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166
2018.06.13 (12: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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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밀러 개인전화장실 예술-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자연으로 말걸다 릴레이 개인전 2018-

2018. 6.9-26 (예약관람: 일요일, 공휴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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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침투한 예술

  전 원 길

 

마티 밀러의 이번 전시 화장실 예술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시각문화와 이와 관련한 심리적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 대형마트 사찰 그리고 그가 작업하고 있는 레지던시 건물의 화장실에 걸린 그림 액자위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덧붙였다. 이 행위는 마치 게릴라의 비밀스런 작전처럼 은밀하게 실행되었으며 건물관리자가 특별이 주목하여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전시될 것이다.

마티 밀러는 왜 가장 사적인 장소에서 자연과 만나는 순간에 시각적으로 산만하게 하는 그림이 필요한가.라고 관람객들에게 묻는다. 이는 배설이라는 생리적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강제적으로 그림을 눈앞에 두어서 소중한 자연(생리적 배설과정)과의 만남을 놓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화장실의 그림을 교체하기 전 미리 액자의 크기를 정확하게 잰 다음 화장실에 걸린 그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미지를 재구성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것은 때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한 표현이거나,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각적 행위를 반영한 개념적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전시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한국의 화장실 액자의 시각적 심리적 목적의 근저가 묻는다. 혹은 그것이 공공화장실을 쓰는 대중의 요구인지 아니면 화장실을 고급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건물주의 바람을 반영한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마티 밀러가 이번 소나무에서 시도한 전시 방식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 그의 이번 전시는 그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전시장소인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아닌 실재 그가 작품을 설치한 5개의 공공 화장실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소나무는 가짜 전시장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는 몇 점의 작은 사진 액자를 걸고 프로젝터로 화장실 전시장 장면을 비추이고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전시이다. 반면에 화장실에서는 그가 몰래 설치한 그림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감상(?)되고 있으며 그가 궁금해 하는 시각적 효과와 심리적 작용이 대중 속에서 24시간 생생하게 작동되고 있다.

 

마티 밀러는 공공장소에 침투하여 그곳을 미술현장으로 만들었다. 그 변화를 눈치 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청소를 담당하는 분들도 그림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할 것이며 혹은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바꾸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으나 그 장소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장식적인 목적으로 걸린 그림의 역할은 중지되고 작가의 의도가 작동하는 하나의 예술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마티 밀러가 미묘한 시각문화의 차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심리적 작용에 대한 관심과 이를 색다른 전시형태로 전환하는 시도에 주목하고 싶다. 이어질 이후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티 밀러는 전국에 산재한 다섯 곳의 화장실 전시장의 위치를 지도로 만들어 제시한다. 어느 날 우연히 그곳을 들린다면 그가 개최한 전시회의 유일한 감상자가 되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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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y Miller Solo Exhibition Photos for Toilets’

-Conversation with Nature Solo-Relay exhibition 2018-

2018. 6.9-6.26

Planned by Art Space Sonahmoo

 

 

Art Penetrated Public Toilets

JEON Wongil(Director of Art Space Sonahmoo)

 Marty Miller 's exhibition, 'Art for Toilets', stems from his interest in certain unique representations of visual culture in Korea and the psychological phenomena related to it. He added his photographic works on a picture frame hanging over a toilet in a highway rest area, a shopping complex, a local Buddhist temple, and even a large office building near which he works. This act has been carried out secretly, like a guerrilla secret operation, and will be on display for a long time unless the building manager takes special notice and issues it.

Marty Miller asks the audience, "Why do we need a visual distraction when we meet nature in the most private of places?" He acknowledges their design function may be to force our attention away from our body, away from an experience of a naturally occurring physiological excretion. However, he also questions why this is necessary, and what awareness is lost in the process.

 Before he changed the pictures in the toilets, he measured the size of the picture frame precisely and then redesigned new image from the toilet picture already installed, or created new images entirely. His images are sometimes associated with the psychological state of the person viewing the picture, or it may appear in a conceptual way which reflects the visualized behavior of the person viewing the image.

 This exhibition wonders as to the root of the visual and psychological purpose of toilet frames in Korea, images which have passed through our lives with unceasing regularity.  These images may reflect the unconscious needs of public toilet patrons. Conversely, the need to install artwork in toilets may reflect the wishes of the owner who, upon wanting to keep the toilet tidy, installs images on his or her walls to urge respect for this space.

But I want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way that Marty Miller represented this in Art Space Sonahmoo.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is exhibition does not reside within the walls of Art Space Sonahmoo itself, which is the official exhibition space for his project. In fact, his work can still be viewed within the 5 toilets where his works are still installed.  Therefore, Art Space Sonahmoo is instead a faux exhibition space.

He decorated the gallery walls with a few scattered photo frames and instead illuminated the toilet gallery with a projector. Therefore, the exhibition would not seem as unique and well prepared if the artists intention were not clear. On the other hand, in the toilet galleries, the pictures he has secretly installed are appreciated by many people, and his visual and psychological activities are vividly working 24 hours a day in these public arenas.

Marty Miller penetrated the public space and made it into an art space. Not many people will notice the changes he provided. Those who are responsible for cleaning the toilets will not know that the pictures have changed. Even if discovered, albeit unlikely, they would likely think that the people who manage the painting have changed such images. There is no significant visual change in the restroom’s appearance, but the place has undergone fundamental changes if one is aware of Marty Miller’s clear artistic intention. In other words, the role of painting hung for decorative purposes has been interrupted and an subtly dynamic situation in which the artist 's intent has arisen. 

I would like to pay continuous attention to Marty Miller's interest in the psychological effects that are found in the subtle differences in visual culture and his attempts to convert them into different forms of display. I am very eager to see how his methods of inquiry can be applied to his future projects.

