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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9 (13: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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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을 위하여

전원길 (작가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I

1980년대 초반 한국 야투그룹의 젊은 작가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미술을 시작했다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연과 미술이 함께 존재하면서 서로 그 경계를 만들지 않는 예술을 실험했다.

자연미술이 발생하게 배경에는 1960-70년대 서구로부터 한국에 유입된 개념미술이나 대지미술 등의 영향이 있었다하지만 야투는 단지 서구 현대미술의 이론을 따르지 않고 자연과의 단도직입적인 만남을 시도함으로서 야투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발전시켰다당시 야투작가들은 자연 속에 자신의 생각을 밀어 넣기 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풀을 뽑아 나무에 올려놓고마른나무가지에 손가락을 대어보기도 학고때로는 잔잔한 물에 돌을 던져 파문 속에 흩어지는 자신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자연과 교감하였다. 자연미술현장에서 작가들은 최소한의 행위로 자연과 만났으며 자신의 표현의지가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미술상태를 보고자 하였다.


1 전원길 Jeon Wongil, Untitled, 공주산성공원 Sanseong Park Gongju, 1986.jpg 3 강희준 Kang Heejoon, 풀 Grass, 청원 부강 Cheongwon Bugang, 1985.jpg 2 신남철 Shin Namchul, 청벽 공주 Cheungbeuk Gongju 1982.jpg 

전원길  Jeon Wongil, Untitled, 1986                           강희준  Kang Heejoon, 풀 Grass, 1985                          1986 신남철  Shin Namchul, 1982                               


이 글을 통해 나는 새로운 미술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하게되는 유형화와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특성에 기인하는 탈개성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자연미술이 사진과 영상매체를 통해 기록되면서 다시금 인간의 미술 안으로 확산하게 되는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한다. 자연미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자연미술이 나가야할 방향을 탐지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II 자연미술의 위치

 

1980년대 초반 야투는 자연과의 맞대면 하는 것으로 부터 작업을 시작하였다이는 미리 준비한 아이디어나 재료들이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이들은 개인의 예술적 경험이나 미적 신념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서 자연 자체가 가진 생명력을 드러내고자 했다이는 자연과 하나되길 원하는 인간의 본성적 의지의 발현으로서 '인간의 미술'에서 '자연의 미술'로 그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1유형화

야투가 40여 년간 자연이라는 무한생성공간에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지만 발표된 작업 모두가 자연과의 생생한 만남을 반영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자연이라는 절대가치를 내세우는 것 만으로 자연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움직임과 작가의 표현의지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자연미술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창의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지점을 잡아내야만 가능한 것이다.  자연미술의  방법론이 정착된 1980년대 이후 기존 야투 작업을 훌쩍 뛰어넘는 작업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은 새로운 미술을 탐색하던 시기에 보여주었던 참신한 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과의 만남 자체가 의례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시대에 새롭게 추구되었던 미술운동이 일정기간이 흐르면 유형화의 단계로 들어가게된다. 그동안 많은 현대 미술사조들은 자기비판과 시대 상황에 부응하는 형식 실험을 통해 창의적 역동성을 회복해왔다. 인간의 원초적 표현의지를 반영하는 자연미술은 과연 어떤 진화를 통해 그 참신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2. 몰개성화

자연미술현장에서는 간혹 비슷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더라도 이를 심각하게 문제삼지않았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준 영감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다른 작가들과 유사한 감흥을 공유할 수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내려놓고 자연을 따른다는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전략은 무한한 자연의 생명작용에 나를 맡기고 나아가는 것이다. 몰개성화는 자연미술의 전제적 태도이면서 결과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연미술가들의 수행적 태도가 가져오는 탈개성화 현상은 자기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자기부재 상황을 맞이하게 한다. 이는 자연미술이 여전히 미술로서 존재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속성이다.  나는 이러한 반동적 현상 즉 나를 내려놓는다는 초탈한 심정 이후에 찾아오는 자기 실현 욕구를  창의적으로 발산하기위한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다.  


III 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와 그 안에 내재된 생명과 힘의 작용을 그대로 받아내야만 성립하는 자연미술은 작가의 개성이나 의도를 조금이라도 더 강조하면 자연전체로 연결된 열린미술에서 자연과 유리된 일반적인 '미술'로 전이하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행한 작업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기록하는 순간 그 작업은 인간의 미술로 곧 바로 되돌아간다그리고 곧바로 작가만의 고유한 세계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피하는 방법은 사진이나 영상 등의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음으로서 기존의 미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창의적으로 찾아나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연미술과 인간의 미술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한다. 순수 자연과 만나는 자연미술을 통해 나를 무화시키는 한편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미술작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자연으로 나아가는 창의적 순환의 흐름을 만들어야한다상호 작용하는 자연계와 인간계 이 두 세계를 관통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넓혀 나가야한다.


1. 몰입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확산을 위한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 속으로 더욱 깊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다그동안 아무리 많은 자연 속에서의 자연미술 작업이 있었더라도 자연은 날마다 새롭고사회 환경 역시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다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역시 성장경험학습 등을 통해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울 수 있다.


8. 임승균 Lim Seungkyun, Geungwang Lake Anseong, 2017.JPG 9 전원길 Jeon Wongil, 침으로 표시하기 Marking with Spit, 창원 2014.jpg 김순임 2012 공주금강.JPG 

2012 임승균  Lim Seungkyun,                              2017 전원길  Jeon Wongil, Marking with Saliva,         2014  김순임 Kim Soonim, 


내가 무엇인가 해보려는 의지가 최소화되는 순간 창작 열망이 반작용을 일으킨다나의 생각을 비워냄으로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것들을 보게 된다자연을 경제적 이용 가치로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연예찬 시각으로만 자연을 바라보는 것 역시 피상적 접근에 그치게 할 수 있다자연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자신의 몸과 의식이 어떻게 남다른 반응을 하는지 느껴야만 나의 고유한 존재성 또한 자연과 더불어 드러낼 수 있다.

