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조회 수 : 4177
2007.06.05 (13:36:41)
extra_vars1:  ||||||||||||||||||||| 
extra_vars2:  |||||||||||||||||||||||||||||||||||||||||||||||||||||||||||||||||||||||||||||||||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를 마치며

전원길/작가,대안미술공간 소나무 대표



I

프로그램의 진행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이 기획한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지난 2005년 10.11-11.15 동안 매주 화요일 마다 6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강사로는 양원모 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장, 김보성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장, 손채수 초암어린이교육예술연구소장이 맡아 주셨으며 관련 영상자료 ;오래된 미래교육/일본 자유학원, 교육은 예술이다/영국 슈타이너학교, 교육은 체험이다/일본 키노쿠니학교, 교육실험실/러시아 톨스토이학교, 사랑과 치유의 공동체/태국 무반덱학교 등을 감상하고 토론했다.
본 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에서 세계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교육사상을 바탕으로 한 대안학교 운동들 중 우수한 사례들을 직접 현지촬영, 제작한 영상물을 소개하고 지역의 교사와 예술가, 시민들이 함께 우리의 교육 현장을 되돌아보고 통합예술교육에 대한 접근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가능한 한 많은 현직 교사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강좌시간을 저녁시간으로 잡았다. 결국은 현장의 교사들을 통해서 실질적인 교육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좌에는 현직 유치원 원장님을 비롯하여 초, 중등학교 선생님과 장학사님 그리고 문화예술관련 프로그램 기획자, 대학생과 예술가 등이 함께 하였다.

소나무와 미래교육

소나무는 2001년 안성에 자리 잡은 이후 줄곧 현대미술의 왕성한 창의력을 이용한 대안적 교육을 실험해 왔기 때문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진행하게 되었다.
-소나무는 그동안 현대미술 작가들을 초대하여 전시회를 열고 전시된 작업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어 표현 할 수 있도록 하는 “현대미술하고 놀자”와 전통 천연염색 과정을 통해서 색을 발견하게하고 물들인 헝겊을 바느질을 이용하여 조각보를 비롯한 창작 생활소품을 만들어보는 “자연에서 우러나는 우리 색” (2004), “우리 색, 현대미술과 만나다”(2005)를 실행하였다.
특히 올해는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안성 지역의 많은 작업실에 일반인을 초대하여 작가와 일반인이 예술을 매개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운영 목적은 예술가들의 창의적 상상력을 통하여 현대인의 굳어진 정서를 유연하게 회복하게 함으로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느끼도록 하고, 다양한 예술 작업에 관하여 감상하고 즐기게 함으로서 예술로부터 대중이 소외되지 않고 예술가 또한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나무는 이번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를 통해 지역사회의 교육현장에 계시는 여러 선생님과 창작 활동을 통해 자기세계를 창조적으로 열어가는 예술가들을 만나고자 하였다. 이것은 미래교육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실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모으기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해서였다.
전통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 대안적인 교육을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고 이미 교육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에서부터 이웃나라인 일본과 태국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교육 유형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학교마다의 특징적 분위기를 파악함으로서 각 나라의 대안교육 사례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아울러 다양한 교육현장에 계시는 교사, 교육행정관청의 여러분들과 미래교육의 향방에 관하여 같은 관심을 가지고 논의하는 자리를 함께 마련했다는 것은 향후 학교와 소나무가 필요한 부분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교육의 발전적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특히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II

이 시대의 교육 현실과 요구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 교육현장의 비교육적 상황에 대한 염려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단선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를테면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명예로운 직장에서 일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지극히 동물적 욕구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면 대개의 일선학교나 학부모들은  일단 좋은 학교에 보내고 봐야 한다는 가장 안전하지만 가장 위험한 목표를 세우고 학생들을 몰아세운다.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은 학창시절 자연스럽고 풍부한 정서 속에 발휘될 창의적 자발성을 심각하게 훼손당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강한 교육열이 이만큼의 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켜서 점차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각성을 가진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는 이 사회 현실에서는 이루기가 힘들다. 이를테면 자신만의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포괄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보다 풍부한 삶의 모습을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해 내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의 현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안적 교사와 대안적 삶

최근에 많이 생겨나고 있는 대안학교는 교육받은 새로운 기성세대의 각성과 반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각 대안학교의 교육철학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단지 교사들의 헌신적인 소명의식과 민주적 학교운영 그리고 입시교육이 아닌 전인 교육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교육 자체의 방법으로 볼 때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대안학교의 교사가 대안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를 몸으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원론적 수준에서 대안적 교육을 꿈꾸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대안적 교육을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대안적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교육행위를 곧 예술로 보는 슈타이너의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대안교육

