로 다르게 분장한다. (그러나 워낙 오래 됀 작품이어서 그런지 거의 흑백으로 보인다.) 이 네 장면은 네 면의 벽에 동시에 투사되고 장면도 빠르게 전개되어 극적이다. 이 작품을 통해 브루스 나우먼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지우는 듯한 행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란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 설치한 좁은 복도에서 두 손으로 목 뒤에서 깍지를 끼고 엉덩이는 심하게 비틀어대면서 르네상스 조각의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서구의 전통적 회화와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포즈를 말함)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으로 비좁은 복도를 힘겹게 반복해서 왕복하는 것이. 즉 강박적이고 불편한 움직임으로 고전예술의 한 전형을 신체의 실제 움직임으로 현실화하면서도 실은 통렬하고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속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이 폐소 공포증을 느낄 정도로 불편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브루스 나우먼이 비디오가 찍히는 동안 자신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위 작품 바로 옆에 전시된 가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스튜디오 공간에서 형광등을 갖고 노는데, 때로는 가랑이 사이에 불쑥 나오면서 빛나는 남근같이 보이기도 한다. 분명 당시 댄 플래빈과 같은 미니멀리스트를 의식한 작업으로서 즉 포스트 미니멀한 의식으로서 행위한 것이지만 흐린 이미지 속에 사람과 빛이 어우지면서 자아내는 그 묘한 대조로 인해, 또는 빛 속에 부각되는 행위의 극명성으로 인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한다. 또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있는 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네온 조각 작품으로 “Trust Me Only”와 “Big Studio 1984”라는 네온 글자를 십자로 배열되어 번갈아 명멸하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상업 자본주의의 표본인 싸구려 광고(식당, 섹스, 클럽, 비디오 가게, 카지노 등)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나만 믿으라”는 배리적 광고를 함으로써 역설적 아이러니와 모호함, 그리고 불분명한 유동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1층 전시실 안쪽에서 그 유명한 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려던 남녀가 식탁 앞에서 서로에게 한 장난이 발단이 되어 결국 치고 박는 폭력과 살인까지 저지르는 장면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사실 우리 삶의 실상을 너무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우리 삶의 모든 큰 일(?)이란 이처럼 사소한 일이 큰 일로 비화된 것이 아닌가? 이번에 출품된 그의 조각 작품 중 매력적인 작품으로 긴 막대 모양의 fiberglass로 만든 1965년에 제작된 꼽을 수 있다. 이는 역시 당시 미니멀한 작품들에 대한 안티적 특성을 드러낸 작품으로서 얼핏 보면 형상은 미니멀하지만 자세히 보면 손으로 만든 듯 울퉁불퉁한 흔적이 역력하다. 따라서 이것은 차갑고 기계적인 미니멀에 대응한 ‘안티’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라는 작품을 지하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말뚝을 박을 구덩이를 파는 힘든 목장 일을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계속되는 기계 소음과 함께 전개된다. 그래서 부인이 말을 걸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덩이를 파는데 열중하는 작가의 행위는 한 가지 일에 편집광적으로 몰두하는 작가적 삶의 단면을(기실 분야를 막론하고 인류사상 획을 긋는 업적들은 또한 바로 이러한 행위의 결과가 아닌가?) 일상적인 장면을 통해 너무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3. 이번 개인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브루스 나우먼의 선별된 작품은 그 성향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들은 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미술의 형식에 대해 근원적 문제제기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실존적 삶에 대한 통찰력이 두드러진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예컨대 그의 작품에서는 남근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이기 전에 ‘알파 수컷’ 특유의 고독함과 공격적인(?) 욕구의 심리적 표출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여전히 서구의 전통적 대이론에 근거한 심미적인 예술관(시간을 초월한 이상미라든가 비례를 전제한 조화미를 미술의 가치로 아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즉 ‘미’와 ‘추’가 분명한 서구의 이항대립적인 전통적 미의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미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혁신적이며 그만큼 탈근대적 요소를 띤다. 1960년대 이후 서구의 문화적 기류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 현대미술사에 끼친 커다란 그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 특유의 사유방식과 또한 후기 구조주의에 이르는 맨탈리티를 지닌 나로서는, 60년대 이래의 서구의 전위적 퍼포먼스도 그렇듯이, 브루스 나우먼의 작업이 너무도 소박하고 정직하게 느껴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다양한 작업들이란 삶의 다양한 리얼리티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으로 보일 뿐이다. 