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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0 no image [야생의 과학] 32
1576 2015-05-09
[야생의 과학] 32 제7장 두나의 深澤七郞論(2) 奇蹟의 文學 道祖神 --- 丸石神에 얽힌 이야기 자신이 태어난 토지에서, 하물며 그 토지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때는 긴장하는 법이다. 그기다 오늘은 중학교의 동급생들인 여성들도 몇 사람 와 있는 것 같에서 나는 坐不安席입니다.(웃음) 나에게는 후가좌와시치로라고 하는 작가는 이전부터 매우 큰 존재로 있어 왔습니다. 자신의 사상이나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던 [선생]에 헤당하는 큰 존재가 몇 있습니다. 선생속에는, 후가좌와시치로와 丸石神이라고 하는 고-슈적(甲州的)인 존재가 있습니다. 선생속에는 후가좌와시치로와 환석신이라 하는 구지 말한다면 고-슈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고-슈에서 자란 여러분들은 어느 마을에도 道祖神場이 있고, 둥근 돌이 모셔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나의 부친은 民俗學을 공부하고 있는 아마추어學者였습니다. 부친은 오랫동안 정치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중학생일 때 정치의 세계에서 좌절하여 그 이후 젊었을 때 하고 있었던 민속학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야마나시(山梨)縣은 풍부한 석불의 문화가 있다. 만년에는 그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나는 그 석불연구 현장에 자주 따라 갔었습니다. 조모나 모친은 부친이 석불연구를 위해 나가는 일은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지급부터 석불의 조사로 나간다]라고 하면, [쓸대 없는 짓 그만 두제]라고 불평을 토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신이치(新一)도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하는데, 라고 한마디 던지면, 모두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게 됨으로 그렇게 하여 아버지의 민속학조사는 앞을 나아 갈 수 있었고, 나는 나데로 여러 산촌을 흥미진지하게 보고 다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속학의 조사는 주로 자전거와 버스와 도보로 이루어 젔는데, 거이 縣의 대부분을 돌아 다녔습니다. 나의 실가는 야마나시市였음으로 자주 笛吹川변을 따라 계속 안쪽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면 먼저 환석신이 鎭座하고 있는 도조신장을 찾습니다. 주변의 분위기라던가 돌의 생감새 라던가 매우 특이한 취향을 주는 돌들이 어린이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부친과도 자주 이 가미사마(신령님)은 도데체 누구인가라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진찌 의문의 신령님이었습니다. 가미사마라고 한다면 절안에 모셔놓은 천조대어신이라던가 대산지명을 일본의 가미사마라고 생각합니다만 도조신장의 환석신은 절에 모셔지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절 밖입니다만 마을의 매우 중요한 자리에 모셔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길이 세갈레로 나 있는 곳이나 개울과 합류되는 장소와 같이 나누어지는 길목에 도조신이 모셔저 있는 것입니다. 이 도조신도 일본민속학의 크다란 의문의 하나였었는데,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색여 넣지 않는 둥근 돌이 날랑 앉혀저 있는 것이 전부인 환석신은 매우 의문이 많은 가미사마(神樣)였습니다. 信州에서는 남녀의 가미사마를 한쌍으로 한 도조신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한쌍의 도조신은 信州특유의 것입니다. 야마나시현에 들어 서면 北巨摩郡 언저리 부터 이 양식이 적어 지다가 구니나가쪽 까지 오게 되면 환석만 놓여 있는 것이 되는데, 그것의 원류가 笛吹川언저리였습니다. 염산, 야마나시, 이시와, 고-후의 산중에도 환석이 많이 모셔저 있었습니다. 나는 이들을 중학생 때 부터 보와왔기에, 그 모습을 현장에서 실감함으로써 인본인에게 가미사마란 어떤 것인가? 그 이미지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미사마에 관해 공부를 하게 되면 神社가 지금과 같은 건물을 갖게 되었던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나무가 한그루 서 있고 그 뿌리에 사당이 한 개 놓여 있고, 이것이 오래된 신사의 원형이였음을 짐작체 하는 것입니다. 가마구라시대이후,점점 신사가 크집니다만 丸石의 도조신은 그런 가미사마와는 전혀 다른 불가사의한 波動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고교생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었어도 환석신은 도데체 무엇인가, 라고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 갔을 즈음 야마나시현에서도 고고학의 연구가 일어나 특히 北巨摩郡 에서 발굴이 활발히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조문시대중기에는 나라안이 습지대가 많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했기 때문에 산기슭을 따라 근조한 지대의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金生遺跡입니다. 금생유적은 주거가 많이 줄지어저 있는 한켠에 석봉이라고 하는 남성의 심볼을 닮은 돌들과 함께 둥근 돌들이 다수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고-슈에서 반방에 이르는 조문시대중기의 유적이 차례 차례로 발굴되기 시작함으로써 먼저 이 석봉이 무엇인가, 라고 하는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조문시대의 집은 땅을 바로 파서 만든 것이라 조금만한 입구를 들어 서면 방의 한 가운데에 불집는 둥근 곳이 파여저 있습니다. 이 불을 놓아 두는 장소 바로 옆에 석봉이 있는 것이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기에 석봉을 놔두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조문연구가 진척되 감에 따라 마을에서 祭事를 지낸것으로 보이는 별채가 발견되어 내부의 위치계측을 하게 되면 동지 날에 태양이 최초로 오두막 안으로 들어 오는 장소가 실은 화로가장자리였으며 그 옆에 석봉 혹은 환석이 놓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태양의 빛이 부엌에 들어 오는 것이 조문인에게는 아주 크다란 의미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의 민속학에 관한 책을 보면 여러가지 장소에서 冬至의 祭事를 지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울의 약해 젔던 태양이 동지를 경계로 점점 힘이 강해지면서 저 밑에서 위로 반전하는 바로 그 시점에 祭를 지내는 것입니다. 동지에 여성기를 표현했던 화로에 해가 비추어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생각으로 무슨 제사를 지난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삼 환석이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보면, 이 난로주변의 여성성과 남성의 석봉이 태양의 빛과 일체가 되어 태어 나오는 생명력.생명의 표현이 아닌가. 말하자면 환석신이란 어린에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표현의 원류에는 조문시대까지 소급하는 것이 아닌가. 이 환석신과 많이 만나게 됨으로서 나는 야마나시현=고-슈가 어떤 장소였었던가를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289 no image [야생의 과학] 31
