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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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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의 작업에 대한 소고    

(지난 10월 12일부터 올 여름에 개관한 MIA에서 이승택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MIA의 전시장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530cm 인데다 공간도 매우 너르고 게다가 부정형이어서 어지간한 작품으로는 궁색해 보일 정도로 터가 센 곳이다. 이승택은 초기의 몇몇 실험적인 작품과 함께 주로 그간 야외에서 해온 <바람>작업을 찍은 광경을 대형 사진으로 확대해 일종의 벽면 설치작업 위주로 전시장을 채워 놓았다.)
1.
흰 광목천이 기다란 밧줄을 뼈대삼아 완만하게 경사진 고개 너머로 이어진다. 일정한 폭의 그 하얀 길은 내 어린 날 상여(喪輿)가 나간 자리처럼 저 멀리 하늘가로 아득히 사라진다.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본 이 작업은 이승택의 <생과 사, 1968>다.  

이승택은 지난 50여 년간 당대 화단의 이단아로 살아왔다. 질곡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그리고 미술계는 고답적 전통회화의 양식과  아니면 온통 앵포르멜로 지칭된 추상미술이 지배하던 그러한 당대의 인습과 유행에 함몰되지 않은 채, 부단히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도발을 감행해왔다는 것이다.
이승택은 우리 민족의 시원의 땅인 바이칼 호 주변 원주민의 순수 혈통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전형적인 북방계 몽골리언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승택을 보면 대륙을 말달리고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힘찬 기백이나 삼국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진흥왕의 ‘바람 끼(風味)’주1)가 느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연속적이기도 것이 한 역사의 흐름이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역사가 핏줄에서 핏줄로 면면히 이어짐을 실감하게 된다.
공시적으로 이승택은 첨예한 아방가르드적 현대예술으리 특성을 보여준다.  

“나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모든 체계화된 사고는 필연적으로 전복될 수 있다는 신념, 나아가 허무주의적 사고를 신봉해왔고, 이후 사물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것이 더욱 강한 힘을 지닌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양식화된 예술이란 것은 달리 표현하면 ‘이미 알려진 예술’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이 예술이건 관념이건 이미 알려진 것 같은 방식으로 반복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양식화된 예술이란 단지 ‘그럴싸한 눈속임의 현혹적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눈홀림’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 그것은 ‘작품이 아닌 그 무엇’에 대한 추구에 의해 실천된다고 믿게 된 것이죠.”주2)    

이처럼 이승택의 작업은 통시적,공시적 맥락의 교차 속에서 그 특질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승택의 작업은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층위에서 해석될 수 있다.  

2.
역사는 ‘시뮬라크르’, 즉 우발성이 개입된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은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이다. 연속적이라면 그것은 사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예술사 또한 사건으로 점철된 역사다. 물론 예술은 의도된 작위적 행위다. 그러므로 현대예술가들은 도발적으로 사건을 저지르는 자들이다. 예술 뿐 만 아니라 현대의 새로운 과학과 철학적 사유의 출현도 바로 이러한 사건이 전제되어 있다.

'사건’은 서구의 전통적 철학이나 미학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폄하되어 왔다. 그들은 ‘사건’이 아닌 실체적 ‘사물’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이후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의 근대미술도 크게 보면 사물에 대한 관심, 즉 실체적 조형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특히 19세기말 이후 서구에서는 그 학문과 예술의 주된 기류가 점차 ‘사물에서 사건으로’ 변환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존재’와 ‘실체’에 대한 관심에서 생성 ․ 운동 ․ 변화에 대한 사유와 실천이 일어난다. 즉 세상을 ‘thing’ 아닌 ‘event’로 보는 의식의 대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니체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로 이어지는 사유의 계보는 바로 세계관의 변환이 전제된  학문체계이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사건이다. 이처럼 사건은 비물체적이다. (물론 사건의 현실화/구현은 물질적 터전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건은 언어로만 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건은 현상(물리)적인 측면과 의미론적 측면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이승택 선생의 작업은 이러한 ‘사건’으로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이승택 선생이 도발적으로 저지른 행위들은 근대의 실체적 조형의식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대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작업이 이른바 ‘비물질’적인 양상이 두드러지는데서 능히 짐작할 수 있다.주3)

