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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0: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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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보는 그림 그리기


1.
미술세계는 과학이나 철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체와 대상(세계들: the worlds)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 세 영역 모두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진화해온 공통점이 있지만 미술은 ‘지각’과 ‘감응’의 요소가 두드러진다. 고대 그리스 미술의 경우, 아름다움은 대상의 객관적 속성에 있다고 보는 ‘대이론’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삼라만상의 변화를 초월한 불변의 존재이며, 그 바탕은 이상적 규범이었다.
동양의 수묵화(水墨畵)는 이와 다른 세계관의 소산이다. 수묵화는 중국의 남송(南宋)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지는데, 그 사상적 ․ 문화적 배경은 위진 남북조 시대와 당(唐)시대에 성행한 노장(老莊)사상과 불교(선종禪宗)이다. 노장사상과 선종은 개념적 체계나 도그마도 부정하는 급진적 자유정신이다. 그래서 이러한 정신이 반영된 수묵화는 지적 체계나 관념성을 띠지 않는다.  
서양 근대미술은 근대성의 증표다. 근대 미술은 합리적 사고의 소산인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바탕으로 이상적 진리를 제시하거나 페트론, 즉 후원자의 미적 취향에 따른 재현적 묘사를 현란한 솜씨로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아직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이므로 그림이나 조각만이 사물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양의 현대미술은 이상적 진리를 제시하려는 규범적 미학이나 후원자의 사적 취향 미학을 회의(懷疑)한 사람들에 의해 성립한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기존의 개념적 체계나 인식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 많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
언어학자에 의하면 서양의 언어는 명사, 동양의 언어는 동사 중심이어서 서양은 ‘실체(존재)’적으로 동양은 ‘관계(생성)’적으로 사고한다고 본다.
고대 동양에서는 우주란 연속적 장(場)이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물들 간의 상호작용은 원자들의 충돌이 아니라 파장들의 중첩으로 이해되었다. 『주역』에서 알 수 있듯, 고대 동양인들은 ‘사물’의 본질보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당연히 어떤 사건이 특정 상태라는 것은 곧 변화한다는 징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삶도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끊임없는 변화과정이므로 모든 존재는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도 있어, 이러한 상태를 지각하는 시시각각의 감각과 경험이 중시되었다.  
그래서 도가사상과 선불교에서는 ‘언어’로는 대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나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이런 차원의 말이다. 선불교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과격한(?) 말이 있는 것도 각자가 아는 부처는 자신의 언어적 틀로 보는 부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사상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획기적 전환은 칸트의 '구성설'에서 이루어진다. 구성설이란 나의 인식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뜻으로, 우리의 인식, 즉 앎이란 근본적으로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나의 이해가 나의 틀대로 세상을 찍어낸 것임을 뜻한다. 나의 인식의 틀이 '△'이라면 세상은 '△'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인식은 언어를 바탕으로 하지만 언어는 실제세계에 대한 자의적 기호이므로 실제 세계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구성적 세계인식은 지동설 이전의 천동설은 물론 근대 서양을 특징짓는 근대의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이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뉴턴은 고전물리학을 통해 이 세계를 몇 가지 법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는 세계의 바탕이 질서 정연한 것이라는 연역적 믿음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관점에서 근대를 가능케 한 합리적 사고도 이른바 '주체'가 '대상'을 결정하는 사유의 한 방식이며, '인간의 세계 지배'라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언어적 특성에 의한 사유 이전에, 인간이 대상을 그자체로 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까닭의 근저에 욕망의 문제가 있다. 대상을 통해 욕망을 충족하려는 본능적 마음이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대상을 그 자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정신과 의사들은 7세 이전의 아이들에게 자기중심성이 강하며,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동서양의 언어적 특성에 의한 사고의 차이나, 칸트의 사유, 그리고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한 이해는 결국 인간의 말이나 문자로 기인하는 인식의 틀을 자각하게 한다. 물론 말이나 문자는 대상이나 어떤 사실을 지칭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되어 소통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어떠한 과학적 언어도 근본적으로 기호에 지나지 않으므로 우리의 생각도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어느 시대나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나 객관적 진리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믿는 보편적 사실이나 진리는 한 시대의 역사적 과정에 따라 생겨난 인식의 틀인 것이다.
한 개체로서의 개인은 낯선 타자 속에 둘러 싸여 있으며, 이러한 환경에 대해 적응하는 것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진리나 행복에 대한 욕망은 안정적 삶을 희구하는 생물학적 욕망에서 비롯되며, 인간이 추구하는 과학적 ․ 객관적 진리나 행복은 바로 이러한 불안정한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욕망인 것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감응과 비판적인 힘은 예술과 이에 대한 담론을 통해 자각할 수 있다.  

