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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no image [아리랑] - 3
1623 2016-08-17
이 여행은 나의 생애의 전환점이었다. 그 이후로는 이제 [자신만을 위한 일]은 불가능했었다. 처음 생각했던 되로 문학을 하면서 GAN(미국소설대상)을 노리는 일은 멀리 가고,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의 위업의 기록자,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 사회개량을 지향하는 잡무계가 되어 버렸다. 데이빗은 나의 여행준비를 도와 주며 서안까지의 기차여행에 동행 해 주었다. 물론 서로 모른체 하고 지냈지만 그는 화북대표로써 회의에 가는 중이었다. 西安에서는 첸한포(陳翰伯)의 방문을 받았다.(12월9일전후의우리들의 동료였던 그와 張兆麐과는 장개석을 납치했던 西安事件을 일어키기 위해 1936년 연안에 와 있었다.) 나를 연안으로 데리고 가 줄 진한백이 아침 일직 왔을 때 나는 우중에 창고속 산더미와 같이 쌓여 있는 옥수수 자루속에 숨어 있었다. 밤새도록 나를 수색하던 경찰의 분대장이 한발 늦게 도착했으며, 일곱명의 밀정과 호위들에게 나를 감시하는 의무를 맡게 했다. 진은 무엇보담 깜작같이 탈출하여 연안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처지라, 나 역시 진 이외 연안행을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여하한 저널리스트도 홍구에 들려 놓아서는 안된다 라고 하는 군령이 남경의 장개석정부로 부터 내려저 있었다. 중국법이 아닌 미국법에 의한 치외법권하에 있는 나이지만 이 군령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다. 가장 못마땅한 것은, 스노-라고 하는 이름이 서안에서는 저주받는 이름이 되 있었다는 것이다. 에드가 1936년에 홍구에 잠입하여, 그 당시의 인터뷰를 출판했던 것이 장개석정부를 격노케 하였단 것이다. 나 자신 그 전년에 서안에 가서 생애최고의 특종기사를 터트렸던 일로 인하여 그 보복을 피할 길이 없었다 – 서안에서 나를 에스콧해 준 장조린이 청년원수 장학량에 데리고 가서 그와의 인터뷰-시 원수는 내전을 정지하고 홍군과 협력하여 일본과 싸울것이라고 성명을 냈던 것이다. 그는 국민당 군관으로써 장개석 다음의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런던.데일리.헤랄드](에드가 부재일때는 내가 통신을 맡고 있었다.)지에 실렸던 나의 기사는 세계각지의 영사관을 흔들었고 중국국내에서는 [서안사건]의 촉발을 재촉했다.(사건은 불과 2개월후에 일어 났다). 이런 일들로 인해 서안에서 나는 에드가.스노의 처로써 뿐 아니고 나 자신 저널리스트로써 잘 알려저 있었고, 기피 인물로 간주되고 있었다. 1937년의 재방 때에는, 쳥년원수(이때는 잡혀 있는 몸이었다)의 우호적 군대는 서안으로부터 옮겨저 있었고, 전년의 우리들의 기사로 인해 체면을 꾸긴 앙가픔에 불타고 있던 장개석의 파시트트 집단이 돌아 와 있었다. 에드가 만일 서안에 나타난다면 생명이 위태로울 거란 말을 듣고, 무서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역시 결의는 바뀌지 않했다. 그렇다 하드래도 이 두사람의 젊은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결국 서안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계획에는 불찬성이면서도 외국인 특권으로 어떻게 될듯도 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에휘이.힐, 스웨덴인선교사의 아들이며 기계기사-그가 장관의 차를 마련해 준 득택으로 나는 군사방위전선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켄프튼.휫찌, 아버지인 죠-지는 YMCA의 총간사를 하고 있었다. (켐프턴은 지금도 아세아에서 미국정부의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몇 년 동안 그의 이름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일을 대단한 일로 간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三原까지 나와 동행하고, 무사히 떠나는 것을 지켜 봐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여행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개엄령하에 나를 지켜 보고 있었던 자들의 눈을 속여 서안영빈관의 裏窓을 넘어 도망할 수 있었던 일 뿐이다. 돌아올 때 필름이나 노-트를 몰수당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연안에서는 4개월을 보냈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毛澤東과 朱德將軍의 공식방문을 받았다.(모가 그렇게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1349 no image [아리랑] -2
1878 2016-08-17
택스트: [아리랑의 노래] – 일본 이와나미(岩波) 문고판 (청 443-1) 제2판 서문(저자의 한 사람인 님 웨일즈가 쓴 책 서문. 님웨일즈가 쓴 이 서문은, 김산의 일대기로 남겨 놓은 [아리랑]의 일본판 서문으로, 김산이 활동했던 시기의 중국공산당 투쟁사의 전모를 객관적으로 요약해 놓은 부분이다.) ([아리랑]의 본문은 영문으로 먼저 출판되었지만, 그 내용은 영.일.한구판 공히 같은것이다). 序文 1934년, 남편 에드가 스노(Edgar Snow)와 나는 북경에서 5말일 정도 떨어진 海啶(하이라이엔)이란 마을의, 미국기금에 의해 세워진 燕京大學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우리들은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 였고 이곳은 淸朝의 官話가 아직 통용되고 있던 지역이라 안성 맞춤의 이상적인 곳이 였다. (내가 왜 官話를 배우려고 했었는지는 알숭달숭 하지만). 중국어와 중국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에드는 작품집 [살아 있는 중국(Living China)- New York: The John Day Company,1936]에 실얼 요령으로 중국의 단편소설을 번역, 편집하고 있었고, 나도 여기에 게재할 [현대중국의 문학운동]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에드는 新聞學科로부터 강의 의뢰를 받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영어로 하는 강좌이면 무엇이던지 출강하고 있었다. 