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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 no image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3033 2016-11-15
[20세기 미술과 사상] 씨리즈 5. 쟉.라캉(Jacques lacan) 회화의 기능의 근본원리를 묻다. 1963년, 프랑스精神分析協會를, 破門당한 쟉.라캉은 다음해 64년, ‘파리 프로이드파’의 기치를 올렸다. 일단 중단을 당했던 라칸의 세미레-르(1953년 이래 샹단뉴병원에서 행해젔었다)도 이해부터 장소를 고등사범학교로 옮겨 개강하게 된다. [無意識] [反復] [轉移] [慾動]의 네 기본개념을 논했던 이 열한번쩨의 세미나-는, 1973년에 쟉.아란.미레르의 편집에 의해 [정신분석의 네 기본개념]이란 책이 되어 출판되었다. 이 세미나-에서의 [反復]에 관한 설명에서 라칸은 당시 마침 간행되어 나와 있었던 메르르.폰티의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면서 [눈매]에 관해 긴 탈선을 하고 있다. [눈과 눈매의 분열]回에서 [타부로는 무엇인가] 에 이르는 回數에 이르기까지, 원근법의 문제 등 회화의 근본문제가 정면에서 다루어지는 부분은 鏡像段階論과 나란히 미학이나 미술비평의 영역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았었다. 라칸은 [화가의 정신분석]도 [타부로의 비판]도 아닌 [회화의 근본원리]를 묻고저 한다. 여기서는 그것의 요점을 --- 밋셀.데뷔어-의 명석한 요약과 해설(불변적인 거울)제1장)도 참고하면서 –학습한다. 먼저 눕혀 두어야 할 것은 [눈과 눈매의 분열]이란 논점이다. 눈의 기능은 공간의 기하학化를 토대로 하는 고전적인 원근법과 관계되어지는 것으로, 말하자면, [시각 피라미드]의 정점이 되는 한 점에 환원된다. 이 실측점에서 대상을 향하여 곧 바로 나아가는 선을 그것을 수직의 평면으로 재단하면, [세계를 향한 열려 있는 창]으로써의 이마쥬가 그기에 성립할 터이다. 이것에 대해 [눈매]라고 하는 것은, [타자]의 場에서 放射되는 빛으로 설명된다. [나는 한 점에서부터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실존에서 모-든 곳에서 바라다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디라고 정해지는 일이 없는 [눈매],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눈매]를 느끼는 일이 있는 이상 [눈매]를 可視的인 [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타자의 장에 상상되는 눈매, [욕망]에 휩쓸리어 들어 간 눈매이며, 이것이, 형식화, 상징화의 경향을 지니는 명료한 시각의 剩餘에 [구멍](시각의 결락)을 뚫는다. 이와 같은 [눈과 눈매]의 분열속에서 만이 눈의 영역에서의 욕동이 출현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루넷상스 이래의 기하학적원근법이란 [눈]을 기점으로 하는 實測的인 표상으로써 가시적인 세계를 철저하게 받아 드리려고 했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 시도의 기원에 따라 매김되 왔던 브르네래스키의 판낼의 실험이 이미 – 유벨.다밋슈도 [원근법의 기원]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 그 중심에 [구멍], 시각의 맹점, 결략, 부재를(바로 소실점에 대응하는 곳에) 남겨지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시각에 있어 抑壓되었던 것, 즉 눈매가 되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분명하게 나의 눈 깊은 안에서 타부로가 그려저 나옵니다. 타부로-, 분명히 그것은 나의 눈에 있습니다. 타부로속에 있는 것입니다]. 즉 나는 밖에 있는 눈매의 [빛에 의해 그리기도] 하는 것이다. 화가는 [대상a]로 잡히고 있는 눈매를 시긱體制속으로 取入하면서 이를 억압, 訓治 하려 한다. 허나, 타부로에서 보이는 그 눈매는 이를 보고저 눈을 한점으로 뫃으려는 그 순간 몸을 살짝 피해 사라저 버린다. 마치 홀바인의 (대사들)속에 음밀하게 그려저 있는 두개골과 같이, 눈매는 초점이 맞았던 명료했던 시각으로부터 줄곧 탈략해버린다. 이 눈매는 따라서 타부로를 보는 자의 눈의 움직임에 맞취 잠재적으로 이동하며, 그 주변에 미묘한 파문을 넓히며, 이내 타부로 전체에 차고, 그기서부터 넘처 나올 것 같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타부로를 앞에 두게 되면 우리들은 실측적시각의 주체로써는 [탈락]해 버린다. 회화의 시니피언이라고도 불릴 [탓치], [화가의 연필에서 비와 같이 쏟아저 내리는 탓치]의 문제가 개입해 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부터이다. 라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만일 새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깃털을 떨어터리는 것이 아닐까요]. 깃털을 갖지 않는 인간은 허나 [스스로의 색을 그것이 있는 곳 까지, 말하자면, 똥통에 까지 찾아 해메지 않으면 안되지 않을까]. 화가들은 파랫트에 줄세워진 [작은 ?의 줄]울 쓰서 타부로를 더럽히는 –퇴행적이리고도 불릴 수 있는 그 몸짓을 통해 탓치는 비와 같이 켄버스에 쏟아 지는 것이다. 略歷: 1901년 파리에서 탄생.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연수, 후 파리대학 의학부로 옮김. 32년에 학위 취득. 53년 샹탄느병원에서 세미나-를 개최함. 64년 파리 프로이드를 결성. 66년 [애그리] 간행. 구조주의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써 갑작이 유명해 짐. 80년 파리.프로이드파를 스스로 해체하고, 새로 프로이드 大義派를 결성. 81년 몰. 主著: [애그리(1-3). [프로이드의 기법론]. [프로이드이론과 정신분석법에서의 자아]. [정신병]. 기타 세미나-集으로 다수 발간.
