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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no image 순천만 국가정원(2)
1566 2015-09-06
1313 no image 국가정원, 대한민국 1호.....순천, 갯벌로 날아오르다
1708 2015-09-05
국가정원 대한민국 1호, 순천, 갯벌로 날아오르다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2015년9월4일 A14 기사 옮김. 1990년대 초까지 순천만은 서남해안의 흔한 갯벌 중 한 곳이었다. 여기를 배경으로 한 김승옥 소설 ‘霧津紀行’ 의 무진은 안개 낀 나루란 뜻. 갯벌과 안개가 순천만의 전부였다. 잦은 홍수가 문제였다. 여름철 폭우 때면 순천 도심을 관통해 순천만으로 흘려드는 동천이 하구에서 범람했다. 순천만 입구 주변 드넓은 들녘이 물에 잠겼다. 농민들은 “갯벌을 훼손하더라도 하천 정비가 필요하다” 고 외쳤다. 순천시는 1993년부터 홍수 예방을 명분으로 순천만 어귀 쓸모없는 땅으로 겨겨진 갯벌을 퍼내고 바람에 서걱대는 갈대밭을 제거하려 했다. 반발한 지역시민단체는 1996년 형장 조사를 통해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를 세상에 알렸다. 그제야 순천만은 파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순천만정원.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되다. 하구 정비 사태 20여년이 흐른 순천만 초입 대대포구. 이곳에서 상류로 5.8km 떨어져 있는 순천만정원이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으로 거듭난다. 순천만정원은 1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였렸던 곳 111만m2다. 순천시와 산립청은 5일 정원 잔디마당에서 1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순천만 국가정원’선포식을 연다. 시는 국가정원 지정을 기념해 오는 6-11일 입장료를 50% 활인한다. (속)
1312 no image 2015 MOA 국제환경 미술 전시회 참관 수상기 (9)
1567 2015-07-26
가르시아 – 칠레 -섬뜩한 標識(mark) –Blue Circle 스페이스 알 탁구대 위에 섬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가지 각색의 소지품들을 전시했던 칠레의 작가 가르시아(Enrique Munoz Carcia)가 메일을 통해 형도 퇴거민들의 가옥 외벽에 페인트로 칠해 놓은 “푸른 원(Blue Circle)” 사진을 보내 왔다. 이 표지는 행정당국에 의해 형도주민들을 집단적으로 강제 퇴거시키면서 거주지를 매입하고 일방적인 수속절차가 완료된 집 외벽에 보상을 치루었음을 나타내는 표시다. 형도 거주민들의 주택들을 전부 철거시켜야 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집단 강제퇴거를 강행하고 慫慂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표지다. 필자는 전시 기간중 세번이나 마을을 들려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마-크이다. 별일 아닌 형도에서 일어 날 수 있는 많은 사소한 사태들의 하나로 평범한 현상 같지만 수 많은 작가들 중에 오직 가르시아만이 이 표지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이 표지는 나의 형도 프로젝트의 상징적인 마-크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마크를 접하면서 작가 가르시아 가 형도 프로젝트에 접근해 간 마음의 행로를 읽을 수 있었다. 미술작가로서 오브제를 탐색하는 눈이 남다름을 보여준다. 이 표지(mark)는, 다른 어떠한 기호 보담 實際的이며 형도 사태의 현실성과 역사성 내지 생태학적 진실을 상징해 줄수 있는 기호로 보인다. 이 기호는 외부적 힘에 의해 강제로 집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렵게 사용된 일종의 官製 표지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형도 주민들의 슬픈 퇴거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단순하게 법적 수속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기호가 반전되면서 역으로 형도주민 퇴거의 아픔을 사회 역사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이미지로 굳혀준다. 섬 전체에 흐트저 깔려 있는 무수히 많은 잔존물들 중에서 이런 극적인 反轉의 변이를 하나의 단순한 기호에서 발견해 낼 수 있는 작가의 통찰력은 작가의 순수한 인간애와 깊은 예술적 영감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다 더 작가의 폭 넓은 세계관과 깊은 철학적 지성으로 사물을 냉철하게 통찰할 수 있는 비전너리를 읽게 하기도 한다. 작가 가르시아가 메일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이 지역은, 일종의 ‘非場所’(non-place)이다.” 