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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8 no image [야생의 과학] 23
1560 2015-03-30
제 6장 [民藝를 初期化한다] 1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일행이 창시한 [民藝運動]이 시작 된지 벌써 八十年이상이 흘려 갔습니다. 러시아에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고 그리고 소멸해 간 기간 보담 긴 시간을 이 운동은 살아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일본의 패전을 계기로 일어 났던 傳統的인 諸價値의 動搖와 생활양식의 변화를 체험하면서도 이 운동은 착실히 발전을 이루어 가며 지금 이렇게 한 시기의 매듭을 짖는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릎, 사회나 예술의 존재방식을 일신하려는 기세로 여러 운동이 세계 속에서 일어 났습니다만 그 대부분이 오늘날에 와서 존재의 의의를 상실하고 볼 수 있는 흔적조차 모르게 변질해 갔습니다. 민예운동 역시 그러한 운동의 한 가닥으로써 극동의 섬나라에서 개시되었습니다만 다른 운동과는 달리 지금도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민예운동의 [聖地]의 한곳인 東京駒場의 [日本民藝館]을 방문해 보면 평일에도 다수의 來館者들을 맞이하여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획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실로 믿음직스렵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호-크크라프트]라 하면 지금이 붐의 최성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세계적인 현상으로써 민예가 붐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생활속에 가지 각색의 [민예]를 도입함으로써 사람들이 마음의 편안함이나 부드려움을 되찾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모리스 시대에 고안되었던 민예조의 프린트무늬가 최신의 팻션의 매혹적인 소재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백화점의 생활용품매장에서도 베트남의 민예풍 도자기를 사려 가는 여행안내가 실려 있습니다. 민예의 미래에 대해서 우리들은 조금도 우려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민예는 현대인의 생활 속에 아주 견고하게 짜 넣어 저서 그 안에서 확고한 자리를 확립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 내는 것들의 다른 측면에 눈을 돌려 보면 이와 같은 민예붐 속의 민예가 반드시 내면에 이르기 까지 풍요로워저 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활약했던 시대는, 자본주의에 의한 산업사회가 형성해 가는 비교적 초기의 단계였음으로 [생산]에 중점이 놓여 가능하면 싼 상품을 많이 만들어 기업이 이윤을 올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값싼 것으로 질이 나쁜 생활용품이 세상에 넘처 나기 시작했습니다. 민예운동은, 일본에서나 외국에서도 그러한 생할용품의 질의 劣化에 대한 비판으로서 일어 섰던 것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전개했던 민예운동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문학자이면서 공예작가였던 윌리엄.모리스가 미래의 유-토피어 사회의 주민들은 [과거]의 산업사회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듣고 읽은 것들로 추측해 보건데 전의 문명시대에서 사람들은 물품의 생산이라 하는 문제로, 일종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놀랍게도 쉽게 물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용익함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사람들은 연 이어 정교한 매메방식을 고안해 내었다. 이 방식은 종래의 세계시장이라 불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시장이라 하는 것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 필요와는 관계없이 더욱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하도록 강제하였다. 그기서 말할 것도 없지만, 한편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필수 품의 생산에서 해방되지는 못하였지만 다른 한편 가짜의 혹은 인위적 인 필수품을 멈추지 못하고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가짜 필수품이 앞선 세계시장 의 철칙아래 생활을 지탕하는 진정한 풀수품과 함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되 버렸다. (윌리엄.모리스 [유토피어소식] 岩波文庫.) 규격에 따라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한다는 것이 十九世紀末에서 二十世紀初頭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사고 였음으로 그기서는 중세이래의 전통적인 徒弟制度아래 전해저 내려온 기술은 급속하게 쇠퇴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라스킨이나 모리스들은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민예운동을 일어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당연히 야나기무네요시에도 크다란 영향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자본주의는 어느 부분에서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 버렸습니다. 자본주의의 이윤추구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장사회가 지금과 같이 발달해 오면 규격에 따른 획일적인 제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이미 소비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품은 댜양성을 요구하게 되고 품질도 균질성을 넘는 것이 요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기서 산업전체가 균질에서 [차이]에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기술의 발달로 난수를 미리 프로그램에 짜 넣으 놓으면 [수작업] 특유의 질의 차별성을 기계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디자인이나 광고가 상품의 다양성을 교묘하게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高度자본주의에서 민예나 민예조 생활용품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잊으서는 안됩니다. 산업이 활용하고 있는 기술이 [하이퍼테크노로지-]의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IT나 나노테크와 같은 하이퍼테크노로지는 경제나 산업의 구조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생명이나 감정 인지능력 까지에도 크다란 영향을 입히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생명을 견지해 왔던 오래된 인간관계가 무너저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는 아직 탄생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민예는 이러한 세계속에서 나마 생활에 얼마간의 치유를 가지고 오는 아이템으로써 소비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상냥한 촉감이나 인간적인 모양을 한 민예를 만나는 것으로 사람들은 자신속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민예는 민예운동이 시작했던 시대에 예상도 하지 못했던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민예운동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민예]의 붐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민예]를 어떻게 하면, 그 정신을 지속해 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러한 시대임으로 해서 [民藝를 初期化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나기무네요시들은 [민예]를 하나의 정신의 존재방식으로 잡았던 것이며 민예적인 작품은 그렇게 해서 발견된 정신의 공간에 부합되는 모습을 한 가인이 였음으로 하여 독특한 미를 칭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예운동의 창시자들은 뛰어난 민예품을 발견해 내는 감식안을 갖었던 눈 밝은 이들이 아니라 진실한 민예적 작품을 가인으로 하는 그러한 精神的 空間을 제대로 잡아 낼 수 있는데 성공했던 발견자였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나는 민예운동이 발견했던 그 정신적 공간에, [민예의 場]이라던가 [民藝空間]이라고 하는 이름을 부여하여 지금으로부터 그 특징을 밝혀 보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공간의 佳人인 민예작품쪽에만 눈을 팔고 그것들을 갑쌓고 있는 [민예공간]에 대한 감수성이나 직감력을 잃는다면 야나기무네요시들이 창시한 운동은 쇠약해 가고 끝에 가서는 소멸해 버릴 것입니다. 하이퍼테크노로지-의 자본주의 시대에 민예품이 절대적인 인기를 뫃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민예공간]쪽은 오히려 그 존속이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민예붐의 한 가운데서 민예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마트릭스(모체)가 지금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축제의 뫃임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민예는 초기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큰 소리를 외치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적으로 여기에 起因합니다.