그러나 나는 그의 미학이 ‘비물질적’이라기보다 ‘비물체적인 양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하고 싶다. 엄밀히 말해 진공상태를 제외한 비물질적 세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물체적’이란 말은 특정한 실체로서가 아닌 ‘형체 없는 물질성’을 전제하면서도 변화와 흐름이라는 ‘유동성’과 ‘과정성’이 두드러지는 용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 선생의 작업이 ‘비물체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체가 있다, 없다는 차원이 아니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비물체적인 것들(asômata)은 공허, 장소, 시간, 그리고 'lekton'즉 언어로만 표현 가능한 것, 이 네 가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 선생의 <바람> 시리즈나 <화제(火祭)> 시리즈는 특히 비물체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사건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3.
현대인은 흔히 바람에 대해 ‘저기압과 고기압의 차이에 의한 공기의 흐름’이라는 인식론적 범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고대인의 인식론적 범주에선 바람은 곧 ‘신(神)’이었다. 가령 지금도 우리가 태풍을 통해 불가항력적인 바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듯, 고대에선 이러한 공포와 외경의 대상은 모두 신의 영역이었다. 이러한 공포와 외경의 대상 중 무엇보다 바람이 가장 촉각적으로 또 가시적으로 신의 존재를 체험케 하는 그 무엇이었다. 고대 인간의 신성 체험이 한결같이 바람과 관련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4)

이승택 선생의 <바람>시리즈는 우리 혈맥 속에 원형무의식으로 내재하는 바람의 흐름, 풍류(風流)주5)의 현재화다. 이 풍류란 고대에선 주술적인 영기(靈氣)를 뜻한다. 영기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신령스런 힘(Vitality)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승택 선생의 바람은 무형의 에너지, 즉 보이지 않는 힘의 가시화다. 이 바람은 A 혹은 B와 같은 대상적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바람은 정의할 수 없다. 정의한다는 것은 A인 것과 A가 아닌 것을 경계 짓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란 한 사물을 지배하는 분절체계다. 그러나 바람은 그러한 경계가 없다. 그러므로 바람은 원래 하나의 작품으로 개별화 될 수 없다.    
바람은 무형이므로 어디에나 편재한다. 그러므로 바람은 이 세계가 무한한 잠재성의 층위를 내포한다.그렇지만 잠재성은 가시화되(하)는 우발점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가시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의 작업은 이러한 우발점을 생성시키는 특이 사건이다. 들뢰즈식 어법으로 표현하면 '순수 사건'이다.  
그리고 이승택 선생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의 가운데 하나가 성(性)인 것도, 가령 우리가 성에 대한 일탈 행위를 ‘바람을 피운다’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자신의 ‘바람’작업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또한 이승택의 <화제(火祭)>시리즈들도 고(古)와 금(今)을 넘나드는 행위의 소산이다. 화제의 제(祭)는 고대 종교의 기원과 연관있는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예배한다’는 의미이며, 성화한다,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굿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고대적인 어법으로 말하자면 성화(聖化)된 세계(sacralized cosmos)의 부활을 꿈꾸는 행위다. 즉 그의 작업은 속(俗)의 공간을 성(聖)의 공간(sacred space)으로 만드는 일이다.
요즘의 인식론적 범주로 말하자면 불은 바람과 대지의 융합에 의한 기운의 확산이다. 불은 바람에 의해 어떤 방향성도 없이 확산되며 그 타오르는 불길은 하늘과 땅 사이, 즉 세계를 태우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승택의 불은 단지 땅 위의 한 부분을 태우는 표면 효과가 아니다. 불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수렴/발산이므로.      
그의 돌탑을 쌓는 행위 또한 오랜 기원을 가진 행위로서 우리 역사에서는 서낭당 주6)으로 이어져 왔다. 솟터(아크로폴리스)가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의 문이라면 이 서낭은 땅의 문이다. 그러므로 서낭의 상실은 곧 땅의 상실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20세기는 이 서낭이 상실된 세기였다. 오늘 이땅의 난 개발과 황폐화는 분명 이러한 서낭의 상실과 연관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택은 고와 금을 잇기 위해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현대의 사제인 것이다.  