1373 no image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3004 2016-11-12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4. 시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시그문트.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이 미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없음을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다른 한편, 미는 性感覺의 영역에서 유래한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더욱이 성적인 흥분과 미적인 감동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즉 성기 그 자체는 자극에 의해 작동하지만 미는 혹종의 제2차성기가 갖추워저 있는 성질인 것 같이 보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칸트는 미의 무관심설을 논했었다. 우리들이 미라고 판단하는 대상에는 우리들이 욕망을 느끼는 법은 없다. 쾌락은 주관의 문제이며, 대상의 실재라도 괄호안에 넣으야 한다고 했다. 미의 근저에 성을 보는 프로이드는 전혀 반대의 입장같이 보인다. 허나 그런 칸트 역시 쾌락의 원리로써 [생의 감정]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도 역시 [그 일]만 생각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일]이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에스], 즉 인간의 욕정의 중심을 일컫는 것이다. 프로이드와 칸트의 相異性과 類似性. 이것이야 말로 미학의 근본문제가 아닌가. 프로이드의 택스트의 전체는, 칸트 이래의 미학적 모더니즘의 목에 데는 칼과 같은 것으로, 미학을 해체하려 함과 동시 허나 어느 의미에서 변용을 강요 보강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이드는 프라톤적인 에로스론과 손을 맞잡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의 예술에의 흥미는 매우 한정된 것으로 보며, 예술에의 그 [응용]에는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실제로, 레오날드.다뷘치와 미케란제로를 대상한 논문을 제외하고 프로이드의 에술론은 문학작품에 한정 되 있다. 섹스피아나 괴대나 호프만, 도스토에프스키의 작품들을 둘려 싼 논고는 각기 매우 흥미로운 점을 지니고 있어나, 여기서는 [W.이엔젠의 [그라디봐]의 [맹상과 꿈]이란 1907년의 장대한 논문을 보기로 한다. 이엔젠의 소설은, 젊은 고고학자 노르벨트.하-놀드가 로-마의 박물관에서 한점의 부조(레리-프)을 발견하고 독일에 돌아온 후 이를 석고복제로 만들게 한 후 이것에 탐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하-놀드에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부조에 나타난 젊은 여인의 걸음걸이, 그 양 다리의 모양새로, 그는 편족을 수직으로 세워 걷는 그 여자를 [그라디뷔] 즉 [걸어 가는 여자]라고 이름을 부친다. 하-놀드는 어느 밤, 자신이 고대 봄베이에 와 있는 꿈을 꾼다. 그때가 바로 기원79년8월24일, 뷔스뷔오산이 대폭발을 일으켜 봄베이가 괴멸한 날이었다. 그는 그기서 그라디뷔가 재속으로 파묻히는 것을 목격하면서 눈을 뜬다. 그라디뷔의 모습을 구하려 실제 봅메이의 유적을 방문하여 해메는 사이 그는 그라디뷔 바로 그 사람을, 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일어를 말하는 쯔에.벨트간그양을 만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그의 어릴 때 친구들로 지금도 그녀의 옆에서 살아 가는 사실, 쯔에오란 희랍어로 [생명]으로, 벨트간그라고 하는 독일어는 수상하게도 [걸으면서 빛나는 여인]이라는 의미임을 알게 된다. 하-놀드가 추구했던 것은 무의식의 어둠속에 그 기억을 깊이 억압하고 있었던 바로 이 벨트간그양 이었던 것이다. 그라디뷔아는 지금은 [레디디뷔아reddiva] 즉 [죽음에서 소생해 나온 여인], 생명넘치는 벨드강그양으로써 현전한다. 하놀드의 광기는 이렇게 해서 사랑하는 여성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었다. 봄베이란 고대도시에서 <그라디봐>를 찾으려 방문하는 것이, 바로 하-놀드의 잃어버린 과거를 소급하여 쯔에오를 재발견하는 것이며, 더욱 쯔에오의 말이 하-놀드라고 하는 환자의 치유 이외 아무것도 아니란 것, 足휘에티시즘(발을 숭배하는 원시인의 주물교의 일종 fetishism)나 꿈이 중요한 계기가 되 있는 등, 이 이야기 전체가 프로이드의 분석욕을 크게 자극했음을 알 수 있다. 1902년11월에 봄베이를 방문하여, 그기다 직접 걸어서 베스뷔오산을 오르기도 했던 포로이드에게 이 소설은 정신분석적 예술론의 거이 예정조화적이라 볼 수 있는 자유연습의 장으로 봤음이 틀림없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예술가는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원망이나 공상을 충족하는 모양으로, 하지만, 변형을 통해 표현한다. 변형은 이 원망의 직접적이며 불쾌한 측면을 완화하며, 예술가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은퍠하며, 그기에 미학적 규칙을 지켜, 타인에 매혹적. 장려적인 보-너스, 즉 쾌의 보수를 주는것과 같이 행한다. 작품은 그 [진의]의미를 숨긴 직물이며, 직물의 실타래를 섬세하게 밝힘으로써 비밀이 밝혀 지는 한편의 꿈일 것이다.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이 그기에 숨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예술작품은 억압된 것의 파생물의 하나이며, 따라서 상징적이며, 징후(징상)적인것이다. 이들 그 흔적을 싿싿히 해독해 내는 것이 가능 한것이다. 여하간, 정신분석적 언설, 정신분석적 예술론은 고고학(시원학)적인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를, 억압된 욕망을, 상처를 지향한다. 고고학(시원학)적인 한에서는 그것은 추리소설과도 닮아서 재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러나 그런 점으로 해서 출발점인 예술작품을 무화시켜 버린다. 밝혀 낸 [상처]에 의해 예술작품의 됨됨을 설명하고 보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면, 잭슨.보록이 프로이드나 융에 흥미를 갖고, 신경증 때문에 정신분석醫를 찾아 다니며 그래서 [나의 예술의 원천은 무의식이다]라고 발언했다 해도 그 작품의 됨을 [정신분석] 할 수는 절대 없을 것이다. 가령 그렇게 한다 해도 별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것이다. 오히려 정신분석은 이미 성립한 작품에 대한 해석보담, 해석의 무기로 쓰는 것 보담, 하나의 놀라운 언설의 시스템로써 예술을 산출하는 즈음에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자동기술을 핵으로 삼는 슈-리얼리즘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브루톤은 [通底器](1932)에서 프로이드를 비판하고 있는 바, 하기야, 이는 또 다른 문제일것이다.