나 역시 일류대학 만세인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 무엇이 진정한 기쁨을 주는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았고 처음 품었던 삶의 목표를 잃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이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입시 준비와는 상관없이 즐거웠던 고등학교 미술반 활동을 통해 미술을 통한 기쁨을 누렸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학원이 아닌 서클 활동을 통해서 나의 끼를 갈고 닦을 수 있었고 손 때 묻은 미술실의 이젤과 정물들이 나의 예술가로서의 미래를 격려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생긴 미술에 대한 이해가 나를 사회통념이 아닌 나의 신념에 의해 살아가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시대의 미술과 교육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나의 태도가 생겼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회적 성취는 아닐지라도 무엇인가 성취해나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준비 조건이며 내면적으로는 순간순간 자아 실현의 기쁨을 누리면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서 같은 공간속에 있었지만 그들은 일반학교에서, 나는 대안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학교 안에 뭔가 여유 있는 예술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대안교육은 개발적 측면 뿐 만아니라 회복의 측면에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부모들은 오히려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개별성을 존중한데 반하여 지금은 보편적 성공에 기준을 두고 미래를 설계해 주는 부모들의 퇴보된 생각으로 인해 많은 문젯점이 파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해 볼 문제이다.

예술가와 창의성

회복의 측면에서든 개발의 측면에서든 교육에 있어서 예술적 사고는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하여 예술가들이 누리고 있는 창의적 삶의 기쁨을 어떻게 제도권 교육 혹은 대안적 교육 전반에 적용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었다는데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창의성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특성 중의 하나이지만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 속에서, 삶 속에서 예술 활동을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작업 과정에서 일어난 섬세한 창의적 사고와 감성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왜 일어나는지 분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가까이서 그런 연구가 진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예술가의 창의적 사고의 흐름을 교육에 적용하기위해서는 예술가와 창의적 사고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가치가 구체적으로 조명되어야만 실질적으로 예술과 교육을 접목하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교육예술

인간과 세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예술을 통한 교육과 교육예술을 주창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이념과, 자연 속에서 인간의 자연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태국의 무반덱 학교의 교육 방법 등이 특히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교육예술이라는 말의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 된 것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는데 미술작업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 나로서는 관심이 가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과 사물의 상징으로서의 미술이라는 전통적 방식과는 달리 삶과 대상(object) 자체가 예술이 되는 현대미술의 방법론에 의하며 교육이 곧 예술이 되고 교사가 곧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논법은 쉽게 성립될 수 있다. 슈타이너 교육 이론에 대해서는 우리의 역사와 정서와 관련하여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서 이야기 될 수 있으나 그가 예술적 마인드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련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면 교육방식을 예술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술을 통한 교육과 교육예술은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전자는 예술적 표현 과정을 통해서  일반 지식을 습득해 가도록 하는 것이고 교육예술은 교육을 예술의 한 형태로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교육을 예술의 한 형태로 본다는 것은 교육자가 곧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예술가들이 누리는 자아실현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기존의 교사와 다른 것은 교육의 신성한 사명을 수행함으로서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는 전통적 교사마인드하고는 상당히 달라진다. 즉 교사가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식으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 아니고 교사가 어떤 과목이든 (혹은 프로젝트) 이것을 창의적으로 소화해 내는 과정과 그것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이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혹은 화가가 어떤 그림을 화폭에 그려나가면서 겪게 되는 창의적 프로세스를 갖게 되고 그에 따르는 예술적 고양감을 느끼고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 톨스토이 학교의 한 학생이 “수업에서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선생님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카리스마가 학생들 사이에서 작용하여 무언가 흥미 있는 사태가 수업을 통하여 끊이지 않고 발생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응이다. 여기서 교사는 학생들과 동등한 입장의 수혜자가 되기 때문에 헌신적 교사와 학생들 간에 생기는 일종의 공치사, 부담감 같은 것은 끼어들지 않는다.

좋은 수업은 아이들과 더불어 한판 벌이는 퍼포먼스와 같고 한 학기를 잘 끝내는 것은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즐거움에 비례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러한 차원에서 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보람을 느끼기보다 행복한 자아실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학교에서 학생보다 교사가 먼저 행복해 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이야기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과다한 학생 수, 과중한 잡무 등으로 교과 연구를 충분히 못하고 수업에도 충실하기 어렵다는 등의 현실적 어려움은 늘 산재해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교사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예술가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작업하는 일이 온전히 자기 일이기 때문에 즐겨 모든 일을 시간과 상관없이 해내지만 자기 일이므로 불평은 없다. 우리가 살펴본 대안학교 교사들이 쉬임없이 수업을 준비하고 성인처럼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들이 예술가로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예술가적 마인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가와 교육예술가

예술가들이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창의적 발상의 계기로 삼는 것처럼 창의적인 교육예술가들은 창의적 순발력과 열정을 가지고 문제를 발생시키는 학생들과 더불어 이제까지와는 다른 수업을 창의적으로 이끌어 낼 것이다. 예술가들이 망친 그림을 통해서 오히려 예기치 않았던 영감을 얻어 작업하며 마침내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것과 같다. 예술가들은 전혀 미술과 상관없을 듯한 대화나 장면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서도 번득이는 영감을 얻어낸다. 교육현장을 창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흐름 속에 집어놓고 교사와 학생이 고양된 감성과 지성을 교감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작업이 된다.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학생을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준다는 일종의 주는 방식 보다는 그가 처해있는 현실과 그의 부적응의 요소 자체를 하나의 예술프로젝트로 삼아 문제를 풀어간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대 미술가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방식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자신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영역으로 그 학습의 방향을 확대해나가는 방식을 통해 학생들은 예술가이면서 학습자로서 예술가이면서 교사인 인격체와 만나게 된다.  