수묵화 중에는 노자 어법을 빌리면 유무상생(有無相生), 불교 언어로 표현하면 공즉시색 색즉시공, 즉 색공불이(*色空不二:보이는 세계와 안 보이는 세계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는 뜻임)를 느끼게 하는 그림들이 있다. 이러한 그림들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은 세계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 속에 변화하는 세계를 느끼게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의 과학적 시각에서도 수묵화의 주된 표현 매체인 ‘먹’과 ‘물’은 자연의 변화과정을 잘 알게 하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수묵화는 물(H2O)과 먹(탄소Carbon)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하얀 종이나 비단 위에 주로 짙고 옅은 농담의 차이로 그려지며, 간결하게 표현하면 몇 개의 선과 여백으로만 표현된다. 먼저 물의 경우, 구름, 강, 호수, 바다로 존재할 때는 눈에 보이지만 허공중에 밀도가 약한 상태로 존재할 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며, 사실은 변화의 과정을 한 순간의 이미지로 고정시킨 것을 우리는 존재로 여긴다.  
나무도 그렇다. 나무를 태우면 남는 숯을 통해 알 수 있듯, 나무는 탄소 덩어리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은 허공의 CO2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보이고 안 보이는 차이는 밀도와 모양의 차이일 뿐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런 차원에서 수묵화는 짙고 옅은 농담(濃淡)이나 마르고 촉촉한 고윤(枯潤), 그리고 여백(餘白)으로 자연의 변화과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경험은 개별적이며, 시대나 지역에 따라 무엇보다 화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수묵화는 자연(세계)에 대한 인간(주체)의 감응을 보여준다. 동양의 시론이나 화론 중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볼 수 있다. 예컨대 명말 청초의 학자이자 시인인 왕부지(王夫之, 1619~1692)는 자신의 예술관을 정경교융(情景交融)이란 말로 표현한다. 동양 시론(詩論)의 핵심으로도 유명한 이 말은 대상인 경물(객체의 모습)과 사람의 주체의 느낌(감흥)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상황적 관계를 중시하는 차원을 말한다.(*景中生情, 情中含景) 이 말은 왕부지가 시(詩)의 차원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경’을 보고 ‘정’을 일으키는 정수경생(情隨景生), ‘정’을 머금어 ‘경’에 투사하는 이정입경(移情入景), 둘의 선후를 구분하지 않는 ‘정경교융’ 등으로 구분한 데서 유래한다.  
또한 명말청초의 화가인 석도(石濤, 1642~1707)는 ‘입어일획(立於一畫)’이란 집약되는 새로운 화론을 펼치는 데, 그 요지는 ‘한 번 그을 때마다 새롭게 그림이 형성 된다’는 것으로,  혼돈 상태인 자연(무위無爲 : 먹)이 인간(유위有爲 : 붓)의 행위에 의해 그림으로 형성됨을 뜻한다. 곧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주체성을 강조한 화론이다. 이처럼 과정 속에 생성되는 우연적 속성(침투와 번짐 등)을 통해 자연의 순환 현상을 축약하여 제시한 듯한 수묵화의 표현 방식, 그리고 왕부지의 정경론(情景論)이나 석도의 일획론은 서양미술이나 세계관과 다른 고유성을 보여준다.

개별적 경험에 입각한 리얼리티 탐색은 현대미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예로 마네의 대표작이나 반 고흐의 만년 그림, 생트 빅투아르 산 시리즈로 대표되는 세잔의 만년 그림, 그리고 20세기 들어 야수주의 이후의 다양한 회화들을 꼽을 수 있다.
결국 주체적 방식으로 대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한 예술세계는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상투적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개체적 대응과 노력이 새로운 감응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그림은 인간이 대상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는 지, 나아가 과학적 인식을 넘어 주체와 대상 간의 새로운 감응 방식을 보여주는 생생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3.
우리 인간은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혼돈의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를 지닌 존재로서 개별적 경험을 하며 사는 존재다. 어떠한 개념체계나 절대적 신념도 인간이 역사 속에서 형성해 온 가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판단에 앞서, 또는 어떤 신념을 갖기 이전에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기존의 통념과 인식을 회의하고 비판하는 것은 좀 더 바로 알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동서 미술의 역사는 '보거나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다양한 감응의 방식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농담, 고윤 등의 생성적 어법으로 세계를 구성하고자 한 동양의 수묵화나 19세기 후반이후 다양한 현대 회화는 기호를 넘어선 메타언어 영역의 소통방식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그림들을 통해 세계와 좀 더 넓고 깊게 감응하며,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회화는 이전의 통념에 종속되지 않는 비판정신과 모험으로 비롯된다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세계로서의 그림(예술세계)은 기존의 통념을 회의하고 비판하는 끊임없는 열정으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은 특정 기준에 의해 제한된 논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펼치려는 시도인 것이다.
                              2009년 6월 1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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