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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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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지난 10월 9일 자크 데리다가 파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에 미셸 푸코가 타계하고, 90년대 중반엔 질 들뢰즈가 세상을 버리더니, 이 눈부신 가을날 자크 데리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올해 74세로서 자연 연령으로는 이른 나이의 죽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
이른바 해체주의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사상은 서양의 근대성의 핵심 개념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된다.

비록 예술과 다른 학문을 통해서였지만 그가 지향하고 실천했던 삶은 현대예술가들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찍이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도구적 측면만 일방적으로 발달시켜온 이성주의에서 야기된 동일화의 강제에 대한 거부로서 현대예술의 특성을 규정한 이래, 자크 데리다에 이르러 서구의 동일성 또는 이항대립적 사유체계는 철저하게 해체된다. 바로 이런 문맥에서 현대예술과 그의 사상은 많은 부분 공통의 문제의식을 전제한다.

‘산종’과 ‘차연’으로 집약되는 데리다의 ‘텍스트’ 읽기는 인식의 틀을 깸으로써 삶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비껴나가기’였으며 바로 여기서 그의 사상은 현대예술과 접목되는 특이점을 형성한다.

그의 저작은 그간 국내 번역본들의 오역에 대한 논란에서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난해하다. 그러나 그의 사유체계가 무조건 이해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난해하다는 것은 알고 보면 익숙한 사유와 다르기 때문에, 즉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느끼는 생각일 뿐이다. 즉 데리다의 사유가 난해하다면 오로지 합리적 사유만을 유일한 이해의 코드로 삼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이다.
현대예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뇌해 본 적이 있다면 데리다는 물론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의 사상은 오히려 많은 부분 동감의 대상이며 나아가서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가령 서양의 전통적 사유로 보면 ‘타자의 사유체계'인 한자 문명권의 사유와 데리다의 사유는 일맥상통한다. 국내 최초는 아니지만 내가 작년 말에 어느 웹 저널에 원효의 사유체계에 대해 데리다 식의 해석을 나름대로 시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근본주의적 단순 논리의 충돌이 야기한 오늘 현재의 세계적 혼미 상황은 역설적으로 데리다 식의 텍스트 읽기가 여전히 아니 전 보다 더욱 유효함을 절감케 한다. 그리고 현대미술에 대한 많은 담론적 글쓰기, 즉 다원적 해석이 그의 해체주의적 사유체계에 힘입은 바가 없지 않으며, 이 때문에 그의 죽음이 뜻밖일 정도로 이르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2004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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