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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 no image 다시 야생의 과학으로.... (2)
1619 2015-01-11
제 3장 [頭上의 콘] 1 토리스탄.쯔아라에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뫃임인 [실크.쯔아라]에 초대해 주셔서 본인으로써는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인류학이란 근래에 와서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게 된 학문의 연구에 관계해 왔습니다만, 이는 내가 사회라고 하는 것이 아직 시장적인 원리를 제어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던 시대의 인간의 사고나 마음의 향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를 非市場社會라 부를 수 있다면, 이 비시장사회에서는 인간은 무언가 목적의 실현을 겨냥하여 합리적인 행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의 근저라 할 수 있는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활동은 통상의 사고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나, 비시장사회의 사람들은 쉽게 마음의 내면공간을 오가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어, 싑게 사고의 모-드를 전환함으로써 마음의 내면의 자유로운 공간과 인과법칙에 지배되고 있는 현실세계를 이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함에 능했던 것입니다. 詩의 언어와 神話의 사고는, 그렇게 개발된 방법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인류학과 같은 학문을 배우기 시작할 즈음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모험가중에서도 특히 토리스탄.쯔아라의 예술세계에서의 창조에, 강하게 매료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쯔아라의 세계속에서 한 사람의 정진정명의 [미개인]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다름 아닙니다. 20세기 초두의, 경제인류학자 보란니-가 말했던 [대전환]의 시대속에서 쯔아라는 예술과 인생의 라지컬한 쇄신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던 당초부터 그 [심]속에 이미 사장적 원리가 셋트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적인 원리라고 하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것과는 별개의 원리에 의해 인간과 세계사이에 하나의 이음을 만들려고 했던 잠재력입니다. 사회라고 하는 것은, 가계나 재산이나 영향력에 의해 사회안에서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하는 계층성을 이루는 구조로 만들어 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市場的인 원리는 사회속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그러한 위치나 역관계등을 일시적으로 해소 하고 사람들을 별도의 [자유로운 원리]에 의해 맺게 하는, 강한 내면적인 충동에 의해, 사회와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인간을 구조속에서 구속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시장적인 원리는, 구속의 해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시장공간에서는 생의 힘이 넘처나며 그 강한 강도를 가진 생의 힘을 화페와 같은 것으로 평준화시켜 재통합한다는 다이나믹한 프로세스가 지배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회와 시장은 원리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관계입니다만, 그런 식으로 대립된 두나의 원리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호모사피엔스는 새로운 인류로 지구상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아마도 쉽게 봐도 십만년 이상 동안, 인간은 사회에 의해 시장을 포위하고 시장의 원리의 활동을 제어함으로써 사회와 시장간의 균형을 유지해 왔습니다. 시장의 힘이 사회의 전면에 넘처 나는 사태를 교묘한 지혜를 쓰서 억제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백년정도 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에서 이러한 균형의 결정적인 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나 物을 구속에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존재로 변환하려는 시장원리가 여태와는 반대로 사회를 包圍하여 사회의 내부에 까지 시장적인 원리를 침식시키는 운동이 크다란 규모로 일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것이 상품이 되는 가능성을 갖게 되며, 그 중에서도 특별한 상품인 貨幣가 사회를 解體.變容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백년정도에서는 손드덤으로 시장형사회의 병아리 수준에서 묘색되다가 산업혁명의 폭발과 더불어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면 원활한 작동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유방임]이야 말로 시장이 원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장이 발달함으로써 서유럽의 사회는 심각한 諸問題를 안게 됩니다. 시장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희박하게 하면서 자율적인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해 지고, 반복되는 공황이 사회적 불안을 교란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적인 윈리에 의한 사회의 해체쪽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서유럽의 사회가 직면했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지각색의 운동이 일어 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와 파아시즘은 유럽을 넘어 세계 전체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숩니다. 서유럽은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전환의 시대에, 토리스탄.쯔아라는 세계의 전면적인 쇄신을 구하는 라지컬한 모험을 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루-마니아를 나온 쯔아라는 츄-릿히와 파리에서 다다이즘의 운동을 개시하였습니다. 다다이즘은 슈리얼리즘와 마찬가지로 파라독스의 운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시장의 원리가 경직화된 사회의 구속성을 해체해 가려고 하는, 말하건데, [모던] 운동에는 깊은 공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들이 전개한 운동자체가 [모던] 문화의 표현이란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근원적으로 추동하는 시장원리에 대해서는 극열하게 반대하였습니다. 다다이스트나 슈리얼리스트도 正眞正銘한 [모더니스트]였음으로 공동체의 힘을 부활시켜 다시 한번 사회에 의해 시장을 둘려 싸고 신장원리의 폭주를 멈추려는 생각에는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본주의라 불리는 이 시장사회가 진실한 自由空間이 아니란 점을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시장공간은 목적론에 의해 지배됩니다. 그기에서는 인간행위가 갖는 합리적인 측면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되고 그 공간을 만드는 제반사 인과의 법칙에 의해 결정됩니다만, 이것과 잘 어울리도록 만든 [불죠아사회]는 인과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자유로운 운동을 하는 인간의 마음의 중요한 부분을 억압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쯔아라와 같은 예술가는 시장원리에 의해 해체되고 개조된 불죠아적인 유-럽문화는 죽으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의 자유공간이 시장원리에 의해 개조되지 않는 상태를 찾아 나서, 아프리카나 아세아나 오-스트랄리아의 선주민예술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이들 비시장사회에서는 마음의 자유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예술과 사회의 구조원리가 균형이 잘 잡혀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다.슈리얼리스트들은 여기서 충분히 발달된 [모던]세계에서, 목적론적시장원리가 무너진 점에서 출현되어 질 마음의 자유공간의 표현의 싹을 발견할 주 있다는 확신을 품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부르톤이 약간의 민족학자 수준의 수집가였음은 잘 알려저 있었으며, 막스.엘른스트가 수집한 호비족의 카치나-인형의 코렉션의 질이 높았다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봐도 깜작 놀라게 할 정도입니다. 쟉크.라칸까지도 미국북서해안의 인디언의 목각품의 수집가였음이 알려저 있습니다. 다다와 슈리얼리즘의 운동은 이렇게 인류학과도 깊은 관계고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 내가 이런 현대예술의 모험가들 중에서 특히 토리스탄.쯔아라라고 하는 루-마니아출신의 이상한 시인에 이끌렸던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쯔아라가 창조의 원리로 한 것이 비시장사회의 철학이었던 신화적 사고의 본질을 보여주는 점에서 실은 이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고, 뿐만 아니라, 그 공통성을 탐색해 가면, 실은 이것이 매우 조직적으로 행해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쯔아라는 한사람의 아프리카인, 한 사람의 오스트렐리아선주민의 방법으로 실제로 사고를 하고 詩的창조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마치 한 사람의 미개인과 같이 사고하고 창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현대에서는 여간해서 일어 날 수 없는 일이지만, 토리스탄.쯔아라라고 하는 시인에서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일어 났던 것입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번에 나는 쯔아라가 마치 한 사람의 미개인과 같이 사고한 것을 입증해 보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는 쯔아라의 연구자는 아님으로 내가 하는 [입증]이 그의 창조의 전영역을 메쿠는 일이 아님을 이해 해 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취하는 방법을 확대해 가면, 언젠가는 토리스탄.쯔아라가 한 사람의 미개인 였음을 체계적으로 나타내는 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임을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1253 no image 다시 [야생의 과학]으로.....
1544 2015-01-05