 

2. 동시대미술로의 역확산

1980년대 초반 야투현장에서는 한 대의 카메라로 모든 작품을 촬영하였다작가들이 흩어져 작업을 하다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카메라를 가진 작가를 소리쳐 부르거나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때로는 미처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고 지나간 작품도 있었다사진기록보다는 작업행위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시기였다당시 사진 기록이 자료집을 위한 부수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대부분의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컴퓨터상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보정하고 트리밍콜라주등의 사진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자연미술이 사진적인 측면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13.권오열 차이와 반복 1735  헝가리 2017.jpg 14 전원길 palm leaves 2014.JPG 15 Marty Miller Anseong 2017.JPG 

권오열 Kwon Oyeol,  차이와 반복 1735,                                          2017 전원길  Jeon Wongil, palm leaves,                          2014 Marty Miller, 2017


자연미술은 카메라로 기록되는 순간 자연의 생생한 작용이 사라지고 하나의 이미지로서 감상의 대상이 된다기록된 이미지도 일정 부분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히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 상태라고는 할 수는 없다사진은 작가의 미적 판단의 결과로서 존재한다사진을 통해 기존의 미술로 귀환한 자연미술은 자연이 지녔던 생동감을 시각 언어를 통해 되찾아야하며 참신한 개념을 통해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켜야만 미술 안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또한 사진이나 영상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제 사진이나 비디오와 같은 기록 중심 매체뿐 만아니라 회화설치사운드아트 등의 미술 영역으로 들어가서도 자연의 생명력과 관계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야한다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자연과 미술의 경계 지점에서 미적 교감을 실현했던 야투의 초탈한 태도가 또 다른 형식의 미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순수 자연과의 접촉면을 풍부하게 넓혀온 작가라면 삶의 다양한 생태적 양상 속에 담겨있는 미생의 미적요소들을 확장된 미술 개념 안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19 전원길 Jeon Wonil, 夢遊똥桃源圖, 2018.jpg 20 김순임 Kim Soonim, 노자와 차를 Tea with Lao-tzu 2012.jpg 21 전원길Jeon Wongil, 백초를 기다리다 Waiting for 100 Plants, 2015.JPG 

전원길  Jeon Wonil, 夢遊똥源圖, 2018                                   김순임  Kim Soonim, 노자와 차를, 2012                   전원길  Jeon Wongil, 백초를 기다리다, 2015


IV 


지금까지 자연미술이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탈개성화와 유형화에 따른 작가부재상태의 문제를 지적하고 어떻게 새로운 확산과 순환의 길로 나아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이 시대의 자연미술작가들은 어쩌면 동시에 잡을 수 없는 나의 독자적 예술세계와 보편적 자연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해야하는 딜렘마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자연미술이 그 자체로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라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기초월의지와 자기를 실현하려는 또 다른 본성적 의지가 동시에 작동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자연과 미술이 함께 존재하는 그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 더 깊이 자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더 넓게 인간의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자연미술이 반드시 사진영상회화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 동시대 미술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누군가 아마도 그랬듯이 아무도 보지 않는 숲속에서 홀로 작업하고 그 흔적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 작가의 작업 또한 존재하길 바란다.


