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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no image 현대미국시인 -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83 2018-09-27
현대 미국시인 (4)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 - 코네티컷의 증권맨, 1. 상상과 실재의 화두 나는 항아리 하나를 태네시에 놓았다, 그리고 어느 언덕위에서 그것은 둥근 모습이었다, 그것은 지저분한 황무지로 하여금 그 언덕을 둘려싸게 만들었다. 황무지는 항아리까지 올라왔다가 퍼졌어나, 더 이상 황패하지는 않았다. 항아리는 땅 위에서 둥글둥글했고 키가 컸고 대기의 한 항구였다. 그것은 곳곳을 지배했다. 항아리는 희색이고 밋밋했다. 새나 숲의 문양도 없고. 테네시의 어느 것과도 담지 않았다. I placed a jar in Tennessee, And round it was, upon a hill. It made the slovenly wilderness Surround that hill. The wildness rose up to it, And sprawled around, no longer wild. The jar was round upon the ground And tall and of a port in air. It took dominion everywhere. The jar was gray and bare. It did not give of bird or bush, Like nothing else in Tennessee. -전문 이 시의 제목은 [항아리의 일화](“Anecdote of a jar”)이다. 그리고 이 시는 우리가 이제까지 읽어왔던 시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에이츠, 엘리엇적 명상도 프로스트적 평이함도 윌리엄스적 위트도 아니다.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머리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즉 이 시는 독자들의 상상력의 최대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저자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nens 1879-1955)는 이것을 읽고서 독자들이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가를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용은 간단하다. 시인은 항아리 하나를 테네시의 황무지에 놓아두는 것이다. 그것도 펴범하기 짝이 없는 항아리로서 잿빛의 맨몸일 뿐이다. 그러나 그 둥근 항아리를 중심으로 기묘하게 테네시 황무지의 질서가 개편되는 것이다. 우선 언덕 위에 놓아둔 항아리를 향해 황야가 에워싸다가 급기야는 솟아올라 주변에 엎드린다. 모든 황야가 자신을 애워싸고 엎드림으로써 볼품없는 항아리는 재황처럼 당당해지는 것이다. 급기야 그것은 대기를 타고 이동하는 모든 것들의 항구처럼 거대한 형채로 변모한다. 마지막으로 항아리는 무늬도 없는 맨몸뚱이지만 태네시의 다른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고 강변한다. 이 아무런 꾸밈없는 항아리 하나, 그것이 어찌 그리 독특할까? 그것은 아무런 무늬도 없고 희색빛 맨 몸뚱이 일 뿐인데 왜 그다지도 중요한 역할을 할까? 이것에 뭐라고 설명을 붙이기는 몹시 힘들어 보인다. “마음의 세계가 인간의 위대한 영토이지만 그 영토는 허망하고 실망을 줄 뿐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는 풀이도 있지만 웬지 와 닿지 않는다. 혹 이것이 스티븐스의 시론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런 무늬도 없고 무덤덤한 시, 그러나 태네시의 황무지를 지배하듯, 당대 시단의 기존 질서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려는 시인의 야심에 찬 시도 ……….. 이런 것은 아닐까?
1469 no image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 - 3
901 2018-09-26
1468 no image 윌리엄 칼로스 위리엄즈 (2)
791 2018-09-24
윌리엄(William Carlos Williams) – 2 윌리엄즈는 젊어서 팬실베니아 대학의 교정에서 파운드와 힐다 들리틀 등과 교유했었다. 그들이 오로지 문학에 전념했었던 데 반하여 윌리엄즈는 1912년 뉴저지의 러더퍼드에서 소아과 병원을 개원하고 55년 동안 의사로서 성실하게 일했었다. 프로스트가 그러했듯이 윌리엄즈도 엘리엇의 시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프로스트가 엘리엇 식의 세계관에 도저히 필적할 수가 없어 뉴햄프서의 농장생활에 숨어들어가 전원에 천착했듯이 윌리엄즈도 의사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쓰는 시로서는 도저히 엘리엇과 같은 광대한 시세계를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엘리엇, 에이츠류의 시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자기가 살고있는 자은 지역에 철저히 천착하는 시를 쓰게 된 것이었다. 이미지스트로서의 월리엄즈의 시를 한 편 보자. 빗줄기와 불빛 사이로 나는 보았네 금빛 숫자 5가 빨간색 소방차에 쓰인 것을 쾡쾡거리는 경적소리와 윙윙거리는 사이렌 소리와 굴러가는 바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검은 시가지를 뚫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Among the rain And lights I saw the figure 5 In gold on a red firetruck moving tense unheeded to gong clangs siren howls and wheels rumbling through the dark city. -[ 큰 숫자 ](“The Great Figure”) 전문 이 시는 시점을 비 오는 날로 택하고 있다. 하필 비 오는 날로 택한 것은 햇살 쨍쨍한 날 보다 세상이 선명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번들거리는 물기와 불빛과 빨간 바탕 위에 노란색으로 선명히 빛나는 숫자, 그리고 그 습한 물기 속에서 더 선명히 들릴 사이렌 소리, 소방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 이런 색상과 음향이 시각적 청각적 감각으로 잡히는 위급함일 것이다. 황급히 달려가는 소방차의 모습을 고속 카메라로 잡아내듯이 포착함으로써 그 위급함을 소리와색상으로 강렬히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의 영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미지스트의 시 중에서도 뛰어나 보인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보자.