[野生의 科學] 2部 -다시 [야생의 과학]으로…. 제 2장 [불가사의한 고리(環.ring)]를 안으로 끌어 넣은 人間科學 모든 수학자가 아는바 와 같이, 몽롱한 유사, 하나의 이론에서 안개 넘어 타의 이론에 보내는 一瞥, 남몰래 하는 애무, 설명불능한 잡동산이 상태등, 이 이상으로 풍요로운 것을 약속해주는 것은 없다. 또한 연구자에게 이 이상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도 없다. 그러나 환영이 사라지는 날이 다가 온다. 그때, 불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이 되고, 원래 동일한 이론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은 각기의 개별성이 소멸하기전에 共通의 源泉을 밝힌다. [바가닷드.기타]가 가르켜 주고 있듯이 사람은 그때 동시에 지식과 무관심에 이른다. 형이상학은 수학이 되고 더 이상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는 찬(冷) 美를 갖춘 논문의 내용으로 그 모습을 바뀌 버린다. - (안드레.베이유 : [形而上學에서 數學으로] 인간의 과학에 [불가사의한 사슬]을 접합시키려는 시도는, 여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그것이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예는 드물다. [불가사의한 고리]는 보통의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階層의 事物을, 특별한 구조를 가진 루-프를 가지고 서로 잇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것을 고전논리로 표현하려고 하면 파라독스를 띠게 된다. 여태까지의 과학은 그 때문에 [불가사의한 사슬]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자신의 내부 속으로 整合的으로 접합시킬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생명현상이 있는 곳, 직관적 사고가 행해지는 곳, 예술적인 창조나 감상이 이루어지는 곳, 즉 [인간적인] 현상이 관련되어 있는 곳에는 모두 [불가사의한 사슬]의 구조를 갖지 않으면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줄곧 일어 날것이다. 그기서 [불가의한 사슬]을 인간의 과학에 끼어 넣는 일이, 진지하게 검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에 몇가지 곤란한 점이 수반되는 것인데 그 때문에 고전적인 사고를 쓰는 종래의 방법이 여전히 인간적 현상의 과학에서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분야에서 적지 않는 弊害가 일어 나고 있다. 특히 경제의 영역에서는 고전적 사고가 계속 채용되어 온 결과 자본주의 그 자체가 기능불능에 떨어져, 인간적인 사회의 지속적인 활동까지 위기에 빠트려 버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人間의 理解에 [불가사의한 사슬]의 구조를 끼워 넣어서 인간에 관한 事象의 이해를 근저에서부터 다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러한 探求에서는 現代數學이 한발 앞서 있다. 고전논리의 한계를 나타내는 괴델의 작업후 수학은 고전논리의 확장을 노리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직관논리안에서 작동하는 논리과정을 엄밀한 모양으로 抽出해 내기 시작했다. 그기서 [불가사의한 사슬]이 매우 자연스려운 모습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 고전논리에는 眞과 僞를 분명히 나누는 排中律이 작동하고 있어나, 직관논리에서는 이 배중율이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眞이며 동시 僞고, 眞과 僞는 함께 섞여 진이 어느새 위로 변화고 그 위도 눈 감짝할 사이에 진으로 바뀌는, 엣샤의 속임수 그림과 같은 과정이, 현실을 구성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를 엄밀한 논리로 잡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層]이나 [토포스]나 [圈]으로 해서, 이러한 직관논리의 세계를 그리는 탐구가 지금 바야흐로 현대 數學世界에서 진행 중이다. 우리들은 인간과학의 영역에서 현대수학과 같은 정신에 입각하여 이 변혁을 실행하려 한다. [불가사의한 사슬]을 끼워 넣음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그기서 태어나는 사고는 인간의 營爲에 밀착하고 있기 때문에 盲想이나 이데올로기나 强固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불가사의한 사슬]은 근대사회 안에서 억압되는 일이 많음으로, 이를 끼워 넣은 人間科學에 의해 여태 억압되었던 현실이 의식의 표면으로 浮上해 나와, 그기서 현실을 듸바꾸어려고 하는 단서가 생긴다. [불가사의한 사슬]은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살아 작동한다. 우리들은 이 작업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쇄신시켜 보려고 한다. * * [불가사의한 사슬]의 작용은 精妙하다. 그래서 그것이 작동하고 있을 때, 세계는 결정적인 비약을 초래하게 된다. 분자구조의 수준에서 어떤 변환이 일어나던 그것은 물질적인 현상에 머문다. 허나 그기에 [불가사의한 사슬]의 작용이 들어 오면 생명현상이 출현한다. 그러나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는 그 자체가 [불가사의한 사슬]을 만들고 상호의 領分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프라이멀한 수준(근원적인)에서는 생명과 비생명의 구별이 어렵고 서로 교차하고 있다. 생명은 그 자체가 [불가사의한 고리]로서 무엇을 만들고 있다. 단백질의 구조체에 이 고리가 작용함으로써 아직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서 생명활동이 일어난다. 생명은 물질과정의 연장에서는 출현할 수 없다. 물질과정의 연장에는 생명활동적인 것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활동의 레브리카(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불가사의한 고리]의 구조를 한 생명의 내부에서, 에너지변환이 지속되며 생명체의 생존이 가능해 지고 있음으로 에너지의 인푸트(input)=아웃푸트(output)의 과정도 이 [불가사의한 고리]에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과 기계의 차이는 참으로 미묘하여 精妙하기 짝이 없는 이 고리의 작용 유무에 달려 있다. 이와 매우 비슷한 관계를, 贈與와 交換 사이에서 볼 수 있다. 교환은 두개의 점이 반드시 분리되는 [하우스돌프空間]상에서 행해진다. 그럼으로 교환되는 것과 그 소유자간에 인격적인 맺음이 일체 없는 상태가 만들어 짐으로써, 교환물은 이때 상품이 된다. 그러나 [등가]의 생각에서는 계량이란 행위가 가능해 짐으로 적당한 척도를 설정한다면 여기서 貨幣를 탄생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증여에서는 이러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증여는 분리가 아니고 맺음이 일어 나는 세계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분리되지 않고 양자간에 오고 가는 증여물에는 주는 자의 인격의 일부가 부착된체 주워짐과 받는 자에 의해 授受된다. 모든 것이 서로 침투하는 상태가 허용된다. 이러한 교차가 일어나는 공간을 수학에서는 [쟈리스키空間]이라 부르고 있다. 명백하게 증여가 일어나는 공간쪽이 교환이 일어나는 공간 보담 훨씬 원시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증여에는 [불가사의한 고리]가 작용하고 있지만 교환에서는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교환에서는 같은 계층에 속한 것으로 평준화되어 있는 끼리 비교되며 교환된다. 미술작품과 식료품과 같이 원초적으로 다른 계층이라도 같은 척도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면 적당한 비율로 교환할 수 있게 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른 노동이라도 같은 [사회적평균노동시간]이란 공동척도에 맞추게 되면 같은 노동력으로 賣買가 가능해 진다.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같이 보이지만 실언 [불가사의한 고리]의 작용이 없는 공간임으로 해서,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여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다른 계층을 비약하면서 루-프로 이어저 가게 하는 [불가사의한 고리]의 작용이 미치고 있기 때문에 상품이나 貨幣가 만들어내는 等價交換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고리는 하나 하나가 모쥴로서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같은 고리의 작용에 의해 타의 모쥴에 이어지게 된다. 그때문에 증여공간에서는 [全體性]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그 전체성은 각기 분리되어 있는 상품을 뫃아 이들을 加算集積하여 만들어지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체]인 자본주의세계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상품이 집적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그 전체 영역에서 분리의 작용이 널리 퍼지고 있다. 증여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기초는 [이어짐]이며, 그 이어짐은 전체성을 갖춘 세계가 만들어 간다. 농림수산업과 같은 프라이멀한 산업(一次 産業)에는 이 [불가사의한 고리]가 자연스렵게 스며있다. 원자핵융합을 일으키는 거대한 별인 태양에서 우주공간에 뻐처있는 전자파의 모양을 한 에너지를 받고 자라는 식물이나 세포속에서 에너지변환을 이루며 생명이 활용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뀐다는 것이 바로 가장 프라이멀한 과정으로 그기에는 [불가사의한 고리]의 작용이 불가결하다. 지구상에서 살아 가는 식물이나 동물이 이 과정을 생명활동의 토대로 삼고 있다. 그리고 지구자체가 그 고리와 같은 모양을 한 무수한 고리를 맺고 거대한 순환을 하는 전체적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차산업은 자연이 행하고 있는 이 순환시스템을 이용하여 동식물을 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태양의 은혜]를 중심으로 순환하는 전체성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노동마저 그기에는 환경 밖에서 행하는 노동력이 아니라 순환 시스템 속에 깊이 조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차산업의 토대의 부분에는 교환의 개념이 들어 올 수 없다. 즉 화페의 개입이 불가능한 영역이 일차산업의 토대에 짜여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농업의 경제과정에 최초의 과학적인 분석을 행한 프란소아.케네는, 그의 피지오그라시-경제이론을 나타내는 [經濟表]안에 이 [不可思議한 고리]를 조립해 넣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 富가 증식해 가는 과정에는 이 고리의 작용이 불가결하다고 보았던 케네는 이를 [純生産]이라고 하여 개념화한 위에 이를 경제과정분석의 기저부분에 집어 넣었다. 뒤에 그의 제자는 이 부분을 [순수한 자연의 증여]라고 불렸는데 이 명명은 에너지변환의 프라이멀한 과정에서 [불가사의한 고리=증여]가 성립하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미 뀌뚫어 보았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케네-가 창조한 경제이론에 조립되어 있는 이 [불가사의한 고리]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위에 그는 이 생각을 근대사회의 공장생산의 과정에는 곧바로 적용될 수 없음을 알고, [불가사의한 고리]를 다음과 같이 변형시켜 [자본론]의 토대로 삼았다. 一次産業의 場合과는 달리 설비와 원료와 노동력을 구매하여 가동하는 공장에서는 처음부터 상품교환에서 입수한 것만으로 조합하여 제조를 행한다. 그기에는 [불가사의한 고리]는 신제품의 개발과 같은 [아이디어의 선물]을 필요로 하는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중요한 간여를 행하지 않는다. 산업자본주의에 대해서는 重農主義의 圖式을 적용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농업에는 자연의 모습으로 [순생산]이 발생하여 가치의 증식이란 것이 이루어진다. 그와 같이 자본주의에도 가치증식이 일어나 나고 증식이 일어나지 않는 다면 자본주의는 도퇴되고 말 것이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연계안에서 일차산업의 증식이 발생하고 그기서 [불가사의한 고리]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 [불가사의한 고리]없이 증식을 발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는 케네-의 이론에 [불가사의한 고리]가 들어 있는 것을 뀌뚫어 봤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산업에는 가능하지만 공업중심의 산업자본주의에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헤당될 수 없다. 그래서 이 고리의 토포로지변형을 시술함으로써 그 난문을 풀려고 했다. [불가사의한 고리]를 평면으로 짓뭉개버린다, 혹은 평면상에 射形시켜 하나의 平面으로 變形 시키면 산업자본주의에 적용되는 擬似적인 [불가사의한 고리]가 만들어진다. 그 평면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구체적인 현실상으로 印畵해 내면, 마르크스의 유명한 [剩餘價値理論]이 태어난다. 그기서는, 밖의 자연에서부터의 증여적 투입은 일체 없으면서 모든 것이 화페로 환산되는 합리적인 평면으로 진행된다. 증식은 발생하지만 그것은 구입할 때의 노동력의 값과 비슷한 노동력의 시간 보담 길게 使役되기 때문에 발생 하는 것이다. 임금되로 노동시간의 [밖]에서 초과노동시간이 [안]으로 持入됨으로서 가치의 증식이 일어난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자본주의에서의 증식의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일차산업에는 진짜의 [불가사의한 고리]가 작동하고 있는데 산업자본주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본질을 상실한 그 레브리카이다. 