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장소가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닌 ‘비장소’성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이는 아마도 작가가 형도사태를 두고 생각컨데, 법율적인 강요에 의해 이미 퇴거되었지만, 거주했던 주민들의 기본 되는 살림살이가 그대로 남아 있고 사람들의 삶의 체취가 강하게 풍겨저 나오고, 주민들의 마음과 혼령들이 그대로 그곳에 잔존하고 있음으로, 이러한 특이한 공간을 가상한 메타포로 쓴 말은 아닌지. 푸른 원은 가르시아가 잡아 낸 비장소성과 서로 대칭하고 있는 개념이다. 가르시아의 이 ‘푸른 원’은 차기율의 벌밭 ‘방주와 강목사이’의 조개 껍질이나 게껍질 둘례를 흰 원으로 두른 장면과도 비대칭으로 대응 하고 있다. 가르시아의 ‘푸른 원’은 분명 ‘강요’ ‘일방적 지배’ ‘섬뜩한 공포심과 불안’ ‘상실’ ‘단절’등을 연상시켜 주는 것이고, 차기율의 백색 원은 미세한 물질이 예술의 힘으로 새롭게 탄생해 나오는 ‘경이’와 ‘生命力’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와의 대화는 서로가 공유하고 공감하는 일들이 생길 때 마다 다시 이으저 갈 것이다. 필자와 같은 감상자의 입장에 서서 예술을 바라 보는 사람은 서로 마음에 와 닿는 예술가를 찾아 내는 일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들이 예술 이해의 지름길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푸른 원(Blue Circle)
1311 no image "갯벌도 살리고.... "
1531 2015-07-24
갯벌도 살리고 개발도 하는 묘안 찾아야 독자 칼럼 이종구 전 수협중앙회장, 국제협동조합 연맹(CA) 수산위원장 2015.7.24 조선일보 오피니언 필자가 태어난 곳은 경남 진해의 괴정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운천동이다. 잔잔한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는 이 반농반어 어촌마을에 2003년 어느 날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부산 신항 건설을 위해 준설토 매립이 시작된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부산 신항의 깊은 수심을 확보한다며 해저에서 갯벌을 퍼올렸다. 갯벌은 필자 고향 마을 앞바다에 차곡 차곡 쌓였다. 잔잔한 물결이 일던 바다는 어느덧 뭍으로 변해버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2005년쯤 ‘깔따구’라는 작은 모기 비슷한 벌레가 마을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깔따귀는 때거리로 변해 어촌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깔따구는 무더운 여름철이면 더욱 극성을 부려 팔다리를 물어뜯었다. 반팔을 입고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방역차가 준설토매립지 주변을 돌면서 독한 살충제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낮에는 뽀얀 살충제가 마을을 뒤덮었고, 밤에는 새까만 깔따구가 마을을 뒤덮었다. 주민들은 깔따구를 보면서 공포에 떨었다. 고향 마을 사람들은 몇 년간을 깔따구, 살충제와 더불어 지냈다. 몇 년에 걸쳐 살충제를 살포한 결과 깔따구는 조금 잠잠해졌다. 준설토를 매립한 앞바다에는 지금 골프장을 조성 중이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이 마을에서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이 ‘갯벌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갯벌은 인간이 육지에서 흘러보내는 온갖 오물을 걸려주는 역할을 한다. 갯벌에 서식하는 수많은 미생물은 뭍에서 내려오는 오물을 걸러서 바다로 내보낸다. 갯벌이 없었다면 푸른 바다는 이미 오물로 뒤덮였을 것이다. 갯벌이 지구 전체 생태계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밖에 안되지만 생태적 가치는 숲의 10배, 농경지의 100배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갯벌의 연간 경제적 가치가 16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최대 간척사업이라고 했던 새만금은 간척이 끝난 지금 골칫덩어리가 됐다. 처음에는 농지를 조성한다고 했다가 공업용지, 항만, 공항을 만든다고 했다. 지금은 그냥 애꿎은 바다를 메워놓은 땅에 불과하다. 염분으로 인해 제대로 된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그냥 매립지다. 얼마 전 세종연구원이 서울 면적의 5.5배에 달하는 3340km2(약 10억평)의 경기만 갯벌을 매립해 물류와 항만 도시를 조성하자는 보고서를 냈다. 사업명은 거창하게도 ‘廣開土 프로젝트’라고 한다. 역사상 가장 너른 영토를 개척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에서 따온 터라 해양영토는 주변국 못지 않게 광활하다. 그 너른 해양 영토를 흙으로 매운들 얼마나 메울 수 있을까. 또 필자의 고향 마을에서 나타난 ‘갯벌의 복수’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나.
