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조회 수 : 4061
2007.06.05 (13: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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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한 소고(도병훈) (2003.11.3)

전원길 옮김

2004/2/20 (23:18)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한 소고

                                                    도병훈(작가)

들어가는 말

지난 수 십 년간 주로 일본에 거주하면서 예술 활동을 해 온 이우환의 회고전이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란 표제 하에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개최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이우환 전은 지난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작까지 조각, 회화, 드로잉에 이르는 그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회다.
그동안 이우환에 대한 미술사적 자리매김은 지난 1960년대 후반에 일본의 현대미술인 “모노하”의 이론적 지반을 구축하며 활동한 작가라는 것과, 7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주된 경향이었던 이른바 “단색회화”의 형성과(각주1) 그 당시 전위적 예술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각주2)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그간 국내외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는 상당량의 글이 쓰여 진 것도 사실이다.(각주3)

각주1)특히 이번에 전시된 그의 드로잉 작품들의 특성-이를테면 필획에 의한 신체성과 행위성의 강조, 필획의 반복적 변주 등-을 통해 70년대 한국의 단색회화작가들이 커다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우환-만남을 찾아서 도록, 2003. 132-135쪽 참조.
각주2)이건용, 이우환이 한국현대미술에 미친 영향, 현대미술, 1992년(봄), 9-15쪽 참조.
각주3)박용숙, 원동석, 홍가이, 김미경, 김원방, 이동석 등의 글이 있으며, 이 중에서 김원방은 이미 무한히 열려져 있는 세계가 어떻게 새롭게 열릴 수 있는가라는 논지의 비판적 글을 쓴 바 있다. 김원방, 『잔혹극 속의 현대미술』, 227-239쪽 참조.

그러나 대개는 이우환의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 예술관을 대변하는 동어반복이었을 뿐 이우환 작품세계의 본연적 특성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것은 적어도 그의 철학적인 미학의 논리가 현대예술의 중요한 맥락을 간파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자신이 부인해왔음에도 그의 작품세계가 동양적 외연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련된 현대성을 보여주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우환의 예술세계의 미학적 논리나 형식적 특성은 ‘일본적’이기도 하고 ‘서구적(특히 미니멀리즘)’이기도 하고 ‘중국적’이기도 하고 ‘한국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이우환의 작품세계는 시기별로 그 특성도 달라지며 때에 따라서는 미니멀적 요소(이른바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와 한국적 요소가, 때에 따라서는 일본적 요소가 더 부각된다. 특히 최근의 회화 작업인 <조응> 시리즈는 그가 20대 이후 현재까지 주로 살고 있는 장소적 공시성과 통시성, 즉 일본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집약된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간 국내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이러한 특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고찰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일본의 전통적 미학의 특성(각주4)과 이에 근거한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해 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각주4) 일본은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지방분권적 봉건주의국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처럼 비교적 단일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적 체제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의 전통문화는 너무도 다양하며 이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마을마다 다른 다양한 축제문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적이라고 하면 너무 거대 담론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번도 전통이 단절된 적이 없으며, 이는 섬나라 특유의 개방성과 폐쇄성이라는 모순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우환이 청년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이러한 이질적 문화 속에 한편으로는 적응하고 한편으로는 대응해간 삶을 살았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우환의 경계인적 삶과 철학적 사유방식

이우환은 자신이 스스로 “영원한 떠돌이”라고 말했듯, 그의 삶은 요즘 유행하는 말이기도 한 ‘경계인’에 비유될 수 있다.(각주5) 즉 이우환은 ‘중간자(中間者)’적 경계인의 삶에 그 철학적 예술적 기반을 가진 작가다. 가령 ‘외부와의 관계성’이 그의 작품의 일관된 화두가 된 것도 그의 경계적 삶에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의 경계성을 이해해야 한다.