원래 동양인들에 있어 삶의 양태란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우발성이 곧 필연성이다. 그러므로 미와 추, 혹은 좋음과 좋지 않음, ‘선과 악’ 이란 이항 대립적 사고를 넘어선 것이 삶의 실상이다. 물론 브루스 나우만이 동양의 전통적 사고를 전제로 작업을 했다는 뜻은 아니며, 서양의 탈 근대적, 혹은 해체적 경향 속에 이러한 접점이 없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대 이후 브루스 나우만의 작업을 그저 감각적으로 수용한 많은 국내 작가들의 경우 그만큼 서구 역사의 특수성이라든가 삶의 본연에 대한 통찰의 미흡함을 스스로 입증해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작업이 냉철한 시각에서 보면 하등의 가치와 의미도 없는 ‘무명’과 ‘미망의 흔적’은 아닌지 이번 브루스 나우먼 전시를 눈여겨보며 깊이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영상매체를 다루든, 그림을 그리든, 로우테크든 하이테크든 문제는 삶이므로. 2004년 6월 14일 도 병 훈(작가) 사진:시간속의 '나'를 지운다… 브루스 나우만展 [조선일보 정재연 기자 기사중 발췌. 소나무갤러리)
3 no image 전원길의 개인전을 보고(2004/5/27)
소나무
3817 2007-06-05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 전원길의 개인전에 대하여 1. 5월 22일인 지난 토요일에 안성에 있는 소나무S갤러리에서, 주로 회화작업을 하면서도 그러한 작업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야외설치 작업을 병행하기도 하는 전원길의 개인전 오픈 행사가 있었다. 나는 그날 금강 자연미술 비엔날레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독일인 안케 멜린씨와 함께 지정 질문자로 초대되어 전원길의 작업에 대해 질의를 했다.(*진행은 작가인 김희곤이 맡았으며 통역은 신학박사인 황영철 선생님이 함) 흔히 전시회 오픈 날 전시장에 가보면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전시 오픈 행사란 오랜 만에 만난 지인들끼리의 안부나 근황,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다가 끝까지 남는 사람들끼리는 저녁이나 같이 먹고 술을 마시거나, 차 한 잔 하고 헤어지는 게 관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원길의 개인전의 오픈 행사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원길은 현재 소나무S갤러리 관장이면서 한남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한 나와는 거의 동년배 작가이다. 그는 지난 80년대 주로 지역 자연 미술 단체인 ‘야투’에서 활동해왔으며, 1990년 중반 이후 영국 런던의 인스티튜트 첼시 미술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주로 회화 작업을 해왔다. 2. 전원길의 이번 개인전 작품은 회화와 야외 작업이 함께 전시되었는데. 이중 회화의 경우 자신의 작업실 마당의 포도나무와 초여름 잦은 비로 잘 여물지 않은 호박밭을 일년 가까이 지켜보며 작업한 것이다. 그는 그동안 사물의 색과 똑같은 단색 화면을 만들고 그 위에 사물의 대상과 속성을 색 조절 과정, 즉 색의 바리에이션을 통해 주로 작업해왔다. 화면 속에서 생명체를 새로이 키우는 작업을 해온 것이다.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통해 빛 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어 스스로를 자연 속에서 성장시키듯 전원길은 화면 위에 하나의 생명을 싹트게 하고 자라게 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그의 작업을 보았을 때 이러한 발상과 표현이 매우 신선했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그동안의 방법론을 더욱 심화하여 대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나뭇잎과 같은 실제의 사물이나 사진 이미지를 화면에 붙이고 그 위에 한 붓 한 붓 물감 점을 연속으로 찍어 증식하는 선으로 이어지게 하거나 하나의 덩어리를 형성하거나 하는 과정을 색채를 조율하는 방법을 통해 표현했다. 이러한 최근 작업에 대해 전원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감을 올려 붙여 나가는 작업에서는 ‘그린다’는 전통적 감성보다는 ‘일한다’는 현장감을 더욱 느끼게 되는데 이는 마당에서 삽이나 괭이를 들고 흙과 더불어 일할 때의 기분과 동일하다. 화면 위에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듯 점점이 움직여 나가는 작은 물감 덩어리들은 명백한 이미지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실물로 남겨지며 빛을 받아들이는 반 입체 공간을 형성한다. 사물의 존재감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이와 같은 작업은 대상 자체가 물감으로 뒤덮여져 결국은 본 실체와 그 위에 만들어진 새로운 작업 결과물이 물리적으로 하나가 되고 원래의 대상 위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색채 탐색과정은 시각적 자연성을 드러낸다.....(중략).....시간을 따라 다층적으로 쌓여지며 각 단계가 서로 관련을 맺게 되는 이러한 작업의 전개 방식은 원인과 결과가 상호작용을 하는 자연의 보이지 않은 구조를 반영하며,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함께 존재하고 내일의 시간이 이미 화면 속에 등장하는 통시적通時的 회화 공간을 보여준다. 