1310 no image 2015 MOA 국제환경미술제 참관 수상 (8)
1379 2015-07-22
도병훈의 -“옛길” 천태만상의 작품의 모양새를 접할때 우리들은 예술이 갖는 무한증여와 비전너리의 재생산성, 내지 그 가능태 그리고 언설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함의(concept)를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수준에 이르러면은 미술뿐만 아니라 인문 일반의 지식과 문화와 문명에 대한 전체상을 헤아릴 정도의 지적 소양이 필요해진다. 이는 미술이 재현예술에서 함의예술(conceptual)로 바뀌면서 일어 나고 있는 현상으로 이번 형도에서 펄쳐진 2015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Cross ^^ Point"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감상함에도 예외가 아니다. 작가들은 서로 다른 국적과 개성을 갖고 있지만, “Cross^^Point”가 제공하는 폭 넓은 Matrix(모태)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란 언어를 가지고 물음을 던지고 서로 소통하면서 답을 얻고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바로 참가 작품의 일회성과 장소 特長性(site specific)등을 감안해 볼 때 이를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기록해 놓는 일이며,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해석해 가게 함으로써 그 속에 潛勢해 있던 무한한 아이디어를 살려 내면서 동 프로젝트의 지속가능한 창조적 役事에 영감을 불려 일으키도록 하는 일이다. 형도는 대한민국의 한 쪽에 붙어 있는 조금만한 섬이지만 ‘형도의 문제’가 던지고 있는 실체는 범지구적인 보편성을 띠우고 있으며 이러한 부정적인 그늘을 걷어 내고 보다 창조적인 비전을 일꾸워 나가는 과제 역시 예술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품감상의 어려움을 작가의 작품 제작의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가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역사에 참여함으로써 보다 더 가깝게 느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도병훈의 “엣길” 제작 참여 이벤트였다. 필자는 도병훈씨의 뻘밭위의 구불 구불한 옛 길을 조성하는데 잔 신부름을 하면서 걷으려 주고 작가가 ‘의도’하는 의미를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병훈씨의 ‘옛길’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석을 글로 쓰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작품제작과정에 외부인의 공감각적 간여가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예술은 작품 자체의 가치 보담 작품이 제작되는 상황, 과정, 헤프닝등등이 무한히 열려 있어 오-직 작가의 작품의도만이 그것도 자그만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偶有性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참여가 순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작가나 간여자 할 것 없이 공히 설레는 느낌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기대치일것이다. 작가의 변 [아래 사진들은 김수철 작가가 찍어서 방금 보내 준 저의 모아 국제전 야외 설치 작업 광경입니다. 그날 매우 무더운 뙤약볕 날씨에 조규현 선생님이 80노구를 이끌고 제 작업을 도와주시는 장면을 사진으로 보니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의 이 보잘 것 없는 작품(?)은 멀리 허리 잘린 형도가 바라보이는 장소에 갈대를 꽂아 2개의 크고 작은 반 원을 만든 것이다. 갈대는 지표면에 초반부는 넓게, 중간부분은 좁게 규칙적인 간격으로 꽂았으며 가운데 부분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을 남겨 위에서 보면 2개의 반 원이 인접해 있는 형국이다. 분리와 통합의 장소를 표시하면서도 갈대로 길 안내선을 만든 것이다. 이는 옛 지도에 나와 있는 땅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마을 이장님이 증언한 ‘내가 찾던 옛길’이기도 하다. 갈대의 간격을 다르게 하거나 반원을 인접하개 해서 만든 길은 심리적으로는 가보고 싶은 길을 만들기 위한 설치이기도 하다. 형도가 보이는 장소에서 짧지만 긴 곡선의 길을 따라 걸음으로써 경험을 확장하고자 했다. 사진상으로 보면 길은 형도를 향한 듯 하지만 실은 섬처럼 존재하는 풀들이 모여 더미를 이루는 곳이 종착점이다. 이곳까지 시간을 두고 새로운 지평이 전개되는 체험의 장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직선 길이 아니었던 옛 마을 입구라든가, 통도사나 해인사, 소쇄원 같은 원림의 휘어진 진입로 동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지만 또한 후배 작가들과도 대화하면서 구체화되었다. 다 해놓고 보니 좀 더 시간을 두고 볼품 있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2015년 7월 19일 오후 12:14, 도병훈 <bd5964@hanmail.net>님이 작성: *참조: 사정으로 사진게재가 생략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참여 작가의 작품이 고루게 사진에 잡혀 있는 자료가 나오게 되면 그때 다시 추가해 보겠습니다.