1421 2015-05-05
[야생의 과학] 31 두나의 深澤七郞論 델리게이트한 分類(2) 여기에서는 후가좌와시치로가 실천하고 있는 世界의 분류법의 본질이, 숨김없이 날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上品(일어로 ‘죠-힌’이라 발음함)/난폭/下品(‘게힌’이라 발음함)]라고 하는 세가지 범위에서 산라만상을 분류하고 있었다. 어느것이든 지적인것의 활동과 신체성이나 물질성과 붙어 있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上品]은 그 두개의 모개가 지나처서 재미를 결하고 있다. [난폭]에는 지적인 것이 모자라서 이 또한 재미가 없다. [게힌下品]이야 말로 지적인것과 감각적=신체적인 것이 알맞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결합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후가좌와시치로는 기타 연주뿐만 아니라 밭일이나 과자만들기, 인형공작등에서도 같은 [게힌의 구조]를 찾아 내어 좋아하는 것을 넣는 분류상자에 보존 했을 뿐만 아니라 실체로 농부나 이마가와 야끼야(도자기 공예)의 아저씨가 됨으로써 자신의 취미를 실천했던 사람이다. 내 생각으로는 후가자와시치로속에 이와 같은 독특한 감각사고가 자라게 된 요인은 그 속에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고-슈사투리와 그가 젊었을 때부터 가깝게 해 왔던 기-타라던가 프렛스리의 로카비리 같은 [게힌]한 음악에의 기호가 내면에 숨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고-슈의 방언에 관해서만 언급해 둔다. 고-슈방언도 후가자와시치로에 들어 가면 틀립없이 최상급의 [게힌]에 분류되는 매우 많은 매력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고-슈방언의 투는 매우 간결하는데, 반복이 많고 투박한 점이 있다. 그 특징은 후가자와시치로의 작품속 이곳 저곳에 얼굴을 내 밀고 있는데, 특히 [笛吹川]과 같은 작품에는 이점이 마치 소설의 주제와 같은 것으로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活寫되어 있다. “[나야, 西山의 온천에 보내 주었으먼 쓰겠어]라고 말했다. 정평이 묵묵히 있어니 오게이는 또, [나사 보고가 그립지, 서산에 온천에 가면 보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르제] 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평은 고후쪽만 바라 보는 이유를 이제 처음으로 알았다. (고후쪽을 보고 있는 것을 서쪽 하늘을 바라 보고 있었다)라고 여겼기에, [갔다 오면 되지 않은가, 한달 정도] 라고 말하니, 오게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괸찮은가요]라고 다짐을 한다, 땅 쪽을 내려다 보며. [나는 보고를 하고 싶어, 보고가 없으니 그런 말을 듣게 되어, 싫단께]라고 말했다. 또, [보고가 없으면 골난해]라고 찔기게 말하는 것이었다.(笛吹川)” 마치 음악과 같이 실로 멋있는 [게힌]다운 대화가 아닌가. 하나의 프리이즈가 그대로 혹은 조금 변형되어 몇번이라도 반복되는 사이에 그기에는 자연스려운 음악이 발생하고 있다. 회 화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니고 감정이나 신체속에서 발생하는 어떤 패탄을 반복적으로 읊음으로 태어 나는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위해 있을 것이다. 지적인것과 감각적인 것이 음악속에서 일체가 된다. 고-슈방언에는 이와 같은 [게힌]적인 음악성이 충만해 있다. [게힌]적인 것에서 밖에 실현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많이 널려 있는데도 상품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그러한 진실을 보지 않기로 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진정하다고 일컫어 오는 것들이 대개가 쓸모 없는 것이다. 후가좌와시치로속에 있는 이러한악만적인 인식은 민중적인 음악과 그러한 음악성을 품은 고-슈방언속에 숨어 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이러한 방언의 세계를 좋아 해 왔기에 그것을 잘 알게 되었던 것이다.
1288 no image [형도 탐방 영문 기사에 관하여]
1411 2015-05-05
1287 no image The Aesthetics of Ruins in Hyung -do
1584 2015-05-04
1286 no image [야생의 과학] 30
1403 2015-05-02
[야생의 과학] 제7장 두나의 深澤七郞論 델리게이트한 分類 [미개인과 농민은 분류를 좋아 한다]라고 하는 것은, 어느 유명한 인류학자의 말로써 후가좌와시치로深澤七郞역시 그 미개인이나 농민과 같이 끊임없이 잘게 분류하면서 살아 온 것 같은 구석이 있다. 그 분류하는 방법도 매우 델리게이트하여 그리고 절대적인 정확성을 갖고 수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법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눈앞에서 솜씨 좋게 세계가 분류되는 모양을 보게 되면 그냥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이루어젔다. 武田泰淳선생의 댁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야구는 좋아 합니까?] 라고 물었다. [야구는 싫습니다. 너무 세련되어서…]라고 정직하게 답한다. [그럴까, 너무 세련된 것일까] …….. [레쓸링은 좋아 합니까?]라고 마누라가 물었다. [그건 낭폭하여 싫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으나 좋아 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에서 [스포츠로는 역시 기-타가 좋습니다. 천하(下品)여 좋지요]라고 말하니, [스포츠입니까, 기-타가]라고 되물어 오길래, 서툰짓을 저질렸구나라고 후회하였다. 이 대화에는 후가좌와시치로가 실천하고 있는 세계의 분류학의, 중요한 특징이 모두 나타나 있다. 야구는 너무 세련되어 있음으로 좋아하지 못한다. 야구는 삿카와 같이 프레이야끼리의 신체는 항상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다. 공도 직접 발로 차던가 손으로 잡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밧따로 치고, 그로브로 잡는다. 야구에서는 모든 행위가 도구에 의해 모개되어 있어 신체의 직접성은 가능한 우아하게 제어된다. 그래서 야구는 너무 세련된 것이며, 말의 제어에 인생을 걸고 있는 문사나 시인등은 좋아할지는 몰라도 역으로 그 점이 후가좌와시치로에게는 별로 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 역으로 레슬링은 모개가 지나치게 적다. 신체와 신체가 직접 충돌하면서 씨름과 같은 儀式性이나 형식미가 부족하고 신체가 움직이는 범위에 가해지는 제한이 극단적으로 적다. 형식성이 달리면 그기에는 신체를 율하는 논리성이 부족해 지며 뒤에 가서 언급하게 되는 음악성이 결핍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는 스포-츠가 끝없이 싸움에 가깝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레쓸링은 난폭하여 趣味에 맞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라면, 기-타]인것이다. 