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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627 2017-04-18
24번쩨 밋셀. 후-코(Michel Foucault) “視覺文化의 制度性이나 이데올로기-성을 되묻다” 밋셀.후-코는, 그 主著의 하나인 [말과 物]의 제1장을 베라스케스의 <侍女들>의 분석에 바치고 있다. 고전주의의 기저에 있는 에피스대메-(episteme), 이를 기초 짖고 있는 시대고유의 知의 深層構造를 일컫는 말. [全體知])의 대대적인 발굴작업의 모두에 내 세운 이 도발적인 분석은, 그 이후, [묘사의 예술]의 스베트라나.알바스로부터 [원근법의 기원]의 유벨.다밋슈, [불실한 鏡]의 밋셀.데뷔오-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뛰어난 미술연구자들의 작업을 도발하는 것이 된다. 허나, 여기서는 <侍女들>을 둘러싼 해석의 미궁으로 발을 집어 넣는 일은 피하고, 후-코에 의한 분석의 요점을 간단히 뒤돌아 보는 것으로 한다. <시녀들>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그기에 그리저 있는 인물들에 의해 역으로 되돌아 보게 된다. 연필 작업으로부터 일단 손을 떼면서 켄버스로 부터 몸을 뻰 모습으로 그르저 있는 베라스케스 자신도 또한, [이쪽]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화가는 그가 지금 막 제작에 들어간 畵中의 타브로의 [모델]을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끊임없이 불안전하게 그 역할들을 교환해 가는 鏡像的인 눈짓의 무대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시녀들>이 연출해 내는 이야기 세계의 프롯을 整合的으로 해독해 보려는 모-든 시도를 흔들어 놓는 것은, 이 怪物的인 動搖를 훈치하려는 욕망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화면중앙, [기묘한 밝음]을 갖추고 있는 거울은, 화중의 화가의 눈길 앞에 있는 공간(즉 [타브로]의 외부의 공간)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그기에 [비추어진] 인물은 스페인국왕 회리페4세와 왕비 마리아나이다. 허면, 화중의 인물들이 처다 보고 있는 것은, 베라스케스에 대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국왕부처일것이며, <시녀들>이란 작품은 국왕부처를 표상하는 화가의 행위 바로 그것을 자랑스렵게 표상해 낸 작품이라고 해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허나. 화중의 役者들에 고유명사를 부치고, 그 프롯을 언어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이 타브로가 연출하는 [눈짓]劇場의 바닥 없는 불안전성]이 순식간에 불식되는 일은 결코 없다. 후코가 정밀히 분석하는 바와 같이, [시녀들]의 화면은, 왕녀 마르가리-타의 눈짓을 축으로 하여 복잡한 구도를 갖추고 있다. 그 왕녀로부터 곧바로 이쪽으로 뻗어 오는 눈짓의 선은, 거울에서 이쪽으로 향해 뻗어 오는 선과 미묘한 각도를 갖고 동일점으로 향하고 있다. 이 [의심스려운 点], 구도의 전체에 의해 명확히 지정되면서도 타브로의 밖에 멈추저 있게 되는 이 불가시의 중심을 점하고 있는 것은, (모델인) 국왕부처인 동시에, 그 타브로를 응시하는 우리들 자신이기도 하며, 이 타브로를 제작하고 있는 [현실의] 화가 베라스케스이기 까지 할것이다. 후-코는 이 타부로속에, [고전주의시대의 표상관계의 표상, 그리고 표상이 열어 보이는 공간]을 보고 있다 --- 단, 화중에 정착해 있는 화가의 뜨 있는 듯하는 자세뿐 아니라, 그야말로 미결정된체 요동하는 것으로, 표상관계의 표상이라고 하는 메타회화의 시도를 궁극의 지점에 이르도록 하는 이 타브로는, 그야말로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시도의 한계를 공백, 반전, 규열, 되돌림으로써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후-코 이후, 이 타브로의 프롯에 관해서는 가지각색의 설이 나타났었다. 그 중에서도, 밋셀.되뷔-는, 화중의 베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눈에 잡혀 있는 <사녀들>이라 하는 작품이며 자화상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커다란 거울(鏡)에 비추어진 제작중의 자신의 모습을 켄버스에 정착하고 있는 시나리오, 바로 눈이 현란하게 겹쳐저 나오는 ‘넣는 인형’ 구조의 시나리오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함으로 해서 뒤보-는, 후코-적인 물음을 이어 받으며서, 고전주의의 표상의 규범으로 세워저 있는 [거울(경)]의 투명성이 이 작품속에서 여하히 그 궁극에 이르기 까지 – 그 [거울]의 표면에 규열을 달리게 할 정도로 – 추구되고 있는가를 놀랍게도 규명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시녀들>이 고전주의의 에피스데-메-를, 그 임계점선상에서 가르키고 있는 것이라면, 타방, 후-코-가 [감옥의 탄생]에서 분석한 [파노푸티콘(일망감시시설)]이라 불린 감옥의 시스템은,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두에 걸처 일어났던 새로운 지와 권력의 재배분의 됨됨을 더 이상 명료할 수 없이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삼이 고안한 [파노프티콘]이란, 주위에 圓環狀의 建物, 그 중심에 탑이 들어 서고, 그 탑에서 중정넘으로 보이는 독방의 수인들을 감시하는 시설을 말하는 것이다. 독방에는 중정측과 그 반대의 벽에 아주 커다란 창이 있기 때문에, 탑에서 수인의 동향을 쉽게 감시할 수 있다. 역으로 囚人측에서 보면, 분명히 간수가 있어야 할 탑을 볼 수가 있지만, 그 탑의 창문에는 철가리게가 처저 있고 내부도 어둡기 때문에 간수의 모습을 절대로 볼 수 없다. 수인은 그럼으로 간수에 의해 실제로 자신이 감시되고 있는것과 관계없이 그 감시와 관리의 눈길을 제 각기의 내부로 되돌려 줌으로, 내면화되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권력]은, 특정의 개인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그렇게 자동화된 장치의 제요소의 배치전체에 침투하면서 작동하는 것이 된다. [눈길에 의한 관리]라고 하는, [임상학의 탄생 --- 의학의 눈길의 고고학]이래의 후-코-적 問題系는 여기서 근대적인 調育과 규율의 제도로써, 공장, 학교, 병영, 병원이라고 하는 가지 각색의 제도에 도 적용 가능한 일반적 모델을 획득하는 것이다. [눈짓] [감시][권력][주체]에 얽힌 이러한 후-코-의 의론은 우리들의 생활을 둘려 싼 가지각색의 근대의 시각문화(미술, 건축, 사진, 팻션, 광고, TV, 비디오감시장치,인터넷…..)를, 그 제도성이나 이데올로기-성 안에서 되묻도록 하는 무수한 시도에도 침투하면서 채울수 없는 자극을 끊임없이 지속해 가고 있다. 약력: 1926년 프랑스의 서부의 마을 보와디에 태생. 에콜.노르말.시유베리울(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익힌후, 프랑스, 스웨덴, 포-란드, 서독 등지의 병원에서 정신의학의 이론과 임상의 연구에 종사함. 츄-니스대학, 파리대학뷘센느분교를 거처 코레즈.드.프랑스의 교수를 역임. 84년 몰. 주저: [임상의학의 탄생] 1969(원저 1963간) [언어와 물 – 인문화학의 고고학] 1986(원저 1966) [이것은 파이쁘가 아니다] 1986(원저 1973) [감옥의 탄생 – 감시와 처벌] 1977(원저 1975) [성의 역사 1 지에의 의지] [성의 역사 II 쾨락의 활용] 1986(원저 1984) [성의 역사 III 자기에의 배려] 1987(주저 1984)]
1397 no image 이윤숙 설치영상 '바람' 전
2546 2017-04-18
슈룹<2017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이윤숙 설치영상 ‘바람’ 展 experimental 실험공간 S P A C E UZ 2017.4.1 -4.30 “끝나지 않는 鎭魂의 祭儀” 속에서 靈力을 얻는 예술” 프로로그 [歷史의 悲劇] 앞에 선 마음] “여럿인 가운데서 될수록 하나인 것을 찾아 보자는 마음, 변하는 가운데서 될수록 변하지 않는 것을 보자는 마음,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서 될수록 무슨 차례를 찾아보자는 마음, 하나를 찾는 마음, 그것이 뜻이란 것이다. 그 뜻을 찾아 얻을 때 죽었던 돌과 나무가 미(美)로 살아나고, 떨어졌던 과거와 현재가 진(眞)으로 살아나고, 서로 원수되었던 너와 나의 행동이 선(善)으로 살아난다. 그것이 歷史를 앎이요, 역사를 봄이다. 歷史를 참으로 깊이 알려면, 비지땀이 흐르는 된마음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역사를 아는 것은 자나간 날의 천만가지 일을 뜻도 없이 차례도 없이 그저 머리속에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갑어치가 있는 일을 뜻이 있게 붙잡아서만 된다. 역사란 우리 현재의 살림 속에 살아 있는 일을 뜻이 있게 붙잡아야만 된다. 역사란 우리 현재의 살림 속에 살아 있는, 산 과거다. 역사는 새 세계관을 지어내는 풀무다. 역사란 산 과거들의 서로 서로 관계를 체계있고 통일되게 하는 것이다. 역사란 사실과 사실이 한 개의 인간관계 고리로 맺어져 있는 한 개의 통일체다. 역사는 하나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 역사다. 전체가 한 생명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현 [조선을 생각한다] –평범한 밥공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다 “자연은 그 민족의 예술이 취해야 할 방향을 정하고, 역사는 그것이 밟아야할 경로를 제시한다……” ‘거기에는 병에 걸릴 이유가 없다’ 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밥공기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교라는 병에 걸릴 시간이 없다. 그것은 미를 논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식이란 병에 걸릴 여지가 없다. 그것은 이름을 새겨 넣을 정도의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自我라는 罪에 물들 기회가 없다. 그것은 달콤한 꿈이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感傷의 遊回에 빠질 일도 없다. 그것은 흥분된 신경 상태에서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변태로 기울어질 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는 멀어진다. 왜 이 평이한 다완(막사발의 일어)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그것은 실로 평이함 자체에서 생겨나는 필연의 결과이다. 비범함을 좋아 하는 사람들은 ‘평이’ 함에서 생겨나는 美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극적으로 생겨난 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불가사의하다. 인위적인 데서 생겨난 어떠한 다완도 이 다완을 뛰어넘은 것이 없지 않은가. 일본의 민에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1)- [조선을 생각한다]에서 [바람]의 작가 이윤숙의 명상적 아포리즘 “침묵은 모든 것을 그 자체안에 소유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항상 완전히 현존하며 모든 공간을 완전히 채운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생각. 그리고 늘 변모하고 발견하는 삶을 위해 일상에서 한걸음 물러나 나를 본다.” “자연을 호흡하고 순응하며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인간과 예술을 사랑한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 남과 함께 즐겁게 살아 가는 것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 “ 미학이나 이론은 창조활동의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그 결과 이다.” 베일이 벗겨진 이윤숙의 작품 [바람] - “그것은 내가 아니고 바람이었다” -* 실험공간 UZ에서는 슈-룹의 [2017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씨리즈, 두번쩨 실내 전시 작품으로, 이윤숙의 [바람]展을 내 보내고 있 다. 