위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전원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발상과 작업 과정, 즉 한 작가의 자연관과 작업 과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날 나는 주 질문자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작가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간 오랫동안 쌓아 온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적절하게 답변해주었다. 그래서 그 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직접 작가로부터 작업의 과정과 작품의 특성에 대해 설명을 듣는 호강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전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진지한 담론은 매우 바람직하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미술문화를 좀 더 풍성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의 주된 질의 내용이기도 한, 그의 작업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한없이 추하기도 하고 섬뜩할 수도 있는(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생명의 여러 다면적 특성을 색채의 조율과정을 통한 섬세한 선적 표현이 주가 되게 함으로써 이러한 작위적 아기자기함이 화면의 힘을 약화시키는 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즉 화면에서의 섬세한 색채의 변주는 자칫하면 ‘표면적인 장식성’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품의 경우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예술에 있어 예쁘다는 것은 찬사가 아니다. 그것은 ‘예쁨’이 사물의 리얼리티를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 중 해바라기 씨앗이 화면에 가득히 흩뿌려지거나 부분적으로는 집약되어 씨앗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최근 회화를 보면 그 거칠면서도 응집력 있는 표현력으로 인해 시각을 넘어선 힘이 느껴진다. 물론 안젤름 키퍼의 회화와 전원길의 작업은 그 추구하는 방법론이 다르긴 하지만, 식물을 모티브로 하여 생명의 실상을 자각케 하는 유사성이 있다. 사실 회화든 아니면 다른 방식의 표현이든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은 힘을 가시화하는 원초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 작품들이 지니는 공통분모가 있다면 이러한 특성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그날 안케 멜린씨도 말했듯이, <pumpkin field>작품 같은 경우, 암울한 느낌을 주는 회색, 또는 군데군데 검은 색 바탕 위에 무수한 점으로 증식되는 생명체가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생성(삶)과 소멸(죽음)하는 과정을 유전자 차원에서 바라본 듯하여 가까이서 보면 부분 부분적으로는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역시 선적 아기자기한 요소가 더 두드러져 작품의 힘을 감소시키는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 함께 전시된 야외작업 중 마당 한 가운데 주변에서 모은 크고 작은 가까운 돌을 쪽을 맞추어 지름 1.5m 크기의 타원형으로 연결한 다음,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자연광의 변화에 의해 생긴 명암의 경계를 따라가며 색채 조율 흔적을 남긴 작업은 우리 삶에 있어 시간성을 자각케 한 작업이다. 특히 밝은 색의 돌의 느낌과 자연스러운 타원형으로 인해 우리의 심연에 있는 원형무의식을 일깨운다. 회화 작업이나 야외작업이나 전원길은 자신의 작업의 내적 필연성을 방증 하는 의식과 더불어 색채의 조율과정을 통한 “순환하는 색채와 사물”이라는 독자적 방법론을 갖고 있다. 기실 이는 우리 화단에서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간 전원길의 작업을 주목해왔으며, 그의 작업의 전개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 3. 최근 수년간 전원길의 작업을 지켜보며 느껴왔지만 작가로서의 정신적 기반이 허약한 이 땅의 많은 작가들과 달리 그는 작가적 바탕이 매우 탄탄하다. 그만큼 자신만의 작업형식에 대한 분명한 컨셉이 있는 작가이며, 이는 그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짐작케 한다. 요컨대 그의 장점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호기심으로 자연을 경이롭게 경험하며, 그것을 자신만의 독자적 방식으로 심화하여 표현할 줄 아는 작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원길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작가의 행로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향후 우리 미술판에 기여할 그의 활동을 기대한다. (*그의 작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www.sonahmoo. com으로 들어가 전원길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된다. 물론 그의 작품도 볼 수 있다.) 2004년 5월 27일 도 병 훈(작가) ......................................... 전원길 [2004/5/28 (8:37)] 좋은 질문으로 의미있는 토론을 엮어주시고, 깊은 동료애를 바탕으로 올려주신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2 no image 원효의 사상과 삶, 그 현대적 의미(2003/12/19)