1467 no image 현대 미국시인 (3) 윌리엄 칼로스 월리엄즈(William Carlos Williams)
839 2018-09-23
현대 미국시인 (3) 3. 윌리엄즈(William Carlos Williams) 1. 객관의 시법 로버트 프로스트가 뉴햄프셔의 전원생활에 천착하여 시를 썼다면 뉴저지의 정서를 객관적으로 그리며 대공황 당시 어렵던 중하류 계층의 도시 사람들의 애환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시인이 월리엄즈(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이다. 그는 이른바 객관성의 시를 고집한 시인으로 그 시의 출발은 이미지즘의 시에 있다. 힐다 둘리틀(H. D.), 메리언 무어(Marianne Moore) 그리고 에즈라 파운드(Ezrra Pound)가 주창한 이미지즘의 시학이란 이른바 사물의 있는 그대로 순간적인 인상을 제시하는 시법이었다. 이것은 동양시, 즉 한시와 일본 하이쿠의 단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순간적인 인상의 이 시법은 특히 동양시에 열광하였던 파운드의 시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정작 파운드 보다는 후대의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 그 영향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다. 즉 파운드의 시에서 그것은 그냥 소개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나 후대의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더 깊어지고 다른 차원의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운드의 시에서 흔히 이미지즘의 대표시 정도로 읽히는 것이 [파리의 지하철역에서](“In a Station of the Metro”)라는 시이다. 무리 속의 이 유령과 같은 얼굴들; 비에 젖은 나뭇가지에 달린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전문 이 시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도시 사람들의 무표정하고 생기 없는 얼굴들을 젖은 나뭇가지의 창백한 꽃잎에 비유한 것이다. 대도시의 복잡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을 창백한 꽃잎에 비유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검은 나뭇가지를 대입하고 있다. 창백한 꽃잎과 검게 젖은 나뭇가지의 색상의 대비는 충격적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독자들은 그 도발적인 비유에 무릎을 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20세기 초반의 대도시 생활은 그 이전의 전원적 생활에서의 급격한 비인간적 전환이었다. 물론 19세기 산업혁명이래로 도시화는 각 나라에서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20세기 초의 도시화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던 대도시는 급기야 지상의 도로로 부족해서 땅 속에까지 길을 내게 된다. 생각해 보라,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시인 파운드가 땅 속을 지렁이처럼 달리는 전동차와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을 그 비인간성의 충격을 …… 그리고 이 시는 당시 서구의 시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영시는 전통적으로 길고 유장한 흐름을 갖는다. 그러나 이 시는 긴 설명을 사절한다. 마치 일본의 하이쿠와 같이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 시는 당대의 시인,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0세기 들어서 영미의 시인들은 맥 빠진 조오지아 조의 시(낭만시의 흐름이 19세기말 극대화 되면서 막연한 영탄과 퇴폐적 탐미주의에 빠져들어 갔던 유파의 시)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고 거기에 걸려든 것이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들, 그리고 불란서 상징파 시인들이었고 이들을 통해서 시의 시어와 비유에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현대시의 독특한 모습을 만들어 내었다. 여기에 한 다리를 거드는 것이 동양시의 영향이었다. 특히 미국시단의 경우 동양사상과 동양시의 영향이 뚜렷하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본받아야할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은 한시와 일본시의 (그들에게) 낯선 모습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생겨난 이미지스트 운동이 역시 모더니즘의 한 흐름을 형성한 것이다. 파운드의 한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탐색은 대단했다. 위낙 동서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그의 시에서 배경을 이루긴 하지만 특히 동양에 대한 호기심은 그의 시에서 중요한 특색을 이룬다. 그리고 거기서 태동한 것이 이미지스트 시운동이고 그것이 영시의 군살을 빼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시가 서양의 시에 준 영향에 대해서 그것 보라는 듯 자만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동양의 시를 도입해서 독특한 자기네의 시법을 만들어 버린 그 용광로적인 수용성에 대해서 겸허해야 하고 그런 자세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시어의 아름다움과 활력을 위한 실험과 수용은 한 나라의 언어의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1466 no image Robert Frost (3)
672 2018-09-23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 (3)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인으로 길이 살아남은 이유는 작은 것들 하나 하나를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어루만지는 노력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살아가는 철리를 깨우치고 독자들과 나누는 데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당대 세계의 시단은 엘리엇류의 문명 비판의 시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시들이 워낰 지배적이어서 그처럼 많은 독서와 많은 사유를 하지 못한 시인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처지였던 것이다. 거기에 프로스트는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그리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독서를 통하여 그리 해박하지 않더라도 생활주변의 작은 것에서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려진 다음의 시에서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노란 숲 속에 두개의 길이 갈라져 있었지. 두 길을 다 갈 수 없어 유감이었고 나는 혼자였기에, 오래 그 자리에 서서 가능한 한 멀리까지 한 쪽 길을 바라보았지 그것이 잡목 숲 아래 구부러지는 데까지;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어, 똑 같이 아름다우며, 아마도 더 나를 부르는 듯해서, 왜냐하면 더 풀이 우거지고 발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으니까, 비록 그렇게 그 길을 지나감으로써 똑 같이 밟혀 닳게 되겠지마는, 그런데 그날 아침 두 길은 똑 같이 놓여 있었네 아무도 검게 밟지 않은 낙엽에 덮여서, 오, 나는 첫 번째 길을 다른 날을 위해 남겨 두었는데! 길이 어떻게 길로 이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하긴 했지만, 지금으로부터 여러 해 지난 뒤 어딘가에서 이 일을 한 숨 쉬며 말하게 되리라: 두 게의 길이 숲 속에 갈라져 있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니는 길을 택했노라고, 하여 그것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었노라고.