1309 no image 2015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7)
1373 2015-07-20
김도희의 -야생적 절규 이번 2015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에 참가한 작가중에 가장 이색적인 작가라 불릴 만한 분은 김도희다. 김도희는 근래 발표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봄 (eyeappealing)’을 위주로 하는 전래의 미술 매채(media)에서 한발 더 나아가 “냄새(smelling)” “소리(sound)”등을 주 매채로 씀으로써 눈과 봄이 지배적으로 구조화되 있는 시각예술영역에 지독한 샘새나 괴기스러운 소리등을 동등한 자리 혹은 주도적 자리에 앉혀 놓는다. “나는 보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는다” “나는 보는 것 과 동시에 소리를 듣는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자신의 몸도 실오라르기 한올도 걸치지 않는 전라의 몸으로 야외의 바위나 모래위에 눕는 퍼포멍스를 예사로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매디어 향수의 진수나 절대치, 즉 원초적 상태를 맛 보기 위한 대담한 缺略을 담고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제대로 듣기 위해 눈을 맹목으로 만든다’ 일보 직전의 결의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은 형도 바위산 아래자락에 굴려 내려온 거대한 바위 위에 全裸로 반듯하게 누워서 하늘을 향해 자신이 지를 수 있는 최대의 절규 소리를 반복적으로 질려 되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찍은 비디오로 볼 수 있는데, 조금도 현장의 처절함이 줄어들지 않고 보고 듣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판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The Scream, Cry]를 떠 올려 본다. 인간의 슬픔을 하나는 시각적으로 표현해 냈고, 다른 하나는 시각과 소리를 합성하여 함께 듣게 하는 작품이다. 분명한것은 이 절규가 형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哀傷을 대상으로 하기 보담, 무언의 바위들의 처참한 파괴의 아픔을 강하게 떠 올려 준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연을 향해 저질은 무절제한 파괴는 자연이 인간의 언어를 낼 수 없는 만큼 더 처절하고 아픈것이다, 라는 점을 일께워준다. 그럼으로써 김도희의 절규는 자연을 대신하여, 아픔을 치유해 주려는 인간의 마음의 아픔을 매우 야생적(자연의)인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도 할 수 있다.
