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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06: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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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상의 주요 단면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그리스시대 이래 이어온 서구문명의 신념과 인식체계를 가차 없이 허물어뜨렸다. 그의 사상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에 의해 다시 해석되면서 삶과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단서가 된다. 그런데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직도 많은 대중들에게 니체사상의 참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 사람의 사상가가 남긴 저작 몇 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큰 파장을 형성하게 되었을까? 이는 니체가 고전문헌 학자로서 그리스 문명부터 서구 문명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으며, 그 이전에 삶과 인식의 관계를 다시 볼 수 있는 예술적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고교 재학시절에 소설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가 쓴 어떤 책에서 니체 사상을 처음 접한 후, 대학교 2학년 때 교양과목인 서양철학시간을 통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데,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치의 일대 전환이 일어난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수업은 한 학기 동안 데카르트부터 시작해서 로크, 칸트, 헤겔, 니체, 슈펭글러 등의 순으로 한 사람씩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나는 이 중 헤겔의 역사철학을 맡아서 발표했는데, 그의 역사철학은 변증법의 논리와 이성을 절대시하는 관점으로 세계사를 다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니체에 이르러서는 당시 박상규 철학교수가 발표수업 이후 다른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할 때와 달리 강의식이 아니라 문장으로 적을 수 있도록 천천히 구술해 주었다. 그로부터 십 여 년 후 니체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특히 미셀 푸코와 질 들뢰즈 관련 책들을 보면서, 그 때의 수업이 니체사상의 심장부로 곧바로 진입한 공부였음을 알게 되었다.(*당시 박 교수가 구술해 준 니체 사상 부분은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니체 사상의 핵심을 잘 집약한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니체를 만나기 전까지 인간은 이성적 존재였고, 선은 악은 분명한 실체였으며, 비도덕과 도덕도 별개였다. 따라서 진리는 하나이며,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니체를 만난 후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생물학적) 존재이며, 선과 악은 절대적 실체가 아니었으며, 도덕도 인간을 가축처럼 길들인 의식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절대적 진리도 지역성이 반영된 특수한 가치임을 알게 되었다.

니체의 문제의식은 서구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인식체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다. 니체는 유럽의 전통적 도덕을 금욕주의적 이상에 의해 성립된 가치로 보았다. 니체는 19세기 후반을 살면서 당대에 대해 도덕적, 종교적 신념의 절대성은 이미 실증주의에 의해 해체되었지만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시대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삶은 원래 무목적·무의미하며, 따라서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의 도래는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사람들이 이러한 무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삶에 의미를 주는 대리 절대자를 찾으리라 예견하였다. 그 예로 니체는 당시 대두된 민족주의를 꼽으면서 이러한 이념이 민족국가에서 초월적 가치와 목적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그의 통찰은 이후 세계사의 주요 단면을 예견한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삶을 그는 수동적 니힐리즘이란 용어로 설명한 것이다.

니힐리즘은 무(無)를 뜻하는 라틴어 ‘니힐Nihil’이 어원이며, 세상 그 어떤 것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원래 불교용어인데, 서구에서는 니체나 도스트예프스키 등에 의해 철학적 개념으로 도입되었다.
니체는 니힐리즘을 다양하게 정의하였지만 크게 수동적 니힐리즘과 능동적 니힐리즘으로 구분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나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 비판하면서, 일체의 기성가치를 허물어뜨려야 한다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주장하였다. 능동적 니힐리즘은 흔히 갖고 있는 사람들의 허무주의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무無를 긍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모색하는 실존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하는 데, 바로 이러한 주장이 니체 사상의 큰 줄기를 형성한다.
요컨대 니체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통해 신, 진리, 힘, 선, 과학 등에 의거하여 불변의 실체(보편성)을 상정하는 경향을 비판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상의 본바탕에는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이성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힘(*흔히 ’권력‘이란 용어로 번역되지만, 이 말은 정치적 의미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을 향한 의지’로 본 니체의 새로운 인간관이 있다. 그러므로 니체가 도전으로 삼은 중심과제는 신념이나 진리에 대한 통념이었다. 니체에게 종교적 신념이나 진리란 인간이 역사 속에서 형성해온 가치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이처럼 니체는 종교·철학·도덕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관점주의(perspectivism)에 대한 비판, 영원 회귀(이 말은 “의미와 목표도 없는, 그렇지만 피할 수 없이 회귀하는, 무에 이르는 피날레도 없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실존”이라는 의미로, 삶의 매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되는 것을 뜻함), 위버멘쉬(*이 말이 ‘초인超人’으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지상의 삶에 대한 초월성을 거부한 니체 사상의 특성상 적절치 못한 용어임)를 집약되는 사상을 추구하였다.

이 중 관점주의란 우리가 갖는 지식이 1점 투시원근법처럼 특정한 관점에 의존한다고 보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순수한 지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점 없는 지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전 방위에서 동시적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듯, 니체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관점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니체의 사상도 또 하나의 주관적 관점주의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적어도 니체의 사상은 우리의 모든 관점이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가치(니체의 말로 하자면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 있을 뿐이다)임을 알게 하며, 그러므로 좀 더 메타적인 시각을 지향해야함을 자각하게 한다.

니체는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인간의 지각과 직관이 미리 정해진 관념이나 규범적 진리 아래 종속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니체가 그의 저작을 통해 중요하게 다룬 주제는 예술의 힘이었다. 예술은 그 특성상 개념과 가치에 동화되지 않은 채,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의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니체는 예술에 대해 개념 체계들이 갖는 은유적 기원을 상기시키고 이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하는 영역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니체에게 예술이란 선과 악 너머 존재하는 힘이며, 예술가란 미적 창조자가 아니라 ‘삶’을 드러내는 매개자였다.  
                
니체는 삶이란 무엇인가, 또는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였으며, 대안을 제시하였다. 니체의 저서들은 수 년 전 국내에서도 전집으로 번역되었으며, 다양하면서도 심도 있는 그의 사상에 대한 해석 책도 다른 사상가들에 비해 많은 편이다. 우리는 니체를 통해 객관적 진리로 알고 있는 개념체계가 특정시기의 사람들에게 강요된 가치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평가를 통해 가치가 창조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삶과 의식에 대한 니체의 근본적 다시보기는 우리가 자발적이고도 열린 삶을 사는데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문제는 삶의 가치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자주성인 것이다.  

                                 2009년 3월 6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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