중국어로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금도 북경정부에 재직하고 있는 그 유명한 張東孫과 더불어, 헤-겔(나는 물론 영문 택스트를 사용하지만)을 청강하고 있었다. 불교. 도교. 유교에 관해서라면 중국에서는 단연 일류의 학자이던 許地山의 지도를 받았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청화대학에서 馬友蘭의 중국철학사강의도 듣곤 했다. 중국미술의 특강을 받고, 중국경제사, 서양철학사도 배웠다. 당시 연경대학에서는 서양인 여덟명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 다-크.폿드도 미국의 중요한 중국학자로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펜실바니아대학에서 가르켰다. 해정(하이라이엔)에 있었던 때, 펄.버크(Perl S. Buck- [The Good Earth(大地)의 저자]와 리처드.윌슨이 와서 우리들과 함께 지냈으며, 우리들은 서로 찬구가 되었다. 펄.버크는 아름다운 녹색의 눈동자와 옆으로 일자로 쪼개진듯한 입술을 한 표정이 풍부한 얼굴로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였었다. 그 이후 나는 윌슨이 편집하고 있었던 잡지 [아세아 Asia]에 정기적으로 글을 실기도 하였다. 내가 쓰고 있었던, 님.웨일즈라고 하는 필명은 에드가 만들어 준 것으로, ‘님’은 희랍어로 [이름]이란 뜻이고, ‘웨일즈’는 나의 혈통에서 얼마간의 웨일즈계통이 있었기 때문 따온 것이었다. 이 필명은 나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필요했던 가명이었다. 연경대학 학생들은 처음에는 내가 저자인줄을 모르고 나의 시 [오래된 북경]을 게시판에 부쳐 놓기도 했다. 그 글은, 우리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것 – 죽음과 같은 나날, 질식상태, 기적의 12월 9일의 질풍속에서 만들어 진 죽음과 같은 고요한 분위기와 꼭 맞아 떨어 젔었다. 북경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구에 치아 챤’ 13변지의 귀신이 나올법한 집을 반 쪽을 빌려 그 문쪽의 옆방에서 에드가.스노와 같이 1936년부터 37년에 걸쳐 [중국의 붉은 별] Red Star Over China을 쓰고 있었다. 학생들은 쫓겨 다녔으며, 믿을 곳을 잃어 버리고 절망적이 되어 아연하였다. 13변지의 이 집은 12월9일의 학생운동의 온상이 되었고 이어 백색 태로가 일어 나기 시작했다. 1935년의 말, 중국은 파시즘의 절정기에 놓였었다. 白區 안의 공산당관계기관은 모두 괴멸되고, 북경에 살고 있었던 자들은 투옥되던가 처형되었으며 아니면 보신을 위해 파시스트측에 붙어야 했었다. 데모는 비합법화되고 학생들은 본보기의 처형만 기다리고 있었다. 북경을 포함한 화북의 일본 점령이 확실시 되면서 항일운동은 비합법화 되었다. 그러나 연경대학은 선교사의 관리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만은 학생들은 얼마간의 비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12월 9일의 학생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중국의 지식인은 대량으로 좌익에 기울어 젔고 파시트들 까지도 좌로 기울어 지고 있었다. 들불과 같이 그 勢는 중국전토로 퍼저 갔으며, 內戰停止와 항일통일전선을 요구하였고, 일본에 대해 처음으로 저항을 표명하였다. 이야말로 중국현대사상의 대사건이었다. 12월 9일의 운동은 연경대학의 3학년이 불을 댕겼다. 張조린-학생회의 위원장, 장화-경제학전공으로 1936년에는 에드가.스노의 통역으로써 서북에 동행하였다(197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국련대사가 되어 있었다). 진한백-신문학과의 학생, 후에 상무인서관의 편집자로써 중국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1938년 이래 1970년 죽을 때 까지 周恩來의 비서를 했던 단팽(中國國聯首席代表 치안당호아의 부인)은 12월 9일의 히로인 였고, 원 YWCA의 학생부주임간사로 지금은 외무성에 근무하고 있는 여동생의 균뷰션은 12월9일의 여성3 리-다의 한 사람, 남은 두사람은 리민(지금은 북경에 있다고 황화가 알여 주었다)과 중국에 다년간 YWCA의 노공부 주임간사를 역임한 후 뉴-요크에서 Y.Y.스웨이와 결혼한 장슈위(張淑義)이다. 이와 같이, 1930년대 우리들의 친구였던 연경, 청화의 학생들은, 오늘날 주은래의 영향하의 일파에 가담하여 米中間의 화해를 기약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1935년에 생명이 위태로웠던 학생들이 백색테로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서 외국의 비호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적적으로 에드가. 스노가 닉슨대통령의 방중에 모택동의 동의를 얻어 냈던 것이 같은 12월9일의 일이다. 이 일들은 金山을 떠 올리게 한다. 당시 나는 몰랐지만 마침 그때 그는 북경 및 그 인근뿐만 아니라 다름 아닌 여기 해정에 잠입해 있었던 것이다. [백색 테로]가 최악상태였던 기간중 그는 중국의 시민권을 얻어 북경에서 중국공산당의 서기를 하고 있었으며, 그는 살아 남았으나 당조직은 완전히 화해되었다. 1935년의 봄까지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옥외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북경에는 당과 조직과 연락이 닿아 있는 공산주의자는 이미 없었다고 본다. 우리들과 낮을 익힌 좌익예술가들은 지하에 숨던가 구라파쪽으로 도망가는 길 밖에 없었다. 암울한 시대였다. 힛트라와 뭇소리니가 대두하고, 장개석의 반공전선에는 나-찌의 군사고문이 있었다. 일본은 화북을 완전히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인간의 고귀함과 저열함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던 시대였다. 이때 인간성의 최고의 승리를 보여주었던 인물의 한명이, 공산당원의 黃敬(호앙찐)이었다. 본명은 兪개위(유이쮸웨이), 12월9일의 데모가 있었던 직후 黃華(호왕호와)가 집에 데리고 왔었다. 그때부터 불과 23세의 몸으로 그는 학생들의 마음이 되고 두뇌가 되었다. 