이 작품 역시 ‘한 반도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동서 250km에 이르는 철책을 제거하고 그 한 가운데 거대한 구조물을 세 우는 것을 목표’ 로 하고 있는 동 프로젝트의 취지와 同行하고 있는 실내 설치영상물이다. 작품은, UZ 전시장 입구부터 다 자란 측백나무의 턴넬을 걷게 하면서 단서를 잡는다. 작가는, 측백나무의 향의 세례를 받으면 머리가 맑아 지고 마음이 차분히 깔아 앉는다고, 한다. 무애의 동굴, 캄캄한 UZ의 지하 전시장에 어울리는 서막이다. 거이 다 자란 수십 그루의 이 나 무들은 작가의 작업실 인근 들판에 작가가 직접 심어 두었던 것들을 베여 낸 것이다. 무대의 분위기를 정화하는 목적으로 배열해 놓은 것 으로 작가의 작품의 일환으로 간주한다. 나무는 죽임을 당했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다시 갱생해 나왔다고 보고 싶다. 이 측백나무의 짧은 턴넬을 지나면 약 이백개를 헤아리는, 줄들에 엮여 늘어 서 있는 십자가 소품들이 비디오 영사기가 내 품는 직사광선을 받아 그 모습을 들어 낸다. 이 聖物 들은 비록 물질로 만들어저 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 속죄를 상징하는 이미지물로써, ‘이콘(icon)이라 부르며, 지니고 다녔던 분들의 아주 절실한 영적체험이 깊이 베여 있는 靈物들이다. 독실한 신자들이 평소 가슴에 품고 지내던 것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떨어저 나온 것들 을 작가 이윤숙이 수소문하여 찾아 낸 것이다. *수원 일대는 ‘순교성지’로써, 이조말 조선정부가 카토릭 신자들을 학살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암흑의 동굴속에 펄쳐저 있는, 實物 나무에 이어 實物 이콘들로 이루어진 오브제는, 그녀의 예술적 영감의 입김이 매우 생견하고 또한 매우 깊고 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브제의 原初性이라 할까 생명력과 더불어, 품고 있는 신비로운 傳說들을 감안해 본다면, 예술가 로써의 이윤숙을 지켜낸 토템 폴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캄캄한 동굴속에서 날카로운 빛을 받으며 천정으로부터 드리워저 있는 이 이콘들은 오브제로써 이곳에 등장하기 이전에는, 한 많은 슬픈 사연들을 품고 지내던 신자들의 혼을 달래 주던 기적의 증표들이였다. 그 앞에 서면, 말할 수 없는 아우라(靈氣)와 함께 수 많은 슬픈 이야 기들이 밀려 오는 것 같다. 여전히 실물이 갖는 위력이 오브제의 힘을 압도하고 있다. 아니 실물이 갖는 아우라가 바로 오브제속에 그대로 옮겨 앉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이콘의 오브제들은 벽면에 고정된 영사막 앞면에 고정된 검은 그림자로 변신하여, 그 앞을 요동치면서 흘 려 가는 휴전선 일대의 풍경들과 일종의 非知的 몽타쥬의 효과를 보여준다. 휴전선 일대의 풍경들이 한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세기에 걸 친 세계사적 비극의 현장임을 감안한다면, 이 몽타쥬화된 영상물은, 인류 역사의 냉혹함을 들어 내고 있으며, 비지적 엔토로피로 밖에 볼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흘려가는 구름과 바람과 시비를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벽면을 가득 채우면서 한쪽으로 흐르는 휴전선 일대의 풍경들은 동 프로젝트의 야외부분을 탐색하던 수십명의 동 료 작가들이 비디오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로 휴전선 일대를 촬영한 아카이브를 이윤숙 작가가 이콘의 그림자를 첨가하면서 보기 드문 영 상효과를 창출해 낸 것이다. 우리들은 작가가 던지고 있는 당돌하면서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물음 앞에 당도한다. 그 물음이 제대로 된 물 음인가는 관람객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고 바람이었다] – D.H 로랜스의 아내, 프리다 로랜스의 자서전
1396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800 2017-04-08
23번쩨 질. 들뢰즈(Gilles Deleuze) “差異와 表層의 哲學” 20대의 후반에 [經驗論과 主體性 – 흄에 있어 人間的自然에 관한 試論](1953)이란 저작을 물음과 동시에 들뢰즈는, 그 이후, 니-체, 베르그송, 칸트, 스피노자등, 위대한 철학자들을 개별적으로 저상에 올려 놓고, 그 철저한 讀解속에서, 자신의 哲學的營爲에 어울리는 제 개념들을 추출해 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련의 哲學史的硏究를 끝낸 후, 들뢰즈는 1968년, 최초의 주저 [차이와 반복]을 간행했다. 이는 同一性과 矛盾이란 개념을 대신하여, 差異와 反復이란 개념으로 철학사를 재 기술하려고 하는 反헤겔적인 시도로, 모-든 동일성의 철학의 근본에 있는 프라토니즘을 轉倒하는 것을 노렸다. 프라톤은 이디아와 그 직접적인 복사물인 에이콘과, 거울이나 물위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판타스마와를 존재론적으로 구별하였던 바, 들뢰즈는 이 코피-=에이콘과 시물러쿨라=판타스마 사이의 존재론적 = 가치론적 서열을 제거하려고 한다. 궁극의 근거로 군립하는 이디아를 인정치 않으며, 코피-에 대한 오리지널의 우위, 시물러쿨에 대한 코피-의 우위를 부인하고, 환영의 [載冠한 아나-키의 상태]를 찬미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겉보기이며 밀려서 다시 나오는 範型,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以上, 겉보기는 스스로의 안에서 차이를 품고, 그때 마다 반복으로 나타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차이를 차이답게 만들고 있는 것이 [强度]인데, 말하자면, 차이, 반복, 강도는 동의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西歐形而上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놀라운 아나-키즘의 등장이라 할 것이다. 동일성의 철학의 전면적인 부인은, 이성의, 데칼트적 자아의, 그리고 神의 부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모-든 권력을 부인하는 아나-키즘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미 니-체가 착수했던 그 가치전도의, 이는 라디컬한 프랑스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이와 반복] 익년에 간행되었던 [의미의 논리학]은, 루이스. 캬롤의 [거울의 나라 아리스]를 狂言돌림과 같이 쓰면서, 또한 스토어철학을 언급하면서, 의미의 장으로써의 표층을 주제로 한다. 들뢰즈가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깊다는 말이 찬사가 아니게 됬다] 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표층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1970년에 간행된 [프르스트와 시니휘에]는,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학]에 의해 거이 확립했다고 볼 수 있는 들뢰즈철학의 응용편이라 볼 수 있는 저작으로써, 여기서 들뢰즈는 차이를 산출하는 [文學機械]라고 하는 개념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1년의 [프란시스. 베이콘 – 감각의 논리]는 [나는 공포 보담 외침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하는 그 영국의 화가를 다룬 특이한 회화론이다. 감각에 직접 호소하는 형상적인 것을 베이콘의 작품에 특권적이라 보고 있던 들뢰즈는, 힘의, 밀도의, 강도의 現前化로써의 에술을 논한다. 힘이란, 우주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形으로써가 아니라, 形象的인것이 되어 現前하고 있는 것이, 베이콘의 작품이라 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적이거나 니-체적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주목해 볼 회화론이다. 들뢰즈는 1983년에는 [映像=運動]을, 1985년에 [映像=時間]을 저술했다. [영화]가 總題라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영화론인 동시에 베르그송론이기도 하다. 왜 영화론이 베르그송론인가. 그것은 영화가 발명된 것과 베르그송의 사상이 형성된 것이 동시대이며, 개념에의 운동의 도입과 영상에의 운동의 도입이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베르그송 자신은 영화적 지각이라 하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쓰지 안했다. 그 베르그송의 택스트를 적극적으로 원용하면서 많은 영화작품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 이 著作들의 재미있는 점이다. 1988년의 [주름 襞(벽)]은 [라이프닛치와 바로크] 라 하는 부제가 나타 내고 있는 바와 같이, 라이프닛치철학과 바로크예술이 [주름]이라고 하는 形象으로, 동등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차이와 표층의 철학의 面目躍如라 볼 수 있는 시도이다. 미분이나 적분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작게 매듭을 지으면서 나아가는 라이프닛치철학과 무한히 주름을 만들어 가는 바로크예술과의 유연성. 허나, [벽]은 드뢰즈에게는, 단순히 17세기의 철학이나 예술을 지칭하는 특권적형상일 뿐 아니다. [벽]은 일반적으로, 반복하는 차이로써의 표층을 가르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드뢰즈는 현대를 네오.바로크시대 라고 부르고 있기도 한다. 드뢰즈는 이러한 그의 개인의 저작 이외도, 정신분석가 훼리크스.가다리와의 공저의 모양으로 몇권의 책을 내고 있다. [안티. 오이드프스](1972), [카프카](1975), [천의 프라토-](1980)등. [카프카]는 [안티오이드프스]의 개별응용편인데, [안티오이드프스]와 [천의 프라토]는 [자본주의와 정시분열병]이란 總題하에 저술된 大著이다. 무의식은 극장이 아니고 공장이며, 생산이 행해지는 욕망의 기계이다 라고 하는 것이, 드뢰즈=카타리의 테제이다. 시작도 없거니와 끝도 없는, 무한히 연쇠되어 가면서 분열하는, 문자 그대로 반복하는 차이로써의 저작물. 이를 두고 보프철학이라 평한 사람도 있었어나 보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탈속적인 세계가 그기에는 펄쳐지고 있다. 끊임없이 유동하며 변용하는 사막, 파도의 포말이 이어지는 망막한 바다, 혹은 거대한 주름으로써의 우주. 그기서는 인간의 삶이,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 마치 유동하는 모래와 같은, 바다의 거품과 같은 접혀저 있는 주름과 같은 것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대는 언젠가 드뢰즈의 것이 될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맹우 밋셀.푸코였다. 드뢰즈는 그를 위해 [푸-코](1986)라는 책을 씃는데, 그 푸-코는 에이즈로 죽는다. 드뢰즈는 오랫동안 페를 앓았고, 車椅子의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1995년, 자댁의 아파-트의 창문에서 뛰어 내려 70년에 걸친 그의 생애를 스스로 끝냈다. 약력: 1925년 파리 태생.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배우고, 흄, 베르그송의 연구로 학구생활을 시작함. 69년 파리 제8대학 교수. 70년대부터 훼리크스.카타리와의 공동저술의 모양으로 저작활동을 행하던바, 80년대 와서는 단독으로 집필을 하기 시작하여, 회화나 영화에 관환 통찰을 전개했다. 87년에 대학퇴관. 95년 몰. 주저: [차이와 반복] 1992(년수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해). [푸-코] 1999. [벽-라이프니치와 바로크] 1998. [의미의 논리학] 1987. [베르그송의 철학] 1974. [칸트의 비판철학] 1984. [흄 혹은 인간적자연] 1980. [마솟호와 사드] 1973. [니-체] 1998.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991. [안티.오이드프스] 훼릭스.키티리와의 공저. 1986. [카프카 --- 마이너-문학을 위하여] 1978. [천의 프라토-자본주의와 분열병] 훼릭스.카타리와의 공저. 1994.