자본주의는 마치 인간성에 있어서의 자연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자연속에서 작동하는 [불가사의한 고리]의 고묘한 레브리카가 조립되 있기 때문이며 실제는 그 안에서 자연과의 루-핑이 실현되기 때문이 아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철학에서도 [불가사의한 고리]가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쟉크.라칸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마음이 [一次過程]과 [二次過程]이란 계층의 서로 다른 두개의 활동층의 통일체로 이루어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차과정은 마음의 기저를 이루는 물질적인 과정에 직접 이어저 있다. 그기서는 심적 에너지가 압축이나 이동을 반복하면서 유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차과정은 언어의 분절적인 구조에 따라 운동을 행하고 있는 층이다. 두개의 과정은 루-프에 의해 묶으저 있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의식적인 이차과정에 물질적인 일차과정이 들어 오기 때문에 마치 [無意識]이 제멋대로 활동을 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라칸은 여기서 인간의 마음은 [불가사의한 고리]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잡아 냈다. 일차과정과 이차과정이 루-프를 이루고 있는 이 고리의 모양으로 연결 되 있는 모양을 표현하기 위해 라칸은 메뷔우스의 띠나 크라잉의 병이나 사형평면과 같은 토포로지를 이용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인간의 과학에 처음으로 [불가사의한 고리]를 조직적으로 이용한 선구자의 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사람의 선구자는 인류학자 레뷔=스토로스이다. 신화를 위시하여 [野生의 思考]의 탐구를 통해 그는 이 고리의 작용의 인식에 도달했었다. 신화는 세계를 전체성에 따라 인식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생과 사는 분리될 수 없다. 생명현상과 죽음이 열어 놓는 물질적인 과정이 [불가사의한 고리]에 의해 루-프狀으로 이어저 있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전체성을 만들고 있는 것. 때문에 신화는 그 자신이 [불가사의한 고리]의 구조를 지니게 된다. [야생의 사고]의 세계는 분명히 [불가사의한 고리]에 가득 차 있다. [야생의 사고]는 [길들어진 사고]와는 달리 밖으로 닫혀진 均質空間속에서는 활동하지 못한다. 이질적인 수준에 속하는 다양한 物事들을 차별하지 않고 끌어 넣어 이를 전체성안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기에서는 다양한 잡다한 [불가사의한 고리]의 구조가 논리나 음악이나 조형이나 신체의 운동을 통해 활동하게 된다. 물질과 생명의 프라이멀한 과정에 가 다어면서 그걸 억압해 버리지 않는 사고나 표현은 이와 같이 모두 자신의 내부에 [불가사의한 고리]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인간의 마음의 [唯物論的基底]라 부를 수 있을것이다. 어떤 사상도 이 고리의 구조를 자신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지 않는 한 유물논적이라 부를 수 없다. 이 관점에 서게 되면 여태까지 존재해 왔던 유물론의 대부문이 진짜유물론의 레브리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과학을 야생화 해야 하는 필요성이 실언 여기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대뇌생리학-좌뇌와 우뇌의 기능 구별. 신피질과 구피질의 구분. 여기에 신체를 보태면 진정한 통섭적인 사고가 가능해 진다. 과학의 야생화=좌뇌+우뇌+신체 허지만, 현대인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현대경제학에는, 이 [불가사의한 사슬]이 일체 배제되어 있다. 오히려 [불가사의한 고리]의 작용이 배제되는 것으로 성립하고 있다. 케내-나 마르크스는 생산과 소비의 현장에서 경제의 이론을 세우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의 프라이멀한 과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 결과 그들 경제학에는 [불가상의 한 고리]나 레브리카가 삽입되어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모던 경제학(근대경제학, 현대경제학)의 모델이 된 것은 시장이다. 근대의 시장에서는 상품의 교환만이 이루어 진다. 상품교환의 과정에서는 앞서 지적한 데로, 강력한 분리 작용이 일어 나서 비교나 게량이 정확한 비율로 행해 저서, 상품의 값은 균형점에서 정해 진다. 때문에, 시장 모델 경제학에서는 선형대수와 미분방정식이 활약하게 되는데, 그러한 타입의 수학은 미끈한 평면상에서만 움직인다. 그래서 [불가사의 한 고리]가 만들어 내는 원시적인 공간(토포스)은, 그러한 수학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무책임으로 그런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음부터 무시함으로써 경제의 과학이 만들어 저 있다. 그러나 경제의 현실은 하나의 거대한 전체성을 이루고 그 토대는 지구가 행하는 프라이멀한 에너지변환과 연결 되 있다. 생산과 소비의 토대의 부분에도, 같은 타입의 에너지변환이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의 전체성을, [시장모델]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이 시장 모델에 경제적 현실을 강제로 따르게 하려고 함으로, 자본주의시스템 전체가 어긋나기 시작하여 순조로운 작동이 수행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위기는 [불가사의한 고리] 작용을 배제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우리들은 현대의 인간과학에 [불가사의한 고리]를 다시 도입함으로써 경제학의 경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인간과학의 위기에 맞서 보려고 한다. 20세기의 후반에 출현한 [구조주의]가 처음으로 조직적으로 인간의 과학에 [불가사의한 고리]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인문과학자가 이용할 수 있었던 수학에는 커다란 한계가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 시도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들은 구조주의의 시도를 계승한다. 그리고 현대의 인간의 위기와 맞설 수 있는 [신구조주의]의 창조를 겨냥해 보려고 한다. 구조주의는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하려고 애쓰 왔다. 우리들 新構造主義 역시 이 세계가 인간만의 것이 아니고 [불가사한 고리]에 의해 서로 연결 되 있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 대기와 더불어 존재하며, 이들 인간 이외의 諸存在도, 한결 같이 지구상에서 살아 갈 권리를 갖는, 주권자(코몬즈commons)임을 주장해 갈 것이다. (제2장 완료).
1252 no image 라스코 동굴벽화 탐방기 (완)
1628 2015-01-01
5 그렇게 단순하고 치졸한 인물상에 꼳꼳히 세워진 페니스는 제대로 그려저 있습니다. 펄처저 있는 팔과 손, 경직되면서 뻗어 나온 양쪽 발의 선은 서툴면서도 역시 그 선은 발기한 페니스에도 전 해저 있습니다. 실은 다른 방에 그려저 있는 동물들 중에서도 페니스를 세운 것이 있습니다. 그리저 있는 모든 동물들, 숫소나 들소나 코풀소도, 사슴도 모두 도약하면서도 발기하고 있습니다. 예의 縱穴안의 인간만이 유일하게도 자빠저 있습니다. 跳躍이라 하면, 뒤의 左脚을 배 위까지 차 올리며, 놀라운 도약을 보여주는 소도 있습니다. 도약한다는 것에 라스코-인들은 동물=짐승(獸)들의 [聖스려운] 姿態, 인간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을 높이 싸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동물들은 그런 상태에서 페니스-를 세우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성행위의 정점을 그림으로 나타내 보려고 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쌕스를 하면서 정점에 이른 감각을, 인간은 자신들도 경험한 것으로, 동물들이 그런 모습을 한 것을 봐 왔기 때문인데, 그러한 교미의 상태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두마리의 바이슨이 격열한 자세로 궁둥이를 맡부친 그림도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교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두마리 모두 숫놈이면서 페니스-를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애로라 석굴에, 힌두의 신들이 교접하고 있는 광경을 생생하게 조각한 상들이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교접하는 여러가지 모습들을 그림으로 그린 경우는 그 밖에도 있습니다. 우기요에(浮世畵)의 벼개그림들이나 유-럽의 화가들의 것들도 있고, 현대의 포르노로 이어저 있다고 봅니다. 고대인들은 아마도 이런 교접의 장면을 그리고 그 성행위의 절정을 나타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라스코보담 기교적으로는 뛰어 나다고 할 수 있어나 동시에 그 감각을 곧 바로 표현하는 것에서는 멀어 저 가고 있습니다. 포르노에 이르는 흐름의 표현들은 이를 보고 새삼스렵게 성에의 욕망을 불려 일으키려고 한 것으로 그 기쁨의 절정의 표현은 아닙니다. 이러한 감각, 기쁨의 절정감은, 성행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 기쁨의 절정감, 그것은, 극한적인 미의 감각이기도 합니다. 그림이나 조각도 언어도, 음악도 이를 바로 잡아 내지는 못한다.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라도 표현하려고 악전고투하여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라 불리는 營爲가 아닌가. 그 악전고투는 결국은 간접적인 상징적인 표현밖에 되지 않고 다시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뵐레-느나 랑보의 詩도, 바야흐로 그 투쟁의 흔적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술]이란 無限인 것입니다. 약간 여담이 되겠습니다만, 랑보-나 뷜에-느에서 예를 들어도 좋습니다만, 芭蕉의 [아라다루도 아오하 와가하(靑葉若葉)의 히노(해의) 히까리(빛)]라고 하는 一句도 그런 도전의 성공에 매우 근접한 것이 아닌가, 여지끝 죽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푸른 잎을 통해 오월의 눈부신 햇빛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그 눈부심이 여실히 말로 담겨저 있습니다. 이 한 구절의 시는 日光(닛꼬:지역의 이름)에서 읊은 구절로, [아라다후도]란 말은, 도구가와쇼군의 위광을 [존엄한것]이라고 한 것이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의미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해의 빛]은 [일광]<동조궁>을 가르키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게 되는데, 이런 밖의 모양을 표현하면서 이로 인해 初夏의 태양의 빛이 잎사귀를 뚫고 춤을 추는 모습을 기가 막히게 읽으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멧시지로서 이중의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다만 직접적인 기쁨이 표현으로써 그기에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때 별도의 멧시지의 모양을 띠면서 암시함으로써 그것이 제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이 원초의 충동을 고도의 예술적 기교에로 쫓아 가게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예는, 시의 경우이지만, 그런 감각을 무언가 직접적으로 표출해 보고 싶다란 바램과 시도가 원초의 화가들에게도 있어, 이 발기하는 페니스의 그림에 그런 생각을 읽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라스코-의 그림에서, 강하게 느끼게 되는 생명력, 생명의 약동과 상통하고 있는 힘이 아닌가 합니다. 적으도 交接의 場景을 그림으로써, 성의 기쁨을 표현한다는 기교적으로 한발 전진하였지만, 직접적인 표출로부터는 역으로 거리가 멀어진 方法以前의 표현기법을, 라스코-는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生命의 躍動]이란 그림의 印象을 뒷받힘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獸)을 나누는 하나의 징으로써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 대개의 동물은 성활동의 종식과 더불어 그 생명활동도 끝이 나는데, 인간은 성활동 기능이 쇠퇴한 후에도 생명활동을 지속합니다. 라스코-의 사람들은 이 성활동과 생명활동기능이 쇠퇴한 후에도 생명활동을 이어간다. 라스코-인들은 이 성활동과 생명활동의 不一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명활동에는 성활동과 별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었다. 