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just as fa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marked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전문 도끼로 나무들 쪼개면서, 자작나무를 타고 놀면서, 나름데로 세계와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를 키워오던 시인의 혜안이 여기서 열리는 듯하다.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현명한 이는 말 잘하는 정치가도, 돈 많은 상인도, 시 쓰는 시인도 아니고 노동하고 사색하는 어니스트였듯이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의미를 발견하던 농부시인 프로스트의 사색이 이 시에서 만개하는 듯하다.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었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시인 프로스트의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1465 no image Robert Frost (2)
648 2018-09-22
로버트 프로스트 (2)) 이게 누구의 숲인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그의 집은 마을 안에 있어; 내가 여기 멈추어 눈을 덮여가는 숲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리. 내 작은 망아지는 틀림없이 이상하게 생각했으리 일년중 가장 캄캄한 저녁에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의 주변에 농가도 없는데 멈추어 있는 것을. 그는 말방울을 한번 흔든다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느냐는 듯. 유일하게 들리는 다른 소리는 부드럽게 바람 스치는 소리 눈송이 날리는 소리. 숲은 아름답고, 검고, 깊다. 하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지. 그리고 잠들기 전 수말일 가야만 한다. 잠들기 전 수 마일을 가야만 한다.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전문 이 시는 거의 프르스트의 대표시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에 숨어 있는 정취를 정확히 알 고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우선 시의 배경이 몹시 뉴잉글랭드적이다. 눈 내리는 벌판과 깊은 숲과 호수의 황막한 배경은 바로 뉴잉글랜드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이 풍경 앞에서 시적 화자는 언듯 보기에 도취되어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아름답고 깊은 광경 앞에서도 생활을 놓지 않고 있다. 비록 마을안에 잠들어 있어 이 아름다운 숲의 진정한 주인이 될 자격도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진짜 주인 보다는 더 숲의 가치를 이해하고 거기에서 황홀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도 결국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있고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잊지 않고 있는 생활인인 것이다. 그리고 시의 형식과 소리에 있어서의 아름다움(특히 마지막 연)은 과연 이 시를 프로스트의 대표시라고 할만하다.
1464 no image 현대 미국시인 (2)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922 2018-09-22
-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 2.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 뉴햄프셔의 농부 나 이제 가서 목장의 샘을 치려고 해요: 잠간 가서 칼퀴로 낙엽만 긁어내면 되는데 (그리고 물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함께 가지 않을래요. 가서 어린 송아지를 데리고 오려고 해요 어미소 겉에 서 있는데 아직 너무 어려서 어미가 혀로 핥으면 비틀거린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 함께 가지 않을래요. I’m going out to clean the pasture spring: I’ll only stop to rake the leaves away (And wait to watch the water clear, I may): I shan’t be gone long. – You come too. I’m going out to fatch the little calf That’s standing by the mother. It’s so young. It totters when she licks it with her tongue. I shan’t be gone long. – You come too. -[목장](“The Pasture”) 전문 로버트 프르스트(Robert Frost 1875-1963)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시인이다. 그것은 이 시인의 자연취미와 전원생활에 근거한 詩作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구미에 맞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시의 근본은 자연에 있었고 우리 조상들은 무엇보다 자연을 노래하기를 즐겼었다. 하여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외국시 중에서 가장 우리의 심금을 울린 시 중의 하나가 로버트 프르스트의 시였다면 과히 과장은 아니리라. 위에서 인용한 시에서도 우리는 평화롭고 아늑한 전원생활의 전형을 상상할 수 있다. 사실 자연을 詩化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자연시인들은 많지만 그들 거의 대부분이 막연한 영탄이나 感傷에 흘려들고 있음은 이것이 얼마나 시화하기 어려운 소재인가를 알게 해준다. 자연에 대한 傾倒라면 영국의 낭만시인 워즈워드(W. Wordsworth)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영문학을 공부한 이에게는 상식에 해당한다. 잉글랜드 서북부 호수지방에 은거하면서 아름다운 숲과 호수와 꽃들을 노래한 그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주장을 가장 잘 실천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워즈워드를 비롯한 영국 낭만시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가 19세기 초엽이었으니 프르스트와는 근 백년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 백년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대충 낭만시인이라는 사람들은 머리가 하늘에 닿고 발은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름처럼 떠다니며 현실생활이나 세상의 욕심을 비웃으며 세상을바로 잡아야 한다는 선구자적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그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낭만주의 사상이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하여 가장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는 바로 시인 바이런이었으며 그는 우수에 차있고 강한 힘을 가진 영웅적 인물, 바이러닉 히어로를 만들어내었다. 현실에 대해서는 초연하고 초인적 의지로 가득한 인물이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한 이상적 인간상이였고, 그것은 지금도 서구 문학 곳곳에 맥이 닿고 있다. 프르스트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그것을 詩化 했지만 그들과는 철저하게 다르다. 