대안미술공간소나무 기획 -2018 프로젝트 그린- 카탈로그 수록 특강원고/원고수정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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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을 위하여
전원길
76 2019-02-09
「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을 위하여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I 1980년대 초반 한국 야투그룹의 젊은 작가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미술을 시작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연과 미술이 함께 존재하면서 서로 그 경계를 만들지 않는 예술을 실험했다. 자연미술이 발생하게 배경에는 1960-70년대 서구로부터 한국에 유입된 개념미술이나 대지미술 등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야투는 단지 서구 현대미술의 이론을 따르지 않고 자연과의 단도직입적인 만남을 시도함으로서 야투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당시 야투작가들은 자연 속에 자신의 생각을 밀어 넣기 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풀을 뽑아 나무에 올려놓고, 마른나무가지에 손가락을 대어보기도 학고, 때로는 잔잔한 물에 돌을 던져 파문 속에 흩어지는 자신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자연과 교감하였다. 자연미술현장에서 작가들은 최소한의 행위로 자연과 만났으며 자신의 표현의지가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미술상태를 보고자 하였다. 전원길 Jeon Wongil, Untitled, 1986 강희준 Kang Heejoon, 풀 Grass, 1985 1986 신남철 Shin Namchul, 1982 이 글을 통해 나는 새로운 미술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하게되는 유형화와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특성에 기인하는 탈개성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자연미술이 사진과 영상매체를 통해 기록되면서 다시금 인간의 미술 안으로 확산하게 되는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한다. 자연미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자연미술이 나가야할 방향을 탐지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II 자연미술의 위치 1980년대 초반 야투는 자연과의 맞대면 하는 것으로 부터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는 미리 준비한 아이디어나 재료들이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의 예술적 경험이나 미적 신념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서 자연 자체가 가진 생명력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자연과 하나되길 원하는 인간의 본성적 의지의 발현으로서 '인간의 미술'에서 '자연의 미술'로 그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1. 유형화 야투가 40여 년간 자연이라는 무한생성공간에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지만 발표된 작업 모두가 자연과의 생생한 만남을 반영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이라는 절대가치를 내세우는 것 만으로 자연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움직임과 작가의 표현의지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자연미술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창의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지점을 잡아내야만 가능한 것이다. 자연미술의 방법론이 정착된 1980년대 이후 기존 야투 작업을 훌쩍 뛰어넘는 작업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은 새로운 미술을 탐색하던 시기에 보여주었던 참신한 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과의 만남 자체가 의례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시대에 새롭게 추구되었던 미술운동이 일정기간이 흐르면 유형화의 단계로 들어가게된다. 그동안 많은 현대 미술사조들은 자기비판과 시대 상황에 부응하는 형식 실험을 통해 창의적 역동성을 회복해왔다. 인간의 원초적 표현의지를 반영하는 자연미술은 과연 어떤 진화를 통해 그 참신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2. 몰개성화 자연미술현장에서는 간혹 비슷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더라도 이를 심각하게 문제삼지않았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준 영감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다른 작가들과 유사한 감흥을 공유할 수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내려놓고 자연을 따른다는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전략은 무한한 자연의 생명작용에 나를 맡기고 나아가는 것이다. 몰개성화는 자연미술의 전제적 태도이면서 결과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연미술가들의 수행적 태도가 가져오는 탈개성화 현상은 자기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자기부재 상황을 맞이하게 한다. 이는 자연미술이 여전히 미술로서 존재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속성이다. 나는 이러한 반동적 현상 즉 나를 내려놓는다는 초탈한 심정 이후에 찾아오는 자기 실현 욕구를 창의적으로 발산하기위한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다. III 자연미술의 확산과 순환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와 그 안에 내재된 생명과 힘의 작용을 그대로 받아내야만 성립하는 자연미술은 작가의 개성이나 의도를 조금이라도 더 강조하면 자연전체로 연결된 열린미술에서 자연과 유리된 일반적인 '미술'로 전이하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행한 작업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기록하는 순간 그 작업은 인간의 미술로 곧 바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곧바로 작가만의 고유한 세계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피하는 방법은 사진이나 영상 등의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음으로서 기존의 미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창의적으로 찾아나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연미술과 인간의 미술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한다. 순수 자연과 만나는 자연미술을 통해 나를 무화시키는 한편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미술작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자연으로 나아가는 창의적 순환의 흐름을 만들어야한다. 상호 작용하는 자연계와 인간계 이 두 세계를 관통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넓혀 나가야한다. 1. 몰입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확산을 위한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 속으로 더욱 깊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동안 아무리 많은 자연 속에서의 자연미술 작업이 있었더라도 자연은 날마다 새롭고, 사회 환경 역시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역시 성장, 경험, 학습 등을 통해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울 수 있다. 2012 임승균 Lim Seungkyun, 2017 전원길 Jeon Wongil, Marking with Saliva, 2014 김순임 Kim Soonim, 내가 무엇인가 해보려는 의지가 최소화되는 순간 창작 열망이 반작용을 일으킨다. 나의 생각을 비워냄으로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것들을 보게 된다. 자연을 경제적 이용 가치로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연예찬 시각으로만 자연을 바라보는 것 역시 피상적 접근에 그치게 할 수 있다. 자연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자신의 몸과 의식이 어떻게 남다른 반응을 하는지 느껴야만 나의 고유한 존재성 또한 자연과 더불어 드러낼 수 있다. 2. 동시대미술로의 역확산 1980년대 초반 야투현장에서는 한 대의 카메라로 모든 작품을 촬영하였다. 작가들이 흩어져 작업을 하다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카메라를 가진 작가를 소리쳐 부르거나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미처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고 지나간 작품도 있었다. 사진기록보다는 작업행위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시기였다. 당시 사진 기록이 자료집을 위한 부수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대부분의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컴퓨터상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보정하고 트리밍, 콜라주등의 사진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미술이 사진적인 측면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권오열 Kwon Oyeol, 차이와 반복 1735, 2017 전원길 Jeon Wongil, palm leaves, 2014 Marty Miller, 2017 자연미술은 카메라로 기록되는 순간 자연의 생생한 작용이 사라지고 하나의 이미지로서 감상의 대상이 된다. 기록된 이미지도 일정 부분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히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 상태라고는 할 수는 없다. 사진은 작가의 미적 판단의 결과로서 존재한다. 사진을 통해 기존의 미술로 귀환한 자연미술은 자연이 지녔던 생동감을 시각 언어를 통해 되찾아야하며 참신한 개념을 통해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켜야만 미술 안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또한 사진이나 영상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제 사진이나 비디오와 같은 기록 중심 매체뿐 만아니라 회화, 설치, 사운드아트 등의 미술 영역으로 들어가서도 자연의 생명력과 관계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야한다.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자연과 미술의 경계 지점에서 미적 교감을 실현했던 야투의 초탈한 태도가 또 다른 형식의 미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순수 자연과의 접촉면을 풍부하게 넓혀온 작가라면 삶의 다양한 생태적 양상 속에 담겨있는 미생의 미적요소들을 확장된 미술 개념 안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원길 Jeon Wonil, 夢遊똥源圖, 2018 김순임 Kim Soonim, 노자와 차를, 2012 전원길 Jeon Wongil, 백초를 기다리다, 2015 IV 지금까지 자연미술이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탈개성화와 유형화에 따른 작가부재상태의 문제를 지적하고 어떻게 새로운 확산과 순환의 길로 나아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 시대의 자연미술작가들은 어쩌면 동시에 잡을 수 없는 나의 독자적 예술세계와 보편적 자연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해야하는 딜렘마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자연미술이 그 자체로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라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기초월의지와 자기를 실현하려는 또 다른 본성적 의지가 동시에 작동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자연과 미술이 함께 존재하는 그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 더 깊이 자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더 넓게 인간의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자연미술이 반드시 사진, 영상, 회화,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 동시대 미술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아마도 그랬듯이 아무도 보지 않는 숲속에서 홀로 작업하고 그 흔적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 작가의 작업 또한 존재하길 바란다. 대안미술공간소나무 기획 -2018 프로젝트 그린- 카탈로그 수록 특강원고/원고수정중_