1395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951 2017-04-01
22번쩨 [쟉. 데리다(Jacque Derrida)]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베일(Veil)” [여인들은, 그럼으로 베일을 걸치기 위해 베일을 벗기는 것이다. 그들은 베일을 걸치는 수단으로 베일을 걷어 낸다]. 쟉.데리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미술평론을 쓰 본 일이 없다. 회화나 사진에 관해서 데리다가 쓴 책은 제법 있어나, 이들은 대부분 저자의 철학적 관심에 의해 쓰여진 것이며 그림이 [작품]으로 다루어 진 일은 거이 없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된 것을 들어 보면, [회화에서 찾는 진리](1978), [시선의 권리 – M. F. 브릿살의 사진 독해](1985), [基底材를 돌려 어지렵힌다 – [알트의 뎃상과 초상]의 연구](1986), [盲者의 記憶 – 자화상 내지 여타의 廢墟](1990), 그리고 에레느.시쿠스스와의 공저 [베일](1998)이 있다. 더욱이, 邦譯(일본어 역)이 없는 後二者, [系譜Lignees]는 미카엘라.에니슈의 먹(墨)으로 칠한 2백매의 뎃상의 한장 한장에 데리다가 十五行정도의 택스트([켑션](egendes))를 붙힌 것이나, 뎃상 그 자체를 논한 부분은 皆無에 가깝고, [베일Voiles]에 이르러서는, 엘런스트.비니용=엘런스트의 육매의 뎃상과의 관계가, [베일]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뻬면, 상호 어떠한 관계도 없다. 일례를 들어 보면, [系譜]의 다음의 斷章은, 데리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고 봐야지만, 에닛슈의 뎃상과는 무관계하다. ---- 부매랑, 그 기원으로 보던지, 또는 언어의 본질로 봐서 그렇다. 내가 무엇을 만하던 이것이 진리이다. 라고 하지만, 나를 反해서 이해될 수 있는 진리가 아닌가. 모-든 足炙이 나에게 되돌아 온다. ---- 만일 당신이 足炙trace des pas을 쫓는다면, 말하자면, 否認 [[족적]에는 부정의 의미가 있다]에 의해 四邊形의 圓周를 쫒는다면. 柵barrage이 통과passage의 형태일것이다. 이는 각각, 一人의 사람의 자전인 것이다]. 이는 그림을 [설명하는 legender] 문장이 아니다. 데리다의 미술비평을 생각하는 마당에서는, 작품에 대해 철학자의 택스트가 취하는, 이러한 ‘무관계의 관계’ ----- 이를 [베일]의 관계라 해도 좋다 ----라고 하는 측면을 먼저 고려에 넣어 봐야 할 것이다. [회화에서의 진리]는 세잔의 에밀.베르날앞의 서간의 일절 – [나는 회화의 진리에서 당신에 빚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점을 당신에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 라는 것에서 타이틀이 부쳐저 있다. 여기서 데리다는 세잔이 말한 [말함]이란 言語遂行的인 표현을 쓰면서도, [회화에 있어서의 진리] 그 자체를 우회적으로 말하는 데 착목한다. 여기서는 데리다 자신의 방법론이 현시되 있는바 데리다도 또한 [회화에 있어서의 진리]라 부쳐진 책에서 [회화에 있어서의 진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세잔에 대해서도 혹은 이 책에서 이름이 올려진 화가들, 아담이나 디체우스=칼멜이나 고흐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회화]나 [진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라는, [緣 태두리 board]애 헤당하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회화에 있어서의 진리]에서는, 그 영역은 [바렐콘]이라 이름을 부쳐진다. 이는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쓴 용어로, 이에 대해 데리다는, [본질적인것도 부수적인것도 아니고, 고유나 비고유도 아닌 것, 말하자면, 頟緣cadre] 이라 고 말하고 있다. [태두리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것은 놓이는 장소란 것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가]. 보시다 싶이, 데리다에게는 [額緣]을 논하는 것이 회화를 논하는 것이다. 이 경계는 묻는것의 끝이 없는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리다가 脫構築이라 부른 이론의 요지를 가르키는 思考이다. [cadre란 것은 본질적으로 구축된 것이고 따라서 뿌셔지기 쉬운 것]이면서 동시에 혹종의 유-모어를 품고 있는 것이다. 바렐콘이란 – 따라서 데리다의 미술비평이란 --- 작품에 맴도는 망령과 같은 것으로, 작품의 주변을 맴돌며 기어코 그 위치를 빼앗아 버린다. 작품이란, 데리다에게는, 어떤 종류의 [非在]이며, 우리들은 이 無가 보여주는 칼자리 밖에 볼 수 없다. 작품이 사라지고, 태두리만 남는다. 그와 같이, 없음(sans)의 痕跡이 美의 근원인것이다. 구두를 그린 반 고흐의 유명한 그림을 논할 때 도, 데리드가 주목하는 것은, 고흐의 그림이라가 보담 그 그림에 그려진 구두, 아니, 구두의 태두리이며, 그기에 그는 바렐콘을 발견해 낸다. [바렐콘]은 여기서는 아마도 내부를 외부에 묶으 주는 구두 끈은 [그 안을 통과하여, 그 밖으로 나와서, 그리고 그 중간의 어딘가에서, 그 내부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로 향해 이를 재봉합하는 것]. 고흐의 구두의 그림을 논하는 데리다의 애쿠리첼 그 자체를 시사하는 이 운동은, 고흐의 그림의 해체/구축과 동시에, 데리다의 “미술비평”을 해체/구축해 가는 것이다. 이 순수한 [切斷의 (없음)의 흔적]에는, 뒤의 논고[기저재를 맹렬히 미치게 하는]것이 아니라 알토-가 뎃상에 대해서 쓴바[基底材]라고 하는 말에 관해 쓰여지고 있다. 그렇다, 기저재란 하나의 단어인것이다]. 고흐의 구두끈이 언어인것과 같이, 데리다가 다루는 여러가지의 바렐콘 – 알트의 [기저재]도, [순수한 절단의 (없음으로)], [베일]도, 그것을 [말하는]것에 의해서만 존재가 가능해 지는 亡靈的인 존재인것이다. 바렐콘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라고 묻는 ([말하기])가 바렐콘을 존재케 한다. 그것은 말에 의해 가르키는 경계영역이며, 나타남과 사라짐의 “사이” 에서 항간 보여지는, 있음과 없음의 선과 같은 것이다. [盲者의 기억]에서는 이 도망치는 선이 뎃상화가의 선묘에 겹쳐 논해진다. 이것은 루-불미술관에 맡겨저 있는, 맹인을 그리는 선을 논한것인데, 데리다는 뎃상화가가 선을 끌 때는 “눈을 감고” 손으로 더덤는 식으로 선을 끄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문제시하고 있다. 이때 뎃상화가의 선은 무한히 후퇴해 가는 유다야.기독교적인 [否定神學]의 [보이지 않는 신]의 후퇴를 나타내는것에 이른다. [끄으진 선이란 보이지 않는다] 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그것은 점차로 가늘어저서 결국에는 사라지려고 한다]. 여기서는 저 프루스트의 [도망해 가는 알벨치느]의 베일이 나타났다 사라자곤 하는 것이다. 略歷: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엘.비알에서, 유대계 프랑스인 가계의 삼남으로 태어나다. 43년 처음으로 알제리를 떠나, 파리의 루이.루.그랑 고등중학교에 입학. 52년 에콜.놀말에 입학. 64년부터 동교의 교단에 서다. 67년 에크리첼과 차이] [소리와 현상] [그라마.토로지에 관해] 삼저를 저술. 70년대를 통해 탈구축이론의 철학자로 간주된다. 84년부터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主著: [에크리첼과 차이] 1977년 상. 1983년 하. [근원의 저쪽 – 크라마토로지에 관해서] 1972. [회화에 있어서의 진리] 1997 상. 1998 하. [시선의 권리] 1988. [맹자의 기억 – 자화상 및 기타의 폐허] 1998. [알토/데리다[뎃상과 초상] 1992. [기저재를 맹렬히 미치게 하다] 1999. [정신에 관해 –하이테카와의 물음] 1990. [시 포래도 – 파울 쯔엘란을 위하여] 1990. [他의 岬] 1993. [밧숀] 2001.
1394 no image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 전
3075 2017-03-27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 展 2017. 1차전 3.11 – 3.26 실험공간 experimental space UZ - 인류는 자신의 신체적 외소함을 극복하기 위해 腦內 뉴-런의 접합방식을 변화시켜 그 경계를 넘어(逸脫, 越境board crossing) 流動的 知性이 발생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되고 예술이 同行하였다. 여는 말: ‘ 비범한 사람의 범속한 카리스마’ UZ의 관장, 김성배는 통 큰 사람, 두툭한 뱃장, 혹은 그림쟁이들의 머슴 혹은 문명의 주변을 맴도는 아욷사이드, 바타이유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非知的 사유를 날리 수 있는, 특유한 실랄함을 감추고 있는 多層的 思考의 소유자이다. 심오한 지성을 구비한 그림쟁이 같이 보이다가도, 땅을 파 먹는 농부와 같이 양순하고 소박한 일면이 있고, 원근을 두루 헤아리며 판도를 넓게 읽으 내는 智謀를 갖추고 있다. 이러함으로 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가 매우 끌꺼려운데, 이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고, 지루하게 길고 많은 우회로를 거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사람의 됨됨이 그러하거니와 그의 미술작품 역시 어느 하나라도 쉽게 다가 오는 것이 없음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양반이 수원 복수동에 뜬검없이 UZ란 미술실험실을 조성해 놓고, 이번에는, 풍수의 냄새가 뭉클하는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란 기치를 내 걸고 이에 동조하는 많은 작가들의 구김없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어떤 기준의 맥락에서 본다면, UZ에서 실행하고 있는 모-든 전시 행사는 연속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UZ의 전시공간은 매뷔우스의 띠와 같이 앞뒤가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그림 위에 언쳐서 그러 넣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 지고 작품의 생명이라 볼 수 있는 文脈이 초시공적인 위상을 오르 내리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번 UZ 에서 선 보이기 시작한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전은, 그래서, 평소 쉽게 감지할 수 없었던, 기획자 김성배의 본색의 일부를 디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본 전시의 선언(취지문)에서 천명하고 있는 “경계를 지우는 새로운 인식]”이나, “현대예술의 자체적 부패상” “현대인류사를 제한하는 ‘경계’들을 제거하며 새로운 의식의 틀을 찾아 내겠다는” 등의 선언성 언설과 키-워드로 잡고 있는, ‘공유’ ‘연대’ ‘동행’ 이란 개념들은, 그의 내면 깊숙히 잠세해 있었던 ‘原型思考’에서 파생되 나온 사유의 泡沫속에서 잡아 온 것이고, 위탁한 작품들은 그러한 이니시에선 의식(initiation ceremony)을 함께 치루게 되는 결사 동지들에 상응하는 예술적 증표들이다. 原型思考란 인류가 탄생해 나왔던 구석기 시대의 야생적 思考 틀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21세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사고의 기층을 받치고 있는, 인식의 本質로써 이어저 오고 있음으로, 이 또한 古代적, 時空을 횡단하는 파래다임임으로 共有의 의미가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앞선 전시회평에서 부터 언급하기 시작했던, ‘Matrix’나 ‘대칭성’적 사고 혹은 ‘場的狀況’ 認識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토포로지(topology)가 바로 그것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일컬어지는 주역의 風水地理的 자연관과 맥을 같이 하는 개념들이다. UZ 전시공간의 토포그라피컬topographic한 破格性으로 하여, 참가 작가들의 작품의 개별적인 독창성이 더욱 생생히 돋보이고 있다. 공동 합의의 매트릭스망상의 群集으로 편입될 수 있는 이중성이 가능해 진것이다. 전시 기획측에서 내 걸고 있는 ‘공유’ ‘연대’ ‘동행’이란 화두는 구지 비유하자면, 메뷔우스의 띠나 크라잉 병으로 비유될 수 있다. 