그는 바로 현실에 바탕을 둔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 19세기의 영웅숭배적 흐름에서 20세기의 개개인의 작은 생활과 생각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즉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이상 영웅이 필요하지도 않고 영웅이 태어나지도 않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프로스트는 이러한 흐름과 사상에 순응하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스트가 생활하고 시를 썼던 뉴잉글랜드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미국의 동부에서 최북단의 매사츄세츠, 뉴햄프셔, 메인, 이 세주를 일컬어 뉴잉글랜드라고 하는데 이곳은 영국 청교도들이 맨 처음 발을 딛은 곳이었던 것이다. 이 지역은 수목이 울창하고 기후가 적당히 따뜻하여 처음 이민자들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특히 매사츄세츠의 보스턴을 중심으로 당대의 대시인, 에머슨(Emerson),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등이 활약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큰 바위 얼굴도 뉴햄프셔의 마운틴 화이트에 실재하는 바위얼굴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초기의 미국문학이 꽃 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초창기 미국 초절문학의 중심에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vid Thoreau)라는 인물이 있었다. 에머슨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소로우는 보스톤 서쪽에 위치한 월든이라는 호수 곁에 오두막을 짓고 2년간 명상생활을 했다. 그 결정판이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월든]((Walden)이다. 그럭저러한 전통의 자락을 잡고 시인 프로스트가 탄생했던 것이다. 뉴햄프셔에 ‘데리’ 라는 농장을 경영하면서 한편으로는 교편을 잡았던 그는 그 농장생활을 근거로 하여 생활시를 썼는데 이것이 그 당시로는 시단의 반역이었다. 당시 서구 시단을 풍미하던 것이 엘리엇과 파운드류의 문명비판 시였었고 그것은 동서의 고전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시인들은 [황무지](“ The Waste Land”)에 인용된 그 수많은 인용과 해박함에 감탄했었다. 파운드나 엘리엇은 시인이면서 또 엄청난 독서가요 학자였다. 프르스트는 도저히 그들의 흉내를 낼 수 없었고 또 그쪽으로 승부를 낼 수 없음을 진작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농장에 숨어들어 거기서 느껴지는 생활인으로서의 작은 기쁨들을 시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프로스트가 시인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힘들었다. 고향에서 도저히 인정을 받지 못하자 그는 살림을 모두 정리하여 영국으로 건너갔었다. 거기서 첫 시집을 내고 약간의 인정을 받다 귀국하여 서서히 이름을 얻으며 마침내 네 번의 플리치상을 수상하게 이른다. 오늘날 프로스트의 시에 대해서 아무도 토를 다는 이는 없지만 처음 그가 시인으로 데뷔하는 데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프로스트의 엘리엇에 대한 질투에 가까운 경쟁의식은 재미있다. 자신이 도저히 엘리엇류의 시를 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프로스트는 엘리엇이 거시적, 우주적으로 나아가는데 반발하여 자신의 작은 농장과 주변의 작은 일들에 신경질적으로 몰입하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역시 잘 알려져 있으면서 생활의 냄새가 물신 나는 시 한 편을 읽어 보자. (계속)
1463 no image [초공간과 한국문화]
602 2018-09-20
超空間과 한국문화 -뫼비우스, 에셔, 러셀로 본 한국인의 초공간 의식구조 – 김상일 책 머리에 사이버 스페이스의 등장과 함께 ‘초공간(Hyperspace)’ 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 이외에 4차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금세기 초에 밝혀졌다. 그 이후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그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초공간’이란 말이 등장하게 되었다. 21세기는 바로 인간들이 초공간으로 들어가 의식세계가 바뀌는 세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초공간은 이미 위상수학자들에 의해 100년전부터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먼저 우리 한국인들은 의식주 생활 속에서 초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의 한복이 초공간 개념에 헤당하는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병의 원리로 만들어진다. 필자는 한복을 아는 과정에서 위상기하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학이 모든 학문에 앞서가는 분야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토마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이 물리학 분야에서 먼저 결정되는 줄로 알았는데 물리학보다도 한세기 혹은 반 세기 전에 수학자들은 이미 현대 과학이 상대성이론이나 빅뱅이론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수학 가운데 특히 位相數學은 19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우리는 물고기가 물 속에서는 물을 의식하지 목하고, 새가 공중에서는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모든 학문이 수학의 물 속에서 유영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하학은 빈 공간을 연구하는 분야이고, 물리학은 물질 세계를 연구하는 분야인데 어떻게 두 분야가 만날 수 있단 말인가. 無와 有가 만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증명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물질의 중력은 빈 공간도 휘게 할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은 우주발생이론인 빅뱅이론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19세기 초엽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위상기하학의 도움을 결정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위상기하학을 우주론에 적용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라면, 심리학에 적용시킨 인물이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분석은 위상기하학적 이해없이 설명될 수 없다. 플라톤의 철학이 고대 유클리드 기하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베르그송의 철학이 근대 수학의 미적분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기하학적 개념이다. 완전한 삼각형이라는 이데아를 전제하지 않고는 개물의 삼각형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상기하학, 즉 非유클리트 기하학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은 예고된 사실이나 기하학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은 예고된 사실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재빠르게 위상기하학에 눈을 떴고, 그는 만년을 거의 기하학 연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서양 세계에서는 아직도 위상기하학에 눈뜬 새로운 철학이 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르네 톰(Rene Thom) 같은 학자가 이런 시도를 하여 위상수학의 카타스트로프 이론을 통해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려 시도하고 있는 정도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이란 문화인류적 유산의 결과라고 함으로 필자의 견해에 접근하고 있다. 