1372 no image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3280 2016-11-10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3. 엘빈.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世界의 精神까지 讀解해 내는 이코노로지-(iconology 圖像學)를 확립한 학자) 20세기 초두에 미술사연구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이로스.리글, 하인리히.뷀프린등에 의한 [樣式으로써의 美術史] 였다. 이는 미술작품의 본질을 [형식]에서 구하고, 어느 시대의 문화권이 공통적으로 갖는 [형식]적인 특징으로써의 양식이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법칙성을 밝혀 내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미술작품의 [내용]에 착안하여 그 의미내용의 해석을 겨냥했던 것이 엘빈.파노프스키의 이코노로지였다. 그의 이코노로지는, 미술작품에 세가지 의미의 층을 보여주었다. 우선, 어떤 형태를, 인간이나 가옥과 같은 [대상]을 혹종의 [일어 난 일들]의 표현이라고 하는 [모티-브]의 층이다. 다음으로 일정한 배치와 자세로 디-너.태이블(식탁)에 뫃여 있는 일군의 사람들이 [최후의 만찬]을 보여 주고 있는 등의, [모티브]와 테-마를 잇고 있는 [이미지]의 층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각기의 작품에는 그것이 탄생해 나온 시대의 문화권에 공통하는 무의식적인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세계관]의 층이다. 그리고 각각의 층의 의미는 순서대로 이코노그라피상의 분석, 이코노로지에 의한 해석을 통해 밝혀 지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파노프스키의 저작[이코노로지- 연구](1939)에서 구체적으로 미술작품에 이코노로지를 적용하고 있는데, 그의 이코노로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던저저 왔었다. --- 파노프스키의 연구는 [이코노로지-]란 이름뿐으로 실제로는 이코노그라피상의 분석이 중심이다. 그는 미술작품이 아니고 문헌자료에 의미를 갖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작품해석에서는 철학적 言說이 일방적으로 미술작품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 등의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은, 말하자면, 파노프스키의 이코노로지-란 결국은 畵像(이콘)을 言語(로고스)로 回收하는 일종의 문헌학이며, 그의 고유한 압도적인 인문주의적 교양이 그런 구상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알러저 있지 않고 있지만, 파노프스키-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1933-)영화에 관한 논문을 가필정정하면서 세번 발표하고 있다. 그것의 최종 버전인 1947년의 논문, [영화에서의 양식과 嫫材](원재는 Medium in the Motion Pictures) 에서 그는 상업적인 예술을, 작자의 창조적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이를 구입하는 대중이나 후원자의 요구에 맞게 의도된 예술이리고 정의한다. 따라서 뒤-라의 판화도 섹스피아의 희극도 금전을 지불하도록 의도되어 실제로 이들의 요구에 응했다고 보는 의미에서, 공히 상업적인 예술이었다, 라고 보는 것이다. 영화와 같은 상업적인 예술이 비상업적인 예술보담 활력이 넘치고 있는 것은 이 [대중과 접촉을 지속하려는 전달가능성(communicability)에의 요구이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일어 나지만, 그것은 상업주의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기 보담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상업주의가 충분히 적용되지 안했기 때문에 일어 난 것이다. 대중은 허리욷이 만들어낸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 들이는 한편 허리욷는 [대중이 구하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현대생활에서 영화는 다른 대부분의 예술형식이 지금은 그렇게 하기를 멈추워 버렸지만, 장식물이 아니고 필수이기 때문이다. 뒤라-의 판화와 같이 [예술산출과 예술소비 사이의 역동적인 접촉]을 세워 보려는 상업예술임으로 해서 영화는 [건축,만화,[상업디자인] 이외의 것으로는, 대단히 생동감 넘치는 유일한 [시각예술]인 것이다. 이와 같이 파노프스키는 이외도 모쟈이크나 동판화의 발전, 코싴의 대성당의 건립등에 관해, 영화와 대비시키면서 20세기의 예술에 대해서 대중성을 지향하는 전달가능성에의 요구의 유무에서 영화등의 상업적인 예술을 긍정적으로 보는 한편 모더니즘의 회화들, 전위예술을 非로 치부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파노프스키의 이코노로지를 일종의 문헌학으로 보는 앞서 지적한 비판들이 초점을 벗어 났음을 알수 있다. 그가 미술작품의 해석에 있어 어느 시대, 문화권에서의 [세계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역으로 로고스에 의한 이콘에의 폭력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어떤 시대의 문화권 안에서의 무의식적인 콤뮤니케이선을 통해 그 문화권의 미술작품의 양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봄으로써 미술작품에 대한 恣意적인 해석의 위험성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주로 우리들 자신에 영향을 입히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으로써의 미술사]는 第二次大戰이란 상황하에서 반파시트의 역할도 해 냈다고 본다. 파시스트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파노프스키는 1940년의 논문에서 그와 같은 내용의 말을 하고 있다. 神性이나 獸性 공히 해당되지 않는 인간성에 바탕을 한 인문학은 파시스트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실제적인 유용성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전시중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적인 관심사에만 전념하여 고대인이 말하는 활동적생활에 대응하는 바의 명상적생활을 보내는 것, 그것은 파시스트에게는 전혀 이해하기 힘든 매우 위험한 행위였던 것이다. 파노프스키의 이코노로지는, 현학적인 교양주의가 아니라, 이와 같은 의미로 본다면 인문주의에 바탕을 두고 구축됬던 것이다. 略歷 1892년 독일 하노바 탄생. 1921년 함불르그대학 강사. 이 시절에 아-스 벨블르그, 엘런트.카시라등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다. 이후 이코노로지의 정식화에 이름. 33년 나치의 유대인 공직추방으로 미국으로 이주. 35-62년까지 프린스톤대학 고등연구소 교수. 68년 프린스톤에서 사망. 主著 [이코노로지-연구] [시각예술의 의미] [르네상스의 봄] [이디아] [알프렛 뒤라] [코싴건축과 스코라학] [토성과 메랑코리] [상징형식으로써의 원근법] [예술학의 근본문제] [숲의 조각] 등 다수.