104 권오열 개인전 –막 Membrane- 파일
소나무
594 2018-09-16
권오열 개인전 –막 Membrane-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 「자연으로 말 걸다」 릴레이 개인전 2018-5 2018. 9.15-10.29 (예약관람: 일요일, 공휴일, 월요일 휴관) 막 Membrane -“세계는 기호와 텍스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책이다. 우리는 세계와 직접 만날 수 없으며 의미화 과정을 통해서만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때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발전, 축적되어온 지식, 이성, 감각의 틀이 오히려 어떤 막이 되어 세계를 이해하려는 나의 눈을 흐리게 한다.- 권오열 카메라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리적으로 管見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찍혀진 이미지가 이 세계와 삶의 어떠함을 전달한다면 그 사진은 삶 전체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지점으로 보는 사람을 안내한다. 권오열의 작업을 처음 만나 건 나뭇잎이나 풀잎의 군집 상태를 일체의 시각적 강조점이 없이 공간의 깊이가 압축된 균일한 상태로 제시함으로서 시각적 ‘쾌’ 보다는 자연의 거기 ‘있음’을 먼저 보게 한 ‘낯선 숲’ 작업 시리이즈를 통해서 이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서 인간 세상의 생태구조와 질서를 이야기하였다. 이번에 대안미술공간소나무에서 전시하는 권오열의 신작 시리이즈 ‘막’은 남해 어느 바닷가 얕은 물속 돌들을 포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물의 일렁임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돌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막을 깨달았다고 한다. 권오열은 물의 와류가 만들어내는 왜곡의 상像 뿐만 아니라 빌딩의 외장 반사체가 만들어내는 이지러진 건물의 모습이나 표면처리가 완벽하지 않은 유리를 통해 건너다보이는 뭉겨진 산의 형체도 그의 카메라에 담았다. 인간의 눈과 달리 초점을 맞춘 지점만을 또렷하게 볼 수 카메라의 한계 기능을 통해 권오열의 ‘막’시리이즈는 탄생한다. 동시 초점기능으로 무장한 우리의 눈도 인식하지 못한 이 세계의 실상을 그의 사진 작업은 드러낸다. 그는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안의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막을 돌아보게 한다. 세상을 어떻게 살든 간에 사람들은 일정한 자기 판단 기준(막)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이 막들의 치열한 자리다툼의 과정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통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는 더욱 두꺼운 막이 쳐진다. 어떤 신념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단단한 신념으로 무장한다. 우리는 결코 이 막을 거부할 수도 걷어 낼 수도 없다. 처음 먹어보는 이상한 음식처럼 내게 다가왔던 권오열의 ‘막’ 시리즈는 언제나 거기 있었으나 알 수 없었던 실체이다. 그의‘막’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되비쳐 또 다른 막을 만들면서 막의 경계를 확장한다. 작업을 해야 되는 이유를 지독하게 따지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탄생하는 그의 작업은 작가 자신과 자연의 절묘한 만남의 결과이다. 그의 작업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답답한 막을 걷어내고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더 넓게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길 기대한다.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전시감독
103 최예문 개인전 –波 Wave- 파일
소나무
713 2018-08-29
최예문 개인전 –波 Wave-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 「자연으로 말 걸다」 릴레이 개인전 2018-4 2018. 8.25-9.6 (예약관람: 일요일, 공휴일, 월요일 휴관) 흔들리는 것은 마음 뿐 전시공간에 무엇인가 걸리거나 놓여야 전시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번 최예문의 작업은 비워진 공간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동그랗게 뚫린 구멍으로 전시장을 들여다보면 단지 사방이 하얀 벽면뿐이다. 가려진 가벽 뒤로 들어오는 빛도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관람자의 시선에 딱히 잡히는 것이 없다. 칠하고, 가리고, 씌우는 일로 마무리된 공간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는 그 차이를 알 수 없는 크기, 간격, 높낮이 등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보이지 않는 곳도 확실하게 마감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인 최예문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강박적 심리에 주목한다. 전시를 위한 전시장 정비 욕구 즉 쓸고 닦고 칠하고 거리와 높이를 맞추는 일에 자신의 심리적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있음을 스스로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최예문의 작업을 통해서 나는 과정을 목적으로 하는 즉 몰두 자체를 전략화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허공虛空이라는 오브제를 보았다. 이 공허의 공간은 비워냄으로 채워진 오브제이다. 작가는 벽, 바닥, 천장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재료와 물건들이 모두 하얀색으로 바뀐 곳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거기 있으되 보이지 않던 공간과 물체의 있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반응하는 마음의 흔들림을 본다. 때로 완벽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방기된 어수선함과 평범함을 선호하는 최예문은 이번 전시에서 자기의 심리적 지향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지우고 덮어 가려진 깔끔한 벽과 바닥, 천장 사이에 실제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은 없다. 살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만 하던 그가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지 그 시작점을 찾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최예문의 비워진 공간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질문이 된다. “나는 무엇을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전 원 길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전시감독) Yemoon Choi Solo Exhibition ‘Wave’ -Conversation with Nature Solo-Relay exhibition 2018- 4 2018. 8.25-9.6 Planned by Art Space Sonahmoo Only the Mind is Moving An exhibition begins only when something is hung or placed in the exhibition space. However, the work of Choi Yemoon comes to us as an empty space. Looking into the exhibition hall through a circular hole, there are only white walls. The light coming in from the partition wall does go far. There is nothing that catches the eye of the visitor. What is the artist saying through this painted and covered up space? Choi Ye-moon, a perfectionist who is overly sensitive to size, gaps, and unevenness that are almost undistinguishable, and who must be sure to finish to the corners that are hardly visible, pays attention to her compulsive psychology. Preparing a new exhibition hall, she realizes her psychological identity is embedded in the very process of sweeping, cleaning, painting and matching the distances and heights to her content. She exposes herself by displaying the result of the process. Through the work of Choi Yemoon, I see the empty space as an object created in the process of strategizing the concentration process itself. This empty space is an object filled by emptying. The artist guides the visitor’s attention to where the walls, floor, ceiling, and the materials all turned white. Here we observe the presence of space and being of objects that were unnoticed, and the vibrations of the mind that reacts between them. When perfection is not achievable, Choi Yemoon prefers to leave certain areas in an abandoned mess, and she shows her side of this psychological reality in this exhibition. Between the cleaned and covered walls, floor and the ceiling, however, there has yet to be an artwork that the artist really wants to show. After trying to find what she wanted to do all her life, I wonder if she has found a starting point through this work. The empty space of Choi Yemoon is also a question for the viewers, "What and Where should I start?". Jeon Won-gil (Director of Art Space Sonahmoo)
102 야생 Wild 심포지엄 2018.7.13-7.30 에스토니아 -전원길 파일
소나무
587 2018-08-10