애매 모호하면서 서로 단단한 끈으로 묶여 있는 상태를 암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23인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좁은 전시공간에 산재해 있으면서도, 유별한 독창성을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 본다면, 관람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기)속을 유영해 나가면서 작품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을 감상할 수 있는 희안한 체험을 맛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특이한 분위기를 맛 보면서, 23인의 작가들의 작품들과 대면하게 되며, 작품을 보면서 작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을 귀로 듣고, 귀로 들어면서 ‘예술’이 품어 내는 가장 순수한 독백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작품들이 어떻게 보이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에 주력한다. 전시작품들 公有의 辨證法, 連帶의 網, 同行의 즐거움 a. 오브제와 이미지의 상관 관계가 해체되고 분열 무화됨으로써, 實 物體가,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이미지의 역할을 하는 作品群이 있다. 여기에 헤당하는 작품들은, 館主 김성배의 ‘철조망과 고추장’을 위시하여, 김수철의 ‘망가진 목마’, 최세경의 ‘포장함속의 물건들’과 맞 대면하고 있는 창고에 수용되 있는 ‘포도넝쿨’, 이성실의 자신의 이전 작품과 상면하고 있는 ‘실타레’, 이윤숙의 ‘스치로폴 함에 싸인 철조망 철사와 십자가’, 최현식의 ‘노란 색으로 반죽하여 밀어낸 흙 彫刻’, 정미숙의 ‘망속에 잡혀 있는 총기들과 혼란스렵게 색칠한 헬멧’, 김선경의 함속에 차곡히 쌓여저 있는 ‘종이 배’-작품의 함유의 뜻 이해가 어려우나, 필자는 ‘한번도 향해해 보지 못한 배들의 불만?’ 이라 해석해 본다. 이강미의 ‘휴전 합의가 성사된 일시를 표시해 놓은 벽시계와 철사’, 권태영의 자신이 책 갈피의 디자인을 맡아 그려 넣은 책 한 권. 대구에서 우송해 옴. 전시장 천정 섣가레 위에 얹혀저 있다. b.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미학원칙에 입각하여 선행 오브제를 가상할 수 있는 이미지물을 위주로 한 작품.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미젠다 강의 ‘기하학적 문양으로 잡아 낸 휴전선’. 이 작품은 전시 주제, 동행.공유.연대의 함의를 무난히 통과한 미술의 원형체험을 잡아낸 유연한 작품이다. 이영길의 흑색 무늬의 추상화. 그의 작품에서는 초현실직 비전너리로 잡아 낸 문명론을 읽을수 있는 호사를 맛본다. 김수연의 ‘얼룩무늬-카오스’ - 넓은 마포천 켄버스의 앞면과 뒷면을 먹으로 매우 혼란스려운 이미지들이 카오스를 연상시켜 주면서 걸려 있는 김수연의 작품은 우주적 카오스를 암시하며 카오스의 이전과 이후의 초시공적 일탈을 보여주고 있다. 일탈 역시 경계가 지워진 야생의 행적일 것이다. 이 작품의 됨됨은, 그 측근에 전시된, 마젠다 강의 무한히 쪼개지는 사각형 도형과 대조되면서, 공히 토포그라픽컬한 자평에 놓여 있다. 홍연숙의 지점토로 변형시킨 프레임속의 어두운 옛 이야기들. 천세영의 우주 별이 빛난다. 서로의 지점을 겨냥하고 있는 가는 줄이 암호문같이 색여저 있다. c. a와 b를 혼용한 작품 오은주의 태극문양과 그 위로 그늘을 지우고 있는 가상 비행물. 도병훈의 ‘자신의 작품속에 남북으로 나누워진 휴전선을 철사와 돌맹이들로 형상화 시킴. 예술이 현실정치의 비극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 d. 사진 혹은 영상물, 혹은 사진과 이미지와의 혼용 내지 사진과 오브제와의 혼용 김현수.在獨 작가. :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 동서양 문명의 그늘들(부정적 사건들)을 파래드하는 -비디오 영상물. -나레이선, 음악, 현장 소리로 다큐멘터리 작품. 1시간 40분 소요. 김수집의 대형 사진 작품 두 점. 사진으로 잡아 낸 인물이 자울수 있는 가장 놀라운 공포감 표정과그 위로 작가가 손으로 적색(북)과 청색(남) 페인트로 횡단하는 철조망을 그려 넣다. 홍채원의 “화성 봉화대와 인접해 있는 민가의 도단 지붕의 공존” –오래된 미래가 떠 오른다. 채희석의 ‘動畵- 붉게 칠한 화면을 배경으로 하여 움직이는 소나무 한그루가 이야기를 들려 준다.’ – 이는 사진기로 촬영한 비디오 작품이 아니라, 카메라로 한장씩 찍은 스틸 수천장을 접합시키면서 움직임을 표현한 것으로 총 2시간 40분 소요, 제작기간 6개월이 걸렸음. 기계식 자동 촬영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한 그루의 소나무를 아주 느리게 잡음으로써 아나로그의 修行性 작업을 선택한 매우 드문 제작 방식. 예술이 되기 위한 오체투지의 기원이 엿보인다. 비디오 작품과는 전혀 다른 호흡이 느낄수 있음. 전시 주제의 한 가닥, 땅을 밟고 걸어 가는 리듬. “동행”의 의미가 살아 나온 작품. 유지숙의 사진 두점. 금이 간 땅과 무수한 팔랑개비. e. 순수 공예: 박정란의 반지들. 투명한 물체속의 꽃들. 공예적 예술 작품. 참조: 2부에서는 휴전선 주변에서 잡아 낸 퍼포먼스등 여러가지 예술적 행사들 이 이어집니다.
1393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740 2017-03-21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1번쩨 로-랑.발트(Roland Barthes) “Signifiant, 혹은 도망가는 알벨치-느” ‘디-도로’ 나 ‘보-드렐’의 선례를 들 필요도 없이, 프랑스에서는 작가나 시인이 미술비평을 쓰는 전통이 있다. 문예비평을 본래의 필드로 삼고 있던 로-랑.발트의 미술비평 역시 이러한 례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의 경우, 미술비평을 傍系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 있었던 프레히도의 연극평부터 시작하여, 1980년에 발행된 遺著가 된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노-트]에 이르기 까지, 발트는 미술비평을 일의 중심에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라고 하지만, 발트의 모-든 작업에 대해서는, “類別困難”이란 문제가 따라 붙는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이고, 어떤 것이 방계의 일인가를 단정할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본래의 작업의 ‘옆에서’ 쓰는 일만 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는지 도 모른다. 발트의 최대의 공적은 류별하기 힘든 작품 – [택스트], 혹은 [에크리첼]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것들, - 을 남겨 놓은 것에 있다. 그러함으로 그를 [문예평론가]의 카데고리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 歿後, 발트의 미술과 음악의 논집 [자명한 의미와 둔한 의미](1982)를 편한 프랑스와.바-르는 그의 미술론을,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작품] 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말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운 애매함, 이중성, 잡아내기 힘드는 점들은 발트의 결점이라기 보담 그의 현대성의 증표이며, 그의 엣쎈스를 이루고 있는 분명한 美質이었던 것이다. 主著의 하나인 [밝은 방]만 해도 이를 미술비평의 책으로 범주화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진론이며, 죽은 어머니의 상을 추도한 책인 동시에, 자전의 한 단장이다. 바야흐로, 형용할 수 없는 책. 사진이 미술인가 아닌가, 불확실성을 띠우고 있다. ‘아지에’와 같은 매우 심각했던 예술사진家라도 생전에 자신은 그저 예술가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은 자신의 예술성을 “잊으 버릴 때” 예술이 되는 성질을 갖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사진은 회화이상으로 출처가 수상한 것이며 바로 이 수상한 출처에 사진의 매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적으로 부유하는 미디어이며 예술이라 하드래도 [복제예술](벤야민-19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표류하는 사상가” 로-란.발트가 사진을 좋아 했던 것은 당연하였던 바, 그는 사진에 자신을 묘사해 보았다고 할 수 있음으로 그런 의미에서 [밝은 방]은 自傳이라 부르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리라. 죽은 그 해에 발표된 팝.아-트론 [이 오래된 것들, 예술….]에서도 위-홀이나 리키덴슈타인의 작품에 관해서, [이러한 작품들의 철학적인 의미]는 라고, 발트는 쓰고 있다, [현대적인 사상은 이를 표현하는 사회적인 코-드 이외 본질을 갖지 않는 것이며, ---- 그 결과ㅡ 실재적으로, 이들 사물은 더 이상 결코 (제조하는 일 없이), 즉자에 [복제되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복제라고 하는 것은, 현대성의 존재인 것이다. [존재]는 이미 [복제]이며, 기원에서부터 끊켜저 나온 표류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또, [시니휘안Signifiane]이라 명명한다. [시니휘안은 존속하고, 잔존한다, --- 비록 그것이 무로 돌려지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시니휘안이란, 무엇인가? 쉽게 한마디로 말해 본다면, 항간 보여젓던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고에 의해 增大된 것이다,라고]. [밝은 방]에서는, 당연하게도 전반에는 나다-르부터 메이블쇼프에 이르는 예술사진이 咀上에 올려저 있는바, 책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무명의 사진가가 찍은 발트의 모친의 다섯살 된 때의 사진이다. 그는 그기에 막 돌아 가신 어머니의 어김없는 현존과 동시 부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항간] 보여지는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고에 의해 증대된 것], 즉 SIGNIFIANT인 것이다. 나타나는 것과 살아지는 것, 발트는 [온실의 사진]에서 모친의 출현과 소멸을 본 것인데, 그가 그 비평활동을 통해 추구해 왔던 것이, 그러한 존재와 부재가 서로 등을 맞덴 표상에 지나지 안 했던 것이었다. 사진이 그 대표적인 例이다. 그를 생애를 통해 인도해 왔던 작가, 프르스트의 [도망 가 버린 알벨치-느]를 따라 [온실의 사진]에 나타났던 모친의 환상을, 바르트는 [알벨치-느]라 불려도 무방하리라. 미술논집 [자명의 의미와 둔중한 의미]란 표제가 잡혔던 [에이젠슈태인의 포-트그람에 관한 노-트]라고 하는 부제를 부친 논고, [제3의 의미]에서는 콤뮤니케이션의 레벨와 의미작용의 레벨에 대해, [제3의 의미]가 대치되어, 그것은 자명의 예리한 확실한 의미에 대해서, 둔중한 어리둥절한, 애매한 의미, [도망가는]라고 되 있는 것이다. 발트가 에이젠슈테인의 영화가 아닌, 그 영화의 스틸사진을 비평의 대상으로 한 것은, 사진이 갖는 “도망가버리는”의미에 대한 기호가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포-토그램은 말하자면 단편으로써의 영화이며 스토리가 되는 전의 단계에 머문 [로마네스크]적인 것, 바르트가 좋아 했던 하이구나 일기와 같은 것이다. [제3의 의미는 나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첨가물supplement와 같은 것으로, (여분으로) 다가 왔던 것으로, 간고하며 잡을 수 없는 매끄려운 동시 도망가 버리는 것으로 이를 나는 둔한 의미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뎃상화가의 에르때에서 그가 본 것도 바로 이, signifiant가 다음의 signifiant를 불려 내고 멈추지 못하는 연속의(도망의) 운동이 였었다. 마찬가지로, 도온브리의 [에크리첼]의 [모라리테]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것이 아무것도 잡아 내려고 하지 않는 것, 멈추고 뜨 다니며 욕망사이로 표류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들 뎃상, 이들의 에크리치엘속에서 [도망가는 알벨치-느]의 환상을 쫒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약력: 1915년 셀불에서 탄생. 생후 2개월에 프랑스의 남서부 바애용으로 옮겨 1924년 이후 파리에서 살다. 1953년 최초의 저작물, [零度의 에크리첼]을 출판. 기호론자. 구조주의자. 뉴-벨 크리치크의 비평가로써의 활동을 개시하다. 1973년 택스트의 쾨락]으로 비평가 발트는 斷章형식을 구사하는 작가로 대변신 한다. 이후 [그 자신에 의한 로란 발트] [연애의 디스쿨.단장] [밝은 방] 의 三著는 로마네스크 삼부작]이라 불리기도 함. 1980년 교통사고로 인하여 不慮의 죽음을 당함. 주저: [영도의 에크리첼] 1971. [밝은 방] 1985. [제3의 의미] 1984. [그 자신에 의한 로-란 발트] 1979. [연애의 디스쿨.단장] 1980. [택스트의 쾨락] 1977. [문학의 기호학] 1981. [기호학의 모험] 1981. [舊修辭學] 1981. [택스트의 출구] 1987.