1371 no image 최세경의 "검을 현' 2편
3186 2016-11-09
“검을 현(玄)” 을 읽다 2. 뒷 이야기 – 인류 고고학과의 만남. 최세경 작가의 작품을 따라 가면서 얻게 되는 소득은 범상치 않았다. 그기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현대 인류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있었다. 제대로 된 물음은 필연적으로 그 안에 답을 품게 되는 바, 감상자는 그녀의 작품이 품어 내는 물음의 본질을 제대로 읽으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 속에 암시 되 있는 답이 될수있는 단서를 포착해 낼 수 있게 된다. 도상학(Iconology)적인 관점에서 풀이해 본다면, 작품은 일종의 기호로써 현대 도상학을 정립했던 엘빈.파노프스키나, 야생의 미학의 본질을 밝혀 낸 레비.스토로스가 해명한데로, 시니휘에(Signifie)애 해당하고, 답은 ‘의미하는 것으로’, 시니휘안(Sinificant)이다. 필자는 작품의 이러한 분절상을 구분하면서 바타이유의 [非知]의 논리를 참고하기도 했다. 비지는 불교의 반야경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서양의 知的風土만이 전부가 아닐것이다. 이 모든 미학과 사상적인 문맥들을 총합해 낸 불교의 공사상이나 理事의 변증을 해명해 낸 화엄사상도 참고 하게 된다. 최세경의 작품은 오늘날의 지구권 문제의 본질에 가 닿는 인식이 있고, 그럼으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점에서 높이 사야할것이다. 1930년대 쏘련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천재 영화 감독 세르게이.에이젠스타인이 [몽타쥬]이론을 정립하여 그 대표적인 작품, [전함 포촘킨]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그의 ‘몽타쥬’ 이론은 나의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었다. 그는 일본 가부끼 연극에서 착안하여 ‘소리 몽타쥬’를 창안해 냈었는데, 이번 최세경의 작품 독해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그의 몽타쥬 미학은 예술적 작위에서 난삽한 관념을 배제하고, 민중의 현실적인 감각수준을 겨냥한 것으로 쉽게 말해 본다면, 일종의 ‘情動 몽타쥬’ 수법을 적용했던 것이다. 이 외도 아즈택의 除魔를 겨냥하는 石像에서 영감을 얻었던 헨리.무어의 조각미학이나, 아프리카의 토인들의 조각상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피카소의 에피소드도 기억한다. 작품 앞에 선 관람자의 현실적인 바탕에서 얻으지는 것임으로 주관적이라 본다. 바로 작품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징표를 볼수 있는 작품은 물음으로 끝난 것이지 물음에 대한 답을 계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은 옹당한 물음의 합당한 논리가 전개되 있는 같다. 문제를 던진 것으로, 그것의 해답이 아니다. 제대로 된 물음이야 말로 작가의 작품이 주는 높은 격이다. 작가가 던진 그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힘도 빌려 와야 한다.
1370 no image 최세경의 "검을 현' 2편
2889 2016-11-09
1369 no image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3224 2016-11-08
[20세기의 美術과 思想] 씨리즈 2. 크로드.레비=스토로스(Claude Levi Strauss) ‘記號論으로 藝術을 독해해 낸 構造主義者’ 문화인류학자로 알려진 레비.스토로스는, 바로 [야생의 사고]에서 사르트르을 비판한 이후,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지목되어 왔다. 1960년대, 함께 구조주의자로 지목 받은 라칸, 바르트, 후-코등이 각자의 스스로의 입장을 변화시켜간 반면, 레비스토로스는 어떤 의미에서 우직할 정도로 구조주의자로 일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구조주의란, 언어를 방법론적 모델로 삼는 학문적 내지 사상적인 입장을 가르킨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언어란 소슐에서 발단된 구조언어학에 따라 示差的 관계로 이루어진 체계로, 이해된 언어이다. 구조주의는 협의의 언어 이외의 대상을 언어로 간주함으로써 그 효력을 발휘할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女性을 콤뮤니케이선의 모체로 언어기호인 것 같이 다루는 것으로, 미개민족의 혼인시스템을 밝혀 낸 [친족의 기본구조]는 이미 [야생의 사고]이전에, 구조주의의 모범례로 나타났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술에 관해서도 레비스토로스는 주목받을만한 발언을 몇 남기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놓여 있는 것으로, 예술이야 말로 인류학자에게는 특권적 사례로 간주되어야 할 것 이었다.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것으로, 예술 역시 언어로 간주된다. 더욱 언어와 같이 이중분절을 갖춘 것으로 간주 할 것이다. 이중분절이란 형태소를 의미작용의 요소로 보는 일차분절의 수준과 그 자체는 의미를 갖지 않는 음소를 요소로 삼는 이차분절의 차원으로 된 언어의 됨됨을 말한다. 예를 들면, 회화에서 본다면, 그 자체로는 아무런 것도 재현하지 못하는 色이나 形이 이차분절로 구성되면, 이 이차분절의 제요소로부터 일차분절을 만들어 냄으로써 무엇인가를 재현 내지 의미되는 것이 이루어진다. 이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음악에서의 이중분절의 지적일 것이다. 레비스토로스는 음계의 하나 하나의 악음이 이차분절에 속한 것이라면, 그러한 악음이 조성음악의 주화음, 속화음등을 요소로 삼고 조직화됨으로 더욱 상위의 일차분절을 구성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이와 같은 이중분절에 의해서만 음악은 시작과 끝에 의한 시간적 위치관계를 의미될 수 있다고 사료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전적인 조성음악에서는 끝에 가가워지면 그런 것으로 청취되는 것이다. 현대예술에 대한 비판도 역시 이 이중분절 모델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추상회화가 비판의 도마위에 올려진다. 라고 하는 것은, 추상회화에서는, 색이나 형이 구상적인 의미작용을 갖지 못한 체 조직되기 때문에, 이차분절 수준에서만 구성되기 때문에, 이차분절 수준에서만 구성되고, 일차분절의 조직화는 볼 수 없다. 이것으로는 기호로써의 충분한 의미작용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음악에서도, 슌-베르그의 12음음악에서 시작하는 세-리음악이 불충분한 기호의 됨으로 비판된다. 라고 하는 것은, 세-리음악에서는 구성요소의 하나 하나가 기본적으로 대등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차분절에 머물고, 일차분절의 시간적 의미작용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은 언어와 꼭 같다고 할 수 없다. 언어의 경우, 이차분절의 레벨은 일차분절의 레벨을 위한 투명한 수단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통상, 의미만 전달된다면, 말주변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게 된다. 