1308 no image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6)
1342 2015-07-18
김수철의 속 깊은 멧시지 -그노시스적 사유로 만들어진 [되지 갈비뼈 사슬] 멀리 형도가 보이는 야트막한 동산에 오른다. 한 여름의 숲은 깊고 어둡다. 남북이 각박했을 때 파 놓은 방커가 이곳 저곳에 파져 있다. 그 중 한곳에 이른다. 벙커 안은 사람의 얼굴을 판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그중 하나의 벙커 안 쫍은 공간에 무슨 구슬을 엮어 놓은 듯한 줄이 가로 질려 있다. 작가 김수철의 설명에 의하면 “되지 갈비뼈를 이어서 만든 줄입니다.” 이건 왼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무리 현대예술이 전위적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부딛치는 ‘작품’은 참으로 당혹스렵기 짝이 없다. 작품을 두고 작가와 느긋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를 바랬던 방문객들은 스스로 물려선다. “되지 갈비 뼈…”란 몇마디 말을 되색이면서. 돌아 와서 필자는 작가에게 직접 물어 볼 그런 성질의 작위가 아니란 것을 짐작하고(깊은 신심과 이어저있는 예술작품은 필히 난해할 것이다, 란 판단으로) 그”되지 갈비뼈”는 한참 잊고 지났다. ‘속수 무책’, 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르다 아주 우연하게 나는 그 “갈비뼈”란 말에 목에 가시 걸리듯 의식이 멈추면서 어떤 기억을 떠 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김수철이 이전에 ‘그노시스(Gnosis)’에 심취해 있었던 일을 떠 올린 것이다. 그노시스란 헬레니즘시대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사상이 융합(유대교, 동방종교, 기독교, 점성학, 그리스.이집트사상등)된 것을 믿었던 종파로 지식과 이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믿음의 바탕에 깔고 있었던 신앙체계로 오늘날의 세계적 추세로 압도적으로 번지고 있는 정신적 흐름과 친근한 것이었다. 작가는 이 그노시스적 사유를 예술 작품화함으로써, 정통 기독교의 절대주의적 카리스마를 무화시키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김수철의 [되지 갈비뼈]가 발신하는 멧시지는, 설치작품이란 것이 마냥 쉽게 와 닿는 그런 류의 수준이 아니라, 매우 정교하고 심오한 역사 철학과 여기서 파생 해 나오는 미학적 사실과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1307 no image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수상기(5)
1377 2015-07-17
주민들의 哀傷이 묻으 나오는 풍금(organ)소리 -작가 이영길의 야외 설치, “풍금과 게" 작가 이영길은 초창기 형도 교회가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기전에 쓰던 풍금을 찾아 내어 이곳 뻘밭위에 설치해 놓고 건반위에 죽은 게의 껍질들을 뿌려 놓은 설치물을 보여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주 큼직한 스피커가 모래 밭위에 놓여 있다. (이 스피카는 명칠후 사라지는(도덕 맞는) 수난을 당한다) 예배에 담겨저 있는 주민들의 순박한 마음과 애완이 묻혀 있는 풍금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온다. 안정에 대한 기원이 담겨저 있는 풍금과 건반위로 허트저 놓여 있는 겟벌의 왕초 역할을 하던 게의 시체 무덕이. 이들 잔존물들은 평화로웠던 형도의 한때를 그리워하는 작가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잃어 버린 주민들의 哀傷과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가 묻으 있다. 한국은 동양에서도 보기 드물게 기독교를 일찍 받아 드렸다. 가장 동양적인 덕목으로 유교를 숭상하던 아침 조용한 나라가 갑작이 서양의 異敎를 쉽게 받아 들인 배경은 역시 수난의 역사를 뻬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불교나 유교가 그 진맥이 빠져 민생을 구원할 수 없을 때 배달민족은 만민 보편의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쪽을 향해 그 문을 두들인다. 기독교의 사랑은, 배달민족의 심성속에 잠자고 있던 근원적인 슬픔을 달래 주는 힘이 있었다.
1306 no image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수상기(4)
1248 2015-07-17