산동에서 잡혀 사형이 될 장합에, 장개석과 친하고 장군의 고관이 었던 伯父 兪大維(유이다이웨이)의 힘으로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 그가 역사사에 보여주었던 역할은, 젊은 여우 江靑(치앙첸)을 이끌어 주며 山東에서 공산당활동에 참가 시킨 점이다. 더욱이 1938년, 황경은 그녀를 연안에 동행하여, 얼마후 그녀는 모택동과 결혼하게 된다. 1966년, 강청은 현대중국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이었다. 한편 황경은 젊은 시절의 지하활동의 무리가 원인으로 1950년대 죽을 때 까지 북경의 제일기계공업부의 부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것은 1937년 초의 일이였다. 우리들이 데이빗라 부르던 친, 황경이 정보를 주었었다. 5월 1일에 군부와 정치방면의 사람들을 뫃아서 연안에서 공산당대회가 개최되는, 이런 회합은 처음 있는 일이, 라고. 그때 우리들의 문필생활은 최고조로, 손을 놓을 틈이 없었다. 그 해 초기에, 선교사의 J. S. 켄너드씨의 방문을 받았다. 씨는 [그리스드교 윤리를 적용한 정기간행물]을 위해 일천 달라의 용의가 있다, 학생들을 움직이는 잡지를 발행한다면, 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그 일을 맡았고, 에드는 매호마다 자신의 작품을 연재하고, 사진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장동손등 연경대학의 교원을 주체로 하여 편집부를 조직하였다. 그 위에, 대리인의 헨리엣드.헬쯔(우리들의 실제상의 공동경영자)로 부터도 나의 시집을 출판하고 싶다고 말해 왔고 [네이션] The Nation으로부터 중국통신원도 같이 의뢰 받았었다. 중국의 학생운동사와 근대예술문학사 등등의 자료를 뫃으고 있었고, 인생은 나에게 매우 귀중한 것으로, 조금이라도 생명이나 건강의 위험을 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데이빗의 정보는 중대했다. 이제 두번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1936년에 서북에 있었던 에드로부터 자기에게 오라는 연락이 왔을 때, 나도 모안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전선을 뚫고 갈 수가 없어 서안에서 뒤걸음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당대회의 소식을 접하고 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에드가 1936년 서북에서 돌아 왔을 때는, 두 방면군과 그 정치국이 아직 長征을 종료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주덕, 가룡, 수극, 서향전등이 이끌고 있던 제2. 4방면군 이었다. 나의 연안행은 남편이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부터 사료가 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남편은 모택동을 위시하여 6인의 전기를 쓰고 있었는데, 그가 보안에 갔을 때는 아직 모가 이끄는 제1방면군이 장정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을 뿐 타의 군대의 長征완료는 일년 늦게 서북에서의 합류는 1936년11월의 일로써, 에드가 홍구를 뒤를 한 직후였다. 연안점거가 12월이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연안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 고 생갹했다 그래서 그러한 때 그러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특종의 34인 열전을 물건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드래도 위험한 延安행을 왜 지상명령으로 생각했었는지, 설명할 도리가 없다. 말하자면 역사적 필연의 감이 없지 않다. 같은 어찌할 수 없음은, 이미 1935년 12월9일의 학생운동때와, 뒤에 가서 1938년의 [공합] 즉 중국공업합작사가 탄생했을 때도 느꼈던 일이다. 그래도 괸찮다고 나는 깨닭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 넘어 보신의 감각을 거슬려 일어 나는 이들의 예감에는 그 자체의 생명이 있다. 마치 진공상태속으로 힘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사실을 구하고, 진실, 역사적진실을 구하는 순례자였었다.
1348 no image [아리랑] -김산.님웨일즈 공저 - 1
1943 2016-08-17
님 웨일즈 [아리랑] Song of Ariran - 어느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 ( A Korean Communist in the Chinese Revolution) 공저: 김산(金山)=본명:장지락(張志樂)(1905-38) 님.웨일즈(Nym Wales): (1907-1997.1.11) 槪觀 [아리랑]은 日中戰爭(1937-1945)의 개전 전후에 걸친 긴박한 상황하에 놓여 있던 중국 延安에서, 장지락과 님 웨일즈가 의기투합하여 김산(장지락의 별명)이 걸어 온 길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이를 님 웨일즈가 받아 쓰면서 방대한 김산의 전기가 탄생해 나온 기록물이다. (일중전쟁: 1937년 日本이 中國을 침략하여 일으킨 전쟁. 1937년 베이징 근교-노곡교에서 일본군의 도발적 군사 행동이 원인이 되어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베이징, 텐진, 상하이 등을 점령하고 국민 정부의 수도인 난징까지 점령하였다.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2차 국공 합작으로 일본에 대항하여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아리랑]의 본문은 장지락의 ‘전기’로 이루어저 있다. 아래 글은 일본판 [아리랑]의 웨일즈의 서문이다. 參考 *님 웨일즈(Nim Wales) 1907-1997.1.11 著書: [Inside Red China] [The Chinese Labor Movement] [Red China] [Sketches and Autobiographies of the Old Guard] [Song of Ariran]등 *에드거 스노 (Edgar Snow): 전 신문기자, 사진작가 . 님.