각주5) 그는 흔히 자신을 ‘중간자’라고 하고 이렇게 말한다. “늘 쓰라린 지점에 서 있다. 곧 어디에서나 내쳐지고 위험분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망자로, 다른 한쪽에서는 침입자로 공동체 밖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은 이쪽도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체가 되지 못하고, 어긋나 있는 몫만큼 상대방이 잘 보인다. 거리의 역학이 오늘날 나를 만든 것이다.”이우환, 김춘미 옮김,「중간자」,(『여백의 예술』, 현대문학, 2002, 24쪽)

이는 그의 예술관의 기반인 사상부터 그러하다. 이우환의 사상적 기반은 서구의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과 일본의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철학에 있다.
메를로 퐁티의 사상은 서양의 과학적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대두된 20세기 전반의 철학사조인 훗설의 현상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각주6) 이 훗설의 현상학중 후기 사상인 생활 세계적 이론을 근거로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이 성립한다. 먼저 하이데거는 ‘세계-속-존재’라는 존재론을 펼치며, 메를로 퐁티는 이 세계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정신과 물질, 인간과 현실 등이 혼융된 이분법적 규정이전의 객관이전의 장과 양면적 존재로 본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는 “화가의 비전은 외적인 것에 대한 조망이 아니요 단순히 세계와의 물리광학적인 관계도 아닐 때 화가 앞에서 세계는 표상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 않다”(각주7)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사상을 통해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란 비평집에 들어 있는 사유체계와 그의 작품세계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각주6) 이 현상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선험적 현상학’과 ‘생활 세계적 현상학’이다. 먼저 선험적 현상학은 인식의 가능근거를 선험적 주체에 둔다. 즉 선험적 현상학은 인식의 근거를 객관 세계에 대한 실증적 탐구를 통해 정초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 선험적 현상학에서는 주체 없는 대상도 대상없는 주체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선험적 현상학에서의 대상이란 곧 지향적 대상이다. 반면에 생활 세계적 현상학은 인식의 가능근거를 생활세계에 둔다. 현상학에서 말하는 생활세계란 과학적으로 즉 이론적으로 파악된 세계가 아닌, 모든 이론적 틀을 벗고서 바라본 전 개념적 차원, 즉 지각된 세계다. 따라서 이는 신체에 의해 즉 전반성적 코기토에 의해 파악되는 시공간이다. 그래서 이 생활세계는 개개인의 체험을 통해 생성된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각주7)메를로 퐁티는 그의 마지막 저서로서 세잔느의 그림에 대해 논한 『눈과 마음』이란 글에서 데카르트의 광학론을 비판하면서 세잔느의 회화의 특성에 대해 이 같이 말한다.