1277 no image [야생의 과학] 22
1734 2015-03-26
7-1 이를 보려면, [古事記]의 記述을 다시 한번 더 주의 깊게 읽어 보는 것이 가장 가까운 길이 되겠습니다. 이 冒頭의 부분은 옛부터 많은 국학자나 국문학자가 추리해온 바와 같이 神話의 [哲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막힘없이 전개해 갈 수 있는 평면의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 가서 표현의 조건 자체를 신화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음으로 이는 신화의 철학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아메노미나가누시’, ‘다가미수히’, ‘가미무수히’라고 하는 三柱의 神은 하나의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바, 이는 우리들의 감각이나 사고가 직접 잡아 내는 감성적 세계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도형을 그릴 수 있는 평면이전에 있는 前平面이라고 할까, 공간을 추상화한 前空間이라고 할까, 여하간, 공간이나 평면의 가장 프리미티브한 개념을 하고 있는 것임으로 이는 토포로지-이다, 라고 바뀌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三柱의 신이 출현합니다. 그러나 이 중 ‘다가무수히’와 ‘가미무수히’의 二柱는 같은 [무수비의 신(맺으주는 신)]의 二重化라고 생각할 수 있음으로, 실제로는 아메노미나가누시와 무수비의 신의 두 신이 나타나는 것으로 되 있습니다. 이 二種의 신은, 공간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토포로지- 그 자체로, 그러면서 단독생성을 행하며 나타남과 동시에 숨어 버리는, 말하자면, 가와아이선생의 표현으로, 텅빈 구멍을 남겨 놓고 사라져 버립니다. 원초에 두 종류의 구멍이 나타난 사유입니다. 이들 구멍은 어떤 의미나 힘에 의해서도 충진할 수 없고 無爲 그 대로 일체의 主體的行爲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아메노미나가누시라고 하는 신이 남겨 놓은 구멍은 가와아이선생이 밝혀 놓은 바와 같이 어김없는 토-라스 구조를 한 토포로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심에 열린 구멍이며 그 주변에 일체의 의미가 조직화됩니다만, 구멍자신은 어떠한 의미나 힘에 의해 充진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의 종류의 구멍을 나타내고 있는 무수비의 신은 어떤 토포로지-를 체현하고 있을까요. 가와아이선생은 중공구조를 내 보이는 것으로 아메노미나가누시만을 들어 분석을 시도하였읍니다만, 실은 이 중심의 구멍을 보완하여 중공구조전체의 바란스를 견지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이 무수비의 신이 체현하는 별종의 구멍입니다. 즉 가와아이선생의 중공구조론의 구상을 완전한 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토-라스형의 구멍과 상보적으로 맺으저 있는 또 하나의 구멍의 존재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중공구조론에 짜 넣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별종의 구멍의 작용에 의해 중공구조는 動的均衡을 견지할 수 있으며, 그기서 신화사고가 생겨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도, 실은 무수비의 신이 체현하고 있는 이 별종의 구멍으로 불리는 토포로지- 인 것입니다. 대단히 흥미롭게도 오리구찌(折口信夫)씨가 이 문제에 착목하고 있었습니다. 戰後 이내 오리구찌씨는 神道學者로서의 깊은 반성을 겯들어 일본인의 심성의 원형을 만들어 온 신도의 成立相을 극적으로 개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와아이선생이 말한 중공구조의 중심에 있는 구멍은 권력을 가진 現人神인 天皇의 신화로 충진되어 일본의 神들이 총동원된 끝에 敗北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태에 빠진 하나의 원인으로 오리구찌씨는 神道의 구조에 있었던 결함으로써 엄히 적출해 내려고 하였습니다. 오리구찌도 신도가 중공구조의 순수성을 잃어 버린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비판을 통해 다가 올 시대의 신도의 구조를 내 보이게 됩니다만 여기서 크크로즈엎된 것이 원초의 삼주의 숨은 신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담 오리구찌는 그 중의 무수비의 신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高皇産靈神. 神皇産靈神이라 일컬어 지고 있는 바 – 바로 그 産靈神의 信仰입니다. 字는 낳을 [産], 영혼의 [영] 으로 魂을 낳는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神自身의 신앙은 그렇치 않고 살아 가는 에너지를 갖는 몸속에 혼을 심으 놓는 혹은 생명이 없는 물질속에 혼을 불어 넣는 그렇게 하면 혼이 발육 하게 되고 이것을 넣고 있는 물질이 서서히 자라난다. 물질도 부풀어 간다. 혼도 발육해 간다, 라고 하는 식으로 쌍방이 공히 성장해 갑니다.그중 제일 완전한 것이 신이 돠고, 다음이 인간이 되었다. ([오리구찌전집 제이십권 신도종교편] 중앙문고.) 오리구찌의 생각으로는 신화의 시간이 시작하기 직전에 출현하여 이네 숨어 버리는 이들 神神은 없어 진 것이 아니라 신신의 구조의 틈 사이를 빠져 나와 이것들을 안개와 같이 적시며 유동하고 있는 별종의 영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신신의 체계가 만드는 다신교 이전의 공간, 즉 아니미즘의 심적구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메노미나가누시는 여기에 충만해 있는 강도의 표현으로 아시가비(갈대 줄기)와 같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 수반하는 바와 같이 무수비의 신의 靈力이 放射됩니다. 이 에너지는 물질과 생명과 혼이 만들어 내는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의 구조를 통해 이 세계에 생명이나 心的 現象을 낳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삼위일체의 구조에 의해 끊으짐 없이 존재의 양태의 변화가 일어 나고 있습니다. 잠재적인것이 현실화되어, 현실세계에 살아 있었던 것이 잠재적인 幽冥界속으로 돌아 가버리는 것도 모두 이 무수비의 신의 삼위일체구조를 통해서입니다. 무수비의 신은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준비하면서 세계가 막 출현하려고 하는 직전이 되서 모습을 감추워버리는 신으로, 구멍을 남깁니다만 그 구멍은 변증법적인 三位一體의 내부구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무수비신이 만드는 이 구멍이, 크라잉의 병형의 토포로지-의 표현이란 것은 여러분들에게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이 구멍의 내부구조가 신화사고를 추동하여 신화를 탄생시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신화는 이원론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됩니다. 남성원리와 여성원리이 대립과 조정, 천과 지의 대립과 조정등을 통해 이야기는 끝없이 태어 나올것입니다. 무수비의 신은 그러한 신화가 태어 나오는 공간을 준비하였을 뿐이고 실제적인 신화사고는 작동이 개시되면 전혀 자신이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잠재공간으로 隱居해 버리고 맙니다. 실제로 삼위일체의 구조는 신화창조의 샘(泉)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크리스도교의 神도 [父]와 [子]와 [靈]으로 된 삼위일체의 구조로 표현됩니다만, 그기에서는 마음과 같은 신화논리를 거처 예수의 운명을 결정지우는 이야기가 짜젔던(紡) 것입니다. 신화공식에 따라 겟세마내의 밤에서 십자가형에 이르기 까지의 사건들을 적으 봅시다. f (크리스도) : f (靈) ~f (靈) : f (父性) 子性 父性 子性 크리스도 아버지로서 신의 것이었던 靈은, 예수 속으로 주입되어 그는 父의 子인 크리스도(救濟者)로서의 존재를 획득합니다. 그러면, 신화의 논리에 따라 크리스도는 현실세계에서 소거되고 ([크리스도-1]은 예수의 刑死를 나타냄), 대신 세계는 어김없이 父로서의 신의 영광이 널리 퍼저 나갔다. 이렇게 하여 크리스도는 자기희생적인 사람의 행위를 통해 인류에게 신의 救濟가 가능해 지도록 했다, 라고 하는 사고의 줄기가 형성 되 가는 것입니다. 크라잉의 병의 토포로지-에서 삼위일체의 구조와 新話公式등이 동시에 태어 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壯觀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고대인과 같이 풍부한 신화사고의 능력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한다면, 과학의 知見을 총동원하여 물질과 혼과 생명이 만들어 내는 이 근원적인 무수비의 신의 삼위일체를, 크리스도교의 신화작자들과 같이 鮮烈한 이야기로써 풀어 나간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三柱의 獨神의 출현과 퇴각으로 표현된 중공구조는 아메노미나가누시가 만드는 토-라스의 구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와 크라잉의 병형토포로지-의 신화적표현인 무수비의 신과의 [복논리(바이로직)]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갈대 줄기와 같이 공간이전의 공간에 곧바로 일어 나는 아메노미나가누시는 높은 대칭성속에 비대칭적인 움직임을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에 언젠가 이는 토-라스의 한가운데에 열려 있는 구멍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허나 이 토-라스구조로부터는 끊임없는 비틈을 품고 있는 크라잉의 병형의 토포로지-를 그리는 에너지의 흐름이 방출 됨으로, 두나는 일체가 되어 중공구조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중공구조는 이와 같이 토-라스와 크라잉의 병의 토포로지-가 협력하여 작동하는 곳에서 태어나는 創造的인 心의 구조입니다. 신화사고는 이 中空構造로부터 생명을 얻고 있는 것이며, 현실속에 대칭성의 유사물인 [균형]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사고의 움직임은 중공구조의 뒤받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토포로지-의 觀点에 섬으로써 우리들은 가와아이선생의 착상을 보다 더 멀리 풍요롭게 발전시켜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 중공구조의 요약 > 射影平面 (높은 대칭성) I 크라잉의 토-라스 中空構造=無爲 (對稱性) (非對稱性) 女性的原理 男性的原理 (結合) (分離) - 行爲 이와 같은 연유로 우리들은 가와아이선생이 일본신화속에서 축출해 내 보여주는 중공구조는 토포로지-로서 생각할 때 사영평면(또는 크로스켑)으로 표현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이 중공구조론에서 전개한 많은 화제들을 위와 같이 정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기서, [일본문화의 특성]으로 논의해 왔던 대부분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 人類의 心의 프리미티브한 수준에서 보편적인 구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요시모도풍으로 말해 본다면 심의 [아프리카적 단계]와 관련 지울 수 있습니다. 그런것이, 일본신화속에 남아 있는 아프리카적단계라 할 수 있는 아메노미나가누시와 부수비의 신의 揷話에서 이야기한 것에는 未解明의 속깊은 역사적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제5장 토포사이코로지-) 完.