생명활동을 성활동의 상위에 놓고, 그기에 정신적인 가치를 볼 수 있게 됨으로써, [人間]의 歷史가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코-인들은 바야흐로 동물에서부터 인간으로 변이해 가는, 그 전환점(그러나 아주 긴 전환기)에 놓여 있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초성의 의미의 貴함을 일께워주는 이 [성표현]의 라스코-적 방법이 우리들에게 그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코-는, 회화표현의 원초의 모습, 그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초성의 또 다른 하나의 예를 지퍼 보겠습니다. 그것은 큰 방의 좌단에 있는 [一角獸]라고 불리는 동물에 관한 것입니다. 실은 현재, 라스코-의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이 큰 방으로 들어 가면, 들어가서 바로 좌측의 끝자락에 넓게 열려 있는 방의 구석쪽으로 향해 뛰어 가는 모습으로 있는 이 동물이 있어, 그러한 情況으로 봐서 이 상상상의 동물이, 라스코-의 동물들의 순란한 파노라마의 안내역을 맡아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입구는 현재의 입구와 다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곳은 큰 방의 제일 구석쪽에 있는 장소가 된다. 말하자면, 여기에 들어 오는 사람들을 안쪽에 맞이 하는 本尊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됩니다. [일각수]라 불려 왔지만, 분명하게 뿔은 두개 입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동물과도 同定할 수 없는 상상상의 동물입니다. 나는, 이 동물을 상상상의 동물로 보고, 타의 들소나 숫소등 동정될 수 있는 동물과 다르게 취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결코 사실적으로 그려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상]과 [현실]이라 하는 현대의 우리들이 흔히 쓰고 있는 개념구분을, 라스코-인들은 하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개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상상적인 것이 현실이고, 현실이 상상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표출의 원초성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스코-의 미술을 논할 때의 쾨감이며, 쓰릴이며 아드벤추적인 점은, 헤겔나 니-체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화의 원초성을 확인하고 동시에 우리들이 라스코-를 방문한 후에 받는 충격을 그대로 지니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20세기까지, [미]의 기준이, 희랍.로-마의 고전미술에 있었다, 유-럽문명이 세계를 석권하고 아시아의 인간이나 남아메리카의 인간들, 아프리카의 인간도 그 기준을 절대시 해 왔지만, 지금 그것을 라스코-로 전환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 라스코-의 그림은, 동굴속의 벽에 그려저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입체공간속의 그림입니다. 大乘寺정도 계산되지 안 했다고 하드래도, 동굴의 천정이나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그려저 있는 그림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가 방문하여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것은 그 넓은 방에 바이슨이나 들소나 말들이 뛰어 가는 소리가 울려 오는, 그 발굽 소리가 들려 온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복제사진을 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곳은 간단히 방문할 수 있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하드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들이 갖고 있는 의의는 대단히 큰 것입니다. * 라스코-에는 문자가 없습니다. 아마도 언어는 있었을 것이나, 이를 기술하는 문자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언어]는 休止입니다. 대신 우리들이 라스코-를 둘려 보고 받은 깊은 충격을 두고 두고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런점이 당시의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라스코-가 나타내 준 것을, 인류는 이를 다시 자신의 손에 넣어려고 애를 쓰 왔다. 그러나 인류는 그 이후 듯없는 노력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인류의 미술의 역사다.] <완>
1251 라스코-동굴벽화 탐방기 (사진모음) 파일
5646 2015-01-01
1250 no image 라스코-동굴벽화 탐방기 4
2812 2014-12-29
4 라스코-의 동굴에는, 대형동물들만 그리저 있어, 소동물만 아니고 인물.인간은 그려저 있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를 뻬고는. 단 하나의 예외란, 종혈에 그려저 있는 것인데, 이는 다른 동굴의 어떤 그림 보담 스토리-를 갖고 있는 기색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10일에는 그 그림의 복사를 배부하여 여러분께 찬찬히 그 스토리-,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만, 무엇인가 재미있는 해석이 있으면 꼭 프로그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프로그에는 저작권의 문제등을 회피하기 위한 나의 스켓치로 소개하겠습니다. 이 그림의 고전적 해석에는 부루이유神父의 [아마도, 수렵의 한 순간에 일어난 사망사고를 기념하는 그림]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란 불가피한 표현입니다. 크다란 들소(바이슨)가 틀을 세우고 서 있습니다. 창이 들소의 엉덩이에서 배를 뚫고 나와 있습니다. 이 창이 찔린 부위에서부터 들소의 내장이 쏟아저 나와 있습니다. 들소는 그 고통을 견디는 것 같이 네개의 다리를 굳건히 집고 턱을 당겨 뿔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뿔이 나온 곳에 한 사람의 남자가 쓸어저 있습니다. 다리를 바로 경직하게 세우고 양손을 벌려 손바닥을 내 밀고 있습니다. (인물의 묘사는 뒤로 미룹니다). 그 아래로 새가 보입니다. 다리가 아주 길게 보이나, 이는 다리가 아니고 막대기일 것입니다. 허면, 새는 살아 있는 새가 아니고, 장식과 같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일 정도로 새는 단순한 선으로 그려저 있다. 남자의 다리 아래쪽, 새의 후방에, 창과 같이 보이는 것이 그리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쓸어저 있는 남자와 새의 좌측에, 그 남자와 새쪽으로 뒤를 보이면서 코풀소가 [조용히 멀어저] 가고 있습니다. 코풀소는 자신을 위협했던 들소를 격퇴하고 조용히 사라저 가고, 이미 남자는 들소와의 한판 승부에 패배하여 쓰려저 있는 그림입니다. 발이 제대로 그려저 있지 않는 꽁지도 없는 새는, 그러나, 해석하기 힘들고, ‘사라 가시’[역소)가 붙어 있는] 받힘이 있는 나무 기둥으로, 벤쿠바의 인디언들의 장례식용의 나무 기둥을 연상시켜 줍니다. 말하자면, 사망사고를 그린 일종의 葬送의 그림이라 할까. 들소의 내장은 解讀은 안되지만, 일종의 徵으로 헤브라이문자는 아닐까 하는 설이나, 끼리히나 란 학자는 라스코-문화와 시베리아의 야쿠토족의 문화와의 相似性에 주목하여, 야쿠토족의 供犧에, 숫소 앞의 라스코-의 새와 매우 닮은 막대기의 첨단에 새의 조각을 한 두개의 막대기를 세우고, 그것이 희생된 동물이 천상에 가도록 하는 길이 된다는 것과 같은 샤-먼의 의식을 행하는, 이와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자 주: ‘솟대’를 의미함) 숫소 앞에서 자빠저 있는 남자의 몸체가 경직되어 있는 것은, 샤-먼의 실신상태의 모습.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끼리히나說에 의하면, 샤-먼이 새의 가면을 쓰고 실신하고 있다는 해석이 됩니다. 부루이유神父는 이 새머리쪽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끼리히나-說에서는 코풀소는 딴 그림으로써 들소와 남자의 구도에서 벗어 나 있습니다. 분명히, 들소+남+새의 막대기의 선과, 코풀소의 선과는, 선의 질이 다릅니다. 코풀수는 들소보담 굵은 선으로 그려저 있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시기가 다른 때 그려젔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쫍은 굴속의 벽에, 이미 들소와 인간의 죽음(혹은 假死)의 모습이란 드라마틱한 정경에 코풀소를 더한 것은 그 나름데로의 이유가 있을 것인즉, 왜 코풀소가 그기에 그려저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것으로 보입니다. 코풀소의 곧바로 세워진 꽁지의 끝에, 홍문 가까이 두개씩 가로로 나란히, 짝이 되어 計 六個의 검은 점이 그려저 있습니다. 종으로 길게 난 점들로, 마치 꽁지에서 액체나 똥 같은 것이 늘으트려저 있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 아무 의미도 없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여러가지 수스꺼기가 있는, 흥미를 부르는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흥미롭고 주목해야 할 점은, 二点이 있습니다. 하나는 라스코-에 그리저 있는 유일한 인간은 라스코-의 벽화의 어떤것과 비교해도 너무나 稚拙한 인물상이란 것입니다. 같이 그리저 있는 들소와 비교해 봐도 너무나 치졸합니다. (들소는 부루이유신부나 바타유-가 라스코-회화전반에 보여주는 훌륭한 기법으로 [비틀어진 원근법]이라 부르며, 절찬한 방법으로 – 화상은 측면에서 그리고 있음에도 다리나 귀나 뿔등이 사분의 삼 정면으로 보게 하고 발가락이 열려저 있도록 그려 죽으 가는 것을 그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에 넘치고 있습니다). 대신, 인물은 너무나도 기세가 없는 선으로 머리부터 다리 끝까지, 윤곽만으로 잡혀 있어, 펄진 손바닥은 손가락만 그리저 있고 그기다 손가락이 네개밖에 없습니다. 전적으로 관찰력 이 떨어저 있는 그림입니다. 바로 옆의 들소가 단순한 선묘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하게 그려저 있는가, 이점도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할 점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자빠저 있는 남자의 페니스가 발기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라스코-인의 性觀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금 후에 다시 거론해 보고 싶습니다.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내장이 노출된 들소와 그 옆에 쓰려저 있는 인간, 막대위에 세워저 있는 새, 그리고 이들을 뒤로 하고 사라저 가는 코풀소의 구도에서 어떤 이야기를 떠 올릴 수 있는가, 라스코-인은 대답해 주지 않음으로 현대의 우리들이 여러가지 사안으로 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해석도 우리들은 즐길 수 있음으로 그 이야기를 축출해 낸 사람이 품게 되는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고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인물이 왜 그토록 치졸하게 그려저 있는가 라고 하는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살아 가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로 그것이 우리들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고 있는가 찬찬히 고찰해 보면서 논리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시대의 인물상에 관해서는 몇가지 예가 있습니다. 여성상으로 (그 중 하나로, 뷘돌로프의 뷔너스상), 가슴이나 엉덩이부분을 강조하여 모성을 찬양하는 여신상이라 해석한 것입니다. 이들 도상의 공통적인 점으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이 여성들의 얼굴 생김새, 코 모양등은 조형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대의 우리들은 먼저 인물상이라 하면, 얼굴 생김새에 신경을 씁니다만 원시의 사람들은 얼굴이나 표정에는 그렇게 관심을 쏟지 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가면을 씨웠다고 말 할 수 있다. 바타유-의 책에도 나옵니다만, 당시의 다른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인물상은 대부분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고(가면을 씨웠던가 그런 모습으로 상상했던가)해서 四肢와 허리의 인상들도 모두 동물풍입니다. 