기-타를 타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후가좌와시치로는 [스포츠와 같은]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손가락이 직접 현을 켜서 나오는 소리를 내는 것이 기-타라고 하는 악기이다. 분명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지면을 직접 차서 달리는 단거리주자나 리듬을 붙혀 지면을 삼단으로 뛰어 오르는 선수나 공을 직접 발로 받아서 원하는 곳으로 정확하게 차는 삿카선수의 신체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손가락 끝으로 하는 것이다. 물질세계(악기)에 직접 신체의 일부를 비벼되는 기-타 연주는 그런 의미에서 두말 할 필요 없이 스포츠의 친구인 것이다. 그러나 기-타는 물질사이에 많은 모개의 삽입을 하는 야구와 같이 [上品性이 지나치는 것이] 아니고, 모개와 형식성이 딸리는 레슬링과 같이 난폭하지도 않고 사람의 지성과 신체의 움직임이 적당한 거리에서 균형을 통해 서로 닿는 것이다. 그럼으로 기-타는 [게힌,下品]이며, 훌륭한 악기인 것이다. 후가좌와시치로의 [게힌]이라 하는 분류의 범위는 아마도 델리게이트하며 깊은 내용을 갖고 있을터. 후가좌와시치로에 의하면, 피아노는 지나치게 상품적이라서 별 볼일 없는 악기이다. 무엇보담 피아노는 처음부터 조율되어 있는 현을 함마로 두디려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임으로 토대부터 지적이며 재미에 결한다. 이에 반해 봐요린은 현을 비벼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는 피아노 보담 휠씬 에로틱이며 [게힌]이다. 그러나 후가좌와시치로의 데리게이트한 감각에서 보면 [비빈다]보담 기-타와 같이 [티기는] 악기쪽이 나오는 소리에 粒子性이 있어, 바람직하다. 그기다 봐요린은 일직이 크라싴음악가에 의해 주목 받으면서 상품의 곡만 연주되어 그기에 맞취 프라멩코 단사가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다. 에스타브릿시하기를 거부하는 기-타, 언제까지나 [게힌]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기-타는 그럼으로 후가좌와시치로의 분류학상에서 최고의 랑크에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
1285 no image [야생의 과학] 29
1466 2015-04-30
야생의 과학 29 3-3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야나기무네요시의 用과 같은 [心에의 用]의 배려가 나오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실천에서는 心의 과정에 대해서도 물질적 자연을 가공하기 위해 쓰이는 분별지만이 작동하기 때문에 무분별지의 基底로 품어 넣는 심에의 실천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부분적인 것에 머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야나기가 말하는 用쪽이 마르크스의 實踐보담 휠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라고 하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야나기무네요시가 민예로서 매우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농구를 예를 들어 그의 생각하는 [용]의 개념을 조금 더 깊이 있게 탐색해 보기로 합시다. 오랫동안 한 사람의 농민에 의해 애용되어 온 괭이가 있습니다. 이름도 없는 직인이 무심하게 만든 괭이의 모양에는 직인의 무분별지가 부어 넣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괭이를 농민은 오랫동안 애용함으로써 손에 익혀 왔습니다. 무의식의 동작이나 버릇에 맞춰 쓰기 쉽게 미묘한 변형이 가해저 바로 주객이 일심동체가 된 도구로 익힌 것입니다. 이 괭이를 가지고 농민은 대지를 파 헤치면서 땅을 감니다. 도구는 인간의 손끝에 접속되어 인간의 능력을 확대하고 자연에 대해 무언가의 작용을 불려 일으킵니다. 일하는 농민은 바로 무심한 마음으로 대지를 향해 괭이를 휘둡니다. 이렇게 하여 마르크스풍으로 말해 본다면 실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드려워진 땅에는 씨가 뿌려집니다. 그러면 물끼를 머금은 씨는 태양으로부터 얻는 무상의 은혜를 받으면서 성장을 이루며 가을에는 열매을 맺습니다. 한 알의 씨는 수천배로 증식하여 세계에 부의 혜택을 갖으다 줍니다. 이와 같은 전체과정속에서 괭이의 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과 물을 함께 버물어 하나의 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민예인 농구가 용을 다하는 이 전체과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증여적인 원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핵융합반응에 의한 스스로의 희생을 통해 되돌아 오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증여를 계속하고 있는 태양이 갖으다 주는 에너지를 변환하여 자기의 증식을 행하는 식물세계의 토대가 되어 이루어지는 산업인 농업의 기저에는 깊이 증여의 원리가 심어저 있습니다. 농민이 애용하는 괭이는 그러한 증여세계속에 파 묻혀 용을 다하는 것입니다. 경제세계에 무분별지가 작동하면 그기에는 증여가 출현합니다. 무분별지는 물건의 교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를 만들어 냅니다. 그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와 물건이 일체가 되어 교환의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허지만 상품교환의 세계는 처음부터 인간과 상품을 분리하여 등가의 분별에 의해 교환을 행합니다. 현대는 경제세계의 크다란 영역이 상품교환의 원리에 의해 압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언 그 경제세계전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저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분별지에 의한 증여의 원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민예란 이와 같은 증여적 세계를 배경으로 탄생해 나왔습니다. 민예가 다하는 용은 증여의 원리를 배경으로 할 때 처음으로 정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왜 그것은 무심이 아니면 탄생해 나올 수 없는가, 왜 용을 다하는 도구가 아니면 그것이 민예로 인정받을 수 없는가. 왜 민예는 淨土의 가르침을 믿는 민중세계와 친화적인가. 야나기무네요시의 민예사상을 둘려 싼 많은 의문이, 무분별지와 일체인 증여의 원리를 배경으로 할 때 선명하게 풀리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가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담 이점이 대량생산을 하는 공장에서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공장에서는 미리 설계된 제조라인에 따라 설계된 제품이 생산도구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기서는 도구나 사람이나 소재도 단일의 설계프로그람의 일원으로써 움직입니다. 작은 동내 공장이 아닌 이상, 무분별지적인 신체의 운동에 의해 작동하는 감이 말하는 세계가 아닌 것입니다. 야나기무네요시등이 공업제품을 비판한 것은 전적으로 이점에 있었습니다. 