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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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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원효는 삼국 중 가장 뒤늦게 불교를 수용했던 신라에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지 1백여 년만에, 신라뿐 만 아니라 전 불교사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불교라는 종교의 틀조차 벗어버린 파격의 삶을 산 사람이다. 즉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적 체계를 세운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면서도 그러한 체계를 넘어 자신의 삶과 치열하게 맞서서 무애(無碍), 즉 '자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원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그토록 많이 연구되고, {{각주1, 20세기초인 1908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원효 관련 주요 학술논문만 67편이며, 한국에서는 1917년부터 1988년까지만 주요 논문이 400편에 이른다. 國譯元曉聖師全書 (卷六),원효전서 국역 간행회, 1989년, 부록 참조}}
또 그의 삶이 마치 현대 전위예술가의 삶과 비견되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까닭이 바로 이처럼 특이한 '양면성'에 있다.

현재 일본 교토의 고산사(高山寺)에 남아있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원효의 초상 {{각주2, 일본에는 고대 8세기의 목조 건물이 남아 있고, 또 신라시대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고대의 유물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이 원효의 초상은 물론 원효가 살아 있을 때 그린 초상은 아니고 수 백 년 후에 원본을 모사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물의 특성과 표정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사진을 보는 듯 생생하다. 또 원효의 초상이 그려지고 지금도 일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고대 일본에서 원효는 대단한 인물로 추앙 받았음을 알 수 있다.}}을 보면 점잖은 학자풍이나 이상화된 고승의 모습이 아니라 성깔있어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는 것이 마치 매우 드센 기질의 젊은 무인의 모습 같아 그의 원래의 풍모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행적과 발언은 광발패, 즉 미친 듯이 패륜적이고 틀을 벗어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각주3, 無何言狂發悖示跡乘疎, 「宋高僧傳 卷四 義解篇, 唐新羅國黃龍寺元曉傳」, 國譯元曉聖師全書 (卷六), 722-723에서 재인용.}}는 기록과 부합된다.
이처럼 그의 예사롭지 않은 풍모, 또한 그 행적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도 그의 삶이 말 그대로의 패륜이 아니라 매우 치열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의 제반 행적은 언제나 '오래된 미래'처럼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생전에 100부 240 권(혹은 85부 181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것은 주로 불교 경전에 관한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궁극엔 그 논리를 넘어서는 해석서다. 물론 원효가 직접 쓴 당시의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나, 주요 저술 20부 22권이 후세의 모본으로 현존하고 있어 이를 통해 원효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원효의 학문세계는 석가 입멸 이후 인도에서 성립한 원시 '부파 불교' 이래로 그 학문적 방대함과 깊이에 있어 분수령을 이룬다. 원효 이전의 중국 및 신라에 수용된 인도 불교사상의 통합은 물론 유교 도교에 이르기까지 망라하고 있어 그 대단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석가 당시의 원시불교사상이 수백 년 후 인도에서 '유식(唯識)'사상 {{각주4, 서기 4세기경 북인도 간다라 국 사람인 바수반두(Vasubandhu)의 『유식삼식송』으로부터 유래하는 불교사상이다.}}과 '반야(般若=空)' {{각주5, 서기 2-3세기 경 인도의 나가르쥬나(N g juna)의 『중론(중관론)』에서 정립된 사상을 말한다.}} 사상, 『섭대승론』 {{각주6, 4세기 경 인도의 아상가(Asanga, 310-390)의 저서다.}} 등의 교학불교로 정립되고, 또 이러한 교학불교가 중국에서 구역 · 신역으로 다르게 번역되면서 신 · 구의 대립으로 인한 종파적 분열로 양분되었을 때 이러한 양자의 학설을 통합한 경전인 『대승기신론』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논리로 세분화하고 집대성한 것이 원효 사상의 진면목인 『대승기신론소 · 별기』이다. 그래서 이러한 원효의 사상은 당시 신라와 당나라는 물론 고려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 {{각주7, 원효의 저서 중 화엄경소는 중국에서 "해동소(海東疏)"로 칭해질 정도로 주요 경전으로 취급되었다. 특히 중국 화엄종의 제 3조인 법장(法藏, 643-713)의 화엄사상에 형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중국 법상종의 제 2조인 혜소(慧沼)의 저서에도 원효 저서가 인용되며, 일본에서도 원효의 저서들은 일본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불교사상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원효 사상의 바탕인 교학불교적 경전을 부정하고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각주 8, 중국에서 선종, 즉 선불교의 성립은 불교와 도교의 융합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번쇄한 논리의 교학불교적 인도불교가 중국화된 것은 보다 근원적으로는 '단음절어'로서 논리적 언어체계가 아니었던 한자의 언어적 특성에 기인하며, 그래서 선종의 전단계인 천태종이나 화엄종에서도 이미 선불교의 싹이 엿보인다. 중국의 화업종에 원효의 사상이 어느정도는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선종'이 성립하기 까지에는 원효의 사상도 간접적으로 일조를 했다.}} 에서 교학불교적 이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가 됨으로써 사상적으로는 동아시아 교학불교, 즉 학문적 깊이를 가진 불교철학이 원효를 정점으로 점차로 쇠퇴해버린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주류 불교는 원효 이후 중국에서 성립한 선종 일파인 조계종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주류 불교의 시조도 실질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보조 지눌(普照 知訥, 1158-1210)과 태고 보우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민중 불교는 샤머니즘적인 기복 불교여서 원효 사상과 삶의 진면목은 현재 불교계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한국과 일본의 불교 전문학자들에 의해서만 그의 저술에 대해 불교사상으로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개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상투적으로 그의 사상이 학문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다.