1276 no image [야생의 과학] 21
1611 2015-03-21
7 가와아이(河合)선생은 아마도 라칸에 의한 무의식의 토포로지-적 연구와는 독립하여 [中空構造]라고 하는 생각에 도달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일본신화에서 구해졌습니다. [古事記]의 모두에 不可思議한 三柱의 神의 출현이 일어나는데, 이들 신은 매우 중요해 보이는 존재이지만 첫무대에 나타났다가 이네 사라져 버립니다. ‘천지 처음으로 열였을 때 높은 하늘의 들판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은 天之御中主神. 다음으로 [高御産巢日神]. 그 다음으로는 [神産巢日神]. 이 三柱의 신은 모두 홀로 서는 신으로써, 몸을 이네 감추워 버렸느니라.’ ‘다가미무스히, 가미무스히, 이 두 신은, 자주 무수비(맺으주는)의 신으로 일컫는 존재로 古代豪族中에서는 이 신을 선조로 삼는 자들도 있었습니다만, 아메노미나가누시에 이르면 신화에도 계보에도 일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들 삼주의 신은 [홀로 신]이라 부릅니다. 이 이후에 출현하는 신들이 대부분 남녀의 성적이원론의 생성의 원리로 삼고 있는데 반해서, 삼주의 홀로 신은 이원론에 의존하지 않는 생성을 해하고 신들의 세계가 출현하기 직전에 판디온(聖殿)에서 그 모습을 지워버립니다. 여타의 신들은 신화속에서 가지 각색의 활약을 다하고 세계관의 한 부분을 맡아 가게 되는데 반해서 이들 삼주의 홀로 신은 신화속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뿐 만 아니고 [無爲]로 존재하는 것을 유일의 존재의의로 삼으면서 세계의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게 되 버립니다. 가와아이선생은 특별히 아메노미나가누시에 착목하였습니다. 이 이름에서 떠 올릴 수 있는바 이 신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본 신화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신이 무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체 세계의 무대로부터 일직이 사라저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와아이선생은 신화에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듯이 일본문화는 그 중심부에 공허한 구멍이 열려저 있다, 말하자면, 中空이다라고 논했던 것입니다. [(古事記) 신화에서 말하고 있는 中空構造]란 논문([中空構造日本의 深層)]속에서 선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중심이 공이라고 하는 것은 善惡, 正邪의 판단을 상대화한다. 통합을 행하기 위해서는 통합에 필요한 원리나 힘을 필요로 하며, 절대화된 중심은 不容의 것들을 주변으로 쫓아버린다. 공을 중심으로 삼게 되면 통합시킬 수 있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싸움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모델이다. 중심이 공이라 하는 것은, 한편 매우 불안한 것이며, 무언가를 중심에 놓아 두고 싶은 것이 인간의 心理傾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기서, 필자가 일본신화의 구조로서의 心을 그리는 것은, 중공의 球의 표면에 서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균형을 잡고 배치되어 있는 신들의 모습이다. 단 인간이 이 중공의 球狀만다라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의식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움으로 간혹 이차원평면으로 투영시킨 원으로써 의식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투영되는 평면에 따라 무언가의 중심이란 것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 중심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투영면이 바뀌면(상황이 바뀌면) 중심도 바뀌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델을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은 중심이 공이기 위해 그기에 무언가가 침입하는 것을 용납하던가 결국에는 時와 더불어 공으로 돌아 와서 다시 타의 것의 침입을 허용하는 구조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와아이선생은 훌륭한 臨床醫로서 일본인의 심의 경향이나 특질을 숙지한 후, 이와 같은 모델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 문장을 솔직하게 해석을 하면, 선생은 일본문화의 심층에, 토-라스형의 토포로지-의 潛在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중심부에 구멍이 뚤려 어떠한 의미나 힘으로도 이를 충진할 수 없고 공허한 체, 인간은 그 구멍의 주변에 퍼지는 평면상에, 언어의 나열이라 할 수 있는 의미로 메꾸어 가는 것이나, 절대로 중심의 공에 가 닿을 수 없다고 하는 구조입니다. 일본신화의 中空性이라 하는 것과 관련지우려고 한다면, 일본의 신화에서 는 무언가의 원리가 중심에 점하는 일은 없고 그것은 중공의 주변을 순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類似의 事象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면서 반복하는 것은 중심으로서의 공의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며, 영구히 중심점에 도달할 수 없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中空巡廻形式의 신화구조는 일본인의 심을 이해하는데 그 프로토타잎(元型)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점에서 가와아이선생은 일본문화에 특유한 [공에 의해 統合을 초래하는 원리]와, [對立하는 것에 均衡을 만들어 내는 원리]가 이 토-라스형 모델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되어 나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점에서 선생의 논문을 再讀해 보면 사고에 무언가가 아직 결하고 있는 것이 있기에 선생의 당초의 中空構造 그대로의 생각만으로는 선생이 목표로 했던 일본문화의 심층에서 뒷받힘하고 있는 원리의 全體像을 파악한다는 목적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문화의 심층에 中空構造가 받히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 었어나 그 구조가 선생이 중공구조론을 전개했던 일련의 문장속에서 표현되었던 것 보담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 저 있다고, 나는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구조는 선생이 이를 문장으로 표현한 것 보담 훨씬 어려운 구조를 하고 있다는 시실 입니다.
1275 no image [야생의 과학] 20
1802 2015-03-19
6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뇌속에서는 초월성의 영역을 내부에 품고 있는 心이 발생하여, 이로 인하여, 宗敎와 藝術을 행하는 心을 획득 하였으나, 이 心은 두나의 프리미티브한 토포로지-로 분리해 가는 경향을 갖는 하나의 構造體로 이루어저 있었다, 라고 한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허면 그 전체를 안고 있는 구조체란것이 어떤 것이었나 라고 하면, 토-라스와 크라잉의 병의 양쪽의 요소를 포함한 [射形平面]이라고 하는 모델이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형평면은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토-라스나 크라잉의 병과 비교하면서 그 특징을 알아 보기로 합니다. 그림을 보면 사형평면은 3개의 도형중에서 가장 [대칭성]의 정도가 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토-라스는 맞보는 상하좌우의 양대변에서 일방향으로 [방향잡혀 있는]평면을 이어 붙혀 만든 도형으로서 비 – 대칭을 그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크라잉의 병은 한쪽의 대변만이 방향잡혀 있어 다른 하나의 대변은 방향의 구별이 없는 대칭성에 의해 이어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형평면은 상하좌우의 대변이 양쪽 공히 대칭성을 갖도록 이어저 있음으로 3개의 도형안에서는 가장 대칭성이 높은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평면에는 토-라스나 크라잉의 병의 양쪽의 특징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형평면을 비틈의 접합점을 지나가는 면에서 끊어서 [차원을 뜰어 터리면], 토-라스의 구멍과 같은 구조로 변화해 버리면, 그것이 봉합될 수 없는 평면으로서 크라잉의 병과 공통의 토포로지-를 품고 있음이 분명함으로 매우 대칭성이 높은 이 도형에서 토-라스와 크라잉의 병의 양쪽을 열어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프로이드적 무의식이,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의 내용분석이나 神經症의 症例分析에서 프로이드는 무의식이 독특한 논리에 따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관성을 갖는 사고를 행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무의식은 보통의 사고와 같이 모순을 불려 일으키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대립하고 있는 감정이나 사고를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서로 융합시키던가 공통성이 있는 부분에서 이어버린다던가 합니다. 무의식은 또한 언어속에 내재해 있는 논리기능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시간축에 따르는 질서화라고 하는 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일들을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시간축에 따라 질서세우는 것으로, 세계속에서 非可逆적인 방향잡음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의식속에서는 [나]를 주변의 환경에서 분리하는 기능이 매우 약함으로 [나]와 동시에 [모두의 것]으로 이어저 가는 사고를 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프로이드적 무의식의 작동을 쟉.라칸은 하나의 토포로지-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무의식의 사고에게는 내외에 보여지는 가지 각색의 타잎의 구멍이라고 하는 것이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잘 관찰해 보면, 무의식은 그렇게 보여지는 구멍 둘레에 자신의 감정과 언어활동을 집중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肛門, 女性器, 눈, 귀, 입술, 먹는 짓, 배설하는 일, 쎅스하는 일…무의식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이들의 부위나 활동은 모두 구멍과 관계가 있으며 무의식의 활동을 구멍 둘레에서 넓히는 사고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토포로지-라고 하는 수학의 별명은 [구멍의 幾何學]입니다. 평면으로 열려 있는 구멍의 개수와 구조에 따라 도형의 세계를 분류하는 수학이 토포로지-입니다. 무의식의 이해를 위해 정신분석에 토포로지-를 도입한 라칸의 발상은, 전적으로 옳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라칸은 토-라스에서 크라잉의 병의 토포로지-로 나아 가며 그기서 다시 더 사형평면의 모델로 나아갔습니다. 라칸은 사형평면을 카도맄의 神父의 모자라던가 크로스캪 등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이 토포로지-와 같은 형의 사고가 무의식을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라칸의 연구는 우리들에게 대우 중요한 의의를 갖습니다. 우리들은 라칸과는 다른 길을 따라서 마음의 움직임을 그 가장 프리미티브한 구조로 잡아 내며 그기에서는 두종류의 토포로지-의 復構造로 잡을 수가 있으며, 더 깊이 나아가면 사형평면의 토포로지-에 이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별도의 길]이라 말한 것은 [대칭성]의 개념의 다름 아닙니다. 무의시의 활동을 대칭성의 논리에 따르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비대칭성의 정도가 높은 토-라스 부터 시작하여 대칭성의 도합이 높은 크라잉의 병에 이르고, 결국에 가서는 우리들이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도형중에서도 가장 대칭성의 도합이 높은 사형평면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은 대칭성의 개념을 심화시킴으로써 사형평면의 토포로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만, 이는 라칸이 프로이드적 무의식의 탐구를 통해 도달했던 결론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1920년대에 量子力學이 발견되었을 때 하이젠베르그의 行列力學과 슈레징가-의 波動力學의 두 형식이 거이 동시에 출현하여 양자는 얼핏 보면 전적으로 다른 이론으로 보이면서 실험결과에서는 전적으로 같은 결론을 낸다는 기묘한 사태가 일어 났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이 두나의 이론은 형식이 다를뿐 수학적으로는 전적으로 같은 同價임이 증명되어 物質의 科學은 비약적인 발전을 맞이 하게 됩니다. 心의 科學에서도 이와 닮은 사태가 일어 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의 대칭성의 이론은 신화학이나 종교나 자본주의의 연구에서 도출해 낸 것이며 라칸의 심적토포로지-론은 임상의 경험에서 도촐해 낸것이라고 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心的基體의 모델로서 전적으로 동일한 토포로지-에 이른것입니다. 여기에는 아직도 그 意義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있다고 하드래도, 인간자신에 의한 인간의 心의 이해에서 매우 중대한 무엇인가가 암시되어 있다는 것을 놓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안개속의 빛의 반짝임을 보내는 등대와 같이, 우리들의 탐구에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줄 것을 바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1274 no image [야생의 과학] 19