그 방식으로 한다면, 무의식인 무분별지에 닿기 이전에 제품이 만들어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분별지의 산물인 민예에는 가 닿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민예운동가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민예의 미란 [민예의 장] 내지 [민예적공간]없이는 태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에 작동하는 용이 움직일 때 그기에는 민예가 태어날 가능성이 생깁니다. 여기서의 용은, 심의 자연인 무의식의 무분별지에 직접 가동하여 자연소재에 무심한 조형을 만들어 내는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때 독특한 미가 증여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혹은 증여를 본질로 하는 미가 인간세계속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茶道의 창시자들이 조선의 민중이 일상생활속에서 쓰고 있던 밥그릇을 [井戶]란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타실에 지입해 왔을 때 그들은 그 밥그릇을 포섭하고 있었던 증여적 세계 그 자체를 전체로 둘려싸려고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민예는 지금도 인간세계에 살아 숨쉬고 있다, 무분별적이면서 증여적인 본질을 갖는 민예적공간을 배후에 깔고 있을 때 처음으로 민예라고 하는 빛남을 뒤찾을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러한 공간만이 진실의 미를 태어 나게 하는가, 야나기무네요시의 물음은 시종 이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민예란 무엇인가]라는 쇼화초기에 이 문제는 사회조직의 문제로 사료되었습니다. 영국의 민예운동가들의 사상과 같이 야나기무네요시는 중세적인 사회의 직인들의 협동조합에 주목하여 산업자본주의의 통렬한 비판자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그건 당연하게도 그를 사회주의 파시즘의 문제로 접근시켜 가게 합니다. 그러나 종전을 맞이하는 무릎 이 물음은 다시종교적인 사고에 의해 재 표현 되기 시작합니다. 아나기무네요시 만년의 종교론은 무분별과 증여에 입각한 세계라고 하는 것을 둔화시킨 원리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야나기무네요시의 사상속에서 민예의 미와 종교의 진실이 올타나티브alternative한 산업사회에의 비전과 크다란 하나의 원을 만들고 했어나 그 환을 서로 강하게 이어지게 한 것은 무심.무분별과 증여의원리라고 하는 우리들이 근래 [대칭성]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다시 잡아 보려는 또 하나의 심의 작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야나기무네요시가 행했던 생애의 탐구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기에 숨겨저 있는 현대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민예]라고 하는 게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개념속에 증여나 제작이나 실천이나 협동이나 환대나 사랑 내지 미라고 하는 것들, 현대의 그로벌화된 기술새계를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문제에의 해답의 열쇄가 그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민예를 [초기화한다]라고 하는 기묘하게 들리는 제안을 하고저 했던 것도 야나기무네요시들이 그 창성기에 품고 있었던 크다란 가능성과 모순을 품은 문제의 풍요로움을 현대에 다시 되살려 보고저 했기 때문입니다. 밋쎌.세-르라 하는 프랑스의 사상가가 최근에 쓴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선행하는시대에서는 여한한 知도 다음과 같은 매우 중대한 기도를 구상 할 필요도 없었고 도입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즉 개인의 보편성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 개인의 거주환경을 재 편성하는 것, 새로운 인간관계를 엮어 내는 것이다.” 민예의 사상이 이러한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에 충분한 해답을 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개인의 보편성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 개인의 거주환경을 재편성하는 것, 새로운 인간관계를 엮어 내는 것] 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지금 당장 다루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企圖에 아직도 풍부한 경험과 비전이 주어지고 있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숨어 있는 부도, [민예를 초기화한다]라고 하는 곤란한 과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서 던저 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1284 no image [야생의 과학] 28
1436 2015-04-23
3-2 아카데미즘은 知의 세계나 美의 세계에서도 분별에 의한 구성지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민예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서민이나 민중의 세계속에서 찾아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기에는 무심.무분별에 의해 태어나는 생활의 구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라고 야나기는 생각했습니다. 서민의 세계로 향해 나아갔던 야나기무네요시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그럼으로 로망티시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종교의 연구에서 얻은 인간의 심작용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음으로 비로서 이조의 기와 만난 순간에 그 본질을 뀌뚫어 볼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민예의 본질은 그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야나기무네요시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훌륭한 도구일지라도 현실에 쓰이지 않는다면 민예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즉 민예는 실제 생활속에서 쓰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점에 대해 [민예란 무엇인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깊게 첨부해 두겠습니다. 여기의 用이란 것은, 단순하게 물적 용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동시에 마음의 용이 되지 않 으면 안됩니다. 물건은 그냥 쓰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에 닿으며 쓰이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에 어긋난다면 아무리 용에 쓰임이 있더라도, 미적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민예는 여기서 언급되고 있듯이 미술품으로써 그냥 보는 존재가 되서는 안되고 현실의 세계에서 실제적으로 쓰여야 합니다. 