그러나 시의 경우, 언어의 울림의 배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이중분절의 두 분절 수준 공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레비슽로스가 이중분절모델에 집착하는 것은, 예술에 있어서의 두 분절수준의 기능적인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역으로, 그럼으로써, 추상회화나 세-리음악과 같은, 단일한 분절수준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에 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여하간, 두 분절수준이 공히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예술은, 물과 말의 중간,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서게 되는 것으로, 물에서 언어에로, 자연에서 문화로 향하는 움직임과 말에서 물로, 문화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움직임, 이중의 운동에 의해 짜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토로스에게는, 예술이 특권적대상의 하나가 되는 것은 미개민족의 문화창출의 사고, 말하자면, 야생의 사고가 바야흐로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야생의 사고가 기능할 수 있는 장이야 말로 예술인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입장에서 보면, 문명사회의 역사속에서, 예술이 기호로써의 힘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서양사회에서는, 개인주의와 재현주의와 아카데미즘등이 이러한 경향을 조장했다고 레비스토로스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호의 의미작용의 힘이 점차 취약해 지고 있다는 역사관을 피할 수 없다고 하드래도 언어모델을 구사하면서 예술의 가지 각색의 방식에 빛을 조명했던 功績은 부정할 수 없다. 아니, 그런 정도로 차부하기에는 모자랄 정도로 그의 20세기의 예술에 대해 보여준 분석은 점점 빛을 발하고 있다. 신화론] 제4권에서의 라벨의 보랠로에 대한 분석, 샬 니에의 [레비스토로스와의 대화]에는 뒤샹의 레이디 메이드에 관한 흥미로운 의론도 들어 있다. 레비스토로스에게는 物이 원래 놓여 있었던 콘택스트에서 끊어 냄으로써, 시니히안Sinificant과 시니휘 sinifie에 사이에 의미론적인 단절이 일어 남과 동시 새로운 융합에 의한 의미 작용도 탄생해 나온다고 하는, 이 분석은 어떤 의미에서 유효성이 지속 될 것이다. 그런 의미까지 포함해서 예술을 기호로 봄으로써 초래한 풍성함과 개방성을 스스로 나타내 보인 점에서 레비스토로스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것이다. *Signicie: 의미되어지는 것 Significant: 의미하는 것
1368 no image 최세경의 "검을 현'
3276 2016-11-08
최세경의 “검을 현(玄)” 을 읽다 EXPERIMENTAL SPACE UZ 2016.10.29 -11.27 1. 變幻의 멧시지 들어가는 말 [그것은 내가 아니고 바람이었다] – 프리다.로랜스의 자서전 .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내 자신에 대하여만, 승리했을 뿐이다.” –김 산 ( 혹은 장지락, 조선의 혁명가) 님 웨일즈와 김산의 공저 [아라랑]에서. “어떤 때, 한장의 스켓치화가 사람의 눈에 잡히고, 마음의 깊은 心潤속으로 깔아 앉아 버려, 어느새, 그것이 사람을 새로 바뀌, 만들어 내 버리는 일이 일어 난다. 바뀌 버린다기 보담, 그러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그 사람에게 영구적인 것이 되 버린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가우디 讚歌(끼요시.아와즈 栗津 潔) “단조로운 자세와 노동집약적인 반복행위는 자연스러운 沒入을 이루어내며, 이 무의식적 몰입은 자아를 가감 없이 드러내게 한다. 진정한 몰입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며,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다. 안으로의 몰입은 나를 더 생각하게 하고, 또 나를 잊게 한다” –작가 최세경의 아포리즘 ”玄’은 아직 세상이 그 실체에 대해 이름을 부치기 이전의 실재를 그렇게 밖에 부를 수 없는 場(일종의 매트맄스적 網)의 성질을 띠우고 있는 4차원적 세계다. 이는 사용된 재료들의 특성이 바로 작품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음이 그렇다. 두꺼운 종이로 된 벽을 가득 채우면서 늘어 뜨린 검은 현수막. 속에 크다란 검은 원이 그려저 있는 두개의 화폭. 빛을 반산하는 線條들이 커-틴 같이 드리어저 있는 설치물들이, 物에 가까운 미분화된 圖像들로써, 무당이 된 작가의 주술적 입김을 받아 스스로 살아 숨쉬는 생물같이 에너지를 발산 해 내고 진동하는 환상을 불려 일으킨다.” –작품 감상자 조규현의 독해의 한 구절. 根源을 향하다 직품들의 面貌 –그것은 메아리가 아니고 바람이었다. 최세경의 작품세계는 작품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일종의 野生的 思考(에니미즘)를 품고 있다. 사물의 근원으로 향하는 모-든 사고가 원초성을 띠우고 있는 것 은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이와 같이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검은 현’의 주제의 깊은 내면적인 정신성과 미학적 문맥은, 전시된 여섯개 작품속에 공유되 있다. 작품을 알파벳로 분류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오른쪽부터 순으로. 작품 C와 A 커다란 원을 그려 넣은 드로잉 작품. 이들은 멀리서 보면, 치졸한 어린이 그림과 같이 그저 단순한 태양의 ‘이미지’를 화폭에 잡아 놓은 것 같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 서 게 되면, 이러한 인상은 사라지고 대상은 難澁해 저 간다. 관람자도 마음의 끈을 단단히 쪼여 메고 몰입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자칫 그 깊은 함의를 놓칠것이다. 검은 색채로 된 무수한 선이 원을 그리면서 중심점으로 향하고, 차츰 線狀이 소멸되고 완전한 검은 면으로 화해 간다. 선과 면이 만나는 경계는 물론이고,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정교하게 같은 원을 무한 반복의 메아리로 연속적으로 이어 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부터, 그것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유현에서부터 스스로 부상해 나온 것으로 설치물이 채워저 가는 상황이 만들어저 간다고 본다. 線이 무한 반복의 最極에 이르면서 유동성을 띠우는 입체상이 조각되어진 것으로 상상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작품은 조각의 차원을 넘어 메뷔우스의 띠와 같이 출구가 막힌 미궁의 흔적으로 남겨진다. 무엇이 행해지고 또 남겨진 ‘흔적’일까? 그러한 작화법이 남겨 놓은 아미지의 흔적들은, 작가가 미리 계획했던 것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손 놀림의 차원을 넘어 서서 온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반복하는 인고를 겨냥한 것으로,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여 만들어 내는 인고의 생물학적 칭생공간을 연상시켜준다. 그것은 메트릭스적 공간으로 바이오로지컬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숨을 쉬고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일 것이다. 작가는 작화가 요구하고 있는 무한반복의 극한적인 인고에 전인적으로 응전하고 있다. 그 도전과 응전의 투쟁의 흔적은 비가시적인 것이나 관자의 가슴에 조용히 와 닿는 것이 있다. 그러한 느낌으로 오는 解怨의 해방감을 카다르시스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이 대목에 관해서 작가는 말한다. “안으로의 몰입은 나를 더 생각하게 하고 또, 나를 잊게 한다. 