소나무
6530 2007-06-05
들어가면서 원효는 삼국 중 가장 뒤늦게 불교를 수용했던 신라에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지 1백여 년만에, 신라뿐 만 아니라 전 불교사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불교라는 종교의 틀조차 벗어버린 파격의 삶을 산 사람이다. 즉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적 체계를 세운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면서도 그러한 체계를 넘어 자신의 삶과 치열하게 맞서서 무애(無碍), 즉 '자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원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그토록 많이 연구되고, {{각주1, 20세기초인 1908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원효 관련 주요 학술논문만 67편이며, 한국에서는 1917년부터 1988년까지만 주요 논문이 400편에 이른다. 國譯元曉聖師全書 (卷六),원효전서 국역 간행회, 1989년, 부록 참조}} 또 그의 삶이 마치 현대 전위예술가의 삶과 비견되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까닭이 바로 이처럼 특이한 '양면성'에 있다. 현재 일본 교토의 고산사(高山寺)에 남아있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원효의 초상 {{각주2, 일본에는 고대 8세기의 목조 건물이 남아 있고, 또 신라시대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고대의 유물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이 원효의 초상은 물론 원효가 살아 있을 때 그린 초상은 아니고 수 백 년 후에 원본을 모사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물의 특성과 표정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사진을 보는 듯 생생하다. 또 원효의 초상이 그려지고 지금도 일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고대 일본에서 원효는 대단한 인물로 추앙 받았음을 알 수 있다.}}을 보면 점잖은 학자풍이나 이상화된 고승의 모습이 아니라 성깔있어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는 것이 마치 매우 드센 기질의 젊은 무인의 모습 같아 그의 원래의 풍모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행적과 발언은 광발패, 즉 미친 듯이 패륜적이고 틀을 벗어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각주3, 無何言狂發悖示跡乘疎, 「宋高僧傳 卷四 義解篇, 唐新羅國黃龍寺元曉傳」, 國譯元曉聖師全書 (卷六), 722-723에서 재인용.}}는 기록과 부합된다. 이처럼 그의 예사롭지 않은 풍모, 또한 그 행적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도 그의 삶이 말 그대로의 패륜이 아니라 매우 치열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의 제반 행적은 언제나 '오래된 미래'처럼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생전에 100부 240 권(혹은 85부 181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것은 주로 불교 경전에 관한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궁극엔 그 논리를 넘어서는 해석서다. 물론 원효가 직접 쓴 당시의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나, 주요 저술 20부 22권이 후세의 모본으로 현존하고 있어 이를 통해 원효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원효의 학문세계는 석가 입멸 이후 인도에서 성립한 원시 '부파 불교' 이래로 그 학문적 방대함과 깊이에 있어 분수령을 이룬다. 원효 이전의 중국 및 신라에 수용된 인도 불교사상의 통합은 물론 유교 도교에 이르기까지 망라하고 있어 그 대단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석가 당시의 원시불교사상이 수백 년 후 인도에서 '유식(唯識)'사상 {{각주4, 서기 4세기경 북인도 간다라 국 사람인 바수반두(Vasubandhu)의 『유식삼식송』으로부터 유래하는 불교사상이다.}}과 '반야(般若=空)' {{각주5, 서기 2-3세기 경 인도의 나가르쥬나(N g juna)의 『중론(중관론)』에서 정립된 사상을 말한다.}} 사상, 『섭대승론』 {{각주6, 4세기 경 인도의 아상가(Asanga, 310-390)의 저서다.}} 등의 교학불교로 정립되고, 또 이러한 교학불교가 중국에서 구역 · 신역으로 다르게 번역되면서 신 · 구의 대립으로 인한 종파적 분열로 양분되었을 때 이러한 양자의 학설을 통합한 경전인 『대승기신론』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논리로 세분화하고 집대성한 것이 원효 사상의 진면목인 『대승기신론소 · 별기』이다. 그래서 이러한 원효의 사상은 당시 신라와 당나라는 물론 고려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 {{각주7, 원효의 저서 중 화엄경소는 중국에서 "해동소(海東疏)"로 칭해질 정도로 주요 경전으로 취급되었다. 특히 중국 화엄종의 제 3조인 법장(法藏, 643-713)의 화엄사상에 형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중국 법상종의 제 2조인 혜소(慧沼)의 저서에도 원효 저서가 인용되며, 일본에서도 원효의 저서들은 일본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불교사상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원효 사상의 바탕인 교학불교적 경전을 부정하고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각주 8, 중국에서 선종, 즉 선불교의 성립은 불교와 도교의 융합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번쇄한 논리의 교학불교적 인도불교가 중국화된 것은 보다 근원적으로는 '단음절어'로서 논리적 언어체계가 아니었던 한자의 언어적 특성에 기인하며, 그래서 선종의 전단계인 천태종이나 화엄종에서도 이미 선불교의 싹이 엿보인다. 