Marty Miller has also mapped and presented the locations of his five altered toilets that are scattered throughout the country. If you happen to visit it by chance one day, I would encourage you to be the only appreciator of this profound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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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2 야생 Wild 심포지엄 2018.7.13-7.30 에스토니아 -전원길 첨부 파일
소나무
59 2018-08-10
Wild Symposium 2018. 7.13-7.30 Mooste Estonia Planed by MoKS (John Grzinich & Evelyn) 에스토니아 타루트 Tarute 에서 차로 45분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무스테Mooste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는 과거 영주의 저택 Manor house 안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목스MoKS(Guests)가 있다. MoKS는 작가 존과 에블린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공간으로서 현대미술작가들이 머물며 작업한다. 부정기적으로 작가들을 초대하여 특별한 미술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한다. https://moks.ee/ 프로젝트스페이스 목스 전경 스튜디오 나는 야생(Wild)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와 심포지엄에 2주간 참가했다. 전시는 MoKS의 디렉터 부부인 존과 에블린이 거주하는 시골 농장 집 Piirimäe 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는 한국에서 참가한 전원길과 최예문 그리고 에스토니아, 핀란드, 라트비아 작가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방식의 작업들은 농장의 헛간과 정원 그리고 주변 들판에 설치되었다. https://moks.ee/projects/metsik-wild?locale=en 작품설치지도 전시 관람객 전시소개 전원길 Jeon Wongil 헛간 안에 풀을 옮겨 심어 앞문과 뒤문 그리고 밖으로 연결하고 전등을 설치함. 최예문 Choi Yemoon 목초지 남겨진 풀들 사이에 3D 펜으로 만든 붉은색 풀 잎들을 꽂음. Uku Sepsivart 자신의 얼굴을 캐스팅한 조각위에 꿀벌들로 하여금 집을 짖도록함. Marit Mihklepp 작가들의 입에서 체취한 박테리아가 만든 풍경 Marit Mihklepp 종이 깔때기를 움직이면서 소리를 듣고 구멍을 통하여 나무를 관찰함. Saara-Maria Kariranta 지프라기와 찱흙으로 만든 조형물에 새와 옷등의 형상등을 캐스팅하여 설치함. Hanna Kaisa Vainio 나무로 만든 전화안에서 소리가 들림. Māris Grosbahs & Ieva Bertašiūtė-Grosbaha 지역에서 나는 흙을 이용하여 그릇을 만들고 저녁 식탁을 차림 Silja Truus 나뭇가지를 이용한 설치조각 John Grzinich 프라스틱통을 통과하는 줄이 바람에 떨리면서 소리를 냄 Evelyn Grzinich 나뭇가지로 만든 물방울모양의 설치작업 Elo Liiv 그네를 중심으로 한편은 목초를 깍고 다른 한편은 목초를 그대로 남겨두어 그네가 양쪽을 왕복하게함 Edgars Ruvenis 자연의 소리와 전자음을 즉흥적으로 합성하는 사운드 퍼포먼스 전시 오픈 이후 진행된 와일드 심포지엄은 작가들 간에 심포지엄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를 먼저 진행함으로서 작가들이 부담 없이 주어진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심포지엄은 이탈리아 북부 한 마을의 쇠락과 재생의 과정을 담은 영화 감상 (감독 크리스토퍼 톰슨 Cristopher Thomson) 을 시작으로 내가 진행한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라는 강의와 *자연미술워크숍, 숲의 생태 관찰, 사운드 워크숍, 습지 탐방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매일 ‘Deep in the Forest’ 라는 제목의 책을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읽었는데 그것은 에스토니안 숲속에서 일어난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매일 아침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이 책을 읽음 와일드 심포지엄 주제토론 사운드 워크숍 자연미술워크숍(자료정리중) 지역 생태학자 습지탐방 오리엔테이션 발목까지 빠지는 늪지대 탐방, 늪에 빠질 것을 대비해 막대기 하나씩 지참함 이 심포지엄의 핵심주제인 야생에 관한 주제토의는 첫날 야생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날 마무리 분임 토의와 발제가 있었다. 야생 관련 토의내용과 향후 예상 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기획자인 존의 정리 글을 통해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건강상의 어려움과 동시진행 해야 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침착하고 진지하게 행사의 중심 흐름을 놓치지 않은 존과 에블린 그리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정을 건강하게 발전시켜나가는 참여 작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행사였다. 상호배려 속에 자연스럽게 협력하면서 모두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 이번 행사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野生에 대한 斷想 -전원길 야생-산 wild-mountain 나는 그동안 야생이라는 말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 자연이라는 말을 친근히 생각하고 사용해왔다. 산이 많은 곳에 사는 한국 사람은 산과 숲을 때로 혼용해서 사용한다. 산과 계곡에는 나무와 숲이 바위와 어우러져 있으며 계곡을 흐르는 물은 강물로 이어지는 환경 전체를 자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야생이라는 개념도 깊은 산속의 어떤 상황으로 인식된다. 야생-숲 wild-forest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중서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산보다는 숲을 중심으로 자연을 생각한다. 숲은 단조롭다. 하지만 바위가 많은 산보다는 토양층이 두터워서 부드러우며 비옥하다. 곧게 자란 나무가 많다. 경사가 많지 않으니 하천보다는 습지와 호수가 많다. 사방이 탁 트인 들이나 숲에서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보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우리네 땅과는 달리 중서유럽의 넓은 숲 속에서 나침판이나 지도 없이는 길을 찾기 어렵다. 야인(野人) wild person –사전적 해석 1. 교양이 없고 예절을 모르는 사람. 2. 아무 곳에도 소속하지 않은 채 지내는 사람. 3. 시골에 사는 사람. 야생경험 wild experience 나는 야생이라는 말을 자연환경에서 뿐만 아니라 결국 홀로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심포지엄의 하이라이트였던 습지 탐사도 경험이 많은 가이드가 동행했기 때문에 완전한 야생은 아니었다. 아니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길을 잃었을 때 그때 그곳은 잠깐 야생공간이었다. 야생지대 wild zone TV속 동물의 왕국과 같은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처해있는 상황일 때 진정한 야생이라 할 것이다. 문명화된 시스템 속에서 제도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혈혈단신의 무방비 상태에 있다면 그곳이 야생이다. 야생뇌 wild brain 전혀 사용해 보지 않은 뇌의 어떤 부분은 어떻게 작동될 수 있을 까? 우리가 야생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 모험(야생)을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내안의 미지의 감각 감성 인식 등을 일깨우고자하는 본성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야생노트 wild note – 오래된 빈집에서 발견한 읽을 수 없는 노트는 나에게 완벽한 야생의 신선한 공간이다. 야생계 wild world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은 사실 야생계이다. 문명의 보호막은 일정(공평)하지 않고 언제든 벗겨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야생계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명세상이라고 말한다.
101 no image 자연으로 말걸다 3 임승균 개인전 신호없음 –No Signal-
소나무
124 2018-07-07
임승균 개인전 신호없음 –No Signal- 임승균은 그동안 탐사와 계량을 동반한 실험을 통해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는 실증을 추구하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리서치 과정을 작업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삶의 언저리에 위치하는 무의미한 일이나 사건들을 미술이라는 형식 안으로 들여오기 위한 엉뚱한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No Signal 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LED라이트 박스와 사진을 이용한 작업과 수성 펜으로 쓴 텍스트에 얼룩을 만드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아울러 준비된 사진작업을 라이트박스에 붙인 다음 한 밤중에 숲속이나 한적한 길에 설치하고 촬영하는 작업을 병행하였다. 작업의 전개 방식 상 앞서 이야기한 유사리서치 형식은 아니지만 그의 관심은 여전히 의미 없는 공간 혹은 대상을 향한다. 그의 첫 번째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은 목초지에서 풀을 뽑아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 위에 올려놓은 장면을 찍은 것이다. 그는 투명시트에 출력한 이미지를 3개의 LED박스에 살짝 걸치거나 떨어진 장소에 설치하였다. 그 중에 한 패널은 타이머에 의해 깜박인다. 본래 이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된 밝은 라이트박스에서 비켜난 사진들은 마치 신호가 깨진 불통상태처럼 보인다. 한편 부여된 역할을 완전히 상실한 LED패널은 빛을 고르게 발산하는 본래 자기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두 번째 작업은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의 온실공간에 설치되었다. 임승균은 전기줄, 나무토막, 부직포등 작업 과정에서 사용된 물건들을 레드 카펫위에 설치하고 그의 생각을 빼곡하게 적은 종이 한 장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천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종이를 적시고 얼룩지게 하여 자신의 노트가 의미전달불가 상태가 되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이 생산한 부조리한 생각을 의심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과정을 자연에 맡긴다. 그것은 아주 밀착된 상태로 자신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어 모든 것을 읽어내지만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자연,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처리해주는 자연을 믿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임승균은 라이트 박스를 가지고 낮선 밤 풍경을 연출했다. 라이트박스로부터 나오는 강한 빛은 원래 보여주려던 사진 이미지를 투과하여 암흑 같은 어두움으로 가려져 있던 주변의 나무와 풀들을 드러내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속 사각 빛은 숨겨진 풍경을 신비롭게 열어 보이며 작가를 그 안으로 초대한다. 작가는 그 밤의 풍경들을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없다. 공간을 초월해서 실시간 문자, 음성, 영상으로 서로가 연결된 현대사회에서 No Signal 상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력한 신호이다. 그것은 어쩌면 한 인격체의 실종상태이며 단절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시스템의 에러 상황이다. 교신은 상호 약속된 시스템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메일주소의 점하나라도 틀리면 메일이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시스템이 정한 약속의 한부분이라도 위반하면 신호는 작동하지 않는다. 임승균은 이렇듯 이미 보편화된 네트워크 사회에서 벗어나 소통이 불가한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대상으로 작업한다. 불통은 때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이 불안감을 잠재우기위해 우리는 추리와 상상으로 상대와의 단절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이 불통지대에서 발생하는 추리와 상상이 안내하는 이제 까지 본적인 없는 지대를 향한다. 임승균의 작업물은 보여지는 그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지시하는 곳을 주목 할 수 있도록 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 임승균의 이번 LED패널 작업과 드로잉 작업은 또한 새로운 것이 잉태되고 자라날 가능성의 땅 즉 신호부재의 무의미 공간을 가리키는 또 다른 시그널이다. 나는 아직까지 삶의 주요 지점에서 벗어난 부수적인 지점을 공략하는 그의 작업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승균의 ‘이상하게 신선한’ 감각이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란다.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Selected 마티 밀러 개인전 ‘화장실에 침투한 예술’ 첨부 파일