무의식으로 향하는 반복행위는 사뭇 자의적이다. 선의 반복에서 오는 쌓임은 어둠과 축축함을 만들고 그것은 심리적으로 치유를 받는다. 진정한 몰입은…….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다…… 몰입을 위한 단조로운 자세와 노동집약적인 반복행위는 내면의 카타르시스와 정신적 치유를 만들어준다.” 단순 도형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은 作畵행위라 보기 보담, 일종의 禪的 몰입 행위이며 修行的인 몸짓이다. 작가의 작품을 거리를 두고 본 인상이 그랬거니와, 좀 더 가깝게, 작품의 구조가 미시적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 서면, 무한히 반복하는 원의 숲이 나타난다. 이는 시작과 끝이 없는 메뷔우스의 띠(Mobius strip)와 같아서,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관자도 ‘觀의 몰입’을 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을 넘어 서면,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본다던가, 우주를 몸속으로 받아 들인다던가 하는 의식의 환상적인 메아리현상이 일어 난다. 사고의 주체가 머리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변이되어 가는 차원이다. 아주 섬세한 필촉으로 이렇게 무한반복을 그려 내려면 여간한 집중력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가 자청한 무한 인고의 刑罰이다. 아르벨.까뮤의 시집의 대왕의 신화 이야기에 나오는 시집대왕의 ‘무한 바위 굴리기 刑罰’은 이차대전의 잔혹상을 껶은 인류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삶의 의미 지표를 [실존주의]란 개념으로 잡아 내게 하였던바, 달마승사의 면벽 9년의 수행 역시 ‘인고의 몰입’이 아니였던가. 그는 이 9년동안의 바위 응시 몰입의 수행을 통해 불교권에 새로운 수행법인 ‘禪’ 사상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단순 도형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은 作畵행위라 보기 보담, 일종의 禪的 몰입 행위이며 修行的인 몸짓이다. 화엄의 理事無疑의 볍계를 가상해 보게 한다. 어렵게 표현해 본다면, 일종의 유물론적 행위의 집적이 숭고한 정신으로 변하는 창조적 變幻過程(변증법)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화도식은 전래해 오는 등식으로, 오브제와 이미지간의 관계식이 倒錯되어, 이미지가 오브제를 밝혀 내는 가상실재적 變覆이 일어 나게 된다. 애니미즘시대의 모-든 원시미술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 그랬었다. 라스코의 동굴벽화가 그려진 과정을 살펴 보드래도, 그기에는, 실물로써의 오브제가 존재하지 안 했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유동적인 두뇌속에 기억되 있던 무수한 동물들과 인간과의 숙명적인 관계상들이 가상현실적으로 떠 올라 옴으로써 실재적인 동물과 같은 수준 높은 이미지가 탄생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이 철학과 만나는 접점을 나타내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조우는 점차로 철학을 넘어 종교적 차원으로 옮겨 간다. 작가의 몰입과 무한반복의 수행성 행위는 죽음과 삶의 근원적인 질곡을 극복하게 하여, 마음의 평화를 안겨 주고…이는 바로 [救援]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 D 연필로(흑연)로 무수한 선들이 물이 위서 아래로 낙하하는 모양으로 그려저 있는 작품. 이는 전시실 안의 공간을 천정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물줄기를 연상시켜 주고 있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일께워 준다. 또 달리 해석한다면, 거대한 악기의 弦(Chord)으로,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어 이를 마음과 가슴, 혼으로 듣게 하는 선율이 흘려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 B: 유보. 작품 E. 전시장 사방의 벽을 검정색 천으로 덮어 시우다. 지하 동굴속 암혹세계를 암시한다. 암흑은 幽玄의 경지로, 진정한 고요함을 안겨 주고 어떤 초월에의 의식을 일께워 주는 신성한 곳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면 나와 세계, 나와 우주의 교감이 이루어 지며 인간은 자연스렵게 경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聖性이다. 예술이 종교가 되는 바로 한발짝 앞의 경지다. UZ의 전시공간 자체가 지하동굴로 되 있지 않는가. 멋을 부려 보면, 그러한 장소를 ‘아-질’이라 부른다. 비밀결사체의 뫃임이 이루지는 곳이다. 작품 F. 레이디 메이드의 補助 – 뜬검없이 전시실 한 가운데 하나의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현대미술의 기본을 뒤흔들었던 뒤샹의 [변기]와 정 반대의 의미를 품고 있다. 레이드. 메이드는, 범속한 세상 살이의 한 가닥을 상징함으로 최세경 작가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매우 몽황적인 인상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고 있다. (계속)
1367 no image [예술과 현대사상] 시리이즈
3277 2016-10-31
[20세기의 미술과 사상] 씨리즈 죨쥬.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 1996년5월, 빠리의 퐁피드센터에서는 [앵포르멜-용법]이라 題한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形없는 것]을 의미하는 표제아래, 20세기미술의 잡다한 모양새들을 철저히 나타내려고 하는 작품의 선택과 전시를 하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었다. 제작 년대를 보면, 30년대 부터 60년대 말에 걸쳐 제작된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피카소, 쟈코메티, 브라크, 라우센버그, 워홀등, 회화 혹은 조각의 구별이 아직도 가능한 작품군, 피엘로.만조니-, 브루스 나우만, 로버트.스미슨, 신디.셔먼등의 손에 의한오브제나 사진이 대비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맥을 형성하는 것 같이 보인다. [앵폴르멜]이란 용어는 바타이유의 사상에 깊이 관계하고 있다. 전람회의 카다로그에 개제되어 있는 이브.아랑.보와에 의한 [앙폴름의 사용가치]란 제가 붙은 서문, 로쟈린드. 크라우스에 의한 [앵포름의 운명]이라 제를 부친 글의 결론, 카다로그의 목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선발된 26개의 분류항을 한 見出語 – 예를 들어 본다면, [저속유물론]등, 곳곳에 바타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정확하게 말해 본다면, [도큐만]지 (1929-30)시대의 바타이유 라 말할 수 있다. 전람회의 카다로그에는 [도큐만]지를 위해 사용된 사진들도 많이 재록되어 있다. 바타유는 [도큐만]지 제7호에서 [앵포름]라 부친 제목으로 텍스트를 쓰고 있다. 원문으로 보면 15행정도의 매우 짧은 것이다. 우선 [語의 의미가 아니고 그 기능을 나타내는 것부터 쓰여 있는 사전이란 것이 있어도 좋을 것이다]라고 시작한 것에 이어 앵포름란 말을 단순히 하나의 형용사로 머물지 않고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하는 일례로 나타내고 있다. 