1392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874 2017-03-14
[현대사상과 미술] 씨리즈 20번쩨 밋셀.레리스(Michel Leiris) “피카소 부터 베-이콘으로 이르는, 창조행위로써의 批評” 1984년 파리의 국립근대미술관에서는 [칸. 와일러-=레리스. 커랙션]전이 개최됬다. 이는 [피카소의 畵商]으로 이름이 높았던 칸-와일러의 歿後, 유산상속인인 밋셀.레리스가 기증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피카소, 브라크, 미로, 맛슨, 쟈코메티, 크레-, 베이콘등의 작품,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 오세이어등지의 오브제를 포함한 그 커렉션은, 그 규모나 개개의 예술가의 네임 밸류-란 점에서, 미술관에의 기증의 역사에서 특필할 중요성을 띠우고 있었다. 화가의 아뜨리에란, 프라이베이트한 환경에 있었던 것이, 화랑으로 운반되, 이내 미술관을 무대로 하는 공공의 커랙션으로 변화하는 점에서도 20세기미술의 하나의 운명이 반영 되 있는바, 그기에는, 소위 말하는, 모던과 프리미티브란 두나의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거이 같은 시기에 뉴-욕의 MOMA에서 개최되었던 [20세기미술 속의 프리미티즘]展에서, 르불미술관에서의 [아-르.브르미에]커렉선의 전시에로, 收集과 展示의 原理, 더욱이, 이를 지탱하고 있는 [미술]아라고 하는 서구적 관념 자체의 問題化가 이루어지려는 움직임에 눈을 돌린다면, 레리스도 또한 이 크다란 문제와 마주 했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리스는 妻 루이즈를 통해 칸와일러와는 의리의 부자간에 헤당하는 관계였다. 20세기미술의 움직임을 바로 옆에서 봐 왔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매우 합당한 場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레리스가 의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은 크다. 그의 피카소론은 그 유산위에서 성립되 있다. 허나, 이 커렉션이 유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일례로, <밋셀.레리스의 초상>이라고 제한 프랑시스.베이콘의 유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쉽게 상상이 간다. 그기서 우리들이 인정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디폴메된 얼굴의 표현인데,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것 사이에 이루어지는 독자의 대화가 있다. 리얼리즘이 아니고 리얼한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디폴먼,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베이콘의 사고는 [迫眞的인 외침]이라 하는 레리스의 말에 의해 다시 번의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파카소를 포함하여 20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들의 손에 의해 이렇게 많은 수의 초상화가 그려진 시인=작가도 진귀한 것이다. 더욱이 초상화가 그려내는 것이, 위기에 처한 자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쟈코메티는 자살미수직후의 레리스의 모습을 그리고, 맛슨은 턱에 손을 데고 테이블 위에 있는 사이코로(주사위의 일본말)를 던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화가와 작가 시인을 잇는 것은 위기적 순간의 표현이다. 위기속에서만이 극한적인 생의 진실이 계시된다는 발상은 이미 [도큐만]지에 게재되었던 그의 쟈코메티론에 나타나 있다. 레리스는 문자 그대로 화가의 아트리에에서 詩作을 시작했다. 말라르메의 [사이코로 던지기]의 기억을 환기시켜주는 시편을 레리스가 쓰고, 일곱점의 석판화를 맛슨이 제작한다. 여기에 [시뮬라크르simulacrum]]라고 제목이 붙은 소책자가 태어나는데, 시인은 후에 그 성립사정을 감안하여 이를 완전히 맛슨의 아트리에서 쓰여진것이란 것, 더욱이 석판화는 단순히 시에 대한 이르스트로써 삽입된 것이 아니라, 그 소책자는 둘이 대등한 자격으로 이루어진 공동제작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가 작업을 이루어지는 순간, 켄버스와 연필, 종이와 펜이나 혹은 목탄과 닿는 일순간을 지켜 보며 여기서 일어나는 드라마를 잡아 내려고 하는 시선은 레리스 특유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가의 아트리에를 언급함에, 폴-봐레리가 드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여준 審美家의 특권적인 시선은 레리스에게는 무연한 것이었다. 레리스의 택스트는 소위 말해지고 있는 [미술비평]이란 쟝르에는 맞지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가 그 가치를 인정했던 예술가의 탐구에 접근을 시도하며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발상하는 에너지를 나의 몸으로 받아 내면서 그 등가물을 이번에는 자신의 문장행위속에서 만들어 가려는 그 자세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레리스 독자의 [언설]의 참모습이었다 할것이다. [鬪牛鑑] 혹은 [성숙의 년령]의 서문에서 레리스는 문장행위를 鬪牛에 비유하는 것을 바탕에 두고 그러한 위험한 도박적인 성격을 표현하려고 했던바, 그 배후에는 표상이 아니고 작품생성의 과정 그 자체에 육박하려는 의식이 깃들어 있다. 한장의 그림과의 만남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이루는 순간은, [성숙의 년령]의 그라낫하가 그린 나체화에서 얻은 자극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하고 있는 점을 위시하여 널리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고 있다. 여기서 레리스의 조형적사고와의 만남의 특질을 구지 요약해 본다면 이하의 두점에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핵은 [슈리얼리즘의 혁명]誌 내지 [도큐만]지와의 관련에서 얻은 1920년대 [아방가르드]운동에의 참가의 체험에 있다. 다른것에 앞서 맛슨의 모래그림 혹은 선의 움직임, 쟈코멧티의 夢魔的인 오브제등에 대해 언급함으로 해서 그는 거이 동세대 가운데서 리얼란 것이 疑縮되어 物質化되는 순간을 잡아 내려는 것 같이 보인다. 집착도 또한 하나의 요소가 된다. [어제 움직었던 모래가…..]에 나타난 쟈코멧티의 꿈의 기술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맛은 잊기 힘든 것이지만, 레리스역시 생애를 통해 꿈의 記述을 이어갔으며, 그기에서는, 말하자면, 그 자신의 꿈의 오브제의 기술도 찾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핵은, 민족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레리스는 [民族誌家의 눈]이라 제한 문장을 [도큐만]지를 위해 쓰고 있다. 아프리카에로의 민족지조사여행에 앞서 쓰여진 것인데, 여기에는 서구적인 視座를 떠나, 아방가르드예술운동이 체현하는 모던의 외부로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이 인지되고 있다. 단 민족지 및 인류학에의 본격적인 작업속에서 프리미티브한 것에 대한 성급한 동경은, 표리의 인종적편견이 아니였었나 라고 하는 반성적인 태도를 포함하여, [미]와 [용]의 상극을 여하히 잡아 내는가 라고 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해지는 [도큐만]지와의 상관에서 [흑인아프리카의 미술]간행에 이르기 까지 그가 마주했던 문제는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略歷: 1901년 파리 생. 초기 슈-리얼리즘운동에 참여함. 바타이유와 다불어 [도큐만]지 편집에 참가. 이후 다갈=지브찌민족지조사여행(31-33)을 거처 민족지를 배우고 이후 파리 인류박물관에서 근무. 전후 한 시기 사르틀 주재의 [레.딴.모델누]지와 관계를 갖다. [성숙의 년령]을 시작으로 [게임의 규칙]전 4권을 통해 자전적 작품을 쓰다. 詩作과 민족지연구라고 하는 이중활동에서 생기는 갈등이 이 작가의 원동력이었다고 사료된다. 90년 몰. 主著: [셩숙의 년령] [환영의 아프리카] [투우감] [밤없는 밤, 낮 없는 낮] [獸道} [흑인 아프리카의 미술] [피리와 외침] [오람피아의 턱의 리본] [피카소. 쟈코멧티. 베-이콘] [문화해체의 상상력 – 슈-리얼리즘와 인류학적 사고의 근대]
1391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912 2017-03-09
[현대사상과 미술] 씨리즈 안도레.브르톤(Andre Breton) “눈은 野生의 狀態에서 存在한다” 안드레 브르톤은 [슈-리얼리즘宣言](1924)에서, 슈-리얼리즘을 [마음의 순수한 自動現像], 모-든 이성적 컨트롤을 排除한 [사고의 받아 씀]이라고 정의했다. 그것만으로는 슈-리얼리즘은 언어의 차원에서만의 문제제기라고 생각 되었는데, 더 나아가서 브르톤은 자신 스스로 체험한 것을 例示하면서, 언어의 생성과 궤를 같이 하는 [멍청한 시각표현], [매우 특수한 회화성]등을 다루고 있는데, 詩的 상상력에 있어서의 視覺性의 문제를 의식적으로 열려 있는 상태로 두는 듯 보인다. 그리고 하나의 注에서는, 다음과 같이 화가의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다. [옛날에는 웃체로, 근대에 와서는, 쓰라-, 규스탑.모로-, 마티스, 드랑, 피카소(특출하게 순수하다), 브라크, 뒤샹 ,피카비아, 기리코, 크레-, 만.레이, 막스.엘런스트, 안드레.맛슨]. 같은 해인 1924년에 간행된 [슈-리얼리즘혁명]誌의 창간호에, [매혹된 눈]이라는 짧은 엣세이를 발표한 막스.모리-즈는, 시적 언어와 같은 [슈-리얼이즘적조형]의 가능성을 묻고, 대상을 뺀 형태와 색체가, [일체의 숙고를 피해, 모습을 나타내는 동시에, 스스로 되고, 스스로가 뿌셔지는 법칙]에 의해 조직되는, 그러한 회화를 그려 보여주었다. 그런데, 모리-즈의 이러한 문장에 대해서 [슈-리얼이즘혁명] 제3호(1925)에서 피엘나뷜은 이렇게 단언한다. [이젠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슈-리얼리즘 회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의 몸짓에 맡겨진 연필의 선도, 꿈의 현상을 따라 그린 화상도, 가지 각색의 공상도, 슈-리얼리즘 회화라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나뷜은 오-토마티즘의 조형적가능성을 분명히 부정한 것이다. 브르톤이 [슈-리얼리즘혁명]제4호부터 [슈리얼리즘와 회화]룰 연재하기 시작한 배후에는, 직접으로는, 나뷜의 이 발언에의 반박이 있었던 것이다. 브르톤은 同誌의 제3호까지의 편집책임자였던 나뷜 그 사람과 벤쟈멘.바레를 대신하여 제4호부터 스스로 편집에 나서서, 1929년의 최종 제12호까지 이어갔다. [슈-리얼리즘와 회화]의 연재는, 1928년에 일단 하나의 책자에 정리하여 간행되었다. 드.키리코, 엘른스트, 만.