웨일즈의 남편) 출생-사망 1905년 7월 19일 - 1972년 2월 15일 經歷 1932~1941 런던 데일리 헤럴드 잡지 특파원 1934~1937 뉴욕 선 잡지 특파원 1928 차이나 위클리 리뷰 부편집장 1927 캔자스시티 지방지 통신원 스노의 대표 저작물 중국의 붉은 별 (두레) 2013.04.30 모택동 자전 (평민신서 15) 평민사 에드거스노 자서전 (김영사) 2005.03.02 “만일 바야흐로 일중전쟁의 개전 전후에 걸친 이 격동하는 시기의 연안에서, 話手인 [조선인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과 記述人인 미국의 젊은 여성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해랜.호스트. 스노夫人)가 기적적으로 해우하는 일이 없었다면, 세상에 보기 드문 이 等身大의 革命運動史서술의 내용은 영원히 역사의 그늘에 파묻혀 버렸을 것이다. 두 사람의 주체성이 담겨저 있는 역사의 의지가 필연적으로 이 한 권의 책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일본판 [아리랑] 해설에서. -오무라슈-기(尾村秀樹) 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 중국공산당의 발자취(이면사)를 현장감 넘치는 감회로 다가 오게 한다. 이 보기 드물게 실재감을 불려 일으켜 주는 증언은 日帝가 한국을 병합했던 시기 항일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끝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공을 세운 한국 청년의 중국공산당 활동상을 엿 볼 수 있는 매우 보기 드문 다큐멘터리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서문에서 님 웨일즈는 당시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주변의 정황을 아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史의 아주 중요한 현장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오는 날 중국은 현대화에 성공하였지만, 그 그늘진 곳에서는 패권국가의 징후를 진하게 들어 내고 있다. 우리는 현대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 그들의 근 현대사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번역이 되 있다.* * [아리랑] 한국판: 동녘 간. 초판: 1984년 – 2016년까지 총 26쇄 발생. 역자:송영인 한국 개정판 22쇄에는 리영희의 추천글, 님 웨일즈의 [한국판 서문]-사랑하는 한국의 모든 독자들에게-1991년 10월 26일 매디슨.코네티컷 주. 조지 토턴의 해설. 역자후기등이 실려 있다. 나는 이를 다시 읽으면서 우리말로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의 분량임으로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본다. 아래 글들은 일본판의 님 웨일즈의 서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1347 no image [Mismatch] 전 - 이해균 편
1864 2016-07-27
이해균 편 -매스 미디어, 문제 있다 그의 작품은, 신문이 갖는 인쇄 매체(medium)성과 그것이 증폭해 내는 활자매체문화에 시비를 걸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해균의 작품은 타 작가들에 비해 작품의 보륨이 크면서 전시장을 압도하는 기세가 도발적이면서도 쉽게 와 닿는 점이 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단편소설’ 혹은 ‘시적’ 울림을 띠우며 象徵性을 강하게 표출해 내고 있다면, 이해균의 ‘신문지 커-튼’은 일종의 장편 소설로 대서사시적 산문성이 강하게 와 닿는 점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이해균의 작품은 ‘의미되어지는 것(시니휘에 signifie)’ 아니라, ‘의미하는 것(시니파인significant)’으로 작품의 진의를 판독하는데 난해함이 없고 쉽게 와 닿는다. 작품의 됨됨은 이렇다. ‘신문지를 화포로 삼고, 여기에 먹물을 칠하고 이를 수직으로 이어 적당한 길이로 벽면을 덥혀 씨운다. 쫍은 UZ의 전시공간의 벽에 갑작이 신문 스크랩의 커-튼이 쳐진다. 이중에서도 신문지의 항간에 과거에 보도 되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들을 출몰시키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들은 참관자들과 곧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역사성을 풍기고 있다. 건너편 벽면에는 면직물로 보이는 켄버스에 검게 먹칠을 한 사각형 화포가 걸려 있다. 전면을 검은 먹칠을 한 속에 가느다란 선들이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마치 밤하늘에 낙진하는 유성의 궤도와 같다.’ 신문은 언론매체로서 구덴베르그가 활자를 발명해 낸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전달매체로서 서구문명을 조성해 낸 핵심적인 미디어(medium)일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의 미술의 발전 양상이 [物] 위주의 오브제 미술로 진화해 옴을 예상했듯이, 소통의 수단으로써의 ‘도구성’에 주목하여 미디어론을 전개한 마-샬.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의 前史를 살펴 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언어매체론과 영상매체론의 비교분석은 20세기 파라다임을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막강했음을 기억한다. 이 시점에서 출발하여 문화 매체의 변천사가 전개되 왔으며, 그 後史의 전말은 실로 현대 미학과 철학사를 망라하는 통사가 될 수 있다. 맥루한이 [굿덴베르그의 은하계]라 명명했던 문화사적 사건이 ‘알레고리’론으로 이어지며 20세기 “지적 은하계”를 형성하는 단초를 열었던 발터.벤야민이 있고, 이어지면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열사망론으로 발전해 가며, 궁극에 가서는, 죨즈.바다이유(Georges Bataille1897-1962)의 [非知]의 경지까지 이른다. 서구 문명이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현실적으로 이를 실천(현전화)해 오면서 도달한 종말지점에서 동양사상과 불교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논제가 될 터이다.