Wild Symposium 2018. 7.13-7.30 Mooste Estonia Planed by MoKS (John Grzinich & Evelyn) 에스토니아 타루트 Tarute 에서 차로 45분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무스테Mooste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는 과거 영주의 저택 Manor house 안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목스MoKS(Guests)가 있다. MoKS는 작가 존과 에블린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공간으로서 현대미술작가들이 머물며 작업한다. 부정기적으로 작가들을 초대하여 특별한 미술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한다. https://moks.ee/ 프로젝트스페이스 목스 전경 스튜디오 나는 야생(Wild)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와 심포지엄에 2주간 참가했다. 전시는 MoKS의 디렉터 부부인 존과 에블린이 거주하는 시골 농장 집 Piirimäe 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는 한국에서 참가한 전원길과 최예문 그리고 에스토니아, 핀란드, 라트비아 작가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방식의 작업들은 농장의 헛간과 정원 그리고 주변 들판에 설치되었다. https://moks.ee/projects/metsik-wild?locale=en 작품설치지도 전시 관람객 전시소개 전원길 Jeon Wongil 헛간 안에 풀을 옮겨 심어 앞문과 뒤문 그리고 밖으로 연결하고 전등을 설치함. 최예문 Choi Yemoon 목초지 남겨진 풀들 사이에 3D 펜으로 만든 붉은색 풀 잎들을 꽂음. Uku Sepsivart 자신의 얼굴을 캐스팅한 조각위에 꿀벌들로 하여금 집을 짖도록함. Marit Mihklepp 작가들의 입에서 체취한 박테리아가 만든 풍경 Marit Mihklepp 종이 깔때기를 움직이면서 소리를 듣고 구멍을 통하여 나무를 관찰함. Saara-Maria Kariranta 지프라기와 찱흙으로 만든 조형물에 새와 옷등의 형상등을 캐스팅하여 설치함. Hanna Kaisa Vainio 나무로 만든 전화안에서 소리가 들림. Māris Grosbahs & Ieva Bertašiūtė-Grosbaha 지역에서 나는 흙을 이용하여 그릇을 만들고 저녁 식탁을 차림 Silja Truus 나뭇가지를 이용한 설치조각 John Grzinich 프라스틱통을 통과하는 줄이 바람에 떨리면서 소리를 냄 Evelyn Grzinich 나뭇가지로 만든 물방울모양의 설치작업 Elo Liiv 그네를 중심으로 한편은 목초를 깍고 다른 한편은 목초를 그대로 남겨두어 그네가 양쪽을 왕복하게함 Edgars Ruvenis 자연의 소리와 전자음을 즉흥적으로 합성하는 사운드 퍼포먼스 전시 오픈 이후 진행된 와일드 심포지엄은 작가들 간에 심포지엄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를 먼저 진행함으로서 작가들이 부담 없이 주어진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심포지엄은 이탈리아 북부 한 마을의 쇠락과 재생의 과정을 담은 영화 감상 (감독 크리스토퍼 톰슨 Cristopher Thomson) 을 시작으로 내가 진행한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라는 강의와 *자연미술워크숍, 숲의 생태 관찰, 사운드 워크숍, 습지 탐방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매일 ‘Deep in the Forest’ 라는 제목의 책을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읽었는데 그것은 에스토니안 숲속에서 일어난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매일 아침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이 책을 읽음 와일드 심포지엄 주제토론 사운드 워크숍 자연미술워크숍(자료정리중) 지역 생태학자 습지탐방 오리엔테이션 발목까지 빠지는 늪지대 탐방, 늪에 빠질 것을 대비해 막대기 하나씩 지참함 이 심포지엄의 핵심주제인 야생에 관한 주제토의는 첫날 야생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날 마무리 분임 토의와 발제가 있었다. 야생 관련 토의내용과 향후 예상 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기획자인 존의 정리 글을 통해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건강상의 어려움과 동시진행 해야 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침착하고 진지하게 행사의 중심 흐름을 놓치지 않은 존과 에블린 그리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정을 건강하게 발전시켜나가는 참여 작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행사였다. 상호배려 속에 자연스럽게 협력하면서 모두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 이번 행사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野生에 대한 斷想 -전원길 야생-산 wild-mountain 나는 그동안 야생이라는 말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 자연이라는 말을 친근히 생각하고 사용해왔다. 산이 많은 곳에 사는 한국 사람은 산과 숲을 때로 혼용해서 사용한다. 산과 계곡에는 나무와 숲이 바위와 어우러져 있으며 계곡을 흐르는 물은 강물로 이어지는 환경 전체를 자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야생이라는 개념도 깊은 산속의 어떤 상황으로 인식된다. 야생-숲 wild-forest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중서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산보다는 숲을 중심으로 자연을 생각한다. 숲은 단조롭다. 하지만 바위가 많은 산보다는 토양층이 두터워서 부드러우며 비옥하다. 곧게 자란 나무가 많다. 경사가 많지 않으니 하천보다는 습지와 호수가 많다. 사방이 탁 트인 들이나 숲에서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보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우리네 땅과는 달리 중서유럽의 넓은 숲 속에서 나침판이나 지도 없이는 길을 찾기 어렵다. 야인(野人) wild person –사전적 해석 1. 교양이 없고 예절을 모르는 사람. 2. 아무 곳에도 소속하지 않은 채 지내는 사람. 3. 시골에 사는 사람. 야생경험 wild experience 나는 야생이라는 말을 자연환경에서 뿐만 아니라 결국 홀로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심포지엄의 하이라이트였던 습지 탐사도 경험이 많은 가이드가 동행했기 때문에 완전한 야생은 아니었다. 아니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길을 잃었을 때 그때 그곳은 잠깐 야생공간이었다. 야생지대 wild zone TV속 동물의 왕국과 같은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처해있는 상황일 때 진정한 야생이라 할 것이다. 문명화된 시스템 속에서 제도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혈혈단신의 무방비 상태에 있다면 그곳이 야생이다. 야생뇌 wild brain 전혀 사용해 보지 않은 뇌의 어떤 부분은 어떻게 작동될 수 있을 까? 우리가 야생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 모험(야생)을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내안의 미지의 감각 감성 인식 등을 일깨우고자하는 본성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야생노트 wild note – 오래된 빈집에서 발견한 읽을 수 없는 노트는 나에게 완벽한 야생의 신선한 공간이다. 야생계 wild world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은 사실 야생계이다. 문명의 보호막은 일정(공평)하지 않고 언제든 벗겨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야생계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명세상이라고 말한다.
101 no image 자연으로 말걸다 3 임승균 개인전 신호없음 –No Signal-
소나무
637 2018-07-07
임승균 개인전 신호없음 –No Signal- 임승균은 그동안 탐사와 계량을 동반한 실험을 통해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는 실증을 추구하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리서치 과정을 작업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삶의 언저리에 위치하는 무의미한 일이나 사건들을 미술이라는 형식 안으로 들여오기 위한 엉뚱한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No Signal 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LED라이트 박스와 사진을 이용한 작업과 수성 펜으로 쓴 텍스트에 얼룩을 만드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아울러 준비된 사진작업을 라이트박스에 붙인 다음 한 밤중에 숲속이나 한적한 길에 설치하고 촬영하는 작업을 병행하였다. 작업의 전개 방식 상 앞서 이야기한 유사리서치 형식은 아니지만 그의 관심은 여전히 의미 없는 공간 혹은 대상을 향한다. 그의 첫 번째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은 목초지에서 풀을 뽑아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 위에 올려놓은 장면을 찍은 것이다. 그는 투명시트에 출력한 이미지를 3개의 LED박스에 살짝 걸치거나 떨어진 장소에 설치하였다. 그 중에 한 패널은 타이머에 의해 깜박인다. 본래 이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된 밝은 라이트박스에서 비켜난 사진들은 마치 신호가 깨진 불통상태처럼 보인다. 한편 부여된 역할을 완전히 상실한 LED패널은 빛을 고르게 발산하는 본래 자기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두 번째 작업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의 온실공간에 설치되었다. 임승균은 전기줄, 나무토막, 부직포등 작업 과정에서 사용된 물건들을 레드 카펫위에 설치하고 그의 생각을 빼곡하게 적은 종이 한 장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천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종이를 적시고 얼룩지게 하여 자신의 노트가 의미전달불가 상태가 되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이 생산한 부조리한 생각을 의심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과정을 자연에 맡긴다. 그것은 아주 밀착된 상태로 자신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어 모든 것을 읽어내지만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자연,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처리해주는 자연을 믿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임승균은 라이트 박스를 가지고 낮선 밤 풍경을 연출했다. 라이트박스로부터 나오는 강한 빛은 원래 보여주려던 사진 이미지를 투과하여 암흑 같은 어두움으로 가려져 있던 주변의 나무와 풀들을 드러내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속 사각 빛은 숨겨진 풍경을 신비롭게 열어 보이며 작가를 그 안으로 초대한다. 작가는 그 밤의 풍경들을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없다. 공간을 초월해서 실시간 문자, 음성, 영상으로 서로가 연결된 현대사회에서 No Signal 상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력한 신호이다. 그것은 어쩌면 한 인격체의 실종상태이며 단절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시스템의 에러 상황이다. 교신은 상호 약속된 시스템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메일주소의 점하나라도 틀리면 메일이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시스템이 정한 약속의 한부분이라도 위반하면 신호는 작동하지 않는다. 임승균은 이렇듯 이미 보편화된 네트워크 사회에서 벗어나 소통이 불가한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대상으로 작업한다. 불통은 때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이 불안감을 잠재우기위해 우리는 추리와 상상으로 상대와의 단절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이 불통지대에서 발생하는 추리와 상상이 안내하는 이제 까지 본적인 없는 지대를 향한다. 임승균의 작업물은 보여지는 그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지시하는 곳을 주목 할 수 있도록 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 임승균의 이번 LED패널 작업과 드로잉 작업은 또한 새로운 것이 잉태되고 자라날 가능성의 땅 즉 신호부재의 무의미 공간을 가리키는 또 다른 시그널이다. 나는 아직까지 삶의 주요 지점에서 벗어난 부수적인 지점을 공략하는 그의 작업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승균의 ‘이상하게 신선한’ 감각이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란다.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100 마티 밀러 개인전 ‘화장실에 침투한 예술’ 파일