1533 2015-03-16
5 여기까지 오면 여하간 國家라고 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곰에서 왕으로, 가이에.소바쥬 2]란 탐구에서 국가를 갖지 않는 사회에서 국가라고 하는 것이 태어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던 일이 있습니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였던 인류는 출현한지 십수만년 동안 국가를 갖지 못했던것이나 그것은 힘(권력)의 근원을 사회의 밖에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자연의 안쪽 깊이 숨겨저 있는 것으로 인간은 이를 마음데로 집어 내어 자신들의 편리한데로 이용할 수 없었던것입니다. 그러나 新石器革命후 얼마 되지 않아 이 자연속의 깊이 숨어 있던 권력의 원천을 인간이 만드는 사회안으로 지입해 들어 오는 데 성공했다고 칭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국가의 原型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王]이라 칭하였으며 이는 한때 자연의 내부속에 있어 권력의 지킴이였던 곰이나 호랑이이나 사자와 같은 위대한 동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존재를 뒷받힘하는 이념이었던 [王權]은, 따라서 神話를 필요하였습니다. 사회의 밖의 공간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던 힘의 원천을 사회의 안으로 신체를 갖는 살아 있는 왕이 체현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당연히 완권은 타계와 힘의 교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변증법논리인 신화사고에 의탁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왕을 토릭스타로 만드는 것이며 비틈을 품은 토포로지-적인 논리로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f (自然) : f (토릭스타-왕) -~ f (토릭스타 – 王) : f (社會) 權力 社會 權力 自然 이 식은 이렇게 읽습니다. 원래 권력의 원천은 자연의 것으로 인간 사회에서는 초월적인 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했다. 그기에 한 사람의 토릭스타-가 출현하여 사회속에 그 권력의 원천을 持入해 들어 오는데 성공했다, 라고 주장하여 그 주장이 인정되자 마자 자연은 몰락하고 인간이 만드는 사회가 주인공이 되는 세계가 나타났다. 이때 사회로부터 초월하는 국가가 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은 분명하게도 크라잉병형의 토포로지-상에서 움직이는 신화사고입니다. 그러나 일단 사회안에서 왕권이 만들어지면 사회의 내부에 있는 초월자로서 왕권은 토-라스형의 사고로 잡는 것이 되어 왕권은 원래 자연의 소유였다는 현실은 사람들의 의식의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이 사태는 신왕의 즉위식때나 매년 왕권갱신의 의례가 행해지는 때 연출되어 상기할 수 있게 될 뿐으로 퇴색해 갑니다만 왕권이 두나의 다른 논리로 짜저 있다는 사실은 근대이전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잊혀 지지 안 했던 것입니다. 일본인에게 천황이라는 존재는, 바로 이 復論理에 의해 만들어진것입니다. 古代의 天皇은 稻魂의 祭祁者로서 자연의 생산력의 지배자로서의 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은 농후한 신화사고에 둘려 쌓여 있으면서 왕권의 유지와 갱신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밀실속에서 엄밀하게 성적인 상징의례를 행했던 흔적까지 남아 있습니다만 이들을 관찰해 보면 천황이 자연의 내부속으로 발을 들어 넣어 자연력과 접합하는 것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의 표면에 그 힘을 인출해 내려는 신화사고의 劇化를 행하고 있었던 모습이 보여집니다.(이점에 대해서는, 南美고기族의 性的儀禮를 분석한 [제3장 두상의 콘]을 참조). 밀실에서 태어나는 왕권은 이와 같이 크라잉의 甁型토포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壬申의 亂 이후에 천황권력이 확립되어 가게 되면, 왕권의 또 다른 측면이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여태까지는 사회의 외부와 힘의 교환이라고 하는 것이 왕권을 근거짖게 하는데 대해서, 이번에는 [法]의 체계에 의한 질서만들기 측면이 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律令의 체제가 정돈되어 가게 되면 천황 그 자체는 공허한 중심으로 초월화되어 자연력의 지배자로서의 측면은 뒤로 감추어저 버리게 됩니다. 법은 언어로 쓰여진 논리의 체계입니다. 즉 왕권은 점차로 토-라스형토포로지-로 구조를 바꾸어 갔습니다만, 일본 천황에 관해서 말한다면 신화사고를 짜 넣은 복논리의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된체 오늘날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국가의 성립에는 二種의 다른 토포로지-가 간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의 원천을 사회속으로 지입해 들어 오는 신화사고를 움직이고 있는 크라잉의 병형의 비틈을 품고 있는 토포로지-입니다만 사회의 안으로 지입해 들어 오게 된 권력 그 자체는 토-라스형의 토포로지-의 표면에서 機能하게 됩니다. 국가의 프리미티브한 구조를 표현하는 왕이란 존재는 자기자신안에 다른 토포로지-를 품은 二重體이며 국가 역시 이들 구멍의 둘레에서 조직된 幻想體로서 태어 나는 것입니다. 근대에 이르면 왕권에 내재하고 있는 이 二重性은 육체존재로서의 현실적인 왕으로써 그 왕의 신체에 머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서의 이중성으로써 表象되어집니다. 歷史家 칸토로빗치가 밝힌바와 같이 왕은 두나의 異種의 신체가 공존하고 있는바 이는 왕권의 보다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두나의 토포로지-의 다름의 근대화된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체는 현실의 구멍을 소지하고, 반드시 죽는 존재인 왕이 크라잉병형의 왕권을 나타내는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의 중심에 있는 구멍을 체현하고 있는 왕은 법의 받침을 받는 권력의 토-라스형의 구멍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종교와 국가와 법은 일체가 되어 작동하고 있습니다만, 그 어는 것도 같은 형의 토포로지-를 기저에 깔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해 볼만 합니다. 그기에 경제시스템와 같은 사람들의 무의식의 분명한 집적체로서 되 있는 것도, 기저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같은 동형의 토포로지-를 본질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이들 조직의 基底材가 프리미티브한 수준에서는 어느 것도 모두 같은 토포로지-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들 조직은 말하자면 인간의 세계의 [大局的(그로벌)]인 구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의 마음이라고 하는 [局所的(로-컬)]인 구조를 이어서 積分한 곳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도 역시 같은 토포로지-로 만들어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리학의 오래된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주제가 뜨 오르게 됩니다. 심리학과 경제학 내지 사회학이나 법학을 이어주는 진실한 링크를 찾아 낸다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우리들의 마음의 보다 프리미티브한 구조에 까지 하강해 내려 가서 그기서 펄쳐지고 있는 복잡기괴한 제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부드려우면서 견고한 토포로지-를 찾아 낼 필요가 있습니다. 쟉.라칸이나 가와이선생의 시도가 바로 그러한 것이 었습니다
1273 no image [야생의 과학] 18
1577 2015-03-14
4-1 그와 같이, 출현의 시점에서는 시장은 정령의 종교가 행해젔던 장소이며 예술(藝能)이 태어나는 공간이며 이들 조건이 갖추어진 시점에 경제교환이 매끄럽게 이루어젔던 것이 점차 그기에서 토-라스형 토포로지-만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버렸습니다. 모든 종류의 교환을 시장을 중심으로 조직하려고 하는 자본주의는 여기서부터 태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를 특징짖는 [剩餘價値生産]도 모두 이 토-라스상의 경제계산으로 사고되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마르크스가 안고 있었던 思想的課題는 바로 이 점에 있었다고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그 독특한 [實踐]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프리미티브한 토포로지-구조의 또 하나의 極인 크라잉의 甁形사고와 실천의 가능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 사고를 토-라스상의 학문인 경제학속에서 실천해 가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이 였지 않을까 합니다. 정령의 구멍에서 일어나고 있는 토포로지-칼한 일들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수학이나 과학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예술만이 인간의 마음의 안쪽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주목하여 이를 직관적인 비체계적인 방법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결합하여, 새로운 藝術的科學이 탄생해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입니다. 과학은 예술과 맺으지지 않는 한 토-라스상의 의미실천으로서 패탄(pattern)의 반복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 가고 있는 징조가 여러곳에서 발견됩니다. 허지만, 여하간 종교와 경제가 공히 인간의 무의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스템인 이상 가장 기본적이며 프리미티브한 수준에서는 거이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심적토포로지-로부터 태어나고 있단 사실이 밝혀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종교와 경제는 막스.웨-버가 생각한 것 보담 훨씬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同型性(이소몰휘즘isomorphism)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는 한편 인간의 마음의 자연으로부터 태어 났던 것이나 다른 일면에서는 마음의 자연의 억압도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점은 토포로지-를 쓰서 명시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시스템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제종교의 앞에 있는 초종교도 역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비판은 경제의 비판이며 경제의 비판은 종교의 비판을 전제한다, 라고 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이 점에서 매우 옳았다고 생각됩니다.