1346 no image [Mismatch] 전 - 안택근 편
1669 2016-07-25
1345 no image Mismatch 전 - 김희곤편
1691 2016-07-24
Mismatch 展 2016 7.2-7.31 실험공간 UZ 김희곤 편 [거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원시 불경 숫타니파타 Sutta Nibatta의 한 구절) 상처와 치유의 변증법 김희곤 작가의 작품은, 일곱개의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금속 철판으로 된 사람의 형상들이 세워저 있고, 이 입상들이 다양한 색채로 강한 조명을 받고 빛을 반사하면서 관람객의 눈을 부시게 한다. 그 뒤 벽면에 이 또한 기괴할 정도의 영회(影繪)라 부를 수 밖에 없는 이들 입상의 그림자들이 분위기를 돋구고 있다. 작가 자신의 신체와 실존의식에서부터 작품의 도구적 요소로 전제하고 있는 작가는 이 실존적 실체로부터 파생되 나오는 오브제들이 곧 이미지로 간주되며, 파생실재적 입상들과 또 이들의 파생물로써의 그림자 그림들이 만들어 진다. 이 입상들의 파생적 실재로서의 影繪, 그리고 이들이 마찌엘(화구)의 “그물에 걸리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저 가는” 無로 이르는 경지… . 작품의 맥락이 대충 이렇게 읽힌다. 작가가 선호하는 ‘파생실재’란 개념은, 오해를 받기 쉬운 말로써, 여기서는, ‘오브제’가 곧 ‘이미지’라는 등식으로 읽으면 논리에 닿지 않을까 한다. 실체와 이를 반영하는 이미지간의 차별을 거부하는 원시적 사고이다. 자신의 작품의 제목에 ‘숫다니파타’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종국의 초월성을 예감케 하는 말로써, 대단한 비전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기까지 이를 논리적 道程이 작품의 내면적 의미를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원시미술이 원시적 활동과 일치함과 같다면, 김희곤의 예술세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정신활동을 다루는 우뇌활동에 중심이 서 있는 초현실주의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 지층에서는 인간은 美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眞實을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나는 나의 예술과 함께 발전합니다.” 작가의 이 말은, 예술을 삶의 指表로 삼고 자신의 정체성 문제, 비전너리(미래상), 자신의 현실적 ‘삶의 의미’를 구명해 내는 각성의 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화엄의 사사무애의 경지, 영혼의 깊은 내면에 아가리를 벌리고 도사리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理性의 橫暴에 의해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문명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인간인식론에 대한 총체적인 혁명을 추구하고저 하는 것이다. 자페증환자가 오히려 더 정교하고 객관적인 상을 그려 낸다는 사실과 부합하고 있다. 인간 무의식의 심층세계에서는 자신과 타자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는 [自我]는 소멸한다. 우뇌의 순수성을 재 재발견해 낸 맛데.프랑코의 초자아설이나 라스코 동굴벽화를 그린 신인류들의 수준 높은 그림들의 수수꺼기들이 이 대목에서 풀리기 시작한다. 벽면에 반영되어 있는 그림자 그림 속에서 아주 자연스렵게 나타나고 있는 엷고 붉은 색채를 두고 이를 魔術士와 같은 논법으로 신비스렵게 각색을 하면서 이미지의 변이를 내 세우고 있는 작가를 보면서 필자는 그것이 그림속의 살아 있는 생명성을 강조하는 제스처로 보였다.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한마디로 압축하여, ‘파괴’와 ‘창조’의 교합등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를 조금 누그러 트려서, [傷處]와 [치유]의 변증과정으로 보아도 어긋남이 아닐 것이다.
1344 no image Mismatch 전 - 차진환 편
1720 2016-07-23
차진환 편 -[色卽시空]을 공중에 띄우다 참가 네 작가중에서 차진환은 불교의 반야경에서 그 핵심으로 일컫는 ‘색즉시공’의 화두를 자신의 미학적 언어를 총 동원하여 이를 표상해 보려고 하고 있다. 원래 원시불경의 경문은 입으로 소리를 내어 끝없이 반복하면서 마음을 바로 세우는 수행법을 으뜸으로 하는 것인데, 이를 聽覺이 아니라 미술적 맥락으로 視覺을 겨냥한 형상화를 시도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작품 구성 전시장 공중에 매 달아 놓은 백색 화포로, 이는 [空]을 상징하고 있으며, 아주 가느다라한 실로 이어진 곳에 색계로 넘기는 직전의 단계를 나타내는 ‘물주머니들’로서 [卽]의 세계가 니타난다. 이는 다시 가는 실로 오른쪽 벽면에 농밀한 색체로 여러가지 문양을 칠해 놓은 [色界]로 넘겨 주고 있다. 모두 삼등분된 구획으로 분류되며, 공의 ‘無勢’, 즉의 ‘潛勢’, 그리고 색의 ‘現勢’로 표기할 수 있다. 반야는 프랴주냐의 속어로 ‘panna’를 한자로 옮긴것으로, 이 말의 뜻은 ‘인간이 진실한 생명진리를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예지’를 뜻한다. 분별지(일반적인 지식)와 구별이 되며 이를 넘어선 ‘무분별지’의 범주에 속하는 세계다. 무분별지는 말로서 표현하기 어려움으로 현상(혹은 image이미지)화 해 보면 어떨가?! 하는 것이 작가 차진환의 작품 제작 동기의 한 가닥이다. 색즉시공의 한자를 풀이해 보면, 색계가 바로 공이요, 공이 바로 색계란 서로 엇물려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색과 공의 중간에 다리를 놓고 있는 ‘卽’은 相卽을 말하는 것이며, 동일성과 차이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성질을 하고 있다. “보살은 반야를 행할 때에 내가 반야를 행한다는 생각이나, 또는 행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나, 또는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할 때에 능히 무량한 중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大品般야經중에서 앞말을 반대(부정)하면서 받아 들이며(긍정), 뒷말로 넘기는 시점에서 뒤말이 앞말을 부정하면서 이를 받아 들인다(긍정화). 뒷말은 다시 다음으로 넘기는 순간, 반대당하면서(부정) 자신의 정체를 확립한다(긍정적). 