4.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전시회 그 자체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전시장의 대다수 작품들이 이승택의 과거 작품의 흔적을 담은 이미지 위주로 그것도 평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설치와 평면 작업은 그 특성에 있어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으므로 장소성과 임장성에서 가능한  설치작업이 평면적으로 제시된 것은 엄밀히 말해 그저 정보와 기록의 차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난 50여 년에 걸친 한 노 선배 작가의 작업에 대한 다각도의 치밀한 분석적 담론이 있어 이번 전람회의 성과는 크다고 본다. 이번 전람회를 통해 『작가 이승택 다시 읽기』가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본질적으로 그 사건적 특성으로 인해 작품의 생산 못지않게 담론의 생성이 있어야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오상길, 김찬동, 김융희, 양건열, 사혜정 등에 의해 이루어진 이승택에 대한 담론이 그간 한국미술의 고질적 병폐인 담론 부재 현상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이러한 담론을 통해 거짓과 헛것에 얽매인 우리 현대미술의 실상을 자각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주1)일연, 三國遺事, 眞興王列傳篇, 第二四眞興王.....天性風味,
주2) 실험미술 50년 이승택 초대전, 이승택 ‘부정의 영역’을 향한 노력, 김원방과의 대담중에서 한국문화예술 진흥원, 1997.
주3) 이승택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비물질에 대한 관심은 5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물질에 대한 관심은 50년대 말에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된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고 나서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코메티의 작품에서 뼈마저 부정하면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형태가 부정된다면......? 이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것이 가능하다면 세계적인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오상길 엮음,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Ⅱ, ICAS, 50쪽 참조.
주4)이 풍류는 흔히 잘못 알 듯 한량들의 풍류가 아니다. 이 풍류는 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오는 國有玄妙之道, 曰風流...接化群生....에서도 알 수 있는 신라의 토착신앙체계를 말한다. 김용옥 나는 한국 불교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989, 133-217쪽 참조.
단군신화에서의 풍백, 우사, 운사 할 때의 풍백이 ‘바람님’, 즉 ‘바람의 신’을 의미하듯이 고대에선 바람은 곧 ‘신의 현현’이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지만 신라는 백두대간으로 분절된 공간에 고립적으로 위치하고 있어 대륙과 연접한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풍류’(혹은 풍교)가 지속될 만큼 토착적 정체성이 강했다. 여기에 외래문명인 불교(삼국유사에서 일연이 신라 당대의 불교를 釋風, 즉 석가모니 바람으로 기술한 것도 이러한 ‘풍교’에 그 연원이 있다.)를 접목하여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주5) 바람은 고대 인류문명의 시원인 종교의 비밀이 담겨있는 핵심 키워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아래 인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왕은 곧 바람신의 증보자인 지상의 천황이다. 그것은 새의 형상과 떨림의 나무모습의 금관으로 자기를 현현하며 외경스러운 바람의 영역을 찬란하게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호렙산의 가시덤불 속에서 야훼의 소리를 듣는 이사야 선지자의 체험이나 광야에서 기도하며 주의 음성을 듣는 예수의 체험이나 다 공통된 인간의 신성(Divinity)의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요한복음」3장 8절의 말을 기억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이 다 이러하니라.”...(중략)...기독교 성서의 가장 핵심적 단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이 두 마디에 쓰인 희랍어의 원어가 “프뉴마”(pneuma)라는 한 단어라는 사실이다. 퓨뉴마는 원래 “바람”(Wind)을 의미하며, “호흡”(Breath) 즉 “氣”를 의미한다. 프뉴마는 “생명”(Life)을 의미하며, “영혼”(Soul)을 의미한다. 프뉴마는 “귀신”(Spirit)을 의미하며, 모든 “신성”(Divinity)을 총칭한다. 후대의 스토이시즘(stoicism)에서는 우주적 힘 또는 실체(a cosmic power or substance)를 의미하는 것이며 곧 신(God)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모두가 “바람”이라는 하나의 어근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번 인류의 보편적 경험의 구조를 확인케 되는 것이다. 김용옥, 앞의 책, 142쪽      
주6)이 서낭당을 흔히 '성황당'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한자식 표기이며 서낭당은 한자가 우리 글로 쓰이기 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기 때문에 서낭당이 더 적절한 용어다.