1272 no image [야생의 과학] 17
1672 2015-03-13
4 종교뿐만 아닙니다. 경제나 국가라고 하는 것이, 인류에게는 종교와 같던가 최근에는 종교 보담 더 중요한 활동영역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그 경제나 국가에 관해서도 우리들은 거이 동형의 토포로지-의 작용을 찾아 볼 수 있게 됩니다.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기에서 활동을 행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입니다. 국가를 만들어 내고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인간의 무의식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들은 이들 두 영역과 매우 닮은 토포로지-의 존재를 상정한다면, 그기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종다양한 활동을 간편하게 분류하여 지금 보담 더 정돈된 이해를 유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다른 장소에서([제4장 경제학과 토포로지-]), 시장경제의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토포로지-가 그기서 교환의 운동을 지배하는 모습을 관찰한바 있습니다. 一見, 시장은 화페를 중개한 가지 각색의 상품(토지상품,노동상품,화페상품)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간주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사회의 표면에서는 활발한 활동이 이루지고 있는 것은 이런 상품시장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프리미티브한 구조에서는 보다 더 복잡한 됨됨을 갖추고, 이 세계에 출현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장이 두나의 異質的인 토포로지-의 組合에 의해 이루어젔다고 하는 것은 古代의 관찰자들에게도 잘 이해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를 든다면, 고대학자의 오리구찌씨가 밝힌 바와 같이, 초기의 일본의 시장에서는 三種類의 交換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시장은 산으로부터 영험이 있는 정령의 화신을 맞이 하는 [이쯔구,접대]마당으로 간주되는 특별한 장소에 설영되어 그기에는 산의 신을 나타내는 裝束을 몸에 걸친 山人이 [야마쯔도,(산으로부터의 선물)]을 가지고 群行出現한 사실이 알려저 있습니다. 산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영험에 가득 찬 영역으로, 그기에 차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靈的인 존재가 시장에 나타나서 야마쯔도와 같은 상징물을 마을 사람 사이에서 교환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장은 가무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남녀가 가까운데서나 먼데서부터 와서 性的인 동반자를 구하려 시장에 모이고 여기서 가무를 열고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는 것입니다. 그기서 잘 나가게 되면, 장래의 결혼상대가 발견되며 결혼은 여성을 중개로 삼고 집단끼리 서로 새로운 관계가 맺으 지는 것을 의미 하였음으로, 여기서도 시장은 사회적인 교환을 실현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物物交換으로 상품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다음부터 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되고 필요한 품물을 타인과의 교환을 통해서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근대의 경제학이 시장의 작용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 타이프의 교환뿐입니다. 이점은 자명한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조금 놀라움을 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경제학은 시장이라고 하는 것을 희소성이나 缺如라고 하는 말하자면 공허한 구멍 주변에 조직하려고 하지만, 인간의 세계에 출현했을 초기에는 시장은 한가지 더 다른 타잎의 구멍을 자신의 내부속에 짜 넣고 있었던 것입니다. 山神과의 상징물을 통한 교환은 분명하게 시장이 신화사고와 동형의 사고가 활달하게 활동하는 장소였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구멍은 크라잉병과 같은 구조를 갖고 외부에서부터 이질적인 에너지를 받아 들여 이를 구멍부분에서 富나 意味로 變換시켜, 사회 안으로 持入해 들어 오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富의 增殖(剩餘價値生産)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시장자신이며, 그것은 보통의 계산이나 이치로는 처리될 수 없는 작용을 맡아 하는 부분으로 되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에서는 시장은 모두 겨울의 계절에 열렸다고, 오리구찌씨는 쓰고 있습니다. 겨울이 [후유(冬季節을 의미하면서도, 增殖한다는 뜻도 들어 있는 일본말)]의 계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신이었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토-라스형의 신을 대신하여, 시장에는 크라잉병형의 정령의 임시의 내왕이 이루어지고, 이 정령이 신이 되어 시장의 활기와 질서를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古代 일본의 사례를 통해 시장이라고 하는 것이 그 시원적인 구조에서는 종교의 경우와 같이 두나의 토포로로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물교환에 의한 상품교환은 희소성이나 결여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경제적인 계산이 파탄되지 않고 행해지도록 정돈되어 있는 매끄러운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교환은 토-라스형의 토포로지-의 바탕 위에서 아니면 實行不可能한 것입니다. 현대의 시장은 거이 전역에 걸처서 이 토라스형 토포로지-상에서 전개되는 게임의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만, 그 경제활동을 기술하고 이론화하려는 경제학도 또한 토-라스형토포로지-의 표면에서 전개되고 그 외의 경제학의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다른 또 하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토포로지-를 안에서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소성이나 결여에 의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노동실천,예술실천)을 통해 인간의 세계속으로 아직 짜 넣지 못한 외부의 에너지를 변환시켜 내부속으로 지입해 오기 위해 또 다른 타잎의 교환에 대응하는 크라잉의 병형토포로지-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상품교환과는 다른 贈與交換의 원리를 받침하는 토포로지-이기도 합니다. 고대 일본에서 행해젔던 시장은 산신의 군행이나 가무를 통해 이 정령의 구멍을 나타내는 토포로지-에 어울리는 표현이 부여되었던 것입니다. 정령과의 象徵交換 ------ 크라잉甁 가무 -------------- 토-라스+크라잉병 商品交換 ---------토-라스 이것은 현대경제학자인 하이에크등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이에크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을 의미하는 고대희랍어의 용법을 조사하여 시장을 나타내는 이 말이 물물교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콤뮤니티-에 들어 간다]라던가 [적으로부터 우리편으로 바뀐다]라고 하는 별도의 심원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적에서 우리편으로 바뀐다]라고 하는 고대어의 말에는 사회의 외부에 있었던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에너지를 新話思考型의 辨證法論理를 쓰서 안으로 들어 넣는 작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기서도 시장기능의 중심부에는 크라잉병형의 토포로지-를 한 구멍이 시장의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제의 영역에서도 종교의 경우와 같은 사태가 일어 났다는 사유입니다. 종교는 처음에는, 인류의 마음에서 발생한 원초적인 토포로지-를 표현하기 위해 크라잉병의 토포로지-를 들어 내어 이를 精靈의 구멍으로써 표현하는 종교형태를 발달시켜 왔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십수만년에 걸쳐 인류가 행하는 중심적인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일만수천년전에 있었던 신석기혁명을 계기로 도시나 국가가 출현하게 되면서 사태는 아주 크게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정령의 구멍을 매쿠고 주변을 매끄려운 공간으로 개조한 뒤에 그 한가운데에 공허한 구멍을 뚫음으로써 토-라스상의 토포로지-구조를 갖는 다신교나 일신교의 종교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271 no image [야생의 과학] 16
1694 2015-03-09
3-1 이렇게 우리들 앞에는 아니미즘에서 일신교에 이르는 종교의 제형태의 列과 크라잉병에서 완전한 토-라스에 이르는 토포로지-의 형태변화의 列이 나타나게 되며 이 두 계열의 사에는 대응관계가 있음을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이나 영과 같은 초월자에 관한 사고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실제는 두나의 토포로지-류형의 사이를 왕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미즘 --------- 크라잉병 ---------신화사고 多神敎의 諸形態 ---- 토-라스 + 크라잉甁----혼합형태 一神敎 -------토-라스-----어리스토테레스論理 인류의 이십만년의 역사를 통해서 종교는 놀라운 다양성을 갖고 전개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만, 실은 그것은 표면상의 일로, 초월자의 표현구조를 더욱 푸리미티브한 수준에서 잡아 내는 토포로지-의 사고를 쓴다는, 불과 두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 버립니다. 뇌조직의 비약적인 진화에 의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心에는 초월성의 영역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초월성의 영역의 心的活動을 관찰하면서 인류는 직관으로 잡아 낸 그 영역의 구조를, 二種類의 토포로지-를 쓰서 표현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월성을 짜 넣은 인간의 마음은 바로 이 두나의 토포로지-의 조합으로 만들어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우리들 인류의 心의 가장 원시적인 수준의 토포로지-구조를 표현한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초월성의 영역을 짜 넣어 놀라운 구조로 발달한 자신의 마음을, 안쪽에서부터 내려다 몬 인류가 발견한 수학적구조를, 가지 각색의 挾雜物과 함께 표현한 철학의 잡동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기서 본질적인 것이 아닌 협잡물을 일체 들어 내 버리면 뒤에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토포로지-의 구조가 남습니다. 그기에는 두개의 [구멍]이 있을뿐입니다. 하나의 구멍은 토-라스의 한가운데에 열려 있는 공허한 구멍입니다만, 이를 [無의 구멍]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구멍의 주변을 무수한 말이나 정보가 둘려 싸 있습니다만, 구멍에서는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형의 구멍은 크라잉병과 같은 구조를 한 구멍으로써 이를 [생산하는 구멍]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구멍의 토로로지-를 통해서 意味나 富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이들 구멍을 둘려싼 思考의 歷史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자주 종교는 끝났다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은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끝나던가 한 것은 신이나 영의 표현형식만이며 그러한 표현을 이루게 한 심의 토포로지-구조 자체는 우리들 뇌속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실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종교의 장래에, 지금까지의 종교와는 다른 뇌속에 열려있는 초월성의 영역의 표현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心)은 여전히 경이에 찬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를 종교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미지의 藝術的科學이 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1270 no image [야생의 과학 ] 15