또한 니시다의 철학은 일본의 전통적 선사상에 그 이론적 지반을 두고 있으며 “참다운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것은 안도 바깥도 없는, 오직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자기를 한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모순을 삶의 본질로 보았다.
사실 선사상은 니시다의 철학 이전부터 일본의 전통적 미학의 핵심으로 일본적 역사와 풍토 속에서 독특한 미학의 구심점이 된다. 즉 일본의 선불교는 인도불교와 달리 극히 ‘현세’적인 중국의 선불교를 계승하면서도 일본의 풍토성과 전국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생성된 일본 특유의 생사관이 반영된 일본의 미학적 토대이다. 이러한 전통적 미학은 무사와 칼의 역사인 일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사의 삶은 그 만큼 순간 속에 전 생애를 집약하는 몰입을 할 수밖에 없다. 피비린내 나는 무사의 삶이 역설적으로 감성적 섬세함을 지향하게 했고 이것이 일본미학의 특성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돌로 자연을 응축시켜 그 풍취를 즐기는 ‘분석(盆石)’이라든가 ‘분재’, ‘꽃꽂이(幻)’ 등은 이러한 일본적 풍토에서 나온 미학이다.
따라서 일본의 선사상은 일본의 예술사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일본 특유의 미학은 이를테면 돌 몇 개만이 놓여 있는 ‘요안지(龍安寺)의 세키데이(石庭)’이라든가, 이우환도 자신의 작품세계로 근거로 인용하고 있는 센리큐(千利休, 1522-1591)의 낙엽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각주8) 가령 이우환이 『만남을 찾아서』 란 글에서 예로 든 길바닥에 고인 물에서 체험하는 만남(각주9)이라든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유리 컵과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일본적 미학의 전형적 한 예다.
가령 이번에 그의 작품의 근거로 호암갤러리 2층에서 함께 전시된 여러 가지 그의 애장품인, 청동 종 파편과 깨진 조선백자 달 항아리, 그리고 작은 테라코타 편지, 그리고 매우 조그만 청동으로 만들어진 부처 손가락 파편 등도 일본적인 섬세함의 지향인 ‘만남을 찾아서’에 가장 부합되는 사물들이다. 결국 이와 같이 극히 순간적 명징한 체험 속에 모든 삶의 궁극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본의 전통적 미학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각주8) “어느 가을날 센리큐는 정원에 흩어져 있던 낙엽을 감상하고 있던 중, 감동 속에 영감을 얻었다. 그는 정원 전체를 깨끗이 쓴 다음 낙엽 몇 개를 주워 다 다시 그 자리에 뿌려 놓고 마음껏 즐거워했다. 진정한 창조는 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약간 어긋나게 함으로써 세계의 신선함을 드러내 주는 데 있다.”이우환, 이우환(Lee Ufan), 미술출판사, 도쿄, 1986.
각주9) 비가 내린 길을 걸으면 그곳에는 많은 웅덩이가 있다....(중략)...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던 보행자는 문득 어느 웅덩이 앞에 돌연히 멈춰 선다. 다른 것과 특별한 차이도 없지만 왠지 가까이 다가가서 그 웅덩이 앞에 움추려 서버린 것이다. 그 웅덩이가 재빠르게 윙크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물웅덩이 어딘가에 자각감관이 반응하기 쉬운 성질을 개시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 물웅덩이의 성감대와 그의 의식 흐름의 어떤 촉수가 마침 적시에 세계와 접촉했다는 것일까? 어찌 됐거나 그때의 그는 확실히 그곳에서 세계의 어떤 선명함을 ‘본’ 것이며, 그렇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세계의 이상적 모습과 순간적으로 ‘만났다’고 느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중에서 인용.

일본에서는 나라(奈良)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이미 일본 특유의 심미적인 예술성이 고도로 발달한다. 노리나가(本居宣長)의 모노아와레(物のあわれ)(각주10), 즉 사비(寂び)(각주11)니 와비(?び)(각주12)와 같은 정(靜)적인 감상주의를 말한다. 특히 바쇼의 하이쿠(5,7,5조로 된 일본 고유의 단형식)에서 볼 수 있는 간결성이 이우환의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형식적 간명함은 미니멀적 단순성과 하이쿠 미학의 결합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그의 ‘최소한’의 논리는 ‘청빈(淸貧)’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이 청빈이 특히 일본에서 하나의 미학적 삶의 양식으로 구현되었다(각주13)는 점에서 그가 지향하는 작품의 두드러진 특성인 최소한의 미학은 이 청빈과 분명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절제된 삶 속에서 역설적으로 무한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일본의 청빈사상이다.

각주10) 물성의 가련함, 비애를 느끼게 하는 모양을 뜻함.
각주11) 정취, 아취를 의미함.
각주12) 한적함, 간소하고도 차분한 아취, 유한한 정취를 의미함.
각주13) 특히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의 선승이자 시인인 료칸(良寬, 1758-1831)이나 다치바나 아케나(1812-1868) 등이 유명하다. 물론 이러한 청빈사상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 죽림칠현이나 도연명의 삶에서 유래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들어 이러한 청빈사상이 없지 않으나 일본처럼 삶의 미학으로까지 구현된 것은 아니다.