교육예술가의 발굴과 교육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과 만나면 교육이라는 보편성 안에 예술이 갇혀 버릴 염려가 있으며 교육은 예술가의 엉뚱함으로 인하여 모험적 성격을 띄게 될 확률이 높다. 교육예술가가 자기실현을 포기하고 일정한 틀 안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게된다면 생생한 창의성을 아이들과 더불어 실현해나가기가 힘들 것이며, 예술가로서의 무한한 상상력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사한다면 사회의 상식과 통념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교육과 예술적 상상력의 균형감과 지혜로운 판단력을 가진 교사를 어떻게 길러내고 교육현장의 시스템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거침없이 발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사회는 교사로서의 헌신적 삶을 맹세하는 소명을 가진 교사들을 기대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교육예술가들의 덕목은 소명의식 뿐 아니라 실질적인 창의성을 발휘할 만한 훈련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생활 전반에서 발휘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갑자기 이런 교사를 대량 공급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수 십년 이상 몸으로 체득된 예술적 경험과 사색이 있어야 창의적 정신과 몸의 카리스마를 갖춘 교사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창의적 교육예술가들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창의적 예술가들이 교육현장의 중심과 사이드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 교사를 예술가로 교육시키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교사를 예술가로 거듭나도록 재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 속에서 정책적으로 시도하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교육을 맡아줄 팀을 구성하는 일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예술계에서 교육적 권위를 가진 집단은 대학의 교수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들이 지금의 편협한 사고를 가진 미술교사들을 배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예술가로 탈바꿈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예술 현장에서는 손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새롭고 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방법들은 감각적 기술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계의 유수한 미술학교에는 미술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학원 과정에서 미술실기와 관련한 전문교육을 받는 작가들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창의적이기 때문에 창의적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교육예술가로서의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래 교육에 있어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여기서 소나무가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현장의 예술가들과 제도권의 교육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간략히 소개하고자한다.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간다’는 ‘창의적 정신과 몸의 카리스마’를 가진 작가와 일반인들이 에듀케이터라는 매개자를 통해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기존에 소나무에서 시행하고 있던 “현대미술하고 놀자”가 확대된 미술교육프로그램으로 여기에 참가하는 예술가들이 교사로서 일정한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은 작업을 통해서 쌓아온 예술가로서의 풍부한 창의적 인격(카리스마)을 보여준다. 작업실의 창의적 분위기 속에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고 그 에너지에 힘입어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경영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쌍방향적이다. 예술가들 또한 자폐적 고립상태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 가능성을 직접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 건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와 기존의 제도권 교육이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에듀케이터가 예술적 경험은 있으되 교육으로 연결시켜내기 힘든 예술가를 도와서 일반학교에서는 하기 어려운 창의적 에너지가 충만한 작업실 수업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III

창의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미래교육을 기대하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장 체계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안학교는 영국의 슈타이너 학교라는 생각이다. 교육예술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체계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학교가 추구하는 정신이 여전히 이 시대에 의미 있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슈타이너 학교가 이미 한 세기 전 버전이고 소개하는 자료를 통해 보여지는 미술작업은 왠지 이 시대의 확장된 미술의 분위기 속에서는 고전적 방식으로 느껴졌다. 슈타이너 학교 내부적으로 어떻게 초기의 사상과 교육 방법을 진화시켜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원론적 측면에서는 역시 그들의 역사와 교육적 환경을 바탕으로 생겨난 교육시스템이기에 지금의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어색한 점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큰 특징 중 하나인 8년 담임제 같은 것은 지금처럼 사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세상과 인간의 그 다양한 면면들을 감당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그러나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통찰력과 창의적 적응력을 교육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로 활용하고 있는 슈타이너 학교의 방법은 미래의 교육을 생각하는데 중요한 지침으로서 희망적 기대를 하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극단적인 전통과 역사의 단절을 경험하였으며 급박하게 근대화 과정을 겪음으로서 생긴 필연적 부조리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각 분야의 예술가들의 경험은 소중하게 사용 되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부조리한 상황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내어 긍정적인 상황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교육예술’이라고 하는 조합어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실태로 드러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이제 비로소 조금씩 그 개념이 이해되고 있는 시점에서 거친 비약과 상상이 너무 많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것이 미래교육이다” 강좌를 계기로 미래교육의 초석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확산되길 바란다. 예술가들의 작업 과정 속에서 발휘되는 창의성의 속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성과를 미래교육에 연결시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나길 또한 기대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보다 다양한 삶의 가치가 이 세상에 제공되고 삶이 곧 예술이고 교육인 세상 속에서 교사와 학생의 구분이 없이 서로의 정신과 영혼을 고양시켜 미래교육사회가 열리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
Tag List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