1578 2015-03-08
3 이러한 프리미티브한 心的實體에 닿을 수 있는 最短의 길은, 宗敎史를 살피는 속에서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실은 토포사이코로지-의 최초의 실천자는 근대의 심리학자가 아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탐구하였던 [종교]사상가들이었습니다. 神이나 靈을 둘려 싼 그들의 탐구는 그 자체가 인류의 마음의 구조를 살피는 토포사이코로지-의 실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프로이드나 융도 종교의 現像에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출신과도 연관된 유대교에, 융은 유-럽문명의 표층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의 하층 속에 잠자고 있던 異敎的傳統과 이 이교적전통과 저변에서 연결되 있던 아시아나 선주민들의 종교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점에서 가와아이선생도 예외가 아니고 불교나 일본의 신화나 神道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교현상속에 인간의 마음이 갖고 있는 가장 시원적인 구조와 그 작용이 거이 벌거 벗은 상태 그대로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나 융도 마음의 작용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법칙과 같은 것에 닿기 위해서는 종교의 전통 속에 보이는 방대한 택스트군이나 도상표현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란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神經症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를 풀어 가는 길 이외 아무런 대책이 없었으며, 꿈의 해석에는 선주민의 문화에서 비롯된 인류학적 기록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心의 科學의 先驅者들에게는 자명한 일이 었습니다. 人類學的인 意味의 宗敎는 개인의 재능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상호 체험이 뫃여 개인의 환상에 뿌리 박고 있는 부풀인 것이나 편향된 것을 버리고 상호의 체험속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 내고 이를 근거로 하여 초월성의 영역에 대한 생각을 점차로 모양지어 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전통적인 종교에서는 局所的(로-칼)인 개인정보와 그로-발(大局的)한 공동체정보가 서로 매끄럽게 이어저 가는 틀이 구축됩니다. 종교에는 개인 레벨의 마음의 구조가 어느 정도 그대로의 모양을 견지한 체 그로-발한 종교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기에는 [祈禱]라고 하는 행위가 두개의 레벨을 잇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드라도 종교사를 풀어 가는 것은 토포사이코로지-적인 탐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인류는 종교의 실천을 통해 자기의 마음속에 발생한 [초월성]의 영역을 보려고 했습니다. 인류는 이백만년이나 그 이상으로 일컫는 긴 진화의 과정을 거처, 지금으로부터 이십만년 정도 전에 동아프리카의 땅에서 오늘날의 우리들의 직접적인 선조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비약적인 진화를 이루었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이 新人類는 스마-트한 뇌의 스팩구조를 갖고 복잡한 상징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기에 이릅니다만 그들이 보인 가장 중대한 능력은 종교와 예술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와 예술은 초월과 숭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류속에 복잡한 象徵思考를 행하는 능력이 획득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담 腦內의 뉴-런 조직 안에서 多次元立體的으로 돌아 다닐 수 있는 [流動的知性]이 발생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유동적지성은 여하한 인지영역에도 한계되지 않는(구속받지 않는) 脫嶺屬的知性의 활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정한 영역에 관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고 그 자체를 이루고 있는 지성에 대한 사고라고 하는 것을 인간 속에 싹트게 하였던 것입니다. 超越이나 崇高에의 관심은 이렇게 하여 인류속에 탄생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知性의 知性]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질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출현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성의 본질에 관해 사고하는 능력이 탄생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고가 사고에 관해서 생각한다, 이를 철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만 사고를 넘는 지성에 관한 사고로서의 종교와 예술이 이때 출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때 출현한 [인류최고의 철학]은 신화의 형식을 통해 표현됩니다만 종교는 신화를 넘어 더욱 心의 안쪽으로 자신의 내부에 발생한 초월성의 본질에 다가 가려고 하였습니다. 종교는 자신의 마음의 내부에 나타난 이 초월적인 것에 대해서 사고하려고 했던 인류의 노력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가 멀어질 정도의 긴 시간을 통해 획득 되어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종교에는 人類의 心의 보편적인 구조가 간혹 그 전체상으로써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초월성의 영역이 발생함으로써 인류는 우리들과 같은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해 왔습니다. 이를 증거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타잎의 이 인류는 선행자들이 결코 행하지 안했던 것, 즉 종교와 예술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세계는 처음에는 한 몸이었음으로 여기서는 [종교]라고 하는 것으로, 한 묶음으로 다루기로 합니다. 이 종교라고 하는 것은, 초월성을 짜 넣은 인류의 마음의 본질을 가능한 그 시원적인 벗은 모양의 구조로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神이나 靈을 둘려 싼 종교사고를 탐색해 가게 되면, 우리들은 신이나 영을 통해 표현된 토포로지-의 표현에 마주치게 됩니다. 이 신이나 영을 둘려 싼 사고는 전통적으로, 크게 [일신교] / [다신교] / [아니미즘]의 세 타잎으로 분류 되어 왔습니다. 이 분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만 뒤에 가서 알게 됩니다만 프리미티브한 레벨의 心的構造를 나타내는 토포로지-의 특징과 정확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관에 의한 분류가 과학적인 기준에 비추어 보드라도 틀림이 없었다는 好例를 보여줍니다. 여기서는 역사적인 순서를 거꾸로 하여 먼저 일신교의 생각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신교는 지금으로부터 삼천 수백년 전에 탄생했습니다. 종교중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초월성의 생각입니다. 西아세아에서 이 생각이 탄생해 나왔을 때 주변을 둘려 싸고 있었던 것은 다신교의 환경이었습니다. 유대민족 안에서 발생한 일신교는 주위를 둘려 싸고 있는 다신교와는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달랐습니다. 먼저 다신교의 신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감각이 풍부한 신체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신교는 이를 부정하고 초월자는 모습이나 형상도 없고 감각으로써 잡을 수 없으며 손쉽게 그 이름조차 부르는 것까지 금한 신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초월자는 다신교와 같이 [多數]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존재하며, 여타의 신들에 대해서는 사고한다던가 상상해서는 안된다, 라고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일신교의 신은, 인간의 오감이나 사고가 잡아 낼 수 있는 세계에서부터 완전히 초월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마음을 잡아 내는 세계를 창조한것으로써 인간과 이어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우주의 창조자이며 질서를 지키는 존재로써 진리의 거점으로써의 신을 구하게 됩니다만, 어떠한 논리나 상상을 다 하드래도 인간의 지성으로서 이 신에 가깝게 갈 수 없습니다. 신에 다가 가려고 해도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걷고 있는 대지는 희여지고 역으로 멀어저 가는 역설적인 존재로써 이 초월자를 사고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모양을, 한가운데 구멍이 나 있는 토-라스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토-라스의 표면에서 살아 가고 있으며 그기서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언어의 진실을 뒷받힘하고 있는 코-드를 갖고 있습니다만 토-라스의 표면에서 아무리 주변을 뛰어 다녀봐도, 한량없는 말을 나누드라도 우리들은 중심부에 뚫려 있는 구멍에 가 닿을 수 없습니다. 일신교의 사상가들은 뇌내에서 발생한 유동적지성에 갖추어 저 있는 감각으로부터 추상성이나 사고로부터의 초월성에 초점을 맞취 인간의 본질을 사고함에, 신으로 불리는 이 공허한 구멍을 중심으로 삼고 생각하고 그 주변의 세계를 조직하려고 하였습니다. 다신교의 신들은 어떤 면에서 이 일신교의 신과 닮은 데가 있습니다만, 다른 면에서는 뒤에 가서 설명하게 되는 아니미즘의 영과의 관계를 보지하고 있습니다. 유대민족 사이에서 일신교가 처음으로 출현하였을 때 유일신이 요구하였던 것은 다수 있는 신들 중에서 오직 나만 신앙하라,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신교의 신들 역시 일신교의 신만큼 철저하지 안했지만 인간적인 능력으로부터의 초월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대한 위력을 갖고 보통의 인간이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이러한 다신교의 신들의 됨됨은, 다수의 구멍이 열려저 있는 토-나즈모양의 평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토포로지-는 ‘種數(지-너스) n의 토라-스라’고 수학에서는 부르고 있습니다. 일신교의 신이 종수 I 의 토-라스인데 반해 다신교의 신들은 종수 n의 토-라스로 모델화됩니다. 