이우환의 사상적 기반은 그의『만남을 찾아서』란 비평집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우환은 데카르트 이래 자연을 대상화한 서구의 근대주체 철학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즉 이우환은 “근 사오백년간 근대미술의 번영과 조락과정은 상(像)의 형상화라는 표상작용의 역사이다. 만든다는 것은 이념의 대상화 즉, 상의 물상적 응결화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다.(각주14)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물상을 이념적 존재로 변질시킨 결과 근대 공간은 마침내 이념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각주15)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성립한다. 여기서 이우환이 지향하는 미학적 세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른바 그의 ‘만남’에 대한 갈구와 그러한 만남을 가능케 한다는 ‘구조’, 또 만남이 구조가 된다는 ‘장소’ 와, 그의 ‘관계’철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각주16)

각주14)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서두 부분에서 인용.
각주15) 이우환, 앞의 글에서 인용.
각주16) 장소성은 칼 안드레가 제시한 것으로 현대 조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지만 이우환 조각에세 만남이 구조가 된다는 것은 일본 정원을 상징하는 금언인 “石を見るな石組を見よ(돌을 보지 말고, 돌을 놓은 그 짜임새(構造)를 보라.)” 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의 철학적 인식은 “의식이 존재를 결정 한다”는 서구 근대철학의 주객 이원론적 인식론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도 신체성에 기반을 둔 현상학적 철학은 그의 예술의 이론적 토대인 것은 자명한 것이다.
물론 그의 만남의 철학이 과학적 인식, 즉 의식 전반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20세기 중에서 가장 급변하는 시기였던 60년대적 시대상황, 이를테면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적 문명을 반성하는 징후인 히피문화의 출현이라든가, 포스트 모던적 사상이 대두하던 시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으며,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이우환은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반과학적인 사상인 현상학에 경도될 수 있었고, 또 이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동양의 사상,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서의 시공적 체험 등이 복합적으로 착종된 그의 예술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미학은 무엇보다 반과학적인 생각이 깔려 있으며, 특히 일본적 풍토의 소산인 미학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특히 그의 작품에 있어 핵심적 지향성인 “만남”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작품에서 한국적 요소는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바로 미니멀과 일본 미학 그리고 어릴 때 한국에서의 붓글씨(사군자) 등 이 모두를 ‘비빔밥’처럼 종합하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특성이 아닌가?(각주17) 무엇보다 그가 『이조의 민화』란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을 의식하지 않은 미완결성(각주18)이 그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측면이다. (이러한 해석과 관련하여 그의 조각에서는 ‘의도적 어긋남’과 무한을 지향하는 ‘외부성’으로 표현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우환의 그림이 80년대 들어서는 한 때 화면이 국악의 산조(散調)처럼 흐트러지면서 자율성의 진폭이 커진 것도 이러한 한국적 전통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각주17) 한국의 고대 기층문화는 북방의 유목문화와 남방의 농경문화의 만남(비빔밥)의 역사이다. 사상적으로는 원효와 지눌 최제우의 사상, 예술적 측면에서는 백남준과 강익중의 예술세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각주18) “이조의 화가들은 초인간적인 이상을 보여줄 만한 원경을 그리지도 않고, 범할 수 없는 대상의 존재성에 육박하는 근경을 그려내는 일도 없다...(중략)... 애매모호한 성격의 점과 선으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대상의 윤곽을 대충 그어대는 것으로 붓을 놓고 있다.” 이우환, 『이조의 민화』, 열화당, 1988, 10쪽.





이우환의 최근 작업의 특성

그런데 90년대 들어 이우환은 화면에 점 한 두개를 그리는 정제된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여백의 미학의 근거는 불교의 공(空)사상이나 노자의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각주19)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실 선 하나 점하나 찍어 놓고 ‘여백의 미’를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색(色)과 공이 둘이 아니다’는 ‘색공불이(色空不二)’ 사상은 여백 일변도의 공사상의 허구성을 알게 한다.
흔히 대개의 작가들이 말년으로 갈수록 작업이 단순해지는 것은(각주20) 그저 양식적 세련미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고도로 응집된 차원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우환의 최근 회화 작업인 <조응>시리즈의 극도로 간명한 양식적 단순성은 지금까지 그가 해온 발언과 작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각주19) ‘허(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하게 한다’는 뜻임.
각주20) 물론 프랭크 스텔라처럼 역으로 간 케이스도 있다.

