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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1 (22: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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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째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한겨울입니다.  
누군가 글쓰기에 대해 ‘빈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과 같은, 또는 어둠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로 비유한 이가 있습니다. ‘반향’을 기대하며 미지의 독자를 향해 말하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라는 뜻이겠지요.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또 다시 빈 병에 편지를 넣어 차디찬 겨울 바다에 띄웁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누구 없는가? 라는 화두


최근 조계종 종정 법전法傳 스님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는데, 책 제목이 ‘누구 없는가’다. 이 제목은 그의 스승인 성철 스님의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법문을 하기 전, 때때로 수행자들이나 후학들을 향해 주장자를 휘두르며 “누구 없나?”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가르는 벼락이나 천둥소리를 연상케 하는 이 말은 ‘공부 제대로 한 사람은 누구인가?’, 또는 온전히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등을 묻는 화두다. 이런 화두를 자서전이란 형식을 빌려 세상에 던진 법전 스님의 행적도 예사롭지 않다.

법전 스님은 서른 즈음 됐을 무렵 문경에 위치한 봉암사를 거쳐 묘적암에 올라간 후 자주 울었다고 한다.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죽으면 법전이란 존재를 태평양 한가운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그 망망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철 스님이 아들을 찾으러 온 어머니에게 돌을 던졌듯, 법전 스님은 죽어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삶을 법전 스님은 새끼를 키울 때가 아니면 늘 홀로 산정 높이 올라가 고독과 싸우는 ‘표범’에 비유했다.

이런 서슬 푸른 삶의 궤적을 가진 이답게 법전 스님은 책의 서문을 통해 “허공을 나는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선사들의 본래적 삶의 모습인데(중략)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술하게 되었고, 그걸 문자로 옮긴 탓에 세상에 또 한 점의 땟자국을 남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언사는 우리 삶의 근원적 부조리(앎과 삶의 괴리)를 생각해볼 때 겉치레 말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누구 없는가?’ 라는 화두 못지않게 ‘또 한 점의 땟자국’이란 말에서도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삶에 대한 이런 태도는 유구한 연원이 있다. 동북아 문명권의 노장사상이나 선불교의 전통은 20세기 초에 성립한 서구의 분석철학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극단적으로 언어를 부정함으로써 삶의 진정성을 추구했다. 이런 맥락에서 ‘누구 없는가?’라는 화두는 치열한 실존적 물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 핵심인 동북아 특유의 치열한 삶의 흔적도 ‘책’이나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래서 이를 잘못 읽은 이들에게는 ‘득’이 아닌 ‘독’이 되기도 한다. 특히 선불교는 후대에 형식화 ․ 교조화되는 말폐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의연하기 그지없는 수행승들의 삶의 태도만큼은 오늘의 현실에 교훈을 준다. 특히 사이비, 또는 스노브(속물)들이 더 설치고 행세하는 오늘의 미술계에 경종을 울린다.

사실 미술계에 횡행하는 사이비 미술을 매개로 한 스노비즘 양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한국미술계의 오랜 관행이자 고질병인 외국 작가 작품 베끼기와 미술 본연의 가치와 진정성을 제대로 못 보는 비평 활동이 있다. 요즘 회자된 ‘학동마을’이란 그림의 매매사건을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이러한 사태의 이면은 천민자본주의 논리만이 있을 뿐이다. 가진 자와 그림을 거래하는 자들의 담합으로 평범한 그림이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가의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미술의 상품적 가치는 예(미)술 본연의 진정성이나 가치와는 별개의 가치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기형적 풍조를 묵인할 수 있는가이다.

요즘 같은 혹한의 겨울은 우리 인간이 원래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는 시기다. 눈보라가 몰아쳐 그야말로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는 단 몇 분조차 발가벗은 채로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적 체험은 인류가 문명화의 길을 걸으며 망각한 세계의 진실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예술이 이러한 체험과 무관하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다. 결국 ‘누구 없는가?’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어떻게 사는 존재인가’를 묻는 근원적 화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누구 없는가? 는 우리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인 한 모두 피할 수 없는 화살인 셈이다.

                                  2009년 12월 20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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