즉, 우리 민족은 옷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위상기하학을 터득한다는 것이다. 수학도 인간정신세계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빈 공간을 다루는 기하학이 물질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과 관계된다는 사실은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이미 한 세기 전에 그 논의가 끝난 얘기지만, 기하학이 정신과 마음의 세계를 다루는 철학과도 연관된다는 발상은 좀 엉뚱해 보인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기하학의 물 속에 유영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분야가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학: 양식의 과학[Mathematics : The Science of Patterns] 의 저자 케이트 데브린은 ‘ 수학은 독자의 마음 속에서 숨쉬고 있다 ‘ 라고 했다. 이 말은 수학이란 인간 마음의 양식(patterns)에 불과하다는 말과 같다. 데브린은 책에서 과감하게 수학을 인간의 예술 그리고 현대 최첨단의 물리학 이론인 超끈(superstring)과 일치시켜 생각하고 있다. 수학을 마음의 양식으로 생각할 때에 서양에는 서양의 마음이 있고 동양에는 동양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마음에 들어 그것에 끌려 2,500여 년 동안 그것을 즐겨 사용해 철학도 하고, 집도 짓고, 옷도 만들어 입었을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철저하게 곡선을 배제하고 직선만을 다루는 기하학이고, 비유클리드 가하학운 그 반대로 휘고 꼬고 접는 선과 면을 다루는 수학이 아닌가. 바로 우리 동양적 마음 그리고 한국적 마음이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더 매력을 느껴왔던 것이다. 건축의 지붕 하나에서도 곡선을 살리려고 했기 때문에 직선으로 네모난 집을 짓지 않았던 것이다. 고비용과 많은 시간의 소모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휘고 비틀어 집을 지으러 했던 것은 바로 동양의 심적 분위기의 차이인 것이다. 서양 수학자들이 곡선을 싫어한 나머지 그것을 억지로라도 펴 직선으로 바꾸려고 했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했을 때 많은 비유클리드 기하학 학자들이 박해를 당하고 수모를 당해야 했었다. 이제 같은 동양이라 하더라도 한국, 중국, 일본이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세종대왕께서는 ‘나라 말이 중국에 달라’ 라고 했지만, 이 책에서는 ‘ 나라 옷이 중국에 달라’ 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바지는 서양 바지에 더 가깝지 한복과 가깝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법구조 역시 중국어는 영어에 더 가깝다. 연구를 시작할 때에는 한복바지, 자루 정도가 위상기하학의 뫼비우스의 띠로 재단된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 의상 전문가들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저고리, 처마, 도포, 고쟁이 등 대부분의 우리 옷이 같은 뫼비우스의 띠의 원리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로서 필자는 한국인의 마음의 전반적 양상이 서양과는 달리 비유크리드 기하학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됬으며, 그래서 우리의 철학도 서양 철학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결론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하학과 한국사상을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것을 러셀의 역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러셀의 역설이란 부분과 전체가 되먹임되는 데서 빌셍하는 역설이며, 쉽게 이해하자면 한국 건축 양식에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끼리 서로 공간을 만들어 마주 붙여 바탕과 그 바탕에 얹혀 있는 부분을 분리하지 않는 바시미기법과 같은 것이다. 한복을 짓는 것도 모두 이러한 바시미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시미기법은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一中多 多中一이라는 의상의 화엄사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공간이 물질과 만나고, 다시 물질은 마음을 만나게 된다. 공간, 물질, 마음 사이에는 하나의 등식이 성립된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비유클리드 기하학 학자들이 곡선을 다룬다고 모멸과 박해를 받아왔듯이 우리 역시 한복을 입는다고 일본이 조선 사람들을 핫바지라고 조롱했으며, 그래서 스스로 우리 옷을 집어던지고 양복 입기에 바빠졌다. 한복을 입고 다니기를 싫어하는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는 이런 핫바지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바야흐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시대는 가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와함께 새로운 철학이 함께 등장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고 한복과 함께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 원효, 의상, 율곡, 수운 등 우리 고유의 사상이 바로 우리의 비유클리드 철학사상이다. 바시미의 미학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 마음 그것속에 논리가 있고,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줄 것이다. 끝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제자들에게 한복과 위상기하학의 관계를 연구하도록 독려해주신 세종대학교 임영자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실로 한국적 학문 풍토 속에서 우리 것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기성학계의 기득권 수호자들이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는 상항에서 교수님의 격려는 필자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이제는 이 분야의 박사학위자도 배출되었고 앞으로 연구를 준비하고 있는 후학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편 수학이 인간 마음의 소산이라는 말에 또한 위로도 된다. 왜냐하면 철학도가 수학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월경죄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려운 시기에 이 책이 나오기 까지 수고해주신 교학연구사 사장님과 편집을 맡아주신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1992년 2월 한신대학교 연구실에서 김상일 *위의 글은 김상일교수의 [초공간과 한국문화]의 서문(책머리)이다. 이글을, 미국테네시 대학교 환경경제학 교수로 지금 고려대 교환교수로 와서 강의를 하고 있는 조성훈교수에게 보낸다.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조교수는 한국이 갖고 있는 이러한 파라다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이론이 부딛치게 되는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포용하면서, 한국적 실정에 맞는 관점을 도출해 가기를 바란다. 필요하다면, 김상일교수의 ‘책’을 한권 보낼 수 있다.
