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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17: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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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사과와 감각의 세계

 

1.

우리가 늘 대하는 어떤 사물이나 세계는 지각과 인식의 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어떤 대상이든 저마다의 프레임을 통해 본다는 것인데, 문제는 ‘클리셰’이다. 클리셰란 습관적인 생각의 틀로 세상을 인식하고 보는 것이며, 특별한 체험이나 계기가 없으면 이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의 그림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이러한 예로 폴 세잔 Paul Cezanne(1839~ 1906) 의 사과가 유명하다. 주1) 누군가는 인류의 3대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꼽았다. 이 세 개의 사과는 의식과 감성이 심화 확장되어 온 문화적 진화 과정을 집약한 말이다. 주2)

사물에 대한 재현적 묘사력은 15세기 얀 반 에이크 이래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른바 ‘오감 정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손으로 만지는 듯한 질감을 묘사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잔의 사과는 잘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사과는 어설프게 미완성으로 끝난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 세잔 생전 그의 그림이 출품되었을 때 처음에는 물감만 떡칠된 그림이라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잔의 사과’로 집약되는 세잔의 그림은 심층적으로 분석되면서 전인미답의 새로운 회화 원리를 추구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그가 도달하고자 한 새로운 회화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2.

아래 그림(*도판 생략)은 세잔이 그린《사과와 병》이다. 이 그림은 그저 평범한 정물화처럼 보이지만 주의 깊게 보면 이채로운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음영이나 명암이 아닌 색채의 차이로 화면을 구성하거나 대상을 그렸음을 발견할 수 있다. 테이블도 천을 경계로 하여 좌우 높이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이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는 단서다.

 

먼저, 이 그림의 두드러진 색채효과는 인상파의 그림과 다르지 않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 세계의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을 그렸다. 망막에 닿은 시각적 인상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연의 현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것이었으므로 세계의 실제 모습이란 동일한 형태로 지속될 수 없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고대 그리스 이래 고전적 미의식과는 상반된 미의식이다. 고전주의 미술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은 진정한 현실이 될 수 없었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감각적 현상을 초월하는 ‘이상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적 비례를 가진 형상을 잘 그리는 것이 근대 신고전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림의 주된 목적이었으며, 투시원근법과 명암법의 발견도 사물을 재현하기 위한 기법이었던 것이다.

반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을 그리기 위하여 종래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기조로 한 회화적 기법을 버리고 시시각각 현하는 세상의 모습- 빛이 빚어낸 색채의 차이일 수밖에 없는-사물과 세계를 온통 빛의 색채로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회화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처럼 빛으로만 환원되는 대상이기 전에 근원적으로 무엇인가로 존재한다. 우리의 몸 덩어리는 물론 사과 하나라도 만져 보면 실체적 존재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존재감은 그림이나 사진처럼 하나의 고정된 시점이 아닌 ‘행동 속에서’ 체험으로 느낀다. 그래서 세잔은 하나의 초점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세잔은 고정된 시점의 고전적 방법도 아닌 사물의 실체적 존재감이 없는 인상주의 방식도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그림을 시도하며, 그것은 주위 세계와 구별되는 기본적인 형태를 다양한 관점을 공존시키되 색채로 형태를 구축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사과와 병》과 같은 색채와 형태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세잔의 그림이 일견 서툴러 보이는 것은, 아니 ‘잘 그린 그림’이기를 거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세잔에게는 사과처럼 단단하고 둥근 물체가 인상파 그림에 나타난 세계의 존재론적 상대성을 극복하고 물체의 입체감과 색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그래서 ‘세잔의 사과’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세잔의 사과다. 다시 말해 세잔의 사과는 세잔과 사과, 둘 다 좀 더 종합적으로 포함된 것을 의미한다. 즉 세잔의 사과란 먹음직한 과일이란 대상으로서의 사과를 ‘재현(representation)’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과를 체험한 세잔의 신체적 행동 속에서 경험한 것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즉 세잔의 그림은 “감각(sensation을 실현하는 것”이다. 주3)

