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5309
2009.09.06 (16: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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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이번 여름 학생들과의 답사체험후 만든 자료집 서문으로 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나 답사를 동경하고, 예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싶어 한다.‘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정해진 기호의 틀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산다. 이러한 기호의 틀은 인간의 의식적 진화 속에서, 특히 근대이후 합리적 사고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 의식 밖의 세계나 삶은 이러한 기호의 틀로 규정 할 수 없다. 이를 실존적 용어로는‘앎과 삶의 괴리’, 또는‘부조리’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인식)은 항상 불완전하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와 인식의 다섯 단계를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라 한다. 색은 이 세계(대상)와 내가 감각과 관념 이전의 상태로 존재하는 차원이라면 수․상․행․식은 순수한 감각적 지각을 바탕으로 상이 맺히고, 이름이 붙여지는 인식과 정신의 단계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또한 우리 몸의 다섯 감각기관도 모두‘식(인식)’을 이루는 요소이며, 이를 바탕으로 더욱 높은 단계의 앎에 도달하는 것으로 본다. 앎이 단지 지식의 습득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감응, 즉 체험을 근본적인 인식의 단계로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각 및 인식의 과정은 현대의 뇌 과학 및 인지과학이나 철학에서도 논의된다. 예컨대 미국의 시각문화연구학자인 미첼(W. T.Michell)은 체험영역을 몸성, 시각성, 세계성이란 범주로 나누어 체험영역의 중심은 몸성, 소통영역의 중심은 시각성, 이해 영역의 중심은 세계성으로 보았다.  
  또한 기호학의 창시자 퍼스(C.S Pairce)는 몸의 체험과 관련된 기호를 지표index, 시각적 이해와 관련된 기호를 도상icon, 세계성의 이해와 관련된 기호를 상징symbol로 구별하였다. 퍼스는 현실적으로는 대개 이 세 가지가 결합된 복합기호로 보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그림이든 건축이든 감응하고 해석하기 전의 대상 그 자체는 텍스트(text)이며, 이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나 숨겨진 의미 등은 콘텍스트(context)이다. 문화유산이나 예술세계의 참된 가치는 규모의 크기나 외형적 형식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에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형성된 정신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답사 과정이란‘텍스트를 통한 콘텍스트 알기’이다.
  이러한 여러 다양한 관점들은 답사나 예술체험이 정해진 개념이나 인식적 가치에 동화되는 과정이 아니라 지각과 감응을 바탕으로 새롭게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는 과정임을 알게 한다. 가령 궁궐과 사찰의 경우 지세를 살피고 또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보고 진입하는 체험을 통해 기존의 개념과는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됨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구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회화나 도자기의 경우, 기법적 측면이나, 자유로운 정신 등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 면밀히 살펴본다면 그 선적 리듬감이나 미묘한 색조를 통해 틀에 박힌 이해방식과는 다른 느낌이 촉발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답사나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탐색과 감응이 현장에서의 순간적 경험으로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탐색 결과를 글이나 포트폴리오 형식의 자료로 제작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체험을 이미지나 기록으로 정리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나아가서는 삶의 가치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오감을 통한 지각들(percepts)과 감응들(affects)을 바탕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안을 탐색하고, 나아가 스스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답사나 예술체험이다. 이처럼 새로운 경험이 새로운 사유를 낳는 계기가 되며, 예술 또한 새로운 사유의 매개체라 할 수 있다. 답사나 예술체험은 기존의 통념적 관념에서 벗어나 오감을 통해 가치 있는 정신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나아가 삶의 가치를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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