소나무
811 2018-06-13
마티 밀러 개인전 –화장실 예술-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 –자연으로 말걸다 릴레이 개인전 2018- 2018. 6.9-26 (예약관람: 일요일, 공휴일, 월요일 휴관) ‘화장실에 침투한 예술’ 전 원 길 마티 밀러의 이번 전시 ‘화장실 예술’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시각문화와 이와 관련한 심리적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 대형마트 사찰 그리고 그가 작업하고 있는 레지던시 건물의 화장실에 걸린 그림 액자위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덧붙였다. 이 행위는 마치 게릴라의 비밀스런 작전처럼 은밀하게 실행되었으며 건물관리자가 특별이 주목하여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전시될 것이다. 마티 밀러는 “왜 가장 사적인 장소에서 자연과 만나는 순간에 시각적으로 산만하게 하는 그림이 필요한가.”라고 관람객들에게 묻는다. 이는 배설이라는 생리적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강제적으로 그림을 눈앞에 두어서 소중한 자연(생리적 배설과정)과의 만남을 놓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화장실의 그림을 교체하기 전 미리 액자의 크기를 정확하게 잰 다음 화장실에 걸린 그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미지를 재구성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것은 때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한 표현이거나,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각적 행위를 반영한 개념적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전시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한국의 화장실 액자의 시각적 심리적 목적의 근저가 묻는다. 혹은 그것이 공공화장실을 쓰는 대중의 요구인지 아니면 화장실을 고급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건물주의 바람을 반영한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마티 밀러가 이번 소나무에서 시도한 전시 방식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 그의 이번 전시는 그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전시장소인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아닌 실재 그가 작품을 설치한 5개의 공공 화장실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소나무는 가짜 전시장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는 몇 점의 작은 사진 액자를 걸고 프로젝터로 화장실 전시장 장면을 비추이고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전시이다. 반면에 화장실에서는 그가 몰래 설치한 그림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감상(?)되고 있으며 그가 궁금해 하는 시각적 효과와 심리적 작용이 대중 속에서 24시간 생생하게 작동되고 있다. 마티 밀러는 공공장소에 침투하여 그곳을 미술현장으로 만들었다. 그 변화를 눈치 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청소를 담당하는 분들도 그림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할 것이며 혹은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바꾸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으나 그 장소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장식적인 목적으로 걸린 그림의 역할은 중지되고 작가의 의도가 작동하는 하나의 예술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마티 밀러가 미묘한 시각문화의 차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심리적 작용에 대한 관심과 이를 색다른 전시형태로 전환하는 시도에 주목하고 싶다. 이어질 이후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티 밀러는 전국에 산재한 다섯 곳의 화장실 전시장의 위치를 지도로 만들어 제시한다. 어느 날 우연히 그곳을 들린다면 그가 개최한 전시회의 유일한 감상자가 되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Marty Miller Solo Exhibition ‘Photos for Toilets’ -Conversation with Nature Solo-Relay exhibition 2018- 2018. 6.9-6.26 Planned by Art Space Sonahmoo Art Penetrated Public Toilets JEON Wongil(Director of Art Space Sonahmoo) Marty Miller 's exhibition, 'Art for Toilets', stems from his interest in certain unique representations of visual culture in Korea and the psychological phenomena related to it. He added his photographic works on a picture frame hanging over a toilet in a highway rest area, a shopping complex, a local Buddhist temple, and even a large office building near which he works. This act has been carried out secretly, like a guerrilla secret operation, and will be on display for a long time unless the building manager takes special notice and issues it. Marty Miller asks the audience, "Why do we need a visual distraction when we meet nature in the most private of places?" He acknowledges their design function may be to force our attention away from our body, away from an experience of a naturally occurring physiological excretion. However, he also questions why this is necessary, and what awareness is lost in the process. Before he changed the pictures in the toilets, he measured the size of the picture frame precisely and then redesigned new image from the toilet picture already installed, or created new images entirely. His images are sometimes associated with the psychological state of the person viewing the picture, or it may appear in a conceptual way which reflects the visualized behavior of the person viewing the image. This exhibition wonders as to the root of the visual and psychological purpose of toilet frames in Korea, images which have passed through our lives with unceasing regularity. These images may reflect the unconscious needs of public toilet patrons. Conversely, the need to install artwork in toilets may reflect the wishes of the owner who, upon wanting to keep the toilet tidy, installs images on his or her walls to urge respect for this space. But I want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way that Marty Miller represented this in Art Space Sonahmoo.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is exhibition does not reside within the walls of Art Space Sonahmoo itself, which is the official exhibition space for his project. In fact, his work can still be viewed within the 5 toilets where his works are still installed. Therefore, Art Space Sonahmoo is instead a faux exhibition space. He decorated the gallery walls with a few scattered photo frames and instead illuminated the toilet gallery with a projector. Therefore, the exhibition would not seem as unique and well prepared if the artists intention were not clear. On the other hand, in the toilet galleries, the pictures he has secretly installed are appreciated by many people, and his visual and psychological activities are vividly working 24 hours a day in these public arenas. Marty Miller penetrated the public space and made it into an art space. Not many people will notice the changes he provided. Those who are responsible for cleaning the toilets will not know that the pictures have changed. Even if discovered, albeit unlikely, they would likely think that the people who manage the painting have changed such images. There is no significant visual change in the restroom’s appearance, but the place has undergone fundamental changes if one is aware of Marty Miller’s clear artistic intention. In other words, the role of painting hung for decorative purposes has been interrupted and an subtly dynamic situation in which the artist 's intent has arisen. I would like to pay continuous attention to Marty Miller's interest in the psychological effects that are found in the subtle differences in visual culture and his attempts to convert them into different forms of display. I am very eager to see how his methods of inquiry can be applied to his future projects. Marty Miller has also mapped and presented the locations of his five altered toilets that are scattered throughout the country. If you happen to visit it by chance one day, I would encourage you to be the only appreciator of this profound exhibition.
99 no image 마트에서 만난 생명 이야기 김순임 개인전 –홈플러스 농장-
소나무
966 2018-04-24