그리고 세잔은 이 감각이 빛과 색 자체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신체 속에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근본적인 미적 체험에 대해 D. H. 로렌스는 세잔의 ‘사과성(appleyness)’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세잔의 감각, 즉 사과성은 세잔과 사과 어느 쪽도 아닌, 둘 다 이기 때문에, 현상학자들이 말하듯 ‘세상에 있음’이다. 이러한 그의 그림세계, 즉 어법(idiom)의 특성은 《생트빅투아르 산》연작에서도 드러난다. 주4) 세잔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60여 회나 그렸다. 이 그림(도판 생략)은 세잔의 만년 작품이다. 우선 납작납작한 붓 터치로써 대상의 입체감을 표현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터치 하나하나는 색으로 된 평면인데, 평면으로 또한 입체감을 표현했다. 부분적으로 보면 무수한 평면에 지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보면 입체이기도 한, 그래서 마치 화면이 이 양자 사이에서 진동하는 듯하다.

세잔이 그린 들판과 산은 그가 그린 정물화도 그러하듯 투시법적 일관성이 없다. 이처럼 세잔의 그림은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은 공간이며, 데카르트적 명료함과 분명함을 배제하고 색채의 차이로써 사물과 세계를 표현한다. 그래서 세잔의 회화는 기하학적 공간에서의 단일한 균형이 아니라 무수한 순간을 고정시킨 다양한 관점들을 종합함으로써 평면과 입체 양자 사이의 긴장된 모순 속에 진동하는 화면으로 나타난다.

세잔이 이런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이유는 당대 인상파의 영향으로 전통적 재현 회화의 방식인 명암법과 원근법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리면 대상이 갖고 있는 풍부한 색채감을 표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지만 세잔은 실제 대상이 갖고 있는 입체적인 구조(원뿔과 원기둥)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상은 분명 어떤 덩어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터치는 대상의 실재감과 직결되는 만큼, 세잔은 하나의 터치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톤 하나 이상해도 그림의 전체 질서가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잔은 “색채와 데생은 결코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색깔을 칠해감에 따라 데생은 견고해지고, 데생이 충실해짐에 따라 색채도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세잔의 그림이 평범한 주제인데도 단지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그림인 것은 이 같은 비밀이 그림 속에 있어서다. 세잔은 하나의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서도 오랜 작업 시간을 들였고,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게 할 정도로 매우 까다로웠다. 그에게는 순간적인 대상의 생생한 실재는 물론 구조적 탐구가 다 같이 중요했던 것이다. 주5)

이외에도 그의 자화상이나 《수욕도》연작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담론을 통해 현대미술의 깊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주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그의 작업은 회화란 무엇인가, 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모험이었다.

 

세잔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은 그의 그림세계를 제대로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시를 본 브라크와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큐비즘cubism, 즉 ‘입체주의’ 그림에 성립에 기여한다. 또한 세잔의 그림은 입체파 이전에 성립한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마티스의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의 예술세계는 20세기의 현상학자인 메를로 퐁티와 후기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질 들뢰즈의 세계관 및 예술관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3.

세잔은 이전과 다른 방식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서양회화의 양면적 전통, 즉 고전적 구성과 인상주의적 현실감을 붓 터치마다 다른 색채의 차이로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의 사과’는 이러한 비밀을 아는 열쇠다. 예술가로서의 세잔의 일생은 한 알의 사과를 통해서도 클리셰를 배제한 감각을 실현하려 애쓴 과정이었다. 이처럼 회화의 길을 새롭게 추구한 세잔의 모험을 통해 서양근대회화는 비약적으로 달라지며, 이 때문에 그는 현대회화의 예언자, 입법자, 아버지로 평가된다.

후대의 평가에 의하면, 세잔에 이르러 서구미술은 지각과 두뇌를 바탕으로 주체가 대상을 재현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즉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행동 속에서’ 움직이는 육체의 안구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는 대상과 주체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우리 삶의 실상 그 자체이며, 감각을 실현하는 것이다.