어쩌면, 라스코-인들과 같은 원초의 인류는, 동물=짐승에 대해서, 현대의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공감이라 할까 감정대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감과 동시에 畏怖의 염과 같은 감정. 이는 바타유-를 비롯한 라스코-의 연구서에서 배웠던 것인데, 인류가 그 이후, [神]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 성스려운 것으로 숭상하기 이전, 그러한 인간 보담 휠씬 낳은 능력을 지녔던 주인들로써, 라스코-시대의 사람들은 동물=짐승을 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힘이나 취각 청각이나 시력도, 먹을꺼리를 잡는 능력도 뛰는 속도도, 무엇으로도 자신들 보담 우수한 존재, 후의 [성스려움]이라 하는 개념은, 라스코-人나, 원초의 인류에게는, [동물]이라 하는 존재의 영역안에서 싻터기 시작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卑小하고 非力한 존재였던 인간자신을, 마음을 뫃아 그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사람의 형상을 치졸하게 그리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린이들을 낳는 여성들은 별도였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비소한 존재가 조금은 성스렵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씄던 것은 아닐까. 인간이 신을 발견하기 이전 [신]이라 하는 개념을 인식하기 이전의 시대, [성스려운 것]을 이렇게 크다란 동물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 동물들에 대한 외포와 경이의 마음 됨이 그렇게 생명력에 넘치는 동물상을 그리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여기서는 인류가 [신]과 조화롭게 살아 가려고 하는 [고대]의 세계와의 관계의식이전의, 의식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보다 휠씬 이전, 자신을 둘려 싸고 있는 [세계]를 처음으로 인식하는 의식의 모습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1249 no image 라스코 동굴벽화 탐방기 3-1
1646 2014-12-29
3-1 라스코-의 그림에서는, 윤곽을 잡는것과 채색하는 것이 구별되지 않고 있다라고,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라스코-회화에는 [선묘]와 [채색]은 구별되지 않는다,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는 쪽도 [윤곽을 잡는다]라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곽을 잡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 모양의 외측을 떠 내는 일인데, 이러한 정의 자체가 일종 근대적인 정의임으로, 라스코-인에게는 그런 해석은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동물의 모양의 색을 칠하면서 그들은 그 동물의 [윤곽]을 잡으려고 했다. 윤곽을 잡고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은 그 존재의 생명성에 가 닿는 것이다 라고. [그린다]라고 하는 것은 윤곽을 잡아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이러한 사유에서, 회화의 初原性을 보고저 합니다. 말하자면, 그러한 의미에서 [윤곽]을 잡아 내는 것에, 그들은 그 동물의 [생명과 감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역으로, 윤곽선만으로 그려저 있는 동물을 보고 있으면, 라스코-인들이 얼마나 강한 정열을 갖고 [윤곽]을 그리려고 했던 것인가에 압도당합니다. 간단하게 썩썩 문지르면서 선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놀라울 정도의 노력을 쏟아, 그 선을 그리기 위해 발판을 굳히고 난뒤 어두운 동굴속에서 빛의 각도를 재고 다루는 신중함, 화구의 준비,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구상등등 놀라운 지속력과 강한 열정, 의지에 바탕을 둔 신중함에 의해 하나 하나의 그림이 그려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48 no image 라스코 동굴벽화 탐방기 3
1663 2014-12-26
3 . 라스코-동굴벽화들이 보여 주는 [無] 秩序의 세번쩨 것은, 從穴안에 있는 것입니다만, 이는 뒤에 가서 ‘종혈의 그림’으로 별도로 다루기로 합니다. 라스코-그림에 관해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질은, 말이나 소의 모습이 完全體로써 그려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머리나 동체뿐인 말이라던가 머리와 목 부분만 있고, 허리 이하는 그려저 있지 않던가, 頭部만의 사슴등이 실로 놀라운 만큼 많이 그려저 있습니다. 奧洞의 사슴의 네필의 머리만은, 혹시 하반부가 뿌셔저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림들은 처음부터 전신의 완전상은 그리지 않는다는 의도로 그려저 있습니다. 덧칠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앞의 그림의 비어 있는 곳에 그려 넣으려고 한 것으로 보이는 분위기의 馬도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처음부터 완전체를 그리지 않는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유-럽의 희랍 이후의 회화의 전통은, (이집트 역시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닙니다), 대상의 모습을 완전체로 그리는 것이 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모습의 그림은 결국 未完의 그림이라고 하는 생각에 일관 해 왔습니다. 라스코-인들은, 적어도 그러한 繪畵觀으로부터는 자유로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라스코-인들은 그 모습의 전체를 갖추워서 그리지 않트래도 그 동물의 (존재의) 생명에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에 가 닿는다]라고 말합니다만, 이점은 매우 중요한 점으로, 그리고 라스코-예술론의 핵심이며, 결론입니다만, 라스코- 벽면에 그려저 있는 것은, 동물의 와관이나 모습, 형상이 아니고, 그 생명과 바로 와 닿기 위해 그렸다고, 동굴 속에서 실제로 그림에 둘려 쌓여 지나게 되면, 그런 느낌이 매우 강하게 박력있게 다가 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란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는 것입니다. 인류의 회화의 역사는, 원래는, 그것을 그리는 대상과, 그 생명력에 가 닿기 위해 그렸던 것은 아닌가. 그런데 어느 사기 부터인가, 그 모습만 뻬겨 놓으려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 묘사의 세련됨으로 작품의 평가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라스코-의 그림들을 봤을 때 그기에 숨어 있었던 원초적인 충동이 다시 되살아 나오는 것이 아닌가. 完全體로 그리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은, 유-럽의 회화전통의 휠씬 이전의 [그리기]란 행위와 충동을 보여 줍니다 만, 그렇다고 해서 라스코-의 회화가 고대 동양의 회화원류로 통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 할 수도 없습니다. 고대 동양이나 고대 서양과도 絶한 始原의 회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라스코-회화의 선묘가, 굵은 붓과 같은 필선으로 그려저 있어, 선에 氣運이 베여 있음으로, 분명 동양 혹은 중국의 화필의 운용과 닮은, 호흡이 전해저 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양자의 결정적인 차이, 斷絶은 [손으로] 그린다/쓴다 라고 하는 것에 라스코-인들은 중요성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라스코-인들은 [筆觸]이라 하는 感應을 전혀 고려 하지 안 했음이 분명합니다. 윤곽을 잡는다 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그것만으로 그 존재의 모습을 떠 올리는 것이며, 그 동물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그리는 사람의 [손]=기술을 부리는 재주, 임을 과시하려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라고 하는 관념이 전적으로 배제된 것이다라고, 바뀌 말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헤-겔과 같이 예술은 인간의 정신의 소산임으로 자연의 미 보담 가치가 놓다, 라고 하는 생각은, 라스코-에는 통용될 수 없습니다. 분명하게도 라스코-의 벽화는 그 시대의, 바야흐로 인류가 탄생하려고 한 시대의 [인간]에 의해 그려진 것이지만, 자신들이 [인간]임을 과시하려고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스코-의 그림은, 그리는 과정의 기술의 巧拙로 평가하드래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얼마나 확실하게 가 닿고 있는 그림을 그렸는가, - 만일 평가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라스코-동굴의 각실에 그려저 있는 그림은 어느것도 인류의 역사상 그 기준의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들은 [선묘]의 붓과 같은 것으로 그림니다만,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불어 넣기]입니다. 안료를 입속에 넣은 뒤 이를 다시 불어 넣는 방법으로 그린 점입니다. 이는 선묘뿐만 아니고 채색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에 서로 다른 점은 없습니다. 말하자면, 라스코-인에게는, 진실은 線描와 彩色의 구별이 없었다. 앞서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선묘]와 [채색]을 구별하였습니다만, 이건 역시 근대적인 해석에 의한 구분으로, 라스코-人으로부터 멀어지는 해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면, [선각]은, 선묘채색의 시대보담 뒤에 가서 라스코-인들이 시도했다는 것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묘와 채색의 구별이 없는 [불어 넣기]로 그린다는 것은, 회화의 시원적인 형태의 그 시원의 방법이라 할 수 있고, 라스코-에는 그러한 회화가 넘처 나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불어 넣기]. 이 방법이, 동양/ 중국 고대의 筆/ 손으로 그리기/ 쓰기라는 방법과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가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라스코-회화의 시원의 모습은, 인간이 인간임을 자각하는 이전의 의식과 행위의 나타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기에는 [인간]적 營爲의 [起源]이 있음을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라스코-회화는 [원시시대의 회화]라고 하는 것으로, 우리들 문명화된 인간으로부터 아득히 먼 그 쪽의, 거이 조상이라 부르기도 힘드는 인종의 소산이 아니고, 우리들 인류의 그 시작의 가장 생생한, 그러나 긴 역사를 집고 가는 끝자락에서 회색화되어 버린 우리들의 시원적인 존재태를 항간 새롭게 열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라스코-의 회화로부터 얻는 것은, 아- 여기에 우리들 [人類의] 시작이 있었던가 라고 하는 감동과 여기에 그려저 있는 것, 라스코-가 실현한 것, 이를 다시 실현하고 획득하려는 인류는, 그 이후 노력을 쌓으면서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美術의 歷史가 아닌가, 라고 하는 생각에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류는 1940년에 그 동굴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라스코-회화]는 모르고 지났습니다만, 그 [그림]의 됨됨과 표현 방식들은, 말하자면, 인류의 原記憶으로써, 지구상의 여러곳에서 (이집트나 희랍도 고대중국이나 인도도), 각기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멀리 가 닿아 왔다는 사실을 떠 올리게 됩니다. * 라스코-의 그림에서는, 윤곽을 잡는것과 채색하는 것이 구별되지 않고 있다라고,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라스코-회화에는 [선묘]와 [채색]은 구별되지 않는다,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는 쪽도 [윤곽을 잡는다]라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곽을 잡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 모양의 외측을 떠 내는 일인데, 이러한 정의 자체가 일종 근대적인 정의임으로, 라스코-인에게는 그런 해석은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동물의 모양의 색을 칠하면서 그들은 그 동물의 [윤곽]을 잡으려고 했다. 윤곽을 잡고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은 그 존재의 생명성에 가 닿는 것이다 라고. [그린다]라고 하는 것은 윤곽을 잡아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이러한 사유에서, 회화의 初原性을 보고저 합니다. 말하자면, 그러한 의미에서 [윤곽]을 잡아 내는 것에, 그들은 그 동물의 [생명과 감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역으로, 윤곽선만으로 그려저 있는 동물을 보고 있으면, 라스코-인들이 얼마나 강한 정열을 갖고 [윤곽]을 그리려고 했던 것인가에 압도당합니다. 간단하게 썩썩 문지르면서 선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놀라울 정도의 노력을 쏟아, 그 선을 그리기 위해 발판을 굳히고 난뒤 어두운 동굴속에서 빛의 각도를 재고 다루는 신중함, 화구의 준비,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구상등등 놀라운 지속력과 강한 열정, 의지에 바탕을 둔 신중함에 의해 하나 하나의 그림이 그려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47 no image 라스코 동굴벽화 탐방기 2 -*