예술가의 길이란 분명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므로 도를 닦는 수련의 과정에 비유된다. 그러나 예술의 길이 도를 닦는 과정일 수는 없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내면적 마음의 수련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각예술의 길은 늘 즉물적인 현실과 대면하며 특히 회화나 조각은 그 즉물성으로 표현되는 세계다. 이 즉물적인 현실은 우리의 마음과 언어 이전의 세계이다. 이에 따라 하나의 시각예술 작품이 갖는 울림, 즉 감동의 유발 요소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실존적 현실’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표현의 다양성(차이)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가령 극단적 단순재현도 극단적인 추상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결국 이룰 수 없는 허상의 편향적 추구였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극미의 세계이면서도 극대의 세계이고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다중적 복수성과 모호성이 시각예술의 본질적 특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다중적 복수성을 외면한다면 그만큼 스스로 표현을 제한하는 것이고 편협함을 노정하는 길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팔대산인의 그림에서 극대화된 여백의 미학은 그 이면에 그의 비극적 생의 비통함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깊은 감동을 유발한다. 그러니까 팔대산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백과 극히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필획은 그러한 비통함에 초연하려는 의지가 극히 역설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우환의 최근 작업인 <조응>시리즈는 예측 가능한 추상적 구성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붓질과 여백은 단지 형식적인 간명함과 단순성으로 느껴진다. 즉 ‘양식화된 제스처’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 작품에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한 열리는 앙양된 공간”(각주21)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최근 작품들은 극히 정제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붓질과 여백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자신의 예술세계를 ‘브랜드’화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각주21) 이우환, 김춘미 옮김, 앞의 책, 17쪽

어떤 의미에서 작가들은 평생 ‘과정’의 삶을 산다. 그것은 일찍이 마르셀 뒤샹이 간파했듯이 예술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정답을 찾으려는 삶의 진정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화된 제스처야말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길이 아닌가? 요컨대 그것은 예술을 가장한 고급 상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이우환이 국제적으로 평가된 것은 서구(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인상파에 일본 미술이 영향을 준 이래 일본이 갖는 문명적 차원에서의 위상 때문이다. 예컨대 아놀드 토인비가 그의 『도전과 응전』에서 일본을 중국과 별도로 하나의 단일 문명권으로 다루었을 정도로 서구에서 일본의 위상은 두드러지며, 이는 한 때 유럽 공동체와 비견될 정도였던 일본의 전후 경제력, 수십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던가, 불교의 유식사상에 근거한 객관적 인식론에 대한 회의와 일본적 영상미로 세계영화사에 충격파를 던진 쿠로자와 아키라의 <라쇼오문>이란 영화,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와 같은 세계적인 선(禪)사상가 등의 존재에 의해 일본의 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특히 유럽에서 그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 때문에 일본의 한 현대미술작가로서 이우환의 위치는 자리 매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매김을 발판으로 결국 지금 한국에서도 대접받는 화가가 된 것이다.





맺음말

이우환의 예술세계는 우리 현대 미술사에 끼친 적지 않은 영향으로 인해 이미 미술사적 의의를 갖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며, 특히 그의 삶과 예술세계가 경계인적 다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우환의 작품세계, 그 중에서도 <조응>시리즈 이전까지는 크게 보면 다중적 요소가 착종된 경계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경계적 삶을 토대로 항상 양의적인 발언을 해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보거나 보이고 있다는 것, 동일성과 차이성, 현실과 관념, 그리는 것과 그리지 않은 것, 물질과 정신, 자아와 타자(외부), 인위와 자연의 경계에서 신체의 행위를 매개로 중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작업과 80년대의 <바람과 함께> 시리즈에서는 그의 이러한 지향성에 근접하는 듯한 징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보여주는 그의 작가적 행보와 작품의 경향은 더 이상 경계인의 삶과 예술이 아니다. 즉 최근 이우환의 작업은 일본적 탐미주의의 현대적 변용으로 그만큼 표현의 범주를 스스로 제한하면서도 그것을 ‘여백의 미학’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근의 패턴화된 붓질과 여백은 중국 청대의 일부 수묵화가들이 필묵유희에 빠져 말폐를 드러내었듯이 동양권 예술가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공소한 속성인 것이다. 최근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원점에서 예술의 가치를 되물음으로서 우리의 삶을 확장해왔던 현대미술가로서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2003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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