 

2011년 11월 6일

도 병 훈

 

 

주1)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D. H. 로렌스는 세잔에 이르러 전통적 진부함에서 벗어난 스스로 존재하는 사과를 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쓴 원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40년의 악착같은 투쟁 끝에, 그는 마침내 어떤 사과 하나를 알 수 있었고 한두 개의 꽃병을 완전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성공적으로 한 모든 것이었다. 이것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그는 쓸쓸하게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발자국이다. 세잔의 사과는 아주 중요하다. 플라톤의 생각보다 중요하다. … 때때로 세잔이 판에 박힌 것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가 실제적인 대상에 대해 전적으로 직관적인 해석을 한 곳은 바로 정물화 속에서이다.

주2)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파리스로부터 황금사과를 받는다. 이 사과는 여신 비너스의 신물神物이자 결혼 의식의 제의적인 징표다. 또한 성서의 사과는 선악과로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헤브라이즘적 전통의 원류를 상징하는 사과다.

사과가 그림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들어 플랑드르 지역에서부터다. 이 지역은 15세기 유화의 창시자인 얀 반 에이크가 나온 이래 회화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남쪽 이탈리아 지역의 르네상스 미술과 함께 18~19세기 유럽 미술을 주도한 프랑스 미술의 2대 원류가 된다. 곧 이러한 신화적(상징적) 사과가 쿠르베에 이르러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일상적 사과로 변하지만 기법 면에서는 전대의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3) 질 들뢰즈는 세잔의 이 감각에 대해 H. 말디네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각이란 쉬운 것, 이미 된 것, 상투적인 것의 반대일 뿐만 아니라,‘피상적으로 감각적인 것’이나 자발적인 것과도 반대이다. 감각은 주체로 향한 면이 있고,(신경시스템, 생명의 움직임, ‘본능’, ‘기질’ 등 자연주의와 세잔 사이의 공통적인 어휘처럼) 대상으로 향한 면도 있다.(‘일’, 장소, 사건) 차라리 감각은 전혀 어느 쪽도 아니거나 불가분하게 둘 다이다. 감각은 현상학자들이 말하듯이 세상에 있음이다. 나는 감각 속에서 되고 동시에 무엇인가 일어난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의하여, 하나가 다른 것 속에서 일어난다. 결국은 동일한 신체가 감각을 주고 다시 그 감각을 받는다. 이 신체는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이다. 관객으로서 나, 나는 그림 안에 들어감으로써만 감각을 느낀다. 그럼으로써 느끼는 자와 느껴지는 자의 통일성에 접근한다. 인상주의자를 뛰어넘은 세잔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이다. 감각이란 빛과 색의 자유롭거나 대상을 떠난 유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신체 속에 있다. 비록 그 신체가 사과의 신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색은 신체 속에 있고 감각은 신체 속에 있다.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려지는 것은 감각이다. 그림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신체이다. 그러나 신체는 대상으로서 재현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각을 느끼는 자로서 체험된 신체이다.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10, 47-48쪽

주4)세잔이 《생트빅투아르 산》과 함께 만년에 많이 그린 그림으로는 《수욕도》 시리즈가 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에게‘사랑하는 대상(the loved object)’이었다 특히 생트빅투아르 산은 전경의 녹색을 위주로 한 평면적 처리와 거리와 무한을 표현하는 푸른 색 사이에서 마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욕망처럼 다가오듯 보이다가도 다시 멀어지는 대상으로 진동하듯 처리하여 깊이와 공간적 심도를 추구하는 세잔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주5) 세잔은 많은 인물상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아내를 많이 그렸다. 그런데 대다수의 이 그림들은 ‘사진관에서 취하는 바보 같은 포즈’이며, 특히 얼굴은 마네킹처럼 무표정하게 묘사하여 대상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미화하는 상투적인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세잔이 자신의 부인조차 이렇게 소원한 대상으로 그린 까닭은 그가 그린 ‘한 개의 사과’처럼 대상에 새롭게 다가가서 그 리얼리티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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