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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15: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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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단상



"만득이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어요. 그걸 알기 위해 생각을 하다가 정처 없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하는 겁니다."(2003년 서울대 초청강연)" (*옛날에는 완행열차를 타면 실제로 '삶은 계란'을 외치며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즐겨 이야기한 유머라고 한다. 이분이 돌아가신 후 연일 매스컴에 크게 보도 되고 추모 인파도 수 십 만이 몰리는 것은, 무엇보다 이 분이 엄혹한 시절에도 불의에 굴하지 않았고, 평생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렇지만 일시적 열풍은 현재의 암울한 시대 분위기와 워낙 이 분이 갖고 있는 종교적 사회적 지위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의 진면목도 역시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파장 속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기실 김 추기경의 삶의 배경에는 이 분이 추기경이 되기 직전 1962년 10월, 교황 요한 23세의 주도로 이루어진 공의회(*세계의 모든 주교들이 모인 가운데 교리와 규율과 전례 등을 검토하는 최고의 의사결정체로 수 천 년 가톨릭 역사 속에서 1960년 이전까지 스무 번 개최됨)에서 제시한 ‘아조르나멘토’도 있었다. 아조르나멘토는 가톨릭 역사상 매우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까지 고정불변의 것으로 여겼던 교리 해석과 표현, 전례, 규율, 사목 등에 대한 반성은 물론 쇄신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무소유’의 저자 법정이 주관한 불교 사찰 개원식에도 참석할 정도로 타종교에 대한 관용정신을 보여주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바로 이러한 아조르나멘토의 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필자가 이 분에게서 발견하는 매력은 종교적 제도 안에서의 지위를 넘어선 소탈한 성품을 바탕으로 한 인간적 면모다.
김수환 추기경은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근처인 경북 군위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분이라 진작부터 고향의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을 느껴왔다. 이 분의 회고에 따르면 대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선산에서 군위로 가기 위해 붉은 노을 지는 석양 무렵 고개를 넘었다고 하는데, 필자도 그 산과 고개 마루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대구로 나와 신학교에 들어간다. 이후 신부가 되는 과정에서는 이 분의 회고에 따르면 뜻밖에도 어떻게든 신부가 되지 않으려 한 인간적 면모가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성직자가 되고 난 뒤에는 참된 성직자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려고 평생 노력했다.  

그렇지만 이 분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 정말 깊은 감동을 느낀 것은 다른 글에도 잠깐 썼지만 소박한 자화상과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었다.      

"바보 같이 안보여요? 저 모습대로는 아니지만 바보 가까워…. 제가 잘났으면 뭘 그렇게 크게 잘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는 것이 바보지. 그런 식으로 보면 내가 제일 바보스럽게 살았는지도 몰라요."(2007년 동성고 100주년 전시회에 '바보야'라고 쓴 자화상을 내놓은 뒤)

다음 글도 이 분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한다.  

"누가 나한테 미사예물을 바칠 때 자연히 내 마음이 어디로 더 가냐하면 두툼한 쪽으로 가요. '아니'라고 하는 게 자신 있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안 그래요. (웃음) 어떤 때는 무의식 중에 이렇게 만져보기도 해요."(2005년 부제들과의 만남에서)

18일 공개된 서재 책상 위엔 이 분이 쓰던 육필 원고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나는  누구인가? 80을 넘긴 내가 새삼스럽게 이런 물음을 던져 본다....” 김추기경은 지난 해 7월 병원 입원을 위해 주교관을 떠나던 순간까지도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한다.
이 분의 이런 면모는 서산대사가 마치 입적하기 직전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고 적은 시를 떠올리게 한다.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종교라는 것은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어느 문명권에서나 삶의 기틀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그 도그마가 큰 폐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의 가톨릭도 교세의 확장이라는 외연적 성장과 비례하듯, 특히 1990년대 이후 보수화되는 추세이다. 그래서일까? 삶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김추기경의 구도자적 삶은 종교의 본질과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반문하게 한다. 이런 차원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선종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돌아볼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09년 2월 19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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