호주작가 수쟌 바토스가 숨겨 놓은 秘儀. 태레파시로 찾아 내다. ‘쫍은 문으로 들어 가라’ 그러면 너희는 구석기시대의 컴컴한 동굴로 인도될 것이니. 그곳이 바로 인류가 탄생하고 동시에 ‘예술’이 빚으젔던 성소이니…. . 6월 27일. 수원문화재단 전시실. 전통 한국의 소반 위에 서양의 포도주병이 네개 나란히 놓여 있다. 작품명이나 작가명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관객을 우롱하는 제스추어인가. 그래서 필자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하고 이 앞을 몇번이나 그냥 지나다니기만 했었다. 참으로 예술이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탄식과 함께… . 그러다 아주 우연히 어떤 테레파시가 왔다. 포도주 병 한 개를 집으 올려서 그기에 배꼭히 적힌 글씨들을 읽으 본다. 그 글이 끝나는 맨 마지막 대목에 ‘주조 기원전 8000년’ 이라 적혀 있는 글자를 발견한다. 작가는 이 인쇄된 문자를 통해 만년전 인류가 처음으로 라스코 동굴의 무수한 암벽위에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자신들이 ‘신인류’로 탄생해 나온 사실을 證左하는 사건을 떠 올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 드린다면, 이 포도주병은 일만년전에 주조된 것이다. 그 순간 필자의 마음은 신선한 감동으로 가득 찬다. 호지 여사의 “오래된 미래”의 스케일을 능가하는 초시간의 마술을 부려 놓은 수쟌 파토스 여사의 단순하면서도 속 깊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이다. 아주 평범한 흔해빠진 물건들을 바닥에 놓아 두고 작가가 부려 놓은 조금만한 윗(wit)가 이렇게 큰 감동을 안겨주는 예술 작품이 되다니…. . 아직도 이 세상에는 진실로 그 본질에 가 닿는 純全한 예술적 감성을 지니고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오랫동안 미술감상을 취미로 삼아 방황해 오는 필자에게 주는 예술의 신의 무한증여가 아닌가, 하고 즐거운 공상을 해 본다. (계속)
1305 no image MOA 뫼홀 국제 환경미술제 참관 수상기(3)
1405 2015-07-16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隨想기(3) “피아노 조율” –이안 죠이스 형도 프로젝트 탑사 이튼날, 한 외국 작가가(이안 죠이스, 아이스란드) 형도 교회 안에 비치되 있는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었다. 마침 교회를 둘려 보고 있었던 지라 나는 무심코 별 관심을 갖지 않고 뻘밭에서 건진 해체된 船體를 교회안으로 지입해 온 박근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분명 그 작가의 행위는 피아노 안팎을 살펴 보면서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매우 빠르게 이곳 저곳을 건드리면서 소리를 내고 있는지라 오래된 교회 피아노를 청소나 하고 가볍게 손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무심히 넘어 가고 있는데, 이분의 조율행위가 점점 탄력을 받고, 행위의 과장성이 돋보이기 시작하고 피아노 소리가 두서없이 점점 크지면서 조율을 하는 행위에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 분이 ‘조율이란 퍼포멍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작가는 건반의 두껑을 덮는 것으로 아무도 손뼉을 쳐 주지 않는 멋진 퍼포밍을 끝냈는데, 나는 이 행위가 퍼포멍스란 사실을 확인한 그 순간 내 몸과 마음에 짜릿한 통쾨감이 밀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의도된 트맄(trick)으로 보는 사람의 의표를 찌르고 상식의 극적인 반전을 유발하여 實際와 假想의 辨別을 극화시킨 퍼포밍은, 퍼포멍스가 ‘예술’이 되게 하는 결정적인 조건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챨리 챠프린의 희극 영화 대부분이 행동의 反轉, 스토리의 반전으로 이루어진 것만 보드래도 그렇고 교회안 피아노를 가지고 멋진 조율 퍼포밍을 보여준 이 작가의 ‘작품-“피아노 조율” 역시 윗(wit) 넘치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으로, 아주 통쾌한 반전으로 연극적 무언의 퍼모멍스를 성사시킨 재주가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스릴 넘치는 반전극(퍼포밍 예술)은 작가가 처음부터 이를 교묘하게 위장(감춤)하고 있다는 점과 관객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를 눈치체면서 일종의 경이감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로 압축할 수 있다. 이안 죠이스는 아직도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행위의 수행 과정’(퍼포멍스)을 통해 사소하지만 진정성 넘치는 “예술”적 감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역량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계속)
1304 no image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수상기(2)