내가 오래전부터 원효의 사상과 삶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먼저 그의 사상에서 20세기 후반의 주요철학과 비견될 수 있는 철학적 깊이와 넓이를 직감하고 나서이다. 물론 피상적으로 보면 탈근대적 사상이 이른바 '해체주의' 라면 원효 사상은 '통합주의'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동서 간의 천수백년의 시공을 넘어 사유의 보편적 특성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원효의 삶에서 논리 이전과 논리 이후를 지향하는 전위적인 현대예술가의 선례를 보는 듯하다.방대한 학문의 스케일과 그 논리의 치밀함과 정교함, 그럼에도 궁극엔 학문을 넘어서는 그의 사상과 예술적 삶에서 우리는 동서와 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 삶의 단서를 자각할 수 있다.


원효 사상의 철학적 특성

현재 원효의 텍스트는 20부가 현존한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승기신론 소 별기』와 『금강삼매경론』이다. 원효 사상의 주요 언표는 일심, 화쟁, 일미관행, 무애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사상의 핵심인 '일심'은 그 이전의 불교사상을 아우르는 방편적 용어다. 그는 『대승기신론 소 별기』에서 이 일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심이란 무엇인가? 더러움과 깨끗함의 모든 법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고, 참됨과 거짓됨의 두 문은 다름이 없으므로 하나라 이름 하는 것이다. 이 둘이 아닌 곳에서 모든 법은 가장 진실되어 허공과 같지 않으며, 그 성품은 스스로 신령스레 알아차리므로 마음이라 이름한다.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가 있으며, 하나도 있지 않거늘 무엇을 두고 마음이라 하겠는가. 이 도리는 언설을 떠나고 사려를 끊었으므로 무엇이라 지목할지 몰라 억지로 일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각주9, 何爲一心? 謂染 淨諸法其性無二; 眞妄二門不得有二, 故名爲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爲心. 然旣無有二, 하득유일; 일무소유, 취수일심, 여시도리, 이언절처, 부지하이목지, 강호위일심야 「대승기신론 소 별기」『한국불교전서(1책)』, 741쪽}}