레이, 맛슨, 미로, 단끼-, 알프등이 소환되었는데, 브르톤이 누구보담 먼저 피카소를 주제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들을 생각케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冒頭에, [눈은 야생의 상태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야생의]이라고 하는 단어는, 지금은 레비.스트로우스의 [야생의 사고](1962)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게 하지만, 허나, 브르톤은 이 말로, 眼前에 직접적으로 현전하는 지각세계에는 잡히지 않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 같다. [느낌의 여러가지 단계]에 언급한 후에, 브르톤은 눈을 뜬체, 눈을 감은채]라고 하는 표현을 쓰고 있다. 눈을 뜨고, 眼前의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는 문제가 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눈을 감은채]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브르톤은 [우리들의 전면적인 프리미티브즘 앞에서 견딜 수 있는 예술작품은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어가고 있다. [프리미티브즘]이라고 하는 표현에는 종래의 미술사적사용법과는 다른 [人類學]적인 뉴앙스가 들어 있다. 브르톤을 위시하여 슈-리얼리스들은 레뷔.뷰리얼의 저작을 침독한것으로 전해진다. 꿈이나 토-테미즘이나 融即의 법칙을 설하는 이 인류학자의 [미개의]라고 하는 말솜씨가 브르톤의 [프리미티즘]을 반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근원적으로 프레이져-의 [金枝篇](1890년이후)의 기술도 알려지지 안했을 리 없다. 여하튼, [야생의 상태에서 존재하는]눈, 혹은 [프리미티즘]란, 인류학적 문맥에 촉발되면서도, 보다 더 원칙적으로, 가시적인 것과 불가시적인 것,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지각과 상상이라고 하는 이원론을 해체하는 기본적인 구도를 의미하는 말일 것으로 본다. 1965년에 간행된 大著[슈-리얼리즘와 회화]는, 종래의 엣세이-이후의 브르톤의 미술론도 포함한 , 슈-리얼리즘에 관한 第一級의 자료이다. 오-토마티즘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 갈것인가, 그것에 의해 어떤 작품이 슈-리얼리즘의 권역에 들어 갈것인가 가, 본서에 의해 충분히 밝혀 질것이다. 브르톤의 비평가로써의 눈의 비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브르톤은, 1957년에 쥬랄.르그랑과의 공저의 형식으로, [魔術的藝術]이라고 하는 놀라운 大著를 내고 있다. 기이하게도 홋게의 [미궁으로 잡히는 세계]가 독일에서 공간된 해다. 복간판에 보내진 르그랑의 서문에 의하면, 브라톤이 1955년 12월에 르그랑에 본서의 계획을 밝히고 협력을 요청했다고 한다. 양자의 협력관계의 내실은 상세히 밝혀 지지 안 했지만, 이를 기본적으로 브르톤 자신의 저작으로 봐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내용은, 단순하다면 다순한 것으로, 브르톤의 테-제는 다음과 같다. 예술은 그 기원을 마술에 두고 있다. 예술을 탄생시킨 마술을 스스로 재생시키는 예술을 [마술적 예술]이라 부른다. 이 태제에 입각하여, 브르톤은 원시적미술에서 슈-리얼리즘에 이르는 미술사를 재편성하려 한다. [슈-리얼리즘와 회화]에 비해 보다 완만한 大河와 같은 저작이라 봐도 좋으나, 그 [야생의 상태에서 존재하는] 눈, [프리미티브즘]이 양식사와 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밣혀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슈-리얼리즘은, 지금에 와서도 역시 하나의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르톤의 저작은 다시 해석되지 않으면 안된다. 略歷: 1896년 프랑스, 올르느현 당슈브레 생. 정신의학을 배움. 슈-리얼이즘의 주창자이며, 지도적 이론가. 1919년 오-토마티즘에 의한 詩의 창작방법을 발견함. 또한 짜-라와 더불어 파리의 다다운동에도 참가. [슈-리얼리즘혁명]지를 중심으로 많은 실험을 행하고, 그 이후, 비교적 경향을 강화한다. 대전중에는 미국에서 지났으며, 전후에도, 잡지나 전람회에서 슈-리얼이즘을 지속시켰다. 66년 몰. 主著: [슈-리얼리즘와 회화] [마술적예술] [브르톤 슈-리얼리즘을 말하다] [슈-리얼이즘이란 무어인가] [슈-리얼리즘 선언:녹는 물고기] [광기의 사랑] [通低器] [나-쟈] [슈-리얼이즘의 번모-마르셀.뒤샹과의 공저] [슈-리얼이즘 강략사전]
1390 no image 18 번쩨: [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3131 2017-03-05
에우헤니오. 돌-스(Eugenio D’ors) 20세기 예술에 깔리게 되는 바로크槪念 에우헤니오.돌-스는 그의 [바로크論](1935)에서, [바로크개념의 재검토야말로 미학에 있어서의 가장 흥미있는 오느날의 테-마의 하나이다]라고 쓰고 있다. 실제로 20세기 예술의 바로크개념과의 관계를 뻬고 고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아포리즘은 색을 바래게 하기 보담 더욱 더 그 윤곽을 뚜렸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돌-스는 1923년에 간행된 [프라토미술관의 3시간]에서 이미 주목 받을 바로크론을 전개하고 있다. 아돌프.폰.힐데브랜드가 예술작품이 의거하고 있는 가치를 建築的價値와 機能的價値로 구별을 한 것을 이어받아 돌-스는 전자를 空間的價値, 후자를 表現的價値로 바꾸면서 이들에 상응하는 형식을 [무겁게 깔아 앉는 폴름]와 [비상하는 폴름]로 보고, 전자에 至上權을 부여하는 경향을 고전주의, 후자에의 信仰을 바로키슴라 불렸건 것이다. 예술작품은 모두가, 두개의 가치를 가지 각색의 조합으로 만든 것인데, 가장 순수한 공간적가치와 표현적가치를 양단에 둔다면, 건축, 조각, 회화, 시, 음악이라는 순서로 예술영역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된다. 크라시시므수란 음악이 시의, 시가 회화의, 회화가 조각의, 조각이 건축의 양상을 띠우게 되는 것으로 (다시 말해 본다면, 무겁게 깔아 앉는다) 보고, 바로키슴이란 그 역으로 [飛翔하는]것으로 잡았던 것이다. 12년후에 쓰인 [바로크론]은, 돌-스 자신에 의하면, [自傳風의 소설][하나의 <카데고리>에 점차 매혹되 간 한 사나이의 사랑의 모험담]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여기서 돌-스는, 뷀프린[미술사의 기초개념](1915)이래의 크라싴과 바로크의 양식논적 대립의 의론을 급진화시킨다. 양자는 시대와 지역을 묻지 않고 근원적으로 대립하는 것의 [歷史的常數], [아이온ion]이라 한 것이다. 말하자면, 종래의 바로크론의 입장이, (1) 바로크는 일시기의 현상이며, 그 탼생, 쇠퇴, 및 종말은 17세기부터 18세기에 헤당한다. (2) 그것은, 건축과 몇 개의 극소수의 조각 혹은 회화분야에 한정된 현상이다. (3) 그 현상속에는 어떤 병적인 양식이나 괴귀함과 악취미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4) 그래서 그것이 만들어 내는 것은 르넷상스의 고전양식을 파괴한 것 같은 종류이다. 라고 하는 네개의 定式에 수용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들에 대해서 돌-스는 다음의 네가지 정식을 대치시키는 것이다. (1) 바로크란 아렉산드리아학파라던가 대항종교개혁시대라던가 [세기말] 즉 19세기의 끝자락이라고 말한, 상호 매우 떨어진 시대에 되푸리하여 나타나는 역사적常數이며, 그 나타남은 서양, 동양을 무릅쓰고 또 가장 이색적인 지역에서도 보여지는 것이다. (2) 이 현상은 단지 예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전체, 나아가서는 넓은 자연형태에 걸치고 있는 것이다. (3) 그 성격은 정상적이며 만일 병적이라 한다면, 그것은 미슈-레가 [여성은 영원한 病人이다] 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4) 고전주의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 짚은 것이며, 바로크는 로망주의보담 더 근본적인 모습으로 고전주의와 대립하는 것이며, 한편, 로망주의는 이미 바로크상수의 역사적전개의 과정상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돌-스는 시대양식으로써의 바로크觀을 배격하고, 고전주의에 근원적으로 대립하는 아이온으로써 바로크를 고전주의의 소매로부터도 벗어 냈던 것이다. 이러한 바로크의 본질을, 돌-스는, 汎神論, 力動性, 多極性, 連續性등의 낱말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본다면, 그것은 크라싴의 패쇠된 체계, 대위법에 대한 열려저 있는 체계, 돈주곡형식이며, [理性]에 대한 [生命]인것이다. 돌-스는 최종적으로 [속] 바로크스의 [종]을 22종이나 열거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르넷상스와 대비되는 역사적바로크는, 그 안의 일종 [바로크스.도리덴티뉴스, 혹은 제스티크스], 즉 [도리엔트공회의바로크] 혹은 [예스회바로크]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한다면, 마니에리슴은 [바로크스.마니에라]로써, 로고고는 [바로크스.로고고]로써 로망주의는 [바로크스.로망티크스]로, 더욱이, 19세기말 예술사조는 [바로크스.후이니세크라리스]로써, 모두 바로크속에 엮어 넣는다. 이 [세기말 바로크]에는 와그너, 로댕, 랑보, 피아즈리, 베르그송, 윌리엄.제임즈, 로-도레아몬, 디.제프산토, 그리고 [아-치나 포물선, 蘭의 器의 식물적인 양식], 바로 아르.뉴보가 들어간다. 돌-스는 20세기 예술의 문제에 관해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안치만, 바로크의 양식개념에서 말해 본다면, 類型槪念으로 확대한 점에서 그 이후의 예술론에 심오한 영향을 입혔다. 일레로, 우리나라(일본)에서도, 谷川澈三에 의한 [죠몬적 원형/칭생적원형]의 의론등은 분명히 돌-스의 바로크론이 그 배경에 있다고 본다. 시대도 영역도 불문하는 아이온으로써의 바로크는 우리나라(일본)에서의 죠몬적인것의 체현된것으로 봤을는지 모를 일이다. 밋셀.마페죠리의 [표상의 꾸김](1990)이란 책은 [세계의 바로크화]를 논하면서 [포스트.모던.바로크]이란 표현을 사용하기에 이르고 있다. 20세기 세번쩨의 바로크스種이란 것이다. 허면, 이 [포스트 모던.바로크]와 돌-스가 말하는 [세기말 바로크] 사이에, 당연히 [모-던 바로크]란 것을 상정해 봐도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크리멘트.크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와 바로크라’는 말로 지시한 일이 있다. 그에게 크라싴/바로크의 대립은, 필렌체파/베내찌아파의 대립과 겹쳐 봐도 좋을 듯 하며,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바야흐로, 바로크개념의 재검토가 과제로 대두되지 않으면 안된다. 약력: 스페인 바로세로나 태생. 스페인의 사상가, 문명사가, 교육학자. 바로세-로나 대학, 마드리-드대학, 솔본느 코레즈.프랑스등에서 배움. ㅡ페인을 대표한 지식인으로써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미술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54년 몰. 주저: [바로크론] [프라드미술관의 3시간] Poussin y El Creco. 1923 Cezanne Aguilar. 1924 L’art de Goya. 1928 Picaso Aguilar. 1931