1441 2015-07-14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隨想기(2) –김성배의 ‘선으로부터…. .’ 天空을 가로지르는 Cross Point의 視座를 통해 형도를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부감을 가능하게 한 설치물. 작가 김성배가 몇날을 두고 고심초사한 작업을 통해 설치한 일종의 物化(線으로부터…)된 天空藝術로 부를 수 있는 작품으로써 동 행사의 키-워드인 Cross-point의 상징성을 무난히 표상해 낸 작품이다. 線이란 畵材(매체)가 공간적이라면, 이 선에서 형도 일대의 풍경을 조감하는 시좌를 얻을 수 있는 점(cross-point)은 時間帶를 나타낸다. Cross-over에서 Cross-pooint로 변환된 이 작가의 使役은 점이 갖는 성질로 하여 노마디즘과 정주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초시공적 비전너리(Visionary)들과 만나고 이들을 위로 해 줄 수 있는 靈驗 혹은 카리스마를 품는다. 작가의 마음의 비애를 대변하고 있는 녹색 테이프가 받아 내는 영상기록은, 억울하게 죽은 형도 상공을 아직도 떠 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인간과 뭇 자연물들의 怨魂들도 잡아 낸다. 멀리 형도가 바라다 보이는 진입로에서 장장 5km의 공간을 가로 질려 달려 와서, 처참하게 파괴되 있는 바위산 정상에서 ‘천상의 아리아’주-1를 듣고 종지부를 찍는다. 주-1: 구스탑 말러의 교향곡 4번 종장에 연주되는 아리아. 모-든 수난의 질곡을 이겨낸 자를 위한 진혼곡의 절정을 노래하는 부분. - 청소하는 작가, 기다자와 가즈노리(北澤一伯) 崇高와 시물르쿠르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 보여주는 일본 작가 기다자와. 凡俗에서 聖所를 밝혀 내며…기도하는 마음으로 집을 깨끗이 청소한다. ‘예술은 성스려운 믿음이다. 성스려운 터에는 티끌 하나 남겨서는 안된다.’ 이 못또가 일본인의 일반적인 기질을 나타내는 키-워드이다. 이 덕목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으며, 남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칼날 같이 예리하고 철저하다. 티베트에는 오체투지가 있지만 일본에는 ‘청결의 神’이 있다라고나 할까. 일본에는 절이 많치만 교회가 없고 한국은 도심지에서 절을 보기 힘든 반면 교회가 너무 많다. 절은 티끌 하나 없어야 하며 마음을 먼저 비우게 하는 반면 한국은 십자가를 먼저 만나게 되고 좀 추상적이지만 사랑을 가르켜준다. 이는 만인 공동의 숭상대상 기호인 십자가로 나타나고 있다. 마음을 비우는 일이나, 타자를 사랑하는 일이나 모두 지난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 기다자와는 이러한 믿음을 아주 쉬운 ‘청소’를 작품화하면서 보여주고 있다.(계속)
1303 no image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隨想記(1)
1281 2015-07-14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 참관 隨想기(1) MOA 매홀국제환경미술제가 7월 11일 평가단의 참관을 끝으로 공식적인 행사를 끝냈다. 6월 20일 예술공간 ‘봄’에서의 9명, 해움미술관에서의 16명, 스페이스 까마귀의 9명의 작가, 6월27일-7월5일 수원문화재단 전시실의 21명의 외국인작가의 실내 전시, 한국작가 20명 외국인 작가 16명이 참가한 야외설치전, 김석환 심홍재와 외국인 퍼포머 3명이 실행한 개막식을 위한 퍼포먼스등이 포함되고, 6월27일 수원문화재단 영상실에서 사회 이영길 발제 도병훈 패널 김찬동 박병옥 김이선 마드다 구를리가 참석한 컨퍼런스가 대 단원의 마무리 행사로 실행되었다. 이러한 거대 행사가 예술의 이름으로 치루어질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한국적 취향의 문화 이벤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동 행사는, MOA Creative Networks가 조직하여 내 걸고 있는 켓치 프레이즈 “교점 Cross Point” - ‘都市(매홀)+환경+예술’로 융합된 행사로, 형도를 중심으로 이 일대의 파괴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아픈 대지가 품고 있는 심원한 기억을 되살려 보려는 애절한 바램이 그 저변에 깔려 있고, 그 위로 위대한 자연의 힘과 인간의 평화에 대한 기도가 ‘예술’을 통해 서로 만나서 이를 갱생해 나오도록 기원하는 Requiem(鎭魂歌)으로 울려 퍼진다. 따라서 동 행사에 참가한 모든 예술가들이 일관되게 만나게 되는 세계는 ‘크로스 포인트’에서 다시 원심적으로 확산해 나가는 ‘크로스 오-바’와 ‘매트릭스’적 조형 사유와 대면하는 장이 될 것이다. 필자도 자유기고가의 입장으로 참관하였음으로 작품 감상 총 4일간(수원시내 1일 형도 현장 3일)의 투자를 통해 만났던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등에 영향을 받고 또 힘을 얻으면서 어떠한 선입견도 배제한체 ‘마음을 텅 비우고’ 동 행사를 참관하였다. 그때 그때의 사정에 의해 미처 감상의 대상에서 빠진 작품이나 행사가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새로운 방법으로 復碁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행사 참관기를 필자가 마음끝 상상력이 가 닿는데로 느낀 것을 받아 쓰는 형식으로 ‘수상’으로 표기하였다. 