단적으로 말해서 원효가 말하는 일심의 '심'은 서구적 의미의 유심론적 '마음'이 아니다. 원효의 이 '일심'론을 유심론적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실 동양의 한자문명권의 '심(心)'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서구적 의미의 마음, 즉 '마인드(mind)'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 서구적 의미의 마인드는 데카르트가 고대 희랍과 중세 기독교 철학이 상정하던 영혼이라는 개념과 구별하여 창안한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를테면 외적 공간을 내적공간인 마인드가 반영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는 것으로, 새로운 근대적 주체를 가능하게 한 개념인 것이다. 현재 우리의 문명은 이러한 근대적 인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비록 한자로 마음 '심'자를 쓴다 해도 다분히 데카르트적 의미의 마음으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양의 '심'은 오행 사상의 불(火)에 해당하는 한의학적 개념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근대적 '마인드'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원효의 '일심'은 이러한 데카르트적 의미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언표다. 그간의 대다수의 불교 학자들도 이 일심을 '대승적 한마음'이나 '궁극적 진리와 한 마음을 이룬다'는 실체론적 유심론으로 해석해왔으나 이는 적절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탈근대적인 시각 즉 '텍스트 이론'에 입각한 관점에서 보면 이 일심론은 새로운 맥락의 의미를 갖는다. 텍스트 이론은 종래의 세계, 역사, 예술 등을 미완결된 기호의 연쇄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텍스트 이론으로 본다면 원효의 사상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각주10, 이러한 '택스트 이론'으로 원효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학자가 김형효다. 이 글에서의 '텍스트 이론'적 해석은 한 김형효의 글을 주로 참조했다. 「원효 사상의 텍스트 이론적 독법」,『 원효에서 다산까지』,(청계, 2000) 13-158쪽 참조.}}

그래서 원효의 '일심'에 대해서도 이 텍스트 이론에 근거하여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즉 종래의 일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실체적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심론의 핵심은 진여문과 생멸문, 즉 '진'과 '속'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不二)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문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전체(총상)와 부분(별상)이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이기도 하고 또 양의적이기도 하다. 즉 하나가 아니면서도 둘이 아닌 것으로서(不一而不二) 자크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산종(散種, la diss mination)이다. {{각주11, 산종이란 원래 씨 종자 같은 것이 널리 뿌려지고 퍼져나감을 뜻한다. 이를 데리다는 '종자(semence)의 퍼짐'과 '의미(s mie)의 퍼짐'이라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다.}}


"같을 수 없음은 같으면서도 동시에 다르다는 것이고, 다를 수 없음은 다르면서 동시에 같다는 것이다. 같음은 다름에 의거해서 같음을 구별한 것이고, 다름은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한 것이다.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한 것이다.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하는 것은 같음을 분열시켜서 다름을 만드는 것이다. 같음에 의거해서 다름을 해명하는 것은 같음을 분열시켜서 다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다름에 의거해서 같음을 변별하는 것은 다름을 녹여서 같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같음은 다름을 녹인 것이 아니기에 '같다'고 말할 수 없고, 다름은 같음을 분열시킨 것이 아니기에 '다르다'로 말할 수 없다. 단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같다고 말할 수 있고, '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위의 말은 현대 사상가 데리다의 말 같지만 원효의 말이다. {{각주12, 데리다는 "같은 것은 다른 것의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은 자기와 다르게 같은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다름과 같음에 대한 치밀한 논리전개는 원효의 다른 글인 『열반경 종요』에서 "염이불염 불염이염(染而不染, 不染而染", 즉 물들기도 하고 물들지 않기도 하고 물들지 않기도 하고 물들기도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일심은 데리다 철학의 핵심 개념인 차이(diff rence)와 접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차연(差延, diff rance)' 의 차원에서 새로운 독법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일심의 진여문과 생멸문는 '차이'지만 진여문은 생멸문을 통해 유예 즉 연기함으로써 이해된다. 그리고 사유에 대한 이러한 차연적 논리는 현존하는 원효의 어느 글에서나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이러한 원효 사상의 특성은 불교사상사의 양대 조류인 유식사상과 반야사상이 『기신론』에서 종합된 것을 다시 화쟁적으로 통합 {{각주13, 이 통합도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텍스트의 끊임없는 인용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반복은 시간 저장소를 달리하여 산종되어 나가므로 스스로를 갱신한다. 이를 데리다는 간텍스트성 (또는 상호원전성, intertextualit)이라 한다. 원효의 저술이 주로 주석서가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 중에는 그 독창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결국 이러한 간택스트성에 대한 무지의 소치에 지나지 않는다.}}한 것이다.