1462 no image 게리 스나이더 (8)
747 2018-09-16
게리 스나이더 (8) 인류의 역사는 숲을 파괴해 온 역사이다. 여기서 중국의 경우 대륙을 덮고 있던 숲이 모두 깎여서 황해로 들어가고 미대륙의 경우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를 덮고 있던 숲이 모두 벌목되어 사람들의 주택으로 변했다. 원시인들이 숲 속에서 안식처를 구했다면 현대인들은 그 숲을 베어서 안락한 집을 짓는 것이다. 사람이 번성하면서 자연과 숲은 베어서 안락한 집을 짓는 것이다. 사람이 번성하면서 자연과 숲은 자꾸 자꾸 사라졌다. 차이가 있다면 중국을 비롯한 구대륙의 숲은 오랜 세월을 두고 파괴되었고 아메리카의 숲은 너무나 빠른 기간동안 파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메리카 인들은 자신들이 일궈놓은 물질문명에 대해서 만족해 하며 한 목소리로 찬양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 얼마나 무서운 오판인가. 작은 숲이 넘어졌다. 베어 넘어졌다 아함왕과 퀴빌레의 숲들이 소나무들, 마디진 가지들 큰 솔방울과 씨 이들은 퀴빌레의 나무들, 성스런 숲 지아미의 소나무, 하이디의 전나무들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아테내의 요정들 로마의 흉한들에 의해 베어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교외의 주택지를 만들기 위해 베어지고 루터와 와이엔하우저 회사의 불도저에 밀어지고 가로톱과 사슬톱으로 켜지고 스웨덴 사람들과 핀란드 사람들 나무 꼭대기를 밧줄로 얽어 아래로 끌어당기니 나무들은 넘어지고 개울들은 질식하고, 송어들은 죽고, 길이 생기고 영호화의 재재소 성전들 100 피트 높이의 두꺼운 시커먼 연통이 그의 벌름대는 코 밑에 우리가 태운 수맥과 나뭇잎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The groves are down cut down Groves of Ahab, of Cybele Pine trees, knobbed twigs thick cone and seed Cybele’s a tree this, sacred in groves Pine of Seami, cedar of Haida Cut down by the prophets of Israel the faeries of Athens the thugs of Rome both ancient and modern: Cut down to make room for the suburbs Bulldozed by Luther and Weyerhaeuser Crosscut and chainsaw squareheads and finns high – lead and cat-skidding Trees down Creeks choked, trout killed, roads. Sawmill temples of Jehovah. Squat black burners 100 feet high Sending the smoke of our burnt Lives sap and leaf To his eager nose. -[작은 숲이 넘어졌다](“The Grovens are Down”) 전문
1461 no image 게리 스나이더 (7)
644 2018-09-14
게리 스나이더 (7) 산의 한 귀퉁이에서 길을 멈추고 한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미 혼자의 생활에 익숙한 자연인이다. 그는 오로지 오후 내내 난로에 나무를 들이밀거나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보거나 황새가 날게 치며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생활은 자연속의 한적을 즐기 수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 적요한 움직임의 가운데 세상은 너무나 평화롭다. 조용히 썩어가는 나무그루터기나 계곡에 엎드린 농가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자연에 그대로 스며든 존재이다. 이 시에서의 이러한 경험이 있은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한적한 생활 속에서 생각을 거듭하던 그의 사상은 인류사적인 것으로 이어진다. 원래 그는 리드대학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동시에 전공했으며 당시 그 대학에는 이 시인의 길잡이가 될 만한 휼륭한 스승이 몇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각은 마침내 인류 전체를 생각하고 세계역사를 관조하는 거시적인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중국의 원사람들이 벌채되어 야산들은 황해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져서 굳힌 당의 모래 위에 사각 대들보와, 통나무 기둥으로 세웠다. 센프라시스코의 주택용 표준 널빤지는 원래 시애틀 주변의 숲이었다: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지었다. 집을, 숲을, 파손시키면서 일으켜 세웠다 온 미국이 하나의 고리에 매달려 스스로를 찬양하는 인간들에 의해 불타고 있다. The ancient forests of china logged and the hills slipped into the Yellow Sea. Square beams, log dogs, on a trampled-earth sill, San Franscisco 2 x 4s Were the woods around Seattle: Someone killed and someone built, a house, a forest, wrecked or raised All Anerica hung on a hook & burned by men, in their own praise. - [그러나 너는 그들의 계단을 파괴할 것이니](“But thou shall destroy their altars”) 부분
1460 no image 의상의 화엄사상 범성계
709 2018-09-14
1459 no image 문명은 인류를 행복하게 했는가?