이러한 ‘상즉성’의 논리는 서양의 변증법적 개념의 변용을 나타내는 正反合의 상관관계와는 달리 논리적 모순성을 삼켜 버리는 일종의 대칭성적 세계이다. 때문에 작가는 이 주머니들에 작은 구멍을 내서 물이 밑으로 떨어지도록 해 놓는다. 이는 뒤에 나타나는 색계의 잡다한 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공분모로써 유일하게 잡아 볼 수 있는 것이 ‘에너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흐른다는 것은 개념논리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의 특성이다. 전시장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는 ‘색계’는 진한 원색들로 아주 농밀하게 주역의 오행사상을 받아 낸 현실계를 구성하고 있는 화, 수, 토, 목등의 원초적 물질들이 서로 엉겨 있는 모습이다. 이 색계의 이미지가 실체가 없는 것으로, 공의 세계로 반복 순환된다는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1343 no image Mismatch 전
1493 2016-07-23
MISMATCH 전 장소: 수원 실험공간 UZ 전시기간: 7.2 – 7.31 2016 들어 가는 말 “어디서부터라도 좋다, 人間의 歷史에서 任意로 천년 혹은 이천년을 빼버린다 해도, 인간의 本性에 관한 우리들의 知識이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을 것이다. 유일하게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千年 이 천년 속에서 태어난 藝術 작품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탄생시킨 작품에 의해서만 인간이란 서로 다르며 더욱이 存在하고 있다. 나무의 상이 나무의 싹을 티우듯이 작품만이 시간의 경과속에서 인간들 사이에 무엇이 확실하게 生起한 證票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크로드.레뷔스토로스의 [보다. 듣다. 읽다]에서.” “예술은 모든 것을 평범함에 이르게 하기 위해 환상의 욕망을 없새 버렸으며 그 결과 초미학적*-1 인 것이 되었다.” “ 예술이 죽는 게 아니라 예술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이 죽는 것입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1929-) *-1:초미학transesthetique. 예술은 모든 것을 평범함에 이르게 하기 위해 환상의 욕망을 없에 버렸으며 그 결과 초미학적인 것이 되었다. 예술의 열사망을 의미함. 위에 인용한 두 상반되는 어록은 그 상반성에서, [MISMATCH]전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함에 주제의 의미를 매우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레뷔스토로스의 언명은 오늘날에도 아직 유효하며, 장 보드리야르의 반어적 예술 부재론은 역시 오늘날의 우리들이 살아 가고 있는 현실 상황속에 포박되 있는 “예술”이 놓여 있는 모습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다. 이는 각각 서로가 엇갈린 주장임으로, 이 또한 일종의 ‘Mismatching’ 현상이 아닌가, 한다. 이 전시에 등장하는 네 작가(이해균. 김희곤. 차진환. 안택근)의 작품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긋남(Mismatch)’의 진실도, 바로 우리들이 살아 가는 현실의 진정한 상황을 암유하고 있는 블랙유모어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것 자체가 인류 두뇌의 뉴-런의 일탈로부터 탄생해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 한다면, 주제 의미의 폭은 휠씬 넓어진다. 예술자체가 근원적으로 Mismatching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마다 다른 관점에서 이러한 우리 시대의 [MISMATCHING] 현상을 조명하고 검증하고 있음으로 관람객으로서는 이 점을 예의 주시하면서 작가 마다 다른 ‘어긋남’의 미학을 풀어 가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는 한 시대를 내다 보는 파라다임의 다양성과 그 저변에 흐르고 있는 실체의 동일성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될 터이다.
1342 no image [종합 선물 셑] 이성실전
1973 2016-05-27
“종합 선물 세트” 이성실전 5.21-6.26 2016 실험공간 UZ ‘말하자면 인간은 빛나는 세계를 벗으나서 이디아로부터 멀어지면서 암흑에 찬 대지의 깊은 안쪽, [물질]의 한 가운데서 처음으로 인간이 되었다.’ 1. 위상기학적 세계관과 예술 - Topological View of Art 작가 이성실의 조형사고는 남다르다. 그가 빚어내는 작품들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기류는 ‘반복과 차이’가 원을 그리면서 맴돌고, ‘보존과 파괴’의 순환 도식을 무한으로 이어 가며, 상(image)은 ‘원상’을 잉태하고, 그것들이 품어 내는 ‘에너지’는 아우라(aura)라고도 불리고 있는 엔토로피(entoropy)적 단위로 측정 되어 지는 것이며, 자기모순성을 삼키며 원초적 야생성을 감염시키는 ‘대칭성’적이며 ‘프락탈’(fractal)한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프락탈은 이미 질서의 틀이 잡힌 세계가 아니라 일종의 카오스(chaos)적 혼미를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창조의 전주곡이 아니던가. “물질의 한 가운데서 처음으로 인간이 탄생해 나왔다.” 란 아포리즘이 실감나는 세계다. 전시 공간 안의 각기 다른 층에 놓여 있는 작품들은 그로 인해, 하나의 공통된 토포로지컬(topological)한 장(place or ground)의 논리속으로 수용된다. 장이란 경계가 없는 생태학적 공간이다. 비어 있는듯 하면서도 곽 차 있는 틈이다. 여기서 탄생해 나온 작품들을 작가는 유-머르스하게 “종합 선물 세트”라 부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발상과 모티브, 그 나타나는 모양새(image)를 달리한 작품들이 그 바탕에서는 유기적 호응을 함께 함으로 대칭성을 공유하고 있고, 일종의 Matrix(여성의 태)의 망(net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고 보는 것이다. 