소나무
166 2018-06-13
마티 밀러 개인전 –화장실 예술-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 –자연으로 말걸다 릴레이 개인전 2018- 2018. 6.9-26 (예약관람: 일요일, 공휴일, 월요일 휴관) ‘화장실에 침투한 예술’ 전 원 길 마티 밀러의 이번 전시 ‘화장실 예술’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시각문화와 이와 관련한 심리적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 대형마트 사찰 그리고 그가 작업하고 있는 레지던시 건물의 화장실에 걸린 그림 액자위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덧붙였다. 이 행위는 마치 게릴라의 비밀스런 작전처럼 은밀하게 실행되었으며 건물관리자가 특별이 주목하여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전시될 것이다. 마티 밀러는 “왜 가장 사적인 장소에서 자연과 만나는 순간에 시각적으로 산만하게 하는 그림이 필요한가.”라고 관람객들에게 묻는다. 이는 배설이라는 생리적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강제적으로 그림을 눈앞에 두어서 소중한 자연(생리적 배설과정)과의 만남을 놓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화장실의 그림을 교체하기 전 미리 액자의 크기를 정확하게 잰 다음 화장실에 걸린 그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미지를 재구성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것은 때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한 표현이거나,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각적 행위를 반영한 개념적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전시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한국의 화장실 액자의 시각적 심리적 목적의 근저가 묻는다. 혹은 그것이 공공화장실을 쓰는 대중의 요구인지 아니면 화장실을 고급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건물주의 바람을 반영한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마티 밀러가 이번 소나무에서 시도한 전시 방식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 그의 이번 전시는 그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전시장소인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아닌 실재 그가 작품을 설치한 5개의 공공 화장실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소나무는 가짜 전시장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는 몇 점의 작은 사진 액자를 걸고 프로젝터로 화장실 전시장 장면을 비추이고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전시이다. 반면에 화장실에서는 그가 몰래 설치한 그림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감상(?)되고 있으며 그가 궁금해 하는 시각적 효과와 심리적 작용이 대중 속에서 24시간 생생하게 작동되고 있다. 마티 밀러는 공공장소에 침투하여 그곳을 미술현장으로 만들었다. 그 변화를 눈치 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청소를 담당하는 분들도 그림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할 것이며 혹은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바꾸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으나 그 장소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장식적인 목적으로 걸린 그림의 역할은 중지되고 작가의 의도가 작동하는 하나의 예술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마티 밀러가 미묘한 시각문화의 차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심리적 작용에 대한 관심과 이를 색다른 전시형태로 전환하는 시도에 주목하고 싶다. 이어질 이후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티 밀러는 전국에 산재한 다섯 곳의 화장실 전시장의 위치를 지도로 만들어 제시한다. 어느 날 우연히 그곳을 들린다면 그가 개최한 전시회의 유일한 감상자가 되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Marty Miller Solo Exhibition ‘Photos for Toilets’ -Conversation with Nature Solo-Relay exhibition 2018- 2018. 6.9-6.26 Planned by Art Space Sonahmoo Art Penetrated Public Toilets JEON Wongil(Director of Art Space Sonahmoo) Marty Miller 's exhibition, 'Art for Toilets', stems from his interest in certain unique representations of visual culture in Korea and the psychological phenomena related to it. He added his photographic works on a picture frame hanging over a toilet in a highway rest area, a shopping complex, a local Buddhist temple, and even a large office building near which he works. This act has been carried out secretly, like a guerrilla secret operation, and will be on display for a long time unless the building manager takes special notice and issues it. Marty Miller asks the audience, "Why do we need a visual distraction when we meet nature in the most private of places?" He acknowledges their design function may be to force our attention away from our body, away from an experience of a naturally occurring physiological excretion. However, he also questions why this is necessary, and what awareness is lost in the process. Before he changed the pictures in the toilets, he measured the size of the picture frame precisely and then redesigned new image from the toilet picture already installed, or created new images entirely. His images are sometimes associated with the psychological state of the person viewing the picture, or it may appear in a conceptual way which reflects the visualized behavior of the person viewing the image. This exhibition wonders as to the root of the visual and psychological purpose of toilet frames in Korea, images which have passed through our lives with unceasing regularity. These images may reflect the unconscious needs of public toilet patrons. Conversely, the need to install artwork in toilets may reflect the wishes of the owner who, upon wanting to keep the toilet tidy, installs images on his or her walls to urge respect for this space. But I want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way that Marty Miller represented this in Art Space Sonahmoo.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is exhibition does not reside within the walls of Art Space Sonahmoo itself, which is the official exhibition space for his project. In fact, his work can still be viewed within the 5 toilets where his works are still installed. Therefore, Art Space Sonahmoo is instead a faux exhibition space. He decorated the gallery walls with a few scattered photo frames and instead illuminated the toilet gallery with a projector. Therefore, the exhibition would not seem as unique and well prepared if the artists intention were not clear. On the other hand, in the toilet galleries, the pictures he has secretly installed are appreciated by many people, and his visual and psychological activities are vividly working 24 hours a day in these public arenas. Marty Miller penetrated the public space and made it into an art space. Not many people will notice the changes he provided. Those who are responsible for cleaning the toilets will not know that the pictures have changed. Even if discovered, albeit unlikely, they would likely think that the people who manage the painting have changed such images. There is no significant visual change in the restroom’s appearance, but the place has undergone fundamental changes if one is aware of Marty Miller’s clear artistic intention. In other words, the role of painting hung for decorative purposes has been interrupted and an subtly dynamic situation in which the artist 's intent has arisen. I would like to pay continuous attention to Marty Miller's interest in the psychological effects that are found in the subtle differences in visual culture and his attempts to convert them into different forms of display. I am very eager to see how his methods of inquiry can be applied to his future projects. Marty Miller has also mapped and presented the locations of his five altered toilets that are scattered throughout the country. If you happen to visit it by chance one day, I would encourage you to be the only appreciator of this profound exhibition.