666 2018-09-14
文明은 人間을 幸福하게 했는가? 유-발.노아.하라리 著 [사피엔스]에서- 第19章 과거 500년간 놀라운 혁명이 연이어 일어났었다. 지구는 생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단일한 영역에 통합되었다. 경제는 指數間數的으로 성장을 이루었고, 인류는 현재, 여태 옛이야기속에서만 있었던 정도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과학과 산업혁명의 덕택으로, 인류는 초인간적인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의 에너지를 손에 넣었다. 그 결과 사회, 사회질서는 근저에서 변용됬다. 정치나 일상생활, 인간심리도 마찬가지다. 하나, 우리들은 이전보다 행복해 졌는가? 과거 5세기 사이에 인류가 축적한 풍요로움에, 우리들은 새로운 만족을 찾았던가. 무진장의 에너지자원의 발견은 우리들의 눈앞에서 끝없는 지복의 문을 열어 주었던가? 더욱 시간을 거슬려 올라가 인지혁명이후의 7만년 정도의 격동의 시대에, 세계는 보다 살기 쉬운 장소가 되었는가? 무풍의 달에 지금도 그때의 흔적을 남겨 놓은 닐.암스트롱은 3만년전의 쇼-배 동굴의 벽에 손 자국을 남겼던 무명의 수렵채집민보담 행복해 졌는가? 만일 그렇다면 농경이나 도시, 서기, 화폐제도, 제국, 과학, 산업등의 발달에는 도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었던가? 역사학자가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일은 거이 없다. 우르크나 바빌론의 주민이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었던 조상보다 보다 행복했었던가, 혹은 이스람교의 대두에 의해, 이집트인은 나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깊어젔었던가, 더욱이, 이프리카에서 유-럽의 제 제국의 붕괴가 무수한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주었던가, 라고 하는 문제는 제기하지 않는다. 허나 이것들은 역사에 관해 우리들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현재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나 정책은 인간의 행복의 진정한 원천에 관한한 천박한 견해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 다수다. 국민주의는, 우리들의 행복에는 정치적인 자결권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자는 프로레타리아의 독재 아래서만 만인이 행복해진다고 호소한다. 자본주의자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실현하여, 사람들을 자립과 진취의 정신을 가르키는 것으로, 자유시장만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 온다고 주장한다. 본격적인 연구에 의해, 이러한 가정들이 번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경제성장과 자립이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는 어떤 이점이 있다는 것인가? 거대 제국의 피지배민쪽이 일반적으로 독립국가의 시민 보담 행복하고, 알제리아인이 독립 후 보담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을 때가 행복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면, 어떨까? 그것들은, 식민지해방의 진전이나 국민의 자결권의 의의에 관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이것들은 어느 쪽도 가상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은, 여태까지 역사학자는, 이런 문제에 답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조차 피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나 사회, 경제, 사회적.문화적 성별(젠다-), 질병, 성행동, 식물, 의복등, 거이 대부분의 사태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했지만, 여기서 한숨 돌리고 봄면, 그것들이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묻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장기간에 걸친 행복의 역사를 연구한 예는 그리 만치 않는데, 학자뿐만 아니고 일반인들은 대체로 행복의 역사에 관해서는 막연한 선입견을 품고 있다. 자주 있는 일로, 인류는 능력은 역사를 통해 최대의 길을 따라 왔다는 것이 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비참한 상황을 개선한다던지 원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중세의 조상들 보담 행복하며, 또한 그들도 역시 석기시대의 수렵채집민보다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다. 허나, 이 진보주의적인 견해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미 봐 왔듯이, 새로운 적성이나 행동양식이나 기능이 생활을 향상시킨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농업혁명으로 인류가 농경. 목축의 수법을 습득했을 때 주위의 환경을 정돈하고, 집단으로써 능력은 증대하였어나 많은 인간에게는 개인으로서의 운명은 보다 가혹해 젔다. 농민은 종류의 측면에서도 영양의 면에서도 열악한 식량으로 어떻게 살아 남기 위해 수렵채집민 이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병에 걸린다던지 착취당한다던지 하는 위험이 각별하게 증대하였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제재국의 확대는 상상이나 테크노로지-, 작물을 확산시키고, 새로운 교역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인류전체의 힘을 대폭적으로 증진시켰다. 허나 이것 역시 방대한 수의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원주민, 오-스트라리아의 아포리지니에게는 길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분명히 권력남용의 험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과연 길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분명히 권력남용의 기미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에너지를 증대하면 할수록 행복해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익한 생각이다. 진보주의의 관점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의 일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 그들은 인간의 능려과 행복도는 반비례한다고 주장한다. 