중국의 화업종에 원효의 사상이 어느정도는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선종'이 성립하기 까지에는 원효의 사상도 간접적으로 일조를 했다.}} 에서 교학불교적 이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가 됨으로써 사상적으로는 동아시아 교학불교, 즉 학문적 깊이를 가진 불교철학이 원효를 정점으로 점차로 쇠퇴해버린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주류 불교는 원효 이후 중국에서 성립한 선종 일파인 조계종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주류 불교의 시조도 실질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보조 지눌(普照 知訥, 1158-1210)과 태고 보우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민중 불교는 샤머니즘적인 기복 불교여서 원효 사상과 삶의 진면목은 현재 불교계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한국과 일본의 불교 전문학자들에 의해서만 그의 저술에 대해 불교사상으로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개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상투적으로 그의 사상이 학문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다. 내가 오래전부터 원효의 사상과 삶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먼저 그의 사상에서 20세기 후반의 주요철학과 비견될 수 있는 철학적 깊이와 넓이를 직감하고 나서이다. 물론 피상적으로 보면 탈근대적 사상이 이른바 '해체주의' 라면 원효 사상은 '통합주의'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동서 간의 천수백년의 시공을 넘어 사유의 보편적 특성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원효의 삶에서 논리 이전과 논리 이후를 지향하는 전위적인 현대예술가의 선례를 보는 듯하다.방대한 학문의 스케일과 그 논리의 치밀함과 정교함, 그럼에도 궁극엔 학문을 넘어서는 그의 사상과 예술적 삶에서 우리는 동서와 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 삶의 단서를 자각할 수 있다. 원효 사상의 철학적 특성 현재 원효의 텍스트는 20부가 현존한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승기신론 소 별기』와 『금강삼매경론』이다. 원효 사상의 주요 언표는 일심, 화쟁, 일미관행, 무애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사상의 핵심인 '일심'은 그 이전의 불교사상을 아우르는 방편적 용어다. 그는 『대승기신론 소 별기』에서 이 일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심이란 무엇인가? 더러움과 깨끗함의 모든 법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고, 참됨과 거짓됨의 두 문은 다름이 없으므로 하나라 이름 하는 것이다. 이 둘이 아닌 곳에서 모든 법은 가장 진실되어 허공과 같지 않으며, 그 성품은 스스로 신령스레 알아차리므로 마음이라 이름한다.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가 있으며, 하나도 있지 않거늘 무엇을 두고 마음이라 하겠는가. 이 도리는 언설을 떠나고 사려를 끊었으므로 무엇이라 지목할지 몰라 억지로 일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각주9, 何爲一心? 謂染 淨諸法其性無二; 眞妄二門不得有二, 故名爲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爲心. 然旣無有二, 하득유일; 일무소유, 취수일심, 여시도리, 이언절처, 부지하이목지, 강호위일심야 「대승기신론 소 별기」『한국불교전서(1책)』, 741쪽}} 단적으로 말해서 원효가 말하는 일심의 '심'은 서구적 의미의 유심론적 '마음'이 아니다. 원효의 이 '일심'론을 유심론적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실 동양의 한자문명권의 '심(心)'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서구적 의미의 마음, 즉 '마인드(mind)'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 서구적 의미의 마인드는 데카르트가 고대 희랍과 중세 기독교 철학이 상정하던 영혼이라는 개념과 구별하여 창안한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를테면 외적 공간을 내적공간인 마인드가 반영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는 것으로, 새로운 근대적 주체를 가능하게 한 개념인 것이다. 현재 우리의 문명은 이러한 근대적 인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비록 한자로 마음 '심'자를 쓴다 해도 다분히 데카르트적 의미의 마음으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양의 '심'은 오행 사상의 불(火)에 해당하는 한의학적 개념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근대적 '마인드'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원효의 '일심'은 이러한 데카르트적 의미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언표다. 