파도를 그린 작품을 보자 - 무한한 반복과 비동일적 차이성을 만들어 내는 파도의 숨결- 격랑과raging waves과 잔잔한 물결calm로 쌍방향 교차시켜 드로잉한 작품이 바로 프락탈(fractal geometry) 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 “파도”다. 뜨거운 태양의 남성성과 차고 음습한 달의 여성성의 상충으로 만물의 호흡을 상징해 주는 율려의 태가 바로 ‘나불’(waves)이다. 밀물과 설물의 부정형적인 맥박이, 그렇다. 이들의 영향을 받는 바다의 생리는 카오틱한 우주 만물의 호흡을 곧바로 받아 내는 여성적 이미지 그것이다.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잡다한 [물]들이 등장하는 실에 포박당한 ‘오브제.미술’ 한편. 전시장 오른쪽 첫쩨번 작품을 보라. 여기에 모여 있는 [사물]들은 길거리에서 줏어 온 나무 막대기거나 망가진 샤벨, 이런 잡물들이, 채색된 판넬위에 얹혀 있다. 오브제.미술로는 보기 드물게 [잡물]들이 무질서하게 혼재한다. 이렇게 한곳에 오손 도손 뫃인 것들이 가상공간을 만들어 냈다. 희안하게도 작가는 이들을 모두 흰 색칠을 한 실로 여물게 묶어 놓는다. 흰 실은 보기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물체이지만 여기서는 동네 입구에 세워 놓은 솟대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본다. 공간의 분활, 공간의 제한에서 조그만한 동네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달리 해석해 본다면, 여인의 품에 안겨 있는 애들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이곳에 정주하기 시작한 사물의 거주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이 모성적 유대감으로 뭉쳐 있다. 그들은 서로가 자신들이 왜 그곳에 와 있는지 묻고 또 나름데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있을 것이다. 오-직 작가만이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통역을 해 내고 있는 것인가, 하여 또 하나의 우화의 세계가 탄생해 나올 법 하지 않는가. 상상력이 풍부한 관람객중에는 이들의 우화에 귀를 기우릴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발상과 모티브, 그 나타나는 모양새(image)를 달리한 작품들이 하나의 군을 이루면서, 그 바탕에서는 유기적 호응을 함께 함으로 대칭성을 공유하고 있고, 일종의 Matrix(여성의 태)의 망(net )속에 정좌해 있다, 고 본다. 한켠에서는 오브제.아-트로 불릴 수 있는 작품이 놓여 있는가 하면, 다른 장소에서는 전통적인 켄버스화가 걸려 있고, 뻘밭을 찍은 사진이 자연의 원초적 행태를 극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뻘을 이게서 케이크 상자에 담아 낸 먹음직 한 선물 셑도 보인다. 신문지를 찢으 물에 풀어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이것을 가지고 또 다른 새로운 물체들을 만들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암유하는 비유로 쓰고 있는 작품도 있다. 작가는 작가 되로 자신의 몸을 화구로 삼고 부정형의 이미지들을 그려 내는 퍼포먼스를 연출해 낸다. 여기에 분위기를 띠워주는 음악이 전시공간속으로 은은하게 흐른다. Gavin Bryar의 “Jesus Blood never Failed me yet”. 이 음악 역시 전체 분위기와 동조하는 무한 반복의 단조한 가락이다. 이 음악은 크래식과 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미니멀리스트 음악’으로 앰비언트(순환하는)를 특징으로 하고 있음으로 전시장 전체 분위기와 어울린다. 2. 논리적 모순을 삼키며 일즉다의 경지를 창출해 내는 대칭성의 발견 이성실의 작품세계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장의 논리는 대칭성적 개념으로 이루어저 있다. ‘종합 선물 세트’로 명명되다 싶이한 서로 다른 양식으로 창조해 낸 작품들은 이 대칭성적 논리에 따라 개물의 의미가 전체에서 분리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관래적으로 내려 오는 전시장의 작품들이 갖는 개적 성질(개성)에 대한 집착이 빠진다. 그리고 상호 모순되는 기제를 배제하지 않고 보듬어 안아주는 공존의 원리가 작동한다. 작품영역에서는 보통의 논리가 아닌 모순된 것들끼리 서로 교차되어 이으져 있는 ‘키아슴(교차법chiasmus)의 논리’가 작동한다. 그리고 무엇보담 예술이 가능해 지는 아나로지(비유)를 통해 서로 다른 것들끼리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통로로 맺어진다. 이는 호모로지(homology)논리라고도 부르며 수학,통계학, 유전학, 화학분야에서 구조적인 동질성을 탐구하는 방법이다. 작가의 마음 안에서 정동과 지성이 일체가 되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아나로지에 의한 인지능력은 다른 현실끼리를 잇는 역동적인 意味生成프로세스가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3. 우주를 향한 오마-쥬 –페인팅 퍼포먼스 의식 “종합 선물 세트” 이성실전에서 관람객으로써 체험한 가장 극적인 예술 체험은 그의 페잉팅 퍼포먼스일것이다. 갑작이 UZ의 동굴과 같은 쫍고 음산한 전시장이 컬터적(cult) 예배의식의 제단이 된다. 그림 무당이 된 작가는, 바닥에 맨발로 넓직한 백지위에 걸터 앉아서 장갑을 낀 손으로 다홍색 물감으로 마치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의 수행을 보는 듯 내키는 되로 무심의 경지에서 우주의 신령들을 불려 내면서 그들의 비지적 코-드를 백지위에 받아 낸다. 그린다 기 보담 마음이 시키는 데로 손붓으로 백지 위에 영적인 힘으로 아득한 우주적 혼돈상을 불려 내면서 이를 받아 내는 샤-먼의 몸짓이다. 퍼포밍과 페인팅이 일체가 되는 성스려운 제스추어다. 초혼의 샤-먼이 된 작가의 동작 하나 하나가 갓 태어 나오는 창생적 이미지들과 더불어 성스러운 의식을 위한 공양물처럼 관람객들의 경건한 마음을 적셔 준다. 지금의 프랑스 도르도뉴현 몽티냐크 라스코 마을의 동굴속에서 인류가 최초로 그리기 시작했던 바위 그림들이 주는 선열한 인상이 그랬었다. 현대작가로서 보여주고 있는 이 이색적인 퍼포밍.페인팅이 현대인이 되어 있는 우리들 마음속 깊은 곳에 아물지 않고 벌어저 있는 루산치만이 급급이 쌓여 있는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을까? 생명,우주,만물에 대한 궁극의 물음! 이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왜 무가 아닌가? 우리들은 왜 존재하고 있는가?