1674 2014-12-24
* 이들 대형동물들을 라스코-인은 어떻게 그렸던가. 아마도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보담 휠씬 긴 기간 동안에 걸쳐 벽위에 겹치면서 까지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의 그림 위로 겹쳐 그려저 있습니다. [겹쳐 그린다] 라고 하는 것은 라스코-회화의 중요한 특질입니다. 왜 겹쳐 그렸는가, 이 사실도 추측 이상의 해답을 얻기 힘듭니다만, 현대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답으로써(그리고 동시에 전적으로 미지의 저쪽에 있는 라스코-인의 살아 가는 모습을 현대인의 쫍은 생각으로 단정적으로 처리하지 않기 위해서 겸손하게 추측 측정할 수 있는 답으로써) 앞의 그림, 아주 오래 전에 그려젔던 아마도 그 앞의 앞의 그림들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남겨 놓은 것이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먼 이전의, 옛날에 그렸던 그림임이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전에 그렸던 그림 위로, 새롭게 자신들이 그림을 그려 넣는 행위는 일종의 儀式에 가까운 행위가 아니 었을까. 이 행위는 자신들이 미치지 못하는 옛 조상들을 畏怖감을 갖고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선인의 행위의 흔적을 찾아 그냥 덧그리면서 그 흔적을 흠모하며 이를 넘어선 것을 그려보려는, 그러함으로 해서, 자신들이 새롭게 그려낸 것이 옛 날부터 이어저 오는 생명력을 부각시켜 나오게 한다. 이 행위는 그려 넣는다 라기 보담, 그린다, 색을 채워 넣고 윤곽을 잡아 냄으로써 그 존재와 바로 가 닿는다, 라고 하는, 행위입니다. *(지금도 유교권 문화에서는 돌아 가신 분들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님들과의 콤니케이션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이루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옮긴이 보충) 여기서는 그린다는 것이 存在에 가 닿는다는 것, 다시 말한다면, 들소를 그린다는 사실은, 들소의 像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들소의 존재에 직접적으로 가 닿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라스코-벽화를 바로 앞에 두고 보게 되면, 매우 절박하고 강하게 다가 옵니다. [덧그리기](그래서 ‘그린다’라는 말을 피하고 싶습니다만)는 몇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방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모-든 방의 그림들이 모두 [덧그려젔다]라고 말 할 수 있는데, 넓은 방과 안쪽 방의 [덧그리기]는 하나의 원만한 크기의 조화라 부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그려진 들소나 말의 그림 위로 또 다른 들소나 바이슨을 그려 넣는 것인데, 이것이 앞의 그림위로 겹쳐저 있어도 결코 그 그림을 훼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에서부터 겹처 앞의 그림을 지우는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결코 훼손하지 않고 있다(그러한 수법 자체가 근대인이 결코 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위로 그린 그림도 밖으로 스며 나오는 것에 의해 뿌셔지지 않게 한다, 는 것으로, 믿을 수 없는 秩序입니다. 만일 그것을 질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근대인의 눈으로는 결코 떠 오를 수 없는 儀式으로, 덧그리고, 오히려, 덧그린 위의 그림에 그려진 존재들도 살아 나오는 重層의 세계, 한장의 평면위에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깊이, 그것도 이질적인것들이 일체화된 동물들의 모습을 부각시켜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근대적인 개념과는 또 다른 [調和]입니다. 근대합리주의적인 질서는 아니지만, 그기에는 무언가, 질서란 것이 있다. 이를 [無]秩序라 감히 부르고 싶습니다. [무]에게만 괄호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런 [조화]와 [무] 질서에 둘려 쌓여, 근대인인 우리들은 새삼 여태 알지 못했던 감동에 휩쌓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나, 걸코 미지의 세계와 조우했다는 놀라움이라기 보담, 불지불식간에 잊고 있었던 것이, 그것이, 다시 뒤살아 나왔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 어김없이 우리들이 한때 갖고 있었던 무엇인가가 여기에 있다는 기쁨에 찬 놀라움입니다. 그렇다 치드래도 큰 방과 奧洞의 덧그리기는, [조화]라고 하는 말이 꼭 들어맞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타자(앞서 그린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실로 잘 반영 되 있습니다. 뒤에서 그려 넣는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儀式]이라 부른 행위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순간이었습니다. 헌데, 後陣이나 猫科의 방에 있는 덧그림들은 우리들의 눈으로는 도저히 [조화]라고 부를 수 없는 혼란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방은 앞서 말한 데로, 선각중심의 방입니다. 큰 방이나 오동은 선묘, 채색이 었습니다. [선각]이라 하는 방법은 또 다른 [무]질서를 불려 내는 것이 었을까요. 앞서 파 낸 것 위에 또 다른 동물의 모습이 파여저서, 파 낸 선이 서로 엉겨 있습니다. 이 [혼잡]. 그러나 한참 동안 찬찬히 보고 있으면, 이 혼잡 역시 놀라운 생명력을 숨겨 놓은 [무]질서임을 깨닭게 됩니다. 그러한 [무]질서를 살아 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생명의 요동이란 원래 이렇게 질서를 만들어 갔던 것이 아니였을까.(만들고는 뿌셔버리고 뿌수고 다시 만드는)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을 뿌리 칠 수 없었습니다.
1246 no image 라스코-동굴벽화 탐방기 2
1736 2014-12-23
2 라스코의 벽화는 동굴의 울통불통(요철)한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린 것인데, 그림의 종류는 彩色.線描.線刻의 세가지 방법으로 이루어 저 있고, 채색+선묘나 선묘만으로 된 것, 채색+선각, 선각만으로 된 것 등 네 종류가 있습니다. 동굴에 따라 채색.선묘와 선각.채색으로 갈라 집니다. 넓은 방과 오동은 채색, 선묘뿐이고, 후진,종혈,묘과의 그림 방에는 선각으로 그려저 있습니다. 그 중, 신랑에는 선묘채색화도 있습니다. 선묘나 선각은 윤곽을 잡고 있는 것이나, [선]으로 윤곽을 잡는다는 것에 라스코-인들은 대단한 열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각화는 큰 방이나 오동의 선묘에 비해 분명히 기교적으로는 한 단계 위이며, 그만큼 시대가 흘려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방이나 오동 보담 신랑이나 후진, 묘과의 그림 방, 종혈쪽의 것은 그 시기가 새로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리니야크期에서 마도레-느期로 들어 가서, 라스코-는 바로 그 과도기, 아주 길고 긴 전환기에 놓였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는, 美術史家나 先史學者가 열심히 검증하려고 하는 회화의 時代判定에는, 흥미가 만치 않습니다. 이 그림들에서 읽으 낼 수 있는 여러가지 수스꺼기와 함께 결국 얼마되지 않는 증거를 찾아 내게 되는 덧없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이리 저리 거론하면서 자신의 설을 내세워봐야 별 것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보다, 지금 이 벽화를 보고, 현재의 우리들의 눈을 쏘고, 가슴을 때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왜 그런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고, 무엇 보담, 이 그림을 앞에 놓고 자신이 느끼는 감동의 質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라스코-의 동굴의 일꼽개의 방은, 선묘와채색의 방과 선각이 있는 방과 갈라진다. 그 어는 쪽에도 공통되는 것은, 어쩌면, 라스코-인은 동물의 윤곽을 잡아 내는 것에 대단한 정열을 쏟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양쪽의(선묘와 선각)의 다름은 벽의 질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채색.선묘로 채워저 있는 큰방과 오동은, 벽의 표면이 흰 方解石으로 덥혀 있어, 마치 프레스코화와 같이 라스코-인들은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다면, 선각의 방에는 방해석으로 덮혀 있지 않고, 석회석의 암벽으로, 쪼아 내는 것이 쉬웠을 것입니다. 안료는 地層에 있는 흙을 쓴 것 같습니다. 酸化망강이나 酸化鐵, 그 산화의 차이에 따라 검쩡이나 갈색의 안료로 쓰고, ‘오-까’가 활발하게 사용됩니다. 그러한 안료로 동물이나 식물로 만든 단뽕이나, 필과 같은 것으로 그리고, 안료를 입에 품고 불어 내면서 채색을 하고 있습니다. 바타유의 책에는, 품어 내는데 갈대 줄기나 동물의 뼈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는데, 인근의 동굴에서 管속에 안료가 들어 있는 中空의 뼈를 찾아 냈다고 적고 있습니다. 안료를 불었다거나, 方解石이나 酸化鐵이라던가 하는 것은 나는 프랑스의 연구자들의 책에서 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굴에 따라 선묘.채색 중심과, 선각중심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임으로 그 위에 안료의 재질이라던가 그리는 방법등을 익히 알고 있으면, 그림의 모습이 보다 잘 보이고 납득이 간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단뽕’을 씃다던가 불어 넣었다던가 하는 지식을 갖게 되면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큰 방이나 쫍은 오동, [신랑], [후진], 묘과 동물의 방, 종갱 – 의 여섯개의 방에 그려저 있는 것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크-다란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려저 있는 동물은, 말(세종류), 소(두종류), 되지와 코풀소, 늑대등이 약간 그려저 있을 뿐, 대부분이 바이손.사슴.영양등이다.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小動物들은 일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오-리니야크후期에서 마도레-느期에 걸쳐 생존했을법한 만모스나 馴鹿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라스코-의 위치로 봐서 프랑스남서부의 따뜻한 기온지대인데 이곳도 이 시기에는 아직도 매우 추웠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금 우리들 앞에 남겨진 그림에서, 구석기시기의 대형동물에 특별한 관심(그림으로 남겨 보겠다는 기분이나 충동)을 갖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라스코-인은 이러한 대형동물에, 특별한 畏怖感과 친근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245 no image 라스코 동굴 벽화 Lascaux Cave Paintings 탐방기 1
1716 2014-12-22