그간의 대다수의 불교 학자들도 이 일심을 '대승적 한마음'이나 '궁극적 진리와 한 마음을 이룬다'는 실체론적 유심론으로 해석해왔으나 이는 적절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탈근대적인 시각 즉 '텍스트 이론'에 입각한 관점에서 보면 이 일심론은 새로운 맥락의 의미를 갖는다. 텍스트 이론은 종래의 세계, 역사, 예술 등을 미완결된 기호의 연쇄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텍스트 이론으로 본다면 원효의 사상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각주10, 이러한 '택스트 이론'으로 원효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학자가 김형효다. 이 글에서의 '텍스트 이론'적 해석은 한 김형효의 글을 주로 참조했다. 「원효 사상의 텍스트 이론적 독법」,『 원효에서 다산까지』,(청계, 2000) 13-158쪽 참조.}} 그래서 원효의 '일심'에 대해서도 이 텍스트 이론에 근거하여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즉 종래의 일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실체적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심론의 핵심은 진여문과 생멸문, 즉 '진'과 '속'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不二)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문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전체(총상)와 부분(별상)이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이기도 하고 또 양의적이기도 하다. 즉 하나가 아니면서도 둘이 아닌 것으로서(不一而不二) 자크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산종(散種, la diss mination)이다. {{각주11, 산종이란 원래 씨 종자 같은 것이 널리 뿌려지고 퍼져나감을 뜻한다. 이를 데리다는 '종자(semence)의 퍼짐'과 '의미(s mie)의 퍼짐'이라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다.}} "같을 수 없음은 같으면서도 동시에 다르다는 것이고, 다를 수 없음은 다르면서 동시에 같다는 것이다. 같음은 다름에 의거해서 같음을 구별한 것이고, 다름은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한 것이다.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한 것이다.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하는 것은 같음을 분열시켜서 다름을 만드는 것이다.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하는 것은 같음을 분열시켜서 다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다름에 의거해서 같음을 변별하는 것은 다름을 녹여서 같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같음은 다름을 녹인 것이 아니기에 '같다'고 말할 수 없고, 다름은 같음을 분열시킨 것이 아니기에 '다르다'로 말할 수 없다. 단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같다고 말할 수 있고, '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위의 말은 현대 사상가 데리다의 말 같지만 원효의 말이다. {{각주12, 데리다는 "같은 것은 다른 것의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은 자기와 다르게 같은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다름과 같음에 대한 치밀한 논리전개는 원효의 다른 글인 『열반경 종요』에서 "염이불염 불염이염(染而不染, 不染而染", 즉 물들기도 하고 물들지 않기도 하고 물들지 않기도 하고 물들기도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일심은 데리다 철학의 핵심 개념인 차이(diff rence)와 접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차연(差延, diff rance)' 의 차원에서 새로운 독법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일심의 진여문과 생멸문는 '차이'지만 진여문은 생멸문을 통해 유예 즉 연기함으로써 이해된다. 그리고 사유에 대한 이러한 차연적 논리는 현존하는 원효의 어느 글에서나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이러한 원효 사상의 특성은 불교사상사의 양대 조류인 유식사상과 반야사상이 『기신론』에서 종합된 것을 다시 화쟁적으로 통합 {{각주13, 이 통합도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텍스트의 끊임없는 인용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반복은 시간 저장소를 달리하여 산종되어 나가므로 스스로를 갱신한다. 이를 데리다는 간텍스트성 (또는 상호원전성, intertextualit)이라 한다. 원효의 저술이 주로 주석서가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 중에는 그 독창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결국 이러한 간택스트성에 대한 무지의 소치에 지나지 않는다.}}한 것이다. 먼저, 유식사상은 인간의 인식 단계에 대한 정교한 논리를 전제로 한다. 즉 사람의 의식을 8단계로 나눈다. 즉 오감의 인식작용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라는 전오식과 이 오감을 하나의 통각작용으로 의식하는 전6식, 그리고 마나스식(思量識)인 제7식은 사유하는 자아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제8식인 아알라야 식(藏識)에게 아집과 자의식을 갖도록 하는(훈습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유식사상은 앞에 말한 7식의 근본인 이 아알라야식을 기조로 한다. 