먼저, 유식사상은 인간의 인식 단계에 대한 정교한 논리를 전제로 한다. 즉 사람의 의식을 8단계로 나눈다. 즉 오감의 인식작용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라는 전오식과 이 오감을 하나의 통각작용으로 의식하는 전6식, 그리고 마나스식(思量識)인 제7식은 사유하는 자아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제8식인 아알라야 식(藏識)에게 아집과 자의식을 갖도록 하는(훈습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유식사상은 앞에 말한 7식의 근본인 이 아알라야식을 기조로 한다. 이 아알라야 식은 일체의 행동을 성립케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식은 인간을 선하게 행동하게도 하고 악하게 행동하게 하기도 하므로 '이숙식(里熟識)'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8식 가운데 전오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변하고,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변하며, 마나스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변하고 아알라야 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변하여 우리 인간이 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후천적 수행(공부)을 중시한 것이다.
이와 달리 중관학파의 사상이라고도 하는 반야사상은, 만물의 일체를 '공'으로 본 사상이지만 그렇다고 현상적인 생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각주14, 인연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존재는 공 아닌 것이 없다. (나가르 쥬나,, 김성철 역주,『중론』,414쪽.) 만일 일체의 것이 공하지 않다면 생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성제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415쪽) 만일 일체가 공하다면 생도 없도 없고 멸도 없다. 그렇다면 사성제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가르쥬나, 앞의 책, 401쪽}}
그럼에도 인간의 마음은 원래 청정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두 학파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양자의 입장을 대승적으로 통합하려한 것이 대승기신론이었고, 원효는 이 대승기신론을 주석하는 책을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저인 금강삼매경론』도 이러한 시각에서 쓴 것이다. 예컨대 첫 머리의 "무릇 일심의 원천은 유 · 무를 떠나서 홀로 청정하며 삼공{{각주 15, 이런 삼공에 대해 유식사상, 즉 법상종에서는 삼성이 모두 공한 것으로 보며, 이를 삼성설이라 한다. 삼성이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말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법이 있다. 즉 한밤중에 뱀을 밟았다고 깜짝 놀라는 것이 변계소집성이며, 불을 밝혀 살펴보니 그 뱀은 하나의 새끼였다는 의타기성, 더욱 자세히 보니 그 새끼는 삼줄이었다는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이 삼성이 공한 것을 '삼공'이라 한다.
먼저 변계소집성은 언어와 명칭에 의해 대상세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유식의 단계다. 의타기성은 삼라만상이 인연소생임을 아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의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고 고유한 자가성을 갖지 않는다. 원성실성은 원만히 성취된 진실이라는 뜻으로 불생불멸의 궁국적 세계를 암시한다.}} 의 바다는 진과 속을 융합하여 담연하다"는 구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공은 절대적인 공이 아니라 공/불공이 동시에 성립하는 일심의 공이다. 그래서 원효는 무공도 아니고 유공도 아니라고 이중부정으로 발했던 것이다. 데리다식으로 말하면 '차연'인 셈이다.

"열면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뜻이 대종이다. 합하면 이문 일심의 법이 요점이다. 그 두분 속에 다 포용되어 조금도 혼란됨이 없으며 가없는 뜻이 일심과 하나가 되어 혼융된다. 이런 까닭에 열리고 합함이 자재하고, 세우고 깨트림에 걸림이 없다. 연다고 번거로운 것이 아니고 합친다고 좁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세우되 얻음이 없고, 깨트리되 잃음이 없다."{{각주16, 대승기신론소, 한국불교전서 1책, 733쪽.}}

그래서 원효는 이에 대해 다른 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세계이고 이언절려(離言絶慮), 즉 말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 논리가 원효의 일심 속에 포괄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효의 '일심'은 그의 『열반종요』에서는 '일미(一味)'로 표현된다. 이런 구절을 통해서도 '일심'이란 언표를 그저 유심론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불교경전의 부분을 통합하여 온갖 흐름의 한 맛(일미)으로 돌아가게 하고, 부처의 뜻이 지극히 공정함을 전개하여 백가지의 뭇 주장을 화해시킨다." {{각주15, 열반종요(한국불교전서 1책, 524쪽) 統衆典之部分, 歸萬流之一味, 開佛意之至公, 和百家之異諍.}}

바로 그 유명한 화쟁론인 것이다. 이처럼 원효의 사상은 종합적인 지적 체계이다. 그러나 원효는 지적 체계, 즉 언어의 한계성과 그로 인한 사유의 모순성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국에는 이러한 지적 체계를 넘어선 삶을 지향한다. 그것이 요컨대 일미관행(一味觀行), 또는 부주열반(不注涅槃) {{각주16, 현대불교학자 은정희는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 별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주장한 것이 이 부주열반, 즉 '진'과 '속'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과 속이 하나라고 본다.}}


