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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3 (21: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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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와 키위 이야기

 

 

어린 시절에는 밤, 대추, 감 같은 과일도 제사나 명절이 아니면 거의 먹을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예닐곱 살 무렵이던 어느 날, 큰 고모의 무남독녀인 고종사촌 누나가 생전 처음 보는 어떤 과일을 갖고 왔다.

그 과일은 누나가 살던 한밤(대율) 마을 뒷산인 팔공산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야생다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친인척 집에 손님으로 오가며 며칠씩 머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고, 그 누나도 외가인 우리 집에 오면서 다래를 선물로 갖고 온 것이다.

다래는 작은 달걀 크기에다 솜털이 있는 갈색의 껍질로 둘러싸여 있었다. 과육은 녹색에 가까운 연두색인데 작고 검은 씨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당시 먹어 본 다래의 맛은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누나의 고운 모습과 함께 유년기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다래가 ‘키위’로 더 알려져 있으며 원산지는 대개 뉴질랜드산이다. 그런데 키위의 원산지가 중국이며, 중국의 다래와 이 땅의 야생 다래가 거의 같은 품종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마트에서 늘 볼 수 있는 키위도 사연과 내력이 있다.

 

 

100여 년 전인 1904년, 중국 창장(長江·양쯔강) 유역의 한 야산에서 다래를 발견한 사람은 뉴질랜드 선교사 이사벨 프레이저였다. 그녀는 다래 씨를 채집하여 귀국한 후 처음 뉴질랜드 땅에 심었다. 그녀는 열매의 모양이 서양까치밥나무 열매(구스베리)와 비슷하다고 해 '차이니스 구스베리'란 이름을 붙였으며, 처음에는 칡이나 포도나무처럼 덩굴로 자라는 다래나무의 특성상 그늘을 만드는 정원수로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원예학자인 헤이워드 라이트가 그 열매의 '맛'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가 10년 넘게 품종을 개량한 끝에 마침내 크기가 크고 당도도 높은 개량 키위를 만들어 '키위프루트'란 새 이름을 붙였다. 뉴질랜드의 국조(國鳥)인 키위와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2차 세계대전 직후 뉴질랜드 정부는 참전병사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으로 과수원을 권장하여 키위 재배가 급증한다. 그리고 1950년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키위를 수출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뉴질랜드하면 키위가 떠오를 만큼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상품이 됐다. 북반구에서 과일이 나지 않는 시기에 공급이 가능했고, 또 장거리를 냉장해서 싣고 가도 물러지지 않고 맛이 더 좋아지는 후숙(後熟) 과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키위의 겉모양이 호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수출 초기부터 절반을 잘라 속을 보여주고 맛과 영양이 풍부하다는 걸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키위의 주도권과 관련해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추세인데, 중국이 참다래 육종과 재배에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야생 참 다래는 그 종류가 4가지이며, 시중에서 판매되는 참다래는 이 야생 다래를 재배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다래는 크기도 개량종 다래인 키위에 비해 작고 당도가 낮다. 게다가 완전하게 익기 전의 다래 특유의 아릿한 신맛이 강하다. 이는 후숙 과일임에도 적정 출하 시기보다 이른 시기에 출하되어 작고 딱딱한 상태로 출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래 보다는 뉴질랜드산 키위가 더욱 친숙하다. 커피나 감자, 옥수수 등의 서구 유입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다래에서 키위로의 변천과정은 근대의 대항해시대 이후 서구인들이 산업자원을 확보하거나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난 일종의 되먹힘 현상이지만, 그 주된 경제적 이익은 유전자 차원의 개량 및 복제능력을 바탕으로 상품화를 선점한 사람들이 차지해왔다.

이러한 상품화는 한반도가 원산지인 콩도 마찬가지이며, 나아가 동물, 광물질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런 사례는 근대 동서 문명의 교류 및 이입 과정이 광범위한 진폭으로 형성되었음을 입증한다.

 

 

한 선교사가 중국에서 우연히 한 야생과일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그 과일은 현대인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 되었다. 뜻밖의 우연한 사례로부터 불과 100여년 만에 세계적으로 확산된 다래의 역사, 즉 다래에서 키위로의 변천사는 현 시대 농작물이 어떻게 상품화되는지 잘 알게 한다. 키위의 물화(物化), 또는 상품화 현상은 20세기 이후 유통되는 농작물의 일반적 실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포장된 진열장의 키위처럼 거의 모든 과일들이나 농작물은 개량된 품종이며, 명품으로 포장된 상품만이 물신(物神)으로 살아남는다. 그만큼 자연의 맛은 귀한 맛이 되어버렸으며, 현대인들은 자연을 가장한 인공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세계는 종자 전쟁 중이다’는 말이 있듯, 육종학의 차원에서는 개량되기 이전의 종자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비동일자로서 특수한 고유성을 유일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유전자 차원의 상품화도 그 근원은 야생의 자연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품화 현상은 오늘날 이벤트 화되는 행사를 바탕으로 고급 상품으로 포장되는 예술(?)과 함께 비동일자로서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는 예술에 대해서도 자문하게 한다.

2011년 9월 12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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