99 no image 마트에서 만난 생명 이야기 김순임 개인전 –홈플러스 농장-
소나무
345 2018-04-24
대안미술공간소나무 기획 ‘자연으로 말걸다’ 전시 릴레이 2018-1 김순임 개인전 –홈플러스 농장- 마트에서 만난 생명 이야기 김순임의 작업 ‘홈플러스 농장’은 대형마트에서 상품으로 팔리는 먹거리를 통해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김순임은 마트에서 구입하지 않은 계란 먹기를 주저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대형마트에 들어선 작가는 정해진 등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 마트의 상품들과 만난다. 마트의 매대에서 선택된 상품들이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은 온실이다. 마트의 각종 채소와 과일들은 작가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다시 싹을 틔워 생명의 ‘있음’을 보여준다. 김순임은 먹을거리였던 양파, 당근, 고추, 콩 등이 다시 자라나는 생김새, 벌레, 곤충과 새의 먹이사슬, 종류에 따라 다른 발아 시기 등을 일 년간 기록하였다. 현대사회의 유통 시스템에 엉뚱한 개입을 시도한 작가는 미술현장으로 마트의 채소와 곡물들을 초대하였다. 그는 마트의 상호를 이용한 로고 이미지와 상품라벨을 연상시키는 표식 그리고 제작과 자라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사진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관객들은 싹을 틔워 자라고 꽃을 피워 결실하는 생명체들을 본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위해 다른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일방적인 시각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작가를 만난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어떤 생명은 먹히는 행위로 내 몸의 일부가 되고, 동력이 되고, '나'를 유지시킨다. '나'라는 생명도 이 생명들로 구성된 생명이다.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생명으로 변환될 생명. 온실 속의 실험으로 보여진 생태계는 우리가 믿는 '먹을 것' 속에 숨은 수많은 생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먹을 것'의 고정된 이미지에 질문한다.“ 김순임 작가노트 김순임의 전시는 대형마트 중심으로 생산, 유통, 소비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새삼 새로웠던 일 년간의 프로젝트였다. 김순임은 어디서고 자연과 인간사이의 경계를 넘어 주저함 없이 자연과의 작업에 몰입한다. ‘겉보임’ 보다는 대상과 교감하는 과정에 더욱 마음을 쓰는 작가이다. 나는 마트라는 유통공간에서 무심하게 소비되는 생명을 그의 작업을 통해 볼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자연의 생명을 마음으로 담아낸 김순임 작가의 이번 작업이 사람들 속에 오랫동안 살아있기를 바란다. 전원길 작가,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전시감독
98 no image '몽상예찬'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 7.25
소나무
982 2017-10-07
몽상예찬 ‘몽상’의 사전적 의미는 ‘꿈속의 생각 혹은 실현성 없는 헛된 생각’이다. 흔히 사람들이 ‘딴 생각’ 혹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딴 생각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저절로 빠지게 되는 이 딴 생각 왜 하지 말라는 것인가? 몽상은 두서없이 일하는 뇌의 움직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며 전혀 상관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이 만나서 엉뚱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몽상이다. 몽상가는 시험 잘 보는 사람들에게만 호의적인 이 세상과 친하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학벌, 돈, 명예 등을 쫒기 보다는 자기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사방팔방으로 생각이 열린 몽상가들은 남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느끼고 미세한 움직임에도 반응한다. 나무에 말을 걸고 작은 풀벌레의 울음소리에도 대답하며 주변의 사물들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은 자신만의 별세계에 주소를 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몽상가는 입을 열지 않고 눈빛으로 상대와 통하는 사람이다. 어느 자리에 서든 신선한 기운으로 사람들을 잡아끄는 그의 눈빛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온 몸의 감각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다시 보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든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면서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보면 목적한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려 하지 말지니 몽상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한다. 인간은 본시 몽상가로 태어난다. 몽상에는 기초 학습도 단계별 학습도 필요 없다.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시작하고 언제든지 끝낼 수 있다. 몽상의 질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도 실적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몽상을 시작하자. 움직이는 생각을 그냥 내버려두자. 몽상 없는 삶은 반쪽짜리 시시한 인생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문명은 몽상이 현실화 된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달과 화성을 탐사하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스마트 폰으로 대화하는 일은 딴생각을 일삼는 몽상가로부터 시작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도 그것을 만든 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 몽상계에서 얻어낸 것들이다. 이 시대는 몽상을 장려하지 않는다. 서열화 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의 몽상 본능은 도태된다. 열심히 일하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 같은 인간이 되기 쉽다. 몽상은 오늘날 우리가 잊고 지내는 세상이다.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곳이며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살아도 비좁지 않은 곳이다. 여기 사는 이들의 생각은 높디높은 벽을 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좁은 틈을 찾아 빠져나가 신천지로 향한다. 이들을 가두어 둘 수 있는 곳은 없다. 몽상하라! 몽상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 땅에서는 누구나 시인의 언어로 존재하는 것들을 빛나게 할 것이며 충만한 상상력으로 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이름을 부여할 것이다.
97 no image '녹색 게릴라'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 6.15
소나무
1041 2017-07-05
녹색 게릴라 오늘날 지구촌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위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서는 그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긴장 관계를 미술로 풀어내는 2017미술농장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역예술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연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작업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제는 ‘녹색 게릴라’다. 자연계를 상징하는 ‘녹색’과 현대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상징하는 ‘게릴라’의 합성어이다.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적진 속 게릴라의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깨끗하게 다듬어진 과일과 채소의 씨를 받아 싹을 틔웠다. 작가는 상품화된 생명들을 ‘자라나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원길은 새로 개설된 콘크리트 도로를 축소하여 온실 안에 모형으로 설치하였다. 콘크리트 도로가 주변의 자연을 더욱 쾌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온실에 전시된 두 사람의 작품은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매일 새로워진다. 마틴 밀러(Martin Miller)는 닭이 선택한 단어를 조합하여 예언적 텍스트를 만들었다. 닭이 인간의 행운을 결정해 주는 존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 작업이다. 임승균은 안성천에 임신 테스터기를 담그는 엉뚱한 실험을 하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감시,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텍스트와 행위를 작업의 중요한 전달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작업은 예술적 상상력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 할 수 있음을 보게 한다. 권오열과 최예문은 잠깐 스치는 일상의 장면과 삶의 한 부분을 예술적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 권오열은 너른 목초 밭에 쌓아 올린 행사용 의자와 무자비하게 가지가 잘려나간 가로수를 찍은 사진작업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예문은 투명 용기에 잡초를 담아 높이 쌓아올렸다. 잡초 뽑기라는 무심한 행위가 풀들을 위한 기념비로 되살아났다. 자연과 일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녹색게릴라들은 살아있는 자연 안으로 그들의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몸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비밀스런 감각을 꺼내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지구는 다시 그 왕성한 생명력을 회복 할 것이다. ‘녹색 게릴라’들의 은밀하면서도 당돌한 움직임이 현대미술의 층위를 보다 두껍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상생의 미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96 no image '자연의 미술-야투野投'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5.3
소나무
816 2017-07-05