원효사상과 "일미관행"의 현대적 의미

전통적인 예술은 내용(기의)을 표현하기 위한 형식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은 구분되지 않으며 오히려 형식이 곧 내용이기도 한다.
그 극단적 경우가 바로 이른바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형식주의적 예술의 한계를 탈근대적인 철학적 사유에서 자각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원효의 '일미관행'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즉 '일미'를 통해 극단에 빠지지 않은 사고의 폭과 깊이를 자각할 수 있으며 '관행'을 통해 사고를 넘어선 실천적 예술론의 단서를 자각할 수 있다. 이처럼 원효의 사상은 탈근대적인 해체철학과 유사한 면이 있으며, 또한 그의 삶은 마치 현대의 전위적인 예술가적 삶의 선구적 예를 보는 듯하다.
이를테면 "작품의 진리는 존재하면서 부재한다. 진리는 결코 작품 속에 한번에 현전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기표의 놀이, 즉 그것들의 차이, 연기, 산종의 유희일 뿐이다."는 데리다의 철학은 존재/비존재, 공/유(실), 진/속, 염/정, 열반/세간, 각/불각, 진여/생멸, 종자(잠재적인 현상)/현행(구체적인 현상) 파(破)/입(立)을 하나로 보면서도 그 차이를 인정하는 원효의 일심, 일미적 화쟁 사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흔히 동양미 하면 '여백의 미'라고 말하면서 또 그것을 미학으로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노자는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 이를테면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하게 하라 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끊임없이 유위적으로 욕망을 채움에 대한 상대적인 언표일 뿐 미학적 지향성이 될 수는 없다. 사실 이 '여백'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공'이다. 그러나 공은 사실 그저 비어있음이 아니다. 이에 대해 원효는 앞에서 말했듯이 『금강삼매경론』에서 "삼공의 바다는 진과 속을 융합하여 크고 담연하다"고 말하거나 "유를 싫어하고 공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靑)과 남(藍)이 동체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이 만 가지 형태를 다 용납함과 같다"고 했다. 유가 사상만 하더라도 중용에 잘 드러나듯이 다이내믹한 '시중'의 관계성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정태적인 '여백의 미'라는 말은 동양의 사상을 오해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일심, 일미관행론은 어떤 의미에서 명말청초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석도(石濤)의 일획론(一 論)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석도의 일획론이 어디까지나 중국화론의 대단원임에 비하여 원효의 일심론은 보다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생각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현대 예술은 정해진 규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감각적 직관의 표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철학적 성찰을 전제로 한다. 원효의 일심, 혹은 일미관행은 논증적 진리를 넘어선 철학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늘 더 확장된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삶과 예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맺음말

현대문명이 현대인에게 준 혜택 못지않게 커다란 상처를 초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구와 이슬람 문명간의 대립과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새로운 문명적 성찰과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동서고금을 살았던 사람들의 사상적 가치나 삶에 대한 재음미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원효의 '화쟁' 사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원효의 사상은 결코 어느 특정종교의 경전이거나 형이상학적 체계가 아니다. 무엇보다 원효의 삶은 그의 일심론을 통해 알 수 있듯 일심을 바탕으로 한 일미관행, 즉 무애의 실천이었다. 즉 그는 일체의 굴레에서 벗어난(不羈)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사상이나 삶을 생각할수록 그 스케일과 깊이가 너무도 방대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천 수백 년 전에 이처럼 엄청난 사상가이자 실천가가 이 조그만 반도의 한 구석에 실존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은 그가 남겨놓은 글들이 그저 고대의 소박한 고전적 담론이 아니라 현대의 탈현대적 철학과 예술론적 관점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가 때로는 저잣거리에서 바가지를 들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때로는 아무데나 거리낌 없이 드나들고, 그런가하면 산수에 머물며 좌선을 하기도 하면서 걸림 없이 살았듯, 언제 어디서나 그처럼 넓고 깊게 살 수 있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내심 갈구하는 삶이 아닌가. 비록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지만 바다처럼 담연(湛然), 즉 넉넉한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삶이 아닌가.

2003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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