이 아알라야 식은 일체의 행동을 성립케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식은 인간을 선하게 행동하게도 하고 악하게 행동하게 하기도 하므로 '이숙식(里熟識)'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8식 가운데 전오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변하고,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변하며, 마나스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변하고 아알라야 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변하여 우리 인간이 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후천적 수행(공부)을 중시한 것이다. 이와 달리 중관학파의 사상이라고도 하는 반야사상은, 만물의 일체를 '공'으로 본 사상이지만 그렇다고 현상적인 생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각주14, 인연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존재는 공 아닌 것이 없다. (나가르 쥬나,, 김성철 역주,『중론』,414쪽.) 만일 일체의 것이 공하지 않다면 생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성제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415쪽) 만일 일체가 공하다면 생도 없도 없고 멸도 없다. 그렇다면 사성제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가르쥬나, 앞의 책, 401쪽}} 그럼에도 인간의 마음은 원래 청정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두 학파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양자의 입장을 대승적으로 통합하려한 것이 대승기신론이었고, 원효는 이 대승기신론을 주석하는 책을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저인 금강삼매경론』도 이러한 시각에서 쓴 것이다. 예컨대 첫 머리의 "무릇 일심의 원천은 유 · 무를 떠나서 홀로 청정하며 삼공{{각주 15, 이런 삼공에 대해 유식사상, 즉 법상종에서는 삼성이 모두 공한 것으로 보며, 이를 삼성설이라 한다. 삼성이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말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법이 있다. 즉 한밤중에 뱀을 밟았다고 깜짝 놀라는 것이 변계소집성이며, 불을 밝혀 살펴보니 그 뱀은 하나의 새끼였다는 의타기성, 더욱 자세히 보니 그 새끼는 삼줄이었다는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이 삼성이 공한 것을 '삼공'이라 한다. 먼저 변계소집성은 언어와 명칭에 의해 대상세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유식의 단계다. 의타기성은 삼라만상이 인연소생임을 아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의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고 고유한 자가성을 갖지 않는다. 원성실성은 원만히 성취된 진실이라는 뜻으로 불생불멸의 궁국적 세계를 암시한다.}} 의 바다는 진과 속을 융합하여 담연하다"는 구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공은 절대적인 공이 아니라 공/불공이 동시에 성립하는 일심의 공이다. 그래서 원효는 무공도 아니고 유공도 아니라고 이중부정으로 발했던 것이다. 데리다식으로 말하면 '차연'인 셈이다. "열면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뜻이 대종이다. 합하면 이문 일심의 법이 요점이다. 그 두분 속에 다 포용되어 조금도 혼란됨이 없으며 가없는 뜻이 일심과 하나가 되어 혼융된다. 이런 까닭에 열리고 합함이 자재하고, 세우고 깨트림에 걸림이 없다. 연다고 번거로운 것이 아니고 합친다고 좁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세우되 얻음이 없고, 깨트리되 잃음이 없다."{{각주16, 대승기신론소, 한국불교전서 1책, 733쪽.}} 그래서 원효는 이에 대해 다른 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세계이고 이언절려(離言絶慮), 즉 말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 논리가 원효의 일심 속에 포괄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효의 '일심'은 그의 『열반종요』에서는 '일미(一味)'로 표현된다. 이런 구절을 통해서도 '일심'이란 언표를 그저 유심론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불교경전의 부분을 통합하여 온갖 흐름의 한 맛(일미)으로 돌아가게 하고, 부처의 뜻이 지극히 공정함을 전개하여 백가지의 뭇 주장을 화해시킨다." {{각주15, 열반종요(한국불교전서 1책, 524쪽) 統衆典之部分, 歸萬流之一味, 開佛意之至公, 和百家之異諍.}} 바로 그 유명한 화쟁론인 것이다. 이처럼 원효의 사상은 종합적인 지적 체계이다. 그러나 원효는 지적 체계, 즉 언어의 한계성과 그로 인한 사유의 모순성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국에는 이러한 지적 체계를 넘어선 삶을 지향한다. 그것이 요컨대 일미관행(一味觀行), 또는 부주열반(不注涅槃) {{각주16, 현대불교학자 은정희는 원효의 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주장한 것이 이 부주열반, 즉 '진'과 '속'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과 속이 하나라고 본다.}} 원효사상과 "일미관행"의 현대적 의미 전통적인 예술은 내용(기의)을 표현하기 위한 형식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은 구분되지 않으며 오히려 형식이 곧 내용이기도 한다. 