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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7: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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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의 흑백논리전에 대한 소고


1.
얼마 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 무렵, 거대한 구름이 세상을 덮고 있는 장엄한 광경을 보았다. 무한한 하늘 아래 대지는 수평으로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집들과 아파트들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저 흩어지고 모이는 거대한 구름아래 인간사 온갖 추악한 욕망이 들끓고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 속 한살이(生)가 한없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부동산 광풍이 수도권 지역을 휩쓸고 있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저마다 전전긍긍하며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광경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거품현상은 우리의 야만적 현실을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말이후 서구열강들에 의한 제국주의적 침탈은 전통적 자연관의 단절과 더불어 파리나 뉴욕의 거리들과 상점까지 기억하게 하면서 바로 이웃나라들의 삶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들었으며, 산업화이후 점점 획일화․ 유사화되어버리는 공간들은 자본과 상품논리만이 우리의 현실을 지배함을 방증한다.  
이런 현실에서 예술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김성배는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줄곧 현실적 삶은 도무지 안중에도 없는 듯 히말라야와 이 땅을 오가며 살았다. 그래서 그는 초연한(?) 삶을 살고 작업도 이러한 연장선에 하는 듯이 보인다. 과연 그럴까?  
  
2.
지난 11월 10일부터 19일까지 수원 대안공간 눈에서 있었던 김성배의 개인전 설치작업은 해발 6714m인 카일라스(현지 말로는 구루란 뜻의 캉 림포체임)산을 전시장에 축소한 듯 보여준다. 그러나 막상 전시장에 가 보면 미술에 대해 일반적인 통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황당할(?) 정도의 광경을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김성배는 왜 카일라스산을 형상화했을까?

전시장에 들어서면 온통 사방으로 흰 캔버스 천을 펼친 가운데 검은 먹물을 쏟아부은 큰 호박돌 하나가 놓여 있다. 사방의 천들은 그 돌이 짓누르는 무게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검은 돌은 그저 자그마한 돌이 아니라 주위를 에워 싼 설산 가운데 우뚝 솟은 성스러운 검은 산으로 변모한다. 즉 이 산은 사방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연봉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형상이다.(작가는 우연히 전시장 마당에서 선택한 돌인데 실재 카일라스 산의 형상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사실 이 산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 주1)의 성지로 꼽히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신의 천당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의 안식처로, 그들의 사원에 있는 링감 주2)의 근원이며, 티벳불교에서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수미산이 이 산을 뜻한다고 본다. 높이는 히말라야의 8000m급 연봉들에 비하면 조금 낮지만 세계의 지붕으로 꼽히는 히말라야 연봉들 중에서 성산 중에 성산으로 꼽히는 산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카일라스 산은 지구상에서 ‘중심축’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장소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성에서 더 한걸음 더 나아가 김성배는 문명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집약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카일라스에 한정되지 않으며, 사실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이에 대해 조규현 선생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우리는 히말라야 안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히말라야는 우리 심상의 숭고하고 영원한 지표는 될지언정 우리가 히말라야의 穴居人이 될 수 없다. 문명은 발전하는 것이 아닐지는 몰라도 그 물리적인 페이스는 역사성을 띠고 있음으로 비재귀적이다. 자연은 그 아무리 아름답고 숭고하고 스스로 자명한 존재일지라도 이를 인식하는 존재는 인간이다. 김성배의 히말라야 미학은 사이비(似而非)가 판을 치는 우리의 미술풍토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정직한 오리지널티를 갖고 있는 예술가임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 준다.주3)

김성배는 언제나 매우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한다. 이는 실내에 꽉 차는 설치 작업을 해서가 아니며 그 정신의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드넓은 전시장에 머리카락 하나로, 때로는 한쪽 발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는 무애(無碍)의 행위로 표출되는 그의 작업과 행위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원을 보여준다. 사실 김성배는 오래 전부터 세련되고 쌈빡한 조형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으며, 항상 문명적 차원에서 예술을 생각하고 문명의 통합과 융합을 꿈꿔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김성배는 전시장 안에 바깥의 광경을 담는 불가능한 시도를 그 실내 안에도 안과 밖이 동시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즉 그는 관람자가 전시장에 들어가도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방법론적 코드를 삼았다. 그래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안과 밖’의 세계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이는 그의 방법론이 구심력과 원심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흑백논리’란 전시 타이틀은 말 그대로 단순한 양극적 사고를 전제로 한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셈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흑백의 시각적 선명함은 오히려 안 밖의 동시성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역설적 어법인 셈이다.  

3.
김성배의 작업과 행위는 오늘 우리의 황폐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김성배는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에 간다는, 즉 등산이나 트레킹을 목적으로 히말라야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곳에서 문명의 새로운 축을 생각하고, 예술을 넘어선 예술을 꿈꾼다. 그에게 전통적 의미의 미술은 더 이상 어떠한 가치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히말라야든 백두대간이든 김성배가 걷고 머무는 자연은 결코 현실도피의 장소도 아니며, 구도자가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영감의 대상도 아니다. 즉 그는 히말라야에서 정신적 영적 해방을 꿈꾸거나 석가처럼 해탈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에게 히말라야의 특정한 장소가 예술적 행위를 표현하는 구심점이 된다는 것은 단지 문명과 대비되는 소재가 아니라 문명을 반추하는 장소성을 띤다.  그에게 히말라야는 문명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는 중심축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에게 히말라야는 ‘우주와 통하는 배꼽’인 것이다.  
                                
                            2006년 11월 28일
                                         도 병 훈(작가)  

주1) 우리나라의 단군신앙같은 티벳의 토착종교임.
주2)남성의 성기를 말하는 것으로 쉬바신의 상징임.
주2)조규현, 예술의 표면과 이면, 그리고 리얼리티전 감상기(1)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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