1389 no image [벌, 나비 수원산책]전
2936 2017-02-27
“벌, 나비 수원산책”展 실험공간 UZ -2017.2.11-2.26 [UZ]는, ‘전시공간'이라 하기 보담, 어떤 음밀한 결사체가 비밀리에 뫃여 時流에 逆行하는 내밀한 음모를 획책하는 지하 동굴과 같은 장소(아지-트underground)이다. 그 아지트의 명칭으로 쓰고 있는 ‘UZ’란 엠브렘(emblem)은, 우주란 한국말을 알파벳으로 소리 나는 데로 ‘u-zu’로 표기한 것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실험공간(experimental space)’이란 말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으나, ‘매우 열려있는 場’ 개념으로 읽힌다. 열려 있다는 것은 모-든 것으로 향하고, 모-든 것이 혼융되면서, 물음이 있을 뿐 답이 보이지 않는 수수꺼기 같은 [현대미술]을 실험해 보는 장소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술전시관 치고 매우 거대담론적 명칭이다. 이 별난 ‘소우주’ 에서, 대구로부터 원정 나온 작가 11명을 포함하여 수원에서 아웃사이드적인 별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가 12명이 영합해, “벌, 나비 수원산책” 이란 전시 가 연출되고 있다. 전시제목 역시 우주의 카오스적인 프랙털한 점을 떠 올리게 하면서, 상징 기호의 명칭으로는 ‘애매’하게 다가 오는데, 방문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보기에 따라서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서서, 미술작품을 ‘觀賞하는 실험’도 요구하고 있다. 전시 공간과 작품이 명확하게 따로 분리되 있지 않기 때문이다. 館主는 관주대로 展示方法을 놓고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전시공간을 획책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캄캄한 동굴과 같은 지하실로 발을 옯겨 놓으면, 전기불을 켜야 한다. 주변 경광은 소위 화이트 큐-브로 알려저 있는 깨끗하고 질서가 잡혀 있는 미술전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공사중인 現場과 같이 벽면에는 색칠한 안료가 건조하면서 입을 벌리고 있고, 이전에 전시했던 작품들의 잔영들이 지금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과 나란히 이곳 저곳에서 얼굴을 내 밀고 있기도 한다. 이는 중첩그리기도 아니고 新舊가 혼재하고 있는 것임으로, 관람을 고의적으로 혼란스렵게 하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듯 하다. 뿐만 아니라, 접수대로 쓰이는 테이블이나 의자들, 벽에 붙어 있는 게시물들이 작품인지, 비품들인지 구분 짖기 어렵고, 이런 상례를 벗어난 기이한 同居로 인해 분명해 지는 것은, 전시공간을 하나의 ‘장’으로 간주함으로 해서, 총체적으로 ‘모순’이나 ‘애매함’을 배제하지 않고 삼키고 있다는 인상이다. UZ의 전시공간 자체가 모순을 삼키며 이를 창조적으로 되살려 내는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한다는 의도 말이다. 그래서 “벌, 나비 수원산책”展에는 23인의 작가들의 작품 23개가 선을 보이고 있는 위에 추가로 전시장이란 ‘작품’이 덧붙혀저서 24개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추가로 나온 작품은, 23개의 작품들을 모두 나름의 위치로 자리를 잡아 주면서 자신은 무대의 뒷켠으로 숨어 버리는 매트릭스적 網역할을 하는 실험공간 [우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작가들도 ‘대구 작가’ 가 반수를 차지하고 있어니, 이건 집단 遠征이다. 전시 작가들을 큐-레이팅하는 것도 실험하기 시작한 것 같다. 수원작가들이 여반을 채우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나, 모든 작가들이, 자기 작품의 됨됨에 따라 자유롭게 그 자리를 찾아 안착해 있다. 어떤 작품은 천정 석가레 위에 얹혀저 있고, 게시판 위에 예쁘잔하게 얹혀 있는, 이영길이란 작가의 패가 마치 숨박꼭질하듯 숨어 있다. 그의 작품은 이름을 보지 않아도 짐작을 할 수 있는 낮익은 이미지로 ‘초현실적인 팬던트(pendunt)’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쪽 구석에 쓰레기 뭉치와 같이 버려저 있는 말라 비트려진 포도나무 가지들은 館主 김성배의 작품이다. 자칫 쓰레기로 오인하여 갓다 버리지 못하도록, 작가는 빛을 내고 있는 금색으로 가지에다 덧칠을 해 놓았다. 김성배의 작품은 우리 생활주변의 물체들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기 때문에 이 또한 쉽게 아이덴티화이가 된다. 그의 物 오브제도 평범한 물을 가장한 초현실적 傹(mirror)으로 풀이해 봐야 맛이 난다. 전시장 한 가운데, 무수히 많은 깨진 유리병의 파편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한 가운데 이 또한 무수한 못질을 해 놓은 통나무 기둥이 세워저 있는 작품은 대구의 김결수 작가의 작품이다. [내 가슴에 못을 밖는 구나!] [산산히 뿌셔진 이름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러한 절규로, 구제할 길이 보이지 가 않는 현실을 그대로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스윗치를 누르면 바닥밑에 설치해 놓은 불빛이 작품의 중심부에서부터 동심원으로 빛이 흐른다. 이로 인해 작품이 갖는 산만한 가학(sadism)적 이미지가 하나의 전체로 통합되는 아름다운 조화로운 느낌을 안겨 주는 광경으로 바뀌면서,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이 작품은 참가 모-든 작가들의 내적 필연으로 와 닿는 의미와 공유하면서 조형미술의 세계에서 ‘속죄’와 ‘구원’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풀어 내고 있다. 이러한 무질서해 보이는 전시 방식은, 일종의 狀況美學이나 矛盾論理의 증표로 간주할 수 있는데, 演繹的 사고가 아니라, 일즉다의 歸納하는 파라다임으로 不一不異로 잡히는 방식으로, 전시공간의 특이성과 함께, 합리성을 넘은 二元性一元論이라고 하는 자체적으로 모순된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순을 병치 대극하는 것이 아니라 삼킨다. 皆是皆非나 호모몰피즘homomorphism의 논리가 그렇다. 여기서는 23인의 작가와 작품들이 만들어진 축을 心으로 보고 이를 分介하면, [異體同形]의 고리가 생성되 나오도록 획책하는 것이다. 모두가 옳고 또한 그르다. 모두가 서로 다르면서 같다. 라고 하는, 主客未分化된 環境一體적 [매트릭스Matrix]적 고리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 주체와 객체의 구별을 넘어 서는 Matrix적 차원사고와 동시에 대칭성적 사고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독해가 불가능 하던가 불완전해 진다. 불교권에서도 화엄경에서 이와 같은 귀납적 인식론이 정립되 있는데, 一即多나 개시개비를 體現하는 [無] 즉 [空] 즉 ‘眞如’로 잡아 보는 우주관이 바로 그것이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세계다. 매트릭스란 것은 인류의 사물 인식의 원초적인 胎와 같은 개념으로 명석한 논리로 분석할 수 없는 [애매성] 이나 인식의 [미분화]상태를 품고 있는 존재태를 일컫는 말이다. 갓 태어난 어린애기는 모체에서 일단 분리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배곱의 교감상태를 벗어 나지 못함으로 모-든 것을 모체에 의존하는 유아적 상황속에 놓여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경우는 미개사회의 자연친화적 미분화의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는 개체가 타자와 완전히 분리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으며, 매트릭스상에 잡히는 개체는 타자와 매우 끈끈한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되고, 운명공동체적 상황에 놓인다. 앞서 언급했던 미술전시관 ‘UZ’의 장소적 논리가 바로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뇌의 우뇌측 작용태는 단선적인 좌뇌의 백털(관점)과는 달리 複線的인 사태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기능을 하는데, 매트릭스는 이 非單線的 소용돌이와 같은 카오스적(혹은 모순적) 사태와 대응하는 사유에서 나온다. 矛盾은 여기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수시로 생성하는 心의 가상시공(버추월리티vituality)의 軋轢의 機制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 세계속에서 質的인 것, 개별독립된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데서 일어 나는 것이다. 질과 량을 동시에 삼킬 수 있는 세계에서는 알력보담 새로운 창조의 깃틀이 잡히면서 불교권에서 일컫는 돈[頓]이라 부르는 상태에 놓인다. 돈이란, 일순간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매트릭스의 장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으며, 나의 것과 타자의 것의 엄격한 구별도 의미가 없다. 오-직 과정으로 치닫는 찰나적인 좌표의 흔적만이 보였다 사라질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는 미술이 [미]에 귀속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義]적 개념, 아우라를 일컫는 [聖性]개념으로 나아가며, 궁극에 가서 信心을 불려 일으키며 초월적인 세계까지 상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만이, 진정 인간의 속죄가 이루어지면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적 관점에서는, [미술]은 [신 인류]의 탄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초월자에 대한 숭상의 의식에 동원된 유일한 인식론적 콘텐츠임을 밝힌다. [벌,나비 수원산책]에 동원된 23인의 작가들과 추가로 첨부된 [UZ]란 작품 모두가 위와 같은 공동환상의 내적 필연의 파라다임에 의해서 탄생해 나온 오마-쥬이면서 동시에 뢰켐(requiem 진혼곡)임을 알게 된다.