라스코 동굴 벽화 탐방기 Lascaux Cave Paintings 글쓴이: 일본 미술고고학자. 1 라스코-는 프랑스의 남서부 돌도-뉴地方, 옛날에는 베리골이라 불렸던, 붸젤江邊에 있습니다. 일대는, 석기시대의 동굴이 이곳 저곳에 산재해 있는데, 내가 라스코를 방문한지도 벌써 20년 전입니다. 자동차를 내려 동굴지대를 걸어가면 그 사이에도 몇 개의 들어가 보고 싶은 동굴들을 지나치게 되면서, 라스코 동굴에 이르게 됩니다. 라스코-동굴은, 1940년에 발견되고(註 1) 당시는 물론 누구라도 견학이 가능했었는데, 역시 사람의 출입이 너무 심하여, 벽화에 손상이 일어나, 당시에 벌써 일반견학은 금지, 특별허가를 얻는 사람에게만 출입이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1980년 81년, 敦煌석굴을 찾아 그 탐험자의 한 사람이었던 폴-베리오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프랑스정부로부터 초청된 사람이란 면목으로 파리에 체류하고 있었음으로, [고대석굴의 비교연구를 하고 싶다]라고 하여 문부성의 考古科學局이라고 하는 곳에 편지를 냈었는데, 이내 허가가 나왔습니다. 車倚子로 움직이야 한다는 단서를 첨부하였었는데, 지하로 내려 가는 데 도움이 필요함으로 그쪽에서 준비를 하지 못하면 이쪽에서 준비할 수 있다는 단서도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차를 이용하려고 생각하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있어 함께 자동차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주 1: 1940년, 네사람의 남자 아이들이 탐험놀이를 하다 우연히 이 동굴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일대 소동이 일어나섰는데, 이 네명의 남자 아이들이란 바로 당시 18세가 된 말셀 . 로리타, 16세의 죨쥬.아니엘, 15세의 시몬.고앙가스와 쟉크.마르사르로, 이 중의 한 사람이었던 쟉크.바르사르씨는 당시 60대였었는데, 이 라스코동굴의 관리인의 한 사람으로 일 하고 있어, 견학후 발굴 당시의 이야기들을 들었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명함을 갖고 있어, [라스코동굴발견자]라고 프랑스정부로부터 받은 [기사(슈바리에)] 칭호가 인쇄되어 있고 멋이 있는 명함으로, 아직까지 귀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야기입니다만, 당초 유포되고 있던 이야기는, 개가 굴속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감추어 버렸음으로, 이를 찾아 쫓아 가다 벽화가 있는 커다란 동굴과 마주 첬다는 것이었다,고 전해 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고, 개를 데리고 갔지만, 아이들은 이미 이 동굴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고, 그들은 이 동굴을 지나 강 건너편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란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를 탐험해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주: 2 당시의 수첩을 열어 보니, 파리의 오스테잇즈驛에서 도울-르쥬行을 타고, 브리-부.라.게랄드에서 下車, 그기서 뻐스편으로 몽데니약까지 38키로로 적혀 있습니다. 야행일 경우, 22시53분 파리.오스델릿즈발, 브리-부.라. 게랄드착이 아침 4시3분, 낮에 나오면, 13시에 나와서 18시경에 도착한다는 메모가 적혀 있습니다. 다른 조금만한 동굴들은 마냥 방치된 상태이며 물론 입구는 닫혀 있었습니다. 라스코 동굴은 상엄하게 철책에 의해 둘려 쌓여 있고, 여러 마리의 맹견들(세파-트나 도벨만)이 사람을 향해 짖어 되었습니다. 그 뒤로 조용히 모습을 들어 낸 분이 바로 관리인인 마르셀씨(동굴발견자중 제일 년장자). 서류에는 견학제한 시간 한 시간으로 적혀 있었지만, 두 세시간 가량 충분히 견학을 하도록 배려를 해 주었고 탐방후에도 그의 사무실에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1244 no image [미지의 역사] 바타유 번역문중 누락된 부분
1592 2014-12-18
未知의 歷史 지금으로부터 약 一萬七千年前 라스코-의 벽화를 그린 것은 현생인류, 즉 구로마니용人으로, 잡혀 있다. 예술이 탄생한 것은, 文字言語가 존재하고 있지 않는 先史時代이며, 당시의 문헌자료가 전무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탄생에 관해 어떤 확신적인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확실한 과학적인 조사법의 진보에 힘입어 유적의 년대 확정은 정확하게 되었다. 바타유는 [라스코-]에서 이 동굴벽화가 그려진 시기를 오-리니야크期라 하고 있지만, 그 후의 조사 결과, 마도레-느期라고 하는 년대확정이 현재까지 정착해 있다. 그러나 년대의 특정이 가능하드래도, 선사시대의 수스꺼기가 완전히 해명되는 일은 없다. 인간은 왜 동굴벽화를 그렸는가, 그 그림들은 무슨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회답은 결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하지 못한다. 선사시대의 자료는 늘상 압도적인 [未知]가 스며 있고, 이를 고찰하는 지의 중심에는 말소할 수 없는 [非-知]의 傷口가 벌어저 있는 것이다. 허면, 예술의 탄생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확신적인 絶對知나 취약한 思考停止도 의미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旣知와 未知, 知와 非-知를 뚫고 總合할 수 없는 그 갈등안에서 변증법을 계속하여 사고를 찢으 버리고, 찢으저 나간 사고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될것이다. 그렇다면 불확정적인 역사적 고찰임을 전제하고, 바타유가 라스코-의 벽화에서 읽으 내려고 했던 것을, 여기서 다시 더듬어 보자. 그는 이 서책에서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행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의 존재, 도구의 발명, 死者의 埋葬…….인가, 그것만으로 불충분하다. 바타유-는 무엇 보담 藝術의 誕生이야말로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우리들 조상인 구로마니용인이 서유렵에 대두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과 닮은 존재, 네안델다-르人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네안델다-르인은 구로마니용인이 아마도 동에서 이주해 왔을 시기, 말하자면, 약 삼만오천년전에 서유-럽에서는 消滅한 것으로 되 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젔다 싶이 그들은 이미 석기를 발명하고 있었고, 더욱이 사자를 매장하고 있었다. 언어에 관해서는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근저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행한 노동활동의 흔적에서 보건데, 역시 언어와 비슷한 것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推察되고 있다. 그러나 네안델달인에게는 缺하고 구로마니요인에게는 존재한 요소를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것은 藝術이다. 네안델달인인이 남겨 놓은 유적에는 예술활동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사멸한 후의 구로마니용인의 유적에는, 놀라운 수준의 동굴벽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라스코-의 벽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그 때, 무슨 일이 일어 났던 것일까. 바타유-는 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행한 문제를 [에로티시즘]나 미완의 서책 [종교의 이론]에서 다루고 있다. 이들 서책들을 참조하면서 그가 밝혀 낸 내용을 考究해 보고저 한다.
1243 no image [바타유] 8 (완)
1670 2014-12-11
바타유 8(완) 쓸 곳을 상실한 否定性 이렇게 하여 바타유의 사상적 핵심으로서의 내적체험은, 철학적으로는 헤-겔의 [절대지]에대한 [非 – 知]로서, 知를 根絶하는 체험으로써 [내적체험]에서 문제시 되고 [비 –지]가 그의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바타유는 [내적체험] 간행에 앞선 시기에, 아렉산들.코쥬베가 헤겔의 [정신현상학](1807)에 관해 행한 강의에 출석하고 있다. 그는, 1934년에서 39년에 이르기 까지 고등연구실습원의 그의 강의에 출석하고, 震憾되어, 헤-겔철학에의 이해를 깊게 했다. 그 철학적 사색을 통해, 그는 자기자신의 체험, 자기자신의 존재를 헤-겔철학의 반증으로써 위치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타유는 1937년 코쥬베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생은 – 혹은 그 파탄, 더욱이, 나의 생이란 열려진 상처는 - , 그것만으로 헤-겔의 닫혀진 체계에 대한 反증이 된다, 고 생각합니다]. 바타유의 내적체험은 신학체계속으로 엮어 넣을 수 없는 체험, 용도가 없는 체험이며, 경제학적관점에서 보면, 무용한, 쓸곳이 없는 순연한 소비, 그럼에도 버릴 수는 없어 끝없이 반복하여 일어나는 체험이다. 헤-겔철학이 닫히고 완료된 체계를 형성한다면, 바타유의 체험은 그기에 생긴 [열린 상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서간이 쓰여진 당시, 코쥬베는 고등연구실습원에서의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1937년에 바타유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사회학연구원]에 초빙되어 37년12월4일에 [헤-겔의 개념]이란 강연을 하고 있다. 서간의 일부는 그 이일 후의 12월6일이다. 강연의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어나, 이 서간은 강연후에 일어난 양자간의 대화의 결과인 동시, 그 때 까지 바타유가 출석한 강의 전체에 대한 返答이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바타유는 코쥬베가 헤겔철학을 깔고 행한 [역사의 종국]에 관한 고찰에 반박하여 자기자신을 [쓸 길이 없는 부정성]으로 자리 매김한다. 우선, 헤-겔에게 인간이란 [否定性]이다. 이 철학자가 [精神現象學]의 서문에서 논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精神]이란, [死]라고 하는 [부정적인 것]을 앞에 두고 몸이 찢으저 나가면서 그것에 등을 돌리지 않고 사와 대치하는 것으로 그 힘을 손에 넣고 스스로 부정을 행하는 자, 부정적인 것이 된다. 예를 들면, 항아리를 제작하는 인간은, 所與의 존재가 되는 흙덩어리를 그 자체로서는 [부정]하고, 일컫기를, 그것을 殺害하고 항아리를 제작한다. 인간의 행동은 이런 부정성이며, 소여존재를 부정하고 과거의 것으로 무화시키고(이미 순연한 흙덩어리는 무가 된다), 동시에 이를 保持하며 (토양은 병의 소재가 된다) 높히며 [止揚엎하-벤(揚棄)]한다. 이 부정에 의해 인간은, 자기와는 이질적적인 소여세계를 부정하면서, 자기가 품은관념(병이란 관념)을 그기에 실현하고, 타자인 대상을 자기로써(병으로써)실현한다. 이때 대상은 자기와 동질적인 것 되고, 대상에의 의식은[자기의식]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이 부정에 의해 소여존재는 언어에 의해 명명되어 (토양은 소재로서 粘土라 불린다) 개념화되어 인간의 지,학에로 환원된다. 이와 같은 부정성의 전개가, 인간의 [역사]이다. 그 역사의 전개의 결과, 세계는 인간에 의해 부정되고, 널리 탑파되어 세계전체가 인간적인것으로 동화되어 간다고하면, 최종적으로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헤-겔은, 코주베는 그때 역사는 종국을 맞이 한다고 말한다. 즉, 활동활동 부정적인 것은,부정적인 것자신을 부정하고, 그 활동을 성취하는 것이다. [보편적이며 등질한 국가]를 세계에서창조하고 부정적인 것은 세계와 대립하는 것을 끝내고부정하는 행동으로써의 자기자신을 페기한다. 혹은지를 절대적인 지에로 완성시켜, 학의 진리를 창조하고 부정적인것은 객관과 대립하는주관으로써 자기를페기한다. 헤-겔은 이 보편등질국가의 실현을 나포레온속에서 발견한다. 절대지의 실현을 스스로의 철학속에서 찾아 내고 역사의 종국을 선언한다. 허나, 바타유는코쥬베에게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다. 여하간, 아주 크게 불안을 품고 시달렸던 나의 체험에 의해, 나는 자신에게는 이미 무엇을 할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됬습니다. 행동하는 것이 ---헤겔이 말한 바와 같이----- 부정성이라면, [이젠 무엇을 해야 할것이 남아 있지 않는] 사람의 부정성은 사라지는가, 혹은 [쓸곳이 없는부정성]이란 상태에 머무는가, 이를 알려고 하는 문제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해 본 다면, 나는 자기자신이 바로 그와 같은 [쓸 모 없는 부정성]임으로, (나는그 이상으로 명확하게 나를 정의할 수 없지요), 후자임을 단정하는 이외 길이 없습니다. 바타유에 의하면, 가령 역사가 종국을 맞는다고 하드래도, 부정성은 해소되지 않고, [쓸모 없는 부정성]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 바타유의 내적체험은, 普遍等質國家에도 絶對知에도 환원될 수 없는 用途 廢棄된 순연한 부정성이며, 역사와 철학체계가 완결하려도 그 閉鎖領域 밖에서 혹은 그것을 깊은 안쪽에서 찢으 발기는 것과 같이 바타유는 생 그 자체가 열려진 상처로서 존재해 가는 것이다. 이 문제는 후에 [내적체험]에서 [非-知]의 문제로 제시된다. 