여하간, 그기에서는 초월성의 영역이 [공허한 구멍]으로 생각되고 그 구멍 주변에 인간의 활동이 조직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다신교의 신들의 대부분이, 풍요로운 감각성 넘치는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기에 이따금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저 있기도 하여 자연과의 농밀한 관계를 어느정도 견지하고 있음으로 다신교의 신들은 아니미즘의 영과 이어짐이 끊켜 있지 않습니다. 다종다양한 형태를 갖는 다신교의 신들의 세계를, 일신교와 지금으로부터 설명하고저 하는 아니미즘와의 중간적인 종교의 형태를 생각해 보면 복잡한 종교의 세계를 조금 투명하게 볼 수 있을것입니다. 아니미즘에서는 아직도 영이나 정령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일신교나 다신교에서는 인간의 사고와 감각으로부터 초월한 존재를 이 세계로 열려있는 구멍으로 생각하고 이 구멍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의 의미를 밝혀 내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영(스피릿트)은 다른 토포로지-구조를 갖는 [구멍]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라고 하기 보담, 이 별종의 구조를 한 구멍의 토포로지- 그 자체가 영의 실체이며 토포로지-구조가 감각이나 사고에 미치는 독특한 체험을 가지 각색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한 것이,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저 있는 영이나 정령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정령의 구멍은 뇌내에 열려 있는 초월성의 영역에 가 닿습니다. 그러나 일신교나 다신교와 같이, 초월성의 영역을 우리들의 오감이나 사고의 세계로부터 분리시켜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니미즘은 인간의 능력과 그 외부와의 사이에 통로를 만들려고 합니다. 외부와 내부를 자재롭게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있어 외부(이를 他界 내지 異界라고 부를 수 잇습니다)의 힘이 내부속으로 흘려 들어 오던가, 내부에 있는 사고나 감각이 타계영역으로 촉수를 뻐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나름데로의 근거가 있습니다. 신이나 영도 동물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인류속에서도 특히 특수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게만이 탄생해 나온 생각입니다. 뇌의 뉴-런조직의 재편성에 의해 유동적지성이 발생하고 어떠한 인지능력에도 제한을 받지 않는 지성의 활동이 뇌내속에서 현실화되었을 때 처음으로 신이나 영도 출현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뇌조직의 혁명적인 재편성으로부터 나온 새로운 마음의 토포로지-구조와 상관됩니다. 그때 초월성의 영역이 같은 마음의 중심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령의 구멍은 보통의 인지능력을 가지고는 닿을 수 없는 외부로 사라저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두나의 심적영역 사이에 통로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없을까요. 인류최초의 종교적사고인 아니미즘은 이 통로가 실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감이나 사고의 양식을 초월한 영역에서 두나의 영역을 걸치는 엷은 막의 경계면을 통해 에너지의 드나들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영이 그 오가는 것들을 중재합니다. 영은 보통의 상태에서는 분리되어 오갈 수 없는 외부와 내부를 하나로 이어줍니다. 영은 하나의 구멍입니다. 그러나 토-라스의 한가운데에 열려있는 공허한 구멍과는 달리, 내부와 외부, 겉과 안을 하나로 이어주는 구멍입니다. 이 구조를 토포로지-로 표현해 보면 [방향지울 수 없는 표면]인 크라잉甁과 같은 모양이 됩니다. 精靈의 구멍을 통해서 일어 나고 있는 것을, 논리로 표현해 보려고 할 때 신화가 탄생합니다. 이 구멍을 통해 외부로부터 이질적인 리얼리티가 유입되어 안쪽의 세계시스템에 변화를 일어키는 연유이기 때문에 논리의 틀로서는 모순을 삼켜 조성을 비틀면서 짜 넣을 수 있는 특수한 논리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은 레비=스토로-스의 [神話公式]으로 잘 알려저 있는 다음과 같은 변증법적 논리의 틀에 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Fx(a) : fy(b)~fx(b) : fa-1(y) 이 공식은 정령의 구멍 거너편에 있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통로를 통해 이쪽으로 다가 올 때 토포로지-의 비틈에 의해 에너지의 교환이 일어나고 異界의 에너지가 이쪽 세계의 실재로 모습을 바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미즘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신화논리야 말로 우주와 그 속에서 살아 가는 인간의 실존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사고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월성의 영역을 토-라스형의 구조를 통해 사고하는 다신교나 일신교의 세계가 되면 이 신화논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휠씬 쫍혀저서 결국에는 변증법논리를 인정하지 않는 線形的인 形式論理의 支配가 시작됩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토-라스型의 공간에서는 보통의 아리스토테레스論理가 가장 진리에 가까운 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1269 no image [야생의 과학] 14
1669 2015-03-01
2 샤레酒落(=익살을 뜻하는 일본어)는 보통은 서로 떨어저 있는 意味場에 놓여 있는 말끼리, 음의 유사성이나 의미의 인접성을 통해 급격하게 접근시키는 경우에 생기는 놀라움이나 익살을 이용하여 그 자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하는 효과를 내는 말솜씨다. 앞서 인용한 예를 보면, 서로 법률적인 의미장에 있는 [유산]과, 물렁한 내장을 연상시키는 의미장에서 뽑아 낸 [위산]이, 소리의 같음을 통해 연결되고 있습니다. 가와아이선생이 臨床이나 交際의 장에서 즐겨 쓴 이러한 언어용법은 어느것이던 의미장의 뻣뻣한 배치구조를 비틀던가 이완시키던가 탈백시키던가 해서 떨어저 있는 것을 접근시키고 가까이에 있었던 것을 멀리하게 하는 하나로 만들기 힘든 것의 속과 겉을 이어서 의미장을 그야말로 신축자재롭게 變形하려 하는 것입니다. 언어에는 규칙이나 법의 측면이 갖추어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왕왕 언어의 용법에서 자유도를 줄임으로써 [옳바른 말]을 나타내려는 경향을 갖는것인데, 가와아이선생은 그러한 언어용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그기에 [토포로지-的變形]에 의한 높은 자유도를 첨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의미와 의미간의 적절한 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을, 거리 보담 중요한 것이 인간의 언어나 찌껄임이란 행위속에 숨겨저 있다, 라고 하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었습니다. 거리 보담 중요한 것, 그것은 의미끼리의 위치관계이며, 이는 의미장을 꾸기거나 늘임을 통해 변형을 가해도 변화하지 않는 성질을 갖는 것입니다. 샤레는 적절한 거리관계를 꾸기거나 뿌셔버림으로써 마음의 내부에서 위치관계만이 중요도를 갖고 신축자재의 부드러운 실체를 뜨 올리려고 하는 언어표현의 기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같은 변형을 도형을 덧붇침으로써 도형이 갖는 가장 시원적인 수준의 성질을 밝히려는 기하학인 토포로지-와 같은 조작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토포로지-는 이따금 [부드러운 기하학]이라 부르기도 했음으로 가와아이선생이 애용했던 것은 [부드려운 문법학]으로써 언어의 토포로지-라 불려도 좋을 실천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어는 그 표층구조에서는 線型的인 질서에 따라 논리성을 갖춘 [옳바른]표현을 하려고 합니다만, 그 표층구조 아래서 움직이고 있는 보다 프리미티브한 구조를 하고 있는 마음(心)은 그것과는 다른 토포로지-에 따라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인생살이에서 주변에서 인정되고 [옳바른 것]을 말하기 위해, 껄끄러운 배치구조를 한 표층구조에 마음의 움직임을 내 맡긴다면, 옳바른 인생은 마음의 진실에 대해 허위를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즉 [옳바른 것]을 나타낼 때 마다 마음의 진실인 프리미티브한 구조가 억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가와아이선생은 나에게도 자주 [나는 정말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은 언어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선생의 엄한 윤리성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꼬니와(箱庭)요법이나 曼茶羅의 효과에 대한 선생의 깊은 관심이 싹터 나왔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꼬니와에서는 자유롭게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모래위에 힘이 뫃이는 점(아트락트)이나 分岐하는 점을 만들고 그기에 정동적인 기억이 엮어진 집이나 식물이나 인물등의 모형을 배치하고 하나의 미크로 코스모스의 세계를 만듦으로써 언어적 콤니케이션을 통해 잘 들어 낼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의 비밀에 접근하려고 하는 정신치료의 방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하고니와미크로코스모스를 이루는 도형의 배치가 아니고, 하고니와의 내부에 넘처 나는 에너지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토포로지-의 구조쪽에 있습니다. 하고니와의 배치를 보고 그 표면에 나타나 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에 있는 힘의 흐름을 해독하는 쪽이 중요하며, 파고 들면 그것은 융의 만다라가 갖는 내부구조의 [깊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음의 깊이를 향해 다이빙해 가려는 분석행위를 도우는 만다라의 심해탐사기능에 관하여 융은 되풀이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가와아이선생의 만다라에 대한 취미는 이와는 조금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융과 같은 만다라의 심층성에서가 아니고 가와아이선생은 만다라의 표면성쪽에 보다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만다라는 원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존재의 諸 모습을 표현하려고 하면서 발달해온 도형입니다. 중심부에서 흘려 나오는 심적 에너지-를 파동의 현상으로 잡아 내고 그 파동의 움직임을 스펙탈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동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만다라는 곽 짜여진 도상으로 나타내기 보담 可塑性이 충만한 모래의 모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모래를 쌓아 올려 만들어진 만다라는 바람에 휘날릴 정도로 부드러운 것일수록 마음의 진실의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이것이 티베트등지에서 생각되어 온 만다라사상입니다. 