이번 행사의 장소적 특성으로 필자도 처음으로 이렇게 넓은 지역에 걸쳐 흐트저 자유스렵게 설치된 작품들을 보는것도 처음인지라 설치 작품 감상의 방법을 조금 새롭게 바뀌 (1) 한 특정한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에 참여하여 이를 도와주면서 자신도 작품 제작의 입장에 서 본다. (2)그런 화중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개진하면서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외재적 간여 자체도 작품의 됨됨에 포함시킨다(고로 제3자의 개입도 전적으로 작품의 구성이 되거나 작품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야외 설치 작품이 대부분 작가명이나 작품의 주제 같은 사항을 생략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근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종래의 야외 설치에 수반하는 ‘장소특장적 작품 제작방식’에서 다시 진 일보하여, ‘작품 제작 상황 특장적 제작 방식’으로 (3) 보다 확대된 작품 제작의 범주로 인해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려는 감상자의 작품 감상의 즐거움이 크지고 작품에 대한 동조 내지 비평의 자율적이며 무의식적인 흐름이 조성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우의 한 사례로 필자가 도병훈씨의 뻘밭위의 갈대 나무 길 제작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경우를 들 수 있다. (4) 전혀 뜻밖의 새로운 감상법 발견은 외국 작가들이 차기율의 뻘밭위의 “방주와 강목 사이”앞에 서서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는 장합을 만나 필자가 영어로 작품을 일방적으로 해석을 해 준 해프닝에서 일어 났다. 차기율의 미학의 기본을 조금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매우 당돌한 짓이 였지만 이 처사의 결론은 작가의 추인을 받으면서 무사히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감상하는 입장에서 돌변하여 작가를 대신하여 작품을 해설하는 입장에 선다는 것은 그것도 당당한 수준의 외국 작가들을 앞에 세워두고 아무런 준비 없이 작품 설명을 한다는 짓은 매우 당돌하고 위험한 짓이 아니겠는가. 허나 뒤에 와서 꼼꼼히 생각해 보건되 이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한 방편으로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게 한다. 그때 그 장면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이렇다, 즉 차기율의 작품에 뻘밭에서 발견한 여러가지 물건들을 자신의 場인 綱目칸 안에 자리를 잡아 준 후, 놓여 있는 그대로 하나 하나 흰 색칠로 둔근 마킹을 해 놓은 것을 물어 보는 외국 작가에게 내가 서툰 영어로 풀이 해 준 대목을 옮겨 보면 이렇다. You see those materials, cram, crab, shrimp shells and other wooden and iron fragments were abandoned until artist found them and marked by white enclosed lines. It implies that the articles are abandoned but reappeared as lives by artist gives them marking. And all new boned creatures are well addressed at his own positions by sectioned line. Artist whispered that is “Art”. Etc. 둘레에 흰 마킹을 한 미물들은 죽은지 이미 오래된 게나 조개 껍질이거나 버려진 쇠부치 돌맹등인데 이를 발견한 작가가 놓여저 있는 그대로 그 물건의 둘례에 흰 마킹을 하는 순간 다시 “예술”로 탄생해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가로 새로 반듯한 방안의 구획안에 자기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이 우주공간속에서 자신의 거주지 즉 집을 만들어 준 격이 된다. 개물(실존적 존재)과 전체(강과 뻘밭 그리고 이어지는 大海)가 메트릭스(matrix)상에서 동시에 잡힌다는 함의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5) 야외 설치 작품은 관객끼리 서로 작품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는 점과 이 점이 바로 작품 자체의 범주에 들어 간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이 나(誕生) 놓은 작품이 어떻게 새로 해석되어 가는가에 대해 속수무책이며 바라건데 이러한 제3자의 감상들을 가능한 많이 청취하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라고 하는 것. 오늘날의 예술작품은 감상자에 의해 끝임없이 새로 보완되 간다는 것의 발견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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