말하자면, 민예란 [도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구를 통해 세계에 활동하는 생물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세계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은 도구를 쓰서 이 세계에 작동하는 것으로 세계에 변화를 만들어 내려는 특수한 [세계 내 존재]입니다. 이점이 귀족적인 미술품보담 민중적인 민예쪽이 뛰어 나 있다, 라고 일컫는 소위입니다. 실용에 제공되지 못하는 미술품은 미술품으로서 보통의 삶의 현장에서부터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農具나 일용품의 구색은 실제로 경작이나 어로나 일상생활의 장면에 개재하여 실제의 행위에 쓰이며 세계에 작동하여 인간과 환경을 일체로 하는 세계에 변화를 만들려는 도구입니다. 民具는 어떤 종류의 [도구]로 현실세계에서 用을 다하는, 그럼으로써 감상하기만을 위한 미술 보담 높은 가치를 갖는다, 라고 야나기무네요시는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야나기의 생각은 [실천]이라는 것을 두고 고민했던 마르크스의 생각과 닮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세계에서 일어 나는 것들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던가 해석하면서 만족해 하는 사람들을 경멸하여 현실세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여기서 변화를 불려 일으키려는 실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려 했습니다만 이때의 마르크스가 취했던 사고법이 야나기무네요시의 민예적사고와 매우 닮아 있다,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웃기만 하지 않겠지요. 민구(민예적도구)는 인간과 자연을 통해 그기에 주객일체의 장을 만들어 냅니다만 마르크스의 실천도 주체와 객체의 사이에 통일을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인간은 가지 각색의 수단을 쓰서 객체인 미가공의 자연에 작동하는 실천을 행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설계나 계측에 따라 자연을 가공하려고 합니다만 자연에는 자연의 이법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계획을 유연하게 변경하던가, 실험을 쌓아 올리던가 하면서 유효한 타협점을 찾아 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이 [실천의 장]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통일이 실현됩니다만 이때 인간과 자연 사이에 삽입되는 수단이 도구인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이와 같은 생각은 민예를 [현실의 용에 쓴다]라고 하는 높은 칭찬을 한 야나기무네요시의 사상에도 어떤 종류의 영향을 입혔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야나기의 [용]과 마르크스의 [실천] 사이에 있는 크다란 차이를 우리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의 실천에서는 주체인 인간과 객체인 자연간에 통일을 갖으다 주지만, 자연을 가공하는 과정에서는 단지 분별지만이 작동합니다. 그 결과 자연은 분리된 위에 결합되는 [분리적결합]으로 통일됩니다만 그러나 야나기무네요시의 생각하는 용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연결을 견지하면서 각기 개체성을 유지한다는 무분별에 의한 [결합적분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분별지는 [心에의 用]이 가능합니다. 심의 기저부에서는 무분별지인 무의식이 작동함으로 그기에 무분별지에 의한 작동을 부여하여 미지의 조형을 축출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83 no image [야생의 과학] 27
1487 2015-04-19
3-1 主客未分離의 心的 體制라고 하는 것에서 어떻게 知性의 作動을 인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꽃을 본다]라고 말한다면, 분별지는 알고 있는 것으로, 내가 주체가 되고, 나 밖에 있는 꽃을 객체로 보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외의 의미는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꽃을 우리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마냥 처다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보고 있게 되면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꽃의 모습에 마음이 이끌리던가 그 향기에 매료되던가 합니다만 꽃의 [실존]과 같은 것이 우리들 마음의 내부까지 들어 와서 여기서 꽃은 우리들 마음의 일부가 되어 버리지요. 이때 꽃과 우리들 마음은 서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객체로서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꽃을 본다]라고 하는 사태는 동시에 [꽃이 나를 본다]라고 하는 사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때 꽃과 나와의 사이에는 하나의 [場]이 만들어진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無分別智는 이 [場]이라 불리는 곳 안에서 활동하는 지성입니다. 사물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전체의 상호 엮임속에서 사고한다. 주체와 그 대상이 단정적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一體가 되어 작동하는 것입니다. 분별적인 지성에서 보면 모순투성이고 애매하며 마음 내키는데로 하는 사고와 같이 보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물을 분리한 후에 서로 다시 봉합하여 구성한다는 분별지가 만들어 내는 세계는 현실에서 벗어 나 괴리된 데 비해 사물을 전체속의 상호 이어짐에서 단숨에 인식하는 무분별지 쪽이 현실과 밀착되고 있어 전적으로 自然입니다. 이 자연스려운 지성을 기능이 무심과 무분별지라 불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무분별지의 활동이 동양의 철학이나 종교에서 오래전부터 중시되어 왔습니다. 더 나아 가 살아 가는 방법의 지침을 가르키는 윤리나 가치관의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도 바로 부분별지였던 것입니다. 사물을 계산으로 다루게 되면 긴 안목에서 보면 손헤를 본다, 라고 하는 상인들의 지혜에도 무분별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 있습니다. 장사란 것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주객일체가 되는 [장]적인 활동임으로 어느 한쪽만의 단기적인 이윤을 고려하고 있으면 긴 안목으로 전체적 과정의 장사철학적 입장에서 보면 불균형이 일어나서 지속가능 하지 않게 됩니다, 라고 하는 인식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서민 세계의 지혜로 여러 장면에서 살려저 있는 분별지를 넘은 무분별지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개념에 이르도록 순화시켜 생각하였습니다만 민예라고 하는 것과 만났을 때 이 민예야 말로 그러한 생각을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직관적으로 뀌뚫어 본 것입니다. 머리로 생각해 낸 설계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심.무분별한 心作用으로 부터 자발적으로 만들어저 나온 민예란 존재는 바로 하나의 눈부시게 빛나는 啓示였습니다.