1388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3162 2017-02-10
17. 도널드. 프레찌오-지 (Donald Preziosi) [美]를 [科學化] 하려는 近代美術史學의 歪曲을 규탄함 미술사의 위기가 선전되던 1980년대, 제빠르게 미술사학의 이론적 틀이나 방법론적 전제에 관해서 저술을 상제한 것이 도널드.프레찌오-지이다. 당시 미술사학에 대한 비판은 [New Literary History] 나 [Critical Inquity]와 같은 美術專門誌 이외의 곳에서, 미술사 프로바-가 아닌 논객에 의해 전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 올린다면, 그의 미술사비판의 서 [Rethinking Art History: Reflections on Coy Science]는 순수한 미술사 내부에서부터의 자기비판이란 특이한 예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미술사학의 위기]의 감정이 만연하고 있던 시대, 예를 들면, [Art Bulletin]지의 [미술사학의 위기] 특집호에 제시한 론고가 대부분 [위기]를 정면에서 언급하지 안했다는 사실이 시사하고 있듯이, 그 실체가 무엇인가는 거이 논해 지지 안 했었다. 그런 사이에, 프레지오-지는 [미술사 / 속의 위기] 와 [미술사의 / 라고 하는 위기]를 준별하여, 전자는 미리 결정된 프로그램, 방향이 잡힌, 진로에서 미술사가 일탈, 내지 지연되고 있다는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표명하는 상투적인 수사, [막힘] [정체] [일탈]이란 것들은 그러한 방향 내지 진로를 전제하고 있다. 미술사가 일정한 목표를 향한 진보나 발전이란 線狀的 내지 循環的 모델로 표상되기 쉬운 것과 같이, 이것과 표리를 갖는 미술사학 역시, 가지 각색의 문제의 발전적 해결의 連鎖나 普遍的存在의 暫時的 開示의 계열이라고 하는 발전적 방향, 이론이나 방법의 진화적 세련이라고 하는 도식속에 암묵적으로 잡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무언가 방향성을 갖는 다는 [歷史主義的]역사는, 가능성으로 항상 [일탈]을 배태하고 있음으로 원래부터 [위기]를 내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술사라고 하는 위기]는 미술사학이 일련의 모순의 항결에서 태어 나는 긴장에 의해 지탱된다는 사태에 있다. 19세기에 성립했던 근대미술사학은 동시대의 다른 학에 비해 손색없이 객관적, 논리적이며 엄밀한 학으로써 당시의 과학주의의 틀에 적합하려 했음과 동시에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이외의 물질사회의 인위적 소산과는 일선을 끗는 존재란 것을 주장하려고 했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즉 科學임을 표방하는 미술사학의 대상은 다른 과학의 대상이 되는 일반적사물과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미적대상]이며, 이를 다루는 미술사학은 여타 학문 보담 높은 서열에 속한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 위에 당의 [미적대상]은 초시간적 진리의 구현이면서 과학적[역사학]의 시간계열에 배열되, [말하기 어려운 것]이면서 미술사학의 대상으로써는 소통가능한 언어의 레벨에서 처우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내재시키는 미술사학은 비근컨데 견고한 건축물은 아니며, 공중에 뜨 있는 구름다리와 같이 항결하는 힘의 미묘한 균형에 의해 성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라고 하는 위기]인 것이며, 문제시 해야 할 것은 그러한 [위기]를 품고 있으면서 미술사학이 성립하는 과정인것이다. 헌데, 미술사학이라고 하는 언설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예술작품은 해독 가능한 기호로 다루어진다. 말하자면, 미술사학은 [보이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인것이다. 프레즈이오-지는 이 장치가 르넷상스기원의 다양한 테크노로지에 의해 가능해 젔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선 [보이는 것]이 [읽을 수 있는]것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호조작은 갈리레오의 천체망원경에 비교된다. 갈리레오에게는 망원경의 공간에 수용되는 것만이 보이는 것=읽힐 수 있는 것이며 망원경의 길이를 조정하는 것은 여하간 보이는 대상을 자의적으로 바뀌는 것이 된다. 주체에서부터 엄연하게 분리되 나온 과학적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써 예술작품을 다루는 미술사의 언설은 갈리레오적 파라다임의 산물이다. 더욱이 [의미]를 [해독]하는 미술사가는 특정한 특권적 입장을 다루는 바, 이는 투시원근법의 가공의 고정된 시점과 같은 것이다. 미술사가는 이렇게 의미되어진 미적형태를 일정한 입장에서부터 이미 결정된 목적론적인 방향틀 속에서 질서있게 배열하는 것으로 예술작품의 역사를 구성해 가는바, 그의 입장은 16세기의 쥬-리오.카미로의 記號의 劇場의 사용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기호의 극장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관념을 직접 지각될 수 있는 물질적인 기호로 치환해냄으로써 표현하는 바, 가지 각색의 지식이나 지혜의 相違를 나타내는 압축된 상징적형상/비유가 들어 있는 정보의 중심에 주체는 위치되어 지기 때문이다. 본래 같으면, 불가시적인 배열을 철저하게 가시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기호의 극장과 나란히, 젤렘미.벤삼의 파노푸티콘도 거론된다. 후-코에 의해 근대적 학문의 구축과 강력한 인식론적 유대를 지적받은 파노푸티콘은 미술사적배열을 완벽하게 헤알릴 수 있는 것으로 만들면서 인격적존재로서의 기술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 말하자면, 불가시의 중립적방관자로서의 미술사가를 훌륭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호의 극장도 파노푸티콘도,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주체가 대상의 비교, 식별, 대조, 바리에이선을 이내 看破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미술사적 전제도 체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천체망원경, 투시원근법, 기억의 극장, 파노프티콘등 모두가 否曲裝置란 것이다. 이들 모두가 전제하는 고정된 유일한 중심은 주변의 부곡을 필연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사가란 원래 어떤 특정한 주체가, 불가시의 중립적 서술자로써 특정한 특권적위치에서 특정의 방향성를 갖고 기술된 것의 집대성인 근대적미술사학은 아나몰포-즈적 아-카이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헌대 그러한 프레쯔이오지의 견해에 대해서 특정한 입장에서 나오는 그의 언설이야말로 當의 비판의 대상이 되 있는 아나몰포-즈(歪像)적 不曲에 다름 아니다, 라고 하는 의견도 당연히 일어 날것이다. 그가 근년에 편집한 안소로지-[미술사의 技]에서는, 수용된 논문을 종래와는 [달리] 고찰되는 [틀]로써 권두와 권말에 소론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비판을 역으로 봐야 하는가, 그기서 그는 자신의 논고가 [미술사]를 옆에서 보여주는 아나몰포-즈장치임을 명언한다. 그기서 보이는 것은, 미술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맞게 체계시차계열에 歷史的過去를 배열하는 작업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약력: 1941년생. 칼리폴니아대학 로스안젤레스교(UCLA)에서 미술사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 주저: Rethinking Art History: Meditation on a Coy Science, 1989. The Art of Art History: A Critical Anthology, ed, by Donald Preziosi. 1998. Aegan Art and Architecture. 1999. The Ottoman City and its Parts, 1991. Minoan Artitechtreal Design, 1983. Artitecture, Language and Meaning, 1979. Semiotic of the Baltic Envirement, 1979.
1387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817 2017-02-03
올테카.이.가섿 (Jose Ortega y Gasset) 先驅的인 20세기 藝術論 思想家로서의 올데카.이.가섿의 방대한 작업에서 예술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크지 않다. 크지 않다고 하나, 그 중요성은 각별한 점이 있다. 적어도 20세기 예술을 저상에 올려 놓으려고 한다면, 올데카가 제시한 논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올데카는 [베라스케스론]이나 [고야론]을 쓰고 있지만, 여기서 각별히 거론해야 할 것은, 두편의 논고, [미술에 있어서의 視点에 대해](1923)와 [예술의 非人間化](1925) 일것이다. [미술에 있어서의 시점에 관해]는 실로 대담한 주장이 들어 있는 논고이다. 올데카는 [화가의 시점]에 의해 [서구회화가 취한 6세기에 걸친 움직임을 해명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죳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회화의 움직임은 실은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오-직 하나의 단순한 움직임이란]사실을 알게 된다. 서구세계의 회화예술의 변천을 그토록 단순한 하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음은 이외이다. 그리고 더욱이 가장 기묘한 일로, 우리들의 관심을 불려 일으키지 안고 자나 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법칙과의 유사성이다] 라고 올데카는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올데카는 먼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근시법]과 [원시법]으로 구별한다. 근시법이란 시점을 대상 그 자체에다 두고 이를 꼼꼼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 대상은 기폭과 부피가 있는 상태로 보이며 그 주변에서는 막연하게 보이는 영역, [배경]이 펄쳐저 있다. 이는 觸覺的인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법이란 시점을 어느 한점에 집중하지 않고 시야의 전체를 포함하려고 하는 시점을 말한다. 그러면, 시야전체가 굴곡있는 공간으로써 나타난다. 근시법과 원시법이라고 하는 표현에서 오해하기 쉬운것으로, 역설적이게도 원시법으로 보는 대상은 근시법의 경우 보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우리들의 각막이 기점임으로 해서 가깝게 있는 것이다. 순연한 원근법에서는, 우리들의 주목은 보다 멀리 향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근접함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개의 관점을 구별한 후에, 올데카는 구라파미술사를 통해 화가의 시점이 근시법에서 원시법으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죳드에서 부피가 있는 회화로 출발한 회화는, 空洞의 회화로 바뀌 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서구회화의 발전과정은 객체에서 주체인 화가쪽으로 진로를 바뀌어 갔다고 본다. 이렇게 하여 올데카는 구와도로첸코에서 라파엘로, 뒨 도랫도, 엘.그레고, 베라스케스, 그리고 인상파, 세쟌느, 큐비즘에의 [단순한 움직임]에 대응하는 듯, 서양철학이, 단테의 실체적 실재론에서 데칼트, 라이프닛치를 경유하여 아베나리우스와 맛하의 감각주의에로 이행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올데카는 최후에는 [주관내적인 것]에 눈을 돌리는 철학의 등장을 시사하고 있는 데, 확실한 이름을 거론하지는 안코 있지만, 이는 다분히 현상학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주의나 큐비즘와의 대응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1924년이라고 한다면, [슈-리얼리즘선언]이 쓰여젔던 해다. 표현주의도 큐비즘도 추상미술도, 아직 이 단계에서는 이론적인 定位가 되지 안코 있었다. 그런 때 [視]에 의한 이론화의 시도이다. 독일에 유학을 하고 있던 올데카는 아마도 독일-스위스계의 미술사학, 특별하게도 뷜브린의 시각형식설로서의 미술사를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미술에 있어서의 시점에 관해]서는 뷜브린이 말하고 있는 크라식에서 바롴에의 이행이 이루어진 6세기의 스판(span)으로 확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925년의 [예술의 비인간화]는, 20세기 초두의 [신예술]의 [非大衆的]이었을 뿐만 아니라 [反大衆的]이기 까지 하는 성격을 [비인간화]란 개념으로 설명 하고저 했던 논고였다. 그는 이런 예를 들고 있다. 어는 고명한 사나이가 죽으 가고 있었는데, 그기에 남자의 처와 의사와 신문기자와 화가가 함께 있었다. 올데카에 의하면 이 순서로 인해 事象에의 感情的인 개입도가 약해진다. 말하자면, [살아 있었던] 현실로부터 [바라 보이는] 현실에의 移行이다. 슬프해야 할 일에 깊이 들어 가서 그 일부가 된 처부터, 마냥 무대에 눈을 곶고, 光, 그림자, 색가만 주목하는 화가에 이르기 까지 점점 [정신적 거리]가 증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적 시점이란, 상황, 人, 사물을 [사는] 시점이라 할 수 있음으로, 임종의 현장에서 태연하게 임한 화가는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된다. [비인간화]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현실로부터의 거리화의 작용을 가르키는 것이다. 기욤 아포리넬 역시 그의 [큐비즘의 화가들](1913)에서 이따금 [비인간적]이란 형용사를 쓰고 있다. 현상적으로는 화면에서 살아 있는 인간적형상이 살아저 가며, 무기적인 것, 결정화된 주제에의 기호가 강하게 느껴지는 사태를 가르키는데, 보다 일반적으로는 라디컬한 [양식에의 의지]와 관계가 있다. 아포리넬의 직관과 올데카의 이론은 通底한다. 더욱이 올데카는 [신예술]이라고 하는 말속에서 뒤빗시 이후의 음악, 말라르메이후의 시, 비란델로이후의 연극도 포함시키고 있다. 미술에서는 무엇보담 표현주의와 큐비즘이 문제시 되고 있으면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올데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예술은 오늘에 이르기 까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탄생시키지 목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와 근접한 의견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다. ………. 허나, 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양식이 놀라운 열매를 맺지 못할 거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을까. 신예술이 노리고 있는 사업은 거대하다. 무에서부터 창조를 일꾸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래에, 신예술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안코 보다 적격한 과일을 탄생시킬 것으로 믿고 있다], 리고. 올데카는 이 예측. 희망에 대해 우리들은 이미 해답을 할 수 있는, 혹은 해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덧붙혀 말한다면, 쟝-프랑스와.리오탈은 그의 모더니즘논집에서 [비인간적인 것](1988)을 타이틀로 내 세우고 있다. 약력: 1883년 스페인 태생. 스페인 국립대학에서 학습한 이후에, 독일에 유학하여 신칸트학파에서 연구를 함. 귀국후 마드리드대학의 교수가 되어 저술활동을 정력적으로 행하다. 좌우의 정치세력의 분권화가 심해젔던 당시의 스페인에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스페인전쟁의 징후가 보일 지음 1936년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면서 이후 45년까지 망명생활을 보낸다. 저작 [대중의 반역]은 구라파의 사상계를 중심으로 아주 큰 반향을 불려 일으킨다. 55년 몰. 주저: [올데카 저작집]전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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