즉, 만다라는 기하학적도상으로서가 아닌 可塑的인 토포로지-로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가와아이선생은 만다라가 갖는 이 토포로지-성에 마음이 끄려 왔습니다. [일본인은 무의식은 없다, 모든 것이 의식의 현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가와아이선생은, 의식 – 무의식의 二元構造로 사고하는 것을 피하고 모든 마음의 현상을 하나의 표면(즉, 그것이 무의식없는 의식입니다)에 일어나는 토포로지-의 구조변화로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훗날 미국 선주민의 세계와 접촉하게 되면서 부터는 나봐오族이 신화를 나타낼 때 그리던 沙畵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때도 사화가 하고니와의 경우와 같이 생성소멸에 운명지워진 가소적인 성질을 갖는 토로포지-를 본질로 하고 있는 점에 대한 공감에 뒤 받힘 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샤레酒落나 하고니와나 만다라나 그리고 신화이거나, 가와아이선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토포로지-를 본질로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로서는 여기에 선생이 좋아했던 음악을 첨가하고 싶으나,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시간의 제약을 받을 것임으로 오늘은 이점을 잠간 시사하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언어의 구조를 통해 표현되는 마음의 움직임은 일종의 층을 이루고 의식의 상층부에 널리 퍼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언어의 구조와는 다른 움직임을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쉬지 않고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 그 활동을 표면으로 끌어 내기 위해서는 같은 언어라도 샤레라던가, 하고니와나 만다라와 같은 가소성을 띠고 있는 토포로지-의 도움을 빌려 올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의 표층구조와는 다른 그런 심적활동은 어떤 의미에서 프리미티브한 성질을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명확하게 分節構造를 갖고 사물을 적절한 거리에 배치하는 언어의 표층구조와는 달리, 의미장을 압축하던가 置換하던가 해서 다이나밐하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마음의 基體]를 이루는 프리미티브한 心的實體이며 그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같은 도형의 프리미티브한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개발된 토포로지-과학과 같은 도구를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토포로지-에서는 浮輪이나 커-피컾은 [같은 도형]으로 간주합니다. 부르러운 점토를 이괴서 만든 커-피컾을 [구멍은 메쿠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지키며 변형시켜 가면, 얼마 가지 않아서 같은 모양을 하게 됩니다. 커-피컾의 도형의 본질은 액체를 保持하는 본체의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쥐는 부분에 생긴 구멍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이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도형으로서 갖는 프리미티브한 성질에서는 부륜이나 커-피겊은 [同價]인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가르키는 복잡한 현상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프리미티브한 心的 實體의 성질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심층에 있는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는 과학은, 반드시 토포로지-의 視点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토포로지는 문학적인 세부를 희생하여 대상이 갖는 보담 기본적이며 가장 프리미티브한 성질을 집으 내려고 하는데, 심리학이 임상의 장면에서 상대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적라나한 상태로 벗겨낸 이 세계의 표면을 닿게 하는 이 프리미티브한 심적실체에 다름 아닙니다. 그 때문에 그것과 상대가 되는 임상의 知 역시 부르러운 기하학인 토포로지-와 동질의 구조를 갖는, 신축자재를 세우는 부드러운 언어나 상징의 사용자가 아니면 안된 다는 것입니다. 그 실천에 관해서 가와아이선생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생은 拳法의 達人과 같이 정확히 상대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토포로지-칼한 구멍의 위치를 살피는 기술에 아주 능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샤레를 위시하여 부드러운 말의 기술이 갖는 능력이 총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나는 오늘 가와아이선생이 훌륭한 임상가였을 뿐만 아니고 마음의 활동의 기체를 이루는 프리미티브한 심적실체를 토포로지-로 잡아 내는, 다가 올 심리학을 앞선 사상을 탐구하는 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리학을 [토포사이코로지topopsychology]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가와아이선생은 중공구조를 발견함으로써 다가 올 시대를 열어 놓을 토포사이코로지의 선구자의 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1268 no image [야생의 과학] 13
1618 2015-02-25
제 5부 토포사이코로지 1 오늘은 河合매雄선생의 기억도 생생한 京都大學大學院敎育學硏究科의 대학원생인 여러분을 모시고, 臨床의 知를 둘려 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가와아이선생은 너무나 매력적인 인격을 갖추었던 분이었음으로, 우리들은 그분의 글솜씨가 주는 즐거움에 이끌리어 자칫 선생의 그 맛이 깊은 언설의 배후에 숨어 있는 思想의 構造에 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으로 여태까지 사상가로서의 가와이매웅이란 존재에 대해서 그 중요성을 주목하지 못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십년 가까운 긴 시간에 걸처 가와아이선생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 선생의 유-머러스함과 상냥함에 넘친 언설이 솟아 나오는 그 샘의 옆에서 여유롭게 그 안을 디다 볼 수 있는 드물게 귀한 체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그기에 어김없는 독창적인 사상의 구조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와아이선생은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그 사상의 구조에 [中空構造]라고 하는 이름을 부첬는데 그기에 숨겨저 있는 중대한 의의를 많은 사람들은 노치고 있었습니다. [중공]이란 하나의 토포로지-를 나타내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젊었을때 수학자가 되려고 했던 가와아이선생 답게 마음의 됨됨을 하나의 토포로지-의 구조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점에서 가와아이先生은 세간에서는 마치 대극적인 臨床醫와 같이 보아 왔던 쟉크.라칸 같은 인물과 매우 닮은 知的嗜好를 갖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아주 절묘한 때를 노치지 않고 환자의 말을 끊고 셋션을 마첬다고 합니다. 라칸의 임상치료의 현장에서 일어 났던 일이, 가와아이선생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웃음을 동반하면서 셋션을 끝내는 것과 매우 닮았던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찾아 와서 선생에게 호소합니다. “선생, 나는 지금 유산의 상속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어 몸이 어긋나 버렸습니다” 가와아이선생이 즉시 응답합니다. “당신 그건 胃酸過多야”. 가와아이선생이 구사했던 치료현장의 분위기를 일소하는 농담치료법은 융파의 전통이라기 보담, 프로이드파의 전통에 속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두사람이 토포로지-구조로 들어 내는 것이,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상호 공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라칸에서 일어 났던 크로스.캡(射影平面)이, 가와아이선생이 주창하던 中空構造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가와아이선생의 사상의 헥심부를 이루고 있는 동시에 선생이 스스로 그기에서 얻고 있는 끝이 없는 풍요로운 표현을 길려 낸, 샘과 같은 토포로지-에 관해 이야기 함으로써 사상가로서의 가와아이선생의 간고한 사고의 틀을 여러분 앞에 들어 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지금 진행시키고 있는 하나의 프로젝트, 즉 종교에서 경제에 이르기 까지 복잡하게 발달해 온 오늘날의 人間的諸現象과 이를 대상으로 하여 이상할 정도로 발달을 이루고 있는 인간諸科學을, 토포로지-적인 원리에 의해 재편성해 보려고 하는 프로젝트에 가와아이선생의 사고가 어떻게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267 no image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
1859 2015-02-24
재미있는 이야기 한토막 으로 잠시 머리를 식혀 갑시다 이야기의 배경 2010년 여름, 세도나이가이(瀨戶內海)의 나오시마(直島)를 중심으로 행 해젔던 [瀨戶內國際藝術祭]의 첫날은 프랑스의 작가 르.크레지오씨에 의한 강연을 시작으로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테-마로 심포지움이 열릴 계획이었다. 애석하게도 르.크레지오씨는 體調不良으로 일본에 오지 못하고 대신 브르타뉴-의 自宅에서 촬영한 비디오에 의힌 멧시-지가 심포지움의 서두에 흘려 나왔다. 이하의 글에는 이 심포지움을 위한 강연을 위해 준비했던 것이다. [모쥴.케네-]의 설계 오늘날의 인류가 직면한 제문제는, 그것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內的自然과 外的自然과의 결정적인 分離에 있다. 내적자연이란, 뇌내에서 일어나는 심적 현상이며, 여타의 생물종과는 달리, 인간의 그것은 외적자연의 구조와 활동에 조화할 수 없는 과잉된 자유영역을 품고 있다. 인간의 내적자연은, DNA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영역을 포함한다. 이 사실이 지구와 그기에서 살아 가는 생물들 모두에게 여태 없었던 아주 크다란 의미를 띠우기 시작한 것이 현대의 세계다. 타의 生物種은 외적자연을 [對象]化하고 자신을 그기서 분리하지는 안 했다. 그러나 인간의 뇌내에서 실현된 자유영역인 내적자연은 외적자연을 [대상]화 하여 분리하는 경향으로 눈을 뜨게 된다. 중근동에서 일어났던 초기의 도시성립 시부터 내적자연과 외적자연의 분리의 결정적인 진행이 시작되었으며 근대의 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이 경향은 인간권의 모-든 영역에 全面化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경제학에서 외적자연의 활동은 [외부성]이란 자격으로서 만 경제현상에 영향을 불려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현상은 더욱 [내부화]되고, 정보 미디아의 발달에 의해 뇌내의 심적현상으로써 외적자연으로부터 분리 절단된 자율성을 강력하게 만들어 간다. 이 결과, 에코로지-경제학과 주류파경제학의 사고법 사이에는, 크다란 원리적인 벽이 가로 막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오늘날의 인류는 내적자연과 외적자연을 잇는 확실한 모개시스템을 상실하게 된다. 이전의 문화에는 그러한 모개시스템이 사방에 존재해 있어 확실한 역할을 해 왔었다. [야생의 사고]에서 인간의 내적자연인 무의식의 사고는 자신의 환경세계인 외적자연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확보하면서 두개의 자연 사이를 모개하는 기능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모개시스템이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영역에서 파괴되던가 기능불전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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