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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17: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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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신드롬과 미술 감상

 

 

삶은 만남의 과정이다. 여러 가지의 만남 중 삶과 사람을 바꾸는, 일생동안 잊을 수 없는 만남도 있다. 또한 예술작품과의 만남에서도 특별한 감응 사례가 있으며, 그 중에는 매우 강렬한 신비스런 체험도 있다.

나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대구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로댕 특별전에서였다. 그곳에서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특별 전시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작품이기에 사람들이 몰려 있지? 하는 호기심으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았더니, 거대한 검은 몸체 위로 고개를 뒤로 젖힌 모습의 ‘발자크 상’이었다. 무심코 그 상을 보는 순간, 거대한 고목 둥치 같은 몸과 함께 여러 갈래의 수염이 두드러진 발자크의 고뇌어린 얼굴 표정에서 형언할 수 없는 전율감과 충격을 받았다. 그 엄청난 존재감과 경이로운 아우라로 인해 숭고하다는 느낌 이외에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마음이 요동치는 강렬한 감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그 놀라운 경험은 10대 초중반의 순진하기 그지없는 청소년이 당시로서는 너무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몸의 괴량감과 거친 마티에르의 대상을 만나면서 한 순간 넋이 나가 버린 일종의 신비체험이었다.

훨씬 훗날, 그 때 중학생 때의 강렬한 체험이 바로 어떤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증상인 이른바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임을 알게 되었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프랑스의 소설가인 스탕달(Stendhal, 1783~1842)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기에 적어 놓은 데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이후 고전주의나 바로크 화풍의 그림이 매우 많은 그 곳 피렌체에서 스탕달 뿐 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와 유사한 증상에 시달렸다는 보고서가 입수된 후 심리학자들이 스탕달의 이름을 사용해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한 것이다. ‘Elevated Mental Disease’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는 순간적인 압박감이나 정신적인 충격을 일컫는다.

‘신드롬’이란 증후군으로 번역되며, 원인이 명확하지 않지만 공통점을 가진 일련의 병적 증상을 총칭하는 용어다. 대사증후군, 다운증후군 등이 그런 예이며, 에이즈(AIDS)도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약자다. 사회학적 용어로는 소녀에 집착하는 롤리타 신드롬, 늙지 않고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샹 그릴라 신드롬 등이 있다.

 

‘스탕달 신드롬’ 대상으로 유명한 예로는 러시아 출신 미국의 색면 추상 화가인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이 꼽힌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직사각형의 화면에 검정과 빨강을 대비시킨 그의 대형 화폭을 감상하다가 졸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귀도 레니(Guido Reni)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평범한 그림이다. 그는 주로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고전주의적 구성과 바로크 미술의 부드럽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한 화가였다. 그래서 미술사적으로는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는 화가는 아니다.

그런데, 그가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린 이 그림에는 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림의 주인공인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는 16세기 당시 이탈리아의 귀족인 프란체스코 첸치의 딸로, 그녀의 아버지는 베아트리체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자기 저택의 어느 방에 가두어 놓았다고 한다.

매우 아름다웠던 그녀는 결국 14살 때 아버지에게 겁탈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 사건이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밤, 베아트리체 첸지는 어머니와 오빠와 집사의 도움으로 아편으로 아버지를 잠재워 죽인 후 시체를 정원의 무성한 나무숲에 버린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체포되었고, 시의 공무원들이 정당방위라고 했음에도,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그들을 사면을 하지 않고 모진 고문과 함께 처형을 명했다. 처형 당일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로마의 산 탄젤로교 앞의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이 때 귀도 레니도 그곳에서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구경꾼을 돌아보는 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게 되며, 그녀는 곧 참수형을 당한다. 그 때 귀도 레니가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가 처형당하기 직전 돌아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스탕달이 본 바로 그 그림이었다. 스탕달도 이 그림을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이런 사연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녀의 애잔함이 바로크적으로 묘사된 그림을 보고서는 그 이미지의 힘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을 통해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이 병적일 정도로 신비스런 체험으로도 일어남을 알게 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각종 신드롬 현상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현상이란 대상 그 자체의 고유성이나 특별한 가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대상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에 의해 야기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미술작품의 미적 가치, 또는 예술적 가치는 이러한 신드롬 현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적 가치, 또는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발자크 상 앞에서 선다 해도 당시의 강렬하고도 신비스런 체험을 할 수 없다. 그 대신 로댕의 조각을 고뇌어린 삶과 그 흔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날의 신비로운 체험 이후 너무도 다양한 존재방식의 미술가와 작품들을 체험하게 되면서 더욱 더 절박하고, 더욱 더 정신적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날의 경험은 로댕으로 대표되는 근대조각이 갖는 특성을 단 번에 알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그 날 이후 적어도 발자크 상 정도의 조각이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컨대 예술세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런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건으로부터의 촉발되는 계기이다. 미술에서는 감상(感想)에서 감상(鑑賞)으로, 즉 감상의 차원을 넘어선 감상이라 할 수 있다. 한자의 뜻풀이로도 전자의 감상은 그저 주관적, 감상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는 사려 깊은 분별력을 바탕으로 한 즐김이다.

 

2011년 10월 13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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