자연의 미술-야투野投 1982년 여름 나는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 만났다. 지난 36년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국내외 자연미술운동을 이끌고 있는 야투 그룹의 멤버들이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을 실험해왔다. 자연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위한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인격적인 소통은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는 유일한 존재이고 자연은 때로 아무런 이해관계나 선악의 판단 없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과의 교감을 이야기 하지만 존재의 성격이 다른 두 세계가 소통한다는 것은 다분히 관념적 발상이다. 자연으로부터 예술 작업의 모티브를 얻거나 표현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인간중심의 접근방식이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접선 가능한 지점을 만들어나감으로서 미술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이러한 접점의 발생은 자연의 생명력이 작업의 중심이 되는 자연의 미술일 때 가능하다. 나는 자연 속에서 나의 생각을 실현하기 보다는 자연의 다양한 양상에 반응하는 작업을 선호한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불확실한 지식과 욕망을 내려놓고 원초적 몸 감각이 작동하여 자연과 조응해야만 자연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다가가서 만지고 연결하고 붙이는 등의 최소 행위로 이루어지는 야투는 자연을 재료 혹은 작품 설치 장소로 사용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살아서 작용하는 자연을 드러낸다. 야투작업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을 즐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세계 구축에 매진한다면 야투작가들은 자기를 비워내는 수행적 태도를 취함으로서 미술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 되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야투작가들의 행위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됨으로서 기존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미술가들은 왜 자연과의 만남을 시도하는가? 이는 자연으로 부터 독립되어있으나 자연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 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야투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이 자연과 만나기 위해 찾아낸 ‘소통코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야투가 현실 도피적 자연탐닉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자연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인식하면서 자기 숨결이 살아있는 작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항시 존재 하던 교감의 방식에 붙여진 이름이며, 기존 미술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자연과 대화하는 독특한 체험이다. 비록 나와 자연 사이에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지만 자연의 미술-야투는 마음속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나는 야투가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켜 창의적 상상력을 자극하길 바라며,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미술이 되기 바란다. 경기일보 문화카페 2017.5.3
95 no image '벽'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 2017.3.22
전원길
793 2017-04-05
벽 대학시절 이야기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근사한 세상이 있을 것 같아 누군가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하면 귀가 솔깃하던 때였다. 동기생 하나가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그것은 ‘벽’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친구의 말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바로 그 미술 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대학에 출강하였다. 어느 날 저녁 그분과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술이 좀 오를 무렵 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벽’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대답 대신 나를 때리려 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말렸다. 얼마 전 나는 그 ‘벽’이란 말을 다시 떠올렸다. ‘마음의 벽’ ‘현실의 벽’ ‘마의 벽’처럼 벽이라는 글자 앞에 무슨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다양해지지만 주로 단절과 한계 상황을 표현한다. 요즈음 내가 생각하는 ‘벽’은 예술가의 딜레마에 관한 것이다. 진지한 예술가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견고한 벽을 느끼고 그 벽 너머 새로운 세계를 보고자 한다. 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지 보면서 마침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리 가도 앞서는 이가 있고 저리 가도 결국 남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 그것이 바로 ‘벽’이다. 어쩌면 작가로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그 벽을 느꼈다면 이는 축하받을 일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라면 그것은 절망이다. 이 문제의 벽은 사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벽에 부딪치다’라는 표현은 벽 너머 세계를 감지한 자만의 한계인식이다. 예술가들의 딜레마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가 문 안에 있다는 데 있다. 벽 너머 새로운 세계를 직접 경험해야만 취할 수 있는 이 열쇠는 논리적으로는 획득 불가이다. 이 모순 상황의 극복은 외부로부터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우리는 ‘영감’이라 부른다. 영감의 빛을 따라 골몰하던 모든 고민의 벽을 무화 시킨 천재들의 이야기는 때로 통쾌하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경계 이탈은 묘수이자 악수이다. 생존영역을 벗어나는 수 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영감으로 충만한 시인들을 위험한 광인으로 여겨 도시에서 추방하려고 했다지 않은가? 하지만 예술가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작용하는 영감을 따라 이상한 세계로 뛰어든다. 최초의 영감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자라고 정직한 반응을 통해 힘을 얻는다. 난공불락의 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전위에 선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더욱 살아 움직일 것이며 어느 순간 그들은 영감의 빛을 맞이할 것이다. 반면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쯤에서 장마당을 펼치자’라는 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벽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작품이 제대로 된 예술인지 아니면 허세로운 예술 놀음에 불과한지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갈 곳 없는 한계의 벽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의 행동거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들 중에 지금까지 전혀 작동하지 않던 감각을 깨워 우리 사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예술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를 항해 중인 우주인과 같다. 지구에 아무리 급한 이변이 발생해도 그들의 항로는 수정될 수 없다. 귀환 명령을 내리지 말지니 이들과 우리는 미래의 땅에서 만날 것이다. 그 땅은 넓어 끝을 볼 수 없을 것이며 사람들은 더 이상 옛 땅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벽’을 이야기했던 선생님이 최근에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투루 작품을 하지 않는 예술가였고 교육자로서 예술의 본질을 논했던 그분의 벽이 뭇 예술가들이 마주했던 절망의 벽이었는지 아니면 미술 실행의 장에 존재하는 현실의 벽이었는지, 혹은 또 다른 의미였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이 책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오래된 벽을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셨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B2%BD"></iframe>
94 no image ‘왜?’ 라는 질문으로 경기일보 문화카페기고문 2017.2.8
전원길
1080 2017-02-08
오래전 런던에 있는 어느 미술대학에서 ‘Don’t ask me why 왜 라고 묻지 마’라고 쓴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제발 따지지 좀 말라는 뜻이다. 교수들로부터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리 썼을까 싶었다. 나 또한 유학시절 ‘왜?’로 시작되는 많은 질문들을 통해 나의 작업 전반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영국 미술대학에서 지도교수와의 개별 면담 수업(Tutorial)은 자기 경험에 근거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작품 같은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그 작업을 왜 하는지, 다른 기성 작가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야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수업은 방법론적 진화를 거듭해 온 서구 현대미술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그들은 한 시대를 지배하던 견고한 스타일이 관점을 달리하는 한 작가에 의해 순식간에 옛것이 되는 것을 보았다. 동시대 미술을 넘어 또 다른 미술의 출현을 기대하는 이들은 익숙하고 세련된 많은 작품들보다는 보는 이의 몸을 돌려세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한 점의 작품을 보고자 한다. 요즈음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쉽게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과연 이 작품이 작가의 고유한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남의 것을 베끼지 않았더라도 잡지나 인터넷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작품의 분위기나 아이디어가 알게 모르게 작가의 손끝으로 스며들 수 있다. 노련한 스승은 제자들의 작업에 끼어든 타인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는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집터를 확인해 주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땅에 집을 지으면 헛수고가 되니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새로운 작품세계를 찾아 나선 예술가들에 의해 확장된다. 예술가가 기존의 유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탐험과 같다. 이 여정은 ‘왜?’라는 수없이 많은 자문自問에 대한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는 자답自答으로 채워진다. 끝없는 사색과 실험 없이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진지한 예술가는 자신의 존재 위치를 예민하게 파악하면서 자기가 본 세상의 어떠함을 자신의 작품 안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 낯선 예술적 코드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질문자들에게 되돌려져 해독(解讀)을 기다린다. 집단 정서가 지배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왜?’라고 묻고 ‘왜냐하면’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생뚱맞은 일이 되었다. 학연, 지연, 돈과 권력 그리고 심지어는 외모가 질문과 답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정직한 예술가도 감상자도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판단을 ‘묻지 마’ 정서에 저당 잡힌 무리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열어 실재를 향하게 한다. 흥미롭고 강렬한 교감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작품과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이 만남을 통해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닌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소통을 경험한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세상에서 유일한 ‘나’를 회복하고 유형화된 삶에서 벗어나야만 나의 언어로 너를 만나 새로움을 논할 수 있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의 대부분은 우문이 되기 십상이며 그 대답도 현답보다는 오답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문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태도는 ‘왜?’라는 질문으로 ‘너’와 ‘나’의 정신이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전원길 서양화가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iframe>