1282 no image [야생의 과학] 26
1360 2015-04-18
3 [민예란 무엇인가] 에서 야나기무네요시는 민예란 것을 다음과 같이 짧은 말로 的確하게 정의해 보이고 있습니다. 민예품은 민간에서 태어나서 주로 민간이 사용하는 것. 따라서 작자는 무명의 職人이며, 작물에도 특별한 제작자의 이름이 색여저 있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수량도 매우 많으며 가격도 싸고 쓰이는 곳은 주로 가족들이 사는 가옥이나 무엌이며 일종의 편의 도구로 불리는 것이 대다수이며 그 모습은 질소 견고하고 모양도 따라서 단순 질박한 것입니다. 만들 때의 직인들의 마음상태도 따라서 無心한 것입니다. 특별히 美意識에서 공구된 것이 아닙니다. 재료도 자연물로 그것도 대부분 토지의 물질을 쓴 것들입니다. 목적도 실용을 위주로 한 것이며 직접 일용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작시의 조직으로는 대개가 조합. 이것이 민예의 세계입니다. 여기에 그려저 있는 민예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앞선 사회에서 널리 행해저 오던 수공업에 의해 만들어진 생활용품을 가르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작조직은 조합, 이라 불린 곳임으로, 중세에 발달했던 직인조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허지만 우리들은 지금 [민예를 초기화하여] [미래의 민예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음으로 훌륭한 민예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환경조건에 대해서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그러한 조건을 포함한 보다 추상적인 [민예를 태어나게 한 공간 혹은 장]의 구조라고 하는 것을, 야나기무네요시의 사상속에서 발견해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점에 대해서, 야나기무네요시 자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민예를 탄생시켜 낸 것, 그것만 있으면 지금도 진정한 민예를 탄생시킬 수 있는 心的構造를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역사적인 외적조건등은 이차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민예란 무엇인가, 무엇이 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가, 그 미는 여하한 미를 나타내고 있는가. 어떤 마음에서 탄생해 나오는가. 왜 범속하다고 부른 것에 미가 들어 있는가. 보통의 물품에 어떻게 해서 미가 있는가, 그러한 미는 여하한 사회가 요구하였던 것인가, 여하한 경제를 보호하는가, 그런 미가 어 떠한 관계를 우리들의 생활속에 견지하게 하는가, 왜 그때는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불가능해 졌는가, 어떻게 하면 미래에서도 가능해 지는가, 이러한 의문에서 크다란 진리의 전망이 우리들 앞에 열리는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에 관해 쓰인 부분을 앞선 문장에서 들어 내면 뒤에 [만들 때 의 마음의 상태도 대단히 무심한 것입니다. 더욱이 미의식에서 공부되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부분이 남게 됩니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실은 종교사상가로서의 야나기무네요시와 민예사상가로서의 야나기무네요시를 일직선으로 이어주는 사상의 선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무심]이라 일컫는 말에 있습니다. 이 말은 단단해 보이지만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無心]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야나기무네요시의 생각을 더 들어 보기로 합니다. “종교의 정수가 복잡한 신학에 있다기 보담 무심한 신앙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信仰史가 종교의 正史입니다……마찬가지로 무심한 민예의 미에 대해 개인의 의식적인 수작은 이차적입니다. 왜냐하면, 무심은 의식 보담 더 깊은 것을 잡아 내기 때문입니다.” [무심]은 원래 불교의 용어로, 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분별적인 구성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心作用을 말하는 것입니다. 직관지라고 불려도 좋고 무분별지라 불려도 좋습니다. 분별지는 목적을 정하고 행위의 수순을 의식적으로 구성하면서 일을 운영하는 것인데, 무심인 무분별지는 자발적인 활동을 행하는 자연스려운 마음의 상태의 작용에서 태어 나오는 心作用입니다. 민예의 제작의 경우를 말해 본다면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의식을 갖으면, 이미 그것은 분별지에 빠져 무심의 자발성을 상실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나기무네요시는 여기서 心作用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으며,그 두가지 심작용의 관련 여하에 따라 좋은 민예와 나쁜 민예의 차이가 생겨 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민예는 자연상태에 놓여 있는 마음에서 자발적=자주적으로 탄생해 나오는 것입니다만 나쁜 민예는 미리 되어진 것으로 승인되어 있는 미의식이나 머리속에 그려진 설계된 의식의 영향을 받은 심작용은 결코 뛰어난 민예를 만들 수가 없고 뛰어난 민예는 무의식 그대로의 자연상태로 놀수 있는 심작용으로부터 태어 나온다, 라고 단언하게 합니다. [무의식]이라는 말을 내가 손쉽게 쓰고 있습니다만, 진짜는 [무분별]이란 불교의 용어를 빌려 쓰는 쪽이 민예제작의 현장에서 일어 나고 있는 깊은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은 주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잘 쓰이는 것으로 매우 서구적인 개념입니다. 서구의 지적인 전통속에서는 무의식은 의식에 대립되는 심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의식의 제어가 미치지 못하는 마음의 심층에서 꿈틀거리는 어두운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낳은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은 하나의 [심]뿐 이며, 이 심의 體制의 차이가 분별과 무분별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심이 대상과 분리되는 체제는 따라서 작동할 때 심은 분별적인 작용을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객미분리의 체제의 토포로지-를 통해 작동하게 되면 심은 무분별이라 불리는 知性作用을 일어킨다, 이것이 동양적 사유방식의 기초를 이루고 부분에 있습니다.
1281 no image [야생의 과학] 25
1441 2015-04-07
3 [민예란 무엇인가] 에서 야나기무네요시는 민예란 것을 다음과 같이 짧은 말로 的確하게 정의해 보이 고 있습니다. 민예품은 민간에서 태어나서 주로 민간이 사용하는 것. 따라서 작자는 무명의 직인이며, 작물에도 특별한 제작자의 이름이 색여저 있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수량도 매우 많으며 가격도 싸고 쓰이는 곳은 주로 가족들이 사는 가옥이나 무엌이며 일종의 편의 도구로 불리는 것이 대다수이며 그 모습은 질소 견고하고 모양도 따라서 단순 질박한 것입니다. 만들 때의 직인들의 마음상태도 따라서 無心한 것입니다. 특별히 미의식에서 공구된 것이 아닙니다. 재료도 자연물로 그것도 대부분 토지의 물질을 쓴것들입니다. 목적도 실용을 위주로 한 것이며 직접 일용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 대부분 입니다. 제작시의 조직으로는 대개가 조합. 이것이 민예의 세계입니다. 여기에 그려저 있는 민예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앞선 사회에서 널리 행해저 오던 수공업에 의해 만들어진 생활용품을 가르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작조직은 조합, 이라 불린 곳임으로, 중세에 발달했던 직인조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허지만 우리들은 지금 [민예를 초기화하여] [미래의 민예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음으로 훌륭한 민예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환경조건에 대해서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그러한 조건을 포함한 보다 추상적인 [민예를 태어나게 한 공간 혹은 장]의 구조라고 하는 것을, 야나기무네요시의 사상속에서 발견해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점에 대해서, 야나기무네요시 자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민예를 탄생시켜 낸 것, 그것만 있으면 지금도 진정한 민예를 탄생시킬 수 있는 심적구조를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역사적인 외적조건등은 이차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민예란 무엇인가, 무엇이 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가, 그 미는 여하한 미를 나타내고 있는가. 어떤 마음에서 탄생해 나오는가. 왜 범속하다고 부른 것에 미가 들어 있는가. 보통의 물품에 어떻게 해서 미가 있는가, 그러한 미는 여하한 사회가 요구하였던 것인가, 여하한 경제를 보호하는가, 그런 미가 어 떠한 관계를 우리들의 생활속에 견지하게 하는가, 왜 그때는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불가능해 졌는가, 어떻게 하면 미래에서도 가능해 지는가, 이러한 의문에서 크다란 진리의 전망이 우리들 앞에 열리는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에 관해 쓰인 부분을 앞선 문장에서 들어 내면 뒤에 [만들 때 의 마음의 상태도 대단히 무심한 것입니다. 