능력을 가진자는 부폐함으로 인류는 가지는 힘이 클스록 진정한 필요에는 등을 돌린다. 기계적이며 찬 세계를 구축해 왔다고, 라고 그들은 말한다. 진화는 우리들의 심신을 수렵채집생활에 적합하도록 모양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쩨로, 농업으로, 다음에는 공업으로 이행한 결과로, 인간은 본래의 성향이나 본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그럼으로 더욱 극심한 흥분이나 순수한 기쁨에는 미치지 못한다. 새로운 발명을 할 때 마다 우리들은 에덴동산에서 한층 더 멀어져 가게 된것이다. 깊은 갈망을 채우지 못하는 부자연스려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도시의 중산계급의 쾨적한 생활의 경험으로 누구던지 수렵채집민의 생활집단이 만모스를 어렵게 잡았을때 느끼던 열광적인 흥분이나 순연한 기쁨에 미치지 못한다. 새로운 발명이 일어 날 때 마다 우리들은 에덴 동산과의 거리는 한층 더 크지는 것이다. 허나 모-든 발명의 배후에서 불길한 그림자를 보게 되는 이 로망주의적인 주장은, 진보를 필연으로 삼는 신념과 같이 獨善的이다. 우리들은 안의 수렵채집민의 모습에서 떨어저 나갔으런지도 모르나,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례를 들면, 과거 2세기 동안, 근대의료에 의한 소아사망율은, 33퍼센터에서 5퍼센트미만으로 저하되었다. 이것이 의료가 없었다면 목숨이 사라젔을 아이들의 행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친구들의 행운에 크게 공헌했음에 의문을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中道를 가는 것이 이를 미묘하게 수정한 입장이다. 과학혁명까지, 갖는 힘과 행복에 명확한 상관관계는 없었다. 중세의 농민들은 실은, 수렵채집민의 조상보다 불행했을는지 모른다. 허나 이 수세기 동안 인류는 스스로의 능력을 현명하게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근대의료의 승리는 그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미증유의 공적으로써, 그 이외도 폭력의 격감이나 국가간의 전쟁의 사실상의 소멸, 대규묘의 기근이 거이 일소된 것을 들 수 있다. 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화가 지나치다. 첫쩨, 이 설은 극히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한 낙관적인 평가에 입각하고 있다. 인류의 대다수가 근대의료의 은혜를 입게 된것은 겨우 1850년이후의 일이며, 소아사망율의 급격한 저하는 20세기에 들어 와서의 현상이다. 대규묘의 기근도 20세기 중반까지의 일이며, 소아사망율의 급격한 저하는 20세기에 들어 와서의 일이다. 대규묘의 기근도, 20세기 중반까지이며, 소아사망율의 급격한 저하는 20세기에 들어 와서의 일이다. 1958-61년에 실시한 중국공산당에 의한 대약진정책의 기간에는 1000만-5000만의 아사자가 나왔다. 국가간의 전쟁은, 1945년 이후에 와서 가까스로 드물어 젓던 것이며 이것이 헥병기에 의한 절멸이란 새로운 위헙에 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와 같이 인류에게는 과거 수십년은 전대미문의 활금기였어나, 이것이 역사의 추세의 발본적전환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흐름이 역전된 행운의 탓인가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근대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쉽게 21세기의 서양중산계급의 시점에 서게 된다. 허나, 19세기의 웰즈의 탕광부나, 아편중독에 빠졌던 중국인, 더욱이, 다스마니아의 아포리지니의 시점을 잊으서는 안된다. 최후의 순혈의 다스마니아 선주민이 되었던 도르가니니는 아니메[심프슨]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서양중산계급의 부친 호-마.심슨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두번쩨로, 과거 반세기의 잠간 동안의 황금기에서도, 실은 장래의 대참사의 씨를 뿌리고 있었음을, 멀지 않아서 분명해 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 수삽년, 우리들은 새로운 다종다양한 모양으로 지구의 생태학적균형을 교란해 왔으며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한정없는 과잉소비에 의해 우리들은 인류번영의 기반을 손상해 왔음을 나타내는 많은 증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최후에 가서는, 근대의 사피엔스가 이루워 놓았던 위업에 대해서 우리들이 자랑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타의 모-든 동물들의 운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만 한정된다. 질병이나 기근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주는 자만의 물질적 풍요로움의 대부분은 실험대에 놓인 원숭이나 젖소 벨트공베야-에 얹힌 병아리의 희생위에 구축되었던 것이다. 과거 2세기에 걸쳐서 이 지구라고 하는 혹성의 역사상 류예가 없는 잔인한 산업이용의 체제에, 기백억의 동물들이 종속되어 왔었다. 동물애호가의 주장의 불과 10분의 1이라도 인정한다면, 공업화된 근대농업은, 사상최악의 법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전체의 행복도를 평가함에 있어 상류개급이나 구라파인, 혹은 남성의 행복만을 계측재료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인류의 행복만을 고려한다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일 것이다. – 이장 완료. *옮긴이의 自評 하라리는 그의 저서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에서 이상의 논조로 인류의 자기위주의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태 인류문명을 거론함에 있어, 이런 폭 넚은 관점에서 전혀 새로운 파라다임로 철저하게 분석해 낸 문명론은 접해 본 일이 없던 필자에게 매우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 온다. 현대문명의 실체와 그 향방을 이런 관점에서 철저히 분석해 내는 그의 문명론은 전혀 독창적이며 참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통합되어 가면서 요구되는 관점을 제시한 것으로 참고해야 할 담론이다. 그 저변에는, 동양적 사상과 정신을 다시 음미해야 할 것으로 내다 보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지구의 정체를 귀납 분석해 본다면, 전적으로 새로운 파라다임이 나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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