93 no image 보물찾기 –미국 아이파크 재단(I-Park Foundatio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2- 2016.12.28
전원길
1105 2017-02-05
보물찾기 –미국 아이파크 재단(I-Park Foundatio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지난 가을 나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의 한 숲 속에서 삼 주를 지냈다. 오래된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자라는 넓은 숲 속은 다람쥐와 흰 꼬리 사슴들이 뛰고 새들이 한가로이 호수 위를 비행하는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지평선이 보이고 태양은 낮은 언덕을 넘을 때까지 긴 그림자를 남기는 그곳에서의 일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매월 6인 정도의 미술작가, 문학가, 음악가들을 선정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아이파크재단(I-Park Foundation)은 운영자 랄프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2001년 커네티컷주 이스트 해담에 설립한 레지던시 공간이다. 자연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소와 현상에 대한 생생한 반응을 담아내는 작업을 격려하는 이 단체의 프로그램 운영 방침은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연 700여명이 지원한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2016년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3주 연속으로 한 장소에서 지내며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였다. 특히 단풍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나뭇잎이라는 단일 주제를 다룸으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낙엽과 만나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숙소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업실을 오가는 길 위에서 작업을 했다. 트렉터의 바퀴로 다져진 길 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리조각, 녹슨 쇠붙이, 플라스틱 조각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살며 일을 했던 사람들의 흔적인 이것들은 낙엽과 더불어 중요한 작업 대상이 되었다. 매일 땅만 쳐다보며 작업하는 나를 보고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분이 ‘보물찾기’를 하냐고 물었다. 맞다! 나와 눈을 맞춘 하나의 낙엽(a leaf)이 시각적 개념적 관계 맺음의 방식을 통해 특별한 잎새(the leaf)가 되는 순간 그것은 보물이 된다. 하나의 낙엽과 나의 만남을 기념하는 일종의 증표는 그곳 그 시간에 즉흥적인 영감에 의해 간결하게 이루어지고 곧 사라지지만 사진으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기억된다. 나는 이곳에서 100여장의 사진 작업과 이를 바탕으로 작업한 같은 분량의 드로잉을 남겼다. 3주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렀다. 대상을 마주하고 작업을 개시하는 순간 점프 하듯이 날아가던 시간은 마지막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세팅을 끝내 고서야 제 속도를 찾는다. 그동안 좋았던 날씨와는 달리 막상 손님들을 맞이하는 날인 오픈 스튜디오 당일은 춥고, 바람 불고, 눈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참여 작가들의 걱정과는 달리 근처에 사는 작가들, 애호가 그리고 공간 후원자들이 많이 찾아 작가들과 진지한 만남을 가졌다. 나는 낙엽 한 장과의 만남을 통해 ‘빛을 느끼고’, ‘그 색과 모양을 보며’, ‘그것이 거기에 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하나의 나뭇잎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 있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사진작업을 편집한 5분간의 영상 자료가 상영되는 동안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가 불이 켜지는 순간 박수를 보내는 그들의 표정을 통해 내가 깊은 공감의 공간 속에 있음을 느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이파크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들, 전나무 숲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쓴 한국계 미국인 유지니아 김, 실리콘 캐스팅으로 입체 회화를 실험하는 쇼니, 동물 가면을 만들어 퍼포먼스 하는 제라, 무덤덤한 기계적 장치가 인상적인 비디오 작가 앤드류, 여행 가방에 집 구조를 만들어 호수에 띄운 로버트 그리고 나뭇잎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어 작업했던 앨리스의 작업을 떠올리면서 나의 작업을 돌아보았다. 잠시 일상을 떠나 몰입했던 이국의 풍광(자연)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의 정취에 취하기보다는 내 발에 차이고 밟히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낙엽에 주목하는 동안 작고 소소한 것들에 반응하는 몸 감각이 나의 상상력과 더불어 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먼저 나서려는 획일적인 지적 반응을 차단하고 변화무쌍한 가운데 일관된 순환의 묘를 살려내는 자연의 흐름에 동조하는 나의 보물찾기가 계속되기를 바래본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B3%B4%EB%AC%BC%EC%B0%BE%EA%B8%B0%0A%E2%80%93%EB%AF%B8%EA%B5%AD%20%EC%95%84%EC%9D%B4%ED%8C%8C%ED%81%AC%20%EC%9E%AC%EB%8B%A8(I-Park%20Foundation)%20%EB%A0%88%EC%A7%80%EB%8D%98%EC%8B%9C%20%ED%94%84%EB%A1%9C%EA%B7%B8%EB%9E%A8%EC%97%90%20%EC%B0%B8%EA%B0%80%ED%95%98%EA%B3%A0-"></iframe>
92 no image 나의 안성 작업실 -경기일보 문화카페 기고문1- 2016.10.6
전원길
1100 2016-12-04
나의 안성 작업실 지난 주말 나의 작업실에 손님들이 찾아주셨다.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경기지역 예술가 작업실 오픈 프로젝트 『옆집에 사는 예술가 : 안성편』 으로 진행된 첫 만남이었는데 이런저런 전시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에도 손님맞이에 대한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설레었다. 그들은 나의 작업실에서 무엇을 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나의 작업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을 다시 생각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작업실을 지어 이사를 한 것이 2001년 11월이니 이곳에서만도 벌써 15년째 작업하며 살고 있다. 십여 년간 일구어온 입시미술학원을 접고 늦은 유학을 다녀온 직후 작업실을 지을 생각으로 두달 여 부지를 찾다가 야트막한 언덕에 둘러쌓여 편안한 느낌이 드는 이곳 미양면 오양골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인적은 물론 길도 제대로 없는 땅을 나뭇가지 헤쳐 가며 찾아들어 여기가 좋겠다 하니 땅을 소개 한 부동산 사장님도 설마 했다가 정말 괜찮겠냐고 걱정을 해주던 곳이었다. 돌이켜 보면 도시를 떠나 외딴 골짜기에 집을 짓고 정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기는 다행히 설치되었으나 전화와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기까지의 몇 년간은 전신줄을 남의 과수원 땅에 몇 백 미터나 연결하여 사용했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만 좀 심해도 통신이 때때로 두절되어 어디가 끊어졌는지 그 전선줄을 모두 훑어야 했다. 포장이 안 된 진입로는 눈이 많이 오거나 봄이 되어 언 땅이 녹으면 4륜 구동차도 대책 없이 헛바퀴만 도는 그런 길이어서 인근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하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밤이 되면 사방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이니 지인들은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오히려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도둑이 겁을 내겠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마련된 나의 작업실은 지금까지 나의 작가로서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심은 묘목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사계절 따라 달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색의 조율과정 자체가 그림이 되는 나의 회화적 방법론을 일구었고, 마당에 서면 너른 호수같이 올려다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무한하게 깊은 푸른색을 얻었다. 제멋대로 자라지만 언제나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잡초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비워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열다섯 차례 열린 개인전 작업의 아이디어를 이곳 안성 작업실에서 얻었으니 그간의 어려움은 갚고도 남으리라.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단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기를 좋아하는 아내로 인해 나의 안성 작업실은 여러 사람들이 찾는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활기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쓸모없는 상상력이 허락되는 자유 공간이며, 작가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몽상이 마침내 새로운 존재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또한 그곳은 개별 작가의 예술적 열망을 실현해나가는 사적공간이면서도 인간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기위한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성에는 이렇듯 자신의 세계를 열어 나가기위해 묵묵히 작업하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 많다. 주로 마을의 끝자락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작업실들은 이제 십 수년 이상씩을 넘긴 작업 공간으로서의 관록이 느껴지고 말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마침 『옆집에 사는 예술가 : 안성편』에서는 10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열다섯 명의 안성 작가들이 돌아가며 작업실 문을 연다. 방문객들은 이들의 작업실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네 마음속 깊숙이 잠들어있는 감성을 일깨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게 해주는 계기를 찾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가을의 만남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감을 다른 분들도 많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iframe frameborder="0" scrolling="yes" src="http://engdic.daum.net/dicen/small_search.do?endic_kind=all&m=all&q=%EB%82%98%EC%9D%98%20%EC%95%88%EC%84%B1%20%EC%9E%91%EC%97%85%EC%8B%A4" style="width: 100%; height: 100%;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iframe>