이에 앞서 바타유는 같은 잡지에 [建築]이라 제한 문장을 쓰고 있으며, 두개의 택스트를 합한다면 건축적인 구성을 부정하는 몸짓으로 시작하여 앵포름란 발상을 향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미나 파리와 같은 흉한 것을 향해 눈을 돌릴려는 자세, 혹은 저속유물론의 이름하에 형태의 질서를 파괴하는 마티엘의 힘 같은 것의 돌출을 논한다 던지, 그 시기의 바타유의 사고에 도발적인 성격을 띠우게 한 특징적인 요소들이다. 후-코는 1970년에 바타유전집의 간행이 이루어질 무릎, 그 일들의 중요성이 금후 보다 명확하게 보여질 것이다라고 예언한 바 있었지만, 본퓨트센터의 전람회에서 [앙폴름]이란 이 한마디 말이 이렇게 까지 큰 영향력을 갖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에로티시즘] 혹은 [저주받은 부분]의 사상가였을 바타유가 미술관과 관게를 갖는것도 미묘한 현상으로 보일런지는 모르나, 이미 바타유의 초기의 택스트에는 [미술관]과 관계 있는 것이 있었다. 바렐리가 [미술관의 문제]라 부친 유명한 문장을 발표한 것이 1923년, 이 시점보다 수년후에 바타유는 전혀 다른 시점에서 [미술관]이라 부친 택스트를 쓰고 있다. 키로친의 출현과 미술관의 탄생을 변행적으로 논할려고 한 자세는 의표를 찌른 것이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저변에는 일관된 논리성이 보여진다. 혹은 상궤를 벗어난 것에 대한 공포와 연이어 던져지는 매혹을 둘려싼 언어들로 쓰 내려간 택스트 [소멸한 아메리카]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1928년 루-블 미술관의 한쪽 구석에서 개최되었던 [콜롬부스 이전의 아메리카]전과의 연관에서 쓰여진 것이다. [공의] [소비]등 그의 독자적인 주제의 각양 각색이 이미 여기서 준비되어진 것이었다라고 말해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이들 주제는 고흐의 自傷행위를 논하는 문장에서 더욱 명확해 지고 있는 것이다. 바타유는 미술비평의 분야의 일에 대해서 의욕을 나타냈다고는 볼 수 없으나, 1955년에는 마네와 라스코-의 벽화를 논하는 두권의 미술론을 스키라사를 통해 간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최 만년에 쓰여진 [에로스의 눈물]이 다수의 사진도판을 곁들여 있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미지의 강력한 매혹하에 지나왔던 인간의 모습이 여기서 떠 올라 온다. [라스코의 벽화]에서는 동굴 내부속으로 발을 디려 놓았을때의 감각을 논하는 점에서 바타유의 진면목이 보여진다. 그것은 고고학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진렬장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얻을 수 없는 감각이라고 바타유는 말하고 있다. 유용한 인간활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표출행위, 금기와 침범행위등, 이 책의 논지를 구성하고 있는 대립항에 관한 의론은 얼마간 도식적인 인상을 안겨 주고 있다고 하드래도, 동굴의 도상의 강력한 매혹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기에는 초기의 바타유가 문제시하고 있었던 聖性의 탐구가 되살아 나오고 있다. 바타유의 마네론은 말르르오의 미술론의 영항을 받았던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히 주제의 의미작용의 말살이야 말로 근대회화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둘려 싼 부분에 관해서 본다면, 그러한 점이 납득이 갈것이나, 단지 [회화]를 배후에서 지탕하고 있는 [사연, 내지 이야기]의 사멸을 확인할 뿐 아니라, 몸짓이란 문제를 둘려 쌓고 바타유적인 주장이 부상해 오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예를 들면, <올림피아>에 관한 부분에서 발레리의 말을 축어적으로 인용한 후,그가 이것에 예리한 비판을 더해 [원문은 다부로에 의해 소거된다], 혹은 [다부로가 의미하는 것은 원문이 아니고 이것의 소거이다]라고 말하고 있을 때, 한때 그가 [안포름]에 관해 논했던 때와 같이 그기서 제기되고 있는 것은, 퍼포머티브한 몸짓이 아닐까. 프랑소와즈.갸산은 바타유의 마네론에 관해 프로벨 혹은 못빠샹을 떠올리는 그림에 대해서, 맛손과 같은 동시대의 화가의 작업을 염두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분명히 바타유에게 맛손과의 공동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프랑소와즈.루비얀이 말한바와 같이, 1928년부터 37년까지의 맛손의 작업은 바타유의 작업과 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다. 파시즘의 대두와 새로운 전쟁에의 예감이 팽배한 속에서 예술적 제작과 철학적 사색이 惲然 일체화 되는 지점에서 이 작업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두부가 缺한 앗세팔像의 창출에 이르는 그 과정은, 바타유에게도 근원적인 체험이 였을 것이다. * 1897년 프랑스 뷔유히 드 돔縣 뷔용生. 파리 古文書學校 졸.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는 짬짬히 僞名으로 [眼球譚]을 저술. 20년대 말부터 [도큐만] [사회비평] [앗세팔]의 3종류의 잡지 간행에 깊이 간여함. 코쥬부의 헤겔독해의 쎄미나에 참가한 것도 이즘이다. 30년대 말부터는 가이요와.레리스와 불어 사회학연구회를 조직한다. 전후에는 [크리티크]지를 창간. 카르반드라의 도서관, 올아랜 시립도서관에서 근무. 62년 파리에서 몰.
1366 no image 김희곤 회고
2855 2016-10-30
1365 no image 도병훈 [보내고 받아 들이다] 전 -기사 보전
3114 2016-10-20
1364 no image 도병훈 [보내고 받아 들이다] 전 감상 3부
2857 2016-10-18
도병훈 [보내고 받아들이다]展 - 감상 3부 에피로그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언어’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해’ 보았다]– 후지하라신야(藤原 新也) [인도방랑]에서 예술감상이란 일종의 여행과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늘의 별만큼 찬란하고 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살고 있는 숲 속에서 무엇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거친 작위로 볼 수 있는 ‘방랑’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전부 달구어진 불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비로서 얻어지는 것은 여행이 아니고 방랑이라야 한다. 나는 도병훈 작가의 [보내고 받아들이다]展에 선 보였던 작품들이 내 품는 열기에서 ‘이미지’의 방랑을 보았다. 도병훈의 작품들은, 그렇게 방랑속으로 던저진 자신의 몸과 영혼이, 스스로 발산하는 기운을 받아 낸 침묵에서 울어 나온 ‘시’다. 작가뿐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도 이러한 방랑의 섭리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이치는 매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0이란 수가 탄생해 나왔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한 사건이 아닐 것이다. 수에서 0이란 개념이 나올 수 있었던 인도의 카오스의 세계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던 신야의 체험은 불교의 반야경이며 화엄으로 나가는 길이다. 20대 초반에 이 정도의 시야를 갖었던 한 일본 청년의 불굴성과 지혜로움 폭 넓은 파라다임을 만난다는 것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감상문 끝.