1341 no image Georges Bataille
2478 2016-04-09
1340 no image 우주 속 우리 인연展 8
1932 2016-01-04
우주속 우리 인연전 도병훈편 평소 화업과 문체를 통해 兩手兼將의 奇才를 보여 주고 있는 도병훈이 이번 [실험공간 UZ]의 첫 전시에서는, 전시회 주제인 ‘우주 속 우리 인연’ 과 원효대사에 관한 어록, ‘皆是 皆非’ 란 문자를 일종의 엠브렘(emblem, 記章)로 양기둥에 그려 넣은 것을 보여준다. 이 두 문자는 서로 저변에서 연관을 갖고 대응하고 있는데, ‘개시 개비’는 원효선사의 [涅槃經宗要]에 나타난 和會의 세계를 상징하는 어록이고, ‘우주 속 우리 인연’은 그 바탕이 되는 현실적 존재의 연기를 가르키는 말이다. 먼저 글을 쓴 이의 취지문을 읽으 보자. “나는 이번 실험공간UZ 개관전으로서 이영길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가 함께 참여한 ‘컬레버레이션(collaboration) 전시회’에서 김성배 작가의 요청을 받고 ‘우주 속 우리 인연’이란 전시 타이틀을 제안했다. 처음 “원효는 ‘개시개비(皆是皆非)’로 ‘화쟁(和諍)’을 말했다. 그렇다면 원자핵 주위 어디에나 산재할 수 있는 전자의 확률적 퍼짐 현상이나, 점점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 속 우리 인연은?”이라는 문장으로 초안을 작성했으나, 전시장에서는 이 문장의 핵심어인 ‘皆是皆非’와 ‘우주 속 우리 인연’이란 구절만 각각 검은색 기둥과 흰 기둥에 썼다.(*개시개비 아래는 간격을 띄우고 ‘원효’를, ‘우주 속 우리 인연’이란 말 아래는 내 이름을 씀) ‘개시개비’란 ‘모두가(동시에) 옳을 수도 있고 모두가(동시에) 그를 수도 있다’는 뜻으로, 원효가 『열반경 종요』란 저서에서 이전의 여러 불교 이론을 종합하여 화쟁론을 제시하면서 한 말이다. 원효는 이 책에서 여러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하는 말이 부분적으로는 ‘모두 옳다(皆是)’고 하면서 코끼리의 전모(全貌)는 말하지 못하므로 ‘다 그르다(皆非)’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말하는 모든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옳을 수 있지만 큰 관점에서는 모두 부분적 인식에 지나지 않으므로 다 그르다는 논리도 동시에 성립한다. 이러한 비유 끝에 원효는 화쟁론을 제시한 것이다' 원효는 7세기 이전 인도와 중국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던 불교사상을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종합함으로써 최전성기를 이룬 7, 8세기 동아시아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원효는 중국 불교를 배우기 위해 바닷길로 당나라로 떠나고자 지금의 형도 인근인 당항성 근처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세상의 온갖 현상은 마음에서 일어남을 깨닫는다. 그그후 원효는 당시의 다양한 불교 이론을 섭렵하여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였다. 그 핵심은 큰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인 ‘일심(一心)’으로부터, 여러 개로 흐르는 지류와 강 같은 서로 다른 주장이나 신념을 화해시키는 ‘화쟁(和諍)’ 또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이다.(*원효사상의 핵심은 일심, 화쟁회통和諍會通, 무애, 화엄, 일심이문, 이문일심, 기신론 사상 등으로 요약됨) 불교의 화엄적 용어로 표현하면 ‘중중무진(重重無盡, 무한히 다층적이고 복합적의 구조)’으로 중첩되어 있고 우리는 그 구조를 이루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는 점에서 시작되어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어 만들어진 그물이 끊임없이 출렁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은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함으로써 작은 변수들이 유기적·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불가사의한 ‘복잡계(Complex systems)’를 형성한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현대물리학이나 천문학과도 배치되지 않고 일맥상통한다. 원효는 이러한 통찰을 아우르는 화쟁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고 실제 감성과 지성을 아우르는 삶을 살았다. 원효 사상을 이번 전시의 화두로 삼은 것은 ‘실험공간UZ’가 지향하는 미학적 방향성과 내년 하반기에 ‘실험공간UZ’에서 예정된 원효의 원융회통을 주제로 한 전시회 주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나는 원효 사상을 통해서 얻는 깨침으로도 현대의 작가들이 좀 더 자유로운 상상력과 타인과 환경에 대한 저마다의 교류를 통해 그 자신의 진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보며, 그래서 이 시대 이 땅을 살아가는 주체로서 외부 세계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능력인 감수성을 통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원융적인 삶과 예술을 지향하고자 한다” ‘원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치밀한 사고력’과 ‘활달한 문장력’ ‘넘치는 인간미’ 가 드라마틱하게 육화된 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것은 곧 一心一和會-無碍의 축으로 압축된 그의 사상적 역정과 맞물려 있다. 원효는 오늘도 우리들 곁에서 살아나고 있다. 원효 이후에 아직 원효만한 사상가를 가지지 못한 오늘, 그는 우리에게 있어 절망이자 동시에 희망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사상가 10인 [원효]에서.
1339 no image 우주 속 우리 인연展 7
1716 2015-12-31
김성배의 -역설 읽기 SIMA에서의 암모나이트 동심원을 하나의 축으로 삼고 우주를 향해 발신하는 안테나를 보여주었던 김성배는 이번 [우주 속 우리 인연]展에서는 지하 동굴과 같은 실험공간 UZ의 벽면에 가느다란 전선줄로 접합시킨 크-다란 스피커를 걸어 놓았다. ‘겹고리 둥그라미(동심원의 우리말, concentric circle)의 이미지는 하나의 個物속에 모-든 개물이 비취 지고 있음을映)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개개의 요소는 다른 요소 전체로 향하는 변화를 유발하는 것으로, 무한 동일의 異像이란 논리가 성립할 수 있으며, 이는 동심원이 갖는 매트릭스(Matrix, 鑄型)적 특성이다. 然이 아니고 非然이며, 知가 아니고 非知, 必이 아니고 非必의 영역을 향하고 있는 일종의 '情緖的知性'이요, 一은 곧 一切다, 라는 무한계열의 [相卽], 불교의 화엄의 본질에 가 닿는 비전을 품고 있다. 비인격적존재자(자연)와 인격적존재자(인간, 문화)가 우주적 동심원안에서 서로 타자가 아니며 둘이 아니며 화엄의 事事無疑란 사고 重重無盡이란 비전속에 마치 암모나이트의 동심원이 시사하고 있듯이 융합되 있다, 는 멧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성배의 작품세계나 그가 이번에 새롭게 조성해 낸 실험공간 UZ를 보건데, 도교나 불교적 취향을 풍기면서 동시에 예술영역에서는 서구의 현대적 사고 맥락을 정확하게 소화해 낸, 경계를 자재롭게 넘나 드는 매우 독특한 사고태를 풍기고 있다. 위의 논평에서 언급한 ‘화엄’의 경지가 그렇커니와, 김성배에게는 이러한 이질적인 세계를 심층회로를 통해 자유롭게 넘나 들면서 이를 융합해 내는, 아웃사이드적 力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고태(일종의 파래다임)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어 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변화라기 보담, 진화에 가까운 변환을 해 내고 있다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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