91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첨부 파일
전원길
2106 2015-10-14
2015 자연미술국제학술세미나 발제문 자연과 미술 사이에서 전 원 길 작가, 야투인터내셔널프로젝트 디렉터 I 들어가는 말 오는 2016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부터는 종래의 공개 공모 방식에 의한 작가 선정 방법을 변경하여 지명 공모 형식으로 작가를 선정하게 됩니다. 이는 추후 예술 감독에 의한 완전 지명초대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기획위원회에서는 사전에 여기 계시는 네 분의 큐레이터를 선임하여 지금 열리고 있는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의 본전시인 세계자연미술가 30인전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큐레이터 분들께 작가 선정을 의뢰하면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지 알려 드려야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야투의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품들 사이에 존재하는 방법론적 차이에 따른 용어 적 혼란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야투의 자연미술은 과연 어떤 특성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면밀하게 재검토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곧 야투의 자연미술운동 확산 과정에서 기획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성격과 역할을 재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발제와 토론이 야투의 자연미술의 특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자연미술운동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으며 이 시대 미술계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사용하는 ‘자연미술’이란 단어는 야투가 1980년대 사계절연구회 Four Season Workshop 를 통해 발전시킨 야투의 자연미술형식을 의미함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저는 1980년대 초 자연미술 방법론이 형성되는 시기에 야투 YATOO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야투 작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1982년 여름 금강 청벽에서 열린 사계절연구회에 손님으로 참석했다가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가 그친 다음, 제 다리에 모래로 손자국을 만든 작업으로 야투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 십여 년간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작업을 남겼지만 저는 당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습니다. 1990년 이후 잠시 야투 현장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저는 야투의 작가들과 함께했던 작업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시작되기 직전 다시 야투로 복귀한 저는 몇 차례의 비엔날레를 치르면서 자연미술이란 무엇이고 자연미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공공장소에서의 전시가 가능할까를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습니다. II 저는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자연미술 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자연미술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답하며 본 발제의 핵심적 부분이기도 한 자연미술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0년대 자연미술 작업을 하면서 자연미술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빠져 있으면서도 뭔가 치열하고, 심각하게 파고들어가는 동시대 미술과의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진지한 예술가로서의 예술적 실현이라고 하기에는 자연미술이 뭔가 미진한 여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는 자연미술이 나로부터 나와서 내가 완성하는 미술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나와서 자연에 의해 완성되고 자연에 의해 작품의 생명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즉 미술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미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은 ‘자연미술은 미술이 아니고, 자연미술이다’라는 것입니다. 자연미술은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행위만으로 작품을 이루어내는 인간의 미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연미술은 신종입니다. 우리는 자연미술의 발전 과정과 작품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투가 처음 자연미술이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1983년 겨울, 야투 창립 이후 일곱 번째 사계절연구회를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에 관하여 고승현 선생은 그의 석사 논문에서 “1983년 1월 제7회 야투의 정기 연구발표회에서 고승현, 고현희, 신남철, 이응우, 전원길 등의 회원들에 의하여 처음 ‘자연미술’이라는 용어 사용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그룹 내 연구 활동의 성격이 야외 현장성과 그 논리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끝없이 변화하고 숨 쉬는 순수 자연에 관해 보다 근본적인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연미술(Nature Art)’의 표기는 일부 회원의 반대로 미루어지고 있다가 1988년에 이르러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자연(Nature)과 미술(Art), 이 두 단어를 합성하여 사용한 세계 최초의 일로, 그 후 야투(野投)가 개최한 여러 번의 국제자연미술전과 활발한 해외 교류 활동을 통해 점차 일반화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자리에서 과연 자연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디까지를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도 토론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승현이 논문에서 이야기했듯이 야투 창립을 주도하며 그룹 내 연구 활동의 기틀을 잡았던 임동식 선생은 독일 유학 당시 한국의 고승현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자연미술’이라고 했을 경우, 작업의 대상이 자연으로 한정됨으로써 장소나 재료에 제한을 받게 됨을 염려하였습니다. 대신‘현장미술’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자연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당시 사용하던‘현장미술’을 그대로 사용하자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임동식 선생은 야투 창립 당시 미술의 한 형태로서‘현장미술’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함께 참가했던 젊은 작가들 역시 미술로서 현장미술을 받아들이고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야투는 창립 이후 곧 기존의 야외설치미술의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적 자연미술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견인하던 미술궤도에서 이탈하여 자연의 살아있는 생명력이 미술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루트를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자연미술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제 야투의 작가들이 35년여를 통해 남긴 많은 작업들 중에서‘자연과 미술(인간)의 관계 맺음을 통해 하나의 미술 상태로 존재하며, 자연으로 열려져 인간의 의식과 자연의 생명력이 자유롭게 만나고 작용하는’작업들을 찾아 그 특성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자연미술의 특성 1) 자연을 따르는 미술 자연미술가들은 사전에 작품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한 작업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용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투의 작가들은 자연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이끌어주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자연미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상상력이 작용하는 자연미술 자연미술은 자연을 미술을 위한 재료로만 다루거나 작품 설치를 위한 장소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미술의 주체로서 미술 안에서 작용합니다. 자연미술은 무엇인가를 잘 만들어 보여주기 보다는 자연과 자연 혹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맺음을 담백한 방식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따라서 자연미술의 미학적 가치는 자연의 생명력이 자연미술 안에서 온전하게 작용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3) 자연과 미술이 공존하는 자연미술 야투의 작가들은 단지 자연으로부터 어떤 아이디어를 얻어‘나의 미술’을 하기 보다는 자연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작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업 속에‘인간이 거기 함께 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자연미술은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자연미술은 자연과 미술이 서로 열려져 있는 상태로 공존하며 인간의 미술의지와 살아있는 자연이 밀고 담김의 규형을 이루는 지점에 잠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4) 자연과 미술로 확장되는 자연미술 자연미술은 자연과의 사이에 경계를 만들지 않으며 자연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자연미술은 그 자체로서 완결상태이면서도 성장, 진화, 변이가 발생할 수 있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자연미술은 자연으로의 무한 확장이 가능할 뿐 만 아니라 기존의 미술 안으로의 역 확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미술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순간 사진이라는 기존의 미술과 연계되고, 현장의 작업을 보존과 전시가 가능하도록 변환할 경우 이 역시 야외조각이나 설치미술 같은 기존 미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5)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연미술 자연으로 부터의 영감에 의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은 되새김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통해서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풍부한 의미요소들이 이후로도 마음속에서 계속 생성됩니다. 