1363 no image 도병훈 [보내고 받아 들이다] 전 2부
3286 2016-10-12
도병훈 [보내고 받아들이다] 展 작품 감상 -2부 [나뭇잎과 나뭇가지]. 한지에 그림. 이 작품은 전통회화의 필법으로 나뭇잎은, [沒骨法](윤곽선 없이 색체나 수묵을 먼저 사용하여 뒤에 형태를 그리는 필법)으로, 나뭇가지는 [구勒법] (형태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색으로 채워 넣는 필법)으로 처리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이 멀리서 보면, ‘숲과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하며 원효사상의 ‘融二而不一’ (둘을 융합하되 하나가 아니라)’ 라는 경구로 은유 하기도 한다. 작품 감상은 형장에서 완상해 버릴 수 있는 작위가 아니다. 뒤돌아 와서 작가의 글도 참고하고 이런 저런 참고서들을 들춰 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 내고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감상해 가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그렇다. 적당한데 걸어 놓고 수시로 오가면서 감상해 볼 수 있는 상의 됨됨이 반은 추상적이면서 우리들의 사실적 감성에 와 닿는다. 전통회화의 필법을 그대로 쓰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살려 나가려는 작가의 작품 의도를 읽을 수 있다. [內延] – ‘보내고 받아들이다’ - 광목천에 혼합매체/ 450×204cm 작가의 자평을 옮긴다. [겸재 정선이 청하 현감을 하면서 작품의 필치가 결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된 장소인 내연산 계곡을 2000년대 초반 현장을 찾 아 가서 스케치를 하여 전통 산수화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이 내연산 일대의 계곡 입구 부분과 중간의 두 갈래 폭포, 겸재가 그 린 삼용추 폭포 위는 복숭아 밭이 있는 등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와 매우 유사해서 안견 – 정선 – 도병훈 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연기 를(역사성)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다] *참고: 겸제 정선(1676-1759) 숙종 –영조시대 사이에 꽃피웠던 조선의 문예부흥의 키-워드였던 [眞景山水]의 대가로 이를 완성시킨 선비. 老論界의 배경을 가진 정선 자신은 천기론을 기반으로 眞景山水畵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정선은 자연을 직접 대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흥취를 경험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의 명승을 찾아 평생 수없이 여행하였다. 또 산을 마주 대할 때마다 초본(草本: 스케치)을 그리면서 대상을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 애썼다. 정선은 평생 쓰다 버린 붓을 모으면 붓 무덤을 이룰 것이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없이 사생하고 연구하면서 정선은 자신만의 화풍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추상 [나와 물성 사이 공간 – 숨결] - 한지 그림 “두꺼운 한지에다 얇은 채색의 겹침을 빠른 붓질로 그린 그림임. 원래는 가운데 짙게 칠한 부분에 하얀 뱀 허물을 오브제로 붙일 계획이었으나 오 픈 날 잊어버려 붙이지 못함” –작가의 자평. 속의 깊이가 얕고 어떠한 이류-전(幻影)도 허용치 않으며 화면을 크게 잡는 공간구성, 평탄하게 느끼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 금 껴 안고 품는 기세로 다가 오는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점이 추상회화의 특징이다. 도병훈작가의 추상은 어떤 개념을 象形 化하여 이를 압축 상징화 시키는 것이라기 보담, 붓질의 입김 호흡을 느낄수 있는 속도감을 조절한 필치를 중시하는 동양화적 필법으로 조성되는 것으로, 바타유가 발견해 낸 일종의 [非.知]적 場을 연상시켜준다. 주역의 卦가 기본으로는 음양의 爻( -- 와 - -)로 구성되 있으며 우주의 찬생원리인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이치와 같다. 에너지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실체로 존재하면서 우주만물의 으뜸 요소일 것이다. 우리는 도병훈 작가의 [숨결]에서 예술적 작위의 힘을 빌린 이러한 에너지를 이미지화 시킨 묘를 느낄 수 있으면서 알게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퍼포멍스 - 여기에도 ‘旋回’가 있노라 전시회 끝자락에 가서 퍼포멍스의 使役을 맡은 김성배 작가는 ‘사물’과 자신의 ‘신체’를 표현 매체로 쓰는 제주가 뛰어난 원로급에 헤당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의 피날레 세르모니(供儀 儀式)를 맡은 김성배는 역시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헤프닝을 연출해 냈다. 전시 바닥에 광목천을 깔아 놓고 그 위에 배를 아래쪽으로 하고 손에 안료를 묻혀 360도 선회하면서 원을 그려 내는 수작을 보여주는 행위예술이다. 행위예술은 일반 전시작품과는 달리 시작과 끝이 한 눈에 들어 오지 않음으로써 관람객에게 예측불허의 불안감이나 기대감 같은 非知적 가상체험을 맛 보게 한다. 또한 행위예술이라 부르는 이 쟝르의 특징은 신체와 사물(화구나 안료)- 엄밀히 말한다면, ‘철학과 미술’이 서로 맛붙어 몸을 섞는 행위이기도 하다. 작가 김성배가 이번 전시장 바닥에서 보여주는 행위예술의 결과 얻은 이미지물은, 그가 평소 선호하는 ‘우주적’ 비전너리를 떠 올려 주었다. 그가 바닥에 누워서 그려낸 필체의 흔적은 질서가 없고 혼돈스렵지만 원은 경도와 위도를 그 안에 품고 있는 가장 확실한 우주적 실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가 합쳐진 카오스모스(Chaosmos)로써 도병훈 작가의 작품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퍼포멍이 행해진 바로 옆에서는 작가 김수철이 보조원들과 함께 고사한 포도넝쿨 나무에 먹을 부어 넣고 안료를 흩날리면서 넝쿨나무가지를 바닥에 내려 치면서 산산히 뿌셔 버리는 또 다른 퍼포밍을 펄쳐 보인다. 이 騷動으로 전시장은 정일한 분위기에서 돌연 도살장 같이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필자는, “예술과 일상이 융합하는 또 다른 예술적 표현”이 연출되고 있는 장이 형성되었다, 라고 생각한디. 이로 인해 관객은 시원한 소나기를 맡는 상쾌한 기분에 젖게 된다. 예술심리학적 개념으로 말한다면, ‘카달시스(解怨)’ 바로 그것이다. 어느 점이 예술의 경계이며 비예술(심리학적 진료행위)인지 구별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관객은 그래도 신이 나서 함성을 질려 된다. 퍼포밍이 노렸던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였던가. 솔트레이크 호수위에 거대한 나선형 둑을 쌓았던 스미드슨에게 누군가가 묻는다. 크레인으로 밀어 부친 이 거대한 둑이 어떻게 예술인가? 스미드슨은 주저 없이 답한다. “붓으로 그린 선과 크레인과 내 몸으로 그린 선의 차이를 말해 보라”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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