대안미술공간소나무 기획 ‘자연으로 말걸다’ 전시 릴레이 2018-1 김순임 개인전 –홈플러스 농장- 마트에서 만난 생명 이야기 김순임의 작업 ‘홈플러스 농장’은 대형마트에서 상품으로 팔리는 먹거리를 통해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김순임은 마트에서 구입하지 않은 계란 먹기를 주저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대형마트에 들어선 작가는 정해진 등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 마트의 상품들과 만난다. 마트의 매대에서 선택된 상품들이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은 온실이다. 마트의 각종 채소와 과일들은 작가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다시 싹을 틔워 생명의 ‘있음’을 보여준다. 김순임은 먹을거리였던 양파, 당근, 고추, 콩 등이 다시 자라나는 생김새, 벌레, 곤충과 새의 먹이사슬, 종류에 따라 다른 발아 시기 등을 일 년간 기록하였다. 현대사회의 유통 시스템에 엉뚱한 개입을 시도한 작가는 미술현장으로 마트의 채소와 곡물들을 초대하였다. 그는 마트의 상호를 이용한 로고 이미지와 상품라벨을 연상시키는 표식 그리고 제작과 자라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사진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관객들은 싹을 틔워 자라고 꽃을 피워 결실하는 생명체들을 본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위해 다른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일방적인 시각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작가를 만난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어떤 생명은 먹히는 행위로 내 몸의 일부가 되고, 동력이 되고, '나'를 유지시킨다. '나'라는 생명도 이 생명들로 구성된 생명이다.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생명으로 변환될 생명. 온실 속의 실험으로 보여진 생태계는 우리가 믿는 '먹을 것' 속에 숨은 수많은 생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먹을 것'의 고정된 이미지에 질문한다.“ 김순임 작가노트 김순임의 전시는 대형마트 중심으로 생산, 유통, 소비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새삼 새로웠던 일 년간의 프로젝트였다. 김순임은 어디서고 자연과 인간사이의 경계를 넘어 주저함 없이 자연과의 작업에 몰입한다. ‘겉보임’ 보다는 대상과 교감하는 과정에 더욱 마음을 쓰는 작가이다. 나는 마트라는 유통공간에서 무심하게 소비되는 생명을 그의 작업을 통해 볼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자연의 생명을 마음으로 담아낸 김순임 작가의 이번 작업이 사람들 속에 오랫동안 살아있기를 바란다.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98 no image '몽상예찬'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 7.25
소나무
1749 2017-10-07
몽상예찬 ‘몽상’의 사전적 의미는 ‘꿈속의 생각 혹은 실현성 없는 헛된 생각’이다. 흔히 사람들이 ‘딴 생각’ 혹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딴 생각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저절로 빠지게 되는 이 딴 생각 왜 하지 말라는 것인가? 몽상은 두서없이 일하는 뇌의 움직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며 전혀 상관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이 만나서 엉뚱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몽상이다. 몽상가는 시험 잘 보는 사람들에게만 호의적인 이 세상과 친하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학벌, 돈, 명예 등을 쫒기 보다는 자기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사방팔방으로 생각이 열린 몽상가들은 남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느끼고 미세한 움직임에도 반응한다. 나무에 말을 걸고 작은 풀벌레의 울음소리에도 대답하며 주변의 사물들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은 자신만의 별세계에 주소를 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몽상가는 입을 열지 않고 눈빛으로 상대와 통하는 사람이다. 어느 자리에 서든 신선한 기운으로 사람들을 잡아끄는 그의 눈빛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온 몸의 감각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다시 보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든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면서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보면 목적한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려 하지 말지니 몽상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한다. 인간은 본시 몽상가로 태어난다. 몽상에는 기초 학습도 단계별 학습도 필요 없다.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시작하고 언제든지 끝낼 수 있다. 몽상의 질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도 실적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몽상을 시작하자. 움직이는 생각을 그냥 내버려두자. 몽상 없는 삶은 반쪽짜리 시시한 인생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문명은 몽상이 현실화 된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달과 화성을 탐사하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스마트 폰으로 대화하는 일은 딴생각을 일삼는 몽상가로부터 시작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도 그것을 만든 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 몽상계에서 얻어낸 것들이다. 이 시대는 몽상을 장려하지 않는다. 서열화 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의 몽상 본능은 도태된다. 열심히 일하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 같은 인간이 되기 쉽다. 몽상은 오늘날 우리가 잊고 지내는 세상이다.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곳이며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살아도 비좁지 않은 곳이다. 여기 사는 이들의 생각은 높디높은 벽을 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좁은 틈을 찾아 빠져나가 신천지로 향한다. 이들을 가두어 둘 수 있는 곳은 없다. 몽상하라! 몽상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 땅에서는 누구나 시인의 언어로 존재하는 것들을 빛나게 할 것이며 충만한 상상력으로 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이름을 부여할 것이다.
97 no image '녹색 게릴라'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 6.15
소나무
1887 2017-07-05
녹색 게릴라 오늘날 지구촌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위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서는 그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긴장 관계를 미술로 풀어내는 2017미술농장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역예술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연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작업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제는 ‘녹색 게릴라’다. 자연계를 상징하는 ‘녹색’과 현대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상징하는 ‘게릴라’의 합성어이다.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적진 속 게릴라의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깨끗하게 다듬어진 과일과 채소의 씨를 받아 싹을 틔웠다. 작가는 상품화된 생명들을 ‘자라나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원길은 새로 개설된 콘크리트 도로를 축소하여 온실 안에 모형으로 설치하였다. 콘크리트 도로가 주변의 자연을 더욱 쾌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온실에 전시된 두 사람의 작품은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매일 새로워진다. 마틴 밀러(Martin Miller)는 닭이 선택한 단어를 조합하여 예언적 텍스트를 만들었다. 닭이 인간의 행운을 결정해 주는 존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 작업이다. 임승균은 안성천에 임신 테스터기를 담그는 엉뚱한 실험을 하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감시,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텍스트와 행위를 작업의 중요한 전달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작업은 예술적 상상력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 할 수 있음을 보게 한다. 권오열과 최예문은 잠깐 스치는 일상의 장면과 삶의 한 부분을 예술적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 권오열은 너른 목초 밭에 쌓아 올린 행사용 의자와 무자비하게 가지가 잘려나간 가로수를 찍은 사진작업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예문은 투명 용기에 잡초를 담아 높이 쌓아올렸다. 잡초 뽑기라는 무심한 행위가 풀들을 위한 기념비로 되살아났다. 자연과 일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녹색게릴라들은 살아있는 자연 안으로 그들의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몸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비밀스런 감각을 꺼내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지구는 다시 그 왕성한 생명력을 회복 할 것이다. ‘녹색 게릴라’들의 은밀하면서도 당돌한 움직임이 현대미술의 층위를 보다 두껍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상생의 미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96 no image '자연의 미술-야투野投'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5.3
소나무
1593 2017-07-05
자연의 미술-야투野投 1982년 여름 나는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 만났다. 지난 36년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국내외 자연미술운동을 이끌고 있는 야투 그룹의 멤버들이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을 실험해왔다. 자연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위한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인격적인 소통은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는 유일한 존재이고 자연은 때로 아무런 이해관계나 선악의 판단 없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과의 교감을 이야기 하지만 존재의 성격이 다른 두 세계가 소통한다는 것은 다분히 관념적 발상이다. 자연으로부터 예술 작업의 모티브를 얻거나 표현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인간중심의 접근방식이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접선 가능한 지점을 만들어나감으로서 미술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이러한 접점의 발생은 자연의 생명력이 작업의 중심이 되는 자연의 미술일 때 가능하다. 나는 자연 속에서 나의 생각을 실현하기 보다는 자연의 다양한 양상에 반응하는 작업을 선호한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불확실한 지식과 욕망을 내려놓고 원초적 몸 감각이 작동하여 자연과 조응해야만 자연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다가가서 만지고 연결하고 붙이는 등의 최소 행위로 이루어지는 야투는 자연을 재료 혹은 작품 설치 장소로 사용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살아서 작용하는 자연을 드러낸다. 야투작업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을 즐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세계 구축에 매진한다면 야투작가들은 자기를 비워내는 수행적 태도를 취함으로서 미술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 되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야투작가들의 행위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됨으로서 기존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미술가들은 왜 자연과의 만남을 시도하는가? 이는 자연으로 부터 독립되어있으나 자연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 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야투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이 자연과 만나기 위해 찾아낸 ‘소통코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야투가 현실 도피적 자연탐닉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자연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인식하면서 자기 숨결이 살아있는 작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항시 존재 하던 교감의 방식에 붙여진 이름이며, 기존 미술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자연과 대화하는 독특한 체험이다. 비록 나와 자연 사이에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지만 자연의 미술-야투는 마음속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나는 야투가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켜 창의적 상상력을 자극하길 바라며,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미술이 되기 바란다. 경기일보 문화카페 2017.5.3