자연미술 작품이 자연을 받아들이면서‘미술을 포함한 자연 상태’가 되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의식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미술 작업은 전시, 판매, 소장이 불가능하지만 그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미술입니다. 직관적 행위를 통해 자연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려는 행위가 시적 함축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자연미술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2. 자연미술의 정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미술은 자연과의 맞대면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고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자연과의 만남을 미술적으로 실현하는 작업으로서 기존의 미술과는 기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투가 미술그룹으로서 34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현대예술가들의 태도와는 달리 자연의 어떠함을 드러내는데 더욱 마음을 쓰면서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자연이 주가 되는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자연미술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자연과 인간의 만남 자연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자연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전혀 예기치 않았던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이 분명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연이라면 인간과 자연과의 만남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미술을 한다는 것은 자연 자체의 흐름이 유지되는 가운데 인간의 또렷한 예술적 의지가 작용해야하는 것입니다. 2) 원초적인 몸 감각의 회복 야투작가들은 자연미술 작업을 위해 사전에 재료나 도구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빈 몸으로 자연으로 들어갑니다. 눈과 귀를 예민하게 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가운데 자연 또한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기를 기다립니다. 자연미술은 마치 움직이는 열차의 특정한 위치에 점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열차를 세우지 않고 원하는 위치에 점을 찍기 위해서는 열차와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살아있는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그에 반응하는 우리의 생각과 감각적 판단이 주의 깊게 작용해야만 자연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고 그 접속점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상호 교류하는 작업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자연미술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연과 소통 가능한 몸 감각을 일깨워 자연과 만나게 합니다. 3) 자연스러운 자유미술 오늘날 미술계를 대변하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은 미술의 권력화와 상업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으며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연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가장 소박한 조건하에서 발생하는 미술로서, 권력화 된 지식의 횡포와 자본주의 무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는 성공, 욕망 등으로 인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스러운 자유미술영역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김순임 The Seats ; The Space 24-Songchoo ,Korea 4)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야투가 출발할 1981년 당시는 현재 전 세계적 화두인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의 문제가 대두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야투는 자연의 질서와 그 생생한 생명력에 몸을 맡길 따름이었지 자연을 걱정하거나 그 유지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연미술 정신과 방법론적 특성은 위태로워진 지구 환경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의 균형 잡힌 관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5)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미술 자연미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자연의 현상現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쉽게 그 내용이 전달되어져 오는 특성으로 인하여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의욕을 느끼게 합니다. 제작되고 감상되는 일반 미술과는 달리 직접 자연과 만나는 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은 미술계를 넘어서 인간계를 향하여 확산되어야 합니다. 4. 야투의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자연과의 맞대면을 통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미술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아 움직였던 야투의 자연미술활동이 소규모 연구모임의 성격을 벗어나서 1990년대 대규모 국제전시를 기획하게 되면서 야투는 발전과 위기를 동시에 맞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자연미술은 비전시적 상태일 때 자연미술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반면 전시적 성격으로 가면 일반 미술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술했던 자연미술의 특성 대부분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1990년대 국제자연미술전 특히 2004년에 창립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국제적인 교류와 전시적 행사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측면만 주시할 것이 아니라 자연미술의 고유한 특성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재차 언급했듯이 저는 자연미술이 사진으로 기록되거나 실내외 설치 혹은 조각적 성격의 작업이 되는 순간 자연미술은 이미 기존의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미술 형식 안에서 자연미술은 새로운 방식으로 감상,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독립된 작품 그 자체로서 힘과 생명력을 획득해야 하는 미술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가에 따라서 자연미술은 동시대 미술에 새로운 활력과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단지 자연이라는 이름만을 가진 힘 빠진 미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III 이제 발제를 마치면서 제가 처음에 제기한 자연미술의 독자적인 특성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성격의 불일치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발제를 준비하는 초기에 저는 현재 네이처아트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 자연미술을 한글 발음 그대로 Jayeon Misool이라고 표기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우리의‘자연’과 서양의‘Nature’에는 동서양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야투의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업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국제화 시대에 Jayeon Misool이란 단어를 재차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또한 Jayeon과 Nature를 구분해 사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품이나 회원들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설치나 조각 혹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저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작품들이 비록 자연 속에서 자연물을 이용하거나 자연의 질서와 현상을 작업에 반영한 것들이긴 하지만 원래 야투의 자연미술의 특성과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라고 하기 보다는 자연미술이라는 말을 빼고‘금강비엔날레’라고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문제를 야투회원들과 토의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회의에 참가한 모든 작가들은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야투의 자연미술이라는 고유한 영역의 특성을 명료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금강비엔날레로의 개칭에 동의하였습니다. 다만 자연과 함께 작업하는 비엔날레의 고유한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별칭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16년 비엔날레부터는 개칭된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제가 자연미술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여 드린 작품들과 저의 설명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통해 본 발제의 미진한 점이 보완되기를 바랍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이제 순수한 자연미술의 정신을 희석시키는 후퇴와 타협의 행사가 아닌 자연미술이 다시 미술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역 확산 전략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문화권에서 발전해온 자연과의 교감의 방식을 미술로 표현하는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내실 있는 비엔날레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알로이스 린덴바우어 2012 김용익'날 그냥 흐르게 내버려 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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