더욱이 미의식에서 공부되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부분이 남게 됩니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실은 종교사상가로서의 야나기무네요시와 민예사상가로서의 야나기무네요시를 일직선으로 이어주는 사상의 선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무심]이라 일컫는 말에 있습니다. 이 말은 단단해 보이지만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無心]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야나기무네요시의 생각을 더 들어 보기로 합니다. “종교의 정수가 복잡한 신학에 있다기 보담 무심한 신앙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信仰史가 종교의 正史입니다……마찬가지로 무심한 민예의 미에 대해 개인의 의식적인 수작은 이차적입니다. 왜냐하면, 무심은 의식 보담 더 깊은 것을 잡아 내기 때문입니다.” [무심]은 원래 불교의 용어로, 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분별적인 구성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心作用을 말하는 것입니다. 직관지라고 불려도 좋고 무분별지라 불려도 좋습니다. 분별지는 목적을 정하고 행위의 수순을 의식적으로 구성하면서 일을 운영하는 것인데, 무심인 무분별지는 자발적인 활동을 행하는 자연스려운 마음의 상태의 작용에서 태어 나오는 心作用입니다. 민예의 제작의 경우를 말해 본다면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의식을 갖으면, 이미 그것은 분별지에 빠져 무심의 자발성을 상실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나기무네요시는 여기서 心作用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으며,그 두가지 심작용의 관련 여하에 따라 좋은 민예와 나쁜 민예의 차이가 생겨 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민예는 자연상태에 놓여 있는 마음에서 자발적=자주적으로 탄생해 나오는 것입니다만 나쁜 민예는 미리 되어진 것으로 승인되어 있는 미의식이나 머리속에 그려진 설계된 의식의 영향을 받은 심작용은 결코 뛰어난 민예를 만들 수가 없고 뛰어난 민예는 무의식 그대로의 자연상태로 놀수 있는 심작용으로부터 태어 나온다, 라고 단언하게 합니다. [무의식]이라는 말을 내가 손쉽게 쓰고 있습니다만, 진짜는 [무분별]이란 불교의 용어를 빌려 쓰는 쪽이 민예제작의 현장에서 일어 나고 있는 깊은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은 주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잘 쓰이는 것으로 매우 서구적인 개념입니다. 서구의 지적인 전통속에서는 무의식은 의식에 대립되는 심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의식의 제어가 미치지 못하는 마음의 심층에서 꿈틀거리는 어두운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낳은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은 하나의 [심]뿐 이며, 이 심의 體制의 차이가 분별과 무분별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심이 대상과 분리되는 체제는 따라서 작동할 때 심은 분별적인 작용을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객미분리의 체제의 토포로지-를 통해 작동하게 되면 심은 무분별이라 불리는 知性作用을 일어킨다, 이것이 동양적인 사유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280 no image 落穗
1555 2015-04-04
落穗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4월 3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 A34 [萬物相]에 김태익 논설위원이 쓴 ‘義人 아사카와 다쿠미’를 읽는다. 이를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서울 중량구 망우리 묘지 동락천 약수터 근처에 203363호 무덤이 있다. 망우리에선 드문 일본인 무덤이지만 한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늘 누군가 놓고 간 꽃이 있다. 1931년 4월 2일 무덤 주인이 마흔 나이에 죽었을 때도 추모열이 대단했다. 조문 온 조선일들은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로 상여를 매려 했다. 청량리에서 이문리 언덕으로 가는 길에선 마을 사람들이 노제(路祭)를 지내고 가라고 장례 행렬을 붙잡았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그는 조선을 사랑하다 유언대로 조선 풍습에 따라 안장돼 조선의 흙이 됐다. 형 노리다카와 함께 조선백자와 공예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선 미술품 수집은 어느 일본인의 탐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사카와와 형제는 또 다른 조선미 예찬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손잡고 경북궁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우고 애써 모은 미술품 3000여 점을 아낌없이 기증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총독부 산림과 직원으로 조선에 왔다. 그런데도 그는 산림 수탈보다는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 데 앞장섰다. 지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공림 상당수는 그의 숨결이 닿은 것이다. 그는 한복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돌아 다니고 조선 그릇에 조선 음식을 담아 먹었다. 많지 않은 월급 절반을 조선 사람에게 나눴고, 적지 않은 조선 학생에게 장학금을 쥐 졸업시켰다. 야나기는 “다쿠미만큼 조선 예술을 알고 조선역사에 통달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처럼 조선인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들과 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리고 했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여든네 번쩨 기일(忌日)인 어제 망우리에서예년과 다른 추모 행사가 열렸다. 한국 이수현 의인(義人) 문화재단 설립위원회가주관한 행사에 다쿠미 고향 일본 야마나시현 주민들이 참석해 한. 일 합동 추모식이 됐다. 이번 행사는 이수현재단 설립위원회가 의인의 삶을 발굴해 기리는 사업의 첫 순서였다. 이수현은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고 뛰어 들었다가 숨졌다. 당시 한 일본 평론가는 “스물여섯 살 이수현 청년은 사어가 돼버린 이타적(利他的) 희생을 몸으로 실천해, 옆집에 누가 사는지 흥미도 관심도 없는 슬픈 일본 사회를 반성시켰다”고 했다. 아사카와 다쿠미와 이수현의 의로운 행동은 국경을 넘어 오로지 인간애에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나라 국민 마음속에 있는 인간애의 불씨를 지필 큰 정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요즘 저널리즘에서 아사가와 다쿠미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만물상에 올려진 김태익 논설위원의 글을 오려서 보관하고 있다가 나의 아사카와 다쿠미 발견의 이야기를 적으 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내가 나가자와 신이치씨의 [야생의 과학]을 번역해서 ‘소나무 칼럼’에 올리고 있는데, 2부 六章에 [민예를 초기화한다]란 글과 만나고 있다. 이 글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철학을 소개하고 있어 이 글에서도 야나기 보담 먼저 조선 공예미를 인지하고 이를 야나기에게 소개한 아사카와 다쿠미형제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서책으로 한국에서는 학고재에서 출판한 아사카와 다쿠미저 [조선의 소반.조선도자명고]가 있고, 일본어로 다카사끼 쇼-지高사끼宗司가 저술한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아사카와 다쿠미의 생애] 1998년 (株) 草風館 중보판과 同 한국 번역본 [조선의 흙이 되다-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다카사키 쇼지 지음. 김순회 옮김 2005년 호형출판사 등이 있다. 나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공예미학에 관련된 책들을 접하면서 아사카와 다쿠미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위에 소개한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은 2005년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 “자연에 관한 비전” 에 참가한 일본인 작가 ‘카츠아키 키무라 Katsuaki Kimura’의 작품이 바로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의 산야를 방랑하는 모습을 그려 넣었고, 이점을 들어 내가 키무라 작가에게 보낸 이-메일 서신을 받아 그가 보내준 일어판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이란 인연으로 나의 다쿠미형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주: 카츠아키 키무라. 1950년생. 일본 고베. E-mail:katsu-227.