95 no image '벽'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3.22
전원길
1491 2017-04-05
벽 대학시절 이야기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근사한 세상이 있을 것 같아 누군가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하면 귀가 솔깃하던 때였다. 동기생 하나가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그것은 ‘벽’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친구의 말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바로 그 미술 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대학에 출강하였다. 어느 날 저녁 그분과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술이 좀 오를 무렵 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벽’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대답 대신 나를 때리려 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말렸다. 얼마 전 나는 그 ‘벽’이란 말을 다시 떠올렸다. ‘마음의 벽’ ‘현실의 벽’ ‘마의 벽’처럼 벽이라는 글자 앞에 무슨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양해지지만 주로 단절과 한계 상황을 표현한다. 요즈음 내가 생각하는 ‘벽’은 예술가의 딜레마에 관한 것이다. 진지한 예술가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견고한 벽을 느끼고 그 벽 너머 새로운 세계를 보고자 한다. 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지 보면서 마침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리 가도 앞서는 이가 있고 저리 가도 결국 남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 그것이 바로 ‘벽’이다. 어쩌면 작가로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그 벽을 느꼈다면 이는 축하받을 일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라면 그것은 절망이다. 이 문제의 벽은 사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벽에 부딪치다’라는 표현은 벽 너머 세계를 감지한 자만의 한계인식이다. 예술가들의 딜레마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가 문 안에 있다는 데 있다. 벽 너머 새로운 세계를 직접 경험해야만 취할 수 있는 이 열쇠는 논리적으로는 획득 불가이다. 이 모순 상황의 극복은 외부로부터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우리는 ‘영감’이라 부른다. 영감의 빛을 따라 골몰하던 모든 고민의 벽을 무화 시킨 천재들의 이야기는 때로 통쾌하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경계 이탈은 묘수이자 악수이다. 생존영역을 벗어나는 수 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영감으로 충만한 시인들을 위험한 광인으로 여겨 도시에서 추방하려고 했다지 않은가? 하지만 예술가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작용하는 영감을 따라 이상한 세계로 뛰어든다. 최초의 영감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자라고 정직한 반응을 통해 힘을 얻는다. 난공불락의 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전위에 선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더욱 살아 움직일 것이며 어느 순간 그들은 영감의 빛을 맞이할 것이다. 반면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쯤에서 장마당을 펼치자’라는 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벽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작품이 제대로 된 예술인지 아니면 허세로운 예술 놀음에 불과한지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갈 곳 없는 한계의 벽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의 행동거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들 중에 지금까지 전혀 작동하지 않던 감각을 깨워 우리 사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예술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를 항해 중인 우주인과 같다. 지구에 아무리 급한 이변이 발생해도 그들의 항로는 수정될 수 없다. 귀환 명령을 내리지 말지니 이들과 우리는 미래의 땅에서 만날 것이다. 그 땅은 넓어 끝을 볼 수 없을 것이며 사람들은 더 이상 옛 땅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벽’을 이야기했던 선생님이 최근에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투루 작품을 하지 않는 예술가였고 교육자로서 예술의 본질을 논했던 그분의 벽이 뭇 예술가들이 마주했던 절망의 벽이었는지 아니면 미술 실행의 장에 존재하는 현실의 벽이었는지, 혹은 또 다른 의미였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이 책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오래된 벽을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셨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B2%BD"></iframe>
94 no image ‘왜?’ 라는 질문으로 경기일보 문화카페기고문 2017.2.8
전원길
1755 2017-02-08
오래전 런던에 있는 어느 미술대학에서 ‘Don’t ask me why 왜 라고 묻지 마’라고 쓴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제발 따지지 좀 말라는 뜻이다. 교수들로부터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리 썼을까 싶었다. 나 또한 유학시절 ‘왜?’로 시작되는 많은 질문들을 통해 나의 작업 전반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영국 미술대학에서 지도교수와의 개별 면담 수업(Tutorial)은 자기 경험에 근거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작품 같은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그 작업을 왜 하는지, 다른 기성 작가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야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수업은 방법론적 진화를 거듭해 온 서구 현대미술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그들은 한 시대를 지배하던 견고한 스타일이 관점을 달리하는 한 작가에 의해 순식간에 옛것이 되는 것을 보았다. 동시대 미술을 넘어 또 다른 미술의 출현을 기대하는 이들은 익숙하고 세련된 많은 작품들보다는 보는 이의 몸을 돌려세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한 점의 작품을 보고자 한다. 요즈음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쉽게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과연 이 작품이 작가의 고유한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남의 것을 베끼지 않았더라도 잡지나 인터넷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작품의 분위기나 아이디어가 알게 모르게 작가의 손끝으로 스며들 수 있다. 노련한 스승은 제자들의 작업에 끼어든 타인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는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집터를 확인해 주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땅에 집을 지으면 헛수고가 되니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새로운 작품세계를 찾아 나선 예술가들에 의해 확장된다. 예술가가 기존의 유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탐험과 같다. 이 여정은 ‘왜?’라는 수없이 많은 자문自問에 대한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는 자답自答으로 채워진다. 끝없는 사색과 실험 없이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진지한 예술가는 자신의 존재 위치를 예민하게 파악하면서 자기가 본 세상의 어떠함을 자신의 작품 안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 낯선 예술적 코드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질문자들에게 되돌려져 해독(解讀)을 기다린다. 집단 정서가 지배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왜?’라고 묻고 ‘왜냐하면’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생뚱맞은 일이 되었다. 학연, 지연, 돈과 권력 그리고 심지어는 외모가 질문과 답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정직한 예술가도 감상자도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판단을 ‘묻지 마’ 정서에 저당 잡힌 무리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열어 실재를 향하게 한다. 흥미롭고 강렬한 교감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작품과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이 만남을 통해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닌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소통을 경험한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세상에서 유일한 ‘나’를 회복하고 유형화된 삶에서 벗어나야만 나의 언어로 너를 만나 새로움을 논할 수 있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의 대부분은 우문이 되기 십상이며 그 대답도 현답보다는 오답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문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태도는 ‘왜?’라는 질문으로 ‘너’와 ‘나’의 정신이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전원길 서양화가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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