그 극단적 경우가 바로 이른바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형식주의적 예술의 한계를 탈근대적인 철학적 사유에서 자각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원효의 '일미관행'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즉 '일미'를 통해 극단에 빠지지 않은 사고의 폭과 깊이를 자각할 수 있으며 '관행'을 통해 사고를 넘어선 실천적 예술론의 단서를 자각할 수 있다. 이처럼 원효의 사상은 탈근대적인 해체철학과 유사한 면이 있으며, 또한 그의 삶은 마치 현대의 전위적인 예술가적 삶의 선구적 예를 보는 듯하다. 이를테면 "작품의 진리는 존재하면서 부재한다. 진리는 결코 작품 속에 한번에 현전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기표의 놀이, 즉 그것들의 차이, 연기, 산종의 유희일 뿐이다."는 데리다의 철학은 존재/비존재, 공/유(실), 진/속, 염/정, 열반/세간, 각/불각, 진여/생멸, 종자(잠재적인 현상)/현행(구체적인 현상) 파(破)/입(立)을 하나로 보면서도 그 차이를 인정하는 원효의 일심, 일미적 화쟁 사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흔히 동양미 하면 '여백의 미'라고 말하면서 또 그것을 미학으로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노자는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 이를테면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하게 하라 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끊임없이 유위적으로 욕망을 채움에 대한 상대적인 언표일 뿐 미학적 지향성이 될 수는 없다. 사실 이 '여백'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공'이다. 그러나 공은 사실 그저 비어있음이 아니다. 이에 대해 원효는 앞에서 말했듯이 『금강삼매경론』에서 "삼공의 바다는 진과 속을 융합하여 크고 담연하다"고 말하거나 "유를 싫어하고 공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靑)과 남(藍)이 동체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이 만 가지 형태를 다 용납함과 같다"고 했다. 유가 사상만 하더라도 중용에 잘 드러나듯이 다이내믹한 '시중'의 관계성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정태적인 '여백의 미'라는 말은 동양의 사상을 오해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일심, 일미관행론은 어떤 의미에서 명말청초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석도(石濤)의 일획론(一 論)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석도의 일획론이 어디까지나 중국화론의 대단원임에 비하여 원효의 일심론은 보다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생각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현대 예술은 정해진 규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감각적 직관의 표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철학적 성찰을 전제로 한다. 원효의 일심, 혹은 일미관행은 논증적 진리를 넘어선 철학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늘 더 확장된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삶과 예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맺음말 현대문명이 현대인에게 준 혜택 못지않게 커다란 상처를 초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구와 이슬람 문명간의 대립과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새로운 문명적 성찰과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동서고금을 살았던 사람들의 사상적 가치나 삶에 대한 재음미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원효의 '화쟁' 사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원효의 사상은 결코 어느 특정종교의 경전이거나 형이상학적 체계가 아니다. 무엇보다 원효의 삶은 그의 일심론을 통해 알 수 있듯 일심을 바탕으로 한 일미관행, 즉 무애의 실천이었다. 즉 그는 일체의 굴레에서 벗어난(不羈)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사상이나 삶을 생각할수록 그 스케일과 깊이가 너무도 방대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천 수백 년 전에 이처럼 엄청난 사상가이자 실천가가 이 조그만 반도의 한 구석에 실존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은 그가 남겨놓은 글들이 그저 고대의 소박한 고전적 담론이 아니라 현대의 탈현대적 철학과 예술론적 관점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가 때로는 저잣거리에서 바가지를 들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때로는 아무데나 거리낌 없이 드나들고, 그런가하면 산수에 머물며 좌선을 하기도 하면서 걸림 없이 살았듯, 언제 어디서나 그처럼 넓고 깊게 살 수 있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내심 갈구하는 삶이 아닌가. 비록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지만 바다처럼 담연(湛然), 즉 넉넉한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삶이 아닌가. 2003년 12월 15일
1 no image 글 잘 읽었습니다(2003/9/25
소나무
4558 200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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