1279 no image [야생의 과학] 24
1507 2015-04-02
2 야나기.무네요시는 처음부터 민예사상가가 아니였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그는 월리엄.브레이크를 연구하는 종교철학자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크는 常人을 뛰어 넘는 비-전(계시적인 내용을 갖는 환시)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젔던 시인이었습니다만 일생을 인쇠공으로 보낸 직인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職人詩人의 마음에는 인간의 운명이나 생존의 의미 등이 잘 보였습니다. 야나기무네요시는 브레이크 사상의 연구를 통해 한 발자국 씩 민예의 사상에 접근해 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는 [乳兒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중요성을 반복하여 강조했습니다. 작위 없는 자연스려운 마음에서 태어 나는 것이 아니면 표현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여기서 민예의 발견까지는 불과 몇 발 자국 입니다. 오히려 민예쪽이 야나기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야나기무네요시 앞에 어느날 홀연히 그 민예가 출현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조선에 살면서 그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아사가와다구미棧川巧와 그의 형제에 의해 소개되었던 이씨조선의 그릇을 본 야나기무네요시는 아주 강한 충격을 받고 지체하지 않고 그들의 땅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그때 까지 종교의 연구를 통해 얻고 있었던 자신의 사상을 구체로 표현되어 있는 현실의 물건과 대면하여 경악했다고 봅니다. 종교사상의 세계에서 야나기는 어떤 지적인 생각도 없이 [유아와 같은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태어 나오는 사고를 만났던 것이나 자신의 앞에 돌연히 출현한 이씨조선의 거릇들이 그와 전적으로 같은 마음의 작동에서 태어 났던 일용품임을 즉각적으로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일지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현실이나 물로써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사상가로서의 야나기무네요시는 자신의 사상에 구체적.물질적인 표현을 안겨 주는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이후부터가 야나기무네요시의 常人을 넘어선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몰입하는 모습은 미술평론가나 미술애호가가 미술품을 대하는 태도와는 전적으로 그 질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뛰어난 민예품을 보고 수집하고 평가하며 작가를 응호하면서 그것에 관한 글을 쓴다는 활동을 통해 야나기무네요시는 하나의 창조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세계에서 만난 매우 고차원적인 사상과 전적으로 같은 질의 사상이 서민이 만든 생활용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물질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점을 깊이 인식하고 그기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사태를 가능한데로 옳바른 개념으로 표현한다. 야나기무네요시가 몰입했던 일들은 類例없는 독창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작업태도를 보고 있으면 분명하게 [물건을 만들지 않는 예술]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야나기무네요시는 인생의 최종 단계에서 다시 한번 종교의 세계로 돌아 옵니다. 사상을 물질적인 현실을 통해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야나기무네요시가 다시 한번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의 영역에 돌아 와서 그기서 민예나 민예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사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의 패전이 큰 전기가 되었습니다. 昭和二十三年의 일로, 내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富山縣南도市의 淨土眞宗城端別院善德寺의 일실에 자리를 잡은 야나기무네요시는 믿을 수 없는 아주 짧은 기간에 [美의 法門]이란 논문을 씁니다만 이 놀라운 논문에 의해 그는 구체물에 표현된 사상에서 물려 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의 세계로 몰입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세계가 내는 빛속에서 민예의 물질적 현실을 비춘다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야나기무네요시의 관심사가 두 영역을 오가는 모습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두 영역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와 민예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종교사상에서 출발한 야나기는 민예의 세계를 보고, 그 이후에 가서는 다시 종교의 세계로 침잔해 갔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轉向]의 알맹이를 자세히 살펴 보면 실은 전향 같은 것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 집니다. 실제로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처음 브레이크의 연구등을 통해 종교사상의 세계에서 발견한 어떤 특별한 구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추상적인 것이 었으나 우연하게도 그것과 같은 구조가 민예의 세계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살아 있어 더욱이나 그것은 사람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된 야나기는 全身全靈을 다해 民藝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운동에 몰입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만년에 가서 다시 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머리를 내 밀고 나온다고 보이지만 실제 야나기는 같은 본질과 같은 구조를 갖는 단 한가지의 마트릭스(모체) 혹은 場의 둘례를 돌고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민예를 초기화한다]라고 한 우리들의 시도는 야나기가 쓴 어떤 택스트를 대상으로 삼아도 좋아 보입니다. 가령 눈에 뛰게 민예란 말을 하지 안 해도 야나기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민예가 탄생해 나오는 場 그 자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그가 민예사상의 절정에서 보인 昭和初期에 쓴 택스트인 [민예란 무엇인가]를 다시 지퍼 보면 그 안에서 야나기의 사상이 그 둘례를 맴돌았던 하나의 장, 즉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민예공간] 혹은 [민예의 장]을 다시 읽으 보고 그 본질을 그려 내는 시도를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택스트는 그야말로 곧바로 민예가 태어나는 장의 구조 그대로 그려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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