PS : 김병기 선생과의 만남
오픈 행사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살아있는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88살 된 청년을 만났다. 바로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원로이신 김병기 선생이셨다. 김병기 선생은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과 소학교 동기 동창이다.
김 선생을 청년이라고 한 것은 그의 의식이 너무나 젊었기 때문이다. 그날 주로 말씀하셨던 내용은 대개 수화 김환기라든가, 이쾌대, 이마동 등 우리의 근현대미술사에 등장하는 작가들과 얽힌 이야기를 동경유학 시절부터 뉴욕에 체류할 때까지의 일화였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셨다. 그 중에서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수화가 어떻게 그리게 되었고, 또 어떻게 국내공모전에 응모하여 어떻게 대상을 받게 되었는지 그 비화를 자세히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북한 사투리 어조로 자기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므로 우리 후배들에게 간곡하게 당부 말씀을 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 다 배웠다. (마르셀 뒤샹과 요셉 보이스로 현대미술의 큰 맥을 짚어나갔으며 그 연배임에도 가령 오브제 미술과 설치작업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우리 한국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교량적 위취 즉 ‘복도’로 보는데. 그렇지만 한국만이 간직하고 있는 에센셜한 것이 있다, 그것은 회귀를 뜻하는 건 아니다, 일본은 양식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양식화되면 끝이다.
동양에 은은한 전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은 만리장성 남쪽의 동양과 만리장성 북쪽의 동양이 있다. 만리장성 남쪽의 전통은 사랑방에서 이어져 왔고 만리장성 북쪽의 전통은 안방에서 이어져 왔다. 만리장성 남쪽의 은은한 것만이 동양이 아니다. 안방에서 이어진 색동저고리에서 볼 수 있듯 매우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대변되는 동양이 동시에 있다. 이는 역동적인 농악을 봐도 알 수 있다.  
신라가 상당히 중요하다, 두툼하다, 그런데 백제가 더 중요하다, 백제는 정신이 번쩍드는 게 있다. 예컨대 백제의 금동용봉향로는 굉장하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은 용즉미, 즉 용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름답다 이다. 그런데 서울 장안에는 아주 또렷한 것을 좋아하는 전통이 있었다. 순백자가 그렇다.
노자와 공자는 한국에서 보편화 되어 있다. 노자의 에센스는 한국의 禪불교에 있다.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타블로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겠다. 오브제와 인스털레이션 작업은 끝나고 나면 허무한 면이 있다.  

한국은 산의 나라다 그래서 돌의 예술이 많다. 돌의 특성 때문에 디테일은 거칠고 두툼하다.    
그리고 작가들에 이 글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한 원로작가의 작품을 위조지폐에 비유하여 그 자리에 동석한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옛날에 북한산자락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그때 북한산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북한산만 보면 눈물이 났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모국에 와서 북한산을 보니 또 눈물이 나더라, 그런데 그건 매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을 파안대소케 함)    

이 자리엔 윤형근 선생도 동석했으며, 후배들에게 언중유골의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로 설치를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빨리 효과를 보려고 한다, 얼마 전 홍대 앞 거리미술제를 봤는데 얘들 소꿉장난 수준이더라, 그리고 너무 건성으로 본다, 우리 것에서 출발하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하며, 깜짝 놀라게 대담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독일에 가서 요셉 보이스의 고향인 클레베에 가 보았는데 그의 작업량이 엄청나더라는 것이다.    
                    
                      2004년 10월 15일              

       깊어진 가을날, 느티나무가 바라보이는 교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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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2004/10/15 (19:41)]

이승택  바람 2002 H1000×3000×800 헝겊

작품사진을 덧붙입니다. 지난 2002 수원월드컵미술제 때 커다란 기구를 굴리며 월드컵전시장 관객들 틈을 돌아다니시던 퍼포먼스 생각이 납니다.
건재하셔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시는 모습이 뵙기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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