지의 노림수가 완료되고 더 이상 旣知로 환원되지 못하는 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생각될 때 知의 圓環이 닫히며, 지가 전체성을 획득할 때 [그러나, 원환적인 이 사고는 변증법적이다. 그것은 최종적인 모순, (원환전체에 관한)을 갖게 된다. 즉, 절대적인 원환적인 지라는 것은, 결정적인 비-지이다. 실제, 내가 그기에 도달한다고 하면, 나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없다, 라고 아는 것이 된다]. 변증법은, 반대물의 대립을 지양하여 종합을 실현하지만, 이 변증법적총합에 의해 원환적인 지가 실현된다고 한다면, 변증법은 그때 종국을 맞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이 없는 변증법으로써, 총합없는 변증법로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실현된 최종적 동일성에 대해 어디까지나 반정립을, [최종적모순]을 들어 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는 [그 이상은 알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한계의 고백으로써 화하고, 지의 전체는 패城이란 정체를 들어 내고 逆으로 절대적[他]를 들어 낸다. 말하자면, [絶對的인 圓環的인 知란, 決定的인 非-知이다]. 그리고 非-知란 쓸모 없는 否定性이다. 역사가 종국을 맞이 하던, 절대지가 실현되던, 普遍等質國家가 성립되던, 쓸모없는 부정성은 殘存한다. 대저 부정성을 따르는 헤-겔의 사고는, 앞서 지적했다 시피 죽음을 앞으로 한 절대적 引裂의 체험에서 시작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死라고 하는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죽음을 견디며 죽음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함으로써 절대적 인열 속에서 부정적인 힘을 나의 것으로 만든다.(이 대목은 일본 무사의 영예로운 징벌인 ‘하라기리-셋부구’(자기의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르며 끝까지 고통을 참는 자결의 한 방식)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바타유에게는 이 [引裂]의 체험은 결코 치유 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이 자기를 버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죽음을 체험할 수 없고, 타자의 죽음을 대신할 수도 없는 이상, 절대적으로 未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미지를 앞에 두고 이를 바라 볼 때 인간은 이미 침착냉정한 주체로 머물수 없게 되며 공포속에 휘말려 들어가며 낭페감을 갖게 되며 비탄에 젖어 울부짖고 나를 잃어버리고 비-지에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헤-겔이 부정성탄생의 장면에 설정한 두 가지의 열상, [死]라고 하는 對象面의 열상과 [절대적인열]이란 主體面의 열상은 결코 縫合되지 못하고 치유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입을 벌리게 될 것이다, 끝이 없는 내적체험으로 존속하면서. 바타유는 전후에 발표한 논문, [헤-겔, 죽음과 供犧](1955)에서, [정신현상학] 서문의 죽음에 관한 논술, 그리고 이를 주제로 한 코쥬베의 강의록 [헤겔철학에 있어서 죽음의 관념](1933-34년도)을 다루고, 죽음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것과 대치하는 정신의 문제를, [공희]라고 하는 인간세계에 편재하는 종교의식의 고찰로 접속시키고 있다. 이 논문의 주석에서, 바타유는 다시, 이미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부정성에 대해 언급한다. 즉 고전적인 신비주의와는 다른 [의식적인 신비주의]는 [<허무>에서 <존재>를 탄생시켜버리는 것을 의식하여, 더욱 이 막다른 골목을 이제 (역사의 종국에서) 행동의 영역을 갖지 않는 (부정성)의 막다른 골목으로 정의한다]. 이 신비주의란, 바타유 본인의 것일 것이다. 즉 그 자신이 이 의식적인 [무신론적신비주의자]인것이다. [자기를 의식하고 있으면서 죽지 않으면 안되며 소멸될것을 의식하고 있는 무신론적신비주의자는, 헤-겔가 명확하게 자기자신에 관해 말한 바와 같이, [절대적引裂]속에서 살아 갈것이다. 그러나, 헤-겔에게는 그것은 일시기의 문제였다. 헤-겔와는 역으로 그는 신비주의자는 그기서 벗어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부정적인 것)을 정면에서 응시하면서], 그러나 이를 <존재>에로 바뀔 수는 결코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며, 애매함 속에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이다]. 무신론적신비주의자는 절대적引裂의 한가운데서 죽음과 대치하며 찢으저 나간다. 그가 바라보는 죽음이란 부정적인 것은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벌어지는 상처와 같이 항상적으로 부정적이며, 긍정화되지는 않는다. 그는,헤-겔적 정신과는 달리 부정적인 것을 [소여-(존재)]에로 바뀌는 일은 없다. 고전적신비주의자와 같이 그것을 신이라고 하는 실체에로 긍정화하는 일도 없다. 그는 치환하지 않는다. 부정적인것을 부정적이것으로 승인하고, 그기에 [네]라고 고하고, 스스로는 쓸모 없는 것의 부정성으로 남는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타유의 내적체험인것이다. [말벌과 같이 아름답다] 사진을 다시 한번 보기로 하자. 우리들은 이 [부정적인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해 질까. 우리들은 지금은 그것이 어떤 사진인가를 알고 있다. 눈을 감고 이의 계략적인 모습을 떠 올릴 수도 있다. 그것은 몇번을 봐도 같은 이미지이며, 一望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것도 아니며, 네못꼴 인화지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 나타나는 단편이다. 쉽게 시계속으로 들어 오며 앞서 본 것과 같은 이미지로 [알고 있는] 이미지로써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기에는 [보여지는 것] [읽히는 것]이라고 하는 旣知를 구성하는 요소가 결해 있지 않다. 그기에 [보이는 것]은 중국의 백각의 형이다. 촬영일은 1905년4월10일로 희생자의 이름은, 후-.체.리이며, 아오.한 왕 살해자의 범인으로 화형에 선고되지만, 황제의 온정에 의해 백각의 형으로 감형된 것이다. [에로스의 눈물]의 겝션을 읽음으로써 우리들은 그러한 지식을 획득하고 보이는 사진은 읽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견디기에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몇번을 보던 언제나 바로 바라 보기 힘 든다. 이 이미지는 절망적인 정도로 과잉이다. 그기에는 과잉한 부정성이, 知에 의해 訓育될 수 없는 미지가 잠재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것은 명료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잠새적인 힘으로 視覺을, 知를 덥치고, 열상으로 나타나며, 주체를 찢으 발기고 열상화시키며 내적체험에로 밀어 떨어 트린다. 바타유는 최만년까지 이 사진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럼으로써 역사가 완료하던 知가 아무리 세련된다 해도 가로등이 어둠을 구축하드래도 밤은 잔존하고 [나자신이 마치 이 (쓸모 없는 부정성)]이 된다. 이는 바타유의 특유한 체험이 아니다. 내적체험이란, 만인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체험이며, 쓸모없는 부정성은, 인류가 고루 갖고 있는 부분이다. 종교, 예술, 에로티시즘, 도박, 놀이, 바타유가 [저주받은 부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인간세계에는 無償의 體驗이, 消盡을 발생시키는 부분이 존재한다. 특히 예술과 종교는 내적체험의 시각적대상을 창조하는 분야이다. 실제로, 바타유는 앞서 언급한 코쥬베앞으로 보낸 서간에서, 이점을 다루고 있다. 즉 쓸모없는 부정성이 그의 생의 밖앗 쪽에 놓여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藝術이다. [정말이지, 무력한 부정성은 예술작품이 됩니다]. 부정성은 이렇게 대상화되어, 종교에서도 같은 대상화가 실현된다. 그러나 바타유는 그기에 한정을 가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에 있어서도, 종교의 정동적 요소에 있어서도, 부정성은 부정성으로 [승인]되지 않습니다. 역으로 부정성은 그것을 무효화하는 체계로 편입되어 마냥 긍정성만이 [승인]됩니다]. 바타유는 여기서 상술하지 않치만, 이미 언급했다 싶이 종교는, 여기서 바타유가 부정성이라 부르는 것을 신학대전에 도입하여 부정성을 신적실체로써 긍정화하여 부정적인것의 밤을 신의 빛으로 긍정화 할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역사이야기의 표상모체가 될것을 받고, 성서, 신화, 역사라는 기존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에 연관된 체계에 종속됨을 강요받고, 표상양식을 다루는 제도에 종속되어 捕獲되어 [부정성을 무효화하는 체계로 도입]되어 긍정화된다. 이렇게 하여 예술은 [보이는 것] [읽히는 것]에 의해 구성된 이지적인 것으로, 역사화로써 긍정되고 사회적으로 승인된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종교나 예술에서는 부정성은 훈치되고, 긍정적인 부정성으로 승인되느데, 벌거벗은 부정성으로써는 부인되어 버릴 것이다. 이에 대해 바타유는 이 서한에서 문제로 거론하는 자기자신의 생, 그의 부정성은, 역사의 종국에 의해 노정되는 [쓸모 없는 부정성]이며, 긍정화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써 승인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 예술에 대한 유보, 이 서한에서의 바타유의 말을 넘어 묻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과연, 예술은 완전히 체계속으로 도입되어 긍정화되는 것일까. 보인다, 읽힌다, 기지의 대상으로 환원되는 것일까. 그기에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트라우마가, 잠재적으로 열려있는 것이 아닐까. 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원래 人間은, 예술이란 傷口로부터 태어 난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부터 우리들이 묻고 밝혀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이 裂傷이다. (완료) 追而: 이상으로, 江澤健一郞 Ezawa Kanichiro의 [바타유] - 저주받은 사상가의 ‘건너 뛴 부분’의 변역을 마첬습니다. 앞서 [신예술론]이라 부친 번역문과 합치면 , 완역이 되는 셈입니다. 바타유는 매우 난삽하고 뜬 구름과 같은 문체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아주 별난 사상가이지만, 그것이 근거없이 마구 휘갈긴 글이 아니라, 나름데로, 아주 탄탄한 논리적 근저를 갖고, 시대를 넘어, 예술을 통사적으로 지퍼 가는 비전너리 사상가입니다. 혼란한 현대를 살아 가는 길목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정직한 사상가입니다. 쉽게 읽히는 예술론보담,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담론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억지로 뀌여 맞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건너뛰어 가면서 시간을 들여 꼼곰히 사안을 펄처 나가면, 전혀 새로운 경지가 열리는 보람을 안겨줍니다. 이 책의 전면에 걸처 언급되고 있는 [부정성]은, 불교의 반야경의 [공]의 개념과 그 본질에서 서로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무화]의 변증법적 실상을 짐작케 합니다. 이러한 점이 바타유가 21세기의 철학 예술 담론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어지는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여기에서 밝혀지고 있는 옛 중국의 사형제도에인 [백각의 형]이란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나라마다 다른 사형제도와 그 방식을 비교해 본다면, 께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酒井 健(사까이 다게시)가 저술한 [바타유入門]을 소개하는 글을 일부 여기에 옮깁니다. “성스려움에 대한 覺醒이란 무엇인가. 에로티시즘이란 무엇인가. 뜨거운 정념에 불 타면서 인간의 사고의 당위성을 묻고, 그 한계의 저편을 가르켰던 사람, 바타유. 헤-겔을 정점으로 하는 서구문명의 이성의 체계에 대해서 그는[非-知] [好運]을 내 걸고 과감히 싸움을 걸어 왔다. 현대의 유-럽은 아직도 그가 던진 물음속에 있다고 할수 있다. 그기에 바타유의 사상을 탐문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死와 에로티시즘